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과 육 사이 (창32:1-20)
본문
오늘은 여러분들에게 퀴즈를 하나 내려고 합니다. 아마 미리 주보를 보신 분들을 아 시겠지만 오늘 설교의 제 목이 영과 육 사이입니다. 바로 이 제목을 가지고 여러분들께 퀴즈를 내려 합니다. 여러분 영과 육 사이에 무엇이 있을까요 어떤 분은 영과 육 사이에는 과 가 있다고 대답을 하시는 분도 계실 것이고 12345 가 있다고 대답을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영과 육은 아라비아 숫자 의 영과 육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다듬어 져서 하나님의 지배를 받고 있는 영과, 죄된 본성의 자 아를 가리키는 육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영과 육 사이에 무엇이 있을까요 궁금하시죠. 오늘은 바로 이 문제 를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함께 말씀을 살피면서 과연 영과 육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라반의 추격 우리는 지난 시간 라반의 추격을 당하는 야곱에 대해서 살펴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야곱이 라반에 게 추격을 당하도록 내어버려 두셨다고 말씀드렸죠 그렇습니다. 그것은 야곱의 신앙을 북돋우기 위함이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때때로 라반과 같은 험악한 일들로부터 추격을 당할 수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 우리들이 가져야 할 생각이 있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그 렇습니다. 이것으로 인해 내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오히려 이런 것들로 추격을 당하면서 우리들의 신앙이 성숙될 수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은 평안한 길을 걸을 때보다도 거칠고 험한 길 을 걸어갈 때 더욱더 잘 성 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만나는 라반 결코 두려워 할 상대는 아닙니다. 오히려 라반을 만나면 옳지 이것이 바로 나의 신앙을 성숙시키는 것이지 하고 긍정적으로 그것들을 바라볼 수 있 기를 바랍니다. 어떠셨습니까 지난 한 주간 살아가시면서 여러분도 라반의 추격을 당해 보셨습니 까 혹 이렇게 말씀하실 분 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님 라반이 너무 오래 따라오네요. 야곱에게는 7일만 추 격하게 하시더니 왜 나에게는 7일은 고사하고 몇 달 아니 몇 년씩 추격을 당하게 하시나요. 목사님 언제쯤 이 추 격을 피해서 쉬어보죠. 하 고요. 글쎄요. 제가 무엇이라 말씀을 드려야 할까요 글쎄요. 저도 그 문제에 대해서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 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망해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때에 틀림없이 여러분들의 라반이 하나님 이야기를 하면서 여러분들을 추격하는 일을 포기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 때까지 참으십시오. 좀 힘들어도 참으시기 바랍니다. 틀림없이 여러분의 라반의 하나님 이야기 를 하면서 여러분들을 쫓는 일을 포기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존경받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나름대로 각자의 라 반에게 추격을 당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라반의 추격을 당했으며 다윗은 사울의 추격을 당했었습니다. 다윗에게는 사울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사실 다윗의 삶을 살펴보면 그를 추격하는 일들이 끝없이 벌어졌던 것 을 알 수 있습니다. 골리앗 군사들이 추격과 압살롬의 추격 이런 것들이 쉴 사이 없이 그를 추격했었습니다. 바울 은 또 어떻습니까 그 역시 수많은 추격을 당했었습니다. 바울이 무슨 추격을 당했었느냐고요 바울이 가는 곳곳마 다 바울의 사역을 방해하는 반대파들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바울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까지 그의 사역을 방해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을 추격하는 것들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 려 그러한 환경 가운데서 자신의 믿음을 더욱더 견고히 세워 나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을 추격하는 것을 보십니까 두려워하 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추격전 속에서 여러분들의 믿음을 견고히 세우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 야곱도 이 추격전에서 믿음이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멋지게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으로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는 제사를 드리고 고향 땅으로 향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고향 땅으로 향하는 야 곱 그의 기분은 어떠했을 까요 기쁘고 즐거웠을까요 그렇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뒤에 있는 문제 즉, 라반의 문제는 해결이 되었지만 그의 앞에 버티고 있는 문제가 아직 해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앞 에 버티고 서 있는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의 형 에서 였습니다. 야곱은 20여년 전 형을 속인 적 이 있었습니다. 혹 그 때의 장면을 기억하십니까 속임을 당했던 에서가 어떻게 했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창 27:38) 에 서가 아비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의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 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 그리고 또 41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아비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을 인하여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왔 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바로 이 이야기를 듣고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가 급히 야곱을 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을 시 킨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야곱이 지금 집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될지 아 무도 장담을 할 수 없는 그 런 처지였습니다. 더군다나 형 에서는 들사람으로 거친 성격을 소유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와 정면을 마딱드린 다는 것은 대단한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야곱이 라반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기뻐 할 수만 없는 그런 처지였습니다. 라반의 문제가 해결된 기쁨은 잠시 곧 이어 그에게는 또 다시 그의 가슴을 짓 누르는 걱정이 찾아 왔을 것입니다. 