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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여정 (창11: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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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히' (울)은 도시를 의미하나 "빛의 나라해 떠오르는땅불" 을 뜻하기도 한다. 우르의 위치 (a) Nisibis 와 Tigris 사이에 위치한 페리시야 요새. (b) 알메니아산에서 앗수르 평야에 이르는 돌출부 (희랍의 Edessa)ⓒ 유 브라데스강 어구에서 서방으로 약 6km 지점 이중에서 (a)은 유목인정착하기 에 부적당한 곳이며 (b)는 이주자들이 처음 정착했던 하란과 너무 가깝고 (c)은 하란에서 너무 멀고 산헤드린 앞에서 스데반이 말한것과 (행7:2)조화 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유브라데스와 티그리스강 하류에위치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것을 보면 골목마다 잡신을 조그마한 제단 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우르는 고대 슈메르와 바벧론의 도시로 한 때 중요 한달 숭배지였다. B.C 2600-2400년경에는 바빌로니아 (슈메르)의 강력한 도시국가로 등장되었다가 같은 슈메르의 도시국가인 라기슈에 멸망하였고제 3왕조 (B.C2500-1950)때 다시 융성하여 바빌로니아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후 바빌로니아 전역은 함무라비의 바벧론 제1왕조에의 해 통일 되었는데 Ur는 슈메르인의반란 중심지로 철저히 폐허되고 뒤에 신 바벧로니아 때 재건되었으나 파사 (Persia)때 다시 쇠퇴하였고 B.C 4세기경에 폐허가 되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우르를 떠난 사람은 아브라함.사래,롯이며 우르 출발 여부는 알 수 없으나 같이 떠난 것으로 생각된다. 하란 '히' 메소포타미아의 북서쪽인 에뎃사 25마일 떨어진무역의 중심지이다. (겔27:28) 또 이곳은 라반의 고향(창 27:43) 이요 야곱이 에서 를 피해 20년 동안 지낸곳(창28:10)이며,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205세로 죽은 곳이다(창11:32).
(2) 창12:1-7 (하란에서 세겜으로) 창12:5 "하란에서 모은 소유와 얻은 사람들"이란 말은 상당한 기간을 지 냈음을 보여준다. 하란에서 세겜으로 온 아브라함은 세겜땅 모레 상수리나무 아래 거하고 그곳서 단을 쌓음 세겜땅:세겜성은 히위족속이 세웠거나 그들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창 34:2) 으로 이곳은 중앙 팔레스틴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모레 상스리나무:모레는 마므레(창13:18)와 같이 (a)는 나무 숲(상수리 나무) 소유자의 이름 (b)이곳에 신전을 세운 제사장 이름(모레는 선생을 의 미하기 때문에 삿 7:1 왕하 17:28)이 있고 비젼(Vision)의 장소로 상징되고 있다.
(3) 창 12:8 (세겜에서 벧엘로) 세겜에서 벧엘로 와 장막을 치고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벧엘'히' "하나님의 집":예루살렘 다음으로 성서에서 많이 나오는 중요한 성읍으로 아브라함 때에는 루스라고 불렀다. 힉소스왕 초기 (B.C.1750-1650) 에 축성되었는데 이스라엘의 가나안 입주 때 여호수아에게 점령 당했고 여로보암 1세는 북왕국의 주요 성소로 만들었으며 (왕상 12:26-33) 아모스시대 (여로보암 2세) 까지 여로보암왕의 성소였다. 그후앗시리아에 점령당했으나 파괴는 당사지 않았고 신의 법을 가르치는 장소가되었다. (왕하 17:26-28) 그러나 바벧론이 나보니더스(Nabonidus) 혹은Persia)와의 대 전투에서 벧엘은 비극적인 파괴를 당했다. 유배기 이후 에좋은 급수 사정으로 다시 소생. 에스라때 223명이 되었으며 (스2:38) 마카베오 왕조까지 계속 번창하다 가 Bespasianus)가 Rome 황제가 되기 전에 마지막 정복당하는 성이 되었으 나 비잔틴 (동로마) 시대에는 인구과밀 지역으로 급성장했다. 그러나 비잔 틴에서 아랍시대로 넘어 가는 시기에 갑자기 함몰된 주측된다.
(4) 창 12:10-13 (벧엘에서 애굽으로) 벧엘에서 애굽으로 피한 것은 기근이 심했기 때문이었다. 기근은 '히'(라아브)로 "굶주린다"에서 온 말이다. 팔레스틴은 건조기가 있어 흉 작을가져올 때가 있는데 11-12월에 비가 많이 오며 이때 물을 얻지 못하면 기근이 닥친다. 애굽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소개하므로 (a) 거짓말 을 했고 (b)이로 인해 자기 부인의 순결을 위태롭게 하였으며 (c) 타인에서 시험을 들게 하였다. 결국 하나님은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재앙을 내렸고 바로는 아브라함을 애굽에서 내어 보냈다. 애굽은 B.C 2700-2200 (피라밋 대) 년 고왕국대에 문화의 절정기를 이루 었는데 이때 왕을 태양신의 화체라 하여 감히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왕 이 살고 있는 궁전의 이름을 따라 바로(Para0)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큰 집"이란 뜻이다. 또한 이러한 왕의 시체는 썩지 않게 해야 된다고 하여 피 라밋을 세웠는데 가장 큰 피라밋은 제4왕조 쿠후(Khufu) 가 건축한 것으로 밑넓이 2만평 위에2.5t의 돌 230만개를 밑변 230m 높이 146.5m 으로 쌓았다. 쿠후 계승자 카후레는 자기 얼굴을 스핑크스에 조각하여 사자의 몸에 붙여 피라밋을 지키게 한 바로이다.
(5) 창 13:1-4 (애굽에서 벧엘로)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나와 전에 단을 쌓았던 벧엘로 왔는데 이때는 아브 라함과 조카 롯의 소유가 많아 같이 있을 수 없게 되어 이별을 하게 되었다. '창13:9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아브라 함의 양보는 혈족에 대한 애정과 신앙으로 승화된 높은 인격을 보여준다. 창13:10-11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 본즉 여호와의 동산같 고)기름진 땅만을 생각하고 그곳의 (소돔과 고모라) 도덕적 죄악과 무종 교의부패 (창13:13) 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롯과 헤어진 후 하나님은 아브 라함에게 나타나 자손에 대해 축복해 주셨는데 곧 티끌같이(창13:16) 하늘 의별같이(창15:5) 바다의 모래같이(창22:17)되게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6) 창 13:18 (벧엘에서 헤브론으로) 헤브론으로 와서 제단을 쌓았다. 아브라함의 생애는 어디를 가든지 먼저 여호와께 제단을 쌓는 것이었다. 헤브론 (Hebron):예루살렘 남쪽 26.6km 지점의 계곡 동쪽 비탈에 자리 잡고 있는 성읍 이집트 소안 (Zoan 현재의 Tanis) 이 건설된 당시나 7년전 혹은 B.C 14 C 중엽에 세워졌으며 (민수기 13:12) 가나안 족속의 왕도였다. 아브라함 당시에는 이 지역에 상당한 사회적 불안이 있었으며 주변의 아 모리족속은 물론 적어도 헷 (힛타이트) 족속의 한 무리가 있었다. 이점은 아브라함이 헤브론(Ephron)이라고 하는 헷족속 두령으로부터 가족의 매장지 로굴을 샀던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다(창2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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