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이주 (창45:9-46:27)
본문
오래 전에 텔레비전에서 6.25전쟁으로 인해 해어졌던 이산가족들의 만남을 주선하고 방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 일은 그 당시 전 국민적인 관심사였습니다. 가족 중에 이산가족이 있던 없던 모 든 사람들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아 눈시울을 적셨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당시 한 보도에 의하면 이산가족들 의 만남을 보면서 너무 운 나머지 다음날 중요한 약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이 부어서 취소해야만 했던 일이 있 었을 정도라 합니다. 그 때 참 대단했었죠 혹 여러분께서 그때의 장면을 기억하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 만나는 가족마다 공통적 인 일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처음 이산가족이 만나게 되면 서로 부둥켜 않 고 웁니다. 이 때는 체면도 주변 사람들도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저 목놓아 웁니다. 카메라를 들이대도 사회자들이 말을 시켜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저 울지요. 너무들 슬프게들 울어서 당시 진행하는 진행자들도 많이 울었 다고 합니다. 이렇게 목놓아 울고 나서는 손아랫사람이 절 받으시지요. 하고는 넙죽 절을 합니다. 그리고는 또 다 시 엉겨서 울지요. 분명 인 사를 먼저 드려야 하는 것이 예의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한참을 울고 나서야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또 부둥켜안고 울지요. 감정이 진하면 이렇게 갖추어야 할 예 의도 차려야할 체면도 다 잊어버리는 모양입니다.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당시 모든 국민들은 마치 그 일이 자신 의 일 인양 함께 울었었지 요. 오늘 본문에도 이런 이산가족의 만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과 형님들의 만남 이, 야곱과 요셉의 만남이 바 로 그것입니다. 이들 역시 수십 년의 세월을 헤어져 살아야만 했습니다. 서로의 생사조 차 확인할 길 없이 이들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헤어졌던 이들이 만나는 모습 참 감동적입니다. 마치 당시 방영되던 이산 가족들이 만 나는 장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제 이들의 만남을 보면서 우리들이 교훈 받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요셉의 감정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 만남에 대한 요셉의 감정을 살펴 볼 수 있었습니다. 요셉의 감정이 어떻게 표현되어 있었죠 그렇습니다. 정을 억제 할 수 없었다고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이런 요셉의 감정이 계속 되 고 있습니다.
먼저 형제들에 대한 감정을 살펴보도록 하죠. 14,15절입니다. . 요셉의 감정이 어떻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목을 안고 울었다. 입맞추고 울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이 사건에 대해서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지만 아마 여기서 제법 시간을 끌지 않았나 보여 집니다. 서로 부둥켜안고 제법 많은 시간을 울었을 것입니다. 만약 여기 이 장면에서도 사회자가 있었다면 함께 울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 회자가 그만 우시죠. 하고 말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울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들은 서로 부둥켜 않고 입 을 맞추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이것이 형제들에 대한 요셉의 감정이었습니다. 다음 9절 에는 아버지 야곱에 대한 요셉의 감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께 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 렇습니다. 속히 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아버지에 대한 요셉의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빨리 아버지를 보고 싶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단어가 여기에서만 사용된 것은 아닙니다. 13절 말씀을 보도록 하죠. . 예, 여 기서도 요셉은 형님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왜죠 그렇습니다. 아버지를 빨 리 만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극진히 사랑하시던 그 아버지 그 아버지를 요셉은 빨리 만나고 싶었기에 형님들 에게 속히 모시고 오라는 말을 거듭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그런데 이런 와중에 요셉의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함께 9절로 11절 말씀을 보시겠 습니다. . 자 이 말은 구가 누구에게 한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요셉이 형님들에게 가서 아버지에게 이렇게 고하라고 한 말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 말을 어떻게 시작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라는 말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요셉이 형님들과 이야기 할 때도 자신의 모든 처지를 밝히면서 누구를 주인공으로 밝히고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주인공으로 밝히고 있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은 요셉이었지만 요셉은 엑스트라에 불과했고 주인공은 하나님이었음을 밝힌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요셉이 이 제 아버지에게 전하는 이야 기 가운데도 하나님을 주인공으로 등장을 시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나 를 입니다. 주인공은 하나님이고 자신은 그 주인공에 의해서 사용되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이 부 분에 대해서 철저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라고 말하지 내가 하나님을 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이 나를 이었습니다. 다시 지난 시간 살펴보았던 말씀을 살피도록 하 죠. 5절을 보십시다. . 예 거기에도 하나님이 . 나를 이라고 기록하고 있죠. 또 7절을 보십시다. 하나님이 당신들을 이라고 기록하고 있죠. 또 8절을 보십시다. 거기서도 역시 하나님이 나로 입니다. 그 리고 오늘 본문에서도 그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말하기를 하나님이 나를 입니다. 자신의 출세 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 라 사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사용하시며 만들어 가셨는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주인공이 되기를 좋아합니다. 아무리 연기력이 시원치 않는 배우라도 엑스트라보다는 주인공의 배역을 맡고 싶어합니다. 나이든 남자들끼리 모이면 종종 군대 갔다온 이야기 를 합니다. 