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여정 (창11:27-32)
본문
“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 아 우르에서 죽었더라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 내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 은 밀가의 아비며 또 이스가의 아비더라 사래는 잉태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 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데라는 이백오 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 백 페이지 입니다. 저는 가끔 ‘내가 목사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무얼하고 있을까 ’를 생각해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 목소리만 듣고 아나운서하 면 잘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나 선생님이 잘 어울린다고 말합니다. 저는 목사가 되지 않 았다면 아마 여행 안내자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단순히 놀러가는 여행이 아니라 연구 목적을 가지고 하는 해외 여행 안내가 적격 일 듯 싶습니다. 저는 여행을 참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여행을 통해 인생을 되돌 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살이와 여행은 닮은 데가 있습니다 . 우리가 삶을 사는 데 철학이 필요하듯이 여행을 하는 데도 철 학이 필요합니다. 그 철학에 따라 우리 인생이 달라지듯이 여행의 성격도 판가름 납니다. 저는 여행을 하기 전에 여행할 곳에 대해서 미리 충분히 공부합니다. 그래야 여행 가서 제대로 배우고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장 큰 감명을 받은 여행지는 아무래도 성지(성지)입니다 . 복음서의 배경을 이루는 이스라엘과 사도행전의 무대인 터키는 제 기억에 잊지 못할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여행할 때는 예루살렘을 맨 마지막에 들르는 것이 좋습니다. 예루살렘이 다른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화려하기 때문에 자 칫하면 다른 지역에서 주는 교훈을 놓칠 수 있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우리 교회 교인들과 함께 성지 순례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제가 여행 일정을 조정했습니다. 먼저 예수께서 자라시고 공생애를 위해 준비하셨던 나사렛을 들러 믿음을 배웁니다. 그 다음 갈릴리 바다를 건너며 폭풍우 속에서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을 안심시키시던 주님의 모습을 상기합니다. 갈릴리에서는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숱한 역사를 체험한 도시 예루살렘을 방문합니다. 예루살렘은 역사의 마 지막 사건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 재림을 기다리는 희망의 도시 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일생에 한 번쯤은 꼭 성지를 방문하 도록 권하고 싶습니다.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가 성경 계시의 기초를 형성하는 하나의 단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인 생관과 세계관의 기초가 담겨 있습니다.
본문이 창세기 첫 단원의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본문에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가족이 여행하는 기록이 언급되 어 있습니다. 이 여행의 안내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과 그 일가족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고향을 떠나게 됩니다. 그들 이 여행하면서 머무는 중요한 도시가 세 군데 있습니다.
첫째는 갈대아 우르,둘째는 하란,셋째는 가나안입니다. 이 세 도시는 우리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들을 함 축하고 있습니다. 갈대아 우르 갈대아 우르는 목마름의 땅인 동시에 믿음의 출발지입니다. 갈대아 우르는 아브라함의 고향입니다. 갈대아 우르는 아브라함의 본토이 고 아브라함의 인생의 출발지입니다. 갈대아 우르는 고대 바벨론의 도시 중 하나로서 지금은 이라크 남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도시는 이미 4천년 전에 무역이 성행했고 상업이 번성했던 도시 였습니다. 그 당시 인구가 30만에 육박했음을 볼 때 얼마나 번 창한 도시였는가를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각종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문화가 발달한 곳이었는데, 특별히 ‘나나 ’라는 달신을 숭배하기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대단히 흥미로운 것은 ‘갈대아 우르’라는 지명입니다. 고대 사람 들은 이름을 지을 때 여러 가지를 신경 써서 지었습니다. 도시의 내력과 실상을 살핀 뒤 그와 관련된 이름을 지었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우르는 “목마르다, 폐허가 되었다, 황폐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갈대아 우르는 겉으로 볼 때 무역이 성행하여 상업이 발달한, 당시로서는 상당히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는 뭔지 모르게 사람들을 목마르게 만드는 이상한 도시였습니다. 그 원인은 여호수아서 24장 2절 말씀에서 발견됩니다.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갈대아 우르는 우상을 숭배하던 도시였기 때문에 갈증을 느꼈던 것 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철학에, 예술에, 우상 숭배에 사로잡혀 이리저리 헤매며 인생의 의미를 찾았던 것입니다. 갈대아 우르는 우리들의 옛 모습과도 흡사합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던 수가 성의 사마리아 여인처럼 생명수를 갈급해 하는 모습 입니다. 아브라함도 문명의 부유와 풍요 속에서 말할 수 없는 공 허를 느꼈습니다.
