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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신앙고백 (창45:1-8)

본문

나의 사전에는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는 나폴레옹의 좌우명과 같은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말에서 나폴레옹이 어떤 자세로 삶을 살았는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 앞에 불가능한 상황이 왜 없었겠습니 까 그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인데 어찌 불가능한 상황,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없었겠습니까 그에게도 분 명 불가능한 상황, 난처하 게 만드는 상황이 버티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모든 상황들 앞에서 낙망 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그 것을 극복해 보고자 노력했습니다. 아마 안돼는 것도 되게 하라는 생활 신조를 가지 고 불가능한 상황들 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들을 다 취하며 살지 않았나 싶습니다. 바로 이러한 나폴 레옹의 노력이 나의 사전 에 불가능이란 없다는 말을 낳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피고 있는 요셉 그는 어떤 좌우명으로 인생을 살았을까요 물론 요셉이 나의 좌우명은 이 것이다 고 밝힌 적은 없습니다. 또 나폴레옹처럼 나의 사전에는 무엇이 없다고 말한 적 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들이 그의 인생을 살피다 보면 요셉이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았음직하구나고 결론 지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 것이 무엇일까요 나폴레옹은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고 말했는데 요셉이 만약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자 신에게는 무엇이 없다고 이야기를 했을 까요 요셉의 인생을 살피다 보면 꼭 있어야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니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생 어느 곳에서도 이것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요셉보 다 덜한 삶을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에게는 시도 때도 없이 이것으로 인해 마음 상하고 눈물 흘리지만 요셉 은 기구한 인생이라고 말 해야 좋을만한 인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생 어느 곳에도 이것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에게 없었던 이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제가 요셉의 생애를 강해 하면서 여러 차래 말씀을 드렸던 것처럼 원망이나 불평을 한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아마 그도 나폴레옹처럼 말했다면 나의 사전에 원망이나 불평 이란 없다 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인생은 이 부분에 있어서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자신의 인생이 기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원망 없이 살았던 이유는 무 엇일까요 한숨과 원망으 로 세월을 보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 대해서 침묵하면서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은 바로 이 부분에 대해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좀 관심 있게 오늘 본문을 살펴 요셉의 삶의 자세를 여러분의 것으로 만든다면 한숨과 원망, 불평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을 해 봅니다. 저는 성도들이 원망과 불평 때문에 영적으로 건강하게 살지 못하는 것을 볼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얼마나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지요. 그 일에 대해서 조금만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아무개 성도가 아무개 집사가 원망을 조금만 줄일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역동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 터인데 왜 맨날 저렇게 원망만 하고 있을까 마치 세상의 고민, 염려 걱정거리들을 혼자 다 짊어 지고 살아가는 사람처럼 그 렇게 원망하고 불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아무개 성도 아무개 집사에게만 고난이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이렇게 원망하고 한숨 짖는 분들 은 아닙니까
만약 여러분들이 조그마한 일에도 쉽게 원망하고 한숨 짖는 분들이라면 오늘 말씀을 잘 관찰해 보 십시오. 그리고 요셉의 삶 의 자세가 여러분들의 것이 될 수 있도록 힘쓰십시오.
그렇다면 원망과 한숨의 굴레에 서부터 벗어 날 수 있을 것 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쉽게 원망하지 않는 분들이라면 여러분들에게 원망과 한숨을 지을 때가 찾아올 때를 대 비해서 오늘 본문을 잘 살피십시오. 원망과 한숨이 찾아올 때 거기에 빠지지 않고 굳게 설 수 있는 삶의 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억제하지 못하는 요셉 우리는 지난 시간 모든 형제들을 대표해서 자신들의 잘못을 진솔하게 털어놓는 유다 의 모습을 살필 수 있었습니다. 그의 고백은 참으로 감동적인 것이었습니다. 베냐민이 죄인으로 지목되자 베냐민 대신 자신이 그 죄를 치르 겠노라고 하면서 아버지에게 더 이상 죄 지을 수 없음을 고백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요셉 그의 마음 이 어떠했을 까요 우리는 1절 말씀에서 이 때 요셉의 마음을 읽게 됩니다.
