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 (창17:17)
본문
이삭이라는 이름의 어원은 히브리어 동사 이스하크에서 온 것인데 "그가 웃다"(혹은 "그가 웃을 것이다") 라는 뜻이다.
그런데 주어가 불분명하므로 주어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여러가지 문서를 기초로하나 다양한 견해들이 있지만 대부분 인간 어원적인 실명들이다. 일반적으로 엘(하나님)을 주어로 하여 "하나님으로 웃게 하다"(하나님이여 웃으소서")라는 뜻으로 자애로운 사랑으로 아기를 낳은 것을 하나님께서 보시라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삭은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서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출생한 아들이다. 출생지는 브엘세바로 그가 출생했을 때 아브라함은 100세, 어머니 사라는 90세였다(창17:17,21:5). 아브라함은 자신들에게 아들이 난다는 약속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을때 어처구니 없어 웃었다(창 17:17-19). 사라도 장막 문에서 이 약속을 듣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웃었다(창 18:9-15). 그로부 ' 터 25년후 약속에 따라 아들을 낳았을 때 사라는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 니'라고 고백했다(창21:6). 그래서 이와같은 일을 기억하기 위해 아브라함 은 출생한 아들을 이삭이라고 이름했다(창21:3). 여기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볼 수 있다. 이삭은 혈통에 있어서 순수하다. 즉 그의 어머니 사라는 아브라함의 아내 였을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의붓 누이였다. 그래서 이삭은 친가쪽으로나 외가쪽으로 모두 데라의 가족이다.
또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의 첫 자녀였기 때문에 규정된 8일째 되는 날 할례의 표적을 받은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삭은 약속의 아들이며 사라의 아들로서 법적 상속자이므로 애굽인 여종 하갈이 아브라함에게서 먼저 낳은 육에 의한 아들 이스마엘보다 합법 적인 우선권을 가진다(창17:19-21,21:12). 즉 사라가 하갈 모자를 내쫓으라 고 아브라함에게 강력히 요구할 때에 하나님게서 사라의 요구를 들어주라 고 하시며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로써 인간의 성급함과 불신으로 인하여 태어난 이스마엘을 통해서가 아니 라오직 하나님의 은총으로 허락받은 약속의 아들 이삭을 통해서만 하나님 의 약속이 아브라함에 전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신앙을 시험하고 증거하기 위해 이삭을 번제로 바칠 것을 명하셨다. 이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게서 자기가 간구하는 바를 모두 알고 계시며 또한 이삭도 복종하고 따르리라 믿으며 이 명령에 순종했다. 이삭도 나뭇단을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으므로 제사 의식 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된다.그럼에도 아버지의 지혜와 사랑에 의지하고 또 아버지를 본보기로 하나님의 섭리를믿으며 약속의 아들답게 아 버지의 계획에 따랐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꽁꽁 묶어 제단의 나무위에 얹었다. 그리고 그의 전소 유를 하나님께 다 바쳐버리는 순종을 나타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대 신하여 수양 한마리를 예비해 주셨다(창 22:1-18). 아브라함은 점점 늙어가 므로 아들을 위해서 아내를 얻어 주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이일을 그의 충성스러운 종 엘리에셀에게 부탁했다. 이 결혼은 단지 아브라함의 중요한 일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야할 자손 에 관계된 공적인 일로서 특별히 중대한 의의가 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신부감을 고르는데 두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는 가나안 여자는 안되고 그의 교향 하란에 가서 그의 고향 하란에 가서 그의 친척 가운데서 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아브라함이 이조건을 세운 이유는 종족의 순수성뿐만 아니라 믿음의 순수성을 보존하고 싶었던 것처럼 보인다. 즉 나홀가문의 신앙이 아브라함 가문의신앙과 근본적으로 동일하므로 두가문이 맺어진다면 믿음의 순수성이지켜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둘째는 신부를 가나안땅으로 데려와야지 결코 이삭이 신분의 거주지로 가 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삭이 가나안을 떠나는 것을 반대한 이유는 아브 라함이 가나안땅의 주인이며 이삭이 그 약속을 물려받아야하기 때문이었고 또 가나안을 떠난다는 것은 불신앙의 상징적 행위가 될 수도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책임을 진 늙은 종 엘리에셀은 나홀성밖 우물가에 이르러 기도 하며 색시감을 고르는 두가지 기준을 세운다.
