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야곱아, 야곱아 (창46:1-7)

본문

어느 날 예기치 않았는데 누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을 때, 그 전화한 분이 세상에서 명예와 인기있는 분일때, 아니면 권세있는 분일때, 개인에게 크나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상대방이 나를 환히 알고 선생님을 국무총리에 내정했으니 수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하는 전화를 받았 다면 기쁨이 클 것입니다. 수락하던 수락치 않던 관계없이 대통령이 나를 인정하셨고 나를 알아주셨다는 사실 앞에서 감격케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누가 나를 알아줄 때도 기쁨이 크게 되나 그 알아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실때, 그 하나님의 야곱 아!야곱아!하고 불러주시듯이 나의 이름을 불러주실때 그 기쁨은 형언할 수 없이 큰 것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야곱아! 야곱아 라는 말씀을 살펴보면서 은혜받기 원합니다. 야곱아!야곱아!하고 부르실때는
1. 하나님께 희생을 드렸을 때입니다. 본문에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발행하여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 아비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을 드 리니 밤에 하나님이 이상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시고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라고 말씀합니다. 야곱이 가나안 땅에서 흉년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아들들을 애굽에 보내어 곡식을 사오게 했습니다.
그런데 곡식사러 갔던 아들로부터 옛날 잃어버렸던 아들, 그것도 잔인하게 짐승에게 찢겼다고 믿었던, 사랑하는 아내 라헬로부터 얻었던 요셉이, 이 애굽에 건재하여 국무총리라는 높은 지위에 앉아있음을 들었 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아들이 타고 오시라고 보낸 아름다운 수레를 보고 비로소 기운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그 아들을 잃었다고 이제껏 13여년 동안을 슬픔과 괴로움과 자책속에서 늙음을 허송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봉의 땅이요. 저의 시신과 부모님 이삭과 리브가가 묻혀있는 땅이 었고 자신의 묻힐 고향을 등지고 떠난다는 것을 망설이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죽 기전에 잃어버렸던 요셉을 보고 싶어 애굽에로의 이민을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소유를 이끌고 브엘세바 에 이르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것은 애굽으로 요셈을 만나 러 가는 것이 진실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가하는 노파심 대문입니다. 전에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 갔었고 이삭이 애굽에 내려가려 했으나 하나님이 거절하셨던 경험 이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곳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곳이요, 죄악이 난무하고 있는 곳임을 상징하고 있는 곳이 기 때문입니다. 제사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타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결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결심하고 실행했더라면 얼마나 더 좋았겠는가 하는 아쉬움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야곱은 먼저 결심하여 애굽을 향하여 브엘세바에 이르러 가시지 않는 불안감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제사를 드린 그 밤에 하나님께서 야곱아!야곱아! 하고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왜 하나님이 야곱이 애굽을 항하여 떠나기 전나람에 나타나 주시지 브엘세바 까지 이르러 제사를 드린 후에야 나타나셨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생이 당신을 필요로 하실 때 찾아오십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려라, 그러면 얻을 것이요. 찾을 것이요. 열릴 것이라 란 말씀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여 그앞에 요청할 때 하나님은 도움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믿고 있는 자들에게 예외가 없이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그의 도우심과 사랑하심을 알고 있는 자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도우심을 요청치 않을 때 하나님은 만나주시지 않습니다. 그것은 야곱같은 선지자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야곱야! 야곱아!하고 하나님이 부르신 이유는
2.축복을 약속하시기 위함입니다.
1. 애굽에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3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고 했 습니다. 애굽에 내려간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못됩니다. 그것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등지는 행위요, 신앙에 있어서 세상으로 향하는 행위가 되기에, 뿐만아니라 인 생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지 애굽(세상)으로 내려가는 삶을 살아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애굽 은 영적으로 실패의 자리 , 고난의 자리 , 아픔의 자리 일 수 있습니다. 인생은 원치 않지만 실팽의 자리에 내려갈 때가 있습니다. 인생은 원치 않지만 고난의 자리에 내려갈 때가 있습니다. 인생은 원치 않지만 슬픔의 자리에 내려갈 때가 있습니다. 인생은 원치 않지만 질병의 자리에 내려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인생은 좌절하고 고민하고 놀라고 당혹해 합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은 선민되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가나안에 흉년을 만나게 하실까 어찌하여 하나님은 나로 하여금 실패와 좌절의 구렁텅이에 내려가게 하실까 그러나 하나님은 원치 않는 고난을 당하여 고민하는 자녀들에게 야곱아! 야곱! 네가 원치 않는 곳에 녀려 가고 있다고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하나님이다. 나는 전느아이다 네가 만난 고난을 합력하여 선으로 변 화시킬 수 있는 능력자이다. 네 아비 이삭때 흉년을 만나 고민할 때에도(창26:) 내가 그에게 그랄에 거하 개 하여 100배의 축복을 주지 않았느냐 너는 나의 `전능함`을 믿고 두려워 하지 말아라 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만날 때 제일 먼저 느끼는 마음 상태가 두려움입니다. 그것은 신앙 에 관계된 마음입니다. 신앙이 흔들리게 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신앙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이요. 가장 귀한 요소입니다. 그것을 사탄은 잘 알고 있기에' 어떻게 해서라도 그 요소를 흔들어대려 합니다. 욥의 고백처럼 우리는 빨 간 몽둥이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소유한 부분중에서 어느 한 부분에 조금만 손상이 와도 그것이 즉각적으로 신앙에 강타 를 당하고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으로 나타납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을 가리는 연마깅요. 장애인고로 하나님은 야곱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실패 앞에서 두려워 하지 말라는 말씀은 또한 성공 앞에서도 자만치 말라는 경고의 의미도 있습니다. 인 생은 조그만 실패 앞에서 한없이 두려워 떨지만 또한 성공 앞에서는 한엎이 교만하고 자만하는데 이것은 실패 앞에서 두려워 하는 것보다 더 큰 사탄의 함정입니다. 성경역사는 두려웁 때문에 실패한 사람보다 교문 때문에 실패한 인생이 훨씬 많았음을 가르쳐 줍니다.
