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의 가정을 세우신 하나님 (창23:1)
본문
오늘은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으로서의 생애를 마무리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유일한 믿음의 동역자요 아내인 사라를 잃고 큰 슬픔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막벨라 굴을 사서 사라를 장사지냈습니다. 그리고 아들 이삭이 믿음의 가정을 이루도록 도와서 하나님의 축복을 물려 줄 준비를 시켰습니다. 이 두 사건을 치르는 과정에 아브라함의 믿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아브라함의 믿음과 아브라함의 종의 충성심을 배우고, 이삭의 가정을 세우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사라를 장사지낸 아브라함(23:1-20)
1,2절을 보십시오. 사라가 127 세를 살고, 가나안 땅 헤브론에서 죽었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며 62년 동안 약속의 땅에서 개척자 아브라함을 동역하였습니다 (창 18:12; 벧전 3:6). 특히 사라는 믿음으로 잉태할 힘을 얻어, 나이 90살에 이삭을 낳았습니다(히 11:11). 사라는 아브라함의 유일한 믿음의 동역자였습니다. 아브라함 은 아내 사라를 너무나 사랑하여 "나의 죽은 자(my dead)"라고 했습니다(4,8). 또 당시 이삭의 나이는 37세였으며 아직 미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나 이삭에게 있 어서 사라의 죽음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으며, 슬픔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계속하여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라를 매장할 터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때까지도 외국인이요, 나그네에 불과했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나는 당신들 중의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니 청컨데 당신들 중에 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소서." 아브라 함은 자기를 가리켜서 나그네요(stranger), 우거하는 자(sojourner)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온 지 6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시민권을 얻지 못했습니다. 땅 한 평 소유하지 못한 나그네요, 잠시 우거하는 자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을 때까지 외국인과 나그네로 증거하며 그 땅에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히 11:13-16). 아브라함은 나그 네에 불과했지만 사라를 고향 땅에 묻지 않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묻고자 결심했습니다. 고대 동양 사람들은 고향에 대한 애착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대로 고향 을 떠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부득불 고향을 떠난다 하더라고 죽을 때에는 고향 땅에 묻히고자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사라를 가나안 땅에 묻고자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 후손들에게 주신다는 약속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재 로는 사라를 묻을 땅조차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그 땅을 후손들에게 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사라의 매장지를 어떻게 얻게 되었습니까 5,6절을 보면 헷 족속 이 아브라함에게 호의를 베풀어 그들의 묘실 중에서 가장 좋은 곳을 택하여 장사를 지내라고 했습니다. 이는 아내를 잃고 큰 슬픔에 빠져 있던 아브라함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들의 호의를 거절하고 에브론의 밭머리에 있는 막벨라 굴을 주어 "내 소유 매장지"가 되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8,9). 그러자 에브 론은 밭도 그냥 주고, 그 속의 굴도 그냥 줄 터이니 죽은 아내를 장사지내라고 했습니다 (11).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 땅 백성을 대하여 몸을 굽히고, 그 백성의 듣는데 에브론에 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컨데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 (13)." 그러자 에브론은 못이기는 체하며 그 땅 값은 400세겔인데 어찌 돈을 받겠느냐 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헷 족속의 듣는 데서 에브론에게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주고 그 땅을 정식으로 샀습니다. 그래서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이 아브 라함의 소유가 되었고, 그 속의 굴과 그 사방에 둘린 수목을 다 아브라함의 소유로 정해졌습니다(17,18,20). 그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 라 밭 굴에 장사하였습니다(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그러면 아브라함은 공짜로 주겠다는 데도 불구하고 기어코 거금을 지불하고 그 밭을 산 이유는 무엇이었겠습니까 헷 사람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그 땅을 사서 법적으로 아브라함의 소유지로 정했습니다. 이는 후손들에게 그 땅을 상속시켜 주기 위함이었습니다(13,16,18). 이방인에게 기증을 받아서 장사를 지낼 경우 기증자의 마음이 변해서 증여한 사실을 부인한 수도 있습니다. 특히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그 자손들에게도 계속 호의를 베푼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또한 이방인들이 아브라함에게 호의를 베풀 때는 절대로 공짜가 아닙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에게 그만한 대가를 요구할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그 땅을 확실한 자기의 소유지로 만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막벨라 굴을 후손들에게 상속시켜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아브 라함이 무덤을 후손들에게 물려 준 것은 단순한 땅 몇 평을 물려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 준 것이었습니다. 아브라 함을 부르시고,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물려 준 것이었습니다. 막벨라 굴에는 제일 먼저 사라가 묻혔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도 거기에 묻히고, 이삭과 리브가도 거기에 묻혔고, 야곱과 레아도 거기에 묻혔습니다(창 49:31). 야곱은 애굽에서 죽었지만 요셉에게 자신을 막벨라 굴 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하였습니다. 자신과 후손들이 비록 애굽에 살고 있지만 언젠가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창 49:28). 그래서 요셉이 애굽에서 가나안 땅에까지 유해를 모시고 와서 장사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그 후손들은 이 조상들의 무덤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자신들에게 주셨다는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그 땅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 라함이 사라의 무덤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 하는 문제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저자는 23장 전체를 아브라함이 땅을 사는 사건에 할애하고, 지루할 정도로 길고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후손들에게 약속의 말씀과 약속을 믿는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 주고자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는 역사성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만을 위한 이기적인 신앙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내를 잃은 슬픔에 빠져서 영적인 시야 가 흐려지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거금 은 400세겔이 아까워서 공짜로 주겠다는 땅에다 무덤을 쓰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후손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유산으 로 물려 주기 위해서 거금을 투자하여 막벨라 굴을 샀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에도 역사성이 있어야 합니다. 