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임을 당하는 야곱 (창29:21-35)
본문
인간에게 당하는 어려움이 무엇인가 에 대한 해답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 원인과 어려움애 대한 해석은 더욱 중요하다.
1. 성도가 당하는 어려움
1) 신앙 때문에 당하는 환란이 있다.
2)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여 오는 어려움도 있다.
3) 성도가 알지 못하면 당하는 어려움이 무엇인가 창3:l-20, 6:l-4, 14:l-14, 12:l-l0, 26:33-34, 28:l0-22 성도는 하나님의 축복의 자녀이다. 이 사실을 모르면 어려움 당한다.
2. 아곱이 당하는 어려움
1) 집을 떠난 나그네 생활
2) 형과의 갈등
3) 외삼촌의 야비함 4) 그러나 진정한 어려움은 야곱의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하는 이유를 깨닫 게 하는 것이다. 5) 속임을 당하는 야곱(본문) 6) 성도의 실패를 단순히 보아선 안된다. 인본주의, 불신양, 염려. 속임수 등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은 아곱의 미래를 두고 어려움을 허락하셨다.
1) 야곱에게 기도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2) 어려움 속에서 얻는 가족들이 후일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셨다.
3) 아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드는 어려움이 계속되어 지고 있다.
4. 적용: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가 아니면 어려움이 계속되는가 둘 다 하나님의 손이다. 창세기 메세지 50 속임을 당하는 야곱 교 사 용 (창29:21-35) 인간에게 당하는 어려움이 무엇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매우 중요하다. 불신자가 어려움을 당한다면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의 문제와 어려움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인과응보의 하나님은 아니다. 그러나, 그 원인과 어려움에 대한 해석이 더 중요하다. 절대로 단편적으로 해석하면 안된다.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성도라도 하나님이 그 성도를 부를때부터 이 세상을 떠날때까지 원대한 계획 속에서 일어나는 한 사건이다. 저 사람이 무엇을 잘못해서 저런 어려움을 당할까 쉽게 판단하기 쉽다. 이 말도 일리는 있으나, 쉽게 단정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리고, 어려움이 오거든 잘 참는 인격을 갖추어라!는 말도 틀린 것이다. 제대로 알아야 된다. 고난의 의미를 알아야 된다. 어려움에 대한 의미를 알아야 된다.
1. 성도가 당하는 어려움
1) 신앙 때문에 당하는 환난은 축복이다. 신앙 때문에 당하는 환난은 반드시 축복의 문이다. 이것을 알고 보아야 한다.
2) 하나님의 은혜받지 못해서 오는 어려움도 있다. 그것도 실패는 아니다. 거기 서 깨달으면 성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은혜받지 못한 성도에게 어려움을 주 셔서 깨닫게 하신 다음에 축복하시는 것이다. 계속 불신앙하고 인본주의가 쌓 이면 고생한다.
3) 성도가 알지 못해서 당하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창3:1-5-그랬던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죄에 빠지고 사단에게 묶였다. 창3:15-이 죄악의 묶임에서 빠져 나오는 것을 사람 스스로가 할 수 없으므 하나님이 친히 개입하셨다. 이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여인의 후손 으로! 창3:21-구원의 방법은 피! 로 되어진다. 즉 메시야로 되어진다. 창6:14-20-큰 사건이 일어나는데, 창3:15절의 약속을 아는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어서 구원받는 방법과 언약을 주셨다. 창3:15절의 피 약속을 모르니까 방주의 소중함을 알 수가 없다. 그것이 네피림시대 사람의 특징이다. 여기서 사단은 우리에게 딱 하나만 모르게 한다. 메시야와 그리스도를 모 르게 막는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 하나만 제대로 알 면 다 풀리고 해결된다. 메시야 피 의 약속 하나를 몰라서 완전히 망하게 된다. 창12:1-10-구원받은 성도들.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완전한 축복의 계획 속에 불렀다.
