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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압구정동 (창18: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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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기간동안 우리는 너무도 충격적인 소식을 들어야 했습니다. 고향길을 오가던 130여명의 사람들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 다는 보도는 차라리 평범한 것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엽기적인 살인 만행을 저지른 20대 초반의 젊은이들, 분노와 저주로 가득찬 그 얼 굴들이 텔레비젼 화면과 신문 지면을 가득 메웠기 때문입니다. 도박판에서 만난 20대 초반의 이들은 가진 자들의 세상, 더럽고 저주스런 이 세상을 향해 '심판의 칼'을 들기로 뜻을 한데 모았습니다. 같은 또래의 어떤 젊은이들이 물질의 풍요와 대학의 낭만을 누 리며 보다 안락한 내일을 꿈꾸고 있는 동안, 이들은 계획적인 학살 의 칼을 갈고 있었던 것입니다. 목표는 10억원. 10억원을 모을 때까지, 5천만원짜리 이상의 자가 용을 타고 다니는 부자들을 골라 돈을 털고 죽여 없애기로 작당을 했습니다. 지리산에서 일주일 동안 지옥훈련도 하고, 사냥총과 다이 나마이트 등으로 중무장을 했습니다. 평화스런 시골 마을에 합숙할 집을 지었습니다. 그 집의 지하실은 부자들을 잡아 죽일 도살장으로 꾸며졌습니다. 시체를 토막내서 태워버릴 화장시설도 갖추었습니다. 20대 여인을 '실습 살인'한 이들은 어느 중소기업 사장 부부를 납치 하여 8천만원을 뜯어내고는 토막내서 불태웠습니다. 조직을 배반한 동료 역시 처참하게 죽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동안 도살한 사람이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여섯사람에 이릅니다. 조직을 배반한 자는 무조건 죽인다! 부자들을 잡아 돈을 뜯어내 고 모두 죽인다! 이들 지존파의 조직강령입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압구정동 현대백화점의 우수고객 명단을 입수하였고, 70명의 이름 앞에 표시를 해두었습니다. 추석을 지내고 나서 살인할 목표물들이 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하루에 700만원을 뿌린 사람이 제일 먼저 선 택된 표적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쉰들러 리스트'와는 전혀 다른 '지존파 리스트', '압구정 리스트'를 작성해 둔 것입니다. 그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 그랜저 타고, 백화점 고액거래하고, 없는 사람 무시하고, 아들 딸 부정입학시키고, 애인과 대낮에 러브호텔 가는 사람들 용감한 여인의 제보가 아니었으면, 압구정동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서초경찰서에 잡혀 온 이들은 전혀 반성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가진 자에 대한 적개심과 이 사회에 대한 냉소를 머금은 그들의 미 소에는 살기가 서려있었습니다. 오히려 목소리를 높입니다. '압구정 동의 야타족들을 깡그리 죽였어야 하는데 시작도 못하고 여기에서 중단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한스럽다. 정작 죽여야 할 놈들은 죽이지 도 못하고, 엉뚱한 사람만 희생시켰다.' 압구정동을 향한 '선전포 고'였습니다. 문득 현대교회의 청년들과 중고등학생들의 모습들이 어지럽게 머리를 스쳐갔습니다. 인간이기를 거부한 자들. 사람의 탈을 썼으나 실은 짐승과도 같 은 이들의 살인행각은 정죄되어 마땅합니다. 이유가 어쨋든, 생명을 살상하는 일은 죄악입니다. 자기들의 손으로 이 사회를 심판하겠다 고 생각한 것 자체가 신성모독입니다. 유일하고도 궁극적인 심판자는 하나님 한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삶의 조건 속에서도 꿋꿋 이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을 생각할 때, 이들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질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찌해서 우리 사회는 이런 젊은이들을 길러냈을까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황금만능주 의와 심한 빈부격차, 온갖 부정비리들이 이들을 범행의 막다른 골목 으로 몰고간 것은 아닐까 더불어 사는 공동체성과 이를 위한 인간 교육이 상실된 우리 사회가 스스로 초래한 결과가 아닐까 일부 부 유층과 그 자제들의 행태가 소외계층의 의식을 왜곡하고 복수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오만하며 천박하지 않았는가 지존파의 위험한 게임은 다행히 초반에 저지되었지만, 제2 제3의 지존파가 없을 것이 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가 '민주주의 국가가 좋은 것이지만 부를 축적한 사람은 대물림할 수 있고, 저소득 계층의 사람들은 한평생 허리띠를 졸라매도 노년기 에 겨우 집 한채 장만할까 말까 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다 같이 누릴 수 있는 넉넉한 생활 한번 못해보고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억울하고 불공정하다 방송국을 점령하여 다시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 없는 사회가 될 것을 절규하고 싶었다.' 이들의 말을 그저 귓등으로 흘려버릴 수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여의도 광장에서 공개처형하라고 분노하기 이전에 우리 스스로를, 그리고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실상을 돌아 볼 수 밖에 없 습니다. 