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요셉 (창39:20-40:23)
본문
오래 전에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는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지 않아서 어떤 내용인지 잘 알지 못하지만 오늘 말씀 준비하기 위해서 요셉의 인생을 살피다 보니 문득 이 영화제목이 생각났습니다. 추락하는 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는 영화제목을 보고 그거야 당연하지 추락하는데 어떻게 날개가 있을 수 있담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요셉의 생애를 살피다 보니 바로 요셉의 인생이 그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날개를 잃은 새처럼 한없이 한없이 추락을 하고 있는 것이 요셉이었습니다. 처음 창 세기에 요셉이 모습을 드러낼 때는 참 멋졌습니다. 지난 시간 말씀을 드린 것처럼 성경이 말하는 3대 미남에 뽑 힐만한 훌륭한 외모에 멋진 채색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 닙니다. 그는 남다른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곡식 단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꾸기도 했고 또 때로는 열 한 별과 해와 달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이런 요셉이 어느 날 갑자기 곤두박질하기 시작을 합니다. 처음에는 그 찬란했던 채색옷이 벗겨진 체 구덩이로 곤두박질을 하더니 끝없이, 끝없이 바닥을 향해 곤 두박질해 갑니다. 인간 이하의 삶인 노예로 전락하더니 이제는 죄인으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이런 기구한 운명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인생은 바닥을 향해 추락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정말 제수 없는 사나이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미국 땅에 한 제수 없는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아버지가 세 번씩이나 바뀌는 슬픔 속에서 아 버지로부터 또 때로는 배 다른 형제들로부터 또 어머니로부터 무시되고 방치된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누구 하 나 그를 따뜻하게 맞이하고 살펴준 사람이라곤 없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학교엘 들어갔습니다. 그는 우수한 머리를 가졌지만 늘 친구들과 싸움을 하는 덕에 불량학생으로 지목 당했으며 결국 고등학교 3학 년 때 학교를 자퇴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결심을 하고 군대에 입대를 했지만 거기서도 동료들과 의 싸움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상관에게 대들게 되었고 이로 인해 명령 불복종으로 군법회의에 회부되 어 결국 군대에서조차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또 다시 새로운 결심을 하고 소련엘 갔습니다. 그러나 소련에서도 그를 환영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거절된 아픔을 안고 전전긍긍 떠 돌아다니다가 배경이 확실치 못한 여인과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내에게서도 무능력한 사람으로 낙인찍혀 경멸 과 조롱을 받습니다. 미국에 다시 돌아온 어느 날 그의 아내는 놀러온 자기 친구들 앞에서 그에게 말할 수 없는 모욕과 경멸을 퍼부었 습니다.
마침내 그는 자기 인생에 대한 모든 꿈과 희망을 완전히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를 이해 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누구도 나에게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끌기 위해서 1963년 11월 22일 그는 배달된 소총을 꺼내어 그가 가장 최근에 취직해 있었던 직장의 서적 보관 창고의 맨 꼭대기 층에 올라갔습니다. 마침 그 아래를 지나가고 있는 한 인물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 세계를 경악하게 했던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최후였으며 바로 이 사연의 주인공이 리 하비 오스왈드라는 청년입니다. 결국 그는 이틀 뒤 감옥으로 호송되던 중 케네디의 열렬한 펜이었던 루비에게 저격 당해 죽음을 맛 보고 말았습니다. 정말 억세게 제수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 청년의 모습과 요셉의 모습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두 사람 다 날개 없이 추락하는 인생을 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에게는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오스왈드는 자신에게 찾아 온 불행을 부정적으로 반응을 한 반면 요셉은 긍정적으로 반응을 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두 인생을 전혀 다르 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오스왈드는 세상을 경악하게 하고 총에 맞아 죽는 운명이 된 반면 요셉은 애굽의 총리대 신이 되어 자기 민족을 구출할 수 있는 민족의 영웅이 되었던 것입니다. 무엇이 이 두 사람의 인생을 이토록 다르게 만들었을까요 그렇습니다. 긍정적인 삶의 자세와 부정적인 삶의 자세가 이 두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요셉, 그는 한 번도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거나 원망한 적이 없습니다. 요셉이 구덩이에 빠질 때나 애굽으로 팔려 갈 때나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가 되었을 때나 감옥에 갇혔을 때 창세기는 항상 요셉의 반응에 대해서 무반응으로 기록을 해 놓고 있습니다. 욀까요 그렇습니다. 요셉은 이런 순 간에 한 번도 자신에게 다가온 이런 환경들에 대해서 원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런 환경들을 침묵하면서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살피려고 애를 썼던 것입니다. 이런 요셉의 자세, 참으로 우리들이 본받을만한 자세라 생각이 됩니다. 우리들은 조그마한 시험이 와도 금방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어제의 멋진 신앙인이 오늘의 불평자가 되고 맙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무엇 때문에 어 제의 감사가 오늘에 와서 불평으로 바뀝니까 한 번 들어보십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쉽게 바뀌어 버립 니까 요셉처럼 팔려 가는 신세라도 됐단 말입니까 감옥에라도 갇혔습니까 그래서 감사가 사라지고 원망이 생 기는 것입니까 한 번 곰곰이 여러분들이 쉽게 감사를 포기하고 원망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거세게 시련의 바람이 불고 있는데도 그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한 번 찾아보 십시오. 요셉의 인생가운데 원망하고 불평한 곳이 한 군데라도 있나를 요. 심지어 요셉은 자신을 팔아버린 형님 들을 만나서도 원망하지 않고 이렇게 말합니다. (창 45:5) 당신들이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 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얼마나 멋진 모습입니까 이게 신 앙인의 모습입니다. 원망과 불평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살피기 위해 침묵하는 것 이것이 신앙인의 모습이어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려움을 당할 때 너무 쉽게 입을 열지 마십시오. 너무 쉽게 낙망하지 마십시오. 오히 려 하나님의 뜻을 살피면서 기다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왜 내게 이런 고난을 주실까 살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응답하실 것입니다. 요셉의 확신
