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120년의 유예기간 (창6:1-12)

본문

저는 법학을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인 것은 모르지만, 우리나라 형법상 '집행유예 ' 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사전을 찾아 보니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형의 선고판결을 받았으 되 정상을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을 때에 일정 기간 형의 집행을 유예하며, 그 유예기간을 무사 히 지난 때에는 형의 선고 효력을 잃는 제도'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상당히 좋은 제도라 고 봅니다. 제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 같은 반 학우가 반공법에 위반되어 재판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학우는 북한선교에 헌신한 자였었는데 북한에 대하여 좀더 알려고 하는 과정에서 반 공법에 저촉되었던 것입니다. 70년대 말, 80년대 초에는 얼마나 반공법이 무서웠습니까 그 때에 저는 선교회 서클의 대표로 있었기 때문에 그 학우를 위하여 증인으로 법정에 출두한 적이 있었 습니다. 결국 그 학우는 몇차례 재판을 거쳐 3년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된 일을 지금도 기 억합니다. 무죄는 어렵고 여러가지 상황을 참작하여 최대한의 자비와 은혜를 베푸는 제도가 바 로 '집행유예'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의 말씀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기 전 에 인간에게 비슷한 유예기간을 선고하였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본문 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120년이 무 엇을 의미하는가 지금도 해석상의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인간의 수명이 120년이 된 다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120년 후에 인간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인가 크게 두가지 이론이 학자들 사이에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말씀 이후 홍수심판이 이어지는 것을 볼 때 에 여기서의 120년은 심판이 나타나기 전까지의 유예기간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하 나 님께서는 이렇게 심판 전에 유예기간을 선포하여 사람들이 죄악된 삶을 청산하고 자기에게로 돌아오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죄악상은 암흑천지를 이루게 되었고 결국은 120년 의 유예기간이 끝나고 홍수심판이 나타나게 됩니다. 오늘은 이 120년의 유예기간이 마지막 때를 살 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서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마지막 때를 살아 갈 것인가를 결단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먼저 120년의 유예기간이 선고되기까지의 배경을 잠시 살펴 보겠습니다. 가인과 셋을 우두머리로 인류의 발전을 더듬고 있는 4-5장의 족보에 이어서 창세기 6장에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사이의 통혼이 전개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경 건 한 셋의 후예들을 말하며, '사람의 딸들'이란 반대로 경건하지 못한 가인의 후예들을 의미합니다. 본문 2절 말씀을 보면 경건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 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부다처제의 추악한 결혼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코 서로 합할 수도, 합쳐서도 안되는 경건한 자들이 그렇지 못한 자들과 육신의 욕정 때문에 서로를 탐하였고 이러한 결합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된 것입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젊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아름다움에 이끌리어 만나 결혼을 하는 것이 왜 죄가 되는 것인가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것이고 그것의 근본은 결코 그 렇지가 않습니다. 앞 장의 족보에서도 그것을 밝히고 있지만 성경은 셋의 후예와 가인의 후예 로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셋의 후예는 여호와를 섬기고 경배하는 거룩한 종족이었습니다. 그들은 항상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를 섬겼고, 제사를 드리는 삶을 살았으며 그분의 은혜 속에 서 하나님의 나라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삶을 사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후예들은 이들과는 다르게 세상의 물질과 향락에 눈이 어두운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존재가 무의미했습니다. 오직 자신들이 스스로를 즐길 수 있다면 그것 으로 만족하면서 사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이렇게 서로가 다른 생활과 신앙습관으로 인하 여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셋의 자손들의 종교적 행위가 무력해 지면서 영적인 경건생활의 풍토가 쇠퇴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가인의 후예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에 흥미 를 느끼게 되었고, 급기야는 그러한 여자들의 외적인 매력에 사로잡혀서 아내를 삼았던 것입니다. 