먼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후손들에게 무엇을 유산을 물려 주겠습니까 많은 돈을 벌어서 큰 재산을 상속시켜 주시겠습니까 우리는 후손들에게 하나님을 약속의 말씀과 말씀을 순종하는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 주어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한국과 세계 캠퍼스를 사명의 땅으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 땅에 거하며, 이곳에서 뼈를 묻고자 하는 각오로 이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충성 을 다하지만 캠퍼스가 우리가 돌아갈 본향은 아닙니다. 우리의 본향은 하나님께서 예비 하신 영원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이 땅에서 거룩한 나그네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땅 한 평 없이 우거하는 자로 산다고 하더라도 눈 앞에 있는 유익에 눈이 어두워지 않고, 아브라함과 같이 끝까지 믿음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우리의 믿음을 후손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는 믿음의 조상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Ⅱ. 이삭의 가정을 세우신 하나님(24:1-67) 1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나이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범사에 그에게 복을 주셨 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부르시고, 그 씨를 통해서 천하 만민 을 축복코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아브라함 당대에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그의 아내 사라는 늙어 죽었고 아브라함도 나이 많아 늙었습니다. 개척 동역자 사라가 죽음으로 사실 상 아브라함의 개척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사라가 죽은 지도 어언 3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이삭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물려줄 때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축복을 물려 주고자 할 때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이 이삭의 결혼 문제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결혼만큼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 이 있는 여자와 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외아들 이삭의 결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했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먼저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을 불러 환도뼈 아래 손을 넣어 맹세를 시켰습니다. 이 종은 아브라함이 상속자로 삼으려고 했던 다메 섹 출신의 엘리에셀입니다 (창 15:2).
3,4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나의 거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 딸 중에서 네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의 아내를 택하라." 아브라함은 이삭의 결혼 문제를 노종에게 맡겼습니다. 한 가지 조건은 절대로 가나안의 딸 중에서 이삭의 아내를 택하지 말고 고향 자신의 족속에게 가서 아내를 택해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는 아주 매력적이고, 똑똑한 아가씨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가나안 족장들 중에는 이삭이 물려 받은 많은 재산을 넘어다 보고 사돈을 맺자는 청도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 함은 하나님의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내 고향 내 족속 중에서" 이삭의 아내로 맞고자 했습니다. 이는 단지 동족을 아내로 맞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믿음을 결혼의
첫째 조건으로 삼은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좀 부족하고 배운 것이 가나안의 딸들에 못 미치더라도 믿음이 있는 자를 며느리로 맞고자 하였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이삭이 우상을 숭배하는 가나안 딸과 결혼한다면 이삭이 어떻게 복의 근원이 되고,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와 이삭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와 사명을 중심으로 이삭의 결혼 방향을 잡았습니다. 가정이란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러므로 결혼은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사는 자녀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모세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눈 앞에 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듭 부탁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라 (신 7:3,4)." 출애굽한 후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의 딸들과 혼인을 했다면 가나안 사람들과 동화되어 버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그들의 신앙은 변질되었으며, 여호와는 많은 우상 중의 하나로 전락해 버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있었 습니다. 젊은 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여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고, 700명의 아내들과 300명의 첩을 취했습니다(왕상 11:3). 이들은 대개 이방 여인들이었습니다. 솔로몬은 늙고 힘이 약해졌을 때 이방인 아내들에게 미혹되어 아스다롯과 밀곰, 그모스 등 우상을 섬기는 우상숭배자가 되었습니다(왕상 11:5-7). 이처럼 불신 결혼은 믿음을 팔아 먹게 되는 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어떤 젊은이는 불신자와 결혼해서 전도하면 나도 좋고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합니다. 또 실제로 안목의 정욕에 눈이 어두워 불신자와 결혼 하는 분들도 가끔 있습니다. 그러나 부부간에 전도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이는 총각들은 잘 모릅니다. 통계적으로 볼 때 예수를 믿는 아내가 남편을 교회로 인도하는 경우는 많아도, 남편이 아내를 전도해서 예수 믿게 하는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믿음이란 남편의 권위로 심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쓰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을 배우자로 얻고자 하는 분명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멀고 먼 고향 땅에 가서 친척 중에서 이삭의 아내를 구해 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종은 여자가 자기를 좇아 이 땅으 로 오고자 아니하면 주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가서 맞선을 보이고 아내를 택해 오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7절을 보십시오. "삼가 내 아들을 그리로 데려가지 말라.