우리 교회가 자리하고 있는 압구정동을 돌아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선시대의 한명회가 지은 정자 '압구정'에서 동네의 이름을 따 온 압구정동. 하늘에서 보면 한강은 압구정동을 전후로 하여 W자 모 양을 하며 흐르고 있습니다. 그 W자의 중심에 압구정동이 있습니다. 마치 엉덩이의 가운데 있는 항문이나 생식기가 연상됩니다. 생식과 배설이야말로 끝없는 욕망과 소비의 상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이 곳에 현대아파트가 들어서고, 특혜분양 시비와 함께 상류층 사람 들이 입주하면서부터 이들의 기호와 수준에 맞는 번화가가 주변에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갤러리아 백화점을 중심으로 하여 펼쳐진 압구정동 상업지구는 그야말로 우리나라 소비문화의 중심지가 되었 습니다. 세련된 백화점, 고급스런 음식점과 술집, 첨단의 패션가, 모델 양성소, 유명 연예인, 성형수술소, 똥꼬치마와 스트레이트 생머리, 요란한 악세사리와 두건 그리고 부킹. 급기야 일부 상류층의 자 녀들이 오렌지족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고급 승 용차를 몰고다니며 하룻밤에 거액의 유흥비를 뿌린다는 이 떼거지들 의 소문은 전국을 강타했고, 어느새 압구정동은 부와 사치와 고급 유행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압구정동에서 시작된 유행의 물결은 이 제 강남지역과 홍대 입구, 신촌을 거쳐 서울과 지방 도시로 퍼져나 가고 있습니다. ZAM이 노래하듯, 압구정동은 제동장치가 파열된, 멈 출 수 없는 자동차처럼 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렌지족은 이제 기존의 도덕성을 무시하고 제 멋대로 몰려다니는 떼거지가 아니라 하나의 무시못할 사회경제적 존재로 인정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에서 몇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밤이면 우르르 몰려 나와 부킹이나 하고 스스럼 없이 자 기를 드러내는 아니, 그 드러냄을 통하여 오히려 자기 자신을 숨겨 버리는 일단의 젊은이들의 모습이 압구정동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압구정동 주민 모두가 현대백화점에서 하루에 700만원을 써대는 '우수고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도 실은 현대교회에 오기 전 까지만 해도, '압구정동이란 그렇고 그런 곳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 들은 나같은 사람이 상대할 족속들이 못된다. 한국의 소돔과 고모라 여! 그대들의 그 잘난 부와 사치와 오만이 이 땅의 심판을 재촉하는 구나' 이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신학교 동료 중에는 저를 '오렌지 전 도사'라고 놀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교회를 15개월 동안 경험하면서 제 생각이 너무 일방적이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압구정 동에서 저는 선량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게중에는 여전히 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존경할만한 분들도 있었 습니다. 일부의 사람들이 벌이는 돈의 축제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도매금으로 매도되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특히, 우리 현대교회 교인들과 청년 학생들을 누가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 있겠 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째로, 여전히 압구정동은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죄악의 도성이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바라든 바라지 않든, 다수의 사람이 나름대로 성실한 삶을 살든 그 렇지 않든, 이와는 무관하게 압구정동은 어느덧 멈출 수 없는 내리 막 길로 접어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사회적인 병리현 상, 사회적인 병패들이 압구정동에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만, 그러나 압구정동은 그 모든 퇴폐와 타락의 중심지이자 상징이 되고 말았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의 죄악을 심판하시고자 고민 하신다면, 그리하여 어떤 한 곳을 본보기로 혼내고자 하신다면 과연 어느 동네를 선택하실까요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한국의 서글픈 미래를 보려거든, 눈을 들어 압구정동을 보라!' 우리는 소돔과 같은 죄악의 도성 한복판에 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일그러져 있는데, 어찌 나만 홀로 똑바르다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압구정동 에 산다는 그 한가지 이유 때문에, 압구정동의 죄악스런 현실과 무 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설사 압구정동에 살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압구정동에 있는 현대교회를 다닌다는 그 한가지 이유 때문에, 우리는 압구정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남의 일이라고 애써 태연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수의 소외계층으로부터 비난받는 '압구정동 사람들'입니다. 