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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갈과 사라의 실재 (창17:15-22)

본문

아브라함은 두 여자에게서 아들을 낳았다. 할례받기 전에 사라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했으므로 하갈에게서 아들을 얻었다. 이로 보건대 아브라함이 아들을 낳지 못한 사람이 아니었고 사라가 아들을 낳지 못한 여자였다.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고도 십삼년이 흘렀지만 사라는 여전히 잉태치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은 사라가 낳을 아들과 영원한 언약을 세우겠다는 것이었다. 왜 하갈에게서 낳은 아들과는 언약을 세울수 없고 사라에게서 낳을 아들과만 언약을 세워야 했던가 두 여자는 두 교회의 비유가 된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4장21절이하에서 두 여자는 두 언약이니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이니 이 하 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있는 예루살레모가 같은 데니 저가 그 여자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오 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하였고 우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로서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라고 하였따. 두 여자는 두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며 다른 하나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는 것이다. 두 여자, 두 예루살렘, 두 자녀가 있다는 말이 된다. 하나님의 경륜안에서 사 탄을 멸할 자를 예언할 때 남자의 후손이라하지 않고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할것이라 한 이유는 한여자의 후손을 지시하는 것으로 이기는 자가 한교회에서 나올 것을 말씀한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록 12장 의 사내아이를 낳은 여자는 한 교회인 것이 분명하다. 사탄의 목표도 여자였으며 하나님의 목표도 여자였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를 죽인 자도 여자의 후손이었고 사탄을 멸할 자도 여자의 후손인것이다. 이 여자는 이기는 자를 낳을 교회다.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은 이삭을 희롱했고, 유대교가 낳은 제사장과 서기관과 장로들은 선지자들을 핍박했고 결국은 예수를 죽였고, 예수님 이후 오늘날 까지도 이 원리는 동일하게 작용하고 있다. 지금도 두 교회에서 두 자녀가 나오고 있고 장차도 나올 것이 한 교회에서는 이스마엘을 낳고 있고 한 교회에서는 이삭을 낳 고 있다. 어느 교회는 이스마엘을 낳으며 어느 교회는 이삭을 낳는가 교회마다 자기는 이삭을 낳는 교회라고 할 것이다. 이스마엘을 낳게 된 요인이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전에 언급한 바 있다. 물 론 이것은 큰 요인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았다 하더라도 사라가 없으면 이삭을 낳을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사라가 잉태치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하갈이 증명했다. 그러나 아브 라함이 할례를 받고난 후에 사라가 잉태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갈은 어떤 남자에게서라도 잉태할 수 있지만 사라는 할례없는 남자에게서는 잉태할수 없는 여자라는 것이다. 종인 하갈은 주인인 아브라함의 어떠함에 관여할 자격이 없기 때문에 그 주인의 어떠함대로 잉태하고 아들 을 낳아야 한다. 그러나 여주인인 사라는 자유자이기 때문에 남편의 어떠함에 관여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종과 자유자가 갈라지기 전에 하와는 사탄을 받아들여 선악과를 먹고 가인과 아벨을 낳고 말았다. 그녀는 밀 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밭이 되고 만뻥봬eK쯔 하나님은 사라를 택할때 더욱 철저했음을 주의할 것이다. 사 라는 하갈과 같이 종이어서는 안되고 하와와 같이 미숙해서도 안된다. 하나님은 경륜적으로 사라가 잉태치 못하도록 태를 막았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을떠까지 그의 태는 죽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할 례를 받고나자 그의 태는 살아나서 이삭을 잉태했고 그는 약속의 자녀를 낳았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번성하고 아담은 하와를 통해서 번성한다. 그럴때에 하나님이 어떠한 사람을 통하여 번성하며 아담은 어떠한 하와를 통하여 번성하는가의 문제가 생긴다. 그리스도도 그렇다. 그는 교회의 신랑이다.