첫째는 우물에 물을길러오는 처녀이며 둘재는 그의 요청에 따라 물을 마시게하고 낙타에게도 물을 마시 게 하는 처녀였다. 엘리에셀이 기도를 마치자 마침 리브가가 물 항아리를 어깨에 메고 우물 가로 나왔다.리브가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과 그의 아내 밀가 사이에서 태 어난 아들 브두엘의 딸이였다. 리브가의 오빠 라반은 아브라함의 종을 환대 했고 혼담은 원만히 진행되었다. 즉 리브가의 오빠 라반과 브두엘은 '이일 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창24:50) 라고 말했고리브가 또한 '가겠나이다'라고 대답했다. 라반은 리브가를 떠나 보내 면서'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 을얻게 할지어다'(창 24:60) 라고 축복해 주었다. 이삭은 자기의 결혼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을 때 그때이 삭은 노종 엘리에셀이 데리고 오는 리브가 보고 아내로 맞이할 결심을한다. 장래의 한쌍이 처음 만나는 것을 묘사한 장면은 짧지만 화려하고 매력적이 다(창24:62-67). 이삭은 40세에 리브가와 결혼했으나 60세가 되도록 아이가 없었다. 리브가의 불임은 여호와에 대하여 신앙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중요 한시험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이삭은 절망하거나 제멋대로 행동하는 대신에 기도로써 시험과 맞선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그의 소원을 들어주시어 리브 가는 결혼한지 20년만에 임신했다.
그런데 출산때에 고통이 너무 심하여 리브가는 '이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라고 여호와께 물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쌍태아를 가졌으며 '큰 자는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이상한 회답을 그녀에게 주었다. 곧 쌍둥이가 태어났는데 형은 에서,동생은 야곱이라 하였다.(창25:19-26) 이삭은 사냥꾼 에서를 사랑했고 리브가는 조용한 성격의 야곱을 사랑했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 을 때 이삭은 블레셋 땅 그랄까지 내려갔다. 이때 그의 영적 상태가 타락까지는 아니었지만 신앙노선에서 탈선한 것으 로 보인다. 또 이삭은 리브가가 아름다워 그녀로 인하여 죽을까봐 아내라고 하지 않고 누이라고 하였다가 나중에 블레셋왕 아비멜렉에게 탄로났다. 이 삭이 이런 잘못을 하였지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므로 같은해에 농사의수확 이 백배나 증가되어 거부가 되었고 그리고 우양이 떼를 이루었고노복도 많 아졌다. 이삭이 브엘세바를 돌아왔을 때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시어 자신이 바로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되풀이하여 축복을 약속하셨다. 그래서 이삭은 그곳에서 외부의 적으로부터 아무런침해도 받지 않고 우물을 파서 물을 얻으므로 생활이 풍성하게 되었다 이삭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자기 가족을 그의 아버지가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귀속시켰다. 이삭은 야곱보다 에세를 더 사랑했다. 만년에 눈이 어두워져 못보게된 이 삭은 에서에게 축복을 주려했으나 리브가에게속아 야곱에게축복을 주어싸. 이삭은 속아서 야곱에게 준 축복을 취소할 수도 있었지만 취소하지 않았고 또 야곱과 리브가의 행위를 저주하지도 않았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 받을 상속자를 정하는 정당한 권리하는 하나님 자신 이라는것을 믿었기 때 문이라 여겨진다. 즉 이삭의 신앙은 자기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 에 순종하는 신앙이었기 때문이다. 사냥에서 돌아와 이 사실을 접한 에서는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네게도 그리하소서"라고 부르짖으나 이삭은 몇마디 축복의 말과 저주만을 말해주었다. 그리하여 에서는 동생 야곱을 증오하여 죽일 때를노리니 리브 가는 야곱을 밧단아람에 있는 외가에 보낸다.(창27:1-28). 그리고 아버지 아브라함과 어머니 사라가 묻힌 막벧라굴에 아내와 같이장사되었다. 신약은 약속의 아들로서 이삭에 대해 언급하고 그의 장막생활과 에서와 야곱에 대 한 축복을 그 증거로 들고 있다.(히11:9,20)신약과 창세기에서 가장 중요하 게 생각되는 것은 이삭의 희생이다. 즉이삭이 죽는 순간에도 순종한 것과 그리스도 역시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여 자신을 바치신 것은 일맥 상통한 것으로 이는 모든 기독교인이 공유하고 있는 희생적 자기 헌신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이삭의 희생은 이런 희생적 자기 헌신에 대한 하나의 본보기로써 그 의미가 크다 하겠다.