그런데, 그 계획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구원받는다. 창3:15절을 구체적으로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언약의 백성으로 아브라함을 불렀다 창22장-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을 언제 깨닫는가 100세에 아들을 낳는 사건을 통해서 비로소 깨달았다. 그 약속을 완전히 믿었다는 증거가 무엇인가 그 아들을 완전히 드리는데서 나타났다. 약속을 주셨기 때문에 이 아이는 망하지 않고, 죽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믿었다. 창25:21-이삭이 깨달았다. 깨달을 때까지 하나님은 자식을 주지 않았다. 무 엇을 깨달았느냐면 축복의 계획을 깨닫기 까지였다. 창28:10-20-야곱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아브라함의 손자이다.
그러므로 그냥 자기 아버지 집에서 죽이나 끊이고 앉아 있을 수준이 아니었다. 그것 을 야곱이 깨달을 때까지 고생을 많이 하였다. 성도가 약속을 받았는데, 그 약속이 축복의 약속이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계 속 있기만 하면 되는데, 자꾸 엉뚱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가 하나님의 축복의 자녀 라는 사실을 모르면 어려움을 당한다. 이것을 모르고 자꾸 만 엉뚱한 일을 하니까, 그것을 알아라고 고생시키는 것이다. 인본주의라는 방법 그 자체를 나쁘다고 만은 할 수 없다. 머리를 써서 하는 그것이 무슨 큰 죄가 되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가 죄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머리써서 되도록 하시지 않으시는 것이다. 구원받은 성도는 우리 머리를 쓸 필요가 없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 고 머리를 쓰니까, 그것이 배은망덕인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 보실때 답답한 일이 된다. 그래서 깨달아라!고 주시는 것이 어려움인 것이다. 인본주의 쓰니 나빠서 벌받아라!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하지말고 나의 축복 속으로 들어오 라!는 것이다.
2. 야곱이 당하는 어려움
1) 집을 떠난 나그네 생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 고생을 일부러 시킨 것이 아니고, 생각을 많이하고 깨닫도록 하신 것이다. 일단은 집을 떠나야만 그것이 가능한 것이다. 왜냐 야곱이 그 집에서 살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죽을 돌릴 신분이 아니다. 누구인가 아브라 함의 손자이다. 약속의 자녀요, 후손이다.
2) 형과의 갈등 갈등 속에서 외삼촌 집으로 피신가게 만들었고, 거기서 기도해서 깨닫도록 하 였다.
3) 외삼촌의 야비함 외삼촌은 야비하다. 야곱이 얼마나 탄식이 되겠는가 탄식하면, 부모가 있어서 위로가 되겠는가 다른데 볼것도 없고, 오직 기도할 것밖에 없다. 외삼촌이 창24장에 보면,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떻게해서 그렇게 되었는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모양이다. 그러니, 하나님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하나님의 목적은 한 가지이다. 나그네 생활을 해서, 갈등 생기게 만들어서, 외심촌에게서도 배신감을 느끼게 만들어서 깨닫게 하였다.
4) 진정한 어려움은 야곱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1) 야곱의 체질이 인본주의이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한다. 태어날때부어 워낙 인본주의 체질이다. 축복 받기에는 안맞는 체질이다. 축복받기도무지 불가능한 체질인데도 약속을 가진 사람, 약속을 붙든 사람에게는 그 체질을 바꾸어서라도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야곱에게 계속 어려움을 주시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변화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체질을 바꾸어라! 그 체질로서는 축복을 못누린다!는 것이다. 그 체질을 언제 완전 히 바꾸었는가 창32장의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 할때이다. 그 증거로 하나님 이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원래 주게 되어 있다. 왜냐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이름이다. 오늘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새 이스라엘 이름이 있는 줄 믿어야 한다. 그래서 전 세계를 장악할 수 밖에 없는데, 자꾸 다른 짓을 하면 안된다.
