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가나안이거 (창12:1)
본문
하나님의 족장들과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선택의 원칙입니다. 지금까지는 인류가 전체로서 다루어져 왔습니다. 예외가 있다면 파멸에 버려 두신 인류 중에서 새로운 인류를 선택하신 노아의 경우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셈족속 가운데서 한 가족을 택하시어 그들과 함께 그들 속에서 하나님의 구속적, 계시적 사역을 수행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아브라함을 부르신 엄청난 중요성이 있습니다. 이후로는, 이 선택의 한계 밖에서는 계시가 드물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역의 전 과정은 한 백성이라는 좁은 통로에 한정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언약하심으로 시작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아브라 함이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하려 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 브라함을 위하여 무엇을 하시고자 하는가입니다. 과거에 역사하셨던 하나님 께서, 이제도 역사하시며, 미래에도 역사하실 것을 약속하신다는 것입니다. 족장들에 대한 하나님의 객관적인 행동하심은 세 가지 커다란 약속과 연관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선택된 가족이 큰 나라를 이룰 것이라는 것,
둘째는 가나안 땅이 그들의 소유가 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세째는 그들이 모든 백성에게 대하여 축복이 되리라는 약속입니다. 신앙은 아브라함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적인 행동이었고, 그의 마음의 틀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그의 믿음에 대한 큰 요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의 고향,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도록 부름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처음에 당신이 지시할 땅의 이름을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가 전부였습니다. 히브리서 11:8절에서는 "갈 바를 알 지 못하고 나갔으며"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창 12:1-3절은 아브라함의 소명사건입니다(각 사건은 전체 역사와 연관되 므로 문맥은 중요시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 시각으로 아브라함을 보았으나 창 12:1-3절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구속사와 발맞추어 기록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역 사 속에서 아브라함 소명 사건을 조명해 보면, 11장 바벨탑 사건과 나라 건 설이라는 유사성이 있고, 한편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나라는 축복의 나라 인데 다른편 11장의 나라는 그 종국이 흩어지는 결과 즉 분열과 멸망, 저주 받은 나라로 끝납니다. 창 12장의 key word는 다음과 같습니다. 11장에는 +-Land +-지시할 땅(+-시날평지 Nation = 큰 민족 큰 성과 대 +-Blessing 네 이름을 창대케 함 자기 이름 (name, 모든 +-복의 근원이 됨 +-저주받음 민족에게 축복의 매개자) 이 두 가지 사건은 크게 대조되는데 둘 다 나라(왕국건설)에 관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의 계획은 어떤 땅에 나라를 건설하고, 그 나라는 축복을 받고, 그 나라를 통해 만민이 복을 받는다입니다. 하나는 세계 만민의 축복의 나라이고 하나는 저주의 나라입니다. 왜 이런 상반된 결과를 낳고, 서로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12장에 나타난 동사는 하나님 1인칭으로 되어 있습니다. 왕국건설의 주체 가 하나님입니다(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왕국). 반면 11장의 동사는 사람들 (1인칭 복수)입니다(우리 이름을 내고 건설하자. 즉 사람이 주어인 인간의 왕국을 의미합니다). 이 근본적인 차이는 사람을 위한 왕국건설과 하나님이 세우신 왕국건설(아브라함을 통해서 세운)이라는 것입니다. 두 왕국의 건축 자가 다릅니다. 창 11:10부터는 셈-데라의 족보인데, 아브라함 역사의 근원은 셈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9:26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라'고 노아 가 셈을 축복합니다. '.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최초로 나타나는데 '셈 의 하나님'이라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셈과 특별한 관 계를 맺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covenant fomular는 '나는 네 하나님 되고 너는 내 백성'인 것인데 특별한 관계를 표현할 때 쓰이는 말입니다. 홍수 이후 인류가 새롭게 시작하지만 그 역사는 망하기로 운명지어진 역 사입니다. 이런 역사를 배경으로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 축복의 나라를 건설하시려는 위대한 큰 경륜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겠다는 약속이 12장의 약속입니다. 심판과 멸망을 자초할 인류 역사와 인간 나라 속에서, 그 배경 속에서 생명과 축복을 주시는 축복 의 나라를 건설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바벨탑 사건 이후에 아브 라함의 새 역사가 시작되면서 셈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는데, 아브라함 이 후의 역사는 심판과 저주 아래 있는 인간의 상태를 전제로 하고 또 다른 줄 기로 셈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심판과 저주 가운데서 한 sign으로서 셈의 역사는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셈과 함께 하신 은혜의 역사는(데라로부터) 아브라함으로부터 큰 진전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셈의 약 속이 구체화되는데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신 새 왕국 건설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셈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어가시는 것입니다. 스스로 인간의 힘으로 하는 모든 노력은 멸망으로 끝남을 보이고 하나님께서는 아 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 왕국의 건설을 선언하신 것입니다(창 12:1-3).
