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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려 가는 요셉 (창37:12-36)

본문

베드로는 고난받고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한 적이 있습니다. (벧전 5:8,9)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 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베드로가 초대 교회 성도 들을 향해 이렇게 권면하 고 있는데는 그 자신이 깨어 있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단의 밥이 되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자신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 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 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번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가르치신 적이 있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그리 하시지 말 것을 간구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주님께서 베드로를 향해 (막 8:33)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 가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고 꾸짖으신 적이 있습니다. 또 이런 경험 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잡 히시던 날 밤에 주님께서 베드로를 향해 함께 깨어 기도하자고 간곡히 부탁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날 밤 결국 베드로는 한 계집종이 너도 예수와 함께 있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예수 를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역시 사단에게 넘어가 버리고 만 것이죠. 이렇게 베드로는 깨 어 있지 못함으로 사단에게 넘어간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의 전 철을 밟지 않게 하기 위해 서 간곡하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단이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깨어 있으십시오. 근신 하십시오. 이 땅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사단과 싸웠습니다. 여기에는 예외 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사단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십시오. 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일까요 아닙니다. 오고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 되는 말씀입니다. 인류의 조상이었던 아담과 하와에게도 사단은 도전을 했습니다. 육신 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주님께도 사단은 도전을 했습니다. 이 사단의 도전으로부터 면제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종 종 사단의 도전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아니 종종이 아니라 자주 여러분들의 길을 막아 서면서 울부짖는 것을 느끼 실 것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을 넘어뜨리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여 여러분들을 공격하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도 깨어 있지 않으면 이 사단의 도전을 이길 수 없습니다. 깨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지 않으면 우리들도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깨어 있으십시오. 근신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사단의 비웃음 사단이 우리들을 공격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너는 그렇게 할 수 없어, 뭐 네가 믿음으로 살아보겠다고 웃기 지 마라 네 자신을 알아야지 네가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 자 세상을 봐라 세상이 얼마 나 멋지고 화려하니 하면 서 비웃는 일입니다. 처음 이런 비웃음을 들을 때는 눈을 부라리고 아니야 난 할 수 없어도 주님의 힘을 의지하 면 가능해, 난 이길 수 있단 말이야, 사람이 감당할 시험만 주신다고 했어 난 이길 수 있어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단은 우리들이 이렇게 믿음으로 대처함에도 불구하고 도망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우리들을 공격해 옵니다. 더 크게 껄껄대고 비웃습니다. 이렇게 사단의 비웃음이 집요하면 할수 록 우리들은 점점 풀이 죽고 힘이 빠집니다. 그래서 드디어는 사단이 하는 말이 옳다고 느껴지기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힘없는 목소리로 그 래 네 마음대로 해라, 나도 모르겠다 해 버립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순서를 밟는지 모릅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도 이런 함정에 빠진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단의 공격에 난 안 넘어가 하면서 버티다 가 사단이 계속 공격해오자 그만 거기에 넘어가 버린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사단의 작전에 말려 들어가 버린 것입니다. 앞으로는 이런 사단이 전술에 말려들지 않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사단 이 어떤 비웃음으로 우리들 을 공격해 온다 하더라도 당당히 설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형들의 비웃음 오늘 본문에도 이런 사단 적인 비웃음이 있습니다.
