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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유를 누리자 (사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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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민족과 우리 민족이 각기 오랜 역사적 질고(疾苦)의 되풀이 속 에서 비슷한 민족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대체로 공 감을 받고 있는 이러한 시각은 오랜 세월 동안 타민족들에게 시달림을 당 하고 또 나라를 잃는 설움까지 겪었던 두 민족의 수난의 역사를 근거로 합니다. 사실 우리 민족보다는 이스라엘 민족의 수난의 역사가 더 강도 깊고, 빈번했는데, 지금 우리의 눈에 비추어지고 있는 두 민족의 모습을 비교한다고 할 때 부끄러움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우리나라는 독립 국가입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독립 국민입니까 오히 려 일제 치하에서보다 오늘날 더 일본의 영향권 안에 예속되어 있다는 느 낌을 받습니다. 일본의 성실성이라든가 장인(匠人) 정신, 협동 정신 등은 본받을 만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저질 퇴폐 문화를 여과 없이 받 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에게 각성이 필요합니다. "주님, 저희 민족이 주님의 법도 아래에서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향한 좁고 곧은 길만을 걸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인 답습이나 배척을 지양하고, 하나님의 지혜로 그 들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자유는 힘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아나이다…"-대상 29:17.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 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 라"-욥 8:5,6.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 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잠 15:19. 학교를 갓 졸업한 한 그리스도인 여성이 어느 회사 사장 비서로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유 인즉 날마다 수십 통씩 걸려오는 전화 가운데 절반 이상은 적절한 거짓말 을 해서라도 사장실로 연결하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생활 을 견디다 못한 그 여성은 어느 날 사장에게 사직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사장은 며칠 생각할 여유를 달라고 하고는 며칠 뒤에 그 비서를 경리과 중역으로 발령 내렸습니다. 사장은 그 그리스도인 여성의 정직성 을 높이 산 것이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정직한 것은 바보스러운 짓이라 고 여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직은 우리에게 반드시 좋은 열매를 가 져다 줍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정직한 자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 "주님, 저희에게 정직한 영을 불어넣으시사 저희로 하여금 사특한 길로 다니지 않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당신은 당신이 계신 곳에서 신뢰받는 사람입니까 정직한 사람은 하나님의 가장 고상한 작품이다. '경계선을 넘지 말라'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 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 3:8-10.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 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엡 4:24,25.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 사(葬事)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 이니라"-롬 6:4.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바다는 해수욕을 즐기러 온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 룹니다.
그런데 해수욕을 하다보면 더이상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경계 표 시로 깃발이 꽂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 경계 표시를 무시하고 너무 멀리까지 헤엄쳐 가다가 아까운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우리가 범하지 말아야 할 행위와 자세를 명시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경고를 무시하 고 고의적으로 금지구역을 헤집고 들어갈 때가 많습니다. 당신이 혹, 그 런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은 아니신지요
그렇다면 아직 의식이 있을 때 구조 요청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센 죄악의 물결이 당신 을 삼켜버리고 말 것입니다. "주님, 순간적인 유혹에 흔들려 그릇된 길을 자꾸만 바라보게 되는 저희 마음을 주장하사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순종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게 인 도해 주시옵소서." 혹, 넘지 말아야 할 경계선을 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순종에서 오는 희생은 불순종에서 오는 희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늘 하나님과 대화하자'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 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 까지 두르시리로다"-시 125:1,2.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 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요 14:13.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어린 아이처럼 믿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주 작은 일까지도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조금도 귀찮아하지 않으시고 그녀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녀는 그 러한 하나님께 늘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질구 레한 일까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는 내 힘으로도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맹 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도를 단순히 기원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 그러나 기도는 단순한 기원이 아니라 대화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많은 대화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고 그분의 뜻대로 행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 저희로 날마다 시간마다 일마다 주님과 대화하게 하시고 그렇게 함으로써 주님의 세밀하신 뜻을 알아 늘 감사하는 생활을 하게 하소서." 