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얍복강변의 새아침 (창32:13-32)

본문

우리는 신앙 생활 하면서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 그들의 말이나 행동이 매우 거슬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저게 무슨 신자라고 우리가 그렇게 말하고 싶은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야곱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군가를 비판하기에 앞서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서 묘사되고 있는 야곱이 그 인생에서 이 자리에 오기까지 하나님이 계속 이 사람을 만들어 오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아직도 많은 거리를 하나님이 지정하신 그 삶의 성숙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계속 그 길을 걸어야 합니다. 아직도 야곱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대 하시는 사람이 되고자 만들어지는 과정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이 과정 가운데 있는 이 사람 야곱에게 우리가 완성된 수준에서 이 사람의 삶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무리이거나 때로는 속단일수 있습니다. 국민학교 학생들에게 대학교 수준의 태도나 지식을 요구하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종종 이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에 내 눈에는 들보를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형제나 내 자매의 눈 속에 있는 그 티끌을 용납하지 못하고 우리의 이웃을 정죄 하려는 그 비난과 또 남을 비판하는 이런 파괴적인 유혹을 종종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 야곱은 좀 너무 한 것 같은 그런 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는 믿음의 조상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묘사할 때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묘사하는데 이 세 사람중 한 사람이었던 야곱 그는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끊임없이 모든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거리고 있습니다. 이런 신앙의 상황에서 이런 신앙의 환경과 이런 신앙의 조건속에서 이런 신앙의 기대를 받고 있는 야곱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일생이 보여주고 있는 삶의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사기 치고, 거짓말하고, 잔꾀를 부리고, 수작을 하고, 가는 곳마다 문제를 만들고 도피 행각을 계속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도 야곱을 너무하다고 느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야곱의 삶 속에서 도전을 시작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이 본문의 현장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본문 속에 오늘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다른 말로 하자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야곱 너 이제는 손좀 봐야겠다 이래서 전개되는 것이 오늘 본문의 상황입니다. 그대로 두고볼 수 없는 자녀이기에 사랑함으로 주께서 채찍을 드시고 야곱의 삶의 현장 속에 개입을 하십니다. 여기까지 왔으면 달라져야지 그 많은 세월을 교회에 나가고 그 많은 세월동안 신앙적인 환경에 접촉하고 그만큼 신앙의 도전을 받았으면 이제는 달라 져야지 하나님은 지금까지 계속 야곱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당한 수많은 사건 속에는 하나님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다루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촉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호소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하나님을 향해서 계속 반항하며, 계속 도피하며, 하나님에 관하여 아무런 의미 없는 삶의 간증을 나타내지 못했던 야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이만큼 왔으면 이제는 무엇인가 나타내어야지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삶속의 변화를 강력하게 촉구하시면서 선언하기 위하여 얍복강변의 교육의 현장으로 야곱을 불러내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시간에 이 야곱에게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 보고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돌아가야 하는 야곱의 삶 (창31: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본문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야곱이 자기 외삼촌이요 장인인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봉사합니다. 처음에 7년 다음엔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 위하여 7년 그리고 다시6년 그래서 20년동안 라반의 집에 있으면서 재물도 약간 모았습니다,.
