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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을 시험하신하나님 (창21:1-22:24)

본문

오늘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사건입니다. 아브라함은 부 르심을 받은 지 25년만에 약속하신 아들 이삭을 낳고 은혜와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청천 벽력 과도 같은 음성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가, 이삭을 더 사랑하는가 하는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이삭을 바침으로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기뻐 받으시고, 크게 축복하셨 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언약을 성취하시고, 아브라함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언약을 성취하신 하나님 (21:1-7)
1, 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 들을 낳았습니다. 저자는 여기서 사라가 잉태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하신 대로 된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그 약속이 성취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3,4 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 은 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었습니다(17:19). 또한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8일만에 할례를 행했습니다 (17:11).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했습니다. 5절을 보면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백 세였고, 사라는 구십 세였습니다. 이는 그 들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지 25년 만이었습니다. 이 기간은 아 브라함에게 있어서 참으로 긴 세월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긴 세월이 지난 후에야 이삭을 주신 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연단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나이 75세 때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부르심에 순종하여 나갔습니다(히1:8). 그러나 그의 내면에 운명적인 인생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는 자식을 낳지 못하는 문제였습니다. 물 질 문제 같은 것은 단 한 번의 실패를 통해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운명적인 인생 문제인 자식 문제만큼은 좀처럼 극복되지 않았 습니다. 아브라함은 조금만 힘이 들어도 이 문제로 인해 절망했습니다 (15:2,3). 그래서 집에서 길리운 종을 상속자로 삼기도 했습니다. 또 사라의 종과 결혼하여 이스마엘을 낳기도 했습니다. 사단은 순간 순간 불신을 심고, 자식 문제만큼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심어 절망하고 자포자기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런 마음의 불신을 물리치 고, 운명적인 인간 조건을 뛰어 넘어 '약속을 이루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는 데 25년이 걸렸습니다(롬 4:19-21). 하나님께서는 이 기 간 동안 아브라함을 말씀으로 붙잡아 주시고, 마침내 그 약속을 성취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운명적인 인생 문제를 극복하고 부 르심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까지 믿음을 연단하십니다. '언약을 이루실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시며 훈련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현재 주시는 훈련을 감당하여 반 석과 같은 믿음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와 문제 해결이 지연되더라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참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결코 자기를 믿는 자들을 실망시키시지 않습니다. 약속을 신실 하게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잉태하여 이삭을 낳은 사라의 소감이 어떠합니까 6,7절을 보십시오.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사라가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 게 말하였으리오마는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이 모습 은 사라가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사라를 두 번 웃기셨습니다. 첫 번째는 꼬부랑할머니가 된 사라가 일 년 후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여 사라를 웃기셨습니다(18:12),
둘째는 90세 할머니가 아들을 낳아 젖을 먹이게 하심으로 또한번 웃기셨습니다. 90세 된 할머니가 젖을 먹이는 모습을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이 말씀은 사라의 기쁨이 사라에게 국한되지 않고, 누구든지 사라와 같이 믿음으로 사는 자는 마침내 이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삭"이라는 이름도 "웃음"이라는 뜻입니다. 끝까지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산 아브라함은 마침내 그 약속이 성취되는 기쁨이 충만케 되었습니다. 아 브라함은 어깨춤이 절로 나왔을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아기를 안고 기뻐하는 모습은 어두운 동굴에서 술을 마시고 두 딸과 근친 상 간을 하는 롯의 최후와 아주 대조적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쁨은 아브 라함과 같이 믿음으로 사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요, 언약을 성 취하신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하나님의 크신 능 력을 체험한 기쁨이요,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한 승리의 기쁨입니다. 롯과 같이 조금씩 조금씩 소돔과 고모라로 향하는 자들은 결코 누릴 수 없는 참된 기쁨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으로 살고, 마침내 사라의 기쁨에 동참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Ⅱ. 이스마엘을 내보내신 하나님(21:8-21) 8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자라서 젖을 떼게 되었습니다. 당시 풍습으 로는 2-3살 때까지 젖을 먹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젖 떼는 날을 기념 하여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첩의 소생 이스마엘이 이 삭을 희롱하였습니다.) 