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비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 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아브라함은 여자가 오고자 아니해도 이삭을 절대로 데려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하나님께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하셨기 때문에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었 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이삭과 그 후손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 땅을 떠나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이삭이 결혼하러 고향에 갔다가 아내에게 마음이 빼앗겨 처가집에 주저앉아 버리면 큰일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 믿고, 과감히 고향을 떠나 올 수 있는 믿음 있는 여자를 며느리 로 맞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사자를 보내어 미리 준비하 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여자가 좇아오고자 아니하면 그냥 오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나이가 40이 훨씬 넘어 한갑이 되어도 반드시 믿음 있는 처녀와 결혼을 하도록 돕고자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애굽 여인 하갈을 첩으로 맞아들인 후 많은 고생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할 경우에 이삭의 삶이 어떠할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60년이 넘도록 터를 닦아 놓은 개척 역사가 하루 아침에 사라져 버릴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 함은 이삭이 철저히 신앙적인 가정을 이루도록 기도했습니다. 이만큼 믿음으로 가정을 이루는 일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도 영적인 자녀들을 양육하 고, 이들이 믿음의 가정을 이루도록 돕고자 하는 분명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종은 이삭의 아내를 택하여 오는 사명을 하나님 앞에서 영접하고, 아브라함의 환도뼈 아래 손을 넣고 맹세를 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종은 이 사명을 어떻게 감당했습니까
첫째, 기도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10-28) 아브라함의 종은 예물을 준비하여 떠나 메소포타미아의 나홀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가나안에서 나홀 성까지는 먼 여행을 했습니다. 그러나 나홀 성에 도탁한 종은 제일 먼저 무엇을 했습니까 12절을 보십시오.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오늘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그는 제일 먼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노종 으로서 경험과 지혜가 많았을 것입니다. 모든 소유를 맡은 청지기였기 때문에 아주 충성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경험과 지혜와 인간적인 성실로 일하지 않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인도하심만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종이었습니다. 기도란 일을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요, 가장 빨리 이룰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든지 기도로 시작 하는 사람이야 말로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다. 그러면 그의 기도 제목이 무엇입니까 13,14절을 보십시오.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길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 곁에 섰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컨대 너는 물 항아리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 도 마시우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인하여 주께서 나의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아브라함의 종의 기도는 아주 구체적이었습니다. 우물에 물을 길으러 온 여성은 일하는 여성입니다. 아브라함의 종 은 손톱이나 기르고 놀고 먹는 여성이 아니라 부지런이 일하는 여성을 구했습니다. 또 나그네에게 물을 마시게 하는 여성은 손님 대접을 즐겨하는 여성입니다. 또 짐승에 게까지 마시게 하는 자는 사랑이 풍성한 여성입니다. 또 짐승에게 물을 마시게 하겠다는 것은 자발적으로 일을 할 줄 아는 여성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시키는 일만 하는 여성이 아니라 시키지 않는 일도 스스로 찾아서 할 줄 아는 자발적이고 활동적인 여성을 구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조용하고 사색적인 이삭을 가장 잘 내조할 수 있는 suitable한 동역자를 허락해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말을 마치지 못하여서 리브가가 물항아리를 어깨에 메고 나오니 그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소생이라." 아브라함의 종의 기도가 채 끝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 항아리를 메고 나타났습니다. 그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름답고 지금까지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한 순결한 소녀였습니다(16). 리브가는 보기에 심히 아리따운 여성이었습니다. 아리땁다는 말은 단순히 얼굴이 예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을 말해 줍니다. 내면이 순결하고 아름다우면 화장을 진하게 안 해도 아름답습니다. 종은 물을 길러 올라오는 아리따운 소녀에게 마주 달려 가서 항아리의 물을 좀 마시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소녀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18,19절을 보십시오. "그가 가로되 주여, 마시소서, 하 며 급히 그 물 항아리를 손에 내려 마시게 하고, 마시우기를 다하고 가로되 당신의 약대에도 위하여 물을 길어 그것들로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고 대답했습니다. 20절 을 보면, 리브가는 급히 물 항아리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길으려고 우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모든 약대를 위하여 물을 긷기 시작했습니다. 약대는 물을 많이 마십니다. 10필의 약대들이 모두 배불리 먹게 할 만큼 물을 길렀다면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희생적으로 온 힘을 다하여 약대가 마시기를 다할 때까지 물을 길러 마시게 했습니다(22). 이를 볼 때 리브가는 아주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여성이었습니다. 리브가는 누가 시켜서 일하는 게으른 여성이 아니었습니다. 또 시키는 것만 억지로 하는 소극적인 여성도 아니었습니다.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여성이었습니다. 22-25절을 보십시오. 종은 이 모습을 묵묵히 지켜 보고 하나님께서 기도를 응답해 주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손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종은 자기의 기도가 응답되었을 때 무엇을 했습니까 26,27절을 보십시오. 그는 머리를 숙여 하나님께 경배하고,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인자와 성실을 끊이지 아니하셨사오 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아브 라함의 종은 기도가 응답되었을 때 즉시 머리 숙여 경배하고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기도가 몸에 배인 기도의 종이었습니다.
