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위대함 (창45:1-15,롬11:13-16,마15:21-28)
본문
애굽에 노예로 팔려간 요셉은 여러가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애굽 의 총리에 오르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때 애굽과 근동 일대에는 심한 가뭄으로 인하여 식량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가난안 땅에 거주 하고 있었던 야곱은 애굽에 식량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자녀들을 애굽으로 보내 먹을 양식을 구해 오도록 합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애굽에 찾아오게 되었고, 요셉은 그 형제들을 알아보게 됩니다. 오늘 45장에서 이제 요셉은 자기의 형제들에게 자신이 요셉임을 밝히게 됩니다. 형제들은 그 순간 자신들의 잘못을 기억하면서 너무 당황하고 두려워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요셉은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고난까지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 면서 형제들에게 대한 용소와 화해를 말하고 있습니다. 고난까지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요셉의 신앙, 그리고 현제를 향한 그의 사랑과 용서의 위대함을 본문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로마서11:13-16,29-32 유대인들의 그리스도에 대한 배척은 세상의 화해를 이루게 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에 관해 언급하면서, 복음이 먼저 유대인에게 주었 졌으나 그들이 이 복음을 거절한 결과 이방인들에게로 향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나중에는 유대인의 시기를 불러일으키도록 하여, 유대인들의 얼마 를 구원케 하는 요인이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불순종이 이방인들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결과를 낳았지만 하나님 은 그들을 끝까지 버리지는 아니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다시 입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15:21-28 마15:21-28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 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26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 하니라,27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 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 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텨 그의 딸이 나으니라 본문은 이방 가나안 여인의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범위가 이방인에게까 지도 혜당됨을 언급하면서, 복음의 세계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가나안 여인의 믿음과 간절한 애원을 들어주십니다. 예수님은 유대의 국경을 넘어 두루와 시돈 지방을 지나시다 귀신들린 딸을 둔 가나안 여인을 만나게 되십니다. 여인의 간청을 들으신 주님께서는 자신의 사역이 유대인을 위한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 자신의 사역을 한정하려 하신 것보다는 그 여인과 또 함께 한 제자들 의 반응을 보려 하셨음이 분명합니다. 여인은 주님의 말씀에 대하여 은혜의 부스러기라도 받기를 원한다고 예수님께 호소합니다. 이때 주님은 그 여인의 믿음을 보고 칭찬해 주셨으며, 그 즉시로 딸도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사역이 이제 팔레스틴의 균경을 넘어 세계로, 유대인들에게서 세계 만민에게로 향한 것임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존제하는 곳에는 어디나 실수와 잘못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허물과 실수가 있는 만큼 우리 인간은 서로를 용납하고 용서하며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용서가 있는 곳에는 화해와 사랑이 있으나, 용서가 없는 곳에는 정죄와 싸움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의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남을 용서하기 보다는 정죄하는 일을 서슴 없이 하려 합니다. 예수님에게 바리새인들이 책망을 받았던 것은 자기들의 의 때문에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용서는 내 자신도 허물을 지닌 죄인이라는 인식 아래 남을 긍휼히 여기고 관용하는 자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용서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중요한 신앙 덕목인 것입니다.
1.우리는 왜 용서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1).내 자신도 허물과 실수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2).내가 용서받았기에 남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마18:21-35)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자가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않을 수 있는 가)
2.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용서하는 생활을 실천할 수 있는가
1).자기 의(義)에 사로잡히지 말자는 것입니다. (마7:1-5)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2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 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단지 우리는 용서받은 죄인일 뿐 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의를 내세울 수 없듯이 사람들 앞에서도 의를 내세우려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자기 의를 내세우려 할 때 우리는 남을 용서하기 보다는 비난하고 정죄하려는 유혹에 쉽게 빠진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스스로 시험을 받았던 것은, 자기 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2).중심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마18: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 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용서는 입으로만 하거나 외형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용서를 말하고도 다시 그의 허물과 실수를 들추어 냄니다. 그것은 그가 중심에서 온전히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모든 것을 받아주고 모든 것을 잊어주는 것입니다.(동이 서에서 먼거가치, 도말, 맑같케 지우시는 것, 기억도 하지 않습니다.)