한 사람이 자신 이 군대 생활을 얼마나 멋지게 했는가를 이야기하면 서로 질세라 자신이 경험한 무용담 을 끄집어냅니다. 이야기 를 가만히 듣다보면 다 화려하고 멋집니다. 다 자신을 주인공으로 등장을 시킵니다. 방 위병도 자신이 주인공이었 다고 합니다. 이게 사람의 심리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자신 이 자신의 세계에서 주인공 이라 생각을 하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자신도 이 세상의 주인공으로 멋지게 등장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살아갑니다. 물론 이렇게 사는 것이 긍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부정적 인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이렇게 생각을 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송두리째 훔칩니다. 마치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는 것처럼 앉아 계시는데요. 제가 예를 들어볼까요 먼저 한가지 질문을 드리지요.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나를 이라는 의미의 말을 자주 사용하십니까 내가 하나님을 이라는 의미의 말을 자주 사용하십니까 물론 이 둘다 사용을 하지 않는 분 들도 계실 터이지만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겨 사용하는 것이 내가 하나님 을 이라는 말입니다. 좀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도록 하죠. 내가 기도 했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응답하셨다. 누가 주인공입니까 그렇습니다. 자신이 주인공입니다. 은근히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처럼 하면서 주인공을 자신으 로 등장을 시키고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인내하고 참아 냈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나를 선대하시더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기다렸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저렇게 응답하시더라 야 참 하나님을 놀라워 글세 내 가 기도하는 것을 척척 들 어 주셔 하나님은 참고 기다리는 자를 잊지 않으신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어, 아 글 세 내가 그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 얼마나 오래 참았는데 하나님께서 힘주시지 않으셨으면 아마 못 참았을 꺼야 이렇게 그럴듯하게 내가 하나님을 을 포장해서 말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요. 그러나 사실은 가만히 따져놓고 보면 하나님 보다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등장을 시키는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의 모습을 가만히 따져 보십시오. 여러분들은 어떠하신지요. 과연 나는 하나님이 나를 이라는 의미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내가 하나님을 이라는 의미의 생각을 더 많이 하 면서 살아가는지를 요. 여러분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은 얼마든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지, 그리고 그 가운데서 원망 없이 얼마나 많은 세월들을 기다렸는지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는 온전히 하나님을 주인공으로 내세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요셉의 자세를 본받으십시다. 요셉처럼 언제든지 하나님이 나를 이라고 말함으 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도 둑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정말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주인공으로 인정하 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에서, 가족관계에 있어서, 인간관계에 있어서, 재물에 있어 서,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이 나를 이라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습니까 가정, 가족, 인생, 재물등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이라는 생각 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습니까 조용히 스스로를 향해 반문해 보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이렇게 하나님을 앞세우면서 야곱을 초대합니다. 요셉만이 아니라 16절 이하 의 말씀에 보면 바로도 야 곱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이는 당시 요셉이 지위가 얼마나 대단했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바로도 기쁨으로 야곱 을 초대할 정도로 요셉의 지위는 당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야곱의 반응 이런 초대를 받은 야곱 그는 이제 어떻게 반응할 까요 25-2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 처음 야곱은 요셉이 살아 있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아들들이 요셉이 전하라고 한 이야기를 듣고 서야 자신의 아들이 살아 있음을 확신합니다. 이 때의 야곱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대단 히 흥분을 했을 것입니다. 요셉이 어떤 아들입니까 예, 자신의 생명처럼 여기던 아들 입니다. 이 아들 죽은 줄로 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살아 있다고 합니다. 그것도 당시 세계를 주름 잡던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말입니다. 지금 야곱 앞에서 바로가 보낸 멋진 수레가 번쩍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물 품들이 번득이고 있습니다. 살아 있기만 해도 고맙고 감사할 터인데 이건 살아 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되어서 야곱을 기 다린다고 하니 얼마나 흥분된 일입니까 헤어졌던 자녀를 만난다는 것은 부모에게 있 어서 참 흥분된 일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집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아실 것입니다. 성경은 이 장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눅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 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이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자신의 모든 재산을 탕진한 아 들도 이렇게 기다려지고 만 나면 좋고 기쁜데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이 애굽의 총리로 성공을 해서 아버지를 기 다린다고 하지 얼마나 기분 좋은 일입니까 아니 얼마나 가슴 뛰는 일입니까 만약 여러분들이 야곱의 입장이 된다 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신발도 제대로 챙겨 신지 못하고 달려 갈 것입니다.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고 덩실 덩실 춤이라도 추실 것입니다. 이게 부모의 마음이지요.