창 12장의 아브라함에게 주어지는 축복의 한 형태가 그 이름을 창대케 하 고, 만방에 알리겠다는 것, 그리고 열방들이 그를 듣고 그를 통해 축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왕국 건설의 약속을 주시고 있습니다. 성경은 역사적 흐름을 따라 기록되었으므로 멧세지를 이해함에 있어서 역사성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역사적 흐름을 따라 성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의 왕국건설의 약속은 역사의 흐름을 따라 이해의 폭 을 넓혀가야면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연결되어져야 합니다. 마리아를 통해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은 바로 아브라함을 통해 생명의 축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로서 아브라함에게까지 거 슬러 올라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 건설은 아브라함에 게 약속하신 약속에 대한 성취입니다. 아브라함의 축복의 한 형태가 그 이름을 창대케 하고 만방에 알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방들이 그를 듣고 그를 통해 축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Abraham-David(구약에서의 하나님 왕국의 형성) David-Captivity(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한 왕국의 와해) +-Captivity-Jesus Crist(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왕국의 재건 왕국 의 소망)
그러므로 세례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의 첫 멧세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 까왔느니라'였습니다(하나님 왕국의 도래). 히브리서 11장 8-9절의 아브라 함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친히 건설하시는 한 성, 왕국에 대한 확실한 소망 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모든 역사의 핵심은 하나님의 왕국건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건설자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십니다. 따라서 구약의 모든 부분이 예수 그리스도와 직결되어 있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인 것입니다. 히 12:10절의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다'는 말은 창 12:1-3절의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 대한 약속으로 봐야 합니다. 성경은 개별적 역사로서 분리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고 전체로서 일 관된 흐름의 한 가운데에서 의미를 가집니다. '일관된 무엇' 곧 중심주제를 골자로 하여 형성되는 사건입니다. 연속적 흐름으로서의 역사의 증거는 성경에 있어서 족보기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라는 주제 아 래 그 흐름을 파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내 왕국을 세우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이후의 역사를 '족장사'(Patriarchal History)라고 합니다. 족장사의 구조(frame) +-아브라함(11:27-) 이 삭(25:12-) +-야 곱(36:1-) 이 큰 세 덩어리로 구분됩니다. 이 역사는 성경에서 의미심장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여호와는 '아브라 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으로 지칭됩니다. 이 3 구조는 전체로서 무엇에 관심이 있는 것입니까 족장사의 관심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네 자손에게 이 땅을 주리라) 누가 이어받는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나라를 허락하시자 4절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갔더라'고 기록합니다. 6절 이하에 보면 아브라함이 가 나안 땅에 도착했고, 그 도착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옵니다. 7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의미는 지시하신 땅이 바로 이 땅이며, 이 땅을 후손에게 주겠다 하시며 이 땅에 왕국을 세우실 것을 확인하십니다. 하나님 자기 나라를 세우실 땅이 바로 가나안입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성취였습니다. 8절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이 말은 창 4:26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다'와 같은데 이것은 예배와 같은 의미입니다. 부르는 것은 예배의식에 서 합니다. 이 말은 도움을 간구한다, 예배를 드린다의 의미입니다. '단을 쌓고' 대개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신 곳에 단을 쌓습니다. 하나님 섬김의 삶 을 표시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고 사람을 만나셨다는 의미로서 이는 하나님의 임재를 전제하면서 성막이나 성전의 기능 혹은 의미를 상기 시켜 줍니다.