당신은 얼마나 순수한 마음으로, 얼마나 자주 하나님과 대화하고 계십니 까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품 안에서 영혼이 호흡하는 것이다. '위로와 격려가 필요할 때 '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나로 소망이 있게 하셨나 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 다"-시 119:49,50.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롬 15:4. "육(肉)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님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 게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 변함이니라"-고전 2:14. 유명한 설교자인 워런 위어스비 목사는 첫 목회를 교회 건물도 없는 시골 에 가서 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암담한 현실을 보고 낙담하지 않을 수 없 었습니다. 그는 목사직을 사임하고 다른 일을 할까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 그러던 중 그는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 리로다"라는 시편 33편 11절 말씀으로 많은 격려를 받았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사람의 말로는 아무런 위로와 격려를 받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조용히 성경 말씀을 펴시기 바랍니다. 성경 말씀은 절망으로 지 쳐 있는 당신에게 밝은 희망과 따뜻한 위로를 줄 것입니다. "주님, 주님의 말씀은 곤란에 빠져 있는 저희를 위로하고 살리는 말씀인 것을 믿습니다." 당신은 말씀으로 위로받고 격려받는 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나는 늘 성경 말씀으로 격려를 받는다. 나는 친구와 가족들의 도움에도 감사하지만 궁극적으로 나를 붙들어 주는 것은 성경 말씀이다. '인생의 겨울을 맞이할 때'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 로다"-시 28:7.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 다"-시 57:8.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 로다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공교히 연주할지어다"-시 33:1-3. 때때로 우리는 기도도 할 수 없고, 성경 말씀도 읽을 수 없는 감정 상태 를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찬송을 몇 번이고 반복해 부름으로써 영혼의 쉼과 마음의 평안을 얻 을 수 있습니다. 현재 불려지고 있는 많은 찬송가를 쓴 마가렛 클락슨도 "너무 지쳐서 다른 많은 것을 기억할 수 없을 때 몇 줄의 운율은 쉽게 마음을 파고 든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요즘 어떤 감정 상태를 경험하 고 계십니까 혹, 기도도 할 수 없고, 성경을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를 경험하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그렇다면 찬송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찬송을 부름으로 슬픈 마음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의욕을 잃은 마음 은 희망을 가진 마음으로 바뀔 것입니다. "주님, 저희는 때때로 심한 영적 침체에 빠집니다. 그럴 때 저희의 입술 에 찬송을 두사 저희로 주님이 주시는 위로를 체험케 하시옵소서." 당신의 입술에 찬양이 머물고 있습니까 찬양은 웃음과 기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눈물과 슬픔 속에도 있다. 사랑으로 용납하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 19:6. "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 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만일 갈릴지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 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전 7:10,11.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 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 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고전 7:12,13. 네델란드의 어느 지방에는 결혼식을 치룬 신랑, 신부가 집으로 들어갈 때 특별한 문을 통해 들어가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특별한 문 은 그후 굳게 닫혀 있다가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죽었을 때, 비로서 시체 가 통과하는 문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이 풍습에는 한 번 결혼했으면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기 전까지는 절대로 이혼하지 말고 행복하게 살 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풍습이 무색할 정도 로 이혼이 마치 아이들 장난처럼 무분별하게 행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 은 사랑과 용서 대신 미움과 보복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점 에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었던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오래 참으심으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그 사랑의 마음이 지금, 우리 각자의 마음에 필요합니다. "주님, 저희로 주님의 사랑을 무한하게 받은 자답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은 당신 배우자에게 너무 지나치게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용납하고 이해하십시오. 당신의 배우자를 당신 자신의 개정판으로 만들려 고 애쓰지 마십시오. 당신의 다른 점을 창조적인 장점으로 여기고 열등감 의 표적으로 보지 마십시오. 우상숭배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 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수 20:4,5. "만일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을 범하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에게 절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치리 니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망하리라"-수 23:1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 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 장 고상함을 인함이라…"-빌 3:6-8. 약 4천 명의 교도들을 거느리고 있던 단군교의 교주가 우상을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해서 화제거리가 되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교단 해체를 선언하는 자리에서 "나는 참신이신 하나님을 따르기로 결심했다"고 밝혔 습니다. 