그렇다면 야곱은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을 할까요 먼저 28절을 다시 읽습니다. . 이 말이 어떤 의미죠 그렇습니다. 요셉을 보고난 후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 말 속에 이 일에 대한 요셉 의 모든 감정이 숨어 있습니다. 아들의 만남과 자신의 죽음을 바꾸겠다는 이런 말을 남 기고 야곱은 가족들과 함 께 애굽을 향합니다. 이 때 야곱의 마음 어떠했을까요 아마 모든 것들이 더디게 느껴 졌을 것입니다. 가족들은 왜 그리 짐을 빨리 빨리 챙기지 못하는지, 왜 이리 수래는 천천히 가는지, 요셉을 보고픈 마음에 모든 것들이 답답했 을 것입니다. 한시라도 빨리 애굽으로 가서 사랑하는 아들을 보고싶은 마음이 전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 문을 자세히 살피다 보면 야곱의 마음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또 다른 근심과 걱정이 찾아 온 듯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일까요 요셉의 걱정 46장 1절 이하의 말씀을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1절을 읽습니다. . 야곱이 어디에 이르렀다 고 기록하죠 그렇습니다. 브엘세바에 이르렀다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브엘세바가 어디인줄 아 십니까 이 브엘세바는 우물이 있는 곳으로 아브라함시절 우물로 인해 아비멜렉과 다툼 이 일자 이곳을 아비멜렉 으로부터 샀던 곳입니다. 또 이삭도 우물로 인해 다툼이 일자 자신의 아버지 아브라함 이 우물을 샀던 이 브엘세 바로 옮깁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밤에 이삭에게 나타나서 이삭을 격려하시며 언약을 재 확인시켜 주십니다. 그 러자 이삭은 이곳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요. 이렇게 브엘세바는 아브라함가문에 유서 깊은 땅이었습니다. 뿐 만 아니라 이 브엘세바는 약속의 땅 가나안의 최남단에 자리한 땅이기도 했습니다. 즉, 약속의 땅의 경계지역에 있는 곳이었습니다. 바로 이곳에 야곱은 도착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야곱이 드린 이 제사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3절에 있는 말씀 을 보면 이 제사의 의미와 야곱이 고민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함께 3절 말씀을 읽습니다. .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시죠 그렇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에서 야곱에게 어떤 고 민이 있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고민이 있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가나안 땅을 떠나 애굽으로 가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욀까요 그렇습니다. 이 가나안 땅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 받은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이 땅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뿐만 아리나 이 땅을 떠난 다는 것은 죄를 짖는 일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도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을 때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갔다 가 낭패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아내를 잃을 뻔 했었죠. 뿐만 아닙니다. 아버지 이삭도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자 가족들을 거느리고 애굽으 로 가기 위해서 길을 떠나 그랄에 거합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저 에게 떠나지 말 것을 경고 하십니다. 창 26:1,2절을 보죠.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 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 시하는 땅에 거하라 이삭은 이 말씀을 듣고도 곧바로 가나안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역시 낭패를 당 하죠. 역시 아내를 잃을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돌아오지요. 그 때 돌아 와서 하나님을 만난 곳이 바 로 이 브엘세바였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아버지나 할아버지 모두가 가나안을 떠났거나 떠나다가 낭패를 당한 경 험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야곱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야곱의 고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땅 가나안을 떠난다고 하는 것은 큰 죄악인데 어떻게 이 가나안 땅을 떠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고민을 했던 것입니다. 떠나자니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고, 떠나지 말자니 아들이 보고 싶고 한 것이 야곱의 심정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야곱이 이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서 제사를 드리면서 한 것은 하나님 께 이런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의견을 여쭈어 본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하지요 하는 의미로 제사를 드린 것이죠. 우리는 이런 야곱의 자세에서 교훈을 얻습니다. 어쩌면 지금 야곱에게 하나님의 뜻 을 물어볼 겨를이 어디 있 습니까 지금 자기를 기다리는 아들이 어떤 아들입니까 이런 아들을 만나기 위해서 잠 시 가나안 땅을 떠나는 것 이 뭐 죄가 되겠습니까 또 지금 가나안 땅을 떠난다고 영원히 떠나는 것이 아니잖습니 까 보고 돌아오면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가나안 땅에서 죽자 사자 살면 되지 않습니까 그래도 야곱은 그렇게 생각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 땅을 떠나기 전 그는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뜻을 조용히 묻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같으면 야곱처럼 이렇게 하시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 어떻게 할 까요 하고 묻 겠습니까 물론 그럴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이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 한번만 눈감아 주세요 하고 갈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아드님이 군에 가있는 분들이 몇 분 계시는데요. 아마 면회를 주일날 가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럴 때 야곱처럼 하나님께 여쭈어 보고 하나님 어떻게 할 까요 하고 가십니까 아니면 그저 아들을 보고 싶은 마음에 하나님 한번만 눈감아 주세요 하면서 가십니까 우리는 모든 면에 있어서 하나님께 여쭈어 보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그 뜻을 따라야 합니다. 야곱 처럼 말입니다. 나는 하나님 이런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3절에 무엇이라 말씀하시죠 예, 나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뒤에서도 설명이 되지만 너 의 아비 이삭의 하나님, 너 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에게 이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으로 주었던 그 하나님, 이삭에게 이 땅을 약속의 땅으로 주었던 그 하나님이라는 의미죠. 바로 그 하나님께서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고요. 애굽 으로 내려가는 것이 하나님 의 뜻이라고요.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일까요 창 15:13,14말씀을 한 번 보 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 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 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 말씀은 이미 수십년전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말씀이었습니다. 바로 이 말씀이 이제 실현 될 때가 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야곱을 애굽으로 가는 것을 허락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변경되어서가 아니라 하나님 의 뜻이 라는 것입니다. 거기서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여기 거기서란 어디입니까 그렇습니다. 애굽입니다.