둘째, 먹는 일보다 사명을 중히 여겼습니다(29-49).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의 집에 안내되었습니다. 긴 여행에 지친 그에게 풍성한 식물 이 베풀어졌습니다. 그러나 33절을 보십시오.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않겠나이다." 아브라함의 종은 이 천 리나 되는 먼 길을 왔습니다.
그러므로 늙은 종은 몹시 피곤하고 배도 고팠습니다.
그러므로 빨리 먹고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명을 진술하기 전에는 결코 먹지 않겠다고 차려 놓은 음식을 거절했습니다. 그는 먹는 일보다 사명을 귀히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라반이 허락하자 종은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세세히 진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제일 먼저 자기가 "아브라함의 종"이라는 신분을 밝혔습니다(3
4). 그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 귀히 쓰시는 사람 아브라함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을 큰 긍지와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크게 축복하신 일을 증거했습니다(35). 또 아브라함이 노년에 믿음으로 아들을 낳은 일을 증거했습니다(36). 또 그 소유를 이삭에게 물려 준 일을 증거했습니다(36). 고향 땅에 오게 된 이유(37-41), 이삭을 데려 오지 않은 이유와 기도하여 응답 을 받은 사건을 진실하게 진술했습니다(42-4
5). 그리고 리브라를 만나 이 집에 오기까 지 하나님께서 자기를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 생생하게 증거했습니다(46-48). 그리고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리브가를 택하셨으니 가부간 결정해 달라고 했습니다 (49). 이 종의 말을 들은 라반과 브두엘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50,51절을 보십시오.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 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리브가가 그대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대로 그대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그들의 승락이 떨어지자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께 엎드려 절했습니다(52). 그리고 부모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즉시 일어나 패물을 건네 주고, 승락의 증거를 삼았습니다(53). 그 후에야 먹고 마시고 쉬었습니다 (5
4). 아마 차려 놓은 음식은 모두 식어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종은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기까지 먹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사명감에 투철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사명을 귀히 여기는 충성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과 충성심을 받으시고, 이삭에게 가장 합당한 믿음의 동역자 리브가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사명에만 매인 충성스러운 사람을 귀히 쓰십니다. 요즘 젊은 이들은 사명에 매이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매이지 않으면 온갖 세상 사람들과 환경에 매여 살게 됩니다. 예수님께 매이지 않으면 남편과 아내와 자식들에게 매이게 됩니다. 직장에서는 상관들에게 매이게 됩니다. 학생들은 교수들에게 매이고, 며느리들은 시어머니에게 매이게 됩니다. 이렇게 사람과 환경에 매여서 살 때 인생은 참으로 고달프고 비참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매인 자는 모든 얽매이는 것에서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은혜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행 20:24).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명감에 사로잡혀 있는 사도 바울을 세계 선교 역사에 귀히 쓰셨습니다. 우리가 머리를 굴리다가 사람들 에게 얽매여 비참하게 살지 않고, 사명에 매인 사명인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사명보다 먹고 쉬는 일을 더 중히 여깁니다. 자신이 맡은 일을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해 내고야 말겠다는 사명감이 부족합니다. 사명을 감당하다가 몸이 축나면 어떻게 하나 하며 몸을 사립니다. 이런 분들은 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먹고 사는 일보다 사명을 귀히 여기는 사람이야말로 이 세상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반드시 축복하시고 승리를 주십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종은 그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더니 바로 리브가를 데리고 가겠다 고 했습니다(5
4). 부모들은 리브가가 열흘 적어도 며칠은 유하게 하고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종은 "나를 만류치 마소서.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종은 일을 성공적으로 성사시켰으니 얼마든지 여유를 부리며, 메소포타미아 유적지도 살펴 보고 돌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루 빨리 주인에게 돌아가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해 주고자 했습니다. 기쁜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아브라함과 이삭을 생각할 때 한 시도 그 집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곧 바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그 부모가 소녀를 불러 그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58절을 보십시오.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리브가는 주저 없이 결단했습니다. 리브가는 이삭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보지 못했습니다. 성격이 어떤지, 키가 큰지 작은지, 나이가 몇 살인지도 묻지 않았습니다. 일생 동안 함께 살아야 할 남편의 얼굴도 모르고, 생면부 지의 사람을 따라나선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이삭이 아브라함을 이어 하나님의 역사를 계승할 사람이요, 또 이 결혼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 음을 확신하고 결단했습니다. 리브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러므로 리브가의 결단은 이삭을 보고 결단한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결단한 것입니다. 또 리브가는 며칠이라도 부모를 기쁘게 하고 떠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혈육의 정에 얽매이지 않고, 즉시 결단하였습니다. 리브가는 그 날 당장 떠날 채비를 차려서 떠났습니다. 리브가는 축복을 쟁취하는 믿음 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결단으로 리브가는 하나님의 구속역사 가운데 귀하게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리브가가 부모와 오라비의 축복을 받으면서 가나안 땅에 도착했 을 때 이삭은 들에 나가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이삭은 결혼 문제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기도로 준비하였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리브가를 취하 여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습니다(67). 이삭은 모친 상사 후에 위로를 얻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의 역사성을 가지고 후손들에게 믿음을 물 려 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가 영적인 결혼관을 가지고, 믿음으로 가정을 이루어 하나님의 축복을 감당하고, 후손들에게 물려 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종의 충성심을 쓰시고, 리브가의 결단과 이삭의 순종을 쓰셔 서 이삭의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이 땅에도 많은 믿음의 가정들을 세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I. 사라를 장사지낸 아브라함(23:1-20)