(2) 성도의 실패를 단순히 보아서는 안된다.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보아야 한다. 인본주의, 불신앙, 염려, 속임수등 그 자체가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만약에 우리가 이런 것들로 심판을 받아야 한다면, 하루에도 수십번은 죽었다가 깨 어나야 될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의 체질이 약한줄을 하나님은 잘 아신다. 여전히 부족한 것을 잘 아신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축복의 자녀이다. 약속을 주신 자녀이다. 그러기에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는 때려가면서도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다른 목적은 절대로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말을 하면 안된다. 축복의 자녀가 왜 자꾸 엉뚱한 짓을 하느냐 그것을 안해야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3. 하나님은 야곱의 미래를 위해서 어려움을 허락했다.
1) 미래의 증인의 삶을 위한 어려움이었다. 참으면 축복이 아니다. 약속을 모르고 그런 말을 하면 안된다. 불신자들도 모 르고 설치는 것보다, 참고 가만히 있는 것이 낫다 이것은 일반적인 상식이다. 떠드는 것보다 참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이 상식인 것이다.
그런데, 약속을 모르고 참으면, 그것이 복이 아니다. 계속 고생이다. 또다른 고생이 또 온다. 왜냐 하나님은 못깨달으면 참아도 계속 어려움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끝까지 참겠는가 인내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런 근본 문제는 모르고, 자꾸만 어려움에 대하여 말하기를 다 하나님의 뜻이 있다! 고 한다.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뜻이 무슨 뜻인가 이것이 문제이다. 막연히 거저 하나님의 뜻이라고만 말하고 지나가니 답답하다. 하나님에게는 다 계획 이 있다.
그런데, 그 계획이 자꾸만 바뀌고 달라지는 계획일까 하나님에게는 한가지 계획밖에 없다. 어마어마한 축복의 신분임을 깨닫고, 회복하라!는 것이다. 바로 그 말이다. 그것 말고는 없다. 우리가 무엇이 훌륭하다고 또 다른 계획을 자꾸 주시겠는 가 다른 계획이 없다. 그 큰 계획 속에 작은 하나하나의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것이 지, 방향은 똑같다. 이 큰 계획부터 바로잡지 않고, 열심부터 내면 열심을 낼수록 망하는 것이다. 서울을 가야 될텐데, 방향을 부산으로 해놓고, 아무리 빨리 달려보아도 더 서울은 멀어진다. 서울 쪽으로 방향을 바로 틀어 놓으면 천천히 가도 가게 된다.
그러므로 방향부터 잘 잡아야 한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불렀는가 이것부터 확실히 안되면, 자꾸만 엉뚱한 소리를 한다. 심방가서, 거짓말을 많이도 했다. 고생이 되지만, 참아라! 다 하나님이 뜻이있 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니까, 참아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이것이 말은 맞다. 그러나, 명쾌하게 말을 못해 준 것이다. 잘 알아야 된다. 돌잔치에 가서 다른 말 할것이 없다. 거저, 축복의 증인으로 살아라!는 것 뿐이다. 부모가 자식들 앞에서 가르치지 말고, 증인이 먼저 되라!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증인되라!고 하였다. 어느 대상이든지 증인되어야 한다. 부모라고 자식들을 불러놓고, 인격 훈계하고 그러지 말고, 훈계하기 이전에 증인이 되어야 한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축복의 증인으로 설때 그때 바로 교육되어 지는 것이다.
2) 기도하게 하기위한 어려움이었다. 어려움 속에서 얻는 가족들이 후일에 그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축복을 계승시 키도록 하기 위해서 그 고통의 생활 속에서 지금 자녀들을 낳게 하는 것이다. 12명의 아들을 낳는다. 야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드는 어려움이 계속 되어지고 있다.
3.
1)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이 함께하십니까 증거가 있느냐는 것이다. 아니면, 어려움이 있느냐는 것이다. 어려움이 있어 도 하나님의 교훈을 찾으시기 바란다. 그러면, 윤리는 어떻게 하느냐 윤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방법은 어떻게 하는가 성령님의 인도 받아서 하는 것이다.