그런데 8절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나타나셨고 말씀하셨으 며 여기에 단을 쌓았다는 것은 다른 의미,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리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것이 다'라는 말씀과 관련하여 제단을 쌓은 의미를 살펴보면 이 땅은 하나님이 섬김을 받는 땅이요, 하나님의 소유요,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나라가 세워질 땅임을 확인하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만나 말씀, 계시, 교통하시며 인간의 섬김을 받으시는 곳이 바로 제단을 쌓는 곳이 라는 의미라면, 이 땅이 바로 하나님이 섬김을 받는 땅이요, 하나님이 다스 리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실 왕국의 약속 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왕국건설에 관련된 아브라함 이후의 역사는 하나님 왕국의 진정의 역사입니다. 창세기의 역사에서 왕국건설의 실현(예비 적 성취)이 가나안 땅입니다. 10절에 극심한 기근으로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애굽은 삼각주 로서 나일강의 범람으로 아주 비옥한 땅입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지 않는데 애굽에 내려갔던 일은 죄로서 더 큰 죄를 짓게 된다고 종래 해석해 왔습니다. 아내를 이용하여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며 애굽 왕에게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한 것은 아름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시했는지 않했는지 기록이 안나왔지만 지시했을 수도 있고, 기근 때문에 내려갔 을 수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사건을 도덕화하는 것을 moralize한다고 합니다. 선악으로 모든 사건을 구분하려 하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moralize할 수 있고, 또 그 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근으로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간 것은 탐욕 때문이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단순하게 moralize할 수 없습니다. 저자가 그것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저자의 기록의 목적, 그리고 저자의 관심이 아브라함이 선한가 악한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라를 보호하심에 주된 관심이 있습니다(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이룰 즉, 아브라함의 후손을 낳을 사라를 보호하셨습니다). 이는 3절의 약속을 하나님이 신실하게 이루 심입니다. 아브라함과 함께 사라도 약속을 받은 자(bearer of promise)입니다. 그들을 바로로부터 하나님께서 보호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 자 체에 대해 신실하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첫째는 선택된 가족이 큰 나라를 이룰 것이라는 것,
둘째는 가나안 땅이 그들의 소유가 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세째는 그들이 모든 백성에게 대하여 축복이 되리라는 약속입니다. 신앙은 아브라함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적인 행동이었고, 그의 마음의 틀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그의 믿음에 대한 큰 요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의 고향,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도록 부름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처음에 당신이 지시할 땅의 이름을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가 전부였습니다. 히브리서 11:8절에서는 "갈 바를 알 지 못하고 나갔으며"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창 12:1-3절은 아브라함의 소명사건입니다(각 사건은 전체 역사와 연관되 므로 문맥은 중요시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 시각으로 아브라함을 보았으나 창 12:1-3절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구속사와 발맞추어 기록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역 사 속에서 아브라함 소명 사건을 조명해 보면, 11장 바벨탑 사건과 나라 건 설이라는 유사성이 있고, 한편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나라는 축복의 나라 인데 다른편 11장의 나라는 그 종국이 흩어지는 결과 즉 분열과 멸망, 저주 받은 나라로 끝납니다. 창 12장의 key word는 다음과 같습니다. 11장에는 +-Land +-지시할 땅(+-시날평지 Nation = 큰 민족 큰 성과 대 +-Blessing 네 이름을 창대케 함 자기 이름 (name, 모든 +-복의 근원이 됨 +-저주받음 민족에게 축복의 매개자) 이 두 가지 사건은 크게 대조되는데 둘 다 나라(왕국건설)에 관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의 계획은 어떤 땅에 나라를 건설하고, 그 나라는 축복을 받고, 그 나라를 통해 만민이 복을 받는다입니다. 하나는 세계 만민의 축복의 나라이고 하나는 저주의 나라입니다. 왜 이런 상반된 결과를 낳고, 서로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12장에 나타난 동사는 하나님 1인칭으로 되어 있습니다. 