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을 받은 가정 (창12:1-3,엡4:8-21)
본문
두 역사 성경에는 역사의 두 줄기 큰 흐름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뜻을 따 른 역사요, 다른 하나는 그 뜻과 상관없이 인간의 욕망을 따른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면서 그가 계획하신 아름다운 세계를 향한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역사의 출발점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언약(言約)을 주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창1:28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창 2:16-17 하나님이 정해 주신 '창조의 원리'를 따라 살기만 하면 인간은 생육하고 번성하면서 이 땅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에는 인간에게 허락된 자유와 동시에 지켜 가야 할 계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2장에는 크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라는 한 마디로 표현되어 있지만, 창조의 원리를 알고 그것을 잘 지키면 선 이고, 그 원리를 무시하고 제 멋대로 행하면 악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아주 정밀한 기계를 다루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기계의 원리를 알고 제대로 이용하면 많은 제품을 생산해 낼 수 있지만, 그 원리를 알지 못한 채 아무렇게나 움직이면 결국 고장이 나서 못쓰게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신 것은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 넣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로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세계에서 마음껏 생 명의 기쁨을 누리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창조하신 세 계를 인간이 이해하고 그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찬양하며 그것을 마음껏 즐기기를 기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처음부터 그런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符應)하지 못하고 금단의 열매를 따먹었던 것입니다. 정밀한 기계에서 만지지 말아야 할 부분 에 손을 대므로 그만 기계를 고장나게 만든 것과 같습니다. 이 때로부터 악 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를 무시한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제멋대로 다스리고 제멋대로 운영하므로 그 세계는 점점 더 더러워지고 파괴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낳은 아들 가인과 아벨은 두 역사를 대표하는 인물들입니다. 가인은 악의 역사, 즉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제멋대로 살아가는 인간의 역사를 대표한다면, 아벨은 선의 역사, 즉 하나님의 뜻을 따라 창조하 신 세계를 아름답게 만들려는 역사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파괴시켜 놓은 세계를 다시 회복하고, 그가 원래 목적하셨던 아름다운 세계를 이루시기 위한 그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 계획을 실현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사람들에게 언약을 주시 고 그들로 하나님이 이루시는 역사에 참여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사의 시작 아브라함은 바로 이런 하나님의 역사에 본격적으로 부름을 받은 첫 번 째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먼저 그가 속한 악의 역사에서 불 러 내셨습니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아브라함이 태어나고 살던 땅을 떠나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땅으로 가라는 명령은 단순히 고향을 떠나라는 뜻만이 아닙니다. 현재 아브라함이 살고 있는 땅, 그가 태어난 땅, 그의 아버지의 집은 바로 인간의 역사가 이루어 지고 있는 그 현장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슬려 사는 인간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장소입니다. 악의 역사가 탁류처럼 도도하게 흐르는 곳입니다. 그곳을 떠나라는 명령은 이제까지 머물던 그런 악의 역사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 보여 주시는 땅"이란 새로운 역사의 땅입니다.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역 사가 시작되는 땅을 뜻합니다. 이 새로운 땅으로 부름을 받은 아브라함의 삶은 전혀 새로운 것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언약을 주시고 그 언약을 기다리며 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롤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크게 번성하게 될 역사의 미래를 보여주셨고, 바 로 그가 그 역사의 시작점이 될 것임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큰 민족이 되게 하신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번창하게 될 것임을 뜻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단순히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어받은 민족의 번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사(救援史)에 동참하여 그 역사를 산 아브라 함의 신앙을 이어받은 새로운 민족이 크게 번성할 것임을 뜻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크게 번성할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사가 미래의 주도적인 역사가 될 것임을 뜻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새 역사의 미래를 알게 되면서, 그의 삶은 그때부터 오직 그 미래를 기다리며 사는 삶으로 바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제까지 정착하여 안락하게 살던 생활과는 완전히 다른 불안정 한 나그네의 삶이었으며, 자기의 욕망을 억제하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며 따라가는 삶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대단히 고달픈 삶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사에 동참한다는 것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인간의 역사 에서 벗어나는 일이요, 그것을 거슬려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 가는 것이기에 낯설고 힘들기 짝이 없는 삶이었을 것입니다. 구원사를 따르는 어려움 처음에는 이 새로운 역사에 함께 동참했던 아브라함의 가족 중에 이탈 자가 생겨났는데, 그의 조카 롯이었습니다. 롯은 동서남북을 살피다가 기름 진 땅에 세워진 도성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하여 그리로 이주하여 갔습니다. 롯은 결국 하나님의 구원사를 향한 행진을 하던 중 중도에 포기하고 다시 그가 떠났던 땅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가 떠나왔던 하란 땅이나 지금 다 시 그가 선택하여 간 소돔과 고모라 땅이나 결국은 인간의 악한 역사가 이 루어지는 땅이라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롯은 하나님이 이끄시는 구원의 역사를 따르기를 포기하고 다시 인간의 역사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는 정처없이 떠도는 나그네의 삶에 지쳐 풍요로운 땅에 정착하기를 원하 여 소돔과 고모라 성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롯은 그곳에서 안정을 되찾았고, 그가 바라던 풍요로운 삶을 구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장은 풍요롭고 안락한 삶이었지만, 롯의 삶은 하나님 의 구원사에서 제외되었고, 그가 살던 소돔과 고모라는 결국 하늘에서 떨어 진 불로 응징되어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떠나 이루어지는 악의 역사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언약은 그 자신만의 것이 아닌 그 가족이 모두 따라야 할 언약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도 바로 그 언약의 동반자였습니다.
