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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통 (창3:17-24)

본문

본문은 아담과 하와가 쫓겨나는 장면이다. 이 사람이 선악울 아는 일에 우리 중에 하나 같이 되었다 고 말씀하셨다. 인간이 생명과를 따먹고 영생할까봐 하나님은 에덴동산으로부터 인간을 추방하신다. 그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과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0-21) 이 장면은 본 훼퍼는 '옥중서간'에서 고칠 수 없는 것은 감추고 있을 수밖에 없다 고 적었다. 그 것을 감추어 주신 이가 하나님이시다. 깨끗한 집과 더러운 집이란 어떤 차이가 있는가 깨끗한 집은 쓰레기가 통 속에 들어가 있는 집이고, 더러운 집은 쓰레기가 널려 있는 집을 말한다. 우리가 자주 오해하고 있는 부분은 이런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깨끗한 사람이 되면 우리 마음에 더러운 생각이 안나온다 고 생각해 버 린다. 그러나 성경에 신앙인이란 그 마음 속에 다시는 죄악된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 이라 고 언급한 곳은 단 하나도 없다. 다만 일어나는 생각을 눌러야 되는 사람이다. 악한 말을 입밖에 내지 않고 악한 생각을 행위로 옮기지 않는 사람일 뿐이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 악한 생각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이 드는 것 자체로 당황한다. 그리고는 결벽증에 걸려서 자신을 학대하게 된다. 사람은 뒤에서 욕하는 것과 앞에서 욕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나쁜가 그것은 앞에서 욕한 것 이 훨씬 더 나쁘다. 그러나 뒤에서 욕하면 치사하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뒤에서 욕한 것은 예의를 지킨 것이다. 앞에서 욕한 것은 싸우자는 것이다. 뒤에서 욕한 것은 싸우지 않겠다는 자세이다. 고칠 수 없는 것은 감추고 지내야 한다. 상대해서 감당할 수 없을 때 도망가는 것이 겸손이다. 나는 이것을 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겸손한 것이다. 성경에 진술된 말들, 사랑하 자, 봉사하자, 충성하자 하는 것들을 결심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다. 자기 실력 은 돌아보지 않고 단순하게 되리라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다. 사람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한 사랑과 희락과 화평 이란 것이 그런 낮은 수준의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훨씬 차원 높은 인격의 한 수준인 것이다. 그것을 고쳐 나가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 리고,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야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일들을 만 났을 때 이 일은 내가 할 수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만큼 용기 있는 일은 없다. 깨끗한 사람이란 주머니에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다. 손수건이란 깨끗하게 간수하는 것이 아니라, 코 나오면 닦고 더러운 것이 있을 때마다 닦아내는 것이다. 우리에게 있는 것들은 감추어야 할 것이 많이 있다. 고칠 수 없으면 감추어야 한다. 누구와 화해하는 문제에 있어서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인간을 얼마나 깊고 오묘 하게 만드셨는가를 이해해야 하는 구절이 본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는 방법으 로 십자가를 쓰실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기억케 하는 본문이다. 그것이 얼마나 인간을 대접하는 것이고 인간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로 하나님 앞에 만들어졌는가를 기억케 하는 내용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남이 뒤에서 흉보는 것은 용납해야 한다. 우리도 남을 뒤에서 흉보아야 간신히 넘어 갈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러면서 우리는 사람들을 용서하는 마음을 넓혀야 한다. 사랑과 용서의 마음은 그리 쉽게 생기지 않는다. 많은 시행착오와 좌절할 만큼의 성격적 결함의 치명적 실수들을 경험해서 고쳐 오는 것이다. 누구나 속마음에 더러움과 더러운 유혹을 받는다. 그것이 없어서 깨끗한 사람이 아니 라 십자가 아래 묻어서 성결을 유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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