결코 연합할 수 없고, 연합해서는 안되는 두 종족의 혼합은 인류의 부패와 타락을 가져오게 되 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면서 홍수심판을 계획하셨고, 하나님께서는 이 심판에 앞서 120년의 유예기간을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왜 우리는 이 마지막 시대에 그 옛날 인류에게 내려졌던 첫번째 홍수심판과 그 심판 전에 내려졌던 120년의 유예기간을 깊이 관찰해야 하는 것입니까 바로 첫번째 인류에게 내 려진 홍수심판은 마지막 불심판을 예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떤 의미에 있어서 120 년 의 유예기간은 비록 몇 년이라고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심판을 앞에둔 오늘 이 시대를 예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습니까 첫번째 물심판과 마지막 불심판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면, 당연히 홍수심판을 앞에둔 120년의 유예기간이나 마지막 심판을 앞두고 있는 오늘 이 시대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홍수심판 전의 유예기간은 120년이라고 분명 히 밝혔지만 마지막 심판을 앞둔 유예기간에 대하여 성경은 침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이 시대를 돌이켜 봅시다. 그야말로 이 시대의 죄악상은 홍수심판 전의 시대 상을 방불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 시대보다 더욱 노골화되고 지능화되고 강포해졌습니다. 더 욱 팽배해지는 물질만능주의, 성적인 문란, 첨단기술이니 유전공학이니 하는 현대의 과학은 어쩌 면 홍수심판 전에 나타났던 거대한 네피림(거인)의 출현을 가능케 할지도 모릅니다. 성경을 알지 못하는 과학자, 사회학자, 인류학자들도 세상의 종말이 오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 때에 과연 하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은 첫번째 홍수심판 이전에 선고되었던 120년의 유예기간을 어떻게 이해 해야 하겠습니까 또한 이것이 주는 영적인 교훈을 어떻게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하겠습니까 두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인간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요, 두번째는 인간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회개하도록 기다리시며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입니다.
2.그러면 먼저 인간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적인 측면을 생각해 봅시다. 본문에 나타난 인간의 죄악상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사람을 지으셨음을 한탄하고 마음에 근심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본문 5-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 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 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물 론 여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마음에 한탄하시고 근심하셨다는 표현은 인간의 창조가 완벽하지 못했거나 실패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 하 시며, 그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결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 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믿습니 까
그렇다면 본문에서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신학자 칼빈은 이 것을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이다'라고 해석하였습니다. 다시 말 해서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지으신 것을 후회하거나 변경시켰다는 의미가 아니라 죄악을 증오하시는 마음의 표현을 인간적인 표현으로 나타낸 것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죄를 미워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은 인류 전체를 물로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고, 그 심 판 에 앞서 120년의 유예기간을 선포합니다. 이 심판은 인류 전체를 파멸로 이끌만큼 철저한 것이 었 으며, 인간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후회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는가 를 잘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를 회고해 볼 때에 인간의 죄에 대한 심판은 홍 수심판 한번으로 끝이 난 것은 아닙니다. 인류의 역사 가운데 끊임없이 반복되어 나타났고, 이러 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결국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도록 버릴 만 큼 철저한 것이었습니다. 심판주 되시는 하나님 앞에 죄인은 설 수 없으며, 결국 그분은 우리의 선악간의 모든 것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홍수심판과 그 전에 선고된 120년 의 유예기간은 인간의 죄에 대하여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모습을 잘 교훈하고 있습니다.
