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 (창37:1-39:23)
본문
우리는 지금까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생애와 그 신앙을 공부했습니다. 이들은 본래부터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이 아니 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사랑으로 이들을 훈련하시고, 마 침내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출 2:24). 반면에 요셉은 창 세기의 열매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인격이나 신앙 면에서 부족함이 없는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번도 자신을 요셉 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또한 요셉은 하나님과 직접 대 화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며, 하나님께서 요셉의 생애에 직접 개입 하신 적도 없습니다.
1)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요셉과 함께 하 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형들의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려간 요셉과 함께 하시고,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고 감옥에 갇힌 요셉과 함께 하신 사건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젊은 나이 게 광풍노도와 같이 몰아닥친 시련들을 믿음으로 극복해 나가는 요셉 의 아름다운 삶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운명과 역 경을 헤쳐 나가는 실제적인 믿음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꿈을 꾸는 요셉 (37:1-11)
1,2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 아비의 우거하던 땅에 거하였을 때 요셉은 이제 17세의 소년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그 아비 의 첩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함께 양을 쳤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 들의 과실(their evil report)을 그 아비에게 고했습니다. 요셉의 형 들이 아비의 양을 속여서 팔아먹기도 하고, 은밀히 여러 가지 비행을 저질렀던 것 같습니다. 요셉은 정의감이 강하여 형들의 불의를 보고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요셉은 정직하고 곧은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시기하거나 형들에 대한 어떤 악의를 가지고 있지도 않 았습니다. 형들의 비행을 과장해서 아비에게 고하지도 않았습니다. 형 들의 비행을 바로잡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했 습니다. 그만큼 요셉은 그 아비 야곱을 깊이 신뢰하고, 순종하는 마음 으로 섬겼습니다. 반면에 야곱은 요셉이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했습니다.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어 입혔 습니다
(3). 채색옷은 알룩달룩한 색동 저고리와 같은 옷이 아닙니다. 소매가 긴 망토와 같은 긴 코트를 말합니다. 이 옷을 입고는 양을 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에 요셉에게 채색옷을 입혔다는 것은 요 셉에게 더 이상 양을 치게 하지 않고, 비서처럼 아비 집에서 아버지를 섬기게 했던 것 같습니다.
2) 이로 인해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여, 그 에게 말을 온순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5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한 일로 형들이 더욱 요셉을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 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7)" 이 말을 들은 형들은 심히 자존심이 상하여 "네가 참으로 우리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는냐"고 말했습니다. 그 리고 그 꿈 자체와 그 말을 인하여 요셉을 더욱 미워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다시 다른 꿈을 꾸고 형들에게와 부모에게 또 꿈 이야기 를 했습니다.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 다(9)." 요셉은 너무나 인상적이고 소망에 넘치는 꿈을 꾸었기 때문에 부형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듣 고 요셉을 꾸짖었습니다.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 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러나 야곱은 요 셉의 그 말을 마음에 담아 두었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요셉에 대한 시 기심이 타올랐습니다. 이상에서 볼 때 요셉은 꿈을 꾸는 청년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꿈에는 반드시 그 사람의 인격과 경험과 삶의 태도가 반영됩니다. 그리므 로 요셉이 형들이 자기에게 절하고, 아버지와 어머니까지 자기에게 절 하는 비전에 넘치는 꿈을 꿨다는 것은 평소에 요셉이 그런 희망적이 삶을 꿈꿔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요셉은 밝고, 긍정 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았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인간적인 입장에서 볼 때 꿈을 갖기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요 셉은 어머니가 4 명이나 되는 복잡한 가정 환경에서 태어났습니다. 10 명이나 되는 이복 형들로부터 많은 미움과 구박을 받으며 자라야 했습니다. 그래서 성격이 비뚤어지고, 운명적인 생각에 시달리기 쉬웠습니다. 또 누나가 강간을 당하고, 형들이 세겜 성 사람들을 무참하게 학 살하는 광경을 목격하였습니다. 더구나 친 어머니가 막내 베냐민을 낳 다가 죽었습니다. 이 때는 베냐민이 겨우 한두 살 정도 되었을 정도였 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꿈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짓눌리지 않고 큰 꿈 과 희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요셉이 이렇게 큰 포부와 비전을 가질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편 145:19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기적인 욕심과 감정에 기초한 꿈은 개꿈에 불과합니다. 요즘 가정에 서 과잉 보호를 받고 자란 신세대 젊은이들 중에는 공주병, 왕자병에 걸린 분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현실적으로 꿈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현실도피적인 착각과 망상에 빠져 있는 심각한 환자들입니다. 