그렇다면 애굽으로 야곱을 보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렇 습니다. 야곱의 후손이 큰 민족을 이루어 돌아오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보 잘 것이 없는 숫자가 옮겨 가지만 때가 되면 큰 민족을 이루어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드린 것처럼 야곱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에 있으면서 큰 민족으로 자라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왜 라 말씀을 드렸죠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야곱의 가족들은 가나안 땅에서는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주변 여러 족속들의 견제가 있 을 수밖에 없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좀 전에 살펴 본 것처럼 아브라함시절에 도 이삭 시절에도 우물로 인해 그 지역 사람들과 다툼이 생기지 않습니까 이렇게 주변 족속들의 끊임없는 도전 으로 인해 가나안 땅에서 큰 민족으로 자라난다는 것은 심히 힘든 그런 일이었습니다. 또 뿐만 아니라 가나안 땅 에서 야곱의 후손이 큰 민족을 이룬다 하더라도 주변 족속들과 혈통이나 문화가 혼합이 되어서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독특한 문화를 만든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애굽이라는 요람을 준비하셨습니다. 이곳에서 야곱의 후손 을 큰 나라로 만든 연후에 이들을 가나안에 이주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애굽이 마치 모판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판에 볍씨를 뿌리고 파종을 한 연후에 어느 정도 견딜 수 있게 자라면 논에 심지 않 습니까 바로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애굽이라는 모판을 준비하시고 야곱의 후손을 이스라엘이 되게 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7절 이하의 말씀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7절 이하의 말씀은 어떤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야곱의 후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들이 도합 몇 명입니까 26절을 보 십시다. 66명입니다. 그리고 야곱과 요셉, 그리고 요셉의 아들 둘을 합치면 몇 명이지요 그렇습니다. 70명입니다. 바로 27절은 이 사실을 도 합 70명이었다라 고 밝히고 있죠. 아마 여러분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출 애굽을 했는가를 잘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꿈을 가지시고 야곱의 후 손을 애굽으로 이주를 시킨 것입니다. 물론 이런 하나님의 계획이 야곱에게 잘 이해되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들처럼 야 하나님께서 이 렇게 멋지게 역사 하시다니 하고 감탄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일입니다. 당시에는 그 일이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괴롭고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시간 생각해 보았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들을 통해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나 가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일어나는 일도 잘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낙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합력 하여 선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인내하시 고 견디시기 바랍니다. 동행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하나님의 계획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 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뿐 만 아니라 또 다시 저를 인도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옮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물 론 이것은 야곱 자신을 가 리키는 것이 아니라 큰 민족을 이룬 이후에 야곱의 후손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되어 서 나오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야곱이 혼자 가게 하지 않으십니다. 동행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제가 언젠가도 말씀을 드린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요. 제가 주일학교 때 일입니다. 교회 선생님이 제게 이렇 게 묻더군요. 지옥에 예수님이 계신다면 지옥이라도 가겠느냐고요 참 난처한 질문이더 군요. 여러분들은 뭐라고 대답을 하시겠어요 난처해서 뭐라고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저에게 찬송가 내 영혼이 은총 입어 를 펼쳐 보이더군요. 거기에 보면 후렴 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내 주 예수 계신 곳 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즉, 예수님이 계신 곳이라면 그리스도인에게는 지옥 같은 곳도 하늘 나라가 될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도 그런 내용이 아닌가 싶습니다. 비록 약속의 땅은 아니라 할 지라도 그곳 에 하나님께서 함께 가시 면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이런 신앙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 에서 우리들은 많은 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두려운 일이 다가오기도 하고 낙망스러운 일들이 전개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왜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혼자 가게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혼자처 럼 느껴집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랍니다. 애굽으로 향하는 애굽과 함께 하 셨던 그 하나님께서 바로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함께 하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을 힘있게 바라보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애굽을 향합니다. 이 때 야곱의 마음은 나르는 것 같았을 것 입니다. 왜죠 그렇습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아무런 거 리낌없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 앞에서도 사람 앞에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하나님을 만나러 애굽을 향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오늘 이 사건을 요셉과 관련해서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46:3절 말씀인데요. 여기에는 이스 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 가는 이유에 대해서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 죠 그렇습니다. 큰 민족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사용하십니까 그 렇습니다. 요셉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이 그렇게 팔려가게 하신 것도, 고난을 받게 하신 것도,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게 하신 것도 바로 이런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요셉 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사람으로 쓰여졌습니다. 