함께 1절을 읽습니다. . 자 거기에 요셉의 마음이 어떠했는가를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있죠 그렇습니다. 그 정 을 억제하지 못하여 라는 말입니다. 또 2절을 봅시다. . 거기에서는 요셉의 마음이 어 떻게 설명되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방 성대곡하는 모습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방성대곡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요셉의 울음이 바로의 궁전 에 전해 질 정도로 울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이 정을 억제하지 못한 것이 무엇 으로 표현이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큰 울음으로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바로가 그 소문을 들을 정도의 울음이 었음을 성경은 기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눈물샘이 터져 버리기라도 한 듯 그렇게 운 것처럼 보여집니다. 마치 봇물이 터져서 한꺼번 에 물이 쏟아지듯 그렇게 운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요셉은 자신의 정을 억제 해 왔었습니다. 왜죠 그렇습니다. 형님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들 스스로 자신들의 죄를 뉘우칠 수 있도록 하기 위 해서 요셉은 자신의 정을 억제하였습니다. 요셉은 속히 자신을 드러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야 보고싶은 아버 지도 만날 수 있고 베냐민도 만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형님들을 위해서 자신의 이런 감정을 억제하고 참습니다. 물론 이 감정이 터지는 위기까지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요셉은 그 자리 를 피해서 울고 들어오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죠 그렇습니다. 형님들 스스로 자신들의 죄를 뉘 우치고 돌이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참고 참았던 감정이 일순간에 폭발을 한 것입니다. 어느정도로요 그렇습니다. 바로에게 들릴 정도로 폭발은 한 것입니다. 감정의 종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이런 요셉의 자세에서 교훈을 얻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형 님들을 위해서 자신의 감정 을 억누를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감정에 의해서 이끌림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종종 자신의 감정을 처리하지 못해 신앙생활을 망치는 그리스도인들을 봅니다. 즉, 감정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슬픈 감정이 있을 수 있고 기쁜 감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미워하는 감정이 있을 수 있고 사랑 하는 감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감정을 그냥 방치해 두는 성도들이 종종 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들 의 감정도 하나님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즉, 감정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 니라 나의 감정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점검을 받고, 품지 말아야 할 감정이라면 그것을 다스려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대로 사람을 대하고 교회 일을 하려 합니다. 그 러니 신앙생활이 안정적이 지 못합니다. 감정에 따라 수시로 변합니다. 마치 바람에 따라 요동하는 파도와 같이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면 본인도 피곤하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피곤합니다. 신앙생활은 감정 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요동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안정적인 신 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감정에 지배를 받는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바뀐 것입니다. 우리들은 누구의 지배를 받아 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감정을 따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감 정을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못 믿고 있는 것입니다. 감정을 따르지 마십시오. 여러분 여러분들의 감정, 정말 믿을 만 합니까 그거 믿을만하지 못합니다. 그것 따르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해서 감정이 없는 메마른 사람이 되라는 말 은 아닙니다. 여러분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자신의 감정도 억제할 때 억제할 줄 알았 습니다. 또 그 감정을 표현 할 때 표현 할 줄도 알았습니다. 무엇에 따라 그렇게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기도 하고 절제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들의 감정도 요셉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지배를 당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요셉이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 할 때가 되었다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 아직까지 형님 들이 변화되지 않았다면 요셉은 먼젓번과 같이 숨어서 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 습니다. 자신을 드러내고 울 어도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물리치고
그런데 보십시오. 이렇게 감정이 폭발해서 우는 상황에서 요셉은 이상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1절을 다시 한 번 볼까요 . 1절에서 성경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무 엇처럼 보입니까 요셉이 감정을 억제하 지 못하고 울었다 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소리질러 사람들을 물리쳤다는 말이나, 때에 그와 함께 한 자가 없었다는 말속에서 성경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다른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이죠 그렇습니다. 요셉이 형제들만 빼놓고 사람들을 물리쳤다는 것입니다. 그 렇다면 이게 무엇이 중요하 길레 성경저자는 이것을 강조해 놓고 있을까요 혹 이렇게 생각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 겠습니다. 요셉이 하인들 앞에서 우는 것이 창피해서 그랬을 것이라고요. 물론 그럴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 중요해서 성경저자 가 그것을 강조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왜 성경 저자는 이것을 강조하고 있을까요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다. 요셉이 형님들에게 자신을 드러내게 된다면 형님들과 어떤 이이야기가 오고갈 까요 그렇습니다. 형님들이 자신을 판 이야기가 오고갈 것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나는 당신들의 아우요, 당신들이 판 자 라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런 이야기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 질 것입니다. 즉, 형님들의 잘 못이 알려질 것이라는 점이죠. 그렇게 된다면 형님들의 인격이 무엇이 되겠습니까 비 록 저들이 잘못을 저질렀지 만 이것은 자신과 형님이 해결을 할 문제지 이 문제에 다른 사람이 개입을 하거나 알려 져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에 서 요셉은 다른 사람들을 물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세심한 배려입니까 그냥 지 나칠 수 있는 문제였지만 요셉은 여기까지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은밀히 이런 요셉의 자세는 우리들의 인간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살다보면 인간관계 가 때로 엉킬 수 있습니다. 내가 잘못해서 엉킬 수도 있고 상대방이 잘못해서 엉킬 수 도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요셉이 취한 행동을 본받아야 합니다. 요셉과 같이 그 문제 당사자들 외에는 문제가 알려지지 않도록 하십시 오. 어떤 모양으로든 그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삼가십시오. 여러분들이 피해를 입은 쪽에 있을 때 이 일에 대해서 더 삼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게 이런 경우 피해를 입은 쪽에서 문제를 야 기할 때가 더 많습니다. 조 심하십시오. 