이런 개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현실에 적응할 수 없으며 인생의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지 않 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누구든지 큰 꿈을 가질 수 있 고, 하나님 안에서 가진 꿈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현재 형편이 아무리 어렵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가질 때 희 망찬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약소 국가에서 태어난 베드로는 가난한 어부로서 꿈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가 가질 수 있었던 유일한 꿈은 좀더 많은 고기를 잡고, 좀더 큰 배를 장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꿈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갖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의 회복의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하고자 하는 더 큰 꿈과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가정 형편과 인간 조건만 생각하면 큰 꿈을 갖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눈 앞에 닥친 어려운 현실만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 으로 10년 후, 20년 후를 바라보고 큰 희망과 꿈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Ⅱ. 노예로 팔려 간 요셉(37:12-36) 12-17절을 보십시오. 당시 야곱은 헤브론에 있었고, 형들은 세겜에 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헤브론에서 세겜까지는 95km나 되었습니다. 이렇게 멀리까지 가서 양을 친 것은 헤브론 지방에는 초원이 별로 없 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아들들이 세겜 성 사람들에게 보 복을 당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양을 치는 아 들들과 양들이 잘 있는지 여부를 알아 오도록 요셉을 보냈습니다. 요 셉이 먼 길을 찾아갔으나 형들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형들 이 다른 곳으로 옮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포기하지 않았 습니다. 사람들에게 물어서 마침내 도단에 가서 형들을 만났습니다. 세겜에서 도단까지는 24km나 되었습니다. 요셉은 심부름시킨 아버지에 대한 충성심과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으로 맡겨진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그런데 18절을 보십시오. 형들은 요셉이 오는 것을 멀리서 보고 그 를 죽이기를 꾀하였습니다.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다 하 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19,20)." 요셉을 가리켜 꿈 꾸는 자가 온다고 했습니다. 이를 볼 때 형들이 요셉이 꾼 꿈 때문에, 그리고 그 꿈을 자기들에게 이야기한 요셉에 대한 시기심 때문에 그 마음에 미움이 가득 하였습니다. 미움이 살인을 도모하게 했습니다. 요셉을 살해한 후에 구덩이에 던지고, 그 꿈이 과연 이루어 지는지 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장남 르우벤은 요셉을 죽이는데 반대 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르우벤은 "생명을 상하지 말자피를 흘 리지 말라.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고 그냥 구덩이제 던지자고 제 안했습니다. 르우벤은 그런 후에 요셉을 구원하여 아비에게 돌리기 위 함이었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자 그 형들은 요셉의 옷, 곧 그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졌습니다. 그 구덩이는 빈 것이었으며, 그 속에는 마침 물이 없었습니다(23,2
4). 요셉은 형들 에게 살려달라고 애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형들은 동생의 부르짖는 괴로움을 외면하고, 구덩이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했습니 까 25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둘러앉아 음식을 먹었습니다. 이들은 눈 의 가시와 같았던 요셉의 채색옷을 벗기고 구덩이에 던지고 나니 속이 후련했을 것입니다. 그 때 마침 이스마엘 족속이 약대들에게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이 때 유다가 형 제들에게 제안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 피를 은익한 들 무엇이 유일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 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골육이니라(26,27)" 유다는 굴에서 굶어 죽을 요셉을 생각하니 음식이 넘어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죽이지 말고 멀리 보내 버리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어린 동생을 은 20개를 받고 노예로 팔아 넘겼습니다. 요 셉은 형들에게 애걸하며 살려달라고 했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요셉 은 아버지 심부름 왔다가 졸지에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이 때 요셉의 심정은 얼마나 참담했겠습니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고통과 슬픔과 절망을 느꼈을 것입니다. 요셉은 애굽으로 끌려가 서 다시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려 갔습니다.
29-36절을 보십시오. 르우벤이 돌아와서 구덩이를 보니 요셉이 없었 습니다. 그래서 옷을 찢고 아우들에게 와서 "아이가 없도다. 나는 나는 어디로 갈까" 하며 괴로워하였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은 요셉의 옷 에 염소의 피를 묻혀 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처럼 채색옷을 그 아비에 게 보여 주고, 그것이 요셉의 옷이 아닌가 확인을 시켰습니다(32). 야 곱은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먹었도다. 요셉이 정녕 찢 겼도다."하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 아 들을 위하여 애통하였습니다. 맹수에게 잔인하게 찢겨 죽어 가는 요셉 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라헬을 잃 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요셉마저 잃게 되었으니 그 슬픔이 얼마나 컸 겠습니까 야곱은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위로 받지 아니하고 슬피 울 었습니다(34,35). 형들도 요셉이 없어졌을 때 일시적으로 마음이 후련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버지가 슬퍼하는 모습을 볼 때마 다 동생을 노예로 팔고, 아비를 속이고 있는 죄의식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마다 인과응보적인 생각에 시달리며 괴로워 하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진리를 명 심해야 합니다.