한 번 볼까요 19,20절을 읽습니다. . 무엇이 라 말합니까 예,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 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 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 한 이야기입니까 그렇습니다. 요셉의 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꿈은 누가 준 꿈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준 꿈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형들은 그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급기야는 요셉의 꿈을 막아서고 있는 것입니다. 요 셉을 죽여서라도 그 꿈을 막아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말합니다.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보리라 무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네가 죽는데도 꿈이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느냐 어디 네 꿈을 이루어 봐 라 하고 조소를 보내고 있습니다. 어디 너의 꿈이 이루어지나 이루어지지 않나 우리들 이 한 번 지켜보리라고 말 하는 것입니다. 마치 사단이 우리들을 향해서 조소를 보내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는 요셉을 구덩이에 냅다 팽 개쳐 버립니다. 마치 사단이 우리들에게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단도 종종 요셉의 형 들처럼 하지 않습니까 우리들을 조롱하면서 냅다 구렁텅이에 던져 버립니다. 이렇게 사단이 우리들을 조롱하며 내 던질 때 여러분들은 어 떻게 하십니까 사단의 당당함에 믿음으로 맞서십니까 아니면 사단의 당당함으로 인해 혹 기죽지 않습니까 내 가 여기에 빠져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렇다면 여러분 사단이 이렇게 싸움을 걸어 올 때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실 까요 우리들이 이 싸움에서 곳 곳에 상처를 입고 패잔병이 되기까지 가만히 계실까요 우리들이 가진 모든 것들을 다 빼앗기기까지 하나님께서는 모른 척 하실 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계시거나 모른 척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들을 지키 시며 보호하십니다. 아무리 사탄의 포화가 대단하다 하더라도 그 가운데서 우리들을 지키실 것입니다. 우리가 보 기에는 두렵고 무서운 전쟁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 단의 무차별 한 공격이 계 속된다 하더라도 결코 우리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들을 인도하시고 지키실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의 모든 괴계를 박살낼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죠. 우리가 이런 믿음을 가진 다면 누가 우리들을 대적하겠습니까 아무도 우리들을 대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롬 8:31) 그런 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롬 8: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 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 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것이 바울의 믿음이었 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단 의 집중포화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당당하게 신앙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바울이 걸어갔던 바로 이 길이 사실은 우리들이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당하게 서십 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힘있게 여러분들의 신앙의 길을 걸어가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요셉을 향한 이 사단 적인 비웃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대처를 하 실 까요 이제 오늘 본문을 통해 함께 이것을 살펴보면서 사단의 집중포화를 받을 때 우리들이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할 것인가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12절 . 이것 이 야곱에게 상당한 걱정이 되어 졌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13절을 보면 아들들의 안부를 알기 위해서 요셉을 세겜 땅에 보 내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야곱은 아들들을 염려했을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저들이 세겜 땅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겜 땅에서 야곱의 아들들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가를 잘 아실 것입니다. 디나의 강간 사건이 있고 나자 야 곱의 아들들은 혼인을 빙 자해서 세겜 지역에 살고 있는 남자들에게 할례를 받게 했고 이를 틈타 세겜에 있는 사람들을 죽이고 약탈을 했 습니다.
그러므로 세겜 지역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이 야곱의 아들들이 원수와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지역에 다시 가서 양을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 된 야곱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행여나 아들들에게 문제라도 생기면 어떻하나 조바심을 가지 고 기다렸지만 아무런 소 식이 없자 급기야는 사랑하는 아들인 요셉을 보내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하려 합니다. 이런 아버지의 말씀에 요셉은 순종을 하여 세겜 땅으로 갑니다. 그러나 세겜에서 형들 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미 이곳에서 24km나 떨어져 있었던 도단에 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고자 거기까지 형님을 찾아갑니다. 형들의 계략 이렇게 자신들을 찾아오는 요셉을 형님들이 멀리서 발견합니다. 이 때 형님들의 반 응을 한번 보시겠습니다. 18-20말씀을 읽습니다. . 어떻게 하죠 그렇습니다. 죽이기 를 꾀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안부를 묻 고자 오는 동생 요셉을 죽일 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요셉을 죽이고 자 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 까 본문에는 요셉의 꿈 때문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이 꿈은 누가 요셉에게 준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꿈입니다.