3.다음으로 인간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적인 측면을 생각해 봅시다. 성경에 나타나는 모든 심판이 그렇듯이 첫번째 홍수심판과 그 전에 선고된 120년의 유예기 간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만을 나타내지는 않습니다. 이 심판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 혜 와 긍휼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시말해서 인간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보존되고 유 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가 낳은 기적이요 은총이라는 겁니다. 또한 이 심판과 유예기간은 모 든 사람이 회개하여 구원을 얻도록 기다리시고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더더욱 인간의 악한 역사 속에서도 결코 소멸되지 않는 소수의 의 인 이 존속하며, 이 소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가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요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 소수의 의인이 바로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노아입니다. 노아는 모든 세상이 죄악으로 말 미 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을 당할 때에도 구원을 받은 유일한 사람입니다. 120년의 유예 기 간 동안에도 다른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시집가고 장가가면서 죄악된 삶을 살았지만 의인 노아는 의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믿음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와 그의 집을 구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성경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본문 8절 말씀에 보면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 었다고 하였고, 9절 말씀에 보면 노아는 의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의인이기 때문에 여호와 께 은혜를 입은 것이 아니고, 먼저 그가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그를 의롭게 여기신 것입니다. 믿습니까 의인이기 때문에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공로신앙입니다. 그것은 기독교와는 상관이 없으며 은혜의 신앙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인류를 심판하시는 와중에 서 도 의인 노아에게 은혜를 입히셨고, 그를 통하여 구원의 씨를 보존케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구약 요나서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성을 심판하시기 전에도 40일간의 유 예 기간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선지자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니느웨 백성들에게 외 쳤습니다.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그 때에 니느웨 백성들은 그 심판의 메시 지 를 듣고 왕으로부터 모든 백성들이 금식을 선포하고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있 었습니다. 그러나 홍수심판이 있기전 사람들의 모습은 달랐습니다. 물론 의인 노아도 방주를 예 비하면서 심판의 소식을 사람들에게 알렸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120년 후에 이 땅을 물로 서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 때의 사람들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는커녕 더욱 죄악된 삶 을 살다가 모두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성경은 그 때의 모습과 마지막 심판 전의 모습을 비교 하 면서 이렇게 경고합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 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24:37-39) 귀 있는 자는 새겨 들 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결론적인 메시지를 드립니다. 첫번째 홍수심판과 그 이전에 선고되었던 120년의 유예 기 간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과연 무엇입니까 첫번째 홍수심판이 무릇 생명의 기식있는 육 체를 천하에서 멸절할 만큼 무서운 것이었지만 결국 그 심판도 아담으로부터 야기된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홍수 후에 노아와 노아의 후손을 통하여 다시금 세상에 죄악 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러한 인간의 죄문제는 결국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 하 여 해결되어지기 때문에 이것이 이루어지기까지 이 지구는 보존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럼 에 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간들에게 첫번째 홍수심판을 보여주신 것은 죄 아래 있는 세상의 궁극적 운명에 대하여 미리 보여주신 하나의 예표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첫번째 홍수심판은 마지막 불심판의 모형입니다. 왜 이 지구가 홍수와 같은 파괴 적인 심판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는 것입니까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 신 것이니라](벧후3:6-7) 다시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를 마지막 불심판을 위하여 보존하여 두셨다고 말씀합니다.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경고의 말씀입니까
그러므로 종말론적인 의미에 있어서 홍수심판 전에 선고되었던 120년의 유예기간은 마지막 심판을 앞에둔 오늘날 이 시대를 예표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홍 수심판이 있기 전, 120년이라고 그 유예기간을 밝혔지만, 마지막 심판을 앞에둔 두번째 유예기 간은 그 기간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 기간이 얼마나 될른지 오직 아버지만 아실 것 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은 마지막 심판을 앞에둔 유예기간을 살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법정 적인 용어로 바꾸어 말한다면 오늘 우리들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상태로 세상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마지막 유예기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세상적으로도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되었을 경우에는 그 기간이 지날 때까지 항상 조심 해야 합니다. 만약 그 기간에 제2의 범죄를 했을 경우에는 가중처벌이 되어 구제가 불가능합 니다. 하물며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마지막 유예기간을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 구 하고 내 뜻대로, 내 정욕대로 살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원치 않는 죄악된 삶을 살수 있겠습 니 까 세속적인 삶의 방식을 부러워하면서 그들 처럼 살기를 위해 발버둥쳐야 하겠습니까 그들과 똑같은 가치관과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오히려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홍수심판 전 120년의 유예기간 동안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외치면서 믿음으로 방 주를 예비하여 그와 온 집을 구원한 의인 노아의 삶은 오늘날 우리들이 이 마지막 유예기간 동 안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잘 교훈하고 있습니다. 비록 세상 사람들은 물질과 쾌락과 죄 악 에 취하여 제멋대로 살아간다 할지라도 오늘 우리들 만큼은 경건의 삶에 힘쓰면서 마지막 심판 이 가까와오고 있음을 세상에 담대하게 외쳐야 할 것입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 의 날 임하기를 바라보고 그 날을 간절히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마지막 심판 을 앞둔 이 유예 기간을 지혜롭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352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