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재앙의 의미 (출7:8-12:36)
본문
1. 나일강의 물이 피가 되게 함(7:14-25)-나일강의 신 Nilus 징치
2. 개구리로 온 땅을 덮게 함(8:1-15)-다산신인 개구리 형상의 Hekt 징치
3. 애굽 온 땅의 티끌이 이(빈대, 모기)가 되게 함(8:16-19)-땅의 신 Seb 징치
4. 파리떼 일으켜 사람들과 짐승들 쏘게 함(8:20-24)-투구풍뎅이 신 Khephera 징치
5. 모든 생축이 악질이 생겨 죽게 함(9:1-8)-수소와 암소의 신 Apis와 Hathor 징치 6. 재를 뿌려 독종(붉게 타들어가는 피부병;욥)이 생기게 함(9:9-12)-악마의 눈을 가진 신 Typhon 징치 7. 하늘에서 우박이 내리게 함(9:18-21)-대기의 신 Shu 징치 8. 메뚜기로 푸른 곡식을 먹게 함(10:4-19)-곡식을 지켜주는 신 Serapis 징치 9. 캄캄한 흑암이 3일간 온 애굽을 덮게 함(10:21-29)-태양신 Ra 징치 10. 장자를 죽이는 재앙(12:29-33)-생명의 신 Ptah 징치 7:10절 구체적으로 바로 앞에 가서 행하라고 하시는데, 바로가 어떻게 반 응할 것인가를 미리 알려주신다(바로가 강퍅해질 것). 11절은 지팡이가 뱀 이된다. 애굽의 술객도 지팡이로 뱀이 되게한다. (박사) (박수) (술객) 단순히 마술을 행하여 눈속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악령의 도움을 받아 악령의 힘으로 행하는 것이다. 계몽주의의 영향이 여러가지 해를 끼치는데 미신이라 하여 쓸데없는 공포로부터 해방시켰다고 하는데 오히려 눈을 감고 못보게 하는 것이었다. 과학자들은 심리적인 것, 착각이라고도 하나 그런 것도 있을 수도 있지만 실제 악령이 행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마술을 하는 사제, 제관:박수 사람이 잘 모르는 비방을 행하는 자:술객이라 한다. 출애굽을 세상 나라 안에서 자라가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세상 나라가 박 해하고 없애버리려 하는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갈등의 역사로 본다. 이는 제일 처음 사건이다. 모세를 정점으로 하는 세력과 바로를 정점으로 하는 세력의 싸움과 갈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싸움이 정치적 싸움, 강대 국에서 약소국을 해방시키는 육적 싸움이 아닌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바 로가 세상 나라의 대표라 할 수 있는데, 바로가 술객들 제사장들 Priest를 내보내는 것을 볼 때 단지 이는 정치적인 싸움이 아니다. 종교적 충돌이요 배후에는 악령들이 개입되어 있다. 모세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혼자 대 결하는 것이 아니다. 이 두 충돌은 세상적 차원과 정치적 차원의 충돌이 아 니요, 이 충돌은 악령과 사단과 하나님과의 충돌이요, 하나님 나라, 하나님 의 왕국의 왕권, 하나님 나라의 고체(imbody)라 할 수 있는 자는 모세, 이 스라엘의 장로들이다. 세상 나라 사단의 도구는 바로와 술객들이다. 처음부터 하나님과 악령들간의 싸움이다. 하나님 통치 받는 나라와 그 백성과 세상의 사단의 통치받는 세상 나라와 그 백성과의 싸움이다. 12절 모세의 지 팡이가 변한 뱀이 바로 술객의 뱀을 잡아먹는다 = 하나님께서 앞으로의 투 쟁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보여준다. 14절 나일강을 당시 사람이 먹음-식수였다. 그리고 애굽의 풍부함의 근원이 나일강이었다. 나일강은 생명이요 풍부함의 상징.