첫째, 시기심이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시기심을 별로 큰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서적 으로 볼 때 가인이 동생 아벨을 처 죽인 죄의 뿌리가 동생 아벨에 대 한 시기심 때문이었습니다(요일 3:12).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악 령에 시달리며 다윗을 죽이려고 한 근본 원인도 다윗에 대한 시기심 때문이었습니다(삼상 18:7,8).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 아 죽인 죄의 뿌리도 시기심 때문이었습니다(막 15:10). 특히 사단은 시기심을 통하여 형제를 이간질하고, 공동체를 파괴하기도 합니다. 결 국 형제를 살인하게 하고, 거짓말하게 합니다. 어거스틴은 로마서 13: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 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라는 말씀을 영접하고 변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기심은 우리 인간의 내면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죄 악입니다. 어린아이들로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깊 은 내면 속에 시기심은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동생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 빼앗고자 합니다. 친구가 장학금을 타면 밥맛이 없어집니다. 할아버지도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픕니다. 목회자도 친구의 교회가 성장하면 기쁨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마음에 시기심이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기심은 모든 인간관계를 파 괴하는 가장 근본적인 죄악입니다. 사람을 분노하게 하고, 음모를 꾸 미게 하고, 악하게 하고, 잔인하게 하고, 무정하게 하고, 속이게 만드는 모든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죄악은 이 시기심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시기심은 영혼을 썩게 하는 죄악이라고 했습니다 (잠 27:4). 야고보 선생은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 요란과 모든 악이 있다고 했습니다(약 3:16). 그러면 이런 시기심에서 벗어나려면 어떻 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시기심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 인 존재의미를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인 존재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평 가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절대적인 존재 가치를 발견할 때 모든 시기심과 경쟁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또 형제의 장점을 깊이 인정하고 배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종의 형체를 취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빌 2:5).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종처럼 섬기고, 적극적으로 축복하는 생활을 할 때 시기심을 이길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꿈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귀공자와 같이 살던 요셉은 하루아침에 비참한 노예가 되어 먼 이방 땅으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의 보이지2 않는 섭리가 숨어 있습니다. 요셉이 꿈이 없었더라면 일생 동안 아비의 사랑을 받으며 편안히 살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큰 인물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요셉을 광야와 같은 세상으로 몰아내셔서 훈련하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우리 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꿈을 가지고 살면 그 꿈 때문에 반드시 많은 갈등이 일어나고, 핍박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께서 이런 핍박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고, 그 연단을 통해 서 꿈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안에서 갖게 된 꿈 때문에 고난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꿈을 이루시는 과정임을 확신하고 꿈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Ⅲ. 보디발의 가정 총무가 된 요셉(38:1-39:23) 38:1-30은 유다가 며느리와 동침하여 쌍둥이를 낳게 된 사건입니다. 유다는 요셉의 일로 너무나 슬퍼하는 아버지와 동생을 판 죄의식 때문에 더 이상 집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집을 떠나 아둘람 사람 히라에게로 나갔습니다.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을 보고 그를 취하여 동침했습니다. 유다는 수아의 딸과 동침하여 엘과 오난과 셀라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맏아들 엘이 다말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엘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셨습니다. 당시는 형이 자식이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맏아들을 형 의 아들로 올려 대를 잇게 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3) 이 관습대로 오 난이 형수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난은 형에게 아들을 얻게 아 니하려고 땅에 설정했습니다.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셨습니다. 그러자 유다는 며느리 다말을 친정으로 돌 려 보내어 수절시켰습니다. 그리고 막내아들 셀라와 장성하였는데도 죽을까봐 염려하여 결혼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다말은 창녀로 위 장하여 시아버지 유다를 유혹하여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문을 듣 고 야곱은 다말을 불태워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말의 기지로 자기의 죄의 열매인 것을 깨닫고 다말을 살려 주었으며, 다말은 쌍둥 이를 낳고 베레스와 세라라 불렀습니다. 이 사건은 요셉 이야기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유다가 가나안 여자를 보고 그를 취하여 동침하였습니다. 이는 야곱의 아들들이 신앙적인 결혼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동시에 가나안의 이방 문화에 물들어 택함 받은 백성으로서의 부르심과 긍지를 잃게 되었음을 말해 줍니다. 유다는 이 민 4세였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3대가 지나가고 이제 4대째가 되었습니다. 가나안 생활에 자리도 잡히고 안정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점차 가나안의 죄악 된 문화와 관습에 젖어 들게 되었습니다. 