그렇다면 요셉이 이렇게 어려움 가운데서 원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 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이 요셉에 이런 확신을 했다는 기록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공통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 기록을 통하여 요셉이 충분히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과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의 미래는 불투명한 것입니다. 장래 어떻게 될 지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한 가지 확신하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요셉을 흔들리지 않게 했습니다. 어떤 바람이 불고 풍랑이 불어온다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도 요셉처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그 함께 하심이 어 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간혹 입으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성도들의 고백을 듣습니다. 이런 고백을 들을 때면 내 자신이 목사라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지요.
그런데 바로 뒤돌아 서자 마자 원망과 불평을 내뱉는 것을 볼 때면 얼마나 낭패스러운지요. 요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 때문에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그 바람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섭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은 입만으로 고백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삶으로 고백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야고보의 주장이었습니다. (약 2:14-18)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 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 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야고보가 믿음을 보여보라고 요구하고 있는 데 여러분은 야 고보의 이 요구에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무엇을 드러내 보이시겠습니까 옥에 갇힌 요셉 이런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요셉의 믿음이 잘 어우러진 본문이 오늘 본문의 39:20-23절 말씀입니다. 함께 20-23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 20절 마지막이 어떻게 기록하고 있죠 요셉이 옥에 갇 혔으나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이 무엇 때문에 옥에 갇혔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득죄 할 수 없다고 자신을 지킨 결과입니다. 신앙의 순결을 유지한 결과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순결을 유지한 결 과가 이런 것이라면 너무 보잘 것이 없는 것 아닙니까 요셉이 신앙을 잘 지켰으니 박수라도 보내야 하는 것 아 닙니까 상이라도 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런 요셉에게 상을 주어야 우리들도 이런 성경구절을 읽고 야 신앙 을 지키니 이런 상도 받구나 하고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 보려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요셉에게 무엇을 줍니까 그렇습니다. 차갑고 싸늘한 감옥을 줍니다. 끈끈하고 축축한 감옥을 줍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여기에 어떻게 반응을 합니까 역시 요셉의 반응은 기록되고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도 침묵 하죠. 그리고 곧 이어 21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이 이야기가 여러분 들의 이야기라면 21절이 어떻게 기록되어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처럼 기록되어 있겠습니까 아니면 아무개가 옥 에 갇히고 원망과 한숨으로 세월을 보냈더라 이렇게 기록되지는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의 생애는 그렇게 기록되고 있지 않습니다.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고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 가운데 어디 요셉의 불평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는 여기서 이렇게 침묵하고 하나님의 뜻을 잠잠히 바랐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여기서도 함께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예, 인자를 더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간수 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옥중의 모든 사무를 요셉에게 맡기고 자신은 일절 이 일 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다시 그는 총무가 된 것입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총무가 되었던 요셉이 옥중에서도 총무 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를 무엇이라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이라 고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요셉은 다시 형통한 사람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환경과 상관없는 요셉 이렇게 보면 요셉은 환경과 상관없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가 되었고 또 환경과 관계없이 형통한 자가 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는 보디발의 집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한 자 였습니다. 또 형통한 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감옥에서도 그는 하나님과 함께 한 자였고 또 형통한 자 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우연히 하나님과 함께 한 자가 되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다 운이 좋아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어떤 환경이든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종종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제대롭게 하지 못하는 이유를 환경 탓으로 돌리는 경우를 봅니다. 경제적인 사정이 어떻고 집안 사정이 어떻고 직장 사정이 어떠해서 신앙생활을 제대롭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좀 개선이 되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 한 믿음 환경과 관계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바로 나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지지 않기 때문에 물질에 넘어지기도 하고 가정 문제에 넘어지기도 하고 직장 문제에 넘어지기도 합니다. 나만 바로 서 있으면 이런 것들 이 어떠하든지 관계가 없습니다. 이것이 요셉의 믿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저는 우리 사랑하는 모든 교우들이 이런 요셉이 믿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분들이 되십시오. 그래서 형 통한 사람으로 불려 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셉이 감옥에 갇혀 버렸다. 