그 원인은 사도행전 7장의 스데반의 설교에 진 단되어 있습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갈대아 우르 )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2절).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다가가셔서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 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말씀하시며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께서 찾아오심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그의 본토 아비 집을 떠났습니다. 새로운 땅을 향해 인생의 새 출발을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이…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 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행 7:3,4). 아브라함은 이제 목마름의 땅에서 생수의 땅으로 옮겨 왔습니다. 죽음의 땅에서 생명의 땅으로 돌이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심은 아브라함의 생애에 큰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목마르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런 의 미에서 갈대아 우르는 목마름의 땅이긴 하지만 인생에 새로운 전환 점을 가져다 준 믿음의 출발지였습니다. 당신은 영혼의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까 여전히 목마르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합니까 여기 복된 소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당신을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 문을 두 드리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그분이 제시하시는 구원의 길로 나아가십시오. 하란 하란은 기다리는 지체의 땅이며 동시에 낭비의 땅입니다. 하란 은 “산”이라는 뜻입니다. 고대 사막 지대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산은 그리 반가운 존재가 아닙니다. 이 산 때문에 가는 길이 막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란은 언제나 장애물의 상징으로 여겨 지는 도시입니다. 하란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을 향해 가는 여정을 방해한 장애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산이라는 장애물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 아브라함이 지체하게 된 주된 이유는 가족들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만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복의 근원”이 되리라는 언약도 아브라함 하고만 맺으셨 습니다(12:1-3 참조). 그러나 아브라함은 온 가족을 이끌고 여행 길에 올랐습니다. 복된 소식을 들었을 때 나 혼자만 알고 나 혼자만 구원을 얻고 나 혼자만 기쁨을 누린다면 그 복된 소 식은 이기적인 것입니다. 복된 소식은 나누고 전할 때 오히려 더 큰 은혜를 낳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와 조카 롯의 가족과 함께 고향을 떠나 하 란에 이르렀습니다(11:31). 아브라함이 하란에 머문 시기는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한데, 하여간 오랜 기간을 머문 것은 사실입니다. 그들은 하란에서 의미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시간을 낭비 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가나안이라는 목표를 놔 두고 하란에 머물러 있던 아브라함이 어느 순간 하란을 떠나게 됩니다. 그 동기가 된 사건은 아버지의 죽 음이었습니다. 아버지 데라가 세상을 떠나자 비로소 약속의 땅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행 7:4 참조).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들은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이 귀한 선물을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기보 다 선물 자체에 집착하고 열중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그 선물은 우리의 우상으로 변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 방해가 됩니다. 예수께서 다음과 같은 제자의 조건을 말씀하신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 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 14:26). 금슬이 너무 좋던 젊은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이 갑작스럽게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아내 되는 자매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한동안 매우 힘들어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자 다행스 럽게도 사별의 아픔을 극복했습니다. 그 자매는 남편이 자신의 삶 에서 하나님보다 더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우상이었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지금은 무엇이 우선인지를 알아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엇을 더 중요시하고 귀히 여기고 집착할 때 그 우상을 제거하십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십니다. 