왕국건설의 주체 가 하나님입니다(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왕국). 반면 11장의 동사는 사람들 (1인칭 복수)입니다(우리 이름을 내고 건설하자. 즉 사람이 주어인 인간의 왕국을 의미합니다). 이 근본적인 차이는 사람을 위한 왕국건설과 하나님이 세우신 왕국건설(아브라함을 통해서 세운)이라는 것입니다. 두 왕국의 건축 자가 다릅니다. 창 11:10부터는 셈-데라의 족보인데, 아브라함 역사의 근원은 셈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9:26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라'고 노아 가 셈을 축복합니다. '.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최초로 나타나는데 '셈 의 하나님'이라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셈과 특별한 관 계를 맺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covenant fomular는 '나는 네 하나님 되고 너는 내 백성'인 것인데 특별한 관계를 표현할 때 쓰이는 말입니다. 홍수 이후 인류가 새롭게 시작하지만 그 역사는 망하기로 운명지어진 역 사입니다. 이런 역사를 배경으로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 축복의 나라를 건설하시려는 위대한 큰 경륜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겠다는 약속이 12장의 약속입니다. 심판과 멸망을 자초할 인류 역사와 인간 나라 속에서, 그 배경 속에서 생명과 축복을 주시는 축복 의 나라를 건설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바벨탑 사건 이후에 아브 라함의 새 역사가 시작되면서 셈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는데, 아브라함 이 후의 역사는 심판과 저주 아래 있는 인간의 상태를 전제로 하고 또 다른 줄 기로 셈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심판과 저주 가운데서 한 sign으로서 셈의 역사는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셈과 함께 하신 은혜의 역사는(데라로부터) 아브라함으로부터 큰 진전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셈의 약 속이 구체화되는데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신 새 왕국 건설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셈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어가시는 것입니다. 스스로 인간의 힘으로 하는 모든 노력은 멸망으로 끝남을 보이고 하나님께서는 아 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 왕국의 건설을 선언하신 것입니다(창 12:1-3).
창 12장의 아브라함에게 주어지는 축복의 한 형태가 그 이름을 창대케 하 고, 만방에 알리겠다는 것, 그리고 열방들이 그를 듣고 그를 통해 축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왕국 건설의 약속을 주시고 있습니다. 성경은 역사적 흐름을 따라 기록되었으므로 멧세지를 이해함에 있어서 역사성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역사적 흐름을 따라 성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의 왕국건설의 약속은 역사의 흐름을 따라 이해의 폭 을 넓혀가야면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연결되어져야 합니다. 마리아를 통해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은 바로 아브라함을 통해 생명의 축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로서 아브라함에게까지 거 슬러 올라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 건설은 아브라함에 게 약속하신 약속에 대한 성취입니다. 아브라함의 축복의 한 형태가 그 이름을 창대케 하고 만방에 알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방들이 그를 듣고 그를 통해 축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Abraham-David(구약에서의 하나님 왕국의 형성) David-Captivity(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한 왕국의 와해) +-Captivity-Jesus Crist(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왕국의 재건 왕국 의 소망)
그러므로 세례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의 첫 멧세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 까왔느니라'였습니다(하나님 왕국의 도래). 히브리서 11장 8-9절의 아브라 함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친히 건설하시는 한 성, 왕국에 대한 확실한 소망 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모든 역사의 핵심은 하나님의 왕국건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건설자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십니다. 따라서 구약의 모든 부분이 예수 그리스도와 직결되어 있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인 것입니다. 히 12:10절의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다'는 말은 창 12:1-3절의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 대한 약속으로 봐야 합니다. 성경은 개별적 역사로서 분리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고 전체로서 일 관된 흐름의 한 가운데에서 의미를 가집니다. '일관된 무엇' 곧 중심주제를 골자로 하여 형성되는 사건입니다. 