그런데 자기 고향에 돌아가는 길에서 가만히 생각하니까. 형을 만날 일이 걱정입니다. 왜 걱정이 안되겠어요 어머니하고 짜고서 아버지를 사기 치고 그래서 형의 장자 권을 빼앗았으니 그 동안 얼마나 형은 이 동생을 향해서 칼을 갈고 있었겠습니까! 내가 어떻게 무슨 면목으로 형을 대할 수 있으며 우리 형님이 나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이런 생각으로 인해서 도저히 고향 가는 그 길에 발걸음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합니까. 아직 고향길을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으셨습니까. 황갑진 이제 고향으로 돌아 오너라 하는 귀환 명령이 내릴때 오주여 어서 나를 영접 하소서 하며 찬송할수 있는지요 주가 맡긴 모든역사 힘을 다해 마치고 밝고 밝은 아침날을 당할때 요단강을 건너가서 주의 손을 붙잡고 기븜으로 주의 얼굴 뵈오리 야곱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다시 야곱 특유의 꾀를 쓰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야곱이 타국의 생활에서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출세하고 성공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야곱이 고향 길에 데리고 가는 이 거대한 행렬은 그가 열심히 얼마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뛰어서 자기의 예금통장에 많은것을 저금해 놓았는가 하는 강력한 증입니다. 이것들이 우리를 구언 하지는 않는 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야곱은 그래도 형을 만날 일이 걱정입니다. 혼자 떨어져서 얍복강변에서 밤을 지새우는데 잠이 오지 않습니다. 잠을 이룰 수 없는 이 밤에 괴로움과 고민이 야곱을 계속 안타깝게 만듭니다. 별 하나 없는 캄캄한 밤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야곱이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걱정합니다., 그냥 고민하고 근심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내가 고향에 돌아갈 것인가.
둘째. 얍복강변의 변화 그래서 야곱이 괴로워하며 어쩔 줄 몰라하며 당황과 불안과 근심과 초조 속에서 그 별 하나 없는 깊은 밤중에 얍복강변에서 고민하고 있는데 누가 툭 찹니다. 자기를 막 쓰러뜨리려고 합니다. 본능적으로 자기 목숨을 보호하기 위하여 야곱과 그 사람은 결투를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을 하시려고 어떻게 하시려고 어쩌자고 자 여기에 인간 야곱, 성도인 야곱, 믿음의 조상인 야곱, 하나님이 그 많은 세월을 지켜보았지만 하나님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변하지 않고 타성적인 교회생활 타성적인 교회 출석을 계속하며 변화의 흔적이 없으며 뚜렷한 변화를 보지 못하는 야곱을 마침내 이 얍복강변의 현장에서 그를 바꾸기 위한 하나님의 비상한 개입이 지금 이 사건 속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역사 하십니까.
첫째로 하나님이 하신 일은 야곱으로 홀로 있게 하신 것입니다 24절에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한일은 홀로 있게 하시는 일입니다. 혼자 있을 때 우리는 정직할 수가 있습니다. 혼자 있을 때 우리는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을 필요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홀로 있을 때 고독속에 절망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홀로 있는 순간에 정말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위대한 그리스도교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신앙이란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 피조물인 인간이 외톨이로 단독자로 홀로 서는 실존의 결단 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 정도 가지고는 항복할 위인이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말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이 캄캄한 밤에 얍복강변에 홀로 있게 하신 다음에 별도 보이지 않는 밤에 하나님께서 옆구리를 차십니다. 그래서 싸움은 시작되었습니다. 주께서는 홀로 있게 하십니다. 그가 나의 나된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그리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자기의 삶을 털어놓도록 얍복강 앞에 우리를 세우십니다. 히브리어로 얍복은 자신을 비운다 털어놓는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 얍복강 얍복강변에 야곱을 부르시고 하나님은 야곱의 적나라한 모습을 나타내며 그 하나님 앞에 자기가 살아온 삶의 내용을 결산하도록 그리고 그 날밤의 이 순간이 야곱의 삶에서 위대한 전환점이 되도록 하나님이 야곱의 생애 속에 도전해 들어오는 하나님 자신이 걸어오신 하나님의 싸움인 것입니다. 그는 먼저 야곱을 홀로 있게 하셨습니다.