그러므로 이 생명의 근원인 나일강 을 신격화시킨 나일강을 피가 되게 한 것은 이것이 애굽의 생명줄이 아님을 보여주고 하나님께서 나일강을 피가 되게 하신 것으로 치신 것은 애굽의 우 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요 심판이다. 8장 1절 개구리 재앙, 16절 티끌이 이가 되게함, 19절 애굽 술사들이 이 를 행하지 못함-이를 보고 하나님의 권능, 하나님의 손가락이라함, 하나님의 손가락 = 하나님이 친히 개입하셨음을 말한다. 애굽의 술사들이 무엇 인가를 깨닫고 이는 신의 직접적인 개입이요 자신들이 당할 수 없음을 말하 고, 이들은 악령을 부리는 자들이요 이들처럼 악령을 통해 행하는 술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행하시는 것임을 알게된다. 9장, 10장은 파리재앙, 역병이 가축을 치고, 피부병(이때 애굽 술사들이 악령의 하수인들이나 하나님 앞에서 견디지 못함), 우박으로 곡식을 치신다 (생존수단 또는 일의 수단을 치심) = 하나님은 이스라엘만 아니라 애굽도 통치하시는 분, 모든 인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임을 보여주는데, 이 모든 재앙들이 유월절의 재앙으로 연결되어진다. 유월절에 가서 굴복되어진다. 메뚜기 재앙을 당하고 바로의 신복이 굴복하고, 우박 재앙시부터 바로 신 복들 중에서 이탈자가 생겨나는데, 이것은 이기적 관점보다는 물론 그들의 믿음이 완전하지 못하나 이들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시 이스라엘만이 아니고 많은 잡국이 함께 출애굽했는데 그중에 애굽인도 포함되었을 수 있다. 온 우주 만물의 하나님을 체험하고 믿어 함께 나왔음을 보여준다. 흑암:생명부재, 죽음, 심판의 상태임을 표현, 죽음이 사흘 동안 임함 은 암시적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빛이(생명력)이 있었다. 마지막 재앙이 유월절이다. 애굽 술사로부터 시작한 모든 재앙들의 절정 이 유월절이다. 즉 악령과의 싸움에서 절정을 이룬다. 11장 이제까지 지팡이를 던져 일으킨 재앙 사건들의 절정이 유월절 사건 이다. 이 사건들의 의미는 하나님과 그 백성, 사단과 그 백성의, 즉 세상 나라와의 전쟁이다. 이 제까지는 내보내지 않았으나 이 유월절 사건 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빨 리 나가라고 내쫓는다. 유월절은 하나님의 절정적인 승리(사단과 세상 나라 에 대한 승리). 장자:기력의 시작, 장자를 치는 것, 애굽 기력의 시작을 치는 것. 원칙 적으로 애굽을 깨부수는 것, 결정적인 패배를 주는 것이다. 마귀가 하나님과 동등한 세력이 아니다. 마귀도 하나님의 지배하에 있다. 즉 유월절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한 세력에 대한 심판의 성격을 갖는다. 앞의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반역한 세력에 대한 심판의 성 격을 갖는다. 앞의 모든 사건은 명령을 거부한 것에 대한 징벌의 사건이요, 그 심판에서 이스라엘은 항상 구별되어 심판을 면한다. 유월절도 이 사건들의 절정이므로 사단과 그 추종자들인 세상 나라에 대 한 심판이요 이스라엘은 그 심판을 면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 심판을 무엇으로 면하는 가가 유월절 사건에서 보여짐, 즉 어린양의 피를 근거로 심판을 면한다. 유월절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삭을 제물로 바침. 앞으로 성전이 세위질 곳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어린양이 피 흘려야 할 장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야 할 장소, 이 어린양의 그 제사의 성격이 유월절 사건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밝혀진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그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심판을 행하지 않으시고 넘어가시는 것과 그 어린양의 살을 먹는데 모든 이스라엘이 참여하는 것, 각 개인이 혼 자 먹는 것이 아니라 가족 단위로 또 가족 수가 적은 자는 다른 가족과 합 하여 먹음, 즉 공동체 단위로 참여한다. 피:생명을 의미, 나 대신 생명을 희생한 그것에 의해서 생명을 얻 음, 새 생명을 얻는 것이요, 제육에 참여함:그 제사에 내가 하나된다, 그 양과 내가 하나된다. 아담이 하와에게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내 살 중에 살이라"는 것은 그가 나와 하나이다라는 의미. 로마서 6장에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살으심 에 하나됨, 즉 제육에 참여한다, 살을 먹는다-성만찬과 연결-그리스도 와 하나됨을 뜻한다.