희롱하다는 말은 이삭의 이름 곧 동사 웃다(to laugh)의 강조 형태 인데, 여기에서는 문맥에 의해서 그리고 갈라디아서 4:29에 의해서 모욕하다(mocking, AV, RV), 장난하다(play, RSV)로 번역되었다. (The Rev. Der다 Kidner, Genesis,IVP, 1972, p.140) 이 때 이스마엘의 나이는 15,6세 정도였습니다. 이스마엘은 이삭이 태어나기까지는 아브라함과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였음에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이삭이 태어난 후는 사정이 전 혀 달라졌습니다. 모든 사랑과 관심을 이삭에게 다 빼앗겨야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불행은 이삭이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이삭 을 미워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회만 있으면 이삭을 괴롭혔습니다. 이삭의 이유 잔칫날에도 이스마엘은 시기심에 사로잡혀 이삭을 희롱했 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마엘이 이삭을 핍박했다고 했습니다(갈 4:29). 사라는 이 사건을 목격하고 몹시 분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즉시 아브라함에게 여종 하갈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 가 무엇입니까 "이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 라(10)"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이스마엘을 쫓아낼 것 을 아브라함에게 요구했습니다(17:19).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 일로 깊 이 근심하게 되었습니다(11). 아브라함 편에서 보면 이스마엘이 비록 자신의 불신앙으로 맺어진 종의 자식이지만 자신의 피를 타고난 자식 입니다. 또한 13년 동안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에게 소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이런 이스마엘을 쫓아낸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아픈 일이었 습니다. 그래서 깊이 근심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근심하는 아브라함을 어떻게 도와 주셨습니까 1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 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이 이스마엘 을 쫓아내는 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스마엘을 데리고 함께 살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삭은 어리고 이스마엘은 강하고 힘이 세기 때문에 언제 어떻 게 이삭을 해칠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삭을 보호하고, 이삭을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섬기기 위해서는 이스마 엘을 내보내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방 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씨니 그도 한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과 이스마엘을 동 시에 소유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성서적으로 볼 때 육체의 소욕은 항상 성령님을 거스립니다(갈 5:17). 육 신의 생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도 없습니다(롬 8:7,8).
그러므로 인본주의적인 생각과 정과 욕심에 근거한 인간적인 생각을 단호하게 끊어내어야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귀 히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14절을 보십시 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취하여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자식을 이끌고 가게 하매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더니"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하갈 과 이스마엘을 내보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적극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이는 자식을 죽는 데 내보내는 것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내보내는데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도의 적인 책임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부모 된 도리를 생각하고, 내가 지 은 불신의 열매이니 내가 거두어야 한다는 율법적인 생각에 사로잡혔 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적인 자세로 순종했습니다. 15-21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결단하고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을 어 떻게 도와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이 목이 갈하여 죽게 되 었을 때 샘물을 찾아 주시고 그 아이와 함께 하셨습니다(20). 이스마 엘은 장성하여 애굽 여인과 결혼하였으며, 활 쏘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과 같은 복의 근원이 되고,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주인공으로 쓰임 받고자 할 때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가 바로 이 스마엘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혈육의 정에 약합니다. 또 도의적인 책임감이 강합니다. 또 신자들은 율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영적인 것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쓰시고 자 하실 때 망설이고, 믿음의 결단을 내리지 못합ㄴ다. 그러나 천하 만민을 구속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쓰임 받기 위해서는 정과 욕심을 끊는 아픔을 감당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 신자들은 자녀들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불신자들보다 훨씬 더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에 충성하다 보면 부모의 도리를 다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독일의 유학생 선교 사님들은 개척 초기에 '아기 봐 주는 사람'을 구하지 못해서 어린 아 이들을 하루 종일 방에 가두어 놓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독일 사람들 이 이런 선교사님들을 아동 학대 죄로 경찰서에 고소하기도 하여 어려 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우리 사모님들도 여름 수양회에 참석하기 위해 자녀들을 '아기 봐 주는 사람'에게 맡깁니다.
