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한 인간과 구원의 방주 (창7:1-24)
본문
창세기 6장은 죄로 인한 패역한 세상을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작정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7장은 그 심판의 작정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하나님의 홍수심판에 대하여 인간들은 두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의 경 고를 듣고 예비하는 노아와 그 가족들,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의 무관심과 비웃음 입니다. 그리고 7장의 전체를 성급하게 결론 짓는다면 옛 세상의 죄악은 물로 멸망을 당한 것처럼 홍수 후의 새 세상 역시 불로 심판을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찌되었 든 죄는 반드시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7장의 내용을 대강 살펴 보면 이렇습니다.
1'곧 닥쳐올 대홍수를 생각하고 노아를 방주로 들어가게 하시고 그와 함께 살아남 을 짐승들을 이끌어 들이라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부르심이 5절까지의 내용입니다.
2'장래 일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노아의 순종이 9절까지의 내용입니다. 노 아가 600세 되었을 때 그 가족과 함께 방주로 들어갔고 짐승들도 함께 끌어들였으며 하나님께서 밖에서 문을 닫으셨습니다.
3'무서운 대홍수가 일어났음을 10절부터 말합니다. 그 홍수가 일어나는 형편이 어 떠한지를 11절과 12절에 설명합니다.
4'21-23절까지는 이 홍수로 말미암아서 방주안에 있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게된 무시무시한 황폐된 땅을 설명합니다.
5'물이 빠지기 전의 150일 동안의 형편을 말합니다. 창세기 7장의 내용에서 우리가 오늘 생각할 것은 그 무서운 심판에서 구원받은 노 아의 8식구와 방주에 대한 것입니다. 이 노아의 사건을 벧전3:19-22절에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저가 또한 영으로 옥 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명 뿐이니 겨우 여덟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 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 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이 말씀을 요약해 보면, 세상은 항상 불신자들로 가득차 있지만 경건한 자들은 아 무리 많은 불신자들이 있다고 해도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비록 수많은 불신자들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를 따르는 자들은 거의 없었지만 노아는 결코 자기 믿음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고 있을 동안에 그 시대의 사람들이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를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7:26-27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 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 며.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그것은 우리 가 볼 때 그렇게 큰 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늘 평상적으로 하는 일들이니까 요. 여기서 예수님께서 지적하려고 하신 것은 그런 평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그 자체 보다는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하나님의 경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 일만 열심히 하고 있는 인간들의 마음을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짓는 날수가 100년입니다. 100여년 동안이나 노아를 통해서 하나님 은 세상은 경고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생각없이 자기들의 일만 계속하 고 있었던 것입니다. 심판하리라는 경고가 계속되었음에도 그들은 자기들의 일만 했 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셨습니다. 오래 참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묵인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노아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악에 대하여 범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죄에 대한 심각성이 그들에게 없었습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고 결국 죽을 수 밖에 없다고 하는 죄에 대한 심각한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두려워 했습니다. 참된 경건은 두려움을 동반합니다. 참된 존경을 하면 그 사람의 말에 대하여 두려워 할 줄 압니다. 우리가 진심 으로 존경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앞에서 감히 말도 잘 못하지요. 우리에게 그런 경 험이 있지 않아요 어떤 사람에 대한 존경심도 그러한데 하물며 그것이 하나님에 대 한 경외하고 할 때는 그 두려움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노아는 두려움으로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노아는 방주를 짓는데 열심을 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모든 게으름과 태만에 대하여 두려움을 갖게 하였습니다. 벧전3:21절,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죄로 인한 사악한 본성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데 그러한 모든 죄악을 물로 다 씻어버리고 이제는 새로운 존재로 하나님 앞에 서야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반복해서 말하자면 우리가 세례 받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장사지낸바 되었고 따라서 세상과 육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을 향해 서는 살았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노아가 마치 무덤에 묻힌 것처럼 방주 속에 갇혀 있었을 때 모든 세상은 멸망했는 데 노아의 몇 안되는 식구들이 그 멸망 가운데서 다시 살림을 받은 것처럼 오늘날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받음으로 십자가에 죽음과 부활로 다시 살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우리 구원의 예표로 노아의 방주가 있는 것입니다. 심판의 말씀에 대하여 노아는 두려움으로 준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의 일에 집착했습니다. 히브리서11:7절,"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 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노아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모든 시대 특히 세상 끝날에 어떻게 하나님 께서 일하실 것인가를 보여주는 본보기이고 상징입니다. 홍수로 부터 노아의 육체를 구출한 것은 앞으로 다가올 영원한 심판으로 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것을 보이시는 상징이요 예표입니다. 하나님의 경고하심에 대하여 믿음으로 방주를 예비한 노아는 믿지 아니한 모든 사람들의 죄를 정죄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경건한 행동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나게 되면 경건하지 못한 사람들을 은연 중 심판하는 결과가 됩니다.
