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 (창15:1)
본문
15장은 세계 열강에 대한 승리를 염두에 두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두 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세계 열강과의 싸움 속에서 하나님이 참으로 방패 요, 상급이 되심을 확신해 주신 것입니다. 애굽에서 그의 아내가 보호된 것 이 그가 자손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의 실제적인 담보였으며 롯과의 분리도 역시 언젠가 그가 약속된 땅을 소유할 가능성의 담보였지만 아직 그가 큰 민족을 이루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자손을 소유하게 되리라는 약속이 실현 될 전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자연적 으로 그의 마음 속에 일어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채워주기 위하여 여호와의 말씀이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라"는 확실한 위로를 지니고 그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절에 아브라함은 다른 태도를 보입니다. 나는 자식없이 죽어갑니다. ' ' 당시 아브라함의 나이는 잘은 모르나 85세 이전이었을 것 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85세 때에 하갈을 취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무엇을 주시려나이까하는 것은 하나님 약속의 땅에 대한 상속자 의 관심입니다. 나의 상속자 엘리에셀이 나의 후계가 될까요 묻는 것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을 볼 때는 하나님 나라의 대변자요,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받은 자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개인적 으로 자녀가 없는 것을 한탄함이라기 보다는 나에게 자녀가 없으므로 누가 하나님의 나라를, 온 인류에게 복을 줄 하나님의 나라를 이을 자가 되겠는 가 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염려로 묻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자녀가 없으므로 엘리에셀을 통해서라도 이 나라를 이어가시겠는 가라고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건설의 막중한 사명의 안타까움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니다 분명히 네 몸에서 날 자(친자식)가, 네 몸에서 난 친자식이라야 네 후손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롯의 경우와 같이 아브라함이 받을 복의 상속자는 롯도 아니고, 다메섹 엘리에셀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관심은 누가 하나님의 복을 전 달할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인가에 안타까움을 가지는데 롯도 다메섹 엘리 에셀도 아닌 다른 후손이 즉, 아브라함의 씨를 통하여 상속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에서 롯과 다메섹 엘리에셀은 제외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 특히 창세기를 보면서 깨달아야 하는 것은 누가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자가 될 것인가하는 치열한 싸움과 누가 하나님 나라의 상속에서 제외되는가하는 두 가지를 동시에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을 데리고 나가 하늘을 보고 별을 보여주시며 이 뭇 별처럼 후손 을 많게 하시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시자 아브 라함 그가 믿었고, 이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여기서 의로 여기셨다는 것은 후손을 뭇 별처럼 많아지게 하겠다는 단순히 그 사실을 믿은 것이 아 니라 나와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안에 던져 넣겠다는 보다 깊은 의미입니다. 믿음이란 자기 부정입니다. 단순히 어떤 사실을 믿는다는 의미보다 그 분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고 그분 안에 나의 모든 것을 던져 넣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는 신자의 기본자세를 한 마디로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 기서 믿음은 단순한 의미, 가볍고 값싼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내 생명, 내 생애를 그의 손에 맡기고 그의 뜻대로 살기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이때 내가 무엇으로 이 땅을, 하나님 나라를 상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지 확실한 표적을 아브 라함이 요구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떤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한 징표 를 구합니다. 아브라함이 깊은 잠이 들었는데 어두움이 임하고 심히 두려워 하는데, 이 어두움은 엄위하시고, 크시고, 영화로우신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보여주며, 이 하나님의 영광 앞에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이 아브라함이 느낀 두려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가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즉 출애굽 사건을 이미 예견하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이 죽어 평안히 조상에게 돌아갈 것은, 하나님 나라의 건설의 Project는 아브라함 당대에 단기간에 걸쳐 이루어질 일이 아니요, 장기간에 걸쳐, 여러 세대 몇 백년에 걸쳐 진행될 장기적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4 Generation에 걸쳐 애굽에서 돌아올 것, 즉 400년 동안 이방의 객이 되었다 가 그 후에 돌아와 하나님 왕국이 건설될 것입니다. 이 계시에 의하여 아브 라함은 개괄적으로 그에게 지시된 그의 자손의 미래 역사를 알게 되었으며 동시에 자기와 자기 자손이 약속된 땅을 직접 얻지 못하였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가나안 족속들이 아직 근절될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근동지방은 매우 타락한 곳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극악하고 타락한 곳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려 하실까요 이런 극심한 타락한 곳에서 악을 제거하고 여기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는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쪼개진 짐승 사이로 불이 지나갑니다(하나님 현현의 상징). 이것은 covenant (making ceremory)입니다. 횃불이 지나갔다는 것은 하나님이 지나 가심입니다. 당시 언약의식이 있었는데 두 사람이 신 앞에서 고기를 쪼개고 고기 사이를 지나갑니다. '만약 이 언약을 지키지 않을찐대 네가 이 쪼개진 짐승처럼 될 것이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즉 내가 나의 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내가 이 고기처럼 쪼개질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심입니다. 