처음에는 충실하게 아브라함과 더불어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살았 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아들을 낳을 수 없는 늙은이가 되면서 초조하여졌 고, 민족을 번성케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자기가 낳은 아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는 틀렸다고 판단하고, 자기의 여종 하갈을 남편과 동침케 하여 아들을 낳게 하였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라의 이런 판단과 행동은 아 름답고 눈물겨운 희생 정신에서 나온 것이며,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편에서 이루어 드리겠다는 갸륵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라의 판단은 전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 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 자신이 이루시는 것이기에, 우리는 다만 그 약속을 기다릴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인가 한다고 생각 하는 것은 결국은 신앙이 아닌 인간의 뜻을 따르는 행위요,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은, 그들이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지, 자기들이 무엇 인가 그 약속의 실현을 위하여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약속의 전승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그 가정을 통해 계속 전승(傳承)되 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이삭은 야곱에게, 야곱은 열 두 아들에게 그 약속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가정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가는 가 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단위임을 알게 됩니다. 미래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그것은 재산을 물려주듯 쉽게 후손에게 줄 수 있는 것 이 아닙니다. 부모의 끊임없는 기도와 노력에 의해서만 비로소 그 약속을 자기 자녀에게 이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약속이 담긴 율법을 자기 가정에서 후손들에 게 전하는 것을 최대의 의무로 생각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나라 없이 2천년을 세계 각 곳에 흩어져 살면서도 그 민족적 신앙 전통이 사라지지 않고 보존된 것은 바로 그들의 이런 철저한 가정교육을 통해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자처하므로, 아브라함이 받 은 언약을 계속 자기들의 가정에서 전승하기를 힘썼던 것입니다. 구원사에 참여하게 된 그리스도인들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아브라함처럼 우리가 살던 땅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가 속하여 있던 인간의 역사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였 음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미래를 성취하신 분이며,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신 구세주가 되시는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한 역사를 분명하게 우리에게 알 게 하셨고, 타락한 인간들로 하여금 그 역사에 동참할 수 있도록 우리를 구원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제까지와 다른 변화된 삶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초대된 백성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악의 역사에서 벗어나 선의 역사로 옮겨간 것입니다. 이제까지 타고 왔 던 인간의 뜻을 따라 달려온 열차에서 내려 하나님이 친히 운전하시는 열 차에 옮겨 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읽어 드린 에베소서 5장에서는 어둠에 속한 자였다가 이제는 빛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삶이 바뀐다는 것은 역사가 달라짐을 뜻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롭게 시작된 생명의 역사,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의 역사에 우리가 참여하게 되어 이제는 나를 중심으로 살던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으로 변화되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언약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빛의 자녀답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가야 한다는 사실과 또 하나 우리가 받은 이 신앙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이어주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따라가야 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똑바로 알고 따르는 것을 뜻합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처럼 중도에서 탈락하는 일이 없도록 그 역사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는 것을 뜻합니다. 사라처럼 제멋대로 그 역사를 바꾸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살펴 그 뜻을 기다리는 것을 뜻합니다.