요셉의 인생을 이해함에 있어서 중요 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요셉의 인생이 우리에게 이야기는 하는 바는 요셉이 고난 중에서도 원망 없이 참 았더라 이것을 말하기 위 함이 아닙니다. 요셉이 참고 견디었더니 총리가 되었더라 이것을 말하기 위함도 아닙니다. 물론 우리들이 요셉의 인생을 살피면서 이런 여러 부분들에 대해서 살펴보았지만 하나님께서 이 긴 사건을 통 해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것은 요셉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을 위해서 도구로 사용되어 졌더라 하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함입니다. 요셉 의 고난이 가족을 살리는 길이었고, 큰 민족을 이루는 일이었더라 하는 말씀을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요셉은 어느 정도 이해한 것처럼 보여 집니다. 지난 시간 요셉이 형님들 앞에서 무엇이라 말했었죠 그렇습니다. (창 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 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라고 했었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사용되고 있는가를 어느 정도 알았기 때문에 요셉은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 사람의 고난을 통한 민족의 구원 이것 얼마든 지 해 볼만한 일 아닙니까 자신의 고난을 통한 하나님의 뜻의 성취 이것 역시 얼마든 지 해 볼만한 일 아닙니까 바로 이 일을 위해서 요셉은 자신을 드린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고난을 받은 것입니다. 이 일의 대표적인 분이 누굽니까 그렇습니다.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자신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많은 영혼들을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고난이라면 해볼만한 것 아닙니까 물론 우리들이 예수님과 같은 고난 은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과 같은 고난은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힘들고 어렵지만 하나님의 뜻 을 이루는 일이라면 우리 들을 드릴만한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오늘 이 시대도 이런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교회도 이런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이 일을 위해 고난을 받고 자신을 드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런 사람이 되시겠습니까 누가 나를 보내주소 서 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이런 초대에 응하는 사람이 되시겠습니까 누구입니까
먼저 형제들에 대한 감정을 살펴보도록 하죠. 14,15절입니다. . 요셉의 감정이 어떻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목을 안고 울었다. 입맞추고 울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이 사건에 대해서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지만 아마 여기서 제법 시간을 끌지 않았나 보여 집니다. 서로 부둥켜안고 제법 많은 시간을 울었을 것입니다. 만약 여기 이 장면에서도 사회자가 있었다면 함께 울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 회자가 그만 우시죠. 하고 말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울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들은 서로 부둥켜 않고 입 을 맞추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이것이 형제들에 대한 요셉의 감정이었습니다. 다음 9절 에는 아버지 야곱에 대한 요셉의 감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께 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 렇습니다. 속히 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아버지에 대한 요셉의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빨리 아버지를 보고 싶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단어가 여기에서만 사용된 것은 아닙니다. 13절 말씀을 보도록 하죠. . 예, 여 기서도 요셉은 형님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왜죠 그렇습니다. 아버지를 빨 리 만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극진히 사랑하시던 그 아버지 그 아버지를 요셉은 빨리 만나고 싶었기에 형님들 에게 속히 모시고 오라는 말을 거듭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그런데 이런 와중에 요셉의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함께 9절로 11절 말씀을 보시겠 습니다. . 자 이 말은 구가 누구에게 한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요셉이 형님들에게 가서 아버지에게 이렇게 고하라고 한 말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 말을 어떻게 시작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라는 말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요셉이 형님들과 이야기 할 때도 자신의 모든 처지를 밝히면서 누구를 주인공으로 밝히고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주인공으로 밝히고 있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은 요셉이었지만 요셉은 엑스트라에 불과했고 주인공은 하나님이었음을 밝힌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요셉이 이 제 아버지에게 전하는 이야 기 가운데도 하나님을 주인공으로 등장을 시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나 를 입니다. 주인공은 하나님이고 자신은 그 주인공에 의해서 사용되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이 부 분에 대해서 철저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라고 말하지 내가 하나님을 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이 나를 이었습니다. 다시 지난 시간 살펴보았던 말씀을 살피도록 하 죠. 5절을 보십시다. . 예 거기에도 하나님이 . 나를 이라고 기록하고 있죠. 또 7절을 보십시다. 하나님이 당신들을 이라고 기록하고 있죠. 또 8절을 보십시다. 거기서도 역시 하나님이 나로 입니다. 그 리고 오늘 본문에서도 그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말하기를 하나님이 나를 입니다. 자신의 출세 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 라 사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사용하시며 만들어 가셨는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주인공이 되기를 좋아합니다. 아무리 연기력이 시원치 않는 배우라도 엑스트라보다는 주인공의 배역을 맡고 싶어합니다. 나이든 남자들끼리 모이면 종종 군대 갔다온 이야기 를 합니다. 한 사람이 자신 이 군대 생활을 얼마나 멋지게 했는가를 이야기하면 서로 질세라 자신이 경험한 무용담 을 끄집어냅니다. 이야기 를 가만히 듣다보면 다 화려하고 멋집니다. 다 자신을 주인공으로 등장을 시킵니다. 방 위병도 자신이 주인공이었 다고 합니다. 이게 사람의 심리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자신 이 자신의 세계에서 주인공 이라 생각을 하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자신도 이 세상의 주인공으로 멋지게 등장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살아갑니다. 