이런 야곱을 보면 걱정과 근심 속에서 하루도 편할 날 없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고생고생 끝 에 문제 하나를 해결하고 나면 또 다시 다른 문제와 싸워야 하는 것이 바로 오늘을 살 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습니까 문제를 하나 해결하고 나면 그때 부터는 탄탄 대로만 나옵니 까 그렇지 않죠 문제를 해결해도 계속해서 문제와 문제들이 줄을 잇습니다. 언제 이 런 문제들이 끝날지 알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 아닙니까 하나님의 군대를 만나게 하심 자 이런 야곱의 문제를 하나님께서도 아셨습니다. 1절 말씀을 한 번 보시겠습니다. . 야곱이 누 구를 만납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를 만납니다. 이 사자에 대해서 2절은 무엇 이라 말하죠 예, 하나님의 군대라 말합니다. 얼마나 많은 숫자면 군대라 표현을 했겠습니까 야곱이 이 군대를 만 나고 나서 그 땅이름을 마 하나임이라 짖습니다. 무슨 뜻인 줄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두 진영 혹은 두 군대라는 뜻이 있습니다. 왜 두 진영 이라 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한 쪽은 자신의 진영이고 다른 한 쪽은 하나님의 사자의 진영이라는 말이죠. 그렇 다면 야곱의 가족 종들 그리고 가축들 이런 것들과 맞먹는 숫자였다는 것이죠. 그만큼 많은 숫자의 하나님의 사 자를 만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왜 야곱에게 이렇게 엄청난 숫자 의 사자를 보여 주실 까요 그렇습니다. 다시 문제 앞에서 걱정하는 야곱에게 힘을 주기 위함입니다. 즉, 앞으로 너의 모든 길을 내가 지켜주 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을 한대로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하겠다 그러니 염려하지 말 아라 하는 뜻이죠. 하나님 께서는 이처럼 야곱의 문제를 아시고 그냥 지나가시지 않으셨습니다. 저를 격려해주십니다.
그렇다면 이 엄청난 군대를 바라보는 야곱의 마음 어떠했을 까요 그렇습니다. 힘이 넘쳤을 것입니다. 감격했 을 것입니다. 내 뒤에서 쫓는 라반을 막아서시던 그 하나님이 이제는 내 앞에서 군사들 을 푸셔서 나를 지키시는 구나 하고 감격했을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엘리사가 사환가 함께 도단성에 거했을 때 일어났던 일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어떤 일이 일 어났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엄청난 군사들이 엘리사와 사환을 포위하 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사환은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엘리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 하리이까 얼마나 다급했으 면 이렇게 말했겠습니까 그랬더니 엘리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 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 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 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 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들이 우리 들을 지키는 하나님을 바라 보지 못하면 사환처럼 문제가 있을 때 이렇게 말합니다. 아하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 리까 그러나 눈이 열려서 하나님께서 함께한 군사들을 보게 되면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 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우리들이 문제를 이길 수 있는 비결입니다. 우리들이 사는 이 세상 문제가 없을 수 없습니다. 염려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이런 염려가 가득한 세상을 살아 가면서 우리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들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야곱의 첫 번째 계획 야곱은 이 하나님의 군대를 만나고 대단히 고무된 듯합니다. 그리고는 에서에게 사 절단을 보냅니다. 3-5절을 볼까요 . 어떻습니까 이 구절들에서 어디 그가 망설이거나 두려워하는 흔적이 보입니까 없습니다. 자신감에 넘칩니다. 왜죠 그렇습니다. 자신과 함께 하는 하나님의 군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바라보면 이렇게 당당할 수 있습니다. 힘이 있죠.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도 이렇게 하나님을 바라보심으로 말미암아 힘있게 사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문제를 두려워 마십시오. 그 문제 뒤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종종 우리들이 잘 못 생각하는 것 이 하나니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문제가 없어지리라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문제가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염려와 걱정은 늘 끊이지 않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들이 이런 인생을 살아가면 서 우리들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들은 문제로 인하여 염려하거나 낙망하지 않습니다. 오히 려 그런 것들 가운데서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당당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문제 앞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당당해 하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소식을 들은 야곱
그런데 6절에 있는 말씀을 보면 이렇게 당당해 있는 야곱에게 뜻밖의 소식이 전달됩니다. 함께 6절 말씀을 읽 겠습니다. . 어떤 소식입니까 그렇습니다. 형에서가 야곱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400명의 사람을 거느리고 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야곱의 마음을 본문은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라고 기록을 하 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렇습니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기 때문입니다. 뜻 밖의 소식에 야곱은 그만 자 신의 시선을 하나님에서 400명에게로 돌리고 맙니다. 그래서 그는 두려워하고 답답해하 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보십시오. 야곱이 하나님의 시선이 하나님께 머물러 있었을 때는 당당할 수 있었습니다. 형님이 두 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문제에 머물자 두려움과 답 답함이 찾아 들고 있는 것 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에서 자세히 살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자 보십시다. 야곱이 1절에서 무엇을 보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자신과 함께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합니다.