2. 거기서 축복하겠다고 하십니다. 3절에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만족을 이루게 하리라 고 했습니다. 지역적으로는 애굽입니다. 일찍기 아버지 이삭이 흉년을 맞이하여 내려가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내려가 지 말라고 막으셨던 곳입니다(창26:2) 거기란 지역적으로 애굽을 말하며, 영적으로 실패 한 현장을 자칭합니다. 고통과 괴로움을 만난 자리, 고난의 자리, 삶에서 실패를 경험한 자리입니다. 거기에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최악의 환경에서 최선의 일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에머슨은 사람이 유리함의 안락한 큐션에 앉아있는 동안에는 잠들고 만다. 그러나 그가 강요 당하고 고 문을 당하고 패배를 당할 때 그는 무엇인가를 배울 기회를 갖는다 라고 말했습니다.
3.함께 하겠다고 하십니다. 4절에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개인이 성공할 때, 잘될 때, 권세를 손에 쥐게 될 때만 함께 하기 원하고 가까이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실패하거나 불행케 될 때, 권세를 놓지게 될 때는 멀리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가 실해하든 성공하든 상관없이 동행하십니다. 그 동행하시는 하나님은 오히려 성공할 때는 긴밀하게 느끼지 못하게 되지만 실패하게 될때, 고통당하게 되는 때는 긴밀하게 느끼게 됩니다. 이유는 당신의 자녀가 고통중에 있는 때에 하나님은 더욱 궁휼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 마지막에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회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함께 있겠다고 하신 약속은 방관자로 동행하신다는 약속이 아니라 돕는 자로 동행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동행 하시는 자리, 그 자리는 천국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동행치 않는 자리, 그 자리는 사망의 자리입니다.
4.다시 올라오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4절에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라고 했습니다.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서게 하겠다.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서게 하겠다. 근심의 자리에서 올라오게 하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그러므로 신자는 실패의 자리에 던져졌다하여 영이 실패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신자가 실패하여 밑바닥에 떨어진다 해도 반드시 그 자리에서 올라오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욥은 불가항력적으로 절망의 계곡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변함없이 이끌어 올리실 하나님을 앙 망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그를 이끌어 올리셨습니다. 다시 올라오게 하신 정점 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가 십자가에 죽어 무덤에 내려갔으나 하나님도 그를 이끌어 부활케 하셨고 만 물의 주관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5.평안한 삶이 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4절 하반절에 요셈이 그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고 했습니다. 그렇게도 보기를 소원했던, 잃었다고 여겼던 아들, 현재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 고 있는 아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야곱의 노년을 평안하고 복되게 하겠다고 하시는 약속입니다. 지금 야곱은 애굽으로 이민중에 있었습니다. 그 이민은 반드시 가나안 땅으로 귀환해야 됨을 전재하는 이 민이었기에 마음이 썩 내키지 않는 이민이었습니다. 상황이 가뭄을 만나지 않았다면, 요셈을 형들이 팔아 버리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이민을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가기를 망설여야 하는 야곱처럼 우리도 세상에서 원치 않는 고통과 실패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의인인 일 곱번 쓰러져도 여덟번 일어난다.(잠24:16). 이 말씀은 의인도 실패와 절망을 당할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신자는 애굽에 내려가는 경우 앞에서도 절망치 않습니다. 이유는 주님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에 도 동행하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실패의 자리에서도축복하신다고 하셨고, 그 자리에서 반드시 돌아오게 하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와 절망을 섭리하여 기쁨이 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중에 나는 지금 애굽으로 내려가고 있다고 여기시는 분 있습니까 결코 절망치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올라오게 하시는 분이시기에 말입니다. 이런 때 사단은 내 려가고 있는 나의 모습이 크게 보이게 하고, 절망케 하고, 좌절케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가겠다고 약속하셨고 거기에서 축복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거기란 축복의 장소가 됩니다. 어 느 성도는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실패하거나 실수하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 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으므로 승리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335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