정말로 귀한 결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모순되게 도 이미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수많은 교인들에게도 이러한 결심이 절실 히 요구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은 목상이나 석 상 앞에 절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지만 아주 교묘하게 우상을 섬기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즉, 자신, 남편, 아내, 자식, 애인, 돈, 명 예 등과 같은 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 까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것은 엄연한 우상숭배요, 영적인 음란행위입니다. "주님, 저희로 저희의 모습을 세밀하게 살피게 하시고, 저희의 삶과 저희 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모든 우상을 깨끗이 몰아내는 작업을 하게 하시 옵소서." 솔직하고, 냉철하게 당신의 모습을 살펴보십시오. 당신은 참으로 하나님 을 당신의 유일한 주인으로 모시고 계십니까 사단은 능숙한 낚시꾼처럼 물고기의 취향에 따라 미끼를 던진다. 절망은 교만이다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 나무 아래 앉아서 죽 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왕상 19:4.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시 40:5.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때로는 절망에 빠져 형편없는 모습으로 허우 적거릴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 사실은 열왕기상 19장 4절에 나오는 엘 리야의 모습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아마 당신도 지독한 절망의 심 연에 빠져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절망에 빠지게 되는 걸 까요 그것은 다음 세 가지 사실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출발점 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죄의 종노릇을 하고 있던 상태에서 벗어 나 감격스러운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면 절망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둘째는 도착 지점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 당신의 도착 지점은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잠깐 당하는 현실의 고난 때문에 절망할 이유 또한 없습니다.
셋째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늘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인정한 다면 당신은 절망 같은 건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절망은 교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 때때로 저희는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면서 절망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잊고 있던 세 가지 사실을 저희로 기억토 록 하시옵소서." 절망이 당신을 엄습해 올 때 주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절망하는 자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비하시키고 말씀의 공정성을 인 정하지 못하는 자이다. 또한 그는 성경 말씀을 헛되이 읽은 자요, 세상을 주관하시고 인간의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최고 권위를 부정하는 자이다. 니느웨냐 다시스냐 니느웨냐 다시스냐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 러움에 내어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 이라…"-롬 1:24.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 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 1:2 8.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욘 1:3.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갔습니다. 니느웨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곳이지만, 다시스는 자신 의 뜻과 자신의 소원이 성취되는 곳입니다. 당신에게 있어서 니느웨는 어디이며, 다시스는 어디입니까 혹, 당신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어떤 길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 뜻대로 일을 추진하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그리고 그 일이 잘되어 가고 있지는 않은지요
그렇다면 당신은 통곡하셔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그냥 내버려 두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버려 두심 "은 하나님의 형벌 가운데 가장 끔찍한 형벌입니다. "주님, 저희로 하여금 저희 앞에 놓여 있는 니느웨와 다시스를 명확히 분 별케 하시고, 저희가 늘 니느웨로 향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당신은 지금 니느웨와 다시스 중 어디로 가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만을 명령하신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기 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특권이다. 성숙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 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4.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님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 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님을 거스리고 성령님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 려 함이니라"-갈 5:16,17.
어떤 신학생이 교수를 찾아가 정규과정을 중도에서 포기하고 속성과정으 로 재등록하는 문제를 상담했습니다. 그러자 그 교수는 다음과 같은 답변 을 해주었습니다. "물론 가능하네. 하지만 그것은 자네가 무엇이 되기를 원하는가에 달려 있네. 하나님께서 참나무를 키우기 원하신다면 백 년을 들이시겠지만, 호박을 키우기 원하신다면 육 개월밖에 투자하시지 않을 테니까 말일세."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종종 오해하는 한 가지 사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금방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그리고 되어야 하는 것처럼 착 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숙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과일이 탐스럽게 익을 때까지 수많은 날들과 햇볕과 단비의 노 력이 함께 어우러져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저희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달음질하게 하시고 , 거기에 합당한 인내 또한 허락해 주시옵소서." 당신은 당신의 성숙을 위해 계속 기도하며 노력하고 계십니까 우리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위대한 날, 투쟁의 날, 위기의 날, 승리의 날 ,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이 있던 날, 게으른 날, 기도와 경건한 예배조차 부담스럽던 날들을 통과해야 한다. "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영혼을 즐겁게 하나이다"-시 94:19.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4.