동시에 이런 신앙을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물려주는 일이야말로 또한 하나님의 역 사를 바르게 따르는 길임을 알고, 자녀의 신앙교육을 위해 노력해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역 사가 대단히 혼란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여기서 하나님의 역사의 줄기를 찾 아 그것을 좇아 나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 으면 그 역사의 흐름을 놓치고 또다시 세상의 역사를 따라 살기 쉬운 것입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가정이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면서 이 가 정을 통해 올바로 신앙을 전승하여 간다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신앙에 대하여 관심하기 보다는 그들의 눈을 현란케 하는 여러 가지 흥미 있는 일들에 이끌려 가는 것입니다. 그런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가르치며, 그 흐름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전보다 더 열성적으로 그들을 가르 치고 기도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금년의 주제를 "그리스도를 모신 가정"으 로 정한 것은, 바로 우리의 가정이 언약을 받은 가정임을 기억하고 받은 바 그 약속을 날마다 분명하게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끝까지 그 약 속을 향하여 나가는 가정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가 받은 바 언약을 자녀들에게 분명하게 가르침으로 그들도 그 언약을 물려받아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역사를 따라 나가도록 이끌어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도도 하게 흐르는 악의 역사가 우리를 휩쓸어 가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정신 을 차리고 우리의 가정을 신앙 가운데 똑바로 세워 그 악의 역사에 대항하 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따르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언약을 받은 가정으로서 그 약속을 기다리며 그 약속을 바라면서 나그 네의 삶을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 길을 택하였고, 그 역사에 동참하였기에, 중도에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우리를 이끌고 계심을 알고 끝까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따라 가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를 무시한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제멋대로 다스리고 제멋대로 운영하므로 그 세계는 점점 더 더러워지고 파괴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낳은 아들 가인과 아벨은 두 역사를 대표하는 인물들입니다. 가인은 악의 역사, 즉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제멋대로 살아가는 인간의 역사를 대표한다면, 아벨은 선의 역사, 즉 하나님의 뜻을 따라 창조하 신 세계를 아름답게 만들려는 역사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파괴시켜 놓은 세계를 다시 회복하고, 그가 원래 목적하셨던 아름다운 세계를 이루시기 위한 그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 계획을 실현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사람들에게 언약을 주시 고 그들로 하나님이 이루시는 역사에 참여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사의 시작 아브라함은 바로 이런 하나님의 역사에 본격적으로 부름을 받은 첫 번 째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먼저 그가 속한 악의 역사에서 불 러 내셨습니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아브라함이 태어나고 살던 땅을 떠나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땅으로 가라는 명령은 단순히 고향을 떠나라는 뜻만이 아닙니다. 현재 아브라함이 살고 있는 땅, 그가 태어난 땅, 그의 아버지의 집은 바로 인간의 역사가 이루어 지고 있는 그 현장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슬려 사는 인간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장소입니다. 악의 역사가 탁류처럼 도도하게 흐르는 곳입니다. 그곳을 떠나라는 명령은 이제까지 머물던 그런 악의 역사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 보여 주시는 땅"이란 새로운 역사의 땅입니다.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역 사가 시작되는 땅을 뜻합니다. 이 새로운 땅으로 부름을 받은 아브라함의 삶은 전혀 새로운 것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언약을 주시고 그 언약을 기다리며 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롤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크게 번성하게 될 역사의 미래를 보여주셨고, 바 로 그가 그 역사의 시작점이 될 것임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큰 민족이 되게 하신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번창하게 될 것임을 뜻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단순히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어받은 민족의 번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사(救援史)에 동참하여 그 역사를 산 아브라 함의 신앙을 이어받은 새로운 민족이 크게 번성할 것임을 뜻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크게 번성할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사가 미래의 주도적인 역사가 될 것임을 뜻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새 역사의 미래를 알게 되면서, 그의 삶은 그때부터 오직 그 미래를 기다리며 사는 삶으로 바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제까지 정착하여 안락하게 살던 생활과는 완전히 다른 불안정 한 나그네의 삶이었으며, 자기의 욕망을 억제하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며 따라가는 삶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대단히 고달픈 삶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사에 동참한다는 것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인간의 역사 에서 벗어나는 일이요, 그것을 거슬려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 가는 것이기에 낯설고 힘들기 짝이 없는 삶이었을 것입니다. 구원사를 따르는 어려움 처음에는 이 새로운 역사에 함께 동참했던 아브라함의 가족 중에 이탈 자가 생겨났는데, 그의 조카 롯이었습니다. 롯은 동서남북을 살피다가 기름 진 땅에 세워진 도성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하여 그리로 이주하여 갔습니다. 롯은 결국 하나님의 구원사를 향한 행진을 하던 중 중도에 포기하고 다시 그가 떠났던 땅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가 떠나왔던 하란 땅이나 지금 다 시 그가 선택하여 간 소돔과 고모라 땅이나 결국은 인간의 악한 역사가 이 루어지는 땅이라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롯은 하나님이 이끄시는 구원의 역사를 따르기를 포기하고 다시 인간의 역사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는 정처없이 떠도는 나그네의 삶에 지쳐 풍요로운 땅에 정착하기를 원하 여 소돔과 고모라 성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롯은 그곳에서 안정을 되찾았고, 그가 바라던 풍요로운 삶을 구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장은 풍요롭고 안락한 삶이었지만, 롯의 삶은 하나님 의 구원사에서 제외되었고, 그가 살던 소돔과 고모라는 결국 하늘에서 떨어 진 불로 응징되어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떠나 이루어지는 악의 역사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언약은 그 자신만의 것이 아닌 그 가족이 모두 따라야 할 언약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도 바로 그 언약의 동반자였습니다.