마태복음 12:41,42절을 보면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이 안식일을 범하는 사람을 정 죄합니다. 세상의 죄악에 대한 모든 일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행하는 사람은 아직 세상에 매여있는 불의하고 악한 사람들을 정죄하는 것이 됩니다. 노아의 부지런하고 값진 노동은 불의한 자들의 잘못과 죄악을 정죄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 서 비록 우리들이 세상의 악한 사람들을 돌이킬 수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거룩한 행실로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증거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7절에 노아는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입히셔서 의의 후사가 되게 하셨고 그리고 후에는 자기의 행위로 하나님의 의를 나타냈음을 말합니다. 모두가 불의하고 패역한 세대여서 멸절을 당하는 것이 마땅한 세계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한 사람을 세우시고 그를 통하여 의의 후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여인의 후손 한 사람을 세우셔서 구원을 이루시겠다고 하는 언약 때문에 노아를 부르시고 그 세계를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할 일은 우리의 구원에 대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사실은 두 면이 있습니다. 구원의 즉각성과 점진성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은 이미 우리에게 보장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즉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상태는 세상의 죄와 악을 날마다 보며 행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미 구원 받아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은 그 구원이 완성된 상태는 아닙니다. 여전히 세상과 죄에 대하여 싸워야 하는 상태에 살고 있습니다. 노아를 하나님이 부르셔서 은혜를 입히셨다고 하는 것은 노아를 하나님께서 구원 하시기로 작정하셨음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그가 말씀을 받은 그 즉시로 구원함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장래에 물로 세상을 심판할 때에 방주를 통하여 구원을 받으리 라는 약속만 받았을 따름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므로 하나님은 신실한 분이시기 때문에 한번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이미 구원을 받은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세상에서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시집가고 장가가는 그 속에서 방주를 지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고 그 때가 되면 노아는 방 주를 통하여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믿음의 생활을 해야 할 것인가를 잘 말해 줍니다. 우리가 지금 예수를 주라 고백하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구원을 다 얻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가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노아가 방주를 짓는 일을 계속했던 것처럼 우리도 구원받을 백성으로 서 해야할 일이 있다는 말입니다. 노아가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다는 것은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 그것은 곧 지금 우리의 말로 하면 신앙고백을 하고 있느냐 그런 말입니다. 이 신앙고백은 말로 하는 그런 신앙고백이 아니라 우리의 행위로 나 타내 보이는 몸으로 하는 신앙고백 입니다. 믿는 자는 누구든지 자기의 믿음을 증거 해 보여야 합니다. "나는 오늘 이렇게 믿습니다" 하고 나타내 보이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무엇으로 여러분의 믿음을 증거하고 계십니까 물론 그 형태는 여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게하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몸으로 하는 신앙고백 입니다. 노아가 그 패역한 세대 가운데서 자기 믿음의 고백을 방주를 짓는 일로 나타낸 것처럼 오늘 우리가 만들어야 할 방주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정직하 게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자기 가정을 잘 돌보는 것일 수도 있고 가난한 이웃을 돌 아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이웃을 위하여 작은 도움을 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교회가 전체 한 몸으로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내는 모든 일입니다. 아무튼 우리의 매일 매일의 생활이 우리가 만들 방주여야 합니다. 그래서 믿지 않은 많은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증거자가 되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노력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노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노 아가 방주를 지었다고 해서 그의 행위 때문에 구원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의 말씀에 대한 경건한 두려움 때문에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방주를 지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미 구원받았지만 우리의 구원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노아 사건을 통해서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과연 의의 후사인가" 이 말을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이렇게 질문해 봅시다. "나는 영적인 사람인가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그의 의를 찾기 위해서 노력하 고 있는가"(마6:33)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의 축복이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히12:16) "양자될 것을 기다리면서(롬8:23) 나의 마음은 하늘의 유업을 생각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계명을 성실히 지키며 하나님을 경 외하며 또 세상을 정죄하며 믿음으로 살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복있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장차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 셔서 완전한 심판을 이루시는 그 날에 우리는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 완전한 구원 에 이를 것입니다. 그 큰 구원에 이르러 가기까지 우리의 구원받은 것을 증거하는 몸으로 드리는 신앙고백이 항상 있기를 바랍니다.