그런데 형님들은 이 꿈을 막아서고자 한 것입니다. 이 계획에 대해서 대부분의 형님들이 동의를 한 것처럼 보여집니다. 19절은 이 사실을 서로 이르되 라고 표현을 해 놓고 있습니다. 이 말은 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절대 다수의 의견이 이렇게 모아 졌다는 것 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구동성으로라는 말입니다. 이들은 이렇게 요셉을 죽이는 데 있어서 마음이 하나가 되었 습니다. 여기 서로 이르되 라는 말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 면 이들은 갑자기 요셉을 죽이고자 한 것이 아니라 이미 요셉을 죽이고자하는 마음이 내면 깊숙이 존재하고 있었 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 시 말씀을 드리면 갑자기 요셉을 죽일 생각이 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미 이 시 간이 오기까지 죽이고자 하는 생각이 저들 마음에서 진행되어 왔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전 시간에 살펴보 았던 인사조차 하지 않았더 라고 하는 분위기가 어떤 분위기인가가 분명해 집니다. 예, 이미 이들의 마음속에는 이 때부터 살기에 가득치 있 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에 폭발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 목소리로 자 그를 죽이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들은 말합니다.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보자 르우벤을 통하여 우리는 이 사건의 전말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긴박감을 별로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요 셉의 입장에서 보면 이 상황은 대단히 긴박한 순간입니다. 모두가 요셉을 죽이는 일에 동의를 한 이 순간, 아니 이구동성으로 요셉을 죽이자 하고 했다면 이미 요셉은 죽은목숨이나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만 약 여기서 요셉이 죽는 다면 어떻게 되죠 그렇습니다. 요셉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계획이 무산이 될 수 있는 순간입니다. 바로 이렇게 긴박함이 감도는 순간에 하나님께서 나서십니다. 21,22절을 읽습니다. . 아 마 이 구절을 읽고 저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님 여기 에는 하나님께서 안 계시는데요 이렇게 묻는 분이 계시다면 앞으로 성경을 더 많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직 성경을 보는 눈이 열리지 않았으니까요 제 눈에는 분명 이 구절에서 하나님이 보입니다. 다시 보십시오. 하나님 께서 어떻게 나서시는지를 요. 어떻게 나타나고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르우벤을 통해서 나타나십니다. 르우벤은 동생들이 하는 이야기에 대 해서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아우들을 말리고 있습니다. 무엇이라 이야기하죠 그렇습니다. 구덩이에 던지기는 던지 되 죽이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르우벤의 이 이야기에 대해서 간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르우벤이 어떤 인물이라는 것을 잘 아시고 계실 것입니다. 지난 시간 말씀을 드린 것처 럼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 인 빌하와 동침을 한 사람입니다. 도덕적인 가치관이 땅에 떨어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르우벤이 요셉을 변호하고 나섭니다. 사실 르우벤의 입장에서 보면 요셉은 눈에 가시였을 것입니다. 왠 줄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르우벤이 장자인데 누가 장자의 옷을 입고 다닙니까 그렇습니다. 요셉이 장자의 옷을 입고 다닙니다. 그러니 요 셉이 제일 미운 사람이 바로 르우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르우벤이 어떻 게 합니까 그렇습니다. 요 셉을 변호하고 나섭니다. 여러분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저 우연히 르우벤 이 이렇게 말했다고 생각해 야 할까요 아니면 하나님께서 르우벤의 마음을 움직여 이렇게 했다고 하는 편이 더 나 을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 쪽으로 보아야 합니다. 모두가 입을 맞추는 이 순간에 그것도 도덕적으로 제일 문제 가 되었던 형님, 뿐만 아니 라 가장 적대감정을 가질 수 있는 육적인 장자였던 르우벤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채색 옷을 벗겨서 이 르우벤의 이야기에 아우들이 어떻게 반응하였는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뒤에 다 시 유다가 요셉을 보호하 기 위해서 나서는 것을 보면 르우벤의 이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던 것처럼 보여 집니다. 그래서 결국 요셉은 채색 옷이 벗겨지고 구덩이에 던져지고 맙니다. 23,24절을 읽 습니다. . 여기 서 우리는 요셉이 얼마나 저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무엇이 혐오의 대상이 되 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23절 말씀을 미루어 짐작해 보면 요셉이 입고 있는 채색 옷이 혐오의 대상이 되었던 것처럼 보여 집니다. 이 옷은 무엇의 상징이라고 말씀드렸죠 그렇습니다. 장자 권의 상 징이었습니다. 요셉은 우리 가 아는 것처럼 11번째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장자를 상징하는 옷을 입 고 다니는 것이 마음에 들 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게 이런 옷을 해 입힌 데는 어떤 의미가 있 다고 말씀을 드렸죠 그렇 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영적인 장자로 인정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형 님들에게는 심한 질투심을 불타게 했습니다. 어떻게 11번째 아들이 장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저들 의 마음을 부채질하고 있었 던 것입니다. 더욱이 요셉에게는 특별한 꿈이 있었습니다. 모든 가족이 요셉에게 절하는 그런 꿈이 였죠. 이런 꿈 을 꾸고 이것을 말하고 다니는 요셉이 형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이 요셉 을 죽이도록 미워하게 만 든 것입니다. 결국 시기심이 형제를 살인하게 하는 것으로 발전하고 맙니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의 상징인 요셉의 옷을 벗긴 것입니다. 