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 를 조성(造成)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 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한 아이가 친구에게 얻어맞고 울면서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현명한 어머 니는 아이를 끌어안고 "아가야, 지는 것이 이기는 거란다. 하지만 우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란다."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 자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눈물자욱이 있는 얼굴로 씩 웃어 보였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참으로 많은 상처를 받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 부터 배반을 당하기도 하고, 가족이나 친구나 사회로부터 따돌림을 당하 기도 합니다. 그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하십니까 엄마 품보다 더 따뜻한 하나님의 품에 안겨보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얼마나 아픈지, 그리고 그 상처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손수 당신의 상처를 싸매고 치료해 주실 것입니다. "저희의 위로자 되시는 주님, 저희의 상처를 주님 앞에 들고 나가오니 주 님의 인자로 싸매주시고 치료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위로가 필요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품에 안기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도 닦아 주신다. 최고의 것을 하나님께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 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10,11.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 하여 죽으셨도다"-롬 5:6. 한 과부의 아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기 위해 선교사가 되기로 결 심을 했습니다. 그러나 과부는 오랫동안 예수님을 믿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결심에 동의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과부는 아들을 타국으로 떠 나보내고 혼자 살 일이 무척 두려웠습니다. 그러던 중 과부는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통해 자신을 위해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들을 기꺼이 선교사로 떠 나보냈습니다. 최고의 사랑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것을 상대에게 주는 것 입니다. 우리는 곧잘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나 자주 쓰다가 남은 찌꺼기를 하나님 앞에 드릴 때가 있습니다. 당신에 게 주어진 가장 좋은 시간, 물질, 정열은 지금 어디에 쏟아 부어지고 있 습니까 "주님, 사랑의 가장 숭고한 표현으로 주님에 대한 저희의 사랑을 나타내 게 하시옵소서." 오늘, 모든 것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시기 바랍니다. 세속적인 사랑을 `얻는 사랑'이라고 한다면, 기독교적인 사랑은 `주는 사랑'이다. 상대적 자만심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지어다"-시 75:5. "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교만한 자여 보라 내가 너를 대적하나니 네 날 곧 너를 벌할 때가 이르렀음이라 교만한 자가 걸려 넘어지겠고 그 를 일으킬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그 성읍들에 불을 놓으리니 그 사면에 있는 것이 다 살라지리라"-렘 50:31,32.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 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사 13:11.
C.S. 루이스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세상 사람들이 부와 재능과 잘생긴 것을 자랑한다고 말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그들은 상대적으로 남들보다 부자이고, 똑똑하고, 잘생겼다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부자이고, 똑똑하고, 잘생겼다면 아무 것 도 자랑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자만 심을 갖습니다. 때문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자만심을 갖고 삽니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만심을 가진 사람을 제일 싫어하십니다. 그것은 자신을 높이고 다른 사람을 형편없이 얕잡아 봄으로써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귀한 자녀입니다. 당신도 혹, 상대적인 자만심에 빠져 계시지는 않는지요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당신의 터무니없는 자만심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주님, 저희 안에 있는 터무니없는 자만심을 치료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 혹, 당신도 심각한 자만심에 빠져 계시지는 않는지요 예수님 중심의 삶과 자기 중심의 삶이 함께 유지될 수는 없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자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 히 합하라"-고전 1:10.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 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마 12:25.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 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 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 다…"-약 4:1,2.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높이 찬양하기 위해 모인 합 창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같은 노래를 부르지 않 고 각기 다른 노래들을 불러대어 합창을 망쳐 버리는 경우를 봅니다. 당신은 당신이 속해 있는 그리스도인 모임에서 어떤 노래를 부르고 계십니 까 좀더 우월해 보이기 위해 다른 사람과는 다른 노래를 부르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아일랜드의 서해안 지방에서 고기를 낚는 어부들은 "키러"라고 불리는 특 이한 구조의 배를 타고 고기를 잡는다고 합니다. 그 배는 마치 한 사람이 노를 젓는 것처럼 모든 선원들이 한 마음이 되어 노를 저어야 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같은 `키러'에 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마음이 되어 저 천국을 향해 노를 저어야 합니다. "주님,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모임이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길 원합니다." 당신이 속해 있는 모임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는 곳에서는 성령님의 폭발적인 역사가 일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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