요셉이 옥에 갇혀 버렸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보여주신 꿈은 어 떻게 되죠 곡식단들이 머리를 숙이는 11별들과 해와 달이 고개를 숙이는 이 꿈은 어떻게 되죠 우리는 이 사건 전말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 별 다른 궁금증을 가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이 사건 의 전말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요셉이 갇히는데 까지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요셉이 옥에 갇혔다는 사실 앞에서 많 은 당혹 감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어떻게 되는가 요셉은 자신이 꾼 꿈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갇혔다는 것은 언뜻 보기에는 점점 요셉이 점점 꿈과 멀어지는 것처럼 보여 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어떻습니까 그렇습니다. 사실 은 요셉이 점점 요셉이 꾼 꿈과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죠. 세상 적인 관점에서는 요셉이 처음 구덩이에 빠졌을 때 이 꿈으로부터 멀어지기를 시작하더니만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셈입니다. 요셉이 구덩이에 빠질 때부터 요셉은 꿈에 한 발자국씩 한 발자국씩 가까워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의 꿈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 자 그러면 오늘 본문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요셉을 꿈으로 가까이 데리고 가시는가를 살펴 볼 수 있기 를 바랍니다. 40장 1절을 봅니다. . 어떻습니까 이 구절을 읽으시면서 직감적으로 뭐 느껴지는 것 이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의 꿈을 이루시기 위해서 드디어 구체적으로 움직이시고 계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기 이 1절에 소개되고 있는 두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한 사람은 왕의 술 맡은 자고, 다 른 한 사람은 떡 굽는 자입니다. 이 두 사람은 당시 상당한 실력자였습니다. 당시에는 자주 왕에 대한 암살이 있 었기 때문에 왕의 음식을 맡는 사람은 왕이 제일 믿을만한 사람으로 택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왕과 한 식탁 에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왕의 말동무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들은 실세 중에 실세라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들 중 한 사람이 나중에 요셉을 바로 왕에게 인도를 하게 됩니다. 누구죠 그렇습니다. 술 맡은 자 입니다.
그런데 3절 말씀을 보십시다. 이들이 옥에 갇히게 되는데 어디에 갇혔다고 말하고 있습 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그 감옥, 요셉이 갇힌 그 감옥에 갇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3절을 다시 한 번 주의해서 읽어보십시다. 성경 저자가 어디엔가 힘을 주어 말하고 있죠 어디입니까 그렇습니다. 곧 이라는 말입니다. 즉, 요셉이 갇힌 바로 그 곳이라는 말이죠.
그렇다면 누가 이들을 이 감옥으로 보냈습니까 바로가 들으면 서운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요셉을 꿈에 가까이 접 근시키기 위해서 이들은 이곳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수종드는 요셉 하나님의 이런 작업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4절 말씀을 보십시다. .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 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요셉으로 하여금 이 사람들을 수종들게 했다는 것입니다. 왜죠 그렇습니다. 꿈을 향해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즉, 자신을 바로 왕과 연결시켜 줄 술 맡은 장관 과 연결시키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술 맡은 장관에게로 바짝 가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요셉의 입장을 잠시 생각하고 넘어가도록 하십시다. 요셉의 입장에서 어쩌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 저를 감옥에 쳐 넣으시더니 이제 그것도 모자라 죄인들을 수종들게 하십니까
그렇다면 제 꿈은 어떻게 됩니까 하고 하나님께 항변을 할 수 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전체 적인 문맥을 살펴 볼 때 이 두 사람을 정성을 다해 섬긴 것처럼 보여 집니다. 심지어는 저들의 안색까지 살 펴서 섬길 정도가 되었습니다. 만약 여기서 요셉이 이들을 섬기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성실치 못하게 이들 을 섬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렇습니다. 꿈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가운데서 최선을 다합니다. 물론 요셉은 이것이 자신의 꿈을 이룰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상황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 줄 알고 원망하지 않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합니다. 죄인을 섬기는 일, 얼마나 하찮은 것입니까 얼마나 보잘 것이 없는 일입니까 그러나 이 일이 비록 작고 보잘 것이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연연하지 않고 그 일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일인 줄 알고 최선을 다합니다. 이것이 요셉을 요셉 되게 했던 일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요셉의 모습은 우리들에게 귀한 본이 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름이 드러나고 영광을 얻는 일에는 최선을 다하지만 작고 하잘 것이 없어 보이는 일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를 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삶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작은 일에 충성된 자가 큰 일에도 충성되다 고요. 이 말이 사실인 것 같아 저도 이 원리를 종종 사용합니다. 좀 죄송한 이야기 같지만 저는 사람을 큰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작고 보잘 것이 없는 일로 평가를 합니다. 큰 일은 누구나 잘 할 수 있지만 작은 일은 누구나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작은 일은 소홀히 하면서 큰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문제를 야기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을 평가할 때 평소 그가 어떤 일을 즐겨 하는가를 살핍니다. 작은 일을 큰일처럼 잘 한다는 것 보통 힘든 것이 아닙니다. 요셉과 같이 그 일이 하나님께서 주신 일 인줄 알지 못하면 하기 어려운 일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도 작은 일에 열심을 다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섬세하신 하나님 꿈을 향한 하나님의 움직이심은 계속됩니다. 5절 말씀을 봅니다. . 어떤 일이 일어 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꿈을 꾼 것입니다. 그것도 해석하기 어려운 꿈 을 꾼 것이죠. 여러분 이것도 우연입니까 그렇습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 신이 되는데 이 꿈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가를 잘 알고 게실 것입니다. 