2) 잘되면, 하나님의 영광이다. 잘못되면, 교훈 찾으면 된다. 둘 다 하나님의 손 이다.
1. 성도가 당하는 어려움
1) 신앙 때문에 당하는 환란이 있다.
2)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여 오는 어려움도 있다.
3) 성도가 알지 못하면 당하는 어려움이 무엇인가 창3:l-20, 6:l-4, 14:l-14, 12:l-l0, 26:33-34, 28:l0-22 성도는 하나님의 축복의 자녀이다. 이 사실을 모르면 어려움 당한다.
2. 아곱이 당하는 어려움
1) 집을 떠난 나그네 생활
2) 형과의 갈등
3) 외삼촌의 야비함 4) 그러나 진정한 어려움은 야곱의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하는 이유를 깨닫 게 하는 것이다. 5) 속임을 당하는 야곱(본문) 6) 성도의 실패를 단순히 보아선 안된다. 인본주의, 불신양, 염려. 속임수 등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은 아곱의 미래를 두고 어려움을 허락하셨다.
1) 야곱에게 기도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2) 어려움 속에서 얻는 가족들이 후일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셨다.
3) 아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드는 어려움이 계속되어 지고 있다.
4. 적용: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가 아니면 어려움이 계속되는가 둘 다 하나님의 손이다. 창세기 메세지 50 속임을 당하는 야곱 교 사 용 (창29:21-35) 인간에게 당하는 어려움이 무엇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매우 중요하다. 불신자가 어려움을 당한다면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의 문제와 어려움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인과응보의 하나님은 아니다. 그러나, 그 원인과 어려움에 대한 해석이 더 중요하다. 절대로 단편적으로 해석하면 안된다.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성도라도 하나님이 그 성도를 부를때부터 이 세상을 떠날때까지 원대한 계획 속에서 일어나는 한 사건이다. 저 사람이 무엇을 잘못해서 저런 어려움을 당할까 쉽게 판단하기 쉽다. 이 말도 일리는 있으나, 쉽게 단정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리고, 어려움이 오거든 잘 참는 인격을 갖추어라!는 말도 틀린 것이다. 제대로 알아야 된다. 고난의 의미를 알아야 된다. 어려움에 대한 의미를 알아야 된다.
1. 성도가 당하는 어려움
1) 신앙 때문에 당하는 환난은 축복이다. 신앙 때문에 당하는 환난은 반드시 축복의 문이다. 이것을 알고 보아야 한다.
2) 하나님의 은혜받지 못해서 오는 어려움도 있다. 그것도 실패는 아니다. 거기 서 깨달으면 성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은혜받지 못한 성도에게 어려움을 주 셔서 깨닫게 하신 다음에 축복하시는 것이다. 계속 불신앙하고 인본주의가 쌓 이면 고생한다.
3) 성도가 알지 못해서 당하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창3:1-5-그랬던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죄에 빠지고 사단에게 묶였다. 창3:15-이 죄악의 묶임에서 빠져 나오는 것을 사람 스스로가 할 수 없으므 하나님이 친히 개입하셨다. 이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여인의 후손 으로! 창3:21-구원의 방법은 피! 로 되어진다. 즉 메시야로 되어진다. 창6:14-20-큰 사건이 일어나는데, 창3:15절의 약속을 아는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어서 구원받는 방법과 언약을 주셨다. 창3:15절의 피 약속을 모르니까 방주의 소중함을 알 수가 없다. 그것이 네피림시대 사람의 특징이다. 여기서 사단은 우리에게 딱 하나만 모르게 한다. 메시야와 그리스도를 모 르게 막는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 하나만 제대로 알 면 다 풀리고 해결된다. 메시야 피 의 약속 하나를 몰라서 완전히 망하게 된다. 창12:1-10-구원받은 성도들.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완전한 축복의 계획 속에 불렀다.