1,2절을 보십시오. 사라가 127 세를 살고, 가나안 땅 헤브론에서 죽었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며 62년 동안 약속의 땅에서 개척자 아브라함을 동역하였습니다 (창 18:12; 벧전 3:6). 특히 사라는 믿음으로 잉태할 힘을 얻어, 나이 90살에 이삭을 낳았습니다(히 11:11). 사라는 아브라함의 유일한 믿음의 동역자였습니다. 아브라함 은 아내 사라를 너무나 사랑하여 "나의 죽은 자(my dead)"라고 했습니다(4,8). 또 당시 이삭의 나이는 37세였으며 아직 미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나 이삭에게 있 어서 사라의 죽음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으며, 슬픔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계속하여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라를 매장할 터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때까지도 외국인이요, 나그네에 불과했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나는 당신들 중의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니 청컨데 당신들 중에 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소서." 아브라 함은 자기를 가리켜서 나그네요(stranger), 우거하는 자(sojourner)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온 지 6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시민권을 얻지 못했습니다. 땅 한 평 소유하지 못한 나그네요, 잠시 우거하는 자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을 때까지 외국인과 나그네로 증거하며 그 땅에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히 11:13-16). 아브라함은 나그 네에 불과했지만 사라를 고향 땅에 묻지 않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묻고자 결심했습니다. 고대 동양 사람들은 고향에 대한 애착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대로 고향 을 떠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부득불 고향을 떠난다 하더라고 죽을 때에는 고향 땅에 묻히고자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사라를 가나안 땅에 묻고자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 후손들에게 주신다는 약속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재 로는 사라를 묻을 땅조차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그 땅을 후손들에게 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사라의 매장지를 어떻게 얻게 되었습니까 5,6절을 보면 헷 족속 이 아브라함에게 호의를 베풀어 그들의 묘실 중에서 가장 좋은 곳을 택하여 장사를 지내라고 했습니다. 이는 아내를 잃고 큰 슬픔에 빠져 있던 아브라함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들의 호의를 거절하고 에브론의 밭머리에 있는 막벨라 굴을 주어 "내 소유 매장지"가 되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8,9). 그러자 에브 론은 밭도 그냥 주고, 그 속의 굴도 그냥 줄 터이니 죽은 아내를 장사지내라고 했습니다 (11).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 땅 백성을 대하여 몸을 굽히고, 그 백성의 듣는데 에브론에 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컨데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 (13)." 그러자 에브론은 못이기는 체하며 그 땅 값은 400세겔인데 어찌 돈을 받겠느냐 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헷 족속의 듣는 데서 에브론에게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주고 그 땅을 정식으로 샀습니다. 그래서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이 아브 라함의 소유가 되었고, 그 속의 굴과 그 사방에 둘린 수목을 다 아브라함의 소유로 정해졌습니다(17,18,20). 그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 라 밭 굴에 장사하였습니다(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그러면 아브라함은 공짜로 주겠다는 데도 불구하고 기어코 거금을 지불하고 그 밭을 산 이유는 무엇이었겠습니까 헷 사람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그 땅을 사서 법적으로 아브라함의 소유지로 정했습니다. 이는 후손들에게 그 땅을 상속시켜 주기 위함이었습니다(13,16,18). 이방인에게 기증을 받아서 장사를 지낼 경우 기증자의 마음이 변해서 증여한 사실을 부인한 수도 있습니다. 특히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그 자손들에게도 계속 호의를 베푼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또한 이방인들이 아브라함에게 호의를 베풀 때는 절대로 공짜가 아닙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에게 그만한 대가를 요구할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그 땅을 확실한 자기의 소유지로 만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막벨라 굴을 후손들에게 상속시켜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아브 라함이 무덤을 후손들에게 물려 준 것은 단순한 땅 몇 평을 물려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 준 것이었습니다. 아브라 함을 부르시고,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물려 준 것이었습니다. 막벨라 굴에는 제일 먼저 사라가 묻혔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도 거기에 묻히고, 이삭과 리브가도 거기에 묻혔고, 야곱과 레아도 거기에 묻혔습니다(창 49:31). 야곱은 애굽에서 죽었지만 요셉에게 자신을 막벨라 굴 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하였습니다. 자신과 후손들이 비록 애굽에 살고 있지만 언젠가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창 49:28). 그래서 요셉이 애굽에서 가나안 땅에까지 유해를 모시고 와서 장사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그 후손들은 이 조상들의 무덤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자신들에게 주셨다는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그 땅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 라함이 사라의 무덤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 하는 문제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저자는 23장 전체를 아브라함이 땅을 사는 사건에 할애하고, 지루할 정도로 길고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후손들에게 약속의 말씀과 약속을 믿는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 주고자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는 역사성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만을 위한 이기적인 신앙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내를 잃은 슬픔에 빠져서 영적인 시야 가 흐려지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거금 은 400세겔이 아까워서 공짜로 주겠다는 땅에다 무덤을 쓰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후손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유산으 로 물려 주기 위해서 거금을 투자하여 막벨라 굴을 샀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에도 역사성이 있어야 합니다. 