물론 이렇게 사는 것이 긍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부정적 인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이렇게 생각을 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송두리째 훔칩니다. 마치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는 것처럼 앉아 계시는데요. 제가 예를 들어볼까요 먼저 한가지 질문을 드리지요.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나를 이라는 의미의 말을 자주 사용하십니까 내가 하나님을 이라는 의미의 말을 자주 사용하십니까 물론 이 둘다 사용을 하지 않는 분 들도 계실 터이지만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겨 사용하는 것이 내가 하나님 을 이라는 말입니다. 좀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도록 하죠. 내가 기도 했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응답하셨다. 누가 주인공입니까 그렇습니다. 자신이 주인공입니다. 은근히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처럼 하면서 주인공을 자신으 로 등장을 시키고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인내하고 참아 냈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나를 선대하시더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기다렸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저렇게 응답하시더라 야 참 하나님을 놀라워 글세 내 가 기도하는 것을 척척 들 어 주셔 하나님은 참고 기다리는 자를 잊지 않으신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어, 아 글 세 내가 그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 얼마나 오래 참았는데 하나님께서 힘주시지 않으셨으면 아마 못 참았을 꺼야 이렇게 그럴듯하게 내가 하나님을 을 포장해서 말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요. 그러나 사실은 가만히 따져놓고 보면 하나님 보다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등장을 시키는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의 모습을 가만히 따져 보십시오. 여러분들은 어떠하신지요. 과연 나는 하나님이 나를 이라는 의미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내가 하나님을 이라는 의미의 생각을 더 많이 하 면서 살아가는지를 요. 여러분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은 얼마든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지, 그리고 그 가운데서 원망 없이 얼마나 많은 세월들을 기다렸는지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는 온전히 하나님을 주인공으로 내세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요셉의 자세를 본받으십시다. 요셉처럼 언제든지 하나님이 나를 이라고 말함으 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도 둑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정말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주인공으로 인정하 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에서, 가족관계에 있어서, 인간관계에 있어서, 재물에 있어 서,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이 나를 이라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습니까 가정, 가족, 인생, 재물등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이라는 생각 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습니까 조용히 스스로를 향해 반문해 보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이렇게 하나님을 앞세우면서 야곱을 초대합니다. 요셉만이 아니라 16절 이하 의 말씀에 보면 바로도 야 곱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이는 당시 요셉이 지위가 얼마나 대단했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바로도 기쁨으로 야곱 을 초대할 정도로 요셉의 지위는 당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야곱의 반응 이런 초대를 받은 야곱 그는 이제 어떻게 반응할 까요 25-2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 처음 야곱은 요셉이 살아 있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아들들이 요셉이 전하라고 한 이야기를 듣고 서야 자신의 아들이 살아 있음을 확신합니다. 이 때의 야곱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대단 히 흥분을 했을 것입니다. 요셉이 어떤 아들입니까 예, 자신의 생명처럼 여기던 아들 입니다. 이 아들 죽은 줄로 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살아 있다고 합니다. 그것도 당시 세계를 주름 잡던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말입니다. 지금 야곱 앞에서 바로가 보낸 멋진 수레가 번쩍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물 품들이 번득이고 있습니다. 살아 있기만 해도 고맙고 감사할 터인데 이건 살아 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되어서 야곱을 기 다린다고 하니 얼마나 흥분된 일입니까 헤어졌던 자녀를 만난다는 것은 부모에게 있 어서 참 흥분된 일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집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아실 것입니다. 성경은 이 장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눅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 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이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자신의 모든 재산을 탕진한 아 들도 이렇게 기다려지고 만 나면 좋고 기쁜데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이 애굽의 총리로 성공을 해서 아버지를 기 다린다고 하지 얼마나 기분 좋은 일입니까 아니 얼마나 가슴 뛰는 일입니까 만약 여러분들이 야곱의 입장이 된다 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신발도 제대로 챙겨 신지 못하고 달려 갈 것입니다.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고 덩실 덩실 춤이라도 추실 것입니다. 이게 부모의 마음이지요.