그런데, 그 계획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구원받는다. 창3:15절을 구체적으로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언약의 백성으로 아브라함을 불렀다 창22장-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을 언제 깨닫는가 100세에 아들을 낳는 사건을 통해서 비로소 깨달았다. 그 약속을 완전히 믿었다는 증거가 무엇인가 그 아들을 완전히 드리는데서 나타났다. 약속을 주셨기 때문에 이 아이는 망하지 않고, 죽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믿었다. 창25:21-이삭이 깨달았다. 깨달을 때까지 하나님은 자식을 주지 않았다. 무 엇을 깨달았느냐면 축복의 계획을 깨닫기 까지였다. 창28:10-20-야곱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아브라함의 손자이다.
그러므로 그냥 자기 아버지 집에서 죽이나 끊이고 앉아 있을 수준이 아니었다. 그것 을 야곱이 깨달을 때까지 고생을 많이 하였다. 성도가 약속을 받았는데, 그 약속이 축복의 약속이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계 속 있기만 하면 되는데, 자꾸 엉뚱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가 하나님의 축복의 자녀 라는 사실을 모르면 어려움을 당한다. 이것을 모르고 자꾸 만 엉뚱한 일을 하니까, 그것을 알아라고 고생시키는 것이다. 인본주의라는 방법 그 자체를 나쁘다고 만은 할 수 없다. 머리를 써서 하는 그것이 무슨 큰 죄가 되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가 죄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머리써서 되도록 하시지 않으시는 것이다. 구원받은 성도는 우리 머리를 쓸 필요가 없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 고 머리를 쓰니까, 그것이 배은망덕인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 보실때 답답한 일이 된다. 그래서 깨달아라!고 주시는 것이 어려움인 것이다. 인본주의 쓰니 나빠서 벌받아라!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하지말고 나의 축복 속으로 들어오 라!는 것이다.
2. 야곱이 당하는 어려움
1) 집을 떠난 나그네 생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 고생을 일부러 시킨 것이 아니고, 생각을 많이하고 깨닫도록 하신 것이다. 일단은 집을 떠나야만 그것이 가능한 것이다. 왜냐 야곱이 그 집에서 살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죽을 돌릴 신분이 아니다. 누구인가 아브라 함의 손자이다. 약속의 자녀요, 후손이다.
2) 형과의 갈등 갈등 속에서 외삼촌 집으로 피신가게 만들었고, 거기서 기도해서 깨닫도록 하 였다.
3) 외삼촌의 야비함 외삼촌은 야비하다. 야곱이 얼마나 탄식이 되겠는가 탄식하면, 부모가 있어서 위로가 되겠는가 다른데 볼것도 없고, 오직 기도할 것밖에 없다. 외삼촌이 창24장에 보면,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떻게해서 그렇게 되었는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모양이다. 그러니, 하나님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하나님의 목적은 한 가지이다. 나그네 생활을 해서, 갈등 생기게 만들어서, 외심촌에게서도 배신감을 느끼게 만들어서 깨닫게 하였다.
4) 진정한 어려움은 야곱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1) 야곱의 체질이 인본주의이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한다. 태어날때부어 워낙 인본주의 체질이다. 축복 받기에는 안맞는 체질이다. 축복받기도무지 불가능한 체질인데도 약속을 가진 사람, 약속을 붙든 사람에게는 그 체질을 바꾸어서라도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야곱에게 계속 어려움을 주시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변화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체질을 바꾸어라! 그 체질로서는 축복을 못누린다!는 것이다. 그 체질을 언제 완전 히 바꾸었는가 창32장의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 할때이다. 그 증거로 하나님 이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원래 주게 되어 있다. 왜냐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이름이다. 오늘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새 이스라엘 이름이 있는 줄 믿어야 한다. 그래서 전 세계를 장악할 수 밖에 없는데, 자꾸 다른 짓을 하면 안된다.