7장의 내용을 대강 살펴 보면 이렇습니다.
1'곧 닥쳐올 대홍수를 생각하고 노아를 방주로 들어가게 하시고 그와 함께 살아남 을 짐승들을 이끌어 들이라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부르심이 5절까지의 내용입니다.
2'장래 일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노아의 순종이 9절까지의 내용입니다. 노 아가 600세 되었을 때 그 가족과 함께 방주로 들어갔고 짐승들도 함께 끌어들였으며 하나님께서 밖에서 문을 닫으셨습니다.
3'무서운 대홍수가 일어났음을 10절부터 말합니다. 그 홍수가 일어나는 형편이 어 떠한지를 11절과 12절에 설명합니다.
4'21-23절까지는 이 홍수로 말미암아서 방주안에 있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게된 무시무시한 황폐된 땅을 설명합니다.
5'물이 빠지기 전의 150일 동안의 형편을 말합니다. 창세기 7장의 내용에서 우리가 오늘 생각할 것은 그 무서운 심판에서 구원받은 노 아의 8식구와 방주에 대한 것입니다. 이 노아의 사건을 벧전3:19-22절에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저가 또한 영으로 옥 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명 뿐이니 겨우 여덟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 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 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이 말씀을 요약해 보면, 세상은 항상 불신자들로 가득차 있지만 경건한 자들은 아 무리 많은 불신자들이 있다고 해도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비록 수많은 불신자들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를 따르는 자들은 거의 없었지만 노아는 결코 자기 믿음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고 있을 동안에 그 시대의 사람들이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를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7:26-27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 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 며.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그것은 우리 가 볼 때 그렇게 큰 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늘 평상적으로 하는 일들이니까 요. 여기서 예수님께서 지적하려고 하신 것은 그런 평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그 자체 보다는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하나님의 경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 일만 열심히 하고 있는 인간들의 마음을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짓는 날수가 100년입니다. 100여년 동안이나 노아를 통해서 하나님 은 세상은 경고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생각없이 자기들의 일만 계속하 고 있었던 것입니다. 심판하리라는 경고가 계속되었음에도 그들은 자기들의 일만 했 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셨습니다. 오래 참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묵인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노아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악에 대하여 범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죄에 대한 심각성이 그들에게 없었습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고 결국 죽을 수 밖에 없다고 하는 죄에 대한 심각한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두려워 했습니다. 참된 경건은 두려움을 동반합니다. 참된 존경을 하면 그 사람의 말에 대하여 두려워 할 줄 압니다. 우리가 진심 으로 존경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앞에서 감히 말도 잘 못하지요. 우리에게 그런 경 험이 있지 않아요 어떤 사람에 대한 존경심도 그러한데 하물며 그것이 하나님에 대 한 경외하고 할 때는 그 두려움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노아는 두려움으로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노아는 방주를 짓는데 열심을 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모든 게으름과 태만에 대하여 두려움을 갖게 하였습니다. 벧전3:21절,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죄로 인한 사악한 본성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데 그러한 모든 죄악을 물로 다 씻어버리고 이제는 새로운 존재로 하나님 앞에 서야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반복해서 말하자면 우리가 세례 받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장사지낸바 되었고 따라서 세상과 육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을 향해 서는 살았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노아가 마치 무덤에 묻힌 것처럼 방주 속에 갇혀 있었을 때 모든 세상은 멸망했는 데 노아의 몇 안되는 식구들이 그 멸망 가운데서 다시 살림을 받은 것처럼 오늘날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받음으로 십자가에 죽음과 부활로 다시 살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우리 구원의 예표로 노아의 방주가 있는 것입니다. 심판의 말씀에 대하여 노아는 두려움으로 준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의 일에 집착했습니다. 히브리서11:7절,"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 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노아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모든 시대 특히 세상 끝날에 어떻게 하나님 께서 일하실 것인가를 보여주는 본보기이고 상징입니다. 홍수로 부터 노아의 육체를 구출한 것은 앞으로 다가올 영원한 심판으로 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것을 보이시는 상징이요 예표입니다. 하나님의 경고하심에 대하여 믿음으로 방주를 예비한 노아는 믿지 아니한 모든 사람들의 죄를 정죄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경건한 행동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나게 되면 경건하지 못한 사람들을 은연 중 심판하는 결과가 됩니다.