그렇다면 야곱은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을 할까요 먼저 28절을 다시 읽습니다. . 이 말이 어떤 의미죠 그렇습니다. 요셉을 보고난 후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 말 속에 이 일에 대한 요셉 의 모든 감정이 숨어 있습니다. 아들의 만남과 자신의 죽음을 바꾸겠다는 이런 말을 남 기고 야곱은 가족들과 함 께 애굽을 향합니다. 이 때 야곱의 마음 어떠했을까요 아마 모든 것들이 더디게 느껴 졌을 것입니다. 가족들은 왜 그리 짐을 빨리 빨리 챙기지 못하는지, 왜 이리 수래는 천천히 가는지, 요셉을 보고픈 마음에 모든 것들이 답답했 을 것입니다. 한시라도 빨리 애굽으로 가서 사랑하는 아들을 보고싶은 마음이 전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 문을 자세히 살피다 보면 야곱의 마음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또 다른 근심과 걱정이 찾아 온 듯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일까요 요셉의 걱정 46장 1절 이하의 말씀을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1절을 읽습니다. . 야곱이 어디에 이르렀다 고 기록하죠 그렇습니다. 브엘세바에 이르렀다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브엘세바가 어디인줄 아 십니까 이 브엘세바는 우물이 있는 곳으로 아브라함시절 우물로 인해 아비멜렉과 다툼 이 일자 이곳을 아비멜렉 으로부터 샀던 곳입니다. 또 이삭도 우물로 인해 다툼이 일자 자신의 아버지 아브라함 이 우물을 샀던 이 브엘세 바로 옮깁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밤에 이삭에게 나타나서 이삭을 격려하시며 언약을 재 확인시켜 주십니다. 그 러자 이삭은 이곳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요. 이렇게 브엘세바는 아브라함가문에 유서 깊은 땅이었습니다. 뿐 만 아니라 이 브엘세바는 약속의 땅 가나안의 최남단에 자리한 땅이기도 했습니다. 즉, 약속의 땅의 경계지역에 있는 곳이었습니다. 바로 이곳에 야곱은 도착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야곱이 드린 이 제사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3절에 있는 말씀 을 보면 이 제사의 의미와 야곱이 고민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함께 3절 말씀을 읽습니다. .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시죠 그렇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에서 야곱에게 어떤 고 민이 있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고민이 있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가나안 땅을 떠나 애굽으로 가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욀까요 그렇습니다. 이 가나안 땅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 받은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이 땅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뿐만 아리나 이 땅을 떠난 다는 것은 죄를 짖는 일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도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을 때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갔다 가 낭패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아내를 잃을 뻔 했었죠. 뿐만 아닙니다. 아버지 이삭도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자 가족들을 거느리고 애굽으 로 가기 위해서 길을 떠나 그랄에 거합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저 에게 떠나지 말 것을 경고 하십니다. 창 26:1,2절을 보죠.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 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 시하는 땅에 거하라 이삭은 이 말씀을 듣고도 곧바로 가나안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역시 낭패를 당 하죠. 역시 아내를 잃을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돌아오지요. 그 때 돌아 와서 하나님을 만난 곳이 바 로 이 브엘세바였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아버지나 할아버지 모두가 가나안을 떠났거나 떠나다가 낭패를 당한 경 험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야곱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야곱의 고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땅 가나안을 떠난다고 하는 것은 큰 죄악인데 어떻게 이 가나안 땅을 떠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고민을 했던 것입니다. 떠나자니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고, 떠나지 말자니 아들이 보고 싶고 한 것이 야곱의 심정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야곱이 이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서 제사를 드리면서 한 것은 하나님 께 이런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의견을 여쭈어 본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하지요 하는 의미로 제사를 드린 것이죠. 우리는 이런 야곱의 자세에서 교훈을 얻습니다. 어쩌면 지금 야곱에게 하나님의 뜻 을 물어볼 겨를이 어디 있 습니까 지금 자기를 기다리는 아들이 어떤 아들입니까 이런 아들을 만나기 위해서 잠 시 가나안 땅을 떠나는 것 이 뭐 죄가 되겠습니까 또 지금 가나안 땅을 떠난다고 영원히 떠나는 것이 아니잖습니 까 보고 돌아오면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가나안 땅에서 죽자 사자 살면 되지 않습니까 그래도 야곱은 그렇게 생각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 땅을 떠나기 전 그는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뜻을 조용히 묻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같으면 야곱처럼 이렇게 하시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 어떻게 할 까요 하고 묻 겠습니까 물론 그럴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이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 한번만 눈감아 주세요 하고 갈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아드님이 군에 가있는 분들이 몇 분 계시는데요. 아마 면회를 주일날 가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럴 때 야곱처럼 하나님께 여쭈어 보고 하나님 어떻게 할 까요 하고 가십니까 아니면 그저 아들을 보고 싶은 마음에 하나님 한번만 눈감아 주세요 하면서 가십니까 우리는 모든 면에 있어서 하나님께 여쭈어 보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그 뜻을 따라야 합니다. 야곱 처럼 말입니다. 나는 하나님 이런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3절에 무엇이라 말씀하시죠 예, 나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뒤에서도 설명이 되지만 너 의 아비 이삭의 하나님, 너 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에게 이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으로 주었던 그 하나님, 이삭에게 이 땅을 약속의 땅으로 주었던 그 하나님이라는 의미죠. 바로 그 하나님께서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고요. 애굽 으로 내려가는 것이 하나님 의 뜻이라고요.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일까요 창 15:13,14말씀을 한 번 보 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 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 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 말씀은 이미 수십년전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말씀이었습니다. 바로 이 말씀이 이제 실현 될 때가 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야곱을 애굽으로 가는 것을 허락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변경되어서가 아니라 하나님 의 뜻이 라는 것입니다. 거기서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여기 거기서란 어디입니까 그렇습니다. 애굽입니다.