아브라함도 사랑하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정신을 차리고 가나 안으로 나아갔습니다. 당신은 삶의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십니까 하나님이 당신 삶에서 최우선이 되도록 하십시오. 가나안 가나안은 성경에서 천국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떠난 사람만 천국에 간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미래 의 천국 뿐만 아니라 현재 이 땅에서 경험할 수 있는 천국도 의 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나안은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삶의 목 표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생명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은 의미 있고 힘이 있는 풍 성한 생활을 누리게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유감 없이 나타나는 곳이 바로 가나안의 삶입니다. 창세기 12장 5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 안 땅에 들어갔더라.” “마침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당신도 마침내 가나안 땅 으로 들어갔습니까 신앙 생활의 참 의미를 깨달았습니까 구원의 감격이 넘치고 늘 기쁘고 평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은 가나안에 들어간 것입니다. 영광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고향을 떠나라고 명령하실 때 아브라함은 “믿음으로…순종하여…갈 바를 알지 못하고”(히 11:8) 나갔습니다. 그는 가나안 땅이 어디인지 알지 못하나 믿음으로 순종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만이 가 나안을 향해 첫 발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당신은 주님의 말씀과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며 가나안 땅, 저 천성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나아가십시오. 가나안에 머물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풍성한 삶을 누리십시오.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삶이 천국의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천국 시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이 땅에는 아직 눈물과 절망과 수많은 시련 이 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돌보며 다스리고 계십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믿음의 출발지인 갈대아 우르입니까 지체하고 있는 하란입니까 약속의 땅 가나안입니까
본문이 창세기 첫 단원의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본문에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가족이 여행하는 기록이 언급되 어 있습니다. 이 여행의 안내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과 그 일가족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고향을 떠나게 됩니다. 그들 이 여행하면서 머무는 중요한 도시가 세 군데 있습니다.
첫째는 갈대아 우르,둘째는 하란,셋째는 가나안입니다. 이 세 도시는 우리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들을 함 축하고 있습니다. 갈대아 우르 갈대아 우르는 목마름의 땅인 동시에 믿음의 출발지입니다. 갈대아 우르는 아브라함의 고향입니다. 갈대아 우르는 아브라함의 본토이 고 아브라함의 인생의 출발지입니다. 갈대아 우르는 고대 바벨론의 도시 중 하나로서 지금은 이라크 남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도시는 이미 4천년 전에 무역이 성행했고 상업이 번성했던 도시 였습니다. 그 당시 인구가 30만에 육박했음을 볼 때 얼마나 번 창한 도시였는가를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각종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문화가 발달한 곳이었는데, 특별히 ‘나나 ’라는 달신을 숭배하기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대단히 흥미로운 것은 ‘갈대아 우르’라는 지명입니다. 고대 사람 들은 이름을 지을 때 여러 가지를 신경 써서 지었습니다. 도시의 내력과 실상을 살핀 뒤 그와 관련된 이름을 지었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우르는 “목마르다, 폐허가 되었다, 황폐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갈대아 우르는 겉으로 볼 때 무역이 성행하여 상업이 발달한, 당시로서는 상당히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는 뭔지 모르게 사람들을 목마르게 만드는 이상한 도시였습니다. 그 원인은 여호수아서 24장 2절 말씀에서 발견됩니다.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갈대아 우르는 우상을 숭배하던 도시였기 때문에 갈증을 느꼈던 것 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철학에, 예술에, 우상 숭배에 사로잡혀 이리저리 헤매며 인생의 의미를 찾았던 것입니다. 갈대아 우르는 우리들의 옛 모습과도 흡사합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던 수가 성의 사마리아 여인처럼 생명수를 갈급해 하는 모습 입니다. 아브라함도 문명의 부유와 풍요 속에서 말할 수 없는 공 허를 느꼈습니다.