연속적 흐름으로서의 역사의 증거는 성경에 있어서 족보기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라는 주제 아 래 그 흐름을 파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내 왕국을 세우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이후의 역사를 '족장사'(Patriarchal History)라고 합니다. 족장사의 구조(frame) +-아브라함(11:27-) 이 삭(25:12-) +-야 곱(36:1-) 이 큰 세 덩어리로 구분됩니다. 이 역사는 성경에서 의미심장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여호와는 '아브라 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으로 지칭됩니다. 이 3 구조는 전체로서 무엇에 관심이 있는 것입니까 족장사의 관심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네 자손에게 이 땅을 주리라) 누가 이어받는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나라를 허락하시자 4절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갔더라'고 기록합니다. 6절 이하에 보면 아브라함이 가 나안 땅에 도착했고, 그 도착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옵니다. 7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의미는 지시하신 땅이 바로 이 땅이며, 이 땅을 후손에게 주겠다 하시며 이 땅에 왕국을 세우실 것을 확인하십니다. 하나님 자기 나라를 세우실 땅이 바로 가나안입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성취였습니다. 8절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이 말은 창 4:26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다'와 같은데 이것은 예배와 같은 의미입니다. 부르는 것은 예배의식에 서 합니다. 이 말은 도움을 간구한다, 예배를 드린다의 의미입니다. '단을 쌓고' 대개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신 곳에 단을 쌓습니다. 하나님 섬김의 삶 을 표시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고 사람을 만나셨다는 의미로서 이는 하나님의 임재를 전제하면서 성막이나 성전의 기능 혹은 의미를 상기 시켜 줍니다.
그런데 8절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나타나셨고 말씀하셨으 며 여기에 단을 쌓았다는 것은 다른 의미,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리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것이 다'라는 말씀과 관련하여 제단을 쌓은 의미를 살펴보면 이 땅은 하나님이 섬김을 받는 땅이요, 하나님의 소유요,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나라가 세워질 땅임을 확인하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만나 말씀, 계시, 교통하시며 인간의 섬김을 받으시는 곳이 바로 제단을 쌓는 곳이 라는 의미라면, 이 땅이 바로 하나님이 섬김을 받는 땅이요, 하나님이 다스 리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실 왕국의 약속 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왕국건설에 관련된 아브라함 이후의 역사는 하나님 왕국의 진정의 역사입니다. 창세기의 역사에서 왕국건설의 실현(예비 적 성취)이 가나안 땅입니다. 10절에 극심한 기근으로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애굽은 삼각주 로서 나일강의 범람으로 아주 비옥한 땅입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지 않는데 애굽에 내려갔던 일은 죄로서 더 큰 죄를 짓게 된다고 종래 해석해 왔습니다. 아내를 이용하여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며 애굽 왕에게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한 것은 아름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시했는지 않했는지 기록이 안나왔지만 지시했을 수도 있고, 기근 때문에 내려갔 을 수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사건을 도덕화하는 것을 moralize한다고 합니다. 선악으로 모든 사건을 구분하려 하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moralize할 수 있고, 또 그 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근으로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간 것은 탐욕 때문이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단순하게 moralize할 수 없습니다. 저자가 그것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저자의 기록의 목적, 그리고 저자의 관심이 아브라함이 선한가 악한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라를 보호하심에 주된 관심이 있습니다(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이룰 즉, 아브라함의 후손을 낳을 사라를 보호하셨습니다). 이는 3절의 약속을 하나님이 신실하게 이루 심입니다. 아브라함과 함께 사라도 약속을 받은 자(bearer of promise)입니다. 그들을 바로로부터 하나님께서 보호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 자 체에 대해 신실하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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