그렇다면 문제 가 없어졌습니까 아닙니다. 야곱이 기대하는 대로 문제가 해결이 되었습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힘있게 바라보고 의지했지만 문제는 오히려 더 커졌습니다. 우리들의 시선을 집중시켜 야 할 부분이 바로 이 부분 입니다.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는 대도 불구하고 문제가 더 커진다는 사실입니다. 이 게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힘 있게 바라보면 문제가 생기지 말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문제가 더 커진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문제가 해결되면 얼마나 멋집니까 야 정말 하나님은 살아 계셔 내가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니 문제가 이렇게 해결이 되네. 하고 즐거워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는 상황이 너무 많습니다. 힘있게 의지함에 도 불구하고 문제가 더 생 깁니다. 욀까요 그것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있기 때문 입니다. 무엇인줄 아십니 까 그렇습니다. 사탄입니다. 사탄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는 것을 제일 싫 어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우리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방해하는 것이죠. 우리 가 힘있게 하나님을 의지하 려 하면 할수록 사단도 우리들을 방해하려 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의지해야지 하고 다짐을 하면 사단도 우리 들을 방해 할 것을 다짐합니다. 우리들이 이만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면 사단은 이것보다 더 큰 문제를 떡 우리 앞에 둡니다. 이게 바로 사단의 전술입니다. 우리가 다짐을 하면 사단이 겁을 먹 고 물러가주면 얼마나 좋겠 습니까 그러나 사단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사단도 우리들과 똑 같이 다짐을 하고 우리들의 길을 막아섭니다. 이 때 많은 사람들이 넘어져 버립니다. 추풍낙엽처럼 우수수합니다. 왜 하나님을 의 지하려는 데 이런 일이 생 기는가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그럴 수 있는가 하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되면 회심의 미소 를 짖는 것은 누구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단이지요. 왜죠 예, 그래 내 작전대로 되는구나 하는 것이죠. 우리는 사단이 웃게 해서는 안됩니다. 사단이 승리하도록 해서도 안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새로운 각오를 하고 달려나갈 때 사단이 막아선다고 하더 라도 당황하지 마십시오. 낙망하지 마십시오. 아하 사단이 막아서는 구나 하고 우습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렇 게 되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따라해 보시겠습니까 내가 하나님께 다가서기로 다짐을 하면 사단은 막아설 것을 다짐한다 그렇습니다. 내가 다짐하면 사단도 다짐을 한다는 이 사실을 잊지 마 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단이 여러분들을 막아서실 때 웃으시면서 당당하게 서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야곱의 두 번째 계획 야곱은 이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만 넘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 앞에서 야곱은 이제 어떻게 반응을 할까요 7절 말씀을 보도록 하 겠습니다. 야곱이 심히 두 렵고 답답하여 자 이렇게 되면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여러분 두렵고 답답할 때 무 엇을 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 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는 말씀이나 너희 모든 염려를 맏겨버리라 하는 말씀을 생각하고 무릎을 꿇어야 하죠.
그런데 보십시오. 야곱은 어 떻게 합니까 계속 7,8 절을 읽습니다. .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예, 자기 나름대로 이 위기를 모면해 보기 위해서 계획을 세웁니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보기 위해서 계획을 세우는 것이죠. 이 때 야곱은 무 엇을 바라보았을 까요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까요 아닐 것입니다. 야곱은 위기의 순간 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또 다시 자신의 육적인 자아를 의지합니다. 스스로의 꾀를 의지하는 것이죠. 그리고는 이 렇게 말합니다. 에서가 와 서 한 때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위기의 순간에 여러분들의 머리를 의지해서 계획을 세우시면서 내가 이렇게 피하리라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저는 이 야곱을 보면서 육적인 자아에서 벗어나기가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가를 생각 해 보았습니다. 야곱은 20 년 동안 인생학교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의 위대하심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군 대를 동원하셔서 자신을 지키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는 이런 것들을 보고 신앙이 자라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고하고 야곱은 위기의 순간이 되자 다시 자신의 육적인 자아가 살아나기 시작을 합니다. 이것이 야곱의 모습이죠. 사실 이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 을 해 봅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여러분 나름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나름대로 하나님 께서 살아 계시는 것도 체 험하셨을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체험하고는 밤새워 하나님께 기도해 보기도 했을 것 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새 로운 다짐도 해 보셨을 것입니다. 주님 이제는 주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말씀도 하셨 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 에도 불구하고 어떤 순간이 되면 여러분들의 자아가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실 것입니다. 제어할 수 없는 자아가 우리 내면에서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늘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 뢰하십니까 좀 전에 제가 7절을 읽으면서 두렵고 답답할 때 어떤 성경구절을 떠올려야 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대부분 기도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그렇게 하십니까 삶의 순간순간 위기를 만날 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 습니까 사실 원리하고 실제가 다를 때가 얼마나 많은 지요.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 습이 아닙니까 성숙한 신앙인은 원리를 많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 원리에 따른 실 제가 있어야합니다. 말이 아 닌 삶으로 드러나는 것들이 있어야 합니다. 종종 저의 고민이 이것입니다. 우리 사랑하는교회 성도들의 삶이 과연 얼마나 변하고 있을까 과연 저들이 알고 있는 것만큼 삶이 변해가고 있을까 하는 것 입니다.