이는 영적으로 큰 위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유다가 가나안 여 인과 낳은 아들들도 하나님 보실 때 악을 행하여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무서운 경고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가 아내 가 죽자 음욕을 이기지 못하고 창녀와 동침했습니다. 그 결과 며느리 에게서 쌍둥이를 낳는 큰 악을 범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야곱의 가 족들이 가나안에 머물다가는 모두 가나안 사람들에게 동화되어 버릴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야곱 족속을 애굽으로 옮기지 않으면 안될 이유와 요셉이 애굽에 팔려가게 된 배경을 간접적으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다말이 유다에게서 아들을 낳은 사건은 메시야의 족보에 기록되어 있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구속사적인 입장에서는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메시야가 유다 가 며느리와의 낳은 자식을 통해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말해 줍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요셉을 노예로 판 유다의 방탕한 생활과 노예 생활을 하면서도 정결을 지키는 요셉의 삶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애굽으로 끌려간 요셉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39:1절을 보십 시오. 요셉은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려갔습니다. 시위대장 은 요즈음 대통령 비서실장에 해당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디발의 집에 팔려간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요셉은 범사에 형통케 되었습니다
(2). 요셉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신앙 생활을 하는 가운데 좋은 믿음의 영 향력을 끼쳤습니다. 결국 보디발은 요셉의 생활을 보면서 크게 감동을 받고, 그를 가정 총무로 삼았습니다.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 유를 다 맡기고 일체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과 주인에 대한 충성심으로 운명을 극복하고 일어셨습니다. 요셉 이 만일 노예로 팔려가서 형들을 원망하고 신세타령만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날마다 술이나 퍼마시다가 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하나님 안에서 간직한 꿈을 잃지 않았습니다.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범사에 형통케 하셨습니다. 이 삶은 평신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 주는 모범이 됩니다. 우리는 어떤 힘든 환경에 처하더라도 운명을 탓하거나 주위 사람들을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꿈을 갖기 이전보다 더욱 어려운 역경에 처할지 라도 절대로 낙심하거나 자포자기 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해 충성해야 합니다. 꿈을 잃지 않고, 믿음으로 역경을 헤쳐 나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종들에게 말했습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 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 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엡 6:5-8)" 우리 평신도 목자들은 어떤 면에서 시 간제 노예들입니다. 우리가 직장 생활을 눈가림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육체의 상전들을 섬길 때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게서 함께 하시고 놀랍게 축복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요셉에게 큰 유혹의 손길이 뻗쳐 왔습니다. 요셉은 젊고 용 모가 준수하고 아담한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6). 보디발의 처가 요 셉에게 반하여 윙크를 보내 오다가 동침하기를 청해 왔습니다
(7). 이 유혹은 젊은 요셉이 참으로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었습니다. 더구나 그 여자는 주인의 위치에 있습니다. 거절했다가는 지금까지 쌓아 올린 공든 탑이 일시에 무너질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 유혹을 어떻게 뿌리쳤습니까 8,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할 수 없다고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 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 에 위임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 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요 셉은 너무나 분명하게 거절했습니다.
첫째는 주인의 은혜를 절대로 배 반할 수 없다는 것이요,둘째는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이 시험 을 물리쳤습니다. 그러자 10절을 보십시오. 여자는 몸이 달아서 날마 다 요셉에게 동침하기를 청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날마다 거절했으 며, 함께 있지도 않았습니다. 요셉은 유혹의 자리를 적극적으로 피했 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집에 시무하러 들어갔다가 단 둘이 있게 되었습니다. 여자가 요셉의 옷을 잡고 늘어졌습니다. 요셉은 너무 놀 라서 옷을 벗어 던지고 도망을 갔습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그러자 여자는 요셉을 미워하여 요셉이 자기를 겁간코자 하다가 소리를 지르 니 옷을 벗어 놓고 도망갔다고 모함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요셉의 옷을 증거로 내밀었습니다. 보디발은 심히 노하여 요셉을 잡아 옥에 넣았습니다. 결국 요셉은 여자의 유혹을 뿌리치다가 강간 미수죄의 누 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21-23절을 보십시오. 어런 요 셉과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셔서 전옥들에게 은 혜를 받게 하셨습니다. 그래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 기고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게 했습니다. 전옥은 여호와께서 요셉 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고 요셉의 손에 맡긴 것은 무엇이든지 돌아보 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요셉이 얼마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눈에 보이는 사람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젊은 날 에 가장 빠지기 쉬운 정욕 문제를 극복하고 믿음의 순결을 지켰습니다. 