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백성 (창29:1)
본문
지금까지 우리는 누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이어받을까에 대해 살펴보 았습니다. 다시 정리해 본다면 족장사(아브라함-이삭-야곱의 역사)의 관 심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을 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하늘의 뭇별과 같이 땅의 티끌과 같이 이룩해 나갈 것인가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특히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게 된 의미가 바로 이점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이어받은 이스라엘 즉, 선민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29장은 야곱의 외삼촌 라반의 집에 살게된 동기와 라헬을 사랑하여 7년간 봉사하였으나라반의 음모로 레아와 결혼하게된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그 결 과 야곱은 7년을 더 일을 해야 했습니다. 30장에 와서는 라헬과 레아 사이의 질투가 발동하며 어떻게 해서 야곱은 11명의 아들과 딸 디나를 얻게 되었는지 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심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별로 유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하나님의 깊으신 섭리가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장차 이스라엘을 이룩 할 12족장의 출생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이지만 그 아내와 그 여종에게서 12족 장이 출생했다는 것은-곧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이 제는 누가 그 나라의 유업을 받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일단락되고 일단 야곱 의 피를 이어 받으면 모두가 그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우주적인 구원관이 담 겨있는 것입니다. 즉, 그 소생의 귀천이 없어지고 적자나 서자나 누구나가 된다는 점을 볼 때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단순히 한 민족에게만 국한 될 것이 아니라 장차 전 세계 민족에게 확대될 것이라는 여명의 불씨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두 여종 빌하와 실바는 그들의 여주인 라헬과 레아의 질투심으로 족장 야곱의 후처가 되었으나 그들은 명실상부한 이스라엘의 12족장의 어머니가 되었다는 것은 놀 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와같이 역사하신 분이 곧 하나님이시 라는 사실은 더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그와같은 타의적인 선택에서 주어진 것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고자 하여 얻어 진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권적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시어 그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것 뿐입니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 국가를 이룩할 12족장의 출생이 마무리 지어졌습니다 (아직 막내인 베냐민은 출생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리고 하나님은 야곱을 축복하시어 큰 부자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물론 이 일을 행하시는 분도 역시 하나님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야곱이 라반에게서 정중한 대우를 받지 못하게 함으로써 밧단 아람에 정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고 본향인 가나안 땅을 소원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곳을 떠나도록 종용하셨습니다. 그러나 일단 가나안에서 쫓겨나온 야곱이 다시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선결되어야 할 문제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야곱은 그 인생 항로에 있어서 너무나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었습니다. 그리고 그 버릇은 라반 의 집에서 떠나올 때까지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새롭게 변화시켜야 할 필요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 방법으로 하나님은 야곱의 마음 속에 에서를 심히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야곱은 교묘한 방법으로 두 떼를 만들어서 최소한도로 피해를 막아볼려고 했으나 그 자신이 혹시 에서의 칼날 에 죽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얍복강에 홀로 남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완전히 허탈감에 빠져있는 야곱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지금까 지는 야곱이 하나님의 축복을 너무 많이 받았고 하나님은 그렇게 함으로써 이 스라엘 12족장을 세우는데 관심을 두셨으므로 그가 행한 여러가지 육적인 행 위는 어느 정도 묵과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가나안을 앞둔 야곱에게 서 그러한 육적인 요소들을 제거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야곱의 인생에 있 어서 획기적인 사건은 이렇게 해서 이곳 브니엘에서 발생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친히 씨름을 하시고 이제부터는 인간과 다툴 것이 아니라 축복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매달리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고 하지 않고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김; 하나님 께 철저히 순복함)로 부르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져주심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인류의 구원은 그리스도께서 자신 을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복종시키심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얻어낸 것입니다. 도저히 다시는 구원받을 수 없는 인간들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처절하게 싸우 심으로 하나님은 그 아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야곱은 이 싸움의 결과로 환도뼈가 부러졌습니다. 그는 평생 절뚝거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에 의존하다가는 그렇게 부러질 것이라는 경 고였습니다. 하나님만 의존하고 하나님만 바라도록 주어진 증표인 것입니다. 그런 후 야곱은 형 에서를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에서에 대한 두려움은 너무나 쉽게 무너지고 에서와 화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볼 때 어떤 두려움도 이처럼 쉽게 소멸되고 마는 것입니다.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에 이르러 성 앞에 그 장막을 치고."(33:18)라고 기록하며 33장이 끝납니다. 그러나 평안 속에는 또 다시 죄악이 깃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야곱은 28:18-22에서 하나님과 약속한 것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벧엘로 올라가지 애고 세겜에 너무나 오랫 동안 머물렀던 것입니다. 결국 디나가 욕보임을 당하고 큰 위기에 직면 한 후에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벧엘에서 하나님은 다시 언 약을 재확인시켜 줍니다(35:9-12). 끝으로 35:18에서 베냐민이 출생하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계획해 오셨던 이스라엘의 12족장이 모두 출생됨으로 하나님 나라에 속할 백성의 두령이 나 타남으로 그 긴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특히 23절 이하의 족보는 이러한 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 입니아. 