아마 이들이 옷을 벗기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성경은 이 부 분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지만 20절에 있는 말씀을 미루어 볼 때 역시 20절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하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 이래도 네가 장자냐 이래도 네 꿈이 이루어 질 것 같으냐 하면서 옷을 벗겼을 것입니다. 어쩌 면 이들은 요셉의 옷을 벗기면서 심리적인 카타르시스를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까 지 요셉의 옷을 보면서 쌓 여 있던 모든 체증이 한꺼번에 내려가는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들도 간혹 이 요셉의 형들과 같이 시기심에 불탈 때가 있습니다. 나보다 남이 잘되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나보다 남이 더 인정받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남이 잘 되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박수 를 쳐주는 사람이 참 적습니다. 그 사람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은 쉽게 박수를 쳐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가 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이 일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겉으로는 박수를 치고 웃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내면 세 계에는 질투심이 불탈 때 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모양으로든지 그 시기심을 불태웁니다. 여러분 이 요셉의 형들은 어떻게 그 시기심 을 불태웠습니까 그렇습니다. 요셉의 옷을 벗기고 죽이고자 하는 것으로 불태웠습니다. 옷을 잡아 벗기면서 후련 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구덩이에 집어던지면서 시원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시기심의 포로가 되면 어떤 모양으로 던지 그 시기심을 불태워야 합니다. 그래서 험담을 하기도 하고 비 방을 하기도 합니다. 또 어 떨 때는 치고 받고 싸울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시기심의 포로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여기 에 한 번 사로잡히면 헤어 나오기 참 어렵습니다. 목사들도 이 시기심의 포로가 되니까 무섭더군요. 목사도 치고 받고 하더라구요. 하물며 여러분들이야 어떻겠습니까 더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시 기심의 포로가 되지 않도 록 주의하십시오. 혹 여러분들이 이 시기심의 포로가 되었다고 생각하시면 거기서부터 헤어 나오기 위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도 이 요셉의 형들처럼 무서운 일을 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기심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서 처절한 기도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 없는 구덩이 계속해서 24절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이 구절 에서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것이라 생각되십니까 그렇습니다. 그 구덩이 속에는 물이 없었다는 것 입니다. 이 말은 무엇을 이 야기 해 주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사실은 그 구덩이 속에 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일반 적으로 오늘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구덩이는 물을 저장하는 저수조에 해당하는 것이 었다고 합니다. 당시 이 지 방에는 이런 물을 담는 웅덩이들이 군데군데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셉이 빠진 웅 덩이를 보십시오. 어떻습니 까 그렇습니다. 물이 없는 웅덩이였습니다. 만약 이곳이 물이 있는 웅덩이였다면 어떻 게 될까요 그렇습니다. 요 셉은 거기서 익사를 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요셉이 빠진 이 웅덩 이는 물이 없는 웅덩이였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요셉이 우연히 물이 없는 웅덩이에 빠졌을까요 예, 아닙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 렇다면 무엇이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섭리하심입니다. 하나님의 개입이 있었다는 것 이죠. 즉, 하나님께서 요셉 의 생명을 보호하시기 위해서 물 없는 웅덩이에 요셉을 빠뜨린 것입니다. 요셉이 이 웅 덩이에 빠졌을 때 요셉의 형들은 자신들의 계획이 성공할 줄 알았을 것입니다. 이들 생각에는 실패할 확률 재로 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셔서 이들로부터 요셉을 보호하십니다. 르우 벤을 동원하시더니 이번에는 물 없는 웅덩이를 준비하셔서 요셉을 지키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물론 요셉의 입장에서는 그 웅덩이가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저 위로 둥그렇게 보이는 작은 하늘밖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하심이 감추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들도 얼마든지 웅덩이에 빠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웅덩이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그렇 지 않습니다. 신앙의 인물 들을 보십시오. 웅덩이가 없었던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모세에게도 웅덩이는 있었습니다. 다윗에게도 웅덩이는 있었습니다. 바울에게도 웅덩이는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웅덩이에 빠지는 것 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 자체만을 바라보고 무서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이 비록 웅덩이더 라도 하나님의 역사 하심과 섭리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저가 웅덩 이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물 없는 웅덩이를 준비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이지요.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 요 그렇습니다. 