그런데 여기에 참여하는 것이 공동체 단위로 참여, 나 혼자만이 관계, 그리스도와 나와의 관계만이 아니고, 수평적인 관계 교제가 포함되어 있다. 고린도전서:성만찬이 강조하는 것, 너희로 그리스도에게 하나되게 하는 것이요 이는 또 너희들도 하나되게 함 교회의 분열 계급화를 반대 = 제 육에 참여함은 교회의 성만찬과 동일한 본질의 의미, 그리스도는 성만찬을 유월절과 관계시키셨다. 이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며 구약자체 내에서도 이를 읽을 수 있다. 유월절의 독특함:유월절 어린양을 대신함으로 내가 생명을 얻음, 이 새 생명의 핵심에 대해 바울은 죄사함이라한다. 죄사함을 위해 흘리는 어린양 의 피라함 = 어린양과 하나가 됨과 동시에 그 어린양에 참여한 모든 지체와 또한 내가 하나됨을 포함한다. 이렇게하여 출애굽이 이루어지는데, 숙곳에서 발행하여 약속의 땅으로 간다. 이때 불레셋 땅으로 가지않음은,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을 보고 후회할 까 보아서이다. 요즈음 옛 지도가 발견되어지는데 옛 애굽의 수비대들의 위 치를 그린 지도가 발견되었다. 어떻게 홍해를 건너게 되었는가 바로는 다시 마음이 강퍅해져서(하나님 께서 강퍅케하심), 바로가 다시 전차를 내보내어 이스라엘을 추적한다. 추적하던 이 병거와 전차들이 홍해 속에 결국 몰사하고 만다. 이 의미는 무엇인가 한 나라의 세력은 군사력으로 단적으로 표현된다. 병거, 전차는 그 당시 최신 무기, 강력한 무기요 그 병거는 600승이었다. 이도 선정된 것이요, 최신예의 병거 중에서도 또 뽑아 선정된 것이 600승,
그런데 이것 이 몰살된다. 장자를 침 = 애굽의 기력을 침, 세력의 기를 꺽음. 병거를 몰살 = 다시 애굽이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결정적 사건으로 쐐기를 박는 것 같은 사건, 이것은 하나님의 전쟁이라는 측면으로 보았는데 그 측면에서 사단 세력을 깨뜨린 하나님의 결정적인 승리의 사건.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건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고전 10:1-4절에서는 홍해를 건너는 것을 구름 아래에서 세례를 받았다라고한다. 홍해:옛 땅에서 새로운 땅,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는 최대의 장애, 그냥 건널 수 없는 죽음을 상징(애굽 병거의 몰살)한다. 구름 아래에서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시이다. 하나님의 임재 아래에 서 애굽에서 노예상태로 있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데 가장 큰 장애인 죽음의 장소를 하나님의 임재 아래에서 마른 땅처럼 건넜다. 고전 10:2절 "모세 안으로 모세 속으로 모세에게 속하여 세례를 받았다" 모세를 그리스도와 비교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 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분,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 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종. 그리스도는 신약에서 구원사역을 이룸, 모세는 구약에서 구원사역을 이 룸. 신약에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사역을 이루신다는 것을 믿고,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나아갈 때 구원얻는 것처럼,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구원사역을 이루실 것을 믿고 모세를 의지하여 나아갈 때 구원을 받게하신다. 이렇게 볼 때 홍해사건과 유월절 사건은 같은 내용이다. 하나님께서 두 번 반복하신 것이다. 다시 돌이켜 홍해사건을 일으켜 하나님 께서 애굽을 쳐부수고 이는 아무것도 아님을 보여주시고 두려움을 씻어주신 것이다. 이 사건들을 통해 최종적으로 보이신 목적은 하나님은 유일하신 신이시 며, 애굽의 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만이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유일한 신이심을 보이시는 것, 즉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신 사건이다. 이스라엘에게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신 사건도 되 나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이신 사건이다. 이 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유인이 됨, 즉 세상의 노예됨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섬기는 자유인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통치는 인간을 못살게 하고 억압을 주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복되게 하고 잘살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 기는 것이 축복이요 생명이다. 