바로와 요셉을 연결하고 요셉을 신뢰 하게 되었던 것이 바로 이 꿈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이 꿈도 사실은 하나님께서 꾸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 역시 요셉의 꿈을 이루도록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이라는 것이죠. 저는 오늘 본문을 살피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섬세하게 역사를 하 시는지. 이 어린 소년 요셉의 꿈을 이루어 가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우셔서 이루어 가십니다. 이런 하나님이 요셉에게만 이렇게 역사를 하실 까요 아닙니다. 실은 저와 여러분들을 인도하실 때도 이렇게 역사 하십니다. 저는 제게 일어났던 여러 일들을 보면 정말 그렇다 하고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개척을 할 만한 아무런 능력이 없는 줄 아시고 저를 2년 동안 멀리 부산으로 보내셨습니다. 이것은 제게 아 무런 연고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아니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주도 면밀하게 저를 부산에 보내시더 니 장년 사역에 대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게 하시고 그곳 성도들을 저의 후원자로 삼으셔서 저를 다시 이곳으 로 올려 보내 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섬세하심이 계셨기에 우리 사랑하는교회가 여기에 있는 것 아닙니까 이 런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도 그렇게 역사 하십니다.
그러므로 조급해 하지 마십시오. 때로 하나님의 뜻이 이 해되지 않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뜻이 다 이해되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해되지 않았을 것 입니다. 그러나 그는 묵묵히 하나님의 뜻을 따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 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내놓고 보니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하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저와 우리 사랑하는 교회의 미래를 봅니다. 이것 역시 지금은 불투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것만큼 최선을 다해 따 라가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그 무엇인가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기대하면서 주님을 따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묵묵히 주님을 따라가 보십시다. 지금은 불투명하고 잘 이해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의 인생도 하나님께서 섬세하게 준비하고 계신다는 믿음을 갖고 묵묵히 순종하며 따라가 보십시다. 잊혀진 요셉 그러나 이런 요셉에게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0-23절을 읽습니다. . 어떤 문제가 생깁니까 그렇습니다. 요셉이 해석 한 대로 술 맡은 사람은 풀려나고 떡 굽는 사람은 죽음을 맛보지만 술 맡은 관원이 요셉을 잊었다는 것입니다. 41장에 가보면 그 기간을 2년이라고 소개를 해 놓고 있습니다. 요셉의 꿈을 향해 달려가던 모든 것이 갑자기 멈추어 버리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광명의 세계를 향하여 달려가던 열차가 갑자기 어두운 터널 안에서 멈추어 버리는 것 같은 순간입니다. 이제 그는 잊혀진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 보이지 않는 그런 요셉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이런 세월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오늘 본문은 이 부분에 대해서 무어라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요셉이 이 기간을 어떻게 보냈으리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때의 요셉에 대해서 시편 105:17-19은 한 사람 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 여기서 요셉이 무엇을 했다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단련을 받았다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에게 있어서 이 2년의 세월은 요셉을 더욱 요셉 되게 하는 그런 날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2년 동안 요셉은 어떤 것을 단련 받았을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인내심, 즉 기다리고 참는 것을 가장 많이 달련 받았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 기다림을 믿음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로 꼽고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신약성경이 인내 하고 참는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가를 잘 아시고 계실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 인내가 믿음을 이루는 소중한 덕목이 되기 때문입니다. 잊혀진 요셉 그는 바로 이것을 이 2년이라는 세월 동안 훈련을 받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2년의 세월을 통해 정금같이 단련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잊혀진 세월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소망이 없는 듯이 느껴지는 그런 상황 에서 견디고 기다려야하는 날들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욀까요 그렇습니다. 우리들을 단련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눈에 보이게 드러나는 때도 있지만 모든 것으로부터 격리된 체 이렇게 차가운 감옥 속 에서 기다림의 세월을 보내야함 하는 그런 날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세월이 여러분들에게 다가 올 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담대하십시오. 기다림을 훈련하십시오. 참고 기다리십시오. 이런 기다림의 세월이 여러분들을 더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불후의 명작인 천로역정을 잘 아실 것입니다. 이 천로역정이 어떻게 쓰여지게 된 줄 아십니까 존 번연이 한 번은 애매하게 감옥에 갇힌 적이 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혀서 하나님 저를 이 감옥에 들어오게 하신 뜻이 무엇인지요 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하는 중에 영감을 받고 불후의 명작인 천로역정을 기록하게 됩니다. 존 번연에게 감옥이 없었던들 천로역정이 있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누구에게나 잊혀진 세월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들을 단련하는 세 월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잊혀진 세월들을 만나게 될 때 두려워 말고 당당하게 서서 참고 기다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요셉의 생애를 살피다 보니 바로 요셉의 인생이 그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날개를 잃은 새처럼 한없이 한없이 추락을 하고 있는 것이 요셉이었습니다. 처음 창 세기에 요셉이 모습을 드러낼 때는 참 멋졌습니다. 지난 시간 말씀을 드린 것처럼 성경이 말하는 3대 미남에 뽑 힐만한 훌륭한 외모에 멋진 채색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 닙니다. 그는 남다른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곡식 단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꾸기도 했고 또 때로는 열 한 별과 해와 달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이런 요셉이 어느 날 갑자기 곤두박질하기 시작을 합니다. 