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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그 청지기적인 책임을 위하여 (창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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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제목은 확실하지 않지만, 창조의 진리를 찾아서라는 주제를 가진 책에서, 이런 내용의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우리가 발을 디디고 있는 이 땅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이 창조하신 주님의 것이다. 우리 인간 은 그 땅을 지키는 파수꾼일 뿐이다. 지구의 환경을 보호하자는 것은, 단순 한 주의, 주장이 아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그분이 우리에게 맡기신 모든 것을 충실하게 사용하고 지켜야할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가 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환경 보호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책임져야 할 도 덕적인 책임의 문제인 것이다. 주님은 인간에게 세상을 다스리고 지킬 [의 무]를 주신 것이지(창 2:15), 세상을 파괴할 [권리]를 주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환경을 개발해야 하지만, 파괴해서는 안되며, 환경을 이용해 야 하지만, 그것이 과용과 악용으로 치닫게 방치해서는 안된다. " 벌써 오 래 전에 읽은 것인데도, 참으로 단호한 어조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사실 주 님은 그분의 모든 피조물을 생명처럼 아끼실 뿐만 아니라, 우리도 그렇게 하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을 돌아보아 야 할, 청지기적인 책임을 받은 것입니다. 성경은, 환경에 대해서 지극히 균형적인 시각을 견지합니다. 시편 104편 14절과 23절을 보십시오. "저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의 소용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식물 이 나게 하시고/. 사람은 나와서 노동하며 저녁까지 수고하는도다. " 그렇 습니다. 환경과 인간 사이에 유지되어야 할 가장 이상적인 관계는, 땅이 가 축과 사람을 위해 풀과 채소를 내고, 이를 위해 사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땀흘려 수고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창조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우리는 환경에 대해서 어떤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먼저, 세상을 주님 의 피조물로 바라보고, 최소한 주님의 모든 피조물이 오염에 찌들어, 시궁 창으로 변하는 것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또 우리는 세상을 정복 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기억하고, 황무지처럼 거칠어진 세상을, 열매가 가 득 넘치는 기름진 세상으로 바꿀 책임이 있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겠습니다. 오늘도 피조물의 탄식을 아프게 돌아보시는 주님의 마음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수고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새로운 창조 (고후 5:17-21) 성경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찬송들이, 하나님의 창조 사 역을 노래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보기:시 33:6-9).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세상을 창조하시고 나서, 그 지으신 "모든 것"이 심히 보기에 좋았다고 만족해 하셨습니다(창 1:31). 이것은 [과거]에 이미 완성된 창조 사역을 가 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창조 사역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불완전했기 때문에 계속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최고 작품이 아직도 빚어지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면 창조주 하나님의 최고 작품은 무엇을 말합니까 고린도후서 5장 17 절의 사도 바울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 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의 새 로운 피조물인 것을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 으로 거듭나고, 그리스도를 위해 우리의 삶을 드리기로 결단하고 주를 섬 길 때, 우리는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은 정말 새로운 경 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되는 새 생활은, 우리를 새롭게 빚으시는 그리스도의 창조 사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참 으로 우리 주님은, 구원받은 성도 한 사람의 변화된 삶의 모습을, 가장 귀하고 값진 것으로 여기십니다. 사실, 주님을 알지 못하고 소망없이 생활 하던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만나 새롭게 변화하기 시작하는 것은, 우주 만 물의 창조 만큼 귀한 일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권능과 비밀스 러움에 비하면,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하겠느냐 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십 시오. 오직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통해 우주 만물이 있는 것처 럼, 우리가 이처럼 주님을 알고, 주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 것 도, 그분의 주권적인 은혜가 아니면, 가능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과 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처음 만났던 날부터,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 까지, 우리의 삶이 주님의 손길로, 끊임없이 새롭게 다듬어지는 것을 경험 하십니까 오늘도 우리 삶을 성숙하게 변화시키시는 주님을 느끼며, 감사 하는 삶을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성령님의 마지막 열매 갈5:16-23 "거절할 줄 모르는 사람은 형편없이 나약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불행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알렉산더 맥클래런(Alexander Maclare n)이라는 스코틀랜드 설교자가 한 말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거절할 줄 모르는 사람이란, 성령님의 열매 가운데 하나인 [절제]가 부족한 사람을 가 리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절제]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절제란 해야 할 일을 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억지 로 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하는 능 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 63절 이하에 나와있는 예수님의 모 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예수께서 잠잠하시거늘 대제사장이 가로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가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 지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혹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십자가의 치욕에도 불구하고, 또 그분을 욕하고 때리는 사람들을 능히 물리칠 수 있는 큰 능력을 소유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예수님은 끝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모습은 [진정한 절제]의 표본입니다.