여러분들의 많이 아는 것으로 자부심을 갖지 마십시오. 그것은 여러분들의 신앙을 망칠 뿐입니다. 이제는 아는 것을 실제에 옮기기 를 힘쓰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따라오지 않는 신앙 바로 야곱과 같은 신앙이었습니다. 기도하는 야곱 야곱은 이렇게 영과 육 사이를 오가며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금방 하나님을 인하 여 기뻐하다가도 금방 세상을 인하여 낙망하는 것이 바로 이 야곱입니다. 자 이렇게 자신의 머리를 의지하고 계획을 세운 야곱 이제 그는 어떻게 일을 처리할 까요 9절 이하를 보면 그가 하고 있는 일이 있습니다.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을 하 고 있다는 것입니다. 9절 이하에 기록되고 있는 야곱의 기도를 보면 정말 모범적인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번 볼까요 처음에 무엇을 말합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 릅니다. 나의 조부 아브라 함의 하나님, 나의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얼마나 멋지게 하나님을 부르고 있습니까 그리고 또 무엇이라 말하 죠 . 예, 전에 자신에게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 하고 그것을 말씀드립니다. 얼마나 멋지 게 야곱의 기도가 전개됩니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 이렇게 하 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 속을 기억하기 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렇게 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 신의 문제를 꺼내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약속을 먼저 이야기합니다. 참 멋지죠. 그리고는 또 어떻게 말합니까 . 여러분 얼마나 겸손합니까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것을 인 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기도를 드리고난 후에 그는 겸손히 자신의 문제를 아룁니다. 그리고는 요 . 예 그는 또 다시 자신에게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약속을 이 야기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 하나님 께서 이렇게 지켜주신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도와주십시오. 라고 말하 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보 면 야곱의 기도 정말 본이 될 수 있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이 야곱의 모습에서 또 다시 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보십 시오. 야곱이 문제가 생기자 어떻게 처리를 먼저 했죠 그렇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해결 방법을 도모했었습니다. 그 리고는 요 예, 기도하기 시작을 합니다. 바로 이 모습, 이것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취하는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먼저 기도하지 않아요. 하나님께 아뢰지 않고 먼저 백방으로 뛰어다닙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고난 다음 그제야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야곱과 같은 모습이라 할 수 있겠죠. 이것은 바른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모습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문제가 생 기면 먼저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사랑하는교회 성도들에게 문제가 많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 인 격의 문제, 삶의 문제, 이 모양, 저 모양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에 반해 기도하는 성도들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많으니 자연 기도하는 성도도 많아져야 할 터인 데 그렇지 못하다는데 안타 까움을 갖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야곱처럼 하지 마십시오. 야곱을 여러분들의 모델로 삼지 마시기 바랍니다. 문제가 있을 때 기도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다시 육으로 자
그렇다면 야곱이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하고난 후에는 어떻게 할 까요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 하실 것인 가를 기다릴 까요 13절 이하를 읽습니다. . 야곱이 무엇을 합니까 예, 여전히 자신의 방법대로 일 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는 분명히 멋진 기도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 고 그 기도가 끝난 후 그는 여전히 자신의 방법대로 문제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20절 말씀을 보면 이런 야곱의 생각을 이렇게 꼬집어 놓고 있습니다. .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야곱의 생각이라는 말입니다. 즉, 이것은 순전히 야곱의 생각이었다는 말이죠. 여기서 우리들이 또한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를 잘 하는 것과 믿음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야곱이 얼마나 수준 높은 기도를 드렸습니까 그러나 그는 기도대로 자신의 삶을 맡기지 않았 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아십니까 기도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요. 그렇습니다. 기도는 말이 아닙니다. 기도는 마음 이어야 하고 삶이어야 합니다. 기도는 믿음의 표현이기 때문에 그 기도에 따른 자신의 삶이 따라와야 합니다. 기도는 그럴듯하게 하고는 자신의 삶이 거기에 따라오지 않는다면 그 기도는 말로 한 기도입니다. 비록 말은 잘 못 하더라도 그 기도에 자신의 삶을 싣는다면 그 기도는 힘있는 기도입니다. 오늘 우리들 에게 안타까운 현실 하나가 있습니다. 기도는 잘합니다. 얼마나 유창한지요.