피해를 입힌 것도 잘못이지만 그런 것을 이야기하는 것 그것은 더 나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런 문제들은 두 사람 사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 이 문제를 해 결하기 위해 만나 싸우든 치고 받든 두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해결 할 문제이지 다른 사람이 여기에 개입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힌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렇게 해야 공동체가 건강하게 자 라갈 수 있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교회라고 하는 이 공동체가 건강하게 자라가기 위해서는 이 원리를 잘 지키셔야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의 잘못을 누가 이야기하면 그래 그렇데, 어쩜 그럴 수 있담 하지 마십시오. 이것 역시 죄를 짖는 일입니다. 오히 려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분명하게 이야기하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른 것이 아니라고요. 앞으로 저도 다른 사람의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을 터이지만 제게 다른 사람의 문제를 가지고 와서 말씀을 하시면 제가 그 자 리에서 책망을 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덮어주고 용서해야 할 사람 이지 정죄하고 들추어내야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도 요셉처럼 우리들의 이웃을 위 해서 이렇게 섬세한 배려 를 아끼지 않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놀라서 요셉이 이렇게 자신을 알렸을 때 형님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3절에서 우리는 요 셉 형님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함께 3절을 읽죠 . 어떻게 기록하고 있죠 그 렇습니다. 놀라서 능히 대답하지 못하는 지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 놀랐다는 말은 전율하다, 좌절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또, 공포에 사로잡히다는 말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말들에서 이들이 얼마 나 이 일로 인해 놀랐는가 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이 자신들 앞에 살아있으 니 얼마나 놀랍고 당혹스러 웠겠습니까 왜 이들이 이렇게 두려워해야만 하죠 그렇습니다. 자신들이 요셉에게 지 은 죄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들에게 올무가 되어 기뻐해야 할 자리에서 기뻐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몸서리를 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들 의 운명은 요셉의 손에 달린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처지였습니다. 예전에는 칼자루를 이 들이 지고 휘둘렀지만 이 제 칼자루는 요셉의 손에 있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칼을 휘두는 대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들의 처지였습니다. 이런 자신들의 운명을 생각하자 어안이 벙벙해 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들이 두려움에 떠는 이유는 이것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요셉의 꿈이 기막히게 이루어 졌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여러분 혹 이들이 요셉을 웅덩이에 빠뜨리면서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시나요 37:20 말씀을 함께 보도록 하죠.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 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이 말 속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습니까 그렇 습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하면 너의 꿈이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왜 이들 이 요셉을 애굽에 판 것이 죠 그렇습니다. 요셉의 꿈 때문에 판 것입니다. 즉, 요셉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게 하 기 위해서 취한 조치였죠. 그 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꿈이 이루어진 것을 보고 이들은 두려운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즉 거역할 수 없는 놀 라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두려움이라 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이들이 여기서 느끼는 두려움은 두 가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요셉에 대한 두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라 고요. 가까이 오소서 아무튼 이렇게 두려워하고 있는 이들에게 요셉은 다정하게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요 셉과 형님들과의 그 동안의 관계를 허무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장면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요셉은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애굽의 제 이인 자의 자리에 앉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자리 어떠했을까 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휘황찬란한 자리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형님들은 어디에 있 었을까요 그렇습니다. 요셉 과 대조적인 가장 낮은 자리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도 죄인으로서 말입니다. 죄인의 자리 화려하면 얼마나 화려 하겠습니까 아니 화려하다는 말을 붙이는 것조차 어색한 그런 자리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이런 자리에 있던 형님들을 자신이 있는 자리로 초대를 한 것입니다. 이것은 요셉에게는 이미 형님 들에게 대한 아무런 감정도 없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형님들을 자신의 자리로 초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들도 오늘 이 요셉처럼 초대를 해야 할 사람은 없습니까 서로 뒤틀린 관계 속에 있는 사람은 없습니 까 있다면 그들도 요셉처 럼 초대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이렇게 형님들을 부른 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하는 형님들에게 두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함께 4-8절을 읽습니다. . 자 이 이야기를 어떻게 나누면 좋을까 요 이렇게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 의 이야기는 4절 다른 하나는 5-8절입니다. 4절의 주체는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당신들입니다. 즉, 요셉의 형님 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른 하나의 이야기는 5절 이하의 사실입니다. 누가 주체로 등장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 습니다. 하나님이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무엇이라고요 예, 하나님이 라고 말합니다. 또 7절을 보 십시다. 무엇이라고요 역시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또 8절을 보십시다. 여기서도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즉, 4 절의 이야기는 형님들이 한 일에 대해서 기록을 하고있고 5절 이하에서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형님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요셉을 애굽으로 팔 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5절 말씀을 보니까 생명을 구원하시려 했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7절에서는 요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려 하셨다 말합니다. 또요. 후손들을 이 세상에 두시려 했다고 말 합니다. 여러분 이 말이 무 슨 뜻인 줄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흉년에 우리들의 생명을 보존하 기 위해서 나를 먼저 이곳 으로 보내셨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당신들이 나를 판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라는 말이죠. 그러므로 나를 판 사실에 대해서 염려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죠.