웅덩이에 빠진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요나가 바다에 던져졌던 일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가 바다 밑바닥으로 내 팽게 쳐 질 때 절망적이었을 것입니다. 호흡이 곤란해 져 오고 이제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하나님께서는 물고기를 보내십니다. 그래서 요나를 바른 길로 걸어가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이지요.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이 웅덩이에 빠질 때 그것 자체만을 바라보고 이 제 더 이상 소망이 없다 말씀하시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때 여러분들이 하실 일이 있다면 그 웅덩이 속에서 힘있게 역사 하시며 섭리하 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실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장사꾼과 유다를 통하여 이렇게 동생 요셉을 죽이기 위해서 구덩이에 던져 넣은 형님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 까요 25절을 봅니다. . 무엇을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음식을 먹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24절과 25절은 대조적입니다. 24절 에서 요셉은 어디에 있습니까 예, 구덩이에 빠져있습니다. 25절에 형님들은 어디에 있 습니까 예, 한가로이 음식 을 먹고 있습니다. 무감각한 모습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동생을 구덩이에 빠뜨리고 한가롭게 식사를 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마치 승리의 잔치라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제는 요셉의 꿈이 이루어지 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에서 이들은 여유롭게 식사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바로 이 때였습니다. 이들의 눈에 애굽을 오가는 장사꾼들이 보인 것입니다. 바로 이 때 유다는 이런 제안을 합니다. 함 께 26절을 읽습니다. . 이 구절을 보면 아직까지 요셉 죽이는 일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 식사 자리 가 이제 구덩이에 밀어 넣었는데 어떻게 저 녀석을 죽이지 하는 것을 의논하는 자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애굽을 오가는 장사꾼들이 이곳을 지나게 된 것이고 이를 보고 유다는 죽이지 말고 저들에게 팔자는 제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애굽을 오가는 장사꾼들이 이곳 을 우연히 지나갔을까요 사실 이런 들녘에서 이런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말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어떻게 일어났을까요 우연일까요 예, 우연이 아닙니다. 그렇 다면 무엇입니까 예, 역시 하나님의 섭리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형들의 계획을 막아선 것입니다. 형들의 사단 적 인 조롱을 막아선 것입니다. 그래서 장사꾼들이 이곳을 지나가게 했으며, 유다의 마음을 움직여 이런 생각을 갖 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요셉은 그 구덩이에서 끌어 올려 지게 되고 애굽으로 팔려 갑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요셉을 지키시기 위해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 하셨습니까 처음에는 르우벤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또 물 없는 구덩이를 예 비해 두셨습니다. 또, 애굽 을 오가는 장사꾼들을 지나가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을 보고 유다의 마음을 움 직이셔서 제법 그럴듯한 제 안을 하게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요셉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뿐만 아 니라 이것은 요셉의 꿈을 이 루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이기도 합니다. 요셉이 이렇게 팔려가지 않았던들 어떻게 요셉 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요셉에게 이런 구덩이가 없었던들 어떻게 자신의 가족을 구출할 수 있는 자리에 오를 수 있었 겠습니까 우리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기까지에는 구덩이도 있었고 팔려 가는 일도 있었고 감옥에 갇히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일들 통해서 요셉은 애굽의 총리대 신이 되어 꿈을 이룹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들에게 큰 교훈을 던져 줍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구덩이를 거쳐야 합니다. 때로는 팔려 가는 일도 겪어야합니다. 이런 일을 당할 때는 답답할 것입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있어야 하는가 하고 원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곳들을 거치지 않고는 총리대신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 모두에게도 구덩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구덩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사단은 우리들을 넘어트리려고 우리들의 앞길에 구 덩이를 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구덩이를 통해 멋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요셉을 팔아 버렸던 형 중에 누가 팔려 간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될 줄 알았겠습니까 아무도 짐작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계획이 성공했다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파놓은 이런 함정을 통 해서 요셉을 애굽의 총리 로 만들어 가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의 인생에도 사탄이 파 놓은 구덩 이가 있습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그분께서 그 구덩이를 오히려 디딤돌로 만 들어 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을 힘있게 바라보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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