처음에는 그 찬란했던 채색옷이 벗겨진 체 구덩이로 곤두박질을 하더니 끝없이, 끝없이 바닥을 향해 곤 두박질해 갑니다. 인간 이하의 삶인 노예로 전락하더니 이제는 죄인으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이런 기구한 운명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인생은 바닥을 향해 추락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정말 제수 없는 사나이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미국 땅에 한 제수 없는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아버지가 세 번씩이나 바뀌는 슬픔 속에서 아 버지로부터 또 때로는 배 다른 형제들로부터 또 어머니로부터 무시되고 방치된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누구 하 나 그를 따뜻하게 맞이하고 살펴준 사람이라곤 없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학교엘 들어갔습니다. 그는 우수한 머리를 가졌지만 늘 친구들과 싸움을 하는 덕에 불량학생으로 지목 당했으며 결국 고등학교 3학 년 때 학교를 자퇴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결심을 하고 군대에 입대를 했지만 거기서도 동료들과 의 싸움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상관에게 대들게 되었고 이로 인해 명령 불복종으로 군법회의에 회부되 어 결국 군대에서조차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또 다시 새로운 결심을 하고 소련엘 갔습니다. 그러나 소련에서도 그를 환영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거절된 아픔을 안고 전전긍긍 떠 돌아다니다가 배경이 확실치 못한 여인과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내에게서도 무능력한 사람으로 낙인찍혀 경멸 과 조롱을 받습니다. 미국에 다시 돌아온 어느 날 그의 아내는 놀러온 자기 친구들 앞에서 그에게 말할 수 없는 모욕과 경멸을 퍼부었 습니다.
마침내 그는 자기 인생에 대한 모든 꿈과 희망을 완전히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를 이해 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누구도 나에게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끌기 위해서 1963년 11월 22일 그는 배달된 소총을 꺼내어 그가 가장 최근에 취직해 있었던 직장의 서적 보관 창고의 맨 꼭대기 층에 올라갔습니다. 마침 그 아래를 지나가고 있는 한 인물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 세계를 경악하게 했던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최후였으며 바로 이 사연의 주인공이 리 하비 오스왈드라는 청년입니다. 결국 그는 이틀 뒤 감옥으로 호송되던 중 케네디의 열렬한 펜이었던 루비에게 저격 당해 죽음을 맛 보고 말았습니다. 정말 억세게 제수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 청년의 모습과 요셉의 모습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두 사람 다 날개 없이 추락하는 인생을 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에게는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오스왈드는 자신에게 찾아 온 불행을 부정적으로 반응을 한 반면 요셉은 긍정적으로 반응을 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두 인생을 전혀 다르 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오스왈드는 세상을 경악하게 하고 총에 맞아 죽는 운명이 된 반면 요셉은 애굽의 총리대 신이 되어 자기 민족을 구출할 수 있는 민족의 영웅이 되었던 것입니다. 무엇이 이 두 사람의 인생을 이토록 다르게 만들었을까요 그렇습니다. 긍정적인 삶의 자세와 부정적인 삶의 자세가 이 두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요셉, 그는 한 번도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거나 원망한 적이 없습니다. 요셉이 구덩이에 빠질 때나 애굽으로 팔려 갈 때나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가 되었을 때나 감옥에 갇혔을 때 창세기는 항상 요셉의 반응에 대해서 무반응으로 기록을 해 놓고 있습니다. 욀까요 그렇습니다. 요셉은 이런 순 간에 한 번도 자신에게 다가온 이런 환경들에 대해서 원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런 환경들을 침묵하면서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살피려고 애를 썼던 것입니다. 이런 요셉의 자세, 참으로 우리들이 본받을만한 자세라 생각이 됩니다. 우리들은 조그마한 시험이 와도 금방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어제의 멋진 신앙인이 오늘의 불평자가 되고 맙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무엇 때문에 어 제의 감사가 오늘에 와서 불평으로 바뀝니까 한 번 들어보십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쉽게 바뀌어 버립 니까 요셉처럼 팔려 가는 신세라도 됐단 말입니까 감옥에라도 갇혔습니까 그래서 감사가 사라지고 원망이 생 기는 것입니까 한 번 곰곰이 여러분들이 쉽게 감사를 포기하고 원망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거세게 시련의 바람이 불고 있는데도 그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한 번 찾아보 십시오. 요셉의 인생가운데 원망하고 불평한 곳이 한 군데라도 있나를 요. 심지어 요셉은 자신을 팔아버린 형님 들을 만나서도 원망하지 않고 이렇게 말합니다. (창 45:5) 당신들이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 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얼마나 멋진 모습입니까 이게 신 앙인의 모습입니다. 원망과 불평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살피기 위해 침묵하는 것 이것이 신앙인의 모습이어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려움을 당할 때 너무 쉽게 입을 열지 마십시오. 너무 쉽게 낙망하지 마십시오. 오히 려 하나님의 뜻을 살피면서 기다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왜 내게 이런 고난을 주실까 살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응답하실 것입니다. 요셉의 확신
그렇다면 요셉이 이렇게 어려움 가운데서 원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 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이 요셉에 이런 확신을 했다는 기록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공통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 기록을 통하여 요셉이 충분히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과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의 미래는 불투명한 것입니다. 장래 어떻게 될 지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한 가지 확신하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요셉을 흔들리지 않게 했습니다. 어떤 바람이 불고 풍랑이 불어온다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도 요셉처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그 함께 하심이 어 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간혹 입으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성도들의 고백을 듣습니다. 이런 고백을 들을 때면 내 자신이 목사라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지요.
