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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위로의 회복 (창44:1-34)

본문

인간이 가지고 있는 슬픈 기록은 좀처럼 지워질 수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비슷한 환경의 사건이 직면해 올 때 과거의 슬픔이 새롭게 솟구쳐 올라 인생 의 슬픔은 더욱 깊어만 갑니다. 우리는 야곱의 가슴속에 자리잡고 있던 슬픈 기록이 아들 유다를 통하여 새롭게 뛰쳐나오는 순간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요셉을 잃은 슬픔이 평생의 상처로 남아있는 야곱에게 베냐민까지 잃게 할 경우 그의 죽음은 당연히 발생될 수 있으리라는 주관적인 평가의 결론을 총리에게 보고하 고 있습니다.
1.야곱의 마음을 읽은 요셉 유다가 아버지 야곱의 심정을 그대로 옮겨서 보고할 때 요셉은 솟아오르는 부정과 형제의 정을 억제하는데 심한 고통을 앓고 있었습니다. 형제를 보면서 형제라 부르지 않고 심문을 계속하는 동안 진실을 감추는 고통은 실로 적지 아니하였습니다. 아버지 입에서 나온 이 말을 유다는 기억하고 있다가 지금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는 총리의 마음이 누그러지기를 바랬으며 그리고 그가 감동되어 베냐민을 놓아주 기를 원했습니다. 아버지의 심정이 전달된 순간 요셉의 변화는 곧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아우만을 붙들려고 했던 그 결단도 사랑하는 아버지를 뵙고 싶은 심정 앞에 무넣지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혈육을 보고 싶어하는 인간적인 정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뵙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뜨거운 열정이 우리의 가슴에 있는가를 묻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말씀의 현장인 것입니다.
2.우리는 사람을 곧잘 판단합니다. 판단 기준은 외형, 우리의 슬픈 마음, 다른 사람의 보고 등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들이 우리를 방해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겉모양이나 상황 너머의 하나님을 바라보면 우리는 그가 역사해 오셨고 우리 대신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우리에게 영원히 선을 베푸신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요셉의 형제의 보고를 받으면서 그는 형제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를 통해여 오늘의 역사가 발생되었음을 보면서 감사의 사연으로 연결시키 고 있습니다. 순간의 실수 때문에 회복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 유다와 같은 나의 주변의 사람들을 도울 수는 없는 것인가 한번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3.우리의 요셉을 잃어 버렸다고 생각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는 살아있고 지금도 우리의 위로가 됩니다. 그를 잠시 빼앗겼으나 이는 가족 전체가 받은 은총을 위함이며 그는 그들의 것이 되어 그들은 더욱 그와 함께 누리게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요셉과 같은 인물을 또는 소중한 존재를 잃어버렸다고 슬퍼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살아서 또는 새로운 교훈으로 다가와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4.슬품만을 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경륜에도 양면이 있는데 우리는 슬픈 면을 보지 말고 밝은 면을 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리라. 이 모든 것 가운데 성령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판단하지도 말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냥 잠잠히 의뢰하기만 하면, 먼 훗날 우리는 믿음이 얼마나 작았는지를 알고 부끄 러워하게 될 것입니다. 불신앙은 받드시 일을 그르치고 하나님의 역사를 조감할 수 없게 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해석하시고 쉽고 분명한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 적 용
1).인간이 입은 상처가 때로는 아름다운 미래를 창조하는 밑거름이 될 때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나의 요셉이 실종된 아픔은 때로는 행복한 사연의 생산을 가져와서 하나님께 새로운 감사를 돌리게 됨을 잊지 말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3).슬픔만을 노래하는 외로운 길에서 여생을 보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소망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슬픔의 산을 넘어가기를 기다리십니다. 이어서 기쁨의 산을 준비하고 계심을 마음에 두고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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