먼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후손들에게 무엇을 유산을 물려 주겠습니까 많은 돈을 벌어서 큰 재산을 상속시켜 주시겠습니까 우리는 후손들에게 하나님을 약속의 말씀과 말씀을 순종하는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 주어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한국과 세계 캠퍼스를 사명의 땅으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 땅에 거하며, 이곳에서 뼈를 묻고자 하는 각오로 이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충성 을 다하지만 캠퍼스가 우리가 돌아갈 본향은 아닙니다. 우리의 본향은 하나님께서 예비 하신 영원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이 땅에서 거룩한 나그네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땅 한 평 없이 우거하는 자로 산다고 하더라도 눈 앞에 있는 유익에 눈이 어두워지 않고, 아브라함과 같이 끝까지 믿음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우리의 믿음을 후손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는 믿음의 조상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Ⅱ. 이삭의 가정을 세우신 하나님(24:1-67) 1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나이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범사에 그에게 복을 주셨 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부르시고, 그 씨를 통해서 천하 만민 을 축복코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아브라함 당대에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그의 아내 사라는 늙어 죽었고 아브라함도 나이 많아 늙었습니다. 개척 동역자 사라가 죽음으로 사실 상 아브라함의 개척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사라가 죽은 지도 어언 3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이삭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물려줄 때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축복을 물려 주고자 할 때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이 이삭의 결혼 문제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결혼만큼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 이 있는 여자와 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외아들 이삭의 결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했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먼저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을 불러 환도뼈 아래 손을 넣어 맹세를 시켰습니다. 이 종은 아브라함이 상속자로 삼으려고 했던 다메 섹 출신의 엘리에셀입니다 (창 15:2).
3,4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나의 거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 딸 중에서 네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의 아내를 택하라." 아브라함은 이삭의 결혼 문제를 노종에게 맡겼습니다. 한 가지 조건은 절대로 가나안의 딸 중에서 이삭의 아내를 택하지 말고 고향 자신의 족속에게 가서 아내를 택해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는 아주 매력적이고, 똑똑한 아가씨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가나안 족장들 중에는 이삭이 물려 받은 많은 재산을 넘어다 보고 사돈을 맺자는 청도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 함은 하나님의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내 고향 내 족속 중에서" 이삭의 아내로 맞고자 했습니다. 이는 단지 동족을 아내로 맞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믿음을 결혼의
첫째 조건으로 삼은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좀 부족하고 배운 것이 가나안의 딸들에 못 미치더라도 믿음이 있는 자를 며느리로 맞고자 하였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이삭이 우상을 숭배하는 가나안 딸과 결혼한다면 이삭이 어떻게 복의 근원이 되고,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와 이삭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와 사명을 중심으로 이삭의 결혼 방향을 잡았습니다. 가정이란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러므로 결혼은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사는 자녀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모세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눈 앞에 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듭 부탁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라 (신 7:3,4)." 출애굽한 후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의 딸들과 혼인을 했다면 가나안 사람들과 동화되어 버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그들의 신앙은 변질되었으며, 여호와는 많은 우상 중의 하나로 전락해 버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있었 습니다. 젊은 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여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고, 700명의 아내들과 300명의 첩을 취했습니다(왕상 11:3). 이들은 대개 이방 여인들이었습니다. 솔로몬은 늙고 힘이 약해졌을 때 이방인 아내들에게 미혹되어 아스다롯과 밀곰, 그모스 등 우상을 섬기는 우상숭배자가 되었습니다(왕상 11:5-7). 이처럼 불신 결혼은 믿음을 팔아 먹게 되는 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어떤 젊은이는 불신자와 결혼해서 전도하면 나도 좋고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합니다. 또 실제로 안목의 정욕에 눈이 어두워 불신자와 결혼 하는 분들도 가끔 있습니다. 그러나 부부간에 전도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이는 총각들은 잘 모릅니다. 통계적으로 볼 때 예수를 믿는 아내가 남편을 교회로 인도하는 경우는 많아도, 남편이 아내를 전도해서 예수 믿게 하는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믿음이란 남편의 권위로 심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쓰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을 배우자로 얻고자 하는 분명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멀고 먼 고향 땅에 가서 친척 중에서 이삭의 아내를 구해 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종은 여자가 자기를 좇아 이 땅으 로 오고자 아니하면 주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가서 맞선을 보이고 아내를 택해 오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7절을 보십시오. "삼가 내 아들을 그리로 데려가지 말라.