그런데 바로 뒤돌아 서자 마자 원망과 불평을 내뱉는 것을 볼 때면 얼마나 낭패스러운지요. 요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 때문에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그 바람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섭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은 입만으로 고백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삶으로 고백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야고보의 주장이었습니다. (약 2:14-18)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 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 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야고보가 믿음을 보여보라고 요구하고 있는 데 여러분은 야 고보의 이 요구에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무엇을 드러내 보이시겠습니까 옥에 갇힌 요셉 이런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요셉의 믿음이 잘 어우러진 본문이 오늘 본문의 39:20-23절 말씀입니다. 함께 20-23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 20절 마지막이 어떻게 기록하고 있죠 요셉이 옥에 갇 혔으나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이 무엇 때문에 옥에 갇혔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득죄 할 수 없다고 자신을 지킨 결과입니다. 신앙의 순결을 유지한 결과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순결을 유지한 결 과가 이런 것이라면 너무 보잘 것이 없는 것 아닙니까 요셉이 신앙을 잘 지켰으니 박수라도 보내야 하는 것 아 닙니까 상이라도 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런 요셉에게 상을 주어야 우리들도 이런 성경구절을 읽고 야 신앙 을 지키니 이런 상도 받구나 하고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 보려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요셉에게 무엇을 줍니까 그렇습니다. 차갑고 싸늘한 감옥을 줍니다. 끈끈하고 축축한 감옥을 줍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여기에 어떻게 반응을 합니까 역시 요셉의 반응은 기록되고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도 침묵 하죠. 그리고 곧 이어 21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이 이야기가 여러분 들의 이야기라면 21절이 어떻게 기록되어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처럼 기록되어 있겠습니까 아니면 아무개가 옥 에 갇히고 원망과 한숨으로 세월을 보냈더라 이렇게 기록되지는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의 생애는 그렇게 기록되고 있지 않습니다.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고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 가운데 어디 요셉의 불평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는 여기서 이렇게 침묵하고 하나님의 뜻을 잠잠히 바랐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여기서도 함께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예, 인자를 더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간수 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옥중의 모든 사무를 요셉에게 맡기고 자신은 일절 이 일 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다시 그는 총무가 된 것입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총무가 되었던 요셉이 옥중에서도 총무 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를 무엇이라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이라 고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요셉은 다시 형통한 사람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환경과 상관없는 요셉 이렇게 보면 요셉은 환경과 상관없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가 되었고 또 환경과 관계없이 형통한 자가 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는 보디발의 집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한 자 였습니다. 또 형통한 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감옥에서도 그는 하나님과 함께 한 자였고 또 형통한 자 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우연히 하나님과 함께 한 자가 되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다 운이 좋아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어떤 환경이든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종종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제대롭게 하지 못하는 이유를 환경 탓으로 돌리는 경우를 봅니다. 경제적인 사정이 어떻고 집안 사정이 어떻고 직장 사정이 어떠해서 신앙생활을 제대롭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좀 개선이 되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 한 믿음 환경과 관계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바로 나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지지 않기 때문에 물질에 넘어지기도 하고 가정 문제에 넘어지기도 하고 직장 문제에 넘어지기도 합니다. 나만 바로 서 있으면 이런 것들 이 어떠하든지 관계가 없습니다. 이것이 요셉의 믿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저는 우리 사랑하는 모든 교우들이 이런 요셉이 믿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분들이 되십시오. 그래서 형 통한 사람으로 불려 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셉이 감옥에 갇혀 버렸다. 요셉이 옥에 갇혀 버렸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보여주신 꿈은 어 떻게 되죠 곡식단들이 머리를 숙이는 11별들과 해와 달이 고개를 숙이는 이 꿈은 어떻게 되죠 우리는 이 사건 전말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 별 다른 궁금증을 가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이 사건 의 전말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요셉이 갇히는데 까지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요셉이 옥에 갇혔다는 사실 앞에서 많 은 당혹 감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어떻게 되는가 요셉은 자신이 꾼 꿈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갇혔다는 것은 언뜻 보기에는 점점 요셉이 점점 꿈과 멀어지는 것처럼 보여 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어떻습니까 그렇습니다. 