그런데 이에 반해 삶이 따라오지 않습니다. 야곱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야곱처럼 말뿐인 기도를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의 기도가 유창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 습니다. 좀 더듬거려도 상관이 없습니다. 어법에 맞지 않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이 문제이지 않습니다. 문제는 내가 기도한대로 살아가느냐 아니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로 기도하려 하지 마십시 오. 삶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온 몸으로 기도하십시오. 온 마음으로 기도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제가 처음에 퀴즈를 하나 드렸습니다. 영과 육 사이에 무엇이 있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어떻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니 무엇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야곱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문제 를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영과 육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계획 사 이에서, 믿음과 불신의 사이 에서, 거듭난 자신과 거듭나지 못한 자아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야곱만 이 사이에 있습니까 혹 여러분들도 여기에 있지 않습니까 이제 이 시간 여러분들의 신앙의 주소를 생각해 보십 시오. 나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나의 신앙의 주소는 영인가 육인가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의 신앙의 주소는 어디입니까
그렇다면 이 영과 육 사이에 무엇이 있을까요 궁금하시죠. 오늘은 바로 이 문제 를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함께 말씀을 살피면서 과연 영과 육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라반의 추격 우리는 지난 시간 라반의 추격을 당하는 야곱에 대해서 살펴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야곱이 라반에 게 추격을 당하도록 내어버려 두셨다고 말씀드렸죠 그렇습니다. 그것은 야곱의 신앙을 북돋우기 위함이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때때로 라반과 같은 험악한 일들로부터 추격을 당할 수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 우리들이 가져야 할 생각이 있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그 렇습니다. 이것으로 인해 내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오히려 이런 것들로 추격을 당하면서 우리들의 신앙이 성숙될 수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은 평안한 길을 걸을 때보다도 거칠고 험한 길 을 걸어갈 때 더욱더 잘 성 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만나는 라반 결코 두려워 할 상대는 아닙니다. 오히려 라반을 만나면 옳지 이것이 바로 나의 신앙을 성숙시키는 것이지 하고 긍정적으로 그것들을 바라볼 수 있 기를 바랍니다. 어떠셨습니까 지난 한 주간 살아가시면서 여러분도 라반의 추격을 당해 보셨습니 까 혹 이렇게 말씀하실 분 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님 라반이 너무 오래 따라오네요. 야곱에게는 7일만 추 격하게 하시더니 왜 나에게는 7일은 고사하고 몇 달 아니 몇 년씩 추격을 당하게 하시나요. 목사님 언제쯤 이 추 격을 피해서 쉬어보죠. 하 고요. 글쎄요. 제가 무엇이라 말씀을 드려야 할까요 글쎄요. 저도 그 문제에 대해서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 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망해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때에 틀림없이 여러분들의 라반이 하나님 이야기를 하면서 여러분들을 추격하는 일을 포기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 때까지 참으십시오. 좀 힘들어도 참으시기 바랍니다. 틀림없이 여러분의 라반의 하나님 이야기 를 하면서 여러분들을 쫓는 일을 포기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존경받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나름대로 각자의 라 반에게 추격을 당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라반의 추격을 당했으며 다윗은 사울의 추격을 당했었습니다. 다윗에게는 사울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사실 다윗의 삶을 살펴보면 그를 추격하는 일들이 끝없이 벌어졌던 것 을 알 수 있습니다. 골리앗 군사들이 추격과 압살롬의 추격 이런 것들이 쉴 사이 없이 그를 추격했었습니다. 바울 은 또 어떻습니까 그 역시 수많은 추격을 당했었습니다. 바울이 무슨 추격을 당했었느냐고요 바울이 가는 곳곳마 다 바울의 사역을 방해하는 반대파들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바울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까지 그의 사역을 방해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을 추격하는 것들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 려 그러한 환경 가운데서 자신의 믿음을 더욱더 견고히 세워 나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을 추격하는 것을 보십니까 두려워하 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추격전 속에서 여러분들의 믿음을 견고히 세우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 야곱도 이 추격전에서 믿음이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멋지게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으로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는 제사를 드리고 고향 땅으로 향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고향 땅으로 향하는 야 곱 그의 기분은 어떠했을 까요 기쁘고 즐거웠을까요 그렇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뒤에 있는 문제 즉, 라반의 문제는 해결이 되었지만 그의 앞에 버티고 있는 문제가 아직 해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앞 에 버티고 서 있는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의 형 에서 였습니다. 야곱은 20여년 전 형을 속인 적 이 있었습니다. 혹 그 때의 장면을 기억하십니까 속임을 당했던 에서가 어떻게 했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창 27:38) 에 서가 아비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의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 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 그리고 또 41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아비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을 인하여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왔 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바로 이 이야기를 듣고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가 급히 야곱을 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을 시 킨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야곱이 지금 집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될지 아 무도 장담을 할 수 없는 그 런 처지였습니다. 