그렇다면 애굽으로 야곱을 보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렇 습니다. 야곱의 후손이 큰 민족을 이루어 돌아오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보 잘 것이 없는 숫자가 옮겨 가지만 때가 되면 큰 민족을 이루어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드린 것처럼 야곱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에 있으면서 큰 민족으로 자라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왜 라 말씀을 드렸죠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야곱의 가족들은 가나안 땅에서는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주변 여러 족속들의 견제가 있 을 수밖에 없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좀 전에 살펴 본 것처럼 아브라함시절에 도 이삭 시절에도 우물로 인해 그 지역 사람들과 다툼이 생기지 않습니까 이렇게 주변 족속들의 끊임없는 도전 으로 인해 가나안 땅에서 큰 민족으로 자라난다는 것은 심히 힘든 그런 일이었습니다. 또 뿐만 아니라 가나안 땅 에서 야곱의 후손이 큰 민족을 이룬다 하더라도 주변 족속들과 혈통이나 문화가 혼합이 되어서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독특한 문화를 만든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애굽이라는 요람을 준비하셨습니다. 이곳에서 야곱의 후손 을 큰 나라로 만든 연후에 이들을 가나안에 이주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애굽이 마치 모판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판에 볍씨를 뿌리고 파종을 한 연후에 어느 정도 견딜 수 있게 자라면 논에 심지 않 습니까 바로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애굽이라는 모판을 준비하시고 야곱의 후손을 이스라엘이 되게 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7절 이하의 말씀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7절 이하의 말씀은 어떤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야곱의 후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들이 도합 몇 명입니까 26절을 보 십시다. 66명입니다. 그리고 야곱과 요셉, 그리고 요셉의 아들 둘을 합치면 몇 명이지요 그렇습니다. 70명입니다. 바로 27절은 이 사실을 도 합 70명이었다라 고 밝히고 있죠. 아마 여러분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출 애굽을 했는가를 잘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꿈을 가지시고 야곱의 후 손을 애굽으로 이주를 시킨 것입니다. 물론 이런 하나님의 계획이 야곱에게 잘 이해되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들처럼 야 하나님께서 이 렇게 멋지게 역사 하시다니 하고 감탄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일입니다. 당시에는 그 일이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괴롭고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시간 생각해 보았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들을 통해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나 가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일어나는 일도 잘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낙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합력 하여 선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인내하시 고 견디시기 바랍니다. 동행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하나님의 계획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 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뿐 만 아니라 또 다시 저를 인도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옮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물 론 이것은 야곱 자신을 가 리키는 것이 아니라 큰 민족을 이룬 이후에 야곱의 후손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되어 서 나오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야곱이 혼자 가게 하지 않으십니다. 동행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제가 언젠가도 말씀을 드린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요. 제가 주일학교 때 일입니다. 교회 선생님이 제게 이렇 게 묻더군요. 지옥에 예수님이 계신다면 지옥이라도 가겠느냐고요 참 난처한 질문이더 군요. 여러분들은 뭐라고 대답을 하시겠어요 난처해서 뭐라고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저에게 찬송가 내 영혼이 은총 입어 를 펼쳐 보이더군요. 거기에 보면 후렴 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내 주 예수 계신 곳 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즉, 예수님이 계신 곳이라면 그리스도인에게는 지옥 같은 곳도 하늘 나라가 될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도 그런 내용이 아닌가 싶습니다. 비록 약속의 땅은 아니라 할 지라도 그곳 에 하나님께서 함께 가시 면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이런 신앙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 에서 우리들은 많은 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두려운 일이 다가오기도 하고 낙망스러운 일들이 전개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왜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혼자 가게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혼자처 럼 느껴집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랍니다. 애굽으로 향하는 애굽과 함께 하 셨던 그 하나님께서 바로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함께 하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을 힘있게 바라보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애굽을 향합니다. 이 때 야곱의 마음은 나르는 것 같았을 것 입니다. 왜죠 그렇습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아무런 거 리낌없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 앞에서도 사람 앞에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하나님을 만나러 애굽을 향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오늘 이 사건을 요셉과 관련해서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46:3절 말씀인데요. 여기에는 이스 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 가는 이유에 대해서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 죠 그렇습니다. 큰 민족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사용하십니까 그 렇습니다. 요셉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이 그렇게 팔려가게 하신 것도, 고난을 받게 하신 것도,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게 하신 것도 바로 이런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요셉 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사람으로 쓰여졌습니다. 요셉의 인생을 이해함에 있어서 중요 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요셉의 인생이 우리에게 이야기는 하는 바는 요셉이 고난 중에서도 원망 없이 참 았더라 이것을 말하기 위 함이 아닙니다. 요셉이 참고 견디었더니 총리가 되었더라 이것을 말하기 위함도 아닙니다. 물론 우리들이 요셉의 인생을 살피면서 이런 여러 부분들에 대해서 살펴보았지만 하나님께서 이 긴 사건을 통 해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것은 요셉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을 위해서 도구로 사용되어 졌더라 하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함입니다. 요셉 의 고난이 가족을 살리는 길이었고, 큰 민족을 이루는 일이었더라 하는 말씀을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요셉은 어느 정도 이해한 것처럼 보여 집니다. 지난 시간 요셉이 형님들 앞에서 무엇이라 말했었죠 그렇습니다. (창 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 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라고 했었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사용되고 있는가를 어느 정도 알았기 때문에 요셉은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 사람의 고난을 통한 민족의 구원 이것 얼마든 지 해 볼만한 일 아닙니까 자신의 고난을 통한 하나님의 뜻의 성취 이것 역시 얼마든 지 해 볼만한 일 아닙니까 바로 이 일을 위해서 요셉은 자신을 드린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고난을 받은 것입니다. 이 일의 대표적인 분이 누굽니까 그렇습니다.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자신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많은 영혼들을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고난이라면 해볼만한 것 아닙니까 물론 우리들이 예수님과 같은 고난 은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과 같은 고난은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힘들고 어렵지만 하나님의 뜻 을 이루는 일이라면 우리 들을 드릴만한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오늘 이 시대도 이런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교회도 이런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이 일을 위해 고난을 받고 자신을 드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런 사람이 되시겠습니까 누가 나를 보내주소 서 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이런 초대에 응하는 사람이 되시겠습니까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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