사실 은 요셉이 점점 요셉이 꾼 꿈과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죠. 세상 적인 관점에서는 요셉이 처음 구덩이에 빠졌을 때 이 꿈으로부터 멀어지기를 시작하더니만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셈입니다. 요셉이 구덩이에 빠질 때부터 요셉은 꿈에 한 발자국씩 한 발자국씩 가까워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의 꿈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 자 그러면 오늘 본문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요셉을 꿈으로 가까이 데리고 가시는가를 살펴 볼 수 있기 를 바랍니다. 40장 1절을 봅니다. . 어떻습니까 이 구절을 읽으시면서 직감적으로 뭐 느껴지는 것 이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의 꿈을 이루시기 위해서 드디어 구체적으로 움직이시고 계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기 이 1절에 소개되고 있는 두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한 사람은 왕의 술 맡은 자고, 다 른 한 사람은 떡 굽는 자입니다. 이 두 사람은 당시 상당한 실력자였습니다. 당시에는 자주 왕에 대한 암살이 있 었기 때문에 왕의 음식을 맡는 사람은 왕이 제일 믿을만한 사람으로 택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왕과 한 식탁 에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왕의 말동무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들은 실세 중에 실세라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들 중 한 사람이 나중에 요셉을 바로 왕에게 인도를 하게 됩니다. 누구죠 그렇습니다. 술 맡은 자 입니다.
그런데 3절 말씀을 보십시다. 이들이 옥에 갇히게 되는데 어디에 갇혔다고 말하고 있습 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그 감옥, 요셉이 갇힌 그 감옥에 갇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3절을 다시 한 번 주의해서 읽어보십시다. 성경 저자가 어디엔가 힘을 주어 말하고 있죠 어디입니까 그렇습니다. 곧 이라는 말입니다. 즉, 요셉이 갇힌 바로 그 곳이라는 말이죠.
그렇다면 누가 이들을 이 감옥으로 보냈습니까 바로가 들으면 서운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요셉을 꿈에 가까이 접 근시키기 위해서 이들은 이곳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수종드는 요셉 하나님의 이런 작업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4절 말씀을 보십시다. .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 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요셉으로 하여금 이 사람들을 수종들게 했다는 것입니다. 왜죠 그렇습니다. 꿈을 향해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즉, 자신을 바로 왕과 연결시켜 줄 술 맡은 장관 과 연결시키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술 맡은 장관에게로 바짝 가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요셉의 입장을 잠시 생각하고 넘어가도록 하십시다. 요셉의 입장에서 어쩌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 저를 감옥에 쳐 넣으시더니 이제 그것도 모자라 죄인들을 수종들게 하십니까
그렇다면 제 꿈은 어떻게 됩니까 하고 하나님께 항변을 할 수 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전체 적인 문맥을 살펴 볼 때 이 두 사람을 정성을 다해 섬긴 것처럼 보여 집니다. 심지어는 저들의 안색까지 살 펴서 섬길 정도가 되었습니다. 만약 여기서 요셉이 이들을 섬기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성실치 못하게 이들 을 섬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렇습니다. 꿈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가운데서 최선을 다합니다. 물론 요셉은 이것이 자신의 꿈을 이룰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상황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 줄 알고 원망하지 않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합니다. 죄인을 섬기는 일, 얼마나 하찮은 것입니까 얼마나 보잘 것이 없는 일입니까 그러나 이 일이 비록 작고 보잘 것이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연연하지 않고 그 일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일인 줄 알고 최선을 다합니다. 이것이 요셉을 요셉 되게 했던 일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요셉의 모습은 우리들에게 귀한 본이 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름이 드러나고 영광을 얻는 일에는 최선을 다하지만 작고 하잘 것이 없어 보이는 일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를 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삶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작은 일에 충성된 자가 큰 일에도 충성되다 고요. 이 말이 사실인 것 같아 저도 이 원리를 종종 사용합니다. 좀 죄송한 이야기 같지만 저는 사람을 큰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작고 보잘 것이 없는 일로 평가를 합니다. 큰 일은 누구나 잘 할 수 있지만 작은 일은 누구나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작은 일은 소홀히 하면서 큰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문제를 야기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을 평가할 때 평소 그가 어떤 일을 즐겨 하는가를 살핍니다. 작은 일을 큰일처럼 잘 한다는 것 보통 힘든 것이 아닙니다. 요셉과 같이 그 일이 하나님께서 주신 일 인줄 알지 못하면 하기 어려운 일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도 작은 일에 열심을 다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섬세하신 하나님 꿈을 향한 하나님의 움직이심은 계속됩니다. 5절 말씀을 봅니다. . 어떤 일이 일어 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꿈을 꾼 것입니다. 그것도 해석하기 어려운 꿈 을 꾼 것이죠. 여러분 이것도 우연입니까 그렇습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 신이 되는데 이 꿈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가를 잘 알고 게실 것입니다. 