3).용서의 범위를 한정치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몇 번을 용서해야 하겠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몇 번을 용서하라고 하십니까 주님께서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것은 무제한성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용서의 대상을 한정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한다 면 하늘에서 무슨 상이 있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무조건적이고, 무제한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4).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인간의 사랑은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해야 하는 것을 몰라서 사랑하지 않거나, 용서해야 하는 것을 몰라 용서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한계 때문인 것입니다. 요셉은 자기에게 악을 행한 형제들을 보면서도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과 섭리로 받아들였습니다. (창45:5,7-8) 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 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 이다,7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니니,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 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신앙의 눈,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진 가슴이 용서를 베풀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결론
1).용서하는 자가 용서를 받습니다(마6:14,눅11:4) 마06:14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 니와,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눅11:0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 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
2).용서는 인간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인간은 정죄 속에서가 아니라 용서 속에서 변화가 됩니다. 악을 선으로 갚으며 용서의 손길을 편 요셉 ! 용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의 표현입니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 아버지! 용서를 받았으되 남을 용서하지 못하며 살아온 저희들을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저희의 조그마한 의와 선행 때문에 남을 비난하고 정죄했던 것을 용서하여 주시고, 이제는 주님의 사랑으로 이웃에 대한 용서와 화해 와 사랑의 삶을 실천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15:21-28 마15:21-28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 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26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 하니라,27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 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 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텨 그의 딸이 나으니라 본문은 이방 가나안 여인의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범위가 이방인에게까 지도 혜당됨을 언급하면서, 복음의 세계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가나안 여인의 믿음과 간절한 애원을 들어주십니다. 예수님은 유대의 국경을 넘어 두루와 시돈 지방을 지나시다 귀신들린 딸을 둔 가나안 여인을 만나게 되십니다. 여인의 간청을 들으신 주님께서는 자신의 사역이 유대인을 위한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 자신의 사역을 한정하려 하신 것보다는 그 여인과 또 함께 한 제자들 의 반응을 보려 하셨음이 분명합니다. 여인은 주님의 말씀에 대하여 은혜의 부스러기라도 받기를 원한다고 예수님께 호소합니다. 이때 주님은 그 여인의 믿음을 보고 칭찬해 주셨으며, 그 즉시로 딸도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사역이 이제 팔레스틴의 균경을 넘어 세계로, 유대인들에게서 세계 만민에게로 향한 것임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존제하는 곳에는 어디나 실수와 잘못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허물과 실수가 있는 만큼 우리 인간은 서로를 용납하고 용서하며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용서가 있는 곳에는 화해와 사랑이 있으나, 용서가 없는 곳에는 정죄와 싸움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의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남을 용서하기 보다는 정죄하는 일을 서슴 없이 하려 합니다. 예수님에게 바리새인들이 책망을 받았던 것은 자기들의 의 때문에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용서는 내 자신도 허물을 지닌 죄인이라는 인식 아래 남을 긍휼히 여기고 관용하는 자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용서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중요한 신앙 덕목인 것입니다.
1.우리는 왜 용서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1).내 자신도 허물과 실수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2).내가 용서받았기에 남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마18:21-35)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자가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않을 수 있는 가)
2.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용서하는 생활을 실천할 수 있는가
1).자기 의(義)에 사로잡히지 말자는 것입니다. (마7:1-5)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2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 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단지 우리는 용서받은 죄인일 뿐 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의를 내세울 수 없듯이 사람들 앞에서도 의를 내세우려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자기 의를 내세우려 할 때 우리는 남을 용서하기 보다는 비난하고 정죄하려는 유혹에 쉽게 빠진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스스로 시험을 받았던 것은, 자기 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2).중심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마18: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 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용서는 입으로만 하거나 외형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용서를 말하고도 다시 그의 허물과 실수를 들추어 냄니다. 그것은 그가 중심에서 온전히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모든 것을 받아주고 모든 것을 잊어주는 것입니다.(동이 서에서 먼거가치, 도말, 맑같케 지우시는 것, 기억도 하지 않습니다.)
3).용서의 범위를 한정치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몇 번을 용서해야 하겠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몇 번을 용서하라고 하십니까 주님께서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것은 무제한성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용서의 대상을 한정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한다 면 하늘에서 무슨 상이 있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무조건적이고, 무제한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4).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인간의 사랑은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해야 하는 것을 몰라서 사랑하지 않거나, 용서해야 하는 것을 몰라 용서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한계 때문인 것입니다. 요셉은 자기에게 악을 행한 형제들을 보면서도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과 섭리로 받아들였습니다. (창45:5,7-8) 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 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 이다,7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니니,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 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신앙의 눈,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진 가슴이 용서를 베풀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결론
1).용서하는 자가 용서를 받습니다(마6:14,눅11:4) 마06:14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 니와,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눅11:0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 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
2).용서는 인간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인간은 정죄 속에서가 아니라 용서 속에서 변화가 됩니다. 악을 선으로 갚으며 용서의 손길을 편 요셉 ! 용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의 표현입니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 아버지! 용서를 받았으되 남을 용서하지 못하며 살아온 저희들을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저희의 조그마한 의와 선행 때문에 남을 비난하고 정죄했던 것을 용서하여 주시고, 이제는 주님의 사랑으로 이웃에 대한 용서와 화해 와 사랑의 삶을 실천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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