젊은 날에 육신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인생을 망치는 분들이 얼 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정욕의 유혹을 이기려면 적극적으로 유혹의 자 리를 피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요셉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고 유지하는 그 일을 가장 중히 여겼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요셉은 참으로 어리석은 자와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요 셉은 가장 지혜로운 자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자 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와 함께 하 십니다. 이런 자를 범사에 형통케 하십니다. 잠시 누명을 쓰기도 하지 만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고 유지하는 그 일을 가장 귀히 여기며 살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와 함께 하시며 최후 승리를 주십니다. 결론적으로 요셉은 하나님 안에서 큰 꿈을 꾸었으나 형들의 시기심 때문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며 보디발의 가정 총무가 되게 하셨습니다. 또한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여자의 유혹을 뿌리쳤으나 억울한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 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돋아나는 시기심과 정욕을 물리치고, 하나님 안에서 큰 꿈을 가지고, 꿈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요셉과 함께 하 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형들의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려간 요셉과 함께 하시고,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고 감옥에 갇힌 요셉과 함께 하신 사건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젊은 나이 게 광풍노도와 같이 몰아닥친 시련들을 믿음으로 극복해 나가는 요셉 의 아름다운 삶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운명과 역 경을 헤쳐 나가는 실제적인 믿음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꿈을 꾸는 요셉 (37:1-11)
1,2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 아비의 우거하던 땅에 거하였을 때 요셉은 이제 17세의 소년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그 아비 의 첩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함께 양을 쳤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 들의 과실(their evil report)을 그 아비에게 고했습니다. 요셉의 형 들이 아비의 양을 속여서 팔아먹기도 하고, 은밀히 여러 가지 비행을 저질렀던 것 같습니다. 요셉은 정의감이 강하여 형들의 불의를 보고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요셉은 정직하고 곧은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시기하거나 형들에 대한 어떤 악의를 가지고 있지도 않 았습니다. 형들의 비행을 과장해서 아비에게 고하지도 않았습니다. 형 들의 비행을 바로잡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했 습니다. 그만큼 요셉은 그 아비 야곱을 깊이 신뢰하고, 순종하는 마음 으로 섬겼습니다. 반면에 야곱은 요셉이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했습니다.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어 입혔 습니다
(3). 채색옷은 알룩달룩한 색동 저고리와 같은 옷이 아닙니다. 소매가 긴 망토와 같은 긴 코트를 말합니다. 이 옷을 입고는 양을 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에 요셉에게 채색옷을 입혔다는 것은 요 셉에게 더 이상 양을 치게 하지 않고, 비서처럼 아비 집에서 아버지를 섬기게 했던 것 같습니다.
2) 이로 인해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여, 그 에게 말을 온순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5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한 일로 형들이 더욱 요셉을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 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7)" 이 말을 들은 형들은 심히 자존심이 상하여 "네가 참으로 우리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는냐"고 말했습니다. 그 리고 그 꿈 자체와 그 말을 인하여 요셉을 더욱 미워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다시 다른 꿈을 꾸고 형들에게와 부모에게 또 꿈 이야기 를 했습니다.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 다(9)." 요셉은 너무나 인상적이고 소망에 넘치는 꿈을 꾸었기 때문에 부형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듣 고 요셉을 꾸짖었습니다.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 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러나 야곱은 요 셉의 그 말을 마음에 담아 두었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요셉에 대한 시 기심이 타올랐습니다. 이상에서 볼 때 요셉은 꿈을 꾸는 청년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꿈에는 반드시 그 사람의 인격과 경험과 삶의 태도가 반영됩니다. 그리므 로 요셉이 형들이 자기에게 절하고, 아버지와 어머니까지 자기에게 절 하는 비전에 넘치는 꿈을 꿨다는 것은 평소에 요셉이 그런 희망적이 삶을 꿈꿔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요셉은 밝고, 긍정 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았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인간적인 입장에서 볼 때 꿈을 갖기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요 셉은 어머니가 4 명이나 되는 복잡한 가정 환경에서 태어났습니다. 10 명이나 되는 이복 형들로부터 많은 미움과 구박을 받으며 자라야 했습니다. 그래서 성격이 비뚤어지고, 운명적인 생각에 시달리기 쉬웠습니다. 또 누나가 강간을 당하고, 형들이 세겜 성 사람들을 무참하게 학 살하는 광경을 목격하였습니다. 더구나 친 어머니가 막내 베냐민을 낳 다가 죽었습니다. 이 때는 베냐민이 겨우 한두 살 정도 되었을 정도였 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꿈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짓눌리지 않고 큰 꿈 과 희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요셉이 이렇게 큰 포부와 비전을 가질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편 145:19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기적인 욕심과 감정에 기초한 꿈은 개꿈에 불과합니다. 요즘 가정에 서 과잉 보호를 받고 자란 신세대 젊은이들 중에는 공주병, 왕자병에 걸린 분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현실적으로 꿈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현실도피적인 착각과 망상에 빠져 있는 심각한 환자들입니다. 