하나님 의 은혜를 이처럼 극적, 감동적으로 나타낸 곳은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 스 스로 저주를 짊어지심입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실 것임을 확 약하신 후 하나님 나라의 지경과 경계를 말씀하십니다. 흔들리는 아브라함 에게 하나님께서 언약을 통해 굳게 하고 하나님 왕국건설의 구체적 계획의 진행을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85세 때에 하갈을 취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무엇을 주시려나이까하는 것은 하나님 약속의 땅에 대한 상속자 의 관심입니다. 나의 상속자 엘리에셀이 나의 후계가 될까요 묻는 것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을 볼 때는 하나님 나라의 대변자요,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받은 자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개인적 으로 자녀가 없는 것을 한탄함이라기 보다는 나에게 자녀가 없으므로 누가 하나님의 나라를, 온 인류에게 복을 줄 하나님의 나라를 이을 자가 되겠는 가 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염려로 묻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자녀가 없으므로 엘리에셀을 통해서라도 이 나라를 이어가시겠는 가라고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건설의 막중한 사명의 안타까움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니다 분명히 네 몸에서 날 자(친자식)가, 네 몸에서 난 친자식이라야 네 후손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롯의 경우와 같이 아브라함이 받을 복의 상속자는 롯도 아니고, 다메섹 엘리에셀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관심은 누가 하나님의 복을 전 달할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인가에 안타까움을 가지는데 롯도 다메섹 엘리 에셀도 아닌 다른 후손이 즉, 아브라함의 씨를 통하여 상속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에서 롯과 다메섹 엘리에셀은 제외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 특히 창세기를 보면서 깨달아야 하는 것은 누가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자가 될 것인가하는 치열한 싸움과 누가 하나님 나라의 상속에서 제외되는가하는 두 가지를 동시에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을 데리고 나가 하늘을 보고 별을 보여주시며 이 뭇 별처럼 후손 을 많게 하시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시자 아브 라함 그가 믿었고, 이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여기서 의로 여기셨다는 것은 후손을 뭇 별처럼 많아지게 하겠다는 단순히 그 사실을 믿은 것이 아 니라 나와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안에 던져 넣겠다는 보다 깊은 의미입니다. 믿음이란 자기 부정입니다. 단순히 어떤 사실을 믿는다는 의미보다 그 분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고 그분 안에 나의 모든 것을 던져 넣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는 신자의 기본자세를 한 마디로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 기서 믿음은 단순한 의미, 가볍고 값싼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내 생명, 내 생애를 그의 손에 맡기고 그의 뜻대로 살기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이때 내가 무엇으로 이 땅을, 하나님 나라를 상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지 확실한 표적을 아브 라함이 요구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떤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한 징표 를 구합니다. 아브라함이 깊은 잠이 들었는데 어두움이 임하고 심히 두려워 하는데, 이 어두움은 엄위하시고, 크시고, 영화로우신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보여주며, 이 하나님의 영광 앞에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이 아브라함이 느낀 두려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가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즉 출애굽 사건을 이미 예견하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이 죽어 평안히 조상에게 돌아갈 것은, 하나님 나라의 건설의 Project는 아브라함 당대에 단기간에 걸쳐 이루어질 일이 아니요, 장기간에 걸쳐, 여러 세대 몇 백년에 걸쳐 진행될 장기적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4 Generation에 걸쳐 애굽에서 돌아올 것, 즉 400년 동안 이방의 객이 되었다 가 그 후에 돌아와 하나님 왕국이 건설될 것입니다. 이 계시에 의하여 아브 라함은 개괄적으로 그에게 지시된 그의 자손의 미래 역사를 알게 되었으며 동시에 자기와 자기 자손이 약속된 땅을 직접 얻지 못하였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가나안 족속들이 아직 근절될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근동지방은 매우 타락한 곳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극악하고 타락한 곳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려 하실까요 이런 극심한 타락한 곳에서 악을 제거하고 여기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는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쪼개진 짐승 사이로 불이 지나갑니다(하나님 현현의 상징). 이것은 covenant (making ceremory)입니다. 횃불이 지나갔다는 것은 하나님이 지나 가심입니다. 당시 언약의식이 있었는데 두 사람이 신 앞에서 고기를 쪼개고 고기 사이를 지나갑니다. '만약 이 언약을 지키지 않을찐대 네가 이 쪼개진 짐승처럼 될 것이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즉 내가 나의 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내가 이 고기처럼 쪼개질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심입니다. 하나님 의 은혜를 이처럼 극적, 감동적으로 나타낸 곳은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 스 스로 저주를 짊어지심입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실 것임을 확 약하신 후 하나님 나라의 지경과 경계를 말씀하십니다. 흔들리는 아브라함 에게 하나님께서 언약을 통해 굳게 하고 하나님 왕국건설의 구체적 계획의 진행을 말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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