그 원인은 사도행전 7장의 스데반의 설교에 진 단되어 있습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갈대아 우르 )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2절).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다가가셔서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 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말씀하시며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께서 찾아오심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그의 본토 아비 집을 떠났습니다. 새로운 땅을 향해 인생의 새 출발을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이…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 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행 7:3,4). 아브라함은 이제 목마름의 땅에서 생수의 땅으로 옮겨 왔습니다. 죽음의 땅에서 생명의 땅으로 돌이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심은 아브라함의 생애에 큰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목마르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런 의 미에서 갈대아 우르는 목마름의 땅이긴 하지만 인생에 새로운 전환 점을 가져다 준 믿음의 출발지였습니다. 당신은 영혼의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까 여전히 목마르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합니까 여기 복된 소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당신을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 문을 두 드리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그분이 제시하시는 구원의 길로 나아가십시오. 하란 하란은 기다리는 지체의 땅이며 동시에 낭비의 땅입니다. 하란 은 “산”이라는 뜻입니다. 고대 사막 지대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산은 그리 반가운 존재가 아닙니다. 이 산 때문에 가는 길이 막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란은 언제나 장애물의 상징으로 여겨 지는 도시입니다. 하란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을 향해 가는 여정을 방해한 장애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산이라는 장애물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 아브라함이 지체하게 된 주된 이유는 가족들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만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복의 근원”이 되리라는 언약도 아브라함 하고만 맺으셨 습니다(12:1-3 참조). 그러나 아브라함은 온 가족을 이끌고 여행 길에 올랐습니다. 복된 소식을 들었을 때 나 혼자만 알고 나 혼자만 구원을 얻고 나 혼자만 기쁨을 누린다면 그 복된 소 식은 이기적인 것입니다. 복된 소식은 나누고 전할 때 오히려 더 큰 은혜를 낳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와 조카 롯의 가족과 함께 고향을 떠나 하 란에 이르렀습니다(11:31). 아브라함이 하란에 머문 시기는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한데, 하여간 오랜 기간을 머문 것은 사실입니다. 그들은 하란에서 의미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시간을 낭비 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가나안이라는 목표를 놔 두고 하란에 머물러 있던 아브라함이 어느 순간 하란을 떠나게 됩니다. 그 동기가 된 사건은 아버지의 죽 음이었습니다. 아버지 데라가 세상을 떠나자 비로소 약속의 땅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행 7:4 참조).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들은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이 귀한 선물을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기보 다 선물 자체에 집착하고 열중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그 선물은 우리의 우상으로 변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 방해가 됩니다. 예수께서 다음과 같은 제자의 조건을 말씀하신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 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 14:26). 금슬이 너무 좋던 젊은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이 갑작스럽게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아내 되는 자매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한동안 매우 힘들어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자 다행스 럽게도 사별의 아픔을 극복했습니다. 그 자매는 남편이 자신의 삶 에서 하나님보다 더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우상이었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지금은 무엇이 우선인지를 알아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엇을 더 중요시하고 귀히 여기고 집착할 때 그 우상을 제거하십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십니다. 아브라함도 사랑하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정신을 차리고 가나 안으로 나아갔습니다. 당신은 삶의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십니까 하나님이 당신 삶에서 최우선이 되도록 하십시오. 가나안 가나안은 성경에서 천국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떠난 사람만 천국에 간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미래 의 천국 뿐만 아니라 현재 이 땅에서 경험할 수 있는 천국도 의 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나안은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삶의 목 표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생명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은 의미 있고 힘이 있는 풍 성한 생활을 누리게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유감 없이 나타나는 곳이 바로 가나안의 삶입니다. 창세기 12장 5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 안 땅에 들어갔더라.” “마침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당신도 마침내 가나안 땅 으로 들어갔습니까 신앙 생활의 참 의미를 깨달았습니까 구원의 감격이 넘치고 늘 기쁘고 평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은 가나안에 들어간 것입니다. 영광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고향을 떠나라고 명령하실 때 아브라함은 “믿음으로…순종하여…갈 바를 알지 못하고”(히 11:8) 나갔습니다. 그는 가나안 땅이 어디인지 알지 못하나 믿음으로 순종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만이 가 나안을 향해 첫 발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당신은 주님의 말씀과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며 가나안 땅, 저 천성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나아가십시오. 가나안에 머물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풍성한 삶을 누리십시오.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삶이 천국의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천국 시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이 땅에는 아직 눈물과 절망과 수많은 시련 이 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돌보며 다스리고 계십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믿음의 출발지인 갈대아 우르입니까 지체하고 있는 하란입니까 약속의 땅 가나안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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