이런 개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현실에 적응할 수 없으며 인생의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지 않 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누구든지 큰 꿈을 가질 수 있 고, 하나님 안에서 가진 꿈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현재 형편이 아무리 어렵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가질 때 희 망찬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약소 국가에서 태어난 베드로는 가난한 어부로서 꿈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가 가질 수 있었던 유일한 꿈은 좀더 많은 고기를 잡고, 좀더 큰 배를 장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꿈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갖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의 회복의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하고자 하는 더 큰 꿈과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가정 형편과 인간 조건만 생각하면 큰 꿈을 갖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눈 앞에 닥친 어려운 현실만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 으로 10년 후, 20년 후를 바라보고 큰 희망과 꿈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Ⅱ. 노예로 팔려 간 요셉(37:12-36) 12-17절을 보십시오. 당시 야곱은 헤브론에 있었고, 형들은 세겜에 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헤브론에서 세겜까지는 95km나 되었습니다. 이렇게 멀리까지 가서 양을 친 것은 헤브론 지방에는 초원이 별로 없 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아들들이 세겜 성 사람들에게 보 복을 당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양을 치는 아 들들과 양들이 잘 있는지 여부를 알아 오도록 요셉을 보냈습니다. 요 셉이 먼 길을 찾아갔으나 형들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형들 이 다른 곳으로 옮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포기하지 않았 습니다. 사람들에게 물어서 마침내 도단에 가서 형들을 만났습니다. 세겜에서 도단까지는 24km나 되었습니다. 요셉은 심부름시킨 아버지에 대한 충성심과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으로 맡겨진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그런데 18절을 보십시오. 형들은 요셉이 오는 것을 멀리서 보고 그 를 죽이기를 꾀하였습니다.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다 하 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19,20)." 요셉을 가리켜 꿈 꾸는 자가 온다고 했습니다. 이를 볼 때 형들이 요셉이 꾼 꿈 때문에, 그리고 그 꿈을 자기들에게 이야기한 요셉에 대한 시기심 때문에 그 마음에 미움이 가득 하였습니다. 미움이 살인을 도모하게 했습니다. 요셉을 살해한 후에 구덩이에 던지고, 그 꿈이 과연 이루어 지는지 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장남 르우벤은 요셉을 죽이는데 반대 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르우벤은 "생명을 상하지 말자피를 흘 리지 말라.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고 그냥 구덩이제 던지자고 제 안했습니다. 르우벤은 그런 후에 요셉을 구원하여 아비에게 돌리기 위 함이었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자 그 형들은 요셉의 옷, 곧 그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졌습니다. 그 구덩이는 빈 것이었으며, 그 속에는 마침 물이 없었습니다(23,2
4). 요셉은 형들 에게 살려달라고 애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형들은 동생의 부르짖는 괴로움을 외면하고, 구덩이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했습니 까 25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둘러앉아 음식을 먹었습니다. 이들은 눈 의 가시와 같았던 요셉의 채색옷을 벗기고 구덩이에 던지고 나니 속이 후련했을 것입니다. 그 때 마침 이스마엘 족속이 약대들에게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이 때 유다가 형 제들에게 제안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 피를 은익한 들 무엇이 유일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 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골육이니라(26,27)" 유다는 굴에서 굶어 죽을 요셉을 생각하니 음식이 넘어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죽이지 말고 멀리 보내 버리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어린 동생을 은 20개를 받고 노예로 팔아 넘겼습니다. 요 셉은 형들에게 애걸하며 살려달라고 했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요셉 은 아버지 심부름 왔다가 졸지에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이 때 요셉의 심정은 얼마나 참담했겠습니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고통과 슬픔과 절망을 느꼈을 것입니다. 요셉은 애굽으로 끌려가 서 다시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려 갔습니다.
29-36절을 보십시오. 르우벤이 돌아와서 구덩이를 보니 요셉이 없었 습니다. 그래서 옷을 찢고 아우들에게 와서 "아이가 없도다. 나는 나는 어디로 갈까" 하며 괴로워하였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은 요셉의 옷 에 염소의 피를 묻혀 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처럼 채색옷을 그 아비에 게 보여 주고, 그것이 요셉의 옷이 아닌가 확인을 시켰습니다(32). 야 곱은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먹었도다. 요셉이 정녕 찢 겼도다."하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 아 들을 위하여 애통하였습니다. 맹수에게 잔인하게 찢겨 죽어 가는 요셉 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라헬을 잃 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요셉마저 잃게 되었으니 그 슬픔이 얼마나 컸 겠습니까 야곱은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위로 받지 아니하고 슬피 울 었습니다(34,35). 형들도 요셉이 없어졌을 때 일시적으로 마음이 후련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버지가 슬퍼하는 모습을 볼 때마 다 동생을 노예로 팔고, 아비를 속이고 있는 죄의식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마다 인과응보적인 생각에 시달리며 괴로워 하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진리를 명 심해야 합니다.