그런데 수양회에서 돌아 와 보면 감기에 걸려 있기도 하고, 기저귀를 잘 갈아 주지 않아서 엉 덩이가 헐어 있기도 합니다. 이런 자식의 모습을 보는 어머니의 심정 이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나 사명인으로 충성하고자 할 때 이런 아픔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그만한 아 픔을 감당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불신 친구와 하나님 사이에서 양단간에 결단을 내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주일 성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여 마음이 아플 때도 있습니다. 마음에 돋아나는 연애 감정을 도려내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할 때 있습니다. 믿음 있는 사람과 결혼하고자 할 때 물질적인 가치관을 가진 불신 부모님들의 몰이해로 많은 아픔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문제로 근심하게 될 때 아브라함과 같이 아침에 일찍이 일 어나 하나님께 기도하고 믿음의 결단을 내리고 실행에 옮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2-34절은 아브라함이 불신자들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되는 사건입니다. 아브라함은 불신자들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두 차례나 아내를 누이라 속였습니다. 그리고 불신자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수습해 주셨고, 전화위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비 멜렉 왕이 아브라함을 두려워하여 화친조약을 청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생활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며, 하나님께서 그의 편이 되심을 발견했기 때문이었습니다(22). 아브라함은 이 때 아비멜렉의 종들이 우물을 탈취해 간 사건을 근거로 군대 장관 비골을 책망했습니다(25). 그리고 거기서 언약을 세워 맹세하고, 그 이름을 브엘세바라 했습니다. 이 말은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아브라 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 을 불렀습니다.) 에셀(석류) 나무는 단단하고 길고 좁으면서도 빽빽하게 송이지고 상록 잎 을 가진 장생수의 식물인데, 이는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의 길이 참으시는 은혜의 모형이 되었다. (Keil, Genesis, p. 277). 에셀 나무는 팔레스틴에 11종류가 있고, 가 장 널리 퍼진 나무는 타마릭스 팔라시 (Tarmaix pallasii)인데 3-6m까지 자란다. 가장 큰 종류는 타마릭스 알티큘라타(Tarmaix articulata)인데 4.5-9m지 자란다.("Tamarisk" in The New Westminster Dictionary of the Bible, p.925) 아브라함은 아비멜렉과 화평을 누리게 된 사건을 통 해서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영원토록 변함 없으신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깊이 감사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경배를 드렸습니다.
Ⅲ.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하나님(22:1-19) 1절에서 "그일 후에"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모든 약속이 성취 되어 축복을 받고 아브라함의 소원이 성취된 후를 말합니다. 이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시험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 나는 인간을 죄에 빠지게 하는 사단의 시험(temptation)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신앙을 키우시기 위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시험(test)이 있습니다. 이 시험을 시련(trial)이라 고도 하고, 연단(prove)이라고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 험하심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연단하고, 그를 축복하고자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더 깊은 사랑의 신뢰의 관계 를 맺고, 아브라함이 축복을 감당하도록 돕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편에서 보면 이것은 너무나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습니다. 이 시련은 불로 연단한 후에 정금이 나오는 것처럼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불시련과 같았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사단은 여러 가지로 아브라함을 시험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어떻게 시험하셨습니까 2절을 보 십시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 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 제를 드리라." 하나님께서는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 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 습니다. 아브라함이 백 세에 낳은 이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하나님은 너무나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이삭을 죽여서 불태워 하나님 께서 기뻐하시는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번제는 감사의 표시로 드리는 헌신의 제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에 대한 아브라함의 사랑하는 표시로 이삭을 바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이 삭을 더 사랑하는가,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시험이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결정적인 순간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냐 이삭이 냐"를 선택의 문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을 보면 아브라함이 이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분명히 해야할 필요성이 있 었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명령을 받았을 때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과연 이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인가