그런데 세상 에는 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가르침에 적대감을 표시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 이유는 아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절제할 것"을 명령하시는데, 세상은 끊임없이 방종을 추구하기 때문이라 고 생각합니다. 신문에 기록된 각종 사건 기사를 갈라디아서 5장 19절에서 21절 말씀과 비교해 보십시오. 세상이 얼마나 무책임하게 자기 방식을 고 집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5장 21절에서 멈추지 말고 계속 읽어보십시오. 그 다음에는 어떤 말씀이 있습니까 성령님의 열 매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절제]는 이러한 성령님의 열매 가운데 하나입니다. 원래 성령님의 열매란 우리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 함으로써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만들어 내는 성품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절제] 역시 우리들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름으로써 비로소 얻어지는 그리스도의 성품 가운데 하 나인 것입니다. 절제란 무조건 자기 방식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라면 따르겠노라고 고백하는 마음의 자세를 말합니다. 오늘도 겸손히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절제의 삶을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시다. 훈련된 영혼 딤후1:8-14 많은 학생들이 시험이나 졸업을 앞두고 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만약 내가 좀 더 자신을 잘 다스릴 수 있었다면, 훨씬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 었을텐데." 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자신의 나태와 게으름과 싸워서 결국 이기지 못했다는 고백이겠지요
그런데 이 점은 어른도 마찬가집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이런 식의 후회가 남기 마련이니까요. 자신을 잘 다 스리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일입니다. 자신을 잘 다스리는 것, 다시 말 해 [절제]라는 것은 학생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도, 또 사 회인이 사회에서 보다 많은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절제]는 사실 그보다 훨씬 작고 사소한 일상적인 일에서도 절대적으로 필 요합니다. 언젠가 미국의 유명한 작가, 서머셋 모옴(W. Somerset Maugha m)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 가운데, 내가 성실 하게 행하는 두 가지 일이 있다. 한 가지는 매일 아침마다 자리에서 일어 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드는 일니다. " 무슨 말입니 까 서머셋 모옴의 말은 자신을 다스리는 일이 무슨 대단한 분야에서 필요한 것만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동시에 [절제]라는 것이 커다란 성공을 거둔 특정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미덕일 수도 없다는 뜻입니다. 바울 사도 역시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은 훈계로써 [절제]를 가장 큰 미덕으로 강조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13절에서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네 속 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횡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연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 에게 나타나게 하라."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스스로 절제해서 믿는 사람 의 본이 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하나님은 "절제하라"고 명령만 내리시고 아무 도움도 주지 않으시는 그런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어지는 바울 사도의 편지를 보십시오. "스스 로 절제함으로써 믿는 모든 사람의 본이 되라"는 권면의 말과 함께, 바울 사도는 디모데후서 1장 7절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디모데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 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 스스로 근신하는 마음은 성령님의 다스림 으로부터 나옵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다스림이 없다면, 우리가 우리들 스스로의 힘으로 다스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탐스럽게 자라나는 "성령님의 열매 "에 관심을 가지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의 열매맺는 것을 도우십니다. 때문에 우리는 성령님께서 친히 우리의 삶을 다스려 주실 것을 간절히 구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절제라는 성령님의 열매를 맺음으로, 주님 닮아가 기를 더욱 사모하는 삶을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시다. 가장 절제하기 어려운 것은 우리의 혀 약 3:1-12 인간이 자신의 신체 부위 가운데 가장 다스리기 힘든 부분이 있다면, 그리고 인간이 스스로 절제하는 일에서 가장 흔하게 실패를 경험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의 혀일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혀를 다스 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까지 말씀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하나님의 도우심 이 없다면, 인간은 자신의 혀를 통제할 수 없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런데 혀를 다스리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혀를 다스리는 일은 인간 관 계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생활의 모든 부분, 다시 말해 전도, 교제의 모든 부분에서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더구나 누군가 부당한 방법으로 우리를 공격, 비난할 때, 불필요한 다툼을 피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자기 혀 를 다스리는 능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누군가 우리를 향해 부당한 말을 던짐으로써 우리를 노하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대처 방법에 대해, 성경은 잠언 15장 1절, 2절, 28절에서 다음과 같이 교훈하고 있습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 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 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 를 비난하고 있다고 생각되면 우리는 대부분 그 사람에 대해서 화를 내기 마련입니다. 때로는 상대를 향해 악한 말을 내밴고 맙니다. 이렇게 우리는 거의 예외없이, 자기 혀를 바르게 통제하지 못하는 실수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아마 사람의 노력만으로 자기 혀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성령님의 도우심에 의지해서 절제를 연습할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자기 말에 책임질 수 있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절제 를 연습하십시오. 절제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뛰어난 피아니스 트가 매일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것처럼, [절제]도 영적인 훈련을 거쳐 얻어지는 훈련의 결과입니다. 먼저 잠잠히 있는 것으로 절제 연습을 시작하십시오. 조용히 주님께서 이루실 일을 기다 리십시오.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주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는 어떤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조용한 묵상으로, 지혜로운 혀를 가진 영혼의 사람으로 성숙해가는 훈련의 삶을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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