더군다나 형 에서는 들사람으로 거친 성격을 소유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와 정면을 마딱드린 다는 것은 대단한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야곱이 라반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기뻐 할 수만 없는 그런 처지였습니다. 라반의 문제가 해결된 기쁨은 잠시 곧 이어 그에게는 또 다시 그의 가슴을 짓 누르는 걱정이 찾아 왔을 것입니다. 이런 야곱을 보면 걱정과 근심 속에서 하루도 편할 날 없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고생고생 끝 에 문제 하나를 해결하고 나면 또 다시 다른 문제와 싸워야 하는 것이 바로 오늘을 살 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습니까 문제를 하나 해결하고 나면 그때 부터는 탄탄 대로만 나옵니 까 그렇지 않죠 문제를 해결해도 계속해서 문제와 문제들이 줄을 잇습니다. 언제 이 런 문제들이 끝날지 알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 아닙니까 하나님의 군대를 만나게 하심 자 이런 야곱의 문제를 하나님께서도 아셨습니다. 1절 말씀을 한 번 보시겠습니다. . 야곱이 누 구를 만납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를 만납니다. 이 사자에 대해서 2절은 무엇 이라 말하죠 예, 하나님의 군대라 말합니다. 얼마나 많은 숫자면 군대라 표현을 했겠습니까 야곱이 이 군대를 만 나고 나서 그 땅이름을 마 하나임이라 짖습니다. 무슨 뜻인 줄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두 진영 혹은 두 군대라는 뜻이 있습니다. 왜 두 진영 이라 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한 쪽은 자신의 진영이고 다른 한 쪽은 하나님의 사자의 진영이라는 말이죠. 그렇 다면 야곱의 가족 종들 그리고 가축들 이런 것들과 맞먹는 숫자였다는 것이죠. 그만큼 많은 숫자의 하나님의 사 자를 만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왜 야곱에게 이렇게 엄청난 숫자 의 사자를 보여 주실 까요 그렇습니다. 다시 문제 앞에서 걱정하는 야곱에게 힘을 주기 위함입니다. 즉, 앞으로 너의 모든 길을 내가 지켜주 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을 한대로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하겠다 그러니 염려하지 말 아라 하는 뜻이죠. 하나님 께서는 이처럼 야곱의 문제를 아시고 그냥 지나가시지 않으셨습니다. 저를 격려해주십니다.
그렇다면 이 엄청난 군대를 바라보는 야곱의 마음 어떠했을 까요 그렇습니다. 힘이 넘쳤을 것입니다. 감격했 을 것입니다. 내 뒤에서 쫓는 라반을 막아서시던 그 하나님이 이제는 내 앞에서 군사들 을 푸셔서 나를 지키시는 구나 하고 감격했을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엘리사가 사환가 함께 도단성에 거했을 때 일어났던 일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어떤 일이 일 어났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엄청난 군사들이 엘리사와 사환을 포위하 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사환은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엘리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 하리이까 얼마나 다급했으 면 이렇게 말했겠습니까 그랬더니 엘리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 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 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 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 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들이 우리 들을 지키는 하나님을 바라 보지 못하면 사환처럼 문제가 있을 때 이렇게 말합니다. 아하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 리까 그러나 눈이 열려서 하나님께서 함께한 군사들을 보게 되면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 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우리들이 문제를 이길 수 있는 비결입니다. 우리들이 사는 이 세상 문제가 없을 수 없습니다. 염려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이런 염려가 가득한 세상을 살아 가면서 우리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들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야곱의 첫 번째 계획 야곱은 이 하나님의 군대를 만나고 대단히 고무된 듯합니다. 그리고는 에서에게 사 절단을 보냅니다. 3-5절을 볼까요 . 어떻습니까 이 구절들에서 어디 그가 망설이거나 두려워하는 흔적이 보입니까 없습니다. 자신감에 넘칩니다. 왜죠 그렇습니다. 자신과 함께 하는 하나님의 군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바라보면 이렇게 당당할 수 있습니다. 힘이 있죠.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도 이렇게 하나님을 바라보심으로 말미암아 힘있게 사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문제를 두려워 마십시오. 그 문제 뒤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종종 우리들이 잘 못 생각하는 것 이 하나니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문제가 없어지리라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문제가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염려와 걱정은 늘 끊이지 않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들이 이런 인생을 살아가면 서 우리들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들은 문제로 인하여 염려하거나 낙망하지 않습니다. 오히 려 그런 것들 가운데서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당당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문제 앞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당당해 하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소식을 들은 야곱
그런데 6절에 있는 말씀을 보면 이렇게 당당해 있는 야곱에게 뜻밖의 소식이 전달됩니다. 함께 6절 말씀을 읽 겠습니다. . 어떤 소식입니까 그렇습니다. 형에서가 야곱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400명의 사람을 거느리고 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야곱의 마음을 본문은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라고 기록을 하 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렇습니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기 때문입니다. 뜻 밖의 소식에 야곱은 그만 자 신의 시선을 하나님에서 400명에게로 돌리고 맙니다. 그래서 그는 두려워하고 답답해하 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보십시오. 야곱이 하나님의 시선이 하나님께 머물러 있었을 때는 당당할 수 있었습니다. 형님이 두 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문제에 머물자 두려움과 답 답함이 찾아 들고 있는 것 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에서 자세히 살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자 보십시다. 야곱이 1절에서 무엇을 보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자신과 함께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합니다.