그렇다면 자식을 불태워 죽이는 가나안의 사이비 종교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하는 회의도 들었을 것입니다. 또한 이삭은 하나님께서 지 25년만에 주신 약속의 자녀였습니다. 또 이스마엘을 쫓아낼 때 하나님께서는 "이삭으로 말미암은 자라야 네 씨 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이삭만큼은 바칠 수 없다고 버틸 수도 있습니다. "이삭을 번제 로 바치면 이삭에게 주신 약속은 어떻게 되느냐"고 항의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당신이 정말 여호와 이십니까" 하며 하나님의 존재 자체 를 부정하고 다른 종교로 개종할 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속에는 수많은 의문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들은 모두 이삭을 잃지 않으려는 인간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매우 우매합니다. 축복을 주신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주 신 축복을 더 사랑하기 쉽습니다. 이는 어린 아이들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아버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고, 가방 을 더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진정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려 면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믿음이 필요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독자 이 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시험하셨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이 시험을 어떻게 감당했습니까 3절을 보십시 오. 아브라함은 이튿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 을 데리고 하나님이 지시한 곳으로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려운 문제에 부딪쳤을 때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습니다. 정신이 가장 맑은 때에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결단하였던 것 같습니다. 브엘세바에서 모리아 산까지는 사흘 길이었습니다. 아브라 함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물쭈물하지 않았습니다. 사라와 상의하 지 않은 것 같습니다(3, 갈 1:16). 그리고 민첩하고 계획성 있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나갔습니다. 삼 일째 되는 날 모리아 산기슭에 도 착했습니다.) 브엘세바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20시간 반이 걸린다.
그러므로 멀리서 하나님께서 언급하신 장소인 모리아 땅 즉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잇는 산악지대를 바라보았을 때는 셋째 날이 되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린 그곳은 다윗이 단을 쌓은 여호와의 사자가 현현한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이 되었고(삼하 24:16-25) 후에 이곳에 솔로몬 성전이 세워졌다. 아브라함은 두 종들을 산기슭에 머물게 했습니다(창 22:5). 이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칼로 잡으려고 할 때 사환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신이 하나님 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할 수 있도록 미리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아브 라함의 순종심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런데 나무를 지고 올라가던 이 삭이 무슨 질문을 했습니까 8절을 보십시오. "아빠,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딨어" 이 질문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마음 속에 잠재되어 있던 정과 욕심의 불길이 타올랐을 것입니다. 이삭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조금도 요동되지 않았습니다.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 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아브라함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습니다. 마침내 아브라함은 이삭과 단둘이 모리아 산 꼭대기에 도착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았습니다. 아들 이 삭을 결박하여 단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사랑하는 아들을 잡으려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사랑하는 외 아들 이삭을 자기 손으로 죽이고자 할 수 있었겠습니까 히브리서 기 자는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의 믿음을 다음과 같이 증거했습니다. "아 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 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 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 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7-19)"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은 이삭을 번제로 드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반드실 이루실 것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 라함에게 "이삭으로 말미암는 자라야 아브라함의 씨라 칭함을 받으리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여 번제로 바치 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이삭을 죽은 자 가운 데서 다시 살리실 것이 분명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을 감당 하면서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실 것이라는 부활 신앙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믿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부활 신 앙이 있었기 때문에 이삭을 번제로 하나님께 바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손을 들어 이삭을 죽이려 할 때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 다급하게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 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 라" 하나님께서 급히 사자를 보내어 아브라함의 행동을 막으셨습니다. 이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시험에 통과했기 때문에 이삭을 죽일 필 요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음 속에는 이미 이삭을 번제로 바친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데 따르는 모든 고통 을 아브라함은 이미 다 겪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시험이 끝난 것이 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구체적으로 이삭을 번제로 바침으로써 하나님으 로부터 그 믿음을 인정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있는 것이 어떻게 증명되었습니까 아브라함이 이삭 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바쳤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여러 가지 변명을 하면서 이삭을 바치지 않았다면 그의 믿음은 가짜인 것이 드러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선생은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삭을 바침으로써 온전케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 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 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에 경에 이른바 이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 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약 2:21-23)" 아브라함은 구체적인 행위, 희생, 순종을 통해 서 그 믿음이 온전케 되었습니다. 그의 온전케 된 믿음으로 인해 그가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약 2:26).
