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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을 위하여 모든 사람이 할례받음 (창17:23-27)

본문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성장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양피를 베었다. 아브라함은 할례자의 후손인 이삭 을 낳기 위하여 자신이 할례를 받아야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다 할례를 받아야 했던 것인가 당시 사람들의 관념에 따르면 아브라함에게 속한 모든 사람은 아브라함의 소유가 된다. 이스마엘을 포함해서 그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아브라함의 소유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할례받은 생명으로 이삭을 낳아야 했 고 이 이삭의 출생을 위하여 그의 모든 소유도 할례받아야했다. 아브라함이 아무리 할례받은 생명으로 아들 을 낳는다해도 그의 소유가 할례받지 않는다면 이삭은 할례없는 환경에서 태어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아버 지의 소유는 곧 아들의 소유가 되기 때문에 이삭이 비록 할례자라 해도 그는 할례없는 소유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삭이 할례 있는 사람이며 그의 소유도 할례있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할례없는 백성을 소유할수 없듯이 아브라함과 이삭도 할례없는 식구들을 소유할수 없다. 내가 분 명 하나님의 것이라면 나의 모든 소유도 하나님의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너희가 空手로 내게 보이지 말 라고 하신다. 空手로 나왔다는 것은 소유를 자신과 갈라놓고 왔다는 뜻이다. 내가 하나님께 보이면 내 소유도 함께 보여야한다. 아브라함의 집안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시행한 것은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을 위한 것이다. 내가 할례받은 자이면 내게서 낳은 자나 내집에서 생장한 자나 돈으로 사온 자나 그 누구라도 다 할례받아야 한다.
모세는 이방에서 낳은 아들을 할례없이 그 백성안으로 데리고 가다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저지를 당하였다. 모세가 할례받은 자이기 때문에 그의 아들도 할례받아야 하고 할례받아야 할 례있는 백성안으로 들어갈수 있는 것이다. 비록 나의 소유라 하더라도 나와 함께 할례받지 않은 것은 나와 함께 하나님께 드려질수 없다. 그때에 나는 하나님께 드리고 나의 소유는 세상에 바치게 될것이다. 우리의 소유가 세상을 위하여 있다면 결국은 우리도 세상을 위하여 있게 된다. 우리의 소유는 오직 우리를 위하여 있어야 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있어야 한다. 나의 소유가 할례없는 것이면 내게 소용이 없고 내가 할례없는 자이면 하나님꼐 아무 소용이 없다. 이삭은 아브라함과 그의 소유전체가 할례받은 후에 태어났다. 내가 할례받았다고해서 그냥 이삭을 낳을수는 없다. 내 집안의 모든 소유가 할례받은 후에 우리의 이삭을 낳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은 드리되 소유는 드리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은 소유는 드리되 자신은 드리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아무것도 드리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은 가인과 그 제물을 열랍하지 않으시고 아벨 과 그 제물을 열랍하셨다고 했다. 자신과 분리된 제물도 없고 제물과 분리된 자신도 없다. 아브라함은 그의 전 소유를 이끌고 함께 할례받았던 것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명했기 때문이다. 할례받지 않은 자는 누구든지 그 백성중에서 끊어진다. 하나님을 위한 것과 사탄을 위한 것이 함께 할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위한 영과 세상을 위한 몸이 함께 있을수 없다. 영이 하나님에게 있다면 몸도 함께 있 어야 하고 몸이 하나님께 있따면 영도 하나님께 있어야한다. 소유는 존재를 위해서 할례받아야 한다. 생명이나 정신이나 물질이나 그 어떤 것도 할례없는 것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사탄의 병기가 된다. 타이핑주' 종교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행하는 믿음'을 가지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단순한 행함 은 구별되어지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앞에서의 행함은 땀이 나지 않아야 한다. 지성소에서 제사장은 땀을 흘 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자기몸을 내어서 불사르게 할 진실함이 있더라도 그것은 땀이 나지 않는 성질의 것 이라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으로 나와야 하는 것이다. 내속에서 그런 사랑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세상에는 하나님이 필요없는 사람들이 너무많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소요로서 가질려고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실재적으로 살아가는데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면서 자기대로 살아가면서 종교적인 하늘에 있는 하나님을 가끔씩 예배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필요로 하시는 분들에게 나타나신다. 하나님이 주 시는 맛없는 빵과 쓴나물을 아주 맛있게 먹을 배고픈 사람들을 찾아가신다. 하나님을 먹고 맛이 없다고 느끼 고 자기 입맛에 맞는 크림있는 빵을 먹는 사람은 하나님을 실재적으로 누리지 못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 없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배부른 기독교인보다 배고픈 세상나그네를 찾아가신다. 하나님은 반드시 기독교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구원하시지 않는다. 세상에서 버려진 사람들을 구원하신다.
왜냐하면 그들은 은혜를 은혜로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기가 보낸 '사람'을 영접하는 누구에게나 찾아가신다. 사 실 그 사람은 하나님인 셈이다. 내가 하나님에 대한 교리를 믿고 행한다고 나에게 구원이 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은 외면적인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을 영접하는 사람에게 실재로 임한다. 그 사람이 너무 초라하게보이거나 자기눈에 안좋아보인다며 무시하면 그것은 저주다. '너희중에 이 소자를 영접하는 것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이 소자를 영접하지 아니하면 곧 나를 영접하 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주신 잔을 마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5종류의 사람들(열명의 문둥병자, 세상의 종말시기를 묻는 바리새인들, 영생을 얻기를 원하는 관원, 여리고의 한 소경,삭개오)을 만났다. 예수님 은 세상사람들속에 잃어버린바된 자신의 양들을 찾으시려고 십자가를 지려고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1.자신의 문제(육체의 질병)로 주님께 나아와 고침을 받고 오직 이방인문둥병자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나머지 9명의 이스라엘백성은 오지 않았다.
2.자신들의 종교적 열심이 보상받기를 기다리는 종교인들이 주님께 와서 종말이 언제 오는지 물었다.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들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셨다.
3.개인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기를 원하는 부자관원은 '뭘 내한테 더해야 내가 천국에 갈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주님은 '사람의 아들을 쫓으라'고 하셨다.
4.주님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따라다니던 제자들이 꾸짖는데도 불구하고 은혜를 구했던 소경은 구원을 받았다. 주님은 그 소경을 보고 운명이 곧 자신의 운명임을 알고 사셨던 것이다. 제자들은 모두 주님의 능력만 보고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것만 기대했던 것이다.
5.키가 작아서 나무위에 올라가서 주님을 바라보던 삭개오는 주님한테 '발견되어서' 구원을 경험하게 되었다. 자기가 주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주님의 눈에 띄여서 발견이 된 사람이다. 자세히 보면 그당시 주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구원을 경험하지 못하고 이상하게도 버려진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은 은혜는 낮은데로 낮은 데로 임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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