그렇다면 문제 가 없어졌습니까 아닙니다. 야곱이 기대하는 대로 문제가 해결이 되었습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힘있게 바라보고 의지했지만 문제는 오히려 더 커졌습니다. 우리들의 시선을 집중시켜 야 할 부분이 바로 이 부분 입니다.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는 대도 불구하고 문제가 더 커진다는 사실입니다. 이 게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힘 있게 바라보면 문제가 생기지 말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문제가 더 커진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문제가 해결되면 얼마나 멋집니까 야 정말 하나님은 살아 계셔 내가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니 문제가 이렇게 해결이 되네. 하고 즐거워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는 상황이 너무 많습니다. 힘있게 의지함에 도 불구하고 문제가 더 생 깁니다. 욀까요 그것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있기 때문 입니다. 무엇인줄 아십니 까 그렇습니다. 사탄입니다. 사탄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는 것을 제일 싫 어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우리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방해하는 것이죠. 우리 가 힘있게 하나님을 의지하 려 하면 할수록 사단도 우리들을 방해하려 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의지해야지 하고 다짐을 하면 사단도 우리 들을 방해 할 것을 다짐합니다. 우리들이 이만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면 사단은 이것보다 더 큰 문제를 떡 우리 앞에 둡니다. 이게 바로 사단의 전술입니다. 우리가 다짐을 하면 사단이 겁을 먹 고 물러가주면 얼마나 좋겠 습니까 그러나 사단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사단도 우리들과 똑 같이 다짐을 하고 우리들의 길을 막아섭니다. 이 때 많은 사람들이 넘어져 버립니다. 추풍낙엽처럼 우수수합니다. 왜 하나님을 의 지하려는 데 이런 일이 생 기는가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그럴 수 있는가 하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되면 회심의 미소 를 짖는 것은 누구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단이지요. 왜죠 예, 그래 내 작전대로 되는구나 하는 것이죠. 우리는 사단이 웃게 해서는 안됩니다. 사단이 승리하도록 해서도 안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새로운 각오를 하고 달려나갈 때 사단이 막아선다고 하더 라도 당황하지 마십시오. 낙망하지 마십시오. 아하 사단이 막아서는 구나 하고 우습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렇 게 되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따라해 보시겠습니까 내가 하나님께 다가서기로 다짐을 하면 사단은 막아설 것을 다짐한다 그렇습니다. 내가 다짐하면 사단도 다짐을 한다는 이 사실을 잊지 마 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단이 여러분들을 막아서실 때 웃으시면서 당당하게 서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야곱의 두 번째 계획 야곱은 이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만 넘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 앞에서 야곱은 이제 어떻게 반응을 할까요 7절 말씀을 보도록 하 겠습니다. 야곱이 심히 두 렵고 답답하여 자 이렇게 되면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여러분 두렵고 답답할 때 무 엇을 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 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는 말씀이나 너희 모든 염려를 맏겨버리라 하는 말씀을 생각하고 무릎을 꿇어야 하죠.
그런데 보십시오. 야곱은 어 떻게 합니까 계속 7,8 절을 읽습니다. .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예, 자기 나름대로 이 위기를 모면해 보기 위해서 계획을 세웁니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보기 위해서 계획을 세우는 것이죠. 이 때 야곱은 무 엇을 바라보았을 까요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까요 아닐 것입니다. 야곱은 위기의 순간 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또 다시 자신의 육적인 자아를 의지합니다. 스스로의 꾀를 의지하는 것이죠. 그리고는 이 렇게 말합니다. 에서가 와 서 한 때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위기의 순간에 여러분들의 머리를 의지해서 계획을 세우시면서 내가 이렇게 피하리라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저는 이 야곱을 보면서 육적인 자아에서 벗어나기가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가를 생각 해 보았습니다. 야곱은 20 년 동안 인생학교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의 위대하심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군 대를 동원하셔서 자신을 지키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는 이런 것들을 보고 신앙이 자라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고하고 야곱은 위기의 순간이 되자 다시 자신의 육적인 자아가 살아나기 시작을 합니다. 이것이 야곱의 모습이죠. 사실 이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 을 해 봅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여러분 나름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나름대로 하나님 께서 살아 계시는 것도 체 험하셨을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체험하고는 밤새워 하나님께 기도해 보기도 했을 것 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새 로운 다짐도 해 보셨을 것입니다. 주님 이제는 주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말씀도 하셨 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 에도 불구하고 어떤 순간이 되면 여러분들의 자아가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실 것입니다. 제어할 수 없는 자아가 우리 내면에서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늘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 뢰하십니까 좀 전에 제가 7절을 읽으면서 두렵고 답답할 때 어떤 성경구절을 떠올려야 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대부분 기도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그렇게 하십니까 삶의 순간순간 위기를 만날 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 습니까 사실 원리하고 실제가 다를 때가 얼마나 많은 지요.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 습이 아닙니까 성숙한 신앙인은 원리를 많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 원리에 따른 실 제가 있어야합니다. 말이 아 닌 삶으로 드러나는 것들이 있어야 합니다. 종종 저의 고민이 이것입니다. 우리 사랑하는교회 성도들의 삶이 과연 얼마나 변하고 있을까 과연 저들이 알고 있는 것만큼 삶이 변해가고 있을까 하는 것 입니다.