어렵고 고된 삶을 연명하는 소외계층의 사람들이 우리와 무관하지 않듯, '지존파 리스트'에 오 른 사람들의 그릇된 삶이 우리와 무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압구정동의 못된 죄악을 등에 지고 가야 합니다. '아 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카인아 네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께서 묻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세째로, 이제라도 우리는 소돔의 멸망을 앞두고 안타까 운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아브라함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압 구정동의 구원을 위해, 압구정동의 거듭남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압구정동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죄악의 도성이기에, 만일 압구정동이 구원받고 건강한 동네로 거듭날 수 있 다면, 그것은 곧바로 우리나라 전체의 구원과 거듭남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압구정동의 한복판에 우리 현대교회가 서 있는 이유가 여 기에 있습니다. 우리교회의 선교적 사명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현대교회 교인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면, 이 사명을 가볍게 여긴다면, 교회의 이전을 서두르는 것이 차라리 정직한 일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해 봅시다. 아브라함의 시대에 소돔과 고모라는 환락과 부패, 죄악의 상징이 었습니다. 급기야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기로 결심을 하셨고, 아브라함은 필사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를 쓰 게 됩니다. '주여 50명의 의인만 있다면!' '그래 심판하지 않겠다.' '그럼 45명이라면' '그래도 용서하겠다.' '죄송하지만 40명이라면 어쩌 시겠습니까' '그들을 보아 참겠다.'  결국 열명으로 막을 내린 이 숨가쁜 대치 끝에 아브라함은 확답을 얻지만, 이미 자신을 통제 할 수 없는 소돔과 고모라는 그 화려한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었습니다. 오십명을 열명으로 줄인 것이 단순히 한번의 기도로 이루어진 일 이었을까요 조카 롯과 함께 소돔과 고모라의 백성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 결사적으로 펼친 아브라함의 지연작전이 아니었을 까요 심판이 지연되고 있는 동안,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의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기도의 땀을 흘렸을까요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로부터, 하나님께 택함받은 자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의롭게 된 자들의 책임의식을 느낄 수 있어 야 합니다. 필사적으로 기도하면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희생을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팽팽하게 조여오는 하나님의 심판과 죄악의 태풍 사이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고, 나 아가 그 숙명적인 충돌 속에서 이웃들을 살리고자 우리 자신을 헌신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눈으로 압구정동을 바라본다면, 여기는 분명 우리 시대의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눈으로 '지존파 사건' 을 본다면, 그것은 분명 우리시대의 소돔과 고모라를 향한 하나님믓 경고입니다.
오십명이 열명이 되고 그나마도 구하지 못해 불과 유황 이 우리의 머리 위에 떨어지기 전에, 우리는 무언가 결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과 유황으로 폐허가 되어 죽음의 바다라는 사 해의 밑바닥에 영원히 묻힌 소돔과 고모라의 비극이 우리의 일로 다 가올 것입니다. 먼 훗날, 고고학자들이 죽음의 강물이 된 한강 밑에 서 그 화려했던 압구정동을 발굴하면서, 죄악과 심판의 내리막길을 치달렸던 압구정동의 이야기를 반성의 거울로 삼게 될 것입니다. 몇 몇 교회의 불타버린 흔적을 발견하면서, '이 교회들은 도대체 압구 정동의 구원을 위해서 무슨 일을 했는가' 묻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현대교회 중고등학생과 청년, 선생님 여러분, 비록 소 수에 불과한 우리이지만, 우리가 압구정동과 강남과 서울 그리고 우리나라 전체의 구원을 위해 일하기로 굳게 결심한다면, 바로 우리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은 연기될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믿음과 복의 샘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사람이라도 귀하게 여기며 전도해야 합니다. 압구정동의 변화 와 거듭남을 위하여 우리의, 우리 교회의 선교적 실천 과제들이 무 엇일지 숙고해야 합니다. 죄악을 배설하고 죽음의 문화를 생식하는 곳이 아니라, 정의와 평화와 생명을 품고 살림의 문화를 창조하는 이 곳 압구정동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위 해 기도해야 합니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미리 체념하지 맙시다. 압 구정동을 배후조종하는, 황금만능주의와 권력지상주의라는 이름의 거대한 괴물을 두려워 하지 맙시다. 천지를 지으신 야훼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며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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