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비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 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아브라함은 여자가 오고자 아니해도 이삭을 절대로 데려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하나님께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하셨기 때문에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었 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이삭과 그 후손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 땅을 떠나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이삭이 결혼하러 고향에 갔다가 아내에게 마음이 빼앗겨 처가집에 주저앉아 버리면 큰일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 믿고, 과감히 고향을 떠나 올 수 있는 믿음 있는 여자를 며느리 로 맞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사자를 보내어 미리 준비하 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여자가 좇아오고자 아니하면 그냥 오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나이가 40이 훨씬 넘어 한갑이 되어도 반드시 믿음 있는 처녀와 결혼을 하도록 돕고자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애굽 여인 하갈을 첩으로 맞아들인 후 많은 고생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할 경우에 이삭의 삶이 어떠할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60년이 넘도록 터를 닦아 놓은 개척 역사가 하루 아침에 사라져 버릴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 함은 이삭이 철저히 신앙적인 가정을 이루도록 기도했습니다. 이만큼 믿음으로 가정을 이루는 일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도 영적인 자녀들을 양육하 고, 이들이 믿음의 가정을 이루도록 돕고자 하는 분명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종은 이삭의 아내를 택하여 오는 사명을 하나님 앞에서 영접하고, 아브라함의 환도뼈 아래 손을 넣고 맹세를 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종은 이 사명을 어떻게 감당했습니까
첫째, 기도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10-28) 아브라함의 종은 예물을 준비하여 떠나 메소포타미아의 나홀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가나안에서 나홀 성까지는 먼 여행을 했습니다. 그러나 나홀 성에 도탁한 종은 제일 먼저 무엇을 했습니까 12절을 보십시오.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오늘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그는 제일 먼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노종 으로서 경험과 지혜가 많았을 것입니다. 모든 소유를 맡은 청지기였기 때문에 아주 충성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경험과 지혜와 인간적인 성실로 일하지 않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인도하심만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종이었습니다. 기도란 일을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요, 가장 빨리 이룰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든지 기도로 시작 하는 사람이야 말로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다. 그러면 그의 기도 제목이 무엇입니까 13,14절을 보십시오.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길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 곁에 섰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컨대 너는 물 항아리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 도 마시우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인하여 주께서 나의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아브라함의 종의 기도는 아주 구체적이었습니다. 우물에 물을 길으러 온 여성은 일하는 여성입니다. 아브라함의 종 은 손톱이나 기르고 놀고 먹는 여성이 아니라 부지런이 일하는 여성을 구했습니다. 또 나그네에게 물을 마시게 하는 여성은 손님 대접을 즐겨하는 여성입니다. 또 짐승에 게까지 마시게 하는 자는 사랑이 풍성한 여성입니다. 또 짐승에게 물을 마시게 하겠다는 것은 자발적으로 일을 할 줄 아는 여성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시키는 일만 하는 여성이 아니라 시키지 않는 일도 스스로 찾아서 할 줄 아는 자발적이고 활동적인 여성을 구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조용하고 사색적인 이삭을 가장 잘 내조할 수 있는 suitable한 동역자를 허락해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말을 마치지 못하여서 리브가가 물항아리를 어깨에 메고 나오니 그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소생이라." 아브라함의 종의 기도가 채 끝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 항아리를 메고 나타났습니다. 그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름답고 지금까지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한 순결한 소녀였습니다(16). 리브가는 보기에 심히 아리따운 여성이었습니다. 아리땁다는 말은 단순히 얼굴이 예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을 말해 줍니다. 내면이 순결하고 아름다우면 화장을 진하게 안 해도 아름답습니다. 종은 물을 길러 올라오는 아리따운 소녀에게 마주 달려 가서 항아리의 물을 좀 마시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소녀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18,19절을 보십시오. "그가 가로되 주여, 마시소서, 하 며 급히 그 물 항아리를 손에 내려 마시게 하고, 마시우기를 다하고 가로되 당신의 약대에도 위하여 물을 길어 그것들로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고 대답했습니다. 20절 을 보면, 리브가는 급히 물 항아리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길으려고 우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모든 약대를 위하여 물을 긷기 시작했습니다. 약대는 물을 많이 마십니다. 10필의 약대들이 모두 배불리 먹게 할 만큼 물을 길렀다면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희생적으로 온 힘을 다하여 약대가 마시기를 다할 때까지 물을 길러 마시게 했습니다(22). 이를 볼 때 리브가는 아주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여성이었습니다. 리브가는 누가 시켜서 일하는 게으른 여성이 아니었습니다. 또 시키는 것만 억지로 하는 소극적인 여성도 아니었습니다.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여성이었습니다. 22-25절을 보십시오. 종은 이 모습을 묵묵히 지켜 보고 하나님께서 기도를 응답해 주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손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종은 자기의 기도가 응답되었을 때 무엇을 했습니까 26,27절을 보십시오. 그는 머리를 숙여 하나님께 경배하고,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인자와 성실을 끊이지 아니하셨사오 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아브 라함의 종은 기도가 응답되었을 때 즉시 머리 숙여 경배하고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기도가 몸에 배인 기도의 종이었습니다.
둘째, 먹는 일보다 사명을 중히 여겼습니다(29-49).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의 집에 안내되었습니다. 긴 여행에 지친 그에게 풍성한 식물 이 베풀어졌습니다. 그러나 33절을 보십시오.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않겠나이다." 아브라함의 종은 이 천 리나 되는 먼 길을 왔습니다.