2) 야곱으로 하여금 가장 중요한 깨달음에 도달하게 하십니다. 그 깨달음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밤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마지막 수단으로 야곱이 얼마나 고집이 센지 야곱이 얼마나 철저하게 반항하는지 드디어 사람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창32:25)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 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 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하나님께서 환도 뼈를 치신 것입니다. 우리가 힘을 쓸수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버리니까 어떻게 됩니까. 자빠져야죠 그는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때 야곱이 뭘 깨달았을까요 이제는 어쩔 수 없구나 그는 자기 힘의 마지막 한계를 느끼는 그 순간 앞에 도달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 합니다. 왜 중요합니까. 지금까지 야곱은 자기 힘으로 언제나 어떻게 해볼수있다는 착각 속에 살아 왔습니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있다. 야곱이 지금까지 노력하면 안된 것이 없어요 다 되거든요 처음엔 부인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원했던 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물러서지 않고 또 라헬을 얻어냅니다. 양과 나귀의 새끼들도 건강하고 좋은 것으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엄마하고 각본을 짜서 마침내 장자의 권한을 얻어냅니다. 이런 야곱인데 물러 날수 있겠어요 그는 지금까지 자기의 노력 자기의 투쟁 자기의 정열 자기의 계획을 가지고 그가 얻어 내지 못한 일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자기의 계획이 통한 것 이것이 문제 였습니다. 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요령을 부린것이고 잔꾀를 부린것이고 그래서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긴 했지만 하나님이 정말로 나의 삶속에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찬송이야 합니다. 이따금 함께 기도 할 수 있지요. 여러분 그러나 묻습니다. 정말 내 삶에 하나님이 없어서는 안될 분이란 사실을 깨닫습니까. 왜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는 어떻게 해볼 수 있다는 자기 중심의 삶을 살아온 것입니다. 야곱의 지금까지의 삶은 하나님을 들먹였지만 예배를 드렸지만 그가 직분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지금까지 자기 중심의 인간에 불과했어요 그러나 환도뼈가 부러지니까 어떻게 해요 주저 않아야지요 우리는 이 사건에서 26절에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25절에서 끝났습니다. 환도 뼈가 부러졌는데 무슨 씨름을 더합니까. 싸움은 이미 끝나 버린 것입니다.
3) 하나님께 매어 달림 26절은 싸움이 아니라 이것은 매달림입니다. 다시 말하면 야곱으로 하여금 자기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이 중요한 깨달음에 도달하도록 하신 후 그 다음에 세 번째 단계로 하나님은 야곱으로 하여금 정말 하나님 자신에게 매달리게 하신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매달림이 아니라 내 노력으로, 내 지식으로, 내가 가진 모든 삶의 환경과 조건과 공급과 재료를 가지고 하는것 그것이 발버둥입니다. 매달림은 무엇입니까. 매달림은 자기를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초점이 어디 있어요 내가 매달리는 상대에게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한참 싸움을 하다가 이 사람이 하나님인줄 알았습니다. (창32:29)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왜 물어 알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말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우리의 삶의 인생 길에서 어려운 사건을 만날 때마다 여전히 나는 내것을 가지고 발버둥칩니다. 어떻게 해보려고 그래서 사기도 치지요, 요령도 부리지요, 그래서 넘어지지요, 그래서 우리는 더 곤란해지지요 그래서 잘되는 수도 있어요 그러나 잘되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잘되니까 이렇게 계속해도 되겠구나 하나님이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내 수단으로 살아 왔습니다. 하나님 믿지 않고도 생존해온 지금 이 시점에서 하나님이 내 삶에 필요한 이유가 어디에 있어요 나는 계속 살아 갈 수가 있어요 이 삶의 위기를 하나님은 보셨습니다. 야곱만은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내 자식인데 사랑하는 자녀이기에 싸움을 걸어온 것입니다. 네 인간성의 한계를 알아라 그래서 그를 깨끗이 뉘어버린 것입니다. 환도 뼈가 깨지며 부러지며 넉더운 되어 이 땅바닥에 자빠지는 순간에 그에게 찾아온 놀라운 깨달음 하나님을 떠나서는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군요 이 중요한 깨달음 이제는 하나님밖에는 남지 않았구나 어떻게 해요 그분께 매달려야 지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이 없이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 깨달음이 없이는 우리의 삶이 변화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째. 