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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안에서 굳게 서는 믿음 (창15:1-12)

본문

창세기 15장은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한 가장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하나의 중심 축과 같은 장이며 모든 아브라함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본문의 두 가지 주제는 계약과 믿음입니다. 땅과 상속자라는 두 요소는 아브라함과 여호와 하나님 사이에 세워진 계약의 중요한 열쇠가 되고 있으며 본문을 구성하는 중심 주제가 됩니다. 날카롭게 교환되는 본문의 이야기를 주이깊게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대면하고 서서 하나님의 약속을 거절하고 마음의 확신을 갖는 것도 거부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쉬운 신앙으로 부름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심각한 고민을 통해서 이루어진 확신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이 약속의 즉각적 실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고 기다리는 사람에게 주어짐을 믿는 것이 곧 의로움인 것입니다. 빌립보서 3:17-4:1 (빌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 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빌3:18)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빌3:19)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빌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빌4: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본문은 신앙고백과 권고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8-19절에 나타나는 여러 사람들 이란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아니라 신앙을 고백한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이 사람들의 정체는 확실하게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유대인 기독교 영지 주의자들일 것입니다. 다른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빌립보 교회의 교인은 다양한 관점을 가진 모임들에 소속 되었던 것 같습니다. 20절의 우리의 시민권 은 우리의 진정한 고향입니다. 바울은 그의 독자들에게 자신을 닮아 갈 것을 권고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이 하나의 메시지가 되어서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즉 바울은 자신을 종교적 신념을 전하는 일종의 선지자가 아니라 기독교 삶을 구체 적으로 제시하는 모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자신의 삶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모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자신의 삶을 가능한 한 투명하게 하여서 다른 이들로 하여금 복음의 능력을 볼 수 있게 하도록 노력합니다. 바울 시대에는 생도들이 선생을 모방하는 것을 하나의 귀중한 교육적 가치로 여겨 왔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4:1절에서 모든 자들에게 주안에서 확실히 설 것을 강조하면서 그들을 향하여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3:31-35 (눅13:31)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눅13:32)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 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눅13:33)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 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눅13: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눅13:35)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본문은 두 단락으로 짜여 있습니다. 31-33절은 바리새인들을 향한 경고와 헤롯왕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으로 34-35절은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님의 슬픔으로 구성되었습니다.
1.예수님께서는 헤롯의 협박을 허용치 않으셨습니다. (눅13:31)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눅13:32)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 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2.도리어 예수님 스스로 자신의 사역을 선포하십니다. (눅13:33)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 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3.예수님의 목표는 그의 완전한 봉헌과 메시야 사역의 성취였습니다. (눅13: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눅13:35)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그 일이 십자가 상에서의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완성될 것이라는 사실 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야 했던 것입니다. 31-32절의 내용은 오직 누가 복음에서만 발견되며 마23:37절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슬픔이 따라나오고 있습니다. (마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님의 통곡은 예루살렘을 향한 예언의 종결입니다. 예루살렘의 죄는 선지자 예수님을 죽이는 것만이 아니 였습니다. 그것은 도리어 옛날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향한 예루살렘의 반복적인 배척 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님께 헤롯의 계획을 알렸을 때 예수님께서는 헤롯을 가리 켜 여우 라고 칭하십니다. 이스라엘과 헬라 사람들은 여우 를 속이는 자라는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여기에서는 이 단어가 랍비들의 글 속에서 흔히 나타나는 것처럼 중요하지 않은 사람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34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얼마나 예루살렘 사람들을 보호하고 성장시키려 하였는 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암탉이 자기의 날개를 가지고 자신의 새끼들을 모으는 비유 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어머니와 돌봄이라는 여성적 이미지를 통하여 백성들을 위한 예수님의 사랑 의 깊이를 보여 줍니다.
1.아브라함의 믿음 창세기 15장은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어진 계약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입니다. 아브라함이 상속자가 없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자손들을 위하여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사라의 불임이라는 커다란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사라가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문제는 아브라함의 이야기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본문의 내용은 그것을 중심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있는 무수한 별들을 보여주시면서 그의 약속을 다시 한번 확인 하셨습니다. 이러한 비전의 결과로 아브라함은 다시 한번 신앙을 재 다짐하게 됩니다. 따라서 6절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믿으나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여기가 바로 바울과 루터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게 된다는 구원론을 발견한 장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 스트로맨이라는 연구원이 교회를 드나드는 청년 7천명을 대상으로 연구 조 사한 자료가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합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인정 받으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라는 질문 에 응답자 60% 이상이 선한 생활에 힘쓰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참으로 만족할 수 있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좋습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0% 이상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통계자료가 무엇을 시사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 공로주의가 만연해 있 다는 것을 나타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공로주의를 배격하십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도록 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지혜는 무엇인가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인데 하나님은 절대로 그것 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인정하시는지 아십니까 자기가 죄 인인 줄을 아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하나님 앞에 자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경건생활에 힘써도 내세우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기 몸을 불사르기까지 헌신해도 자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예수님을 붙 드는 자를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내가 얻은 황홀한 구원, 옥한흠)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4: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갈3: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 라 (약2:23) 이에 경에 이른바 이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양쪽 노를 다 젓기 한 늙은 스코트랜드 사람이 작은 배의 노를 저으며 승객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어느날 한 손님이 그 노인의 한쪽 노에는 '신앙',그리고 다른 노에는 '옳은 행위'라고 새겨져는 걸 보았다. 이상히 여긴 그는 이 의미를 물었는데 그 노 인은 "자 보시오"하며 '옳은 행위'라고 써 있는 노만 저어 보였다. 그러자 배는 원을 그리고 뱅글뱅글 돌기만 했다. 바꿔서 '신앙'이라고 쓰인 노만 저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나서 노를 둘다 함께 젓자,배는 물살을 가르며 재 빠르게 나아갔다. "보십시오, 이것이 기독교인의 생활방식입니다. '믿음없는 메마른 행위'는 소용없으며 '행동없는 믿음'또한 죽은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과 '옳은 행위'의 두 개의 노를 함께 젓는다면 안전과 발전과 은총을 모두 얻을 수 있습니다.
2.이스라엘의 반항 아브라함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믿고 의지하는 가운데 의롭다 하심을 얻었던 사건에 반하여, 누가복음 13장은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치 않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배척하 며 반항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 통곡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독백을 전해줍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눅13:34) 예루살렘은 수많은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청종치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신뢰한 것에 비해서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어떠한 중재자도 거부한 것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예루살렘에서 죽게 되는 하나님의 마지막 선지자가 되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3.주 안에서 굳게 서라 바울은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데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십분의 일을 받치는 것으로 우리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사도 바울은 십분의 십을 모두 받친 사람인 것입니다.) 그는 신앙을 육체화 하고 삶 속에서 현장화 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자신의 신앙적 삶을 본받으라고 권면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 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빌3:17) 바울은 자신의 삶을 투명하게 하면서 자신의 삶을 신앙과 거리가 없도록 보여주고 있습니다. 설교후 기도 아브라함과 계약을 세우시고 그 언약을 성취하신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친히 약속하신 일들을 이루실 때까지 기다림에 신실한 저희들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저희로 하여금 바울처럼 신앙 안에 굳게 서서 믿음을 지키게 하시고, 굳게 서서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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