처음에는 충실하게 아브라함과 더불어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살았 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아들을 낳을 수 없는 늙은이가 되면서 초조하여졌 고, 민족을 번성케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자기가 낳은 아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는 틀렸다고 판단하고, 자기의 여종 하갈을 남편과 동침케 하여 아들을 낳게 하였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라의 이런 판단과 행동은 아 름답고 눈물겨운 희생 정신에서 나온 것이며,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편에서 이루어 드리겠다는 갸륵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라의 판단은 전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 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 자신이 이루시는 것이기에, 우리는 다만 그 약속을 기다릴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인가 한다고 생각 하는 것은 결국은 신앙이 아닌 인간의 뜻을 따르는 행위요,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은, 그들이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지, 자기들이 무엇 인가 그 약속의 실현을 위하여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약속의 전승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그 가정을 통해 계속 전승(傳承)되 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이삭은 야곱에게, 야곱은 열 두 아들에게 그 약속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가정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가는 가 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단위임을 알게 됩니다. 미래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그것은 재산을 물려주듯 쉽게 후손에게 줄 수 있는 것 이 아닙니다. 부모의 끊임없는 기도와 노력에 의해서만 비로소 그 약속을 자기 자녀에게 이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약속이 담긴 율법을 자기 가정에서 후손들에 게 전하는 것을 최대의 의무로 생각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나라 없이 2천년을 세계 각 곳에 흩어져 살면서도 그 민족적 신앙 전통이 사라지지 않고 보존된 것은 바로 그들의 이런 철저한 가정교육을 통해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자처하므로, 아브라함이 받 은 언약을 계속 자기들의 가정에서 전승하기를 힘썼던 것입니다. 구원사에 참여하게 된 그리스도인들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아브라함처럼 우리가 살던 땅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가 속하여 있던 인간의 역사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였 음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미래를 성취하신 분이며,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신 구세주가 되시는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한 역사를 분명하게 우리에게 알 게 하셨고, 타락한 인간들로 하여금 그 역사에 동참할 수 있도록 우리를 구원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제까지와 다른 변화된 삶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초대된 백성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악의 역사에서 벗어나 선의 역사로 옮겨간 것입니다. 이제까지 타고 왔 던 인간의 뜻을 따라 달려온 열차에서 내려 하나님이 친히 운전하시는 열 차에 옮겨 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읽어 드린 에베소서 5장에서는 어둠에 속한 자였다가 이제는 빛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삶이 바뀐다는 것은 역사가 달라짐을 뜻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롭게 시작된 생명의 역사,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의 역사에 우리가 참여하게 되어 이제는 나를 중심으로 살던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으로 변화되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언약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빛의 자녀답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가야 한다는 사실과 또 하나 우리가 받은 이 신앙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이어주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따라가야 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똑바로 알고 따르는 것을 뜻합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처럼 중도에서 탈락하는 일이 없도록 그 역사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는 것을 뜻합니다. 사라처럼 제멋대로 그 역사를 바꾸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살펴 그 뜻을 기다리는 것을 뜻합니다.
동시에 이런 신앙을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물려주는 일이야말로 또한 하나님의 역 사를 바르게 따르는 길임을 알고, 자녀의 신앙교육을 위해 노력해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역 사가 대단히 혼란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여기서 하나님의 역사의 줄기를 찾 아 그것을 좇아 나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 으면 그 역사의 흐름을 놓치고 또다시 세상의 역사를 따라 살기 쉬운 것입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가정이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면서 이 가 정을 통해 올바로 신앙을 전승하여 간다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신앙에 대하여 관심하기 보다는 그들의 눈을 현란케 하는 여러 가지 흥미 있는 일들에 이끌려 가는 것입니다. 그런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가르치며, 그 흐름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전보다 더 열성적으로 그들을 가르 치고 기도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금년의 주제를 "그리스도를 모신 가정"으 로 정한 것은, 바로 우리의 가정이 언약을 받은 가정임을 기억하고 받은 바 그 약속을 날마다 분명하게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끝까지 그 약 속을 향하여 나가는 가정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가 받은 바 언약을 자녀들에게 분명하게 가르침으로 그들도 그 언약을 물려받아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역사를 따라 나가도록 이끌어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도도 하게 흐르는 악의 역사가 우리를 휩쓸어 가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정신 을 차리고 우리의 가정을 신앙 가운데 똑바로 세워 그 악의 역사에 대항하 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따르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언약을 받은 가정으로서 그 약속을 기다리며 그 약속을 바라면서 나그 네의 삶을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 길을 택하였고, 그 역사에 동참하였기에, 중도에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우리를 이끌고 계심을 알고 끝까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따라 가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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