그러므로 믿음에는 구체적인 행위가 따라야 합니다. 우리 나라에는 천만명이 넘는 크리스천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리가 없는 나라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말로만 하나님 을 믿는다고 하면서 구체적인 삶이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믿는다 면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심 판을 믿는다면 구원의 복음을 뜨겁게 영접하게 됩니다. 우리가 참으로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믿는다면 죄 사함 받은 자로서 기쁨이 충만하 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의 믿음은 구체적인 능력으로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얼마나 입으로만 믿기 잘 합니까 입 으로는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러나 실재 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천국에는 입만 동동 떠 다니는 신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체적인 삶 속에 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실제적인 믿음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시험하 실 때 아브라함과 같이 구체적인 삶 속에서 결단하고, 내가 가장 아끼 고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 인정 받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 즉 한 수양이 수 풀에 걸려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 여 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대신하여 수양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수양은 장차 이곳에서 죽임을 당 하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카일(Keil)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수양을 번제로 드린 사건을 세 가지 의미로 정리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동물 제사가 인간을 대신하고 영적인 자기 제사의 받으실 만한 상징으로 허락하셨다.
둘째, 이교도에 의해 인간을 제물 로 바치는 제사가 불경건한 것으로 정죄하고 거부하셨다.
셋째, 하나님이 예비하신 수양은 장차 이 산에서 속죄제물로 바쳐질 참된 제물,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고 했다(Keil, Genesis, p. 283). 아브라함은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무엇보 다도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신 그 하나님은 아브 라함에게 절대적인 사랑과 충성을 요구하시는 분이심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이삭보다 이삭을 바칠 수 있는 아브라함의 믿음 과 사랑과 소망을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고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 한 분을 사랑하는 믿음의 조상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습니다.) '여호와 이레'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고 번역되었다. '이레'라는 동사에는 본래 본다(see)는 뜻으로 준비하다(provide)는 부차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다. 본문 14b에서 저자는 이 두 가지 의미를 다 말하고 있으며, 우리 하나님은 자기에게 예배 드리러 오는 사람들을 보시고, 필요한 것을 준비하시는 분이시다(The Rev. Derek Kidner, Genesis, p.144; 손석태, 창세기 강해, p.179). 이 말은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는 뜻입니다. "여호와 이레"라는 말은 아브라함의 일생 동안의 신앙 간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신앙은 피를 말리는 아브라함의 순종을 통해서 깨달은 영적인 진리였 습니다.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부르심에 순종하여 갔을 때 하나님께서 친히 모든 것을 예비하셨고, 그 일생을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 주셨습니다. 이삭을 바치면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았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수양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무슨 말씀 이든지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책임져 주 신다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십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 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그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 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 니라 하셨다 하니라(16-18)"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너무나 기뻐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여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것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신 것이었습니다 (히 6:17).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큰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씨를 하늘의 별, 해변의 모래와 같이 많게 하시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고 새로운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 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씨들이라고 복수로 말씀하시지 않고, 단 수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이 약속 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 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 3:16)"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축복하시고, 그 후손 가운데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를 통해서 천하 만민을 축복 하실 것을 맹세로 보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기뻐하시고, 그를 놀랍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후 아브라함은 그 사 환에게로 돌아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습니다 (22:19). 결론. 우리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자들을 반드시 축복해 주십니다. 그러나 이 축복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이스마엘의 문제를 끊어내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축복보다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사랑할 때 계속적으로 축복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축복의 날에 교만하여지지 않고 더욱 겸 손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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