바로와 요셉을 연결하고 요셉을 신뢰 하게 되었던 것이 바로 이 꿈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이 꿈도 사실은 하나님께서 꾸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 역시 요셉의 꿈을 이루도록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이라는 것이죠. 저는 오늘 본문을 살피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섬세하게 역사를 하 시는지. 이 어린 소년 요셉의 꿈을 이루어 가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우셔서 이루어 가십니다. 이런 하나님이 요셉에게만 이렇게 역사를 하실 까요 아닙니다. 실은 저와 여러분들을 인도하실 때도 이렇게 역사 하십니다. 저는 제게 일어났던 여러 일들을 보면 정말 그렇다 하고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개척을 할 만한 아무런 능력이 없는 줄 아시고 저를 2년 동안 멀리 부산으로 보내셨습니다. 이것은 제게 아 무런 연고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아니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주도 면밀하게 저를 부산에 보내시더 니 장년 사역에 대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게 하시고 그곳 성도들을 저의 후원자로 삼으셔서 저를 다시 이곳으 로 올려 보내 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섬세하심이 계셨기에 우리 사랑하는교회가 여기에 있는 것 아닙니까 이 런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도 그렇게 역사 하십니다.
그러므로 조급해 하지 마십시오. 때로 하나님의 뜻이 이 해되지 않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뜻이 다 이해되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해되지 않았을 것 입니다. 그러나 그는 묵묵히 하나님의 뜻을 따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 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내놓고 보니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하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저와 우리 사랑하는 교회의 미래를 봅니다. 이것 역시 지금은 불투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것만큼 최선을 다해 따 라가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그 무엇인가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기대하면서 주님을 따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묵묵히 주님을 따라가 보십시다. 지금은 불투명하고 잘 이해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의 인생도 하나님께서 섬세하게 준비하고 계신다는 믿음을 갖고 묵묵히 순종하며 따라가 보십시다. 잊혀진 요셉 그러나 이런 요셉에게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0-23절을 읽습니다. . 어떤 문제가 생깁니까 그렇습니다. 요셉이 해석 한 대로 술 맡은 사람은 풀려나고 떡 굽는 사람은 죽음을 맛보지만 술 맡은 관원이 요셉을 잊었다는 것입니다. 41장에 가보면 그 기간을 2년이라고 소개를 해 놓고 있습니다. 요셉의 꿈을 향해 달려가던 모든 것이 갑자기 멈추어 버리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광명의 세계를 향하여 달려가던 열차가 갑자기 어두운 터널 안에서 멈추어 버리는 것 같은 순간입니다. 이제 그는 잊혀진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 보이지 않는 그런 요셉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이런 세월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오늘 본문은 이 부분에 대해서 무어라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요셉이 이 기간을 어떻게 보냈으리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때의 요셉에 대해서 시편 105:17-19은 한 사람 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 여기서 요셉이 무엇을 했다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단련을 받았다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에게 있어서 이 2년의 세월은 요셉을 더욱 요셉 되게 하는 그런 날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2년 동안 요셉은 어떤 것을 단련 받았을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인내심, 즉 기다리고 참는 것을 가장 많이 달련 받았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 기다림을 믿음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로 꼽고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신약성경이 인내 하고 참는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가를 잘 아시고 계실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 인내가 믿음을 이루는 소중한 덕목이 되기 때문입니다. 잊혀진 요셉 그는 바로 이것을 이 2년이라는 세월 동안 훈련을 받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2년의 세월을 통해 정금같이 단련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잊혀진 세월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소망이 없는 듯이 느껴지는 그런 상황 에서 견디고 기다려야하는 날들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욀까요 그렇습니다. 우리들을 단련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눈에 보이게 드러나는 때도 있지만 모든 것으로부터 격리된 체 이렇게 차가운 감옥 속 에서 기다림의 세월을 보내야함 하는 그런 날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세월이 여러분들에게 다가 올 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담대하십시오. 기다림을 훈련하십시오. 참고 기다리십시오. 이런 기다림의 세월이 여러분들을 더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불후의 명작인 천로역정을 잘 아실 것입니다. 이 천로역정이 어떻게 쓰여지게 된 줄 아십니까 존 번연이 한 번은 애매하게 감옥에 갇힌 적이 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혀서 하나님 저를 이 감옥에 들어오게 하신 뜻이 무엇인지요 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하는 중에 영감을 받고 불후의 명작인 천로역정을 기록하게 됩니다. 존 번연에게 감옥이 없었던들 천로역정이 있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누구에게나 잊혀진 세월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들을 단련하는 세 월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잊혀진 세월들을 만나게 될 때 두려워 말고 당당하게 서서 참고 기다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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