(2) 성도의 실패를 단순히 보아서는 안된다.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보아야 한다. 인본주의, 불신앙, 염려, 속임수등 그 자체가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만약에 우리가 이런 것들로 심판을 받아야 한다면, 하루에도 수십번은 죽었다가 깨 어나야 될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의 체질이 약한줄을 하나님은 잘 아신다. 여전히 부족한 것을 잘 아신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축복의 자녀이다. 약속을 주신 자녀이다. 그러기에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는 때려가면서도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다른 목적은 절대로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말을 하면 안된다. 축복의 자녀가 왜 자꾸 엉뚱한 짓을 하느냐 그것을 안해야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3. 하나님은 야곱의 미래를 위해서 어려움을 허락했다.
1) 미래의 증인의 삶을 위한 어려움이었다. 참으면 축복이 아니다. 약속을 모르고 그런 말을 하면 안된다. 불신자들도 모 르고 설치는 것보다, 참고 가만히 있는 것이 낫다 이것은 일반적인 상식이다. 떠드는 것보다 참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이 상식인 것이다.
그런데, 약속을 모르고 참으면, 그것이 복이 아니다. 계속 고생이다. 또다른 고생이 또 온다. 왜냐 하나님은 못깨달으면 참아도 계속 어려움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끝까지 참겠는가 인내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런 근본 문제는 모르고, 자꾸만 어려움에 대하여 말하기를 다 하나님의 뜻이 있다! 고 한다.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뜻이 무슨 뜻인가 이것이 문제이다. 막연히 거저 하나님의 뜻이라고만 말하고 지나가니 답답하다. 하나님에게는 다 계획 이 있다.
그런데, 그 계획이 자꾸만 바뀌고 달라지는 계획일까 하나님에게는 한가지 계획밖에 없다. 어마어마한 축복의 신분임을 깨닫고, 회복하라!는 것이다. 바로 그 말이다. 그것 말고는 없다. 우리가 무엇이 훌륭하다고 또 다른 계획을 자꾸 주시겠는 가 다른 계획이 없다. 그 큰 계획 속에 작은 하나하나의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것이 지, 방향은 똑같다. 이 큰 계획부터 바로잡지 않고, 열심부터 내면 열심을 낼수록 망하는 것이다. 서울을 가야 될텐데, 방향을 부산으로 해놓고, 아무리 빨리 달려보아도 더 서울은 멀어진다. 서울 쪽으로 방향을 바로 틀어 놓으면 천천히 가도 가게 된다.
그러므로 방향부터 잘 잡아야 한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불렀는가 이것부터 확실히 안되면, 자꾸만 엉뚱한 소리를 한다. 심방가서, 거짓말을 많이도 했다. 고생이 되지만, 참아라! 다 하나님이 뜻이있 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니까, 참아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이것이 말은 맞다. 그러나, 명쾌하게 말을 못해 준 것이다. 잘 알아야 된다. 돌잔치에 가서 다른 말 할것이 없다. 거저, 축복의 증인으로 살아라!는 것 뿐이다. 부모가 자식들 앞에서 가르치지 말고, 증인이 먼저 되라!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증인되라!고 하였다. 어느 대상이든지 증인되어야 한다. 부모라고 자식들을 불러놓고, 인격 훈계하고 그러지 말고, 훈계하기 이전에 증인이 되어야 한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축복의 증인으로 설때 그때 바로 교육되어 지는 것이다.
2) 기도하게 하기위한 어려움이었다. 어려움 속에서 얻는 가족들이 후일에 그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축복을 계승시 키도록 하기 위해서 그 고통의 생활 속에서 지금 자녀들을 낳게 하는 것이다. 12명의 아들을 낳는다. 야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드는 어려움이 계속 되어지고 있다.
3.
1)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이 함께하십니까 증거가 있느냐는 것이다. 아니면, 어려움이 있느냐는 것이다. 어려움이 있어 도 하나님의 교훈을 찾으시기 바란다. 그러면, 윤리는 어떻게 하느냐 윤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방법은 어떻게 하는가 성령님의 인도 받아서 하는 것이다.
2) 잘되면, 하나님의 영광이다. 잘못되면, 교훈 찾으면 된다. 둘 다 하나님의 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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