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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언약 (창2:4-25)

본문

우리는 흔히 창 2:16-17의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는 구절을 가리켜 행위 언약이라고 말합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안먹고에 따라 죽고 살고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즉, 선악과에 대한 행위가 중시된다는 점에서 행위언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에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구원을 얻는 언약을 가리켜서 은혜언약이라 고 합니다. 이 은혜언약은 누구에게나 값없이 구원이 주어지기 때문에 행위언 약과는 그 성격이 다릅니다.
그런데 행위언약이라고 하면 약간의 오해의 소지 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행위언약은 마치 그 행위가 중시되어 구원을 얻고 못 얻고가 결정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행위언약이라고 할지라도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주어진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행위언약이라는 것은 없고 오직 은혜언약만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의 제목을 창조언약이라고 불러 보았습니다.
언약(covenant)이란 두 당사자가 서로 요구사항과 의무사항을 내걸고 맺는 계약입니다.
그런데 서로 계약을 체결할 경우 어느 한 쪽이 위반하면 그 댓가 로 의무사항을 치루어야 하는데, 옛날에는 그 증표로서 동물을 두 쪽으로 가 르고 그 사이로 두 당사자가 지나감으로 협정이 체결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위약할 경우 동물이 피를 흘리고 죽은(쪼개진) 것처럼 위약자도 역시 그와같 은 처벌을 감수할 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약을 히브리어로 베리트 (라고 하는데 이것의 어원은 "쪼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계약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푼 은혜의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약간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언약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은 약 정이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맺은 피의 약정이기 때문에 계약이라고 하지 않고 언약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신실하심과 영원하심 그리고 사랑에 근거 하여 인간(인류)에게 의무만 지워준 것이 아니라 인류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 어야 할 의무 즉, 약속을 이루어 줄 책임을 스스로 지셨습니다. 그래서 언약 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일 언약이 없다면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의무만 지워 주어 인류은 그 요구에 따라 무조건 복종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약속을 주시어 스스로 그 약속을 이루어 줄 책임을 지심으 로서 인간을 하나님과 동등한 차원에서 하나님과 동등한 언약의 상대자로 삼 으셨습니다. 이것이 계약과 언약의 차이입니다. 창조언약은 하나님과 인간이 맺은 최초의 언약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창 세기 1장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창조언약이라고 한다면 창 1:1부터 2장까지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언약은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약정된 것입니다. 물론 아담은 전 인류의 대표인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창조언약은 지금도 우리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창조언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약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1) 안식, 2) 결혼, 3) 노동입니다.
1. 안식(창 2:1-3) 이 날은 하나님이 특별히 구별한 날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 날만은 평안 의 날로 구별하여야만 합니다. 그리고 안식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억하고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되도록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며 우리가 안식일을 계속 구 별하고 있는 동안에는 결코 하나님의 약속이 변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해야 할 것입니다.
2. 결혼(창 2:24) 결혼은 둘이 한 몸을 이루는 신비한 결합입니다(마 19:6). 특히 여자는 생 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있어서 남자 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는 서로 존중하며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위치에서 인격적인 결합을 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 써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 교합하지 아니하며 성적인 질서를 유지하게 되는 것 입니다. 이것이 곧 창조질서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유지하는 법칙인 것입니다. 이러한 결혼은 신비한 연합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신부라고 하셨던 것입니다(엡 5:22-23).
3. 노동(창 1:28) 하나님께서는 일주일 중 하루를 안식일로 구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안식 일은 6일간의 노동이 없이는 결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6일간의 노동이야말로 인류가 힘써 지켜야할 조약입니다. 그 일이란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리며 지키는 일입니다(2:15).
그러므로 6일간 힘써 일하지 아니하고는 평 안의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선악과만 따먹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언약을 모두 지킨 것 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행위언약이라고 할 때는 그와같이 생각하 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창조언약의 내용을 볼 때는 이상의 약정을 인류가 지 켜야 하는 것입니다. 즉, 안식과 결혼과 노동은 곧 창조의 질서이며 그것이 곧 하나님 나라의 질서인 것입니다.
둘째, 창조언약에 있어서 선악과는 하나의 규정일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선 악과만이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되면 안됩니다. 선악과는 언약을 지켜주는 하 나의 규정에 불과합니다. 선악과는 이상하게 생긴 과일이 아니고 그저 다른 과일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평범한 과일입니다. 그 과일 스스로가 선악을 알게 해주거나 눈을 밝게 해주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선악과는 하나님께서 인류와 언약을 맺으실 때 특별히 정한 한 나무의 과일일 뿐입니다. 처음에 인간은 선악을 굳이 구별할 필요가 없도록 지어졌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그 자체가 선이었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 에는 악이 전혀 존재하지도 않았었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제정해 놓으신 것은 이 과일을 먹지 않음으로써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 과의 관계에 있어서 선을 그어 놓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태초부터 영원까지 창조의 질서를 지켜 나가도록 하셨고 대신 인류에겐 영원한 생명 을 주시기로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셋째, 창조언약의 증표는 생명나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동산 중앙에 생 명나무를 두셨습니다. 언제나 이 나무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도 록 말입니다. 그리고 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나무를 함께 두신 하나님의 깊으신 의도를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은 영원 한 언약의 증표를 이 우주에 새겨 두셨습니다. 곧 사시사철 춘하추동이 어김 없이 운행되며, 밤과 낮이 바뀌지 않으며, 수 많은 별들이 운행하되 결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창조시부터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것이 곧 하나님 께서 인류에게 보여주시고 있는 하나님의 영원하시고 신실한 언약의 증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주의 삼라만상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생각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창조 이후 한 번도 이 약속을 어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삼라만상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법대로 운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뀌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약속하신 구원의 언약은 결 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 약속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은 결코 저주가 아닙니다. 이것은 영원한 축복입니다. "네가 나의 언약을 지키면 너는 영원한 내 나라의 왕이 되리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 한 왕으로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지금도 그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 히 그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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