첫째, 시기심이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시기심을 별로 큰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서적 으로 볼 때 가인이 동생 아벨을 처 죽인 죄의 뿌리가 동생 아벨에 대 한 시기심 때문이었습니다(요일 3:12).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악 령에 시달리며 다윗을 죽이려고 한 근본 원인도 다윗에 대한 시기심 때문이었습니다(삼상 18:7,8).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 아 죽인 죄의 뿌리도 시기심 때문이었습니다(막 15:10). 특히 사단은 시기심을 통하여 형제를 이간질하고, 공동체를 파괴하기도 합니다. 결 국 형제를 살인하게 하고, 거짓말하게 합니다. 어거스틴은 로마서 13: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 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라는 말씀을 영접하고 변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기심은 우리 인간의 내면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죄 악입니다. 어린아이들로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깊 은 내면 속에 시기심은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동생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 빼앗고자 합니다. 친구가 장학금을 타면 밥맛이 없어집니다. 할아버지도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픕니다. 목회자도 친구의 교회가 성장하면 기쁨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마음에 시기심이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기심은 모든 인간관계를 파 괴하는 가장 근본적인 죄악입니다. 사람을 분노하게 하고, 음모를 꾸 미게 하고, 악하게 하고, 잔인하게 하고, 무정하게 하고, 속이게 만드는 모든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죄악은 이 시기심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시기심은 영혼을 썩게 하는 죄악이라고 했습니다 (잠 27:4). 야고보 선생은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 요란과 모든 악이 있다고 했습니다(약 3:16). 그러면 이런 시기심에서 벗어나려면 어떻 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시기심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 인 존재의미를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인 존재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평 가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절대적인 존재 가치를 발견할 때 모든 시기심과 경쟁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또 형제의 장점을 깊이 인정하고 배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종의 형체를 취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빌 2:5).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종처럼 섬기고, 적극적으로 축복하는 생활을 할 때 시기심을 이길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꿈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귀공자와 같이 살던 요셉은 하루아침에 비참한 노예가 되어 먼 이방 땅으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의 보이지2 않는 섭리가 숨어 있습니다. 요셉이 꿈이 없었더라면 일생 동안 아비의 사랑을 받으며 편안히 살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큰 인물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요셉을 광야와 같은 세상으로 몰아내셔서 훈련하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우리 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꿈을 가지고 살면 그 꿈 때문에 반드시 많은 갈등이 일어나고, 핍박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께서 이런 핍박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고, 그 연단을 통해 서 꿈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안에서 갖게 된 꿈 때문에 고난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꿈을 이루시는 과정임을 확신하고 꿈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Ⅲ. 보디발의 가정 총무가 된 요셉(38:1-39:23) 38:1-30은 유다가 며느리와 동침하여 쌍둥이를 낳게 된 사건입니다. 유다는 요셉의 일로 너무나 슬퍼하는 아버지와 동생을 판 죄의식 때문에 더 이상 집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집을 떠나 아둘람 사람 히라에게로 나갔습니다.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을 보고 그를 취하여 동침했습니다. 유다는 수아의 딸과 동침하여 엘과 오난과 셀라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맏아들 엘이 다말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엘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셨습니다. 당시는 형이 자식이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맏아들을 형 의 아들로 올려 대를 잇게 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3) 이 관습대로 오 난이 형수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난은 형에게 아들을 얻게 아 니하려고 땅에 설정했습니다.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셨습니다. 그러자 유다는 며느리 다말을 친정으로 돌 려 보내어 수절시켰습니다. 그리고 막내아들 셀라와 장성하였는데도 죽을까봐 염려하여 결혼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다말은 창녀로 위 장하여 시아버지 유다를 유혹하여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문을 듣 고 야곱은 다말을 불태워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말의 기지로 자기의 죄의 열매인 것을 깨닫고 다말을 살려 주었으며, 다말은 쌍둥 이를 낳고 베레스와 세라라 불렀습니다. 이 사건은 요셉 이야기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유다가 가나안 여자를 보고 그를 취하여 동침하였습니다. 이는 야곱의 아들들이 신앙적인 결혼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동시에 가나안의 이방 문화에 물들어 택함 받은 백성으로서의 부르심과 긍지를 잃게 되었음을 말해 줍니다. 유다는 이 민 4세였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3대가 지나가고 이제 4대째가 되었습니다. 가나안 생활에 자리도 잡히고 안정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점차 가나안의 죄악 된 문화와 관습에 젖어 들게 되었습니다. 이는 영적으로 큰 위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유다가 가나안 여 인과 낳은 아들들도 하나님 보실 때 악을 행하여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무서운 경고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가 아내 가 죽자 음욕을 이기지 못하고 창녀와 동침했습니다. 그 결과 며느리 에게서 쌍둥이를 낳는 큰 악을 범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야곱의 가 족들이 가나안에 머물다가는 모두 가나안 사람들에게 동화되어 버릴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야곱 족속을 애굽으로 옮기지 않으면 안될 이유와 요셉이 애굽에 팔려가게 된 배경을 간접적으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다말이 유다에게서 아들을 낳은 사건은 메시야의 족보에 기록되어 있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구속사적인 입장에서는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메시야가 유다 가 며느리와의 낳은 자식을 통해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말해 줍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요셉을 노예로 판 유다의 방탕한 생활과 노예 생활을 하면서도 정결을 지키는 요셉의 삶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애굽으로 끌려간 요셉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39:1절을 보십 시오. 요셉은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려갔습니다. 시위대장 은 요즈음 대통령 비서실장에 해당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디발의 집에 팔려간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요셉은 범사에 형통케 되었습니다