하나님의 사람 야곱 이제 이건 이후에 하나님은 질문을 던집니다. 창32:27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야곱의 뜻은  동사 아캅이란 사기를 치다, 선수를 치다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에서 발꿈치를 쥐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는 문자 그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의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람이면서도 거짓말하고, 사기도 치고, 혈기도 부리는 사람입니다. 창32:28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제부터는 발꿈치를 붙들 필요가 없습니다. 내 노력으로 아우성을 칠 필요도 없습니다. 내 간사한 힘을 가지고 이 난관을 돌고 나가기 위해서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자기의 능력 앞에서 절망하는 그 순간 그는 하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 자기의 삶속에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셨습니다. 오 주님 이제는 주님만을 의지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이 승리는 야곱이 몸부림을 치고 발버둥을 쳐서 싸운 승리가 아닙니다. 항복함으로 그는 승리한 것입니다. 내 부족함을 알고, 내 연약함을 알고, 내 한계를 알고, 내가 피조물임을 알고 내가 흙으로 돌아가야할 인간임을 깨닫고 창조주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이 정직하고 심오한 깨달음 속에서 자기를 하나님 앞에 내던지고 매달리는 이 행위 이때부터 야곱의 삶속에는 놀라운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창32: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그는 절고 있었지만 얼마나 속 시원하겠어요 그가 절고 있었지만 얼마나 자유함을 누렸을까요 하나님께서 자기를 치시고 하나님 앞에 자기를 굴복하게 하신 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와 하나님을 생생하게 체험 하였기에 그는 절뚝거리며 걸어가면서도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날 절뚝거리면서 이 얍복강변를 떠나던 야곱은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하나님 저를 잘 치셨어요 감사합니다. 나를 이렇게 치지 않았으면 쓸모없는 자가 되었을 것인데 그러나 여러분 이 방법은 하나님의 일상적인 방법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지막 방법이란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지막 채찍입니다. 하나님이 얍복강변에 당신을 홀로 있게 하시기 전에 자신이 홀로 하나님과 거하는 시간을 마련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 홀로 서십시오 내 삶의 내용을 보십시오.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 왔는지를 보십시오 내가 가진 신앙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물으십시오. 일주일의 한번의 악세사리인가 나는 참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가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지만 하나님과 상관없이 내 뜻과 지성으로 나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절면서 새 사람이 되어 얍복강변를 떠나는 사람이 있지만 절지 않고 새 사람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께서 내 환도 뼈를 치시기 전에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입니까. 절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지금까지도 하나님 없이 잘 살아 오지 않았습니까. 내뜻대로 거의다 인생이 잘되지 않았는 가요 지금까지 내뜻대로 잘 되어온것 그것이 화근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그것 때문에 나는 자꾸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삶이 가능하다고 내꾀가 내 방법이 잘 통했으니까. 나는 젊기 때문에 나는 건강 하기 때문에 내 주머니에 돈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생각 하지는 않으십니까 하나님을 만나기전의 야곱은 절망이었습니다. 그가 수고한 모든것이 칼날아래 사라져 버릴 운명에 있었습니다.
창32:6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인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그러나 사란이 변화 받고 나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인도하여 주십니다. 창33:1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인을 거느리고 오는지라 창33:9 에서가 가로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두라 할렐루야 어제 저녁까지만 하여도 바람앞에 등불이었는데 주님께서 붙들어 주시니 놀라운 은총의 역사가 일어난것입니다. 주께서 당신의 환도뼈를 치기전에 주앞에 스스로 당신의 삶을 바치십시오. 그리고 의지 하십시오 당신의 잔꾀가 아니라 그분을 의지 히십시오 당신의 지혜가 아니라 주님의 전능하신 지혜를 의지 하십시오 별것 아닌 성취와 성공때문에 오만한 모습 이제 버리고 주님앞에서 새옷을 입고 승리를 체험하는 이 아침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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