마태복음 12:41,42절을 보면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이 안식일을 범하는 사람을 정 죄합니다. 세상의 죄악에 대한 모든 일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행하는 사람은 아직 세상에 매여있는 불의하고 악한 사람들을 정죄하는 것이 됩니다. 노아의 부지런하고 값진 노동은 불의한 자들의 잘못과 죄악을 정죄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 서 비록 우리들이 세상의 악한 사람들을 돌이킬 수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거룩한 행실로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증거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7절에 노아는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입히셔서 의의 후사가 되게 하셨고 그리고 후에는 자기의 행위로 하나님의 의를 나타냈음을 말합니다. 모두가 불의하고 패역한 세대여서 멸절을 당하는 것이 마땅한 세계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한 사람을 세우시고 그를 통하여 의의 후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여인의 후손 한 사람을 세우셔서 구원을 이루시겠다고 하는 언약 때문에 노아를 부르시고 그 세계를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할 일은 우리의 구원에 대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사실은 두 면이 있습니다. 구원의 즉각성과 점진성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은 이미 우리에게 보장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즉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상태는 세상의 죄와 악을 날마다 보며 행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미 구원 받아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은 그 구원이 완성된 상태는 아닙니다. 여전히 세상과 죄에 대하여 싸워야 하는 상태에 살고 있습니다. 노아를 하나님이 부르셔서 은혜를 입히셨다고 하는 것은 노아를 하나님께서 구원 하시기로 작정하셨음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그가 말씀을 받은 그 즉시로 구원함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장래에 물로 세상을 심판할 때에 방주를 통하여 구원을 받으리 라는 약속만 받았을 따름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므로 하나님은 신실한 분이시기 때문에 한번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이미 구원을 받은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세상에서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시집가고 장가가는 그 속에서 방주를 지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고 그 때가 되면 노아는 방 주를 통하여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믿음의 생활을 해야 할 것인가를 잘 말해 줍니다. 우리가 지금 예수를 주라 고백하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구원을 다 얻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가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노아가 방주를 짓는 일을 계속했던 것처럼 우리도 구원받을 백성으로 서 해야할 일이 있다는 말입니다. 노아가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다는 것은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 그것은 곧 지금 우리의 말로 하면 신앙고백을 하고 있느냐 그런 말입니다. 이 신앙고백은 말로 하는 그런 신앙고백이 아니라 우리의 행위로 나 타내 보이는 몸으로 하는 신앙고백 입니다. 믿는 자는 누구든지 자기의 믿음을 증거 해 보여야 합니다. "나는 오늘 이렇게 믿습니다" 하고 나타내 보이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무엇으로 여러분의 믿음을 증거하고 계십니까 물론 그 형태는 여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게하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몸으로 하는 신앙고백 입니다. 노아가 그 패역한 세대 가운데서 자기 믿음의 고백을 방주를 짓는 일로 나타낸 것처럼 오늘 우리가 만들어야 할 방주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정직하 게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자기 가정을 잘 돌보는 것일 수도 있고 가난한 이웃을 돌 아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이웃을 위하여 작은 도움을 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교회가 전체 한 몸으로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내는 모든 일입니다. 아무튼 우리의 매일 매일의 생활이 우리가 만들 방주여야 합니다. 그래서 믿지 않은 많은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증거자가 되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노력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노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노 아가 방주를 지었다고 해서 그의 행위 때문에 구원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의 말씀에 대한 경건한 두려움 때문에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방주를 지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미 구원받았지만 우리의 구원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노아 사건을 통해서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과연 의의 후사인가" 이 말을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이렇게 질문해 봅시다. "나는 영적인 사람인가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그의 의를 찾기 위해서 노력하 고 있는가"(마6:33)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의 축복이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히12:16) "양자될 것을 기다리면서(롬8:23) 나의 마음은 하늘의 유업을 생각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계명을 성실히 지키며 하나님을 경 외하며 또 세상을 정죄하며 믿음으로 살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복있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장차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 셔서 완전한 심판을 이루시는 그 날에 우리는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 완전한 구원 에 이를 것입니다. 그 큰 구원에 이르러 가기까지 우리의 구원받은 것을 증거하는 몸으로 드리는 신앙고백이 항상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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