그러므로 늙은 종은 몹시 피곤하고 배도 고팠습니다.
그러므로 빨리 먹고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명을 진술하기 전에는 결코 먹지 않겠다고 차려 놓은 음식을 거절했습니다. 그는 먹는 일보다 사명을 귀히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라반이 허락하자 종은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세세히 진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제일 먼저 자기가 "아브라함의 종"이라는 신분을 밝혔습니다(3
4). 그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 귀히 쓰시는 사람 아브라함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을 큰 긍지와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크게 축복하신 일을 증거했습니다(35). 또 아브라함이 노년에 믿음으로 아들을 낳은 일을 증거했습니다(36). 또 그 소유를 이삭에게 물려 준 일을 증거했습니다(36). 고향 땅에 오게 된 이유(37-41), 이삭을 데려 오지 않은 이유와 기도하여 응답 을 받은 사건을 진실하게 진술했습니다(42-4
5). 그리고 리브라를 만나 이 집에 오기까 지 하나님께서 자기를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 생생하게 증거했습니다(46-48). 그리고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리브가를 택하셨으니 가부간 결정해 달라고 했습니다 (49). 이 종의 말을 들은 라반과 브두엘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50,51절을 보십시오.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 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리브가가 그대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대로 그대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그들의 승락이 떨어지자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께 엎드려 절했습니다(52). 그리고 부모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즉시 일어나 패물을 건네 주고, 승락의 증거를 삼았습니다(53). 그 후에야 먹고 마시고 쉬었습니다 (5
4). 아마 차려 놓은 음식은 모두 식어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종은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기까지 먹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사명감에 투철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사명을 귀히 여기는 충성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과 충성심을 받으시고, 이삭에게 가장 합당한 믿음의 동역자 리브가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사명에만 매인 충성스러운 사람을 귀히 쓰십니다. 요즘 젊은 이들은 사명에 매이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매이지 않으면 온갖 세상 사람들과 환경에 매여 살게 됩니다. 예수님께 매이지 않으면 남편과 아내와 자식들에게 매이게 됩니다. 직장에서는 상관들에게 매이게 됩니다. 학생들은 교수들에게 매이고, 며느리들은 시어머니에게 매이게 됩니다. 이렇게 사람과 환경에 매여서 살 때 인생은 참으로 고달프고 비참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매인 자는 모든 얽매이는 것에서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은혜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행 20:24).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명감에 사로잡혀 있는 사도 바울을 세계 선교 역사에 귀히 쓰셨습니다. 우리가 머리를 굴리다가 사람들 에게 얽매여 비참하게 살지 않고, 사명에 매인 사명인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사명보다 먹고 쉬는 일을 더 중히 여깁니다. 자신이 맡은 일을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해 내고야 말겠다는 사명감이 부족합니다. 사명을 감당하다가 몸이 축나면 어떻게 하나 하며 몸을 사립니다. 이런 분들은 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먹고 사는 일보다 사명을 귀히 여기는 사람이야말로 이 세상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반드시 축복하시고 승리를 주십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종은 그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더니 바로 리브가를 데리고 가겠다 고 했습니다(5
4). 부모들은 리브가가 열흘 적어도 며칠은 유하게 하고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종은 "나를 만류치 마소서.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종은 일을 성공적으로 성사시켰으니 얼마든지 여유를 부리며, 메소포타미아 유적지도 살펴 보고 돌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루 빨리 주인에게 돌아가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해 주고자 했습니다. 기쁜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아브라함과 이삭을 생각할 때 한 시도 그 집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곧 바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그 부모가 소녀를 불러 그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58절을 보십시오.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리브가는 주저 없이 결단했습니다. 리브가는 이삭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보지 못했습니다. 성격이 어떤지, 키가 큰지 작은지, 나이가 몇 살인지도 묻지 않았습니다. 일생 동안 함께 살아야 할 남편의 얼굴도 모르고, 생면부 지의 사람을 따라나선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이삭이 아브라함을 이어 하나님의 역사를 계승할 사람이요, 또 이 결혼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 음을 확신하고 결단했습니다. 리브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러므로 리브가의 결단은 이삭을 보고 결단한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결단한 것입니다. 또 리브가는 며칠이라도 부모를 기쁘게 하고 떠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혈육의 정에 얽매이지 않고, 즉시 결단하였습니다. 리브가는 그 날 당장 떠날 채비를 차려서 떠났습니다. 리브가는 축복을 쟁취하는 믿음 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결단으로 리브가는 하나님의 구속역사 가운데 귀하게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리브가가 부모와 오라비의 축복을 받으면서 가나안 땅에 도착했 을 때 이삭은 들에 나가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이삭은 결혼 문제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기도로 준비하였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리브가를 취하 여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습니다(67). 이삭은 모친 상사 후에 위로를 얻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의 역사성을 가지고 후손들에게 믿음을 물 려 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가 영적인 결혼관을 가지고, 믿음으로 가정을 이루어 하나님의 축복을 감당하고, 후손들에게 물려 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종의 충성심을 쓰시고, 리브가의 결단과 이삭의 순종을 쓰셔 서 이삭의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이 땅에도 많은 믿음의 가정들을 세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