그런데 주어가 불분명하므로 주어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여러가지 문서를 기초로하나 다양한 견해들이 있지만 대부분 인간 어원적인 실명들이다. 일반적으로 엘(하나님)을 주어로 하여 "하나님으로 웃게 하다"(하나님이여 웃으소서")라는 뜻으로 자애로운 사랑으로 아기를 낳은 것을 하나님께서 보시라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삭은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서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출생한 아들이다. 출생지는 브엘세바로 그가 출생했을 때 아브라함은 100세, 어머니 사라는 90세였다(창17:17,21:5). 아브라함은 자신들에게 아들이 난다는 약속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을때 어처구니 없어 웃었다(창 17:17-19). 사라도 장막 문에서 이 약속을 듣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웃었다(창 18:9-15). 그로부 ' 터 25년후 약속에 따라 아들을 낳았을 때 사라는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 니'라고 고백했다(창21:6). 그래서 이와같은 일을 기억하기 위해 아브라함 은 출생한 아들을 이삭이라고 이름했다(창21:3). 여기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볼 수 있다. 이삭은 혈통에 있어서 순수하다. 즉 그의 어머니 사라는 아브라함의 아내 였을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의붓 누이였다. 그래서 이삭은 친가쪽으로나 외가쪽으로 모두 데라의 가족이다.
또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의 첫 자녀였기 때문에 규정된 8일째 되는 날 할례의 표적을 받은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삭은 약속의 아들이며 사라의 아들로서 법적 상속자이므로 애굽인 여종 하갈이 아브라함에게서 먼저 낳은 육에 의한 아들 이스마엘보다 합법 적인 우선권을 가진다(창17:19-21,21:12). 즉 사라가 하갈 모자를 내쫓으라 고 아브라함에게 강력히 요구할 때에 하나님게서 사라의 요구를 들어주라 고 하시며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로써 인간의 성급함과 불신으로 인하여 태어난 이스마엘을 통해서가 아니 라오직 하나님의 은총으로 허락받은 약속의 아들 이삭을 통해서만 하나님 의 약속이 아브라함에 전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신앙을 시험하고 증거하기 위해 이삭을 번제로 바칠 것을 명하셨다. 이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게서 자기가 간구하는 바를 모두 알고 계시며 또한 이삭도 복종하고 따르리라 믿으며 이 명령에 순종했다. 이삭도 나뭇단을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으므로 제사 의식 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된다.그럼에도 아버지의 지혜와 사랑에 의지하고 또 아버지를 본보기로 하나님의 섭리를믿으며 약속의 아들답게 아 버지의 계획에 따랐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꽁꽁 묶어 제단의 나무위에 얹었다. 그리고 그의 전소 유를 하나님께 다 바쳐버리는 순종을 나타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대 신하여 수양 한마리를 예비해 주셨다(창 22:1-18). 아브라함은 점점 늙어가 므로 아들을 위해서 아내를 얻어 주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이일을 그의 충성스러운 종 엘리에셀에게 부탁했다. 이 결혼은 단지 아브라함의 중요한 일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야할 자손 에 관계된 공적인 일로서 특별히 중대한 의의가 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신부감을 고르는데 두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는 가나안 여자는 안되고 그의 교향 하란에 가서 그의 고향 하란에 가서 그의 친척 가운데서 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아브라함이 이조건을 세운 이유는 종족의 순수성뿐만 아니라 믿음의 순수성을 보존하고 싶었던 것처럼 보인다. 즉 나홀가문의 신앙이 아브라함 가문의신앙과 근본적으로 동일하므로 두가문이 맺어진다면 믿음의 순수성이지켜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둘째는 신부를 가나안땅으로 데려와야지 결코 이삭이 신분의 거주지로 가 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삭이 가나안을 떠나는 것을 반대한 이유는 아브 라함이 가나안땅의 주인이며 이삭이 그 약속을 물려받아야하기 때문이었고 또 가나안을 떠난다는 것은 불신앙의 상징적 행위가 될 수도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책임을 진 늙은 종 엘리에셀은 나홀성밖 우물가에 이르러 기도 하며 색시감을 고르는 두가지 기준을 세운다.