그러나 이전의 족보와는 다른 점이 있는데 지금까지는 어느 한 개인 의 출생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중시한 반면에 이곳의 족보는 12아들의 역사가 따로 독립되어 있지 않고 족장 야곱의 역사에 소속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족장사는 아브라함-이삭-야곱으로 이어지게 되며 이스라엘의 12아 들의 역사는 족장사가 아닌 이스라엘의 역사 즉, 선민의 역사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세기가 끝나고 새로 시작되는 출애굽기는 개인의 역사 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고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사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 이 족장사인 창세기와는 다른 점인 것입니다. 또한 가지 관심을 가질 것은 36장의 에서의 족보가 나오는데 에서의 족보는 이제 완전히 독립되어 새로운 가계를 시작하고 있다는 점을 보아서 이 족 보는 하나님의 나라의 계보와는 완전히 분리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 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백성에 대한 윤곽이 확실히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두 여종 빌하와 실바는 그들의 여주인 라헬과 레아의 질투심으로 족장 야곱의 후처가 되었으나 그들은 명실상부한 이스라엘의 12족장의 어머니가 되었다는 것은 놀 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와같이 역사하신 분이 곧 하나님이시 라는 사실은 더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그와같은 타의적인 선택에서 주어진 것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고자 하여 얻어 진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권적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시어 그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것 뿐입니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 국가를 이룩할 12족장의 출생이 마무리 지어졌습니다 (아직 막내인 베냐민은 출생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리고 하나님은 야곱을 축복하시어 큰 부자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물론 이 일을 행하시는 분도 역시 하나님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야곱이 라반에게서 정중한 대우를 받지 못하게 함으로써 밧단 아람에 정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고 본향인 가나안 땅을 소원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곳을 떠나도록 종용하셨습니다. 그러나 일단 가나안에서 쫓겨나온 야곱이 다시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선결되어야 할 문제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야곱은 그 인생 항로에 있어서 너무나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었습니다. 그리고 그 버릇은 라반 의 집에서 떠나올 때까지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새롭게 변화시켜야 할 필요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 방법으로 하나님은 야곱의 마음 속에 에서를 심히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야곱은 교묘한 방법으로 두 떼를 만들어서 최소한도로 피해를 막아볼려고 했으나 그 자신이 혹시 에서의 칼날 에 죽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얍복강에 홀로 남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완전히 허탈감에 빠져있는 야곱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지금까 지는 야곱이 하나님의 축복을 너무 많이 받았고 하나님은 그렇게 함으로써 이 스라엘 12족장을 세우는데 관심을 두셨으므로 그가 행한 여러가지 육적인 행 위는 어느 정도 묵과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가나안을 앞둔 야곱에게 서 그러한 육적인 요소들을 제거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야곱의 인생에 있 어서 획기적인 사건은 이렇게 해서 이곳 브니엘에서 발생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친히 씨름을 하시고 이제부터는 인간과 다툴 것이 아니라 축복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매달리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고 하지 않고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김; 하나님 께 철저히 순복함)로 부르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져주심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인류의 구원은 그리스도께서 자신 을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복종시키심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얻어낸 것입니다. 도저히 다시는 구원받을 수 없는 인간들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처절하게 싸우 심으로 하나님은 그 아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야곱은 이 싸움의 결과로 환도뼈가 부러졌습니다. 그는 평생 절뚝거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에 의존하다가는 그렇게 부러질 것이라는 경 고였습니다. 하나님만 의존하고 하나님만 바라도록 주어진 증표인 것입니다. 그런 후 야곱은 형 에서를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에서에 대한 두려움은 너무나 쉽게 무너지고 에서와 화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볼 때 어떤 두려움도 이처럼 쉽게 소멸되고 마는 것입니다.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에 이르러 성 앞에 그 장막을 치고."(33:18)라고 기록하며 33장이 끝납니다. 그러나 평안 속에는 또 다시 죄악이 깃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야곱은 28:18-22에서 하나님과 약속한 것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벧엘로 올라가지 애고 세겜에 너무나 오랫 동안 머물렀던 것입니다. 결국 디나가 욕보임을 당하고 큰 위기에 직면 한 후에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벧엘에서 하나님은 다시 언 약을 재확인시켜 줍니다(35:9-12). 끝으로 35:18에서 베냐민이 출생하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계획해 오셨던 이스라엘의 12족장이 모두 출생됨으로 하나님 나라에 속할 백성의 두령이 나 타남으로 그 긴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특히 23절 이하의 족보는 이러한 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 입니아. 그러나 이전의 족보와는 다른 점이 있는데 지금까지는 어느 한 개인 의 출생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중시한 반면에 이곳의 족보는 12아들의 역사가 따로 독립되어 있지 않고 족장 야곱의 역사에 소속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족장사는 아브라함-이삭-야곱으로 이어지게 되며 이스라엘의 12아 들의 역사는 족장사가 아닌 이스라엘의 역사 즉, 선민의 역사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세기가 끝나고 새로 시작되는 출애굽기는 개인의 역사 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고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사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 이 족장사인 창세기와는 다른 점인 것입니다. 또한 가지 관심을 가질 것은 36장의 에서의 족보가 나오는데 에서의 족보는 이제 완전히 독립되어 새로운 가계를 시작하고 있다는 점을 보아서 이 족 보는 하나님의 나라의 계보와는 완전히 분리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 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백성에 대한 윤곽이 확실히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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