그러므로 그는 정결한 신부를 가꾸고 있다. 사라-교회냐, 하갈-교회냐 이것은 중요한 문제다. 갈라디아 교회는 하갈-교회로 전략하려고 했기 때문에 바울은 간곡하게 종의 교회가 되지 말라고 권고하였다. 사라는 90세가 되도록 잉태하지 못했다. 그는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잉태를 갈망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태를 열지 않으셨다. 미리 그녀의 태를 열었더라면 사라도 별수 없이 이시마엘을 낳아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영원한 목적을 위하여 사라의 태를 오랫동안 닫아두셨다. 약속의 자녀를 잉태치 못할 바에는 태를 닫아두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오늘날 우리는 아무렇게나 자녀를 낳은 교회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삭이 아니라면 하나님이 교회의 태 를 닫아주시기를 원한다. 그런 교회는 복있는 교회며 선택된 교회다. 아브라함은 할례받은 후에 완전한 씨가 되었다. 그러나 그후에도 하갈에게서 낳은 자는 후사가 되지 못한다. 아브라함은 할례전에도 하갈에게서 자녀 를 낳았고 할례후에도 자녀를 낳았다. 그러나 하갈에게서 낳은 자녀는 모두 소용없게 되고 말았다. 그리스도 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여 생명주는 영으로 다시 오셨지마는 그 후에도 하갈-교회에게서 낳은 것은 쓸모가 없고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다시 오셔도 여전히 핍 박하고 죽일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가로 막고 자기도 들어가지 못하고 남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원칙적으로 그리스도의 교회는 순전한 사라-교회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교회는 하갈-교회가 많았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라만을 고집하신 뜻은 귀중한 것이다. 이삭을 위해서는 오직 사라만이어야 한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이라고 할수가 없다. 그는 여자의 후손의 시작인 것이다. 결국 주예수는 요셉 의 아들이 아닌 여자의 후손으로 사탄을 멸하려고 왔었고 그 이후에는 교회의 후손 즉 이기는 자들이 사탄과 그의 세계를 멸하고 있으며 또 멸할것이다. 그러면 누가 종-하갈이며, 누가 자유자-사라인가 바울은 율법의 자녀와 은혜의 자녀를 말하려고 두 여자를 비유로 내세웠다. 갈라디아 교회에 유대주의와 율법주의자들이 들 어왔기 때문이었다. 종은 율법아래 있고 아들은 은혜아래 있다. 율법아래는 자유가 없고 은혜아래는 자유가 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율법아래 두었고 어떤 사람을 은혜아래 두었는가 하나님은 왜 하갈을 주인의 율 법아래 둠으로써 어쩔수 없이 이스마엘을 낳게 하고 사라는 자유아래 둠으로 써 이삭을 낳게 하였는가 하갈 이 이스마엘을 낳은 것은 율법아래서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할례없는 주인의 종인 이상, 할례없는 자 식을 낳을수밖에 무슨 도리가 있겠는가. 그러면 왜 하나님은 하갈을 율법아래 종이 되게 하였는가 하나님 은 아무나 공연히 율법아래 가두지 않는 분이시다. 달아나지 않고 사람을 해하지 않는 개를 밧줄로 묶어 놓 을 사람이 있겠는가. 나는 개 두마리를 키우고 있지만 묶어놓지 않는다. 그 놈들은 달아나지도 않고 사람을 물 지도 않기 때문이다. 달아날 가능성과 물어 뜯을 힘이 있는 개는 묶어 놓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자유를 뺨 앗긴 것이다. 이런 사람, 이런 교회는 율법아래 묶어 두고 기르는 것이다. 이 속에서는 이스마엘밖에 나올수 없다. 이런 여자는 할례받기 전에는 이스마엘을 낳고 할례후에는 쓸모없는 후손을 낳는다. 사라는 왜 이삭을 낳도록 은혜를 입었는가 하나님은 왜 이삭을 잉태하기 전까지 그의 태를 닫아 두셨는가 왜 이런 자비를 베푸셨는가 연약한 아내는 할례받은 남편을 기다린다. 무할례자의 아내될 능력이 없기 때문 이다. 어떤 교회는 무할례자 예수를 기다리고 또 어떤 교회는 할례자 예수를 기다린다. 유대교는 무할례자 그리스도를 기다리다가 할례자 예수에게 실족하고 말았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무할례 그리스도를 대망하고 있다. 오늘날의 교회들도 그렇다. 엄청난 능력, 못할 것이 없는 그리스도를 믿고 전하고 기다린다. 이것은 그들의 욕망을 투사한 그리스도다. 세상은 이런 그리스도를 날마다 그리고 있다. 사라는 할례자인 아브라함의 아들밖 에는 낳을수 없는 교회-여자였다. 십자가에 죽은 그리스도가 남편인 교회는 사라와 같이 이삭을 낳을 것이 고 하나님은 이 아들과 영원한 언약을 제정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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