그렇다면 여기서 잠시 야곱의 가족들이 이렇게 애굽으로 가게 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십시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고 왜 야곱의 가족을 애굽 땅으로 내 몬 것일까요 가나안 땅 을 주시기로 하셨다면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브라함 때부터 가나안 땅을 보여 주 시면서 이 땅이다. 이 땅 에서 크게 될 것이다 말씀하셨는데 왜 아브라함의 후손인 야곱의 가족들을 애굽으로 옮 기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욀까요 물론 성경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무엇이라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섣부른 결론을 내리는 것에 문제가 있지만 성경학자들의 이야기를 잠시 빌려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그 이 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야곱의 가족들이 고향 땅도 아닌 가나안 땅에서 큰 민족을 이룬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 타향 사람이 어느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산다는 것이 참 어렵지 않습니까 왜죠 그렇습니다. 텃세 때문입니다. 야곱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다른 족속들로부터 끊이지 않는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들과 어울려서 자신들의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키기도 어려웠을 것 입니다. 쉽게 가나안 족속 들에게 동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애굽의 유력한 지도자가 되게 하 셔서 야곱의 가족들을 애굽으로 이주시키게 됩니다. 이들은 애굽으로 이주를 해서 극진 한 대우 속에서 성장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셉이 누구입니까 총리가 아닙니까 뿐만 아니라 애굽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목축업을 하는 사람들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에게 고센땅을 주어 따로 거하게 합니다.
따라서 야곱의 후손 들은 이 고센땅에서 자신들의 문화를 발전시키며 장차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로 발전을 하기에 이른 것이죠. 바로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가족들을 애굽에 이주시키셨다고 말합니다. 성경이 이 부분에 대해서 꼬집어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에 꼭 그렇다 말하기 어렵지만 오늘 요셉의 이 이야기를 통해서 어느 정도 가능성 있는 이 야기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요셉이 이런 사실을 깨달았는가는 또 다른 숙제이지 만 가능성 있는 이야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야곱의 가족을 보호하시기 위해서 요셉을 먼저 보내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한 것입니다.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그래서 그는 결론적으로 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8절을 읽습니다. . 무엇이라 말합니까 그렇습니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우리는 여기서 요셉의 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차원에서 이 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형님들이 나를 팔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통해 선 을 이루셨다는 것이죠. 이 런 요셉의 사건을 살피다 보면 생각나는 신약의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합력 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입니다. 요셉 은 바로 이것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바 라보고 있었던 것이죠. 아마 여러분들도 하나님은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가신다고 수없이 말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믿는 사람은 어떻 게 살아야 하는 줄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요셉처럼 원망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 입니다. 여러분 말로만 하나님은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 말하지 마십시오. 이것을 바라보는 사람은 원망도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뒤에 숨 어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요셉, 그는 얼마든지 형님들을 원망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원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들을 판 형님들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는 그는 뒤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이런 요셉의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만약 요셉이 4절에서 일어 난 사건까지만 보았다면 형님들을 원망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너머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즉, 5절 이하의 사건을 본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의 눈앞에 나타나는 현상들 만 혹 바라보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러분 인생을 원망하고 주변 사람들을 원망하며 살지 않습니까 나는 왜 이럴 까 아무개 성도는 아무개 집사는 왜 그럴까 내 남편은 내 아내는 왜 이럴까 하면서 한숨 짖지 않습니까 이것은 믿음의 사람들의 삶이 아 닙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너머에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합력 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여러분의 사전에도 원망을 몰아내 십시오. 불평을 몰아내십시오. 한숨을 몰아내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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