유월절 사건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께서 사단(세상)의 세력을 멸하 시고 그것에 사로잡혀 노예된 그의 백성을 구원하셔서 자유인이 되게 하셨다. 이 원리는 신약에서 그대로 적용되었다. 홍해-애굽과 약속의 땅의 경계, 두 영역을 나누는 것. 이스라엘은 이 죽음의 영역을 넘음으로 노예의 땅에서 완전히 결별 즉 노 예생활과 세상문화, 세상의 타락한 생활 속에서 완전히 결별된 것이다. 그 리고 이제부터는 새 생활이 시작된다. 세례-옛 사람의 죽음과 새 사람의 탄생을 의미, 노예생활이 끝나고 새 생활이 시작됨, 이 새 생활에 대해 하나님께서 "내 백성을 내어보내라" 세상 세력에게 명령했는데 그 생활의 목적은 "나를 섬기리라" 하나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새 생활을 하는 것. 이것이 적극적 의미에서 해방과 하나님이 주신 자유이다. 즉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유(성경 속의 작은 조직신학이라 할 수 있는 로마서의 구조가 이렇게 되어있다)가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해방되고 새 생활을 시작한 이스라엘에게 나타난 생활은 광야생활 이었다. 광야의 의미:먹을 물과 양식이 없음. 즉 생존수단이 없음 = 죽음의 땅. 사람이 자기 힘, 능력으로 살기 힘든 땅. 바로 그런 땅에서 하나님의 능력 으로 쓴 물(썩은 물, 먹으면 죽는 물)이 식수로 바꾸어 지며, 바위 속에서 물이 터져나오고, 아무 곡식이 없는 광야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음식으로 살 아간다. 이것은 신약 성도에게도 그대로 적용-예수를 믿으면, 중생하면 옛 존재 노예로 지내던 생활에서 자유얻어 새 사람이 된다. 이 새 사람이 살게 내버려둔 곳이 낙원이 아니라 이 세상이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순 종하며 살라하신다. 이 새로운 삶의 본질적 성격은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요, 그의 전 삶이 하나님을 순종하며 산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세상 속에서 이렇게 사는 것이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완전한 순 종을 요구하시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은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또 역설적으로 살 수 있다. 그것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살 수 있다. 하나님이 죽음의 땅에서 솟아나게 하시는 생수 로, 하늘로부터 내려주시는 음식으로 살 수 있다. 고전 10장에서 이 반석이 생수의 근원이라 했고, "나는 진정한 만나요"라고 요한복음에서 말하고 있다. 이것은 성령님이 내려주심인데, 예수의 생명을 직접 누리게 하시는 분 성령님 님, 성령님이 없으면 살 수 없다. 노력하면 할수록 안되는 것을 깨닫을 수 밖 에 없게된다. 그때부터 엎드리기 시작한다. 그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다. 이 내용이 롬 7-8장에 나온다. 13장 광야 생활 중 이스라엘 백성은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겠다 하나 이 고난의 여정은 그렇게 절망스러운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절망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13:20절 광야가 시작되는 에담에 이르렀을 때 구름기둥, 불기둥이 나타남 = 하나님의 임재의 표시. 구름기둥, 불기둥이 이스라엘을 인도.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던 여행이었다. 13:22절 두 기둥이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고 항상 그들 앞서 행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지 않고 항상 그들 앞서 인도하심. 마 28:20절 말씀에도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겠다".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성령을 보내시겠다(요)하심. 구약과 신약은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나 본질에 서는 같다. 구약은 가시적으로 나타남-구약의 특성. 그러나 그 본질은 구름기둥, 불기둥 그 자체가 무엇이냐가 아니고 생명의 공급자가 하나님이 요 성령님이심을 나타내 주시는 것으로 같다. 이 여행은 평생동안 계속되는 것이 아니고 안식의 땅을 바라고 소망하는 목적지가 있는 여행, 언제나 고난과 더불어 무한정하게 싸우는 싸움이 아니고 목적지가 있는 소망이 있는 여행이며, 하나님이 먹을 것과 마실 것 을 주셨고 함께하셨던 여행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생명을 누렸던 여행, 육적생명 뿐아니라 영적실체를 말한다. 영적실체는 신약에서 확실하고 분명 히 나타난다. 