첫째는 우물에 물을길러오는 처녀이며 둘재는 그의 요청에 따라 물을 마시게하고 낙타에게도 물을 마시 게 하는 처녀였다. 엘리에셀이 기도를 마치자 마침 리브가가 물 항아리를 어깨에 메고 우물 가로 나왔다.리브가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과 그의 아내 밀가 사이에서 태 어난 아들 브두엘의 딸이였다. 리브가의 오빠 라반은 아브라함의 종을 환대 했고 혼담은 원만히 진행되었다. 즉 리브가의 오빠 라반과 브두엘은 '이일 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창24:50) 라고 말했고리브가 또한 '가겠나이다'라고 대답했다. 라반은 리브가를 떠나 보내 면서'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 을얻게 할지어다'(창 24:60) 라고 축복해 주었다. 이삭은 자기의 결혼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을 때 그때이 삭은 노종 엘리에셀이 데리고 오는 리브가 보고 아내로 맞이할 결심을한다. 장래의 한쌍이 처음 만나는 것을 묘사한 장면은 짧지만 화려하고 매력적이 다(창24:62-67). 이삭은 40세에 리브가와 결혼했으나 60세가 되도록 아이가 없었다. 리브가의 불임은 여호와에 대하여 신앙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중요 한시험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이삭은 절망하거나 제멋대로 행동하는 대신에 기도로써 시험과 맞선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그의 소원을 들어주시어 리브 가는 결혼한지 20년만에 임신했다.
그런데 출산때에 고통이 너무 심하여 리브가는 '이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라고 여호와께 물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쌍태아를 가졌으며 '큰 자는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이상한 회답을 그녀에게 주었다. 곧 쌍둥이가 태어났는데 형은 에서,동생은 야곱이라 하였다.(창25:19-26) 이삭은 사냥꾼 에서를 사랑했고 리브가는 조용한 성격의 야곱을 사랑했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 을 때 이삭은 블레셋 땅 그랄까지 내려갔다. 이때 그의 영적 상태가 타락까지는 아니었지만 신앙노선에서 탈선한 것으 로 보인다. 또 이삭은 리브가가 아름다워 그녀로 인하여 죽을까봐 아내라고 하지 않고 누이라고 하였다가 나중에 블레셋왕 아비멜렉에게 탄로났다. 이 삭이 이런 잘못을 하였지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므로 같은해에 농사의수확 이 백배나 증가되어 거부가 되었고 그리고 우양이 떼를 이루었고노복도 많 아졌다. 이삭이 브엘세바를 돌아왔을 때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시어 자신이 바로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되풀이하여 축복을 약속하셨다. 그래서 이삭은 그곳에서 외부의 적으로부터 아무런침해도 받지 않고 우물을 파서 물을 얻으므로 생활이 풍성하게 되었다 이삭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자기 가족을 그의 아버지가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귀속시켰다. 이삭은 야곱보다 에세를 더 사랑했다. 만년에 눈이 어두워져 못보게된 이 삭은 에서에게 축복을 주려했으나 리브가에게속아 야곱에게축복을 주어싸. 이삭은 속아서 야곱에게 준 축복을 취소할 수도 있었지만 취소하지 않았고 또 야곱과 리브가의 행위를 저주하지도 않았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 받을 상속자를 정하는 정당한 권리하는 하나님 자신 이라는것을 믿었기 때 문이라 여겨진다. 즉 이삭의 신앙은 자기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 에 순종하는 신앙이었기 때문이다. 사냥에서 돌아와 이 사실을 접한 에서는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네게도 그리하소서"라고 부르짖으나 이삭은 몇마디 축복의 말과 저주만을 말해주었다. 그리하여 에서는 동생 야곱을 증오하여 죽일 때를노리니 리브 가는 야곱을 밧단아람에 있는 외가에 보낸다.(창27:1-28). 그리고 아버지 아브라함과 어머니 사라가 묻힌 막벧라굴에 아내와 같이장사되었다. 신약은 약속의 아들로서 이삭에 대해 언급하고 그의 장막생활과 에서와 야곱에 대 한 축복을 그 증거로 들고 있다.(히11:9,20)신약과 창세기에서 가장 중요하 게 생각되는 것은 이삭의 희생이다. 즉이삭이 죽는 순간에도 순종한 것과 그리스도 역시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여 자신을 바치신 것은 일맥 상통한 것으로 이는 모든 기독교인이 공유하고 있는 희생적 자기 헌신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이삭의 희생은 이런 희생적 자기 헌신에 대한 하나의 본보기로써 그 의미가 크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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