여러분들의 많이 아는 것으로 자부심을 갖지 마십시오. 그것은 여러분들의 신앙을 망칠 뿐입니다. 이제는 아는 것을 실제에 옮기기 를 힘쓰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따라오지 않는 신앙 바로 야곱과 같은 신앙이었습니다. 기도하는 야곱 야곱은 이렇게 영과 육 사이를 오가며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금방 하나님을 인하 여 기뻐하다가도 금방 세상을 인하여 낙망하는 것이 바로 이 야곱입니다. 자 이렇게 자신의 머리를 의지하고 계획을 세운 야곱 이제 그는 어떻게 일을 처리할 까요 9절 이하를 보면 그가 하고 있는 일이 있습니다.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을 하 고 있다는 것입니다. 9절 이하에 기록되고 있는 야곱의 기도를 보면 정말 모범적인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번 볼까요 처음에 무엇을 말합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 릅니다. 나의 조부 아브라 함의 하나님, 나의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얼마나 멋지게 하나님을 부르고 있습니까 그리고 또 무엇이라 말하 죠 . 예, 전에 자신에게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 하고 그것을 말씀드립니다. 얼마나 멋지 게 야곱의 기도가 전개됩니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 이렇게 하 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 속을 기억하기 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렇게 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 신의 문제를 꺼내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약속을 먼저 이야기합니다. 참 멋지죠. 그리고는 또 어떻게 말합니까 . 여러분 얼마나 겸손합니까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것을 인 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기도를 드리고난 후에 그는 겸손히 자신의 문제를 아룁니다. 그리고는 요 . 예 그는 또 다시 자신에게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약속을 이 야기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 하나님 께서 이렇게 지켜주신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도와주십시오. 라고 말하 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보 면 야곱의 기도 정말 본이 될 수 있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이 야곱의 모습에서 또 다시 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보십 시오. 야곱이 문제가 생기자 어떻게 처리를 먼저 했죠 그렇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해결 방법을 도모했었습니다. 그 리고는 요 예, 기도하기 시작을 합니다. 바로 이 모습, 이것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취하는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먼저 기도하지 않아요. 하나님께 아뢰지 않고 먼저 백방으로 뛰어다닙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고난 다음 그제야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야곱과 같은 모습이라 할 수 있겠죠. 이것은 바른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모습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문제가 생 기면 먼저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사랑하는교회 성도들에게 문제가 많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 인 격의 문제, 삶의 문제, 이 모양, 저 모양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에 반해 기도하는 성도들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많으니 자연 기도하는 성도도 많아져야 할 터인 데 그렇지 못하다는데 안타 까움을 갖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야곱처럼 하지 마십시오. 야곱을 여러분들의 모델로 삼지 마시기 바랍니다. 문제가 있을 때 기도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다시 육으로 자
그렇다면 야곱이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하고난 후에는 어떻게 할 까요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 하실 것인 가를 기다릴 까요 13절 이하를 읽습니다. . 야곱이 무엇을 합니까 예, 여전히 자신의 방법대로 일 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는 분명히 멋진 기도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 고 그 기도가 끝난 후 그는 여전히 자신의 방법대로 문제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20절 말씀을 보면 이런 야곱의 생각을 이렇게 꼬집어 놓고 있습니다. .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야곱의 생각이라는 말입니다. 즉, 이것은 순전히 야곱의 생각이었다는 말이죠. 여기서 우리들이 또한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를 잘 하는 것과 믿음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야곱이 얼마나 수준 높은 기도를 드렸습니까 그러나 그는 기도대로 자신의 삶을 맡기지 않았 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아십니까 기도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요. 그렇습니다. 기도는 말이 아닙니다. 기도는 마음 이어야 하고 삶이어야 합니다. 기도는 믿음의 표현이기 때문에 그 기도에 따른 자신의 삶이 따라와야 합니다. 기도는 그럴듯하게 하고는 자신의 삶이 거기에 따라오지 않는다면 그 기도는 말로 한 기도입니다. 비록 말은 잘 못 하더라도 그 기도에 자신의 삶을 싣는다면 그 기도는 힘있는 기도입니다. 오늘 우리들 에게 안타까운 현실 하나가 있습니다. 기도는 잘합니다. 얼마나 유창한지요.
그런데 이에 반해 삶이 따라오지 않습니다. 야곱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야곱처럼 말뿐인 기도를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의 기도가 유창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 습니다. 좀 더듬거려도 상관이 없습니다. 어법에 맞지 않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이 문제이지 않습니다. 문제는 내가 기도한대로 살아가느냐 아니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로 기도하려 하지 마십시 오. 삶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온 몸으로 기도하십시오. 온 마음으로 기도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제가 처음에 퀴즈를 하나 드렸습니다. 영과 육 사이에 무엇이 있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어떻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니 무엇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야곱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문제 를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영과 육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계획 사 이에서, 믿음과 불신의 사이 에서, 거듭난 자신과 거듭나지 못한 자아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야곱만 이 사이에 있습니까 혹 여러분들도 여기에 있지 않습니까 이제 이 시간 여러분들의 신앙의 주소를 생각해 보십 시오. 나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나의 신앙의 주소는 영인가 육인가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의 신앙의 주소는 어디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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