광야여행의 목적 출애굽 후 즉시 가나안 땅으로 들이시지 않고 왜 혹독한 삶의 환경 속에 두셔서 고통하게 하시는가 그것은 Test, 신약에서 이 단어를 보 면 광야생활을 기억하면 좋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시험하시는 데 사단이 하는 유혹과는 그 방법과 목적이 완전히 다르다. 하나님의 목적 은 단련하시기 위해(연단을 위해서 = 더 굳게 하시기 위해)서 이다. 롬 5:1 절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 즉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린다 = 전혀 새로운 존재 즉 하나님과 생명의 교통을 누리는 자가 된다. 곧이어 하 시는 말씀이 5:2절, 이런 가운데 기뻐하지만 또한 환난 가운데 기뻐한다고 함. 이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낳는다 = 이것이 바로 시험이다. 롬 12:1-2절은 시험을 통해 단련된 자의 모습을 소개해 준다. 출 15:25 "율례와 법도를 베푸시고 거기서 시험하셨더라" 시험과 율례, 계명은 깊은 관계가 있다. 광야기간을 주셔서 단련하시는 목적은 인간의 힘 으로는, 자연인의 능력으로서는 생존이 불가능한 광야를 걷게하심으로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계속 함께 하시고 양식과 물을 주심으로 생명은 오 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철저히 깨닫게 함이다. 인간은 자기 의 노력으로 뭔가 얻으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 내 힘으로 뭔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는 절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 단련하시는 시험기간 으로서의 광야생활에 율법이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항상 순종하는 것을 통해 단련하신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순종은 믿음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신다. 내 생명의 근원이시요, 주인이심을 믿 을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순종한다. 이러한 믿음이 있을 때 진 정한 순종이 있다. 이러한 믿음이 없으면 순종해서 뭔가 얻으내려는 상업주 의가 마음 속에 감추어 있는 것이다. 순종할 때 살리시고 불순종할 때 죽이 신다-광야생활 여기서는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뭔가를 얻어내는, 순종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뭔가를 사려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며, 순종이 란 믿음의 자발적인 표현이다. 그런 믿음이 있으면 자연히 순종하게 된다. 이런 믿음과 순종 역시 내가 믿고자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성령님 안에서 되 어진다. 이러한 믿음과 순종의 삶이 바로 생명의 삶이다. 믿음과 순종의 삶을 통 해서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복된 다스림을 받아들임이 순종이 요 생명이다. 이 순종을 좀 더 정확히 나타내는 것이 불순종이란 말인데, 자기 의지하여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불신앙이요 불순종이다. 이것은 인간 스스로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다. 만나 주시고 생수 주시고 고난의 광야를 걷게 하신 것은 '.을 알게하려 하심, 인정하게 하심'이라고 표현한다. 즉 내가 너희의 구원자요 너희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하기 위해, 믿음의 순종과 단련을 위해서이다. 신자의 세상에서의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고통스런 세상 속에서의 삶의 의 미 = 고난은 순종을 굳건케하는 즉 축복의 시간, 하나님이 구원과 더불어 함께 주시는 추가적인 축복이다. 인간의 기본 상식은 주고, 받는 것이다. 공짜 좋아하는 자를 비윤리적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 잠재의식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것은 상업주의 그러나 하나님께 이런 상업주의 의식으 로 나아갈 때 그것은 죄악이다. 하나님께 대한 신자의 자세를 함께 묶어 한 마디로 말하면 믿음이다. 믿음은 깊고 넓은 내용을 가졌다. 시내산에 이르름-광야여행시 처음 들른 곳,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는 것 의 배경이 18장 내용이다. 18장에서 모세 장인 이드로가 온다. 18:1-12절 이드로가 모세 즉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모세에게 온다. 이드로가 방문한 의미가 13절 이하에 나타남-모세에 게 충고함. 이스라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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