(2). 요셉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신앙 생활을 하는 가운데 좋은 믿음의 영 향력을 끼쳤습니다. 결국 보디발은 요셉의 생활을 보면서 크게 감동을 받고, 그를 가정 총무로 삼았습니다.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 유를 다 맡기고 일체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과 주인에 대한 충성심으로 운명을 극복하고 일어셨습니다. 요셉 이 만일 노예로 팔려가서 형들을 원망하고 신세타령만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날마다 술이나 퍼마시다가 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하나님 안에서 간직한 꿈을 잃지 않았습니다.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범사에 형통케 하셨습니다. 이 삶은 평신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 주는 모범이 됩니다. 우리는 어떤 힘든 환경에 처하더라도 운명을 탓하거나 주위 사람들을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꿈을 갖기 이전보다 더욱 어려운 역경에 처할지 라도 절대로 낙심하거나 자포자기 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해 충성해야 합니다. 꿈을 잃지 않고, 믿음으로 역경을 헤쳐 나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종들에게 말했습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 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 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엡 6:5-8)" 우리 평신도 목자들은 어떤 면에서 시 간제 노예들입니다. 우리가 직장 생활을 눈가림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육체의 상전들을 섬길 때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게서 함께 하시고 놀랍게 축복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요셉에게 큰 유혹의 손길이 뻗쳐 왔습니다. 요셉은 젊고 용 모가 준수하고 아담한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6). 보디발의 처가 요 셉에게 반하여 윙크를 보내 오다가 동침하기를 청해 왔습니다
(7). 이 유혹은 젊은 요셉이 참으로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었습니다. 더구나 그 여자는 주인의 위치에 있습니다. 거절했다가는 지금까지 쌓아 올린 공든 탑이 일시에 무너질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 유혹을 어떻게 뿌리쳤습니까 8,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할 수 없다고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 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 에 위임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 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요 셉은 너무나 분명하게 거절했습니다.
첫째는 주인의 은혜를 절대로 배 반할 수 없다는 것이요,둘째는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이 시험 을 물리쳤습니다. 그러자 10절을 보십시오. 여자는 몸이 달아서 날마 다 요셉에게 동침하기를 청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날마다 거절했으 며, 함께 있지도 않았습니다. 요셉은 유혹의 자리를 적극적으로 피했 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집에 시무하러 들어갔다가 단 둘이 있게 되었습니다. 여자가 요셉의 옷을 잡고 늘어졌습니다. 요셉은 너무 놀 라서 옷을 벗어 던지고 도망을 갔습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그러자 여자는 요셉을 미워하여 요셉이 자기를 겁간코자 하다가 소리를 지르 니 옷을 벗어 놓고 도망갔다고 모함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요셉의 옷을 증거로 내밀었습니다. 보디발은 심히 노하여 요셉을 잡아 옥에 넣았습니다. 결국 요셉은 여자의 유혹을 뿌리치다가 강간 미수죄의 누 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21-23절을 보십시오. 어런 요 셉과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셔서 전옥들에게 은 혜를 받게 하셨습니다. 그래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 기고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게 했습니다. 전옥은 여호와께서 요셉 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고 요셉의 손에 맡긴 것은 무엇이든지 돌아보 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요셉이 얼마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눈에 보이는 사람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젊은 날 에 가장 빠지기 쉬운 정욕 문제를 극복하고 믿음의 순결을 지켰습니다. 젊은 날에 육신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인생을 망치는 분들이 얼 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정욕의 유혹을 이기려면 적극적으로 유혹의 자 리를 피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요셉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고 유지하는 그 일을 가장 중히 여겼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요셉은 참으로 어리석은 자와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요 셉은 가장 지혜로운 자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자 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와 함께 하 십니다. 이런 자를 범사에 형통케 하십니다. 잠시 누명을 쓰기도 하지 만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고 유지하는 그 일을 가장 귀히 여기며 살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와 함께 하시며 최후 승리를 주십니다. 결론적으로 요셉은 하나님 안에서 큰 꿈을 꾸었으나 형들의 시기심 때문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며 보디발의 가정 총무가 되게 하셨습니다. 또한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여자의 유혹을 뿌리쳤으나 억울한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 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돋아나는 시기심과 정욕을 물리치고, 하나님 안에서 큰 꿈을 가지고, 꿈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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