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 하나님 (창1:1-25)
본문
창세기 1장을 볼 때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 합니다. 이것은 누가 만들었느냐 여호와 하나님이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창세기 1장은 끝난 줄 압니다. 1절에는 하나님이 만 들었다 하면 끝난 줄 압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요. 만물의 기원을 말해 주니까 중요하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만물이 어디서 부터 왔는가를 알리기 위해서 창세기 1장을 기록 하신 것이 아니고, 창세기 1장은 만물이 하나님 앞에 의존되어 있으며 만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들어졌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으며 하나님을 떠나서는 존재하 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부분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만물을 만드셨고 어떻게 권고하시는가" 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문제가 창세기 1장의 더 중심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만물을 누가 만들었는가 그런 것을 말하려는 책은 아닙니다. 물론 그런 것이 과학적으로 분 명히 맞기는 하지만 성경은 '천사 연구 논문집'도 아니고 '마귀 연구 논문집'도 아 니며 물건들이 어떻게 생겼는가 하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또 하나님은 어떻게 생겼는가 그런 것을 연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떻게 피조물과 관계 하시는가에 대하여, 피조물과의 관계에 대하여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만물을 만드셨다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지금도 붙들고 계시고, 하나님이 만물을 통치하 실 때 인간을 대리 통치자로 세우셨으며, 그래서 인간은 만물의 왕으로 서 있었다고 하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부분이 강조점인 것입니다.이것이 1장과 2장의 주된 내용입니다. 그리고 1:1,
2,3절에서는 하나님의 창조와 창조의 순서를 말합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에서는 분명히 말하기를 이 만물은 하나님의 음성이며 지금도 하나님은 이 피조 물 세계에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증거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들도 만든 물 건의 순서만 볼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이 피조물을 통해서 인간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리셨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세계에서 대리 통치자인 인간이 이 만물을 잘 다스렸는가 아니 면 하나님을 거스리고 잘못 했는가 하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만물 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거룩한 성전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창세기 1장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든 만물에 게서 영광을 나타내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1:1절,"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것은 원시창조를 말합니다. 본래의 창조, 그러니까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물질을 만드신 것을 말하지요. 그리고 그 다음 계속해서 많은 물질을 만드신 것 같지만 1절 이후의 창조는 이미 창조된 것에다가 어떤 질서를 부 여하신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1절의 창조는 그러니까 시간과 공간이 아울러서 있는 물질을 창조하셨음을 말하는 창조의 선언이지요. 2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 행하시니라" 이 부분은 기독교에서 가장 신비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암시적으로 설명된 곳입니다. 여기에서는 분명하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을 구분하여 말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피조물과 관계하시는 면에서 신내(神內) 의 존재방식(存在方式)에서 삼위(三位)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것을 우리는 말하기 를 삼위일체(三位一體) 되시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 2절에서 분명하게 하나님의 세 위격(位格)에 대하여 확실하게 밝혔 으면 우리가 이해하기 쉬울 것인데 왜 그렇게 불분명하게 기록했을까 하고 궁금해 하실 것입니다. 거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창세기를 모세가 기록했는데 그 당시 성경을 받아 보는 구약 시대의 백성들이 살던 환경을 감안하여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시대 제약적인 특성) 그렇게 하나님의 세 위격에 대하여 말할 때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었습니다. 당시 구약 백성들은 많 은 이방 나라들과 접촉하며 살았는데 그들 이방 나라들은 모두 다신교(多神敎), 그 러니까 많는 신들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주변의 이방 나라들이 섬기는 그 런 하찮은 신들(우상)과 한 분 참되신 하나님과 분명한 구분을 나타내고 강조할 필 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구약 백성들은 오직 한 하나님, 유일신(有一神) 교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까닭은 많은 신들을 섬기며 사는 이방 나라들로 부터 자기 백성을 보존하시 고 하나님의 계시를 보존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게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한 분 이시라는 데에 모든 강조를 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 보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속을 이루실 때에 하나님의 세 위격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 대표적인 곳이 마태복음 3:16-17절의 내 용 입니다. 거기 보면 하늘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음성이 있고, 물에서 올라 오 시는 아들이 있고, 그리고 비둘기 처럼 강림하시는 성령님이 있습니다. 거기서 삼위일 체가 밝히 드러나지만 구약에는 유일신에 대한 강조가 있기 때문에 삼위일체 교리는 밝히 나타나지 않습니다. 구약에는 지옥이나 천국이라는 표현이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단순히 음부와 어둠의 장소로, 고통하는 장소로 표현했던 것도 당시 백성들의 이해 수준을 감안하 여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시대 제약적인 특성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보면 밝히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2절과 3절 초두에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라고 했는데, 말씀은 곧 능력 이십니다. 말씀이 창조하시는 능력으로 창조하고 있지요. 말씀을 '발설(發舌)하시는 하나님'과 그리고 '권세있는 말씀'(Logos)이 세상을 창조하시는데 창조하시는 방법 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라는 말씀으로 보면 성령님께서 말씀을 능력으로 만상에 드러나게 하십니다. 이렇게 창조에 있어서 성부로 부터 성자로 말미암아 그리고 성령님 안에서 창조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분명하게 그렇게 하나님의 삼위에 대한 명확한 구절은 아니지만 그 래도 어느 정도 나타내 주고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중보자로서 자기 아들을 보내 셨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날 때 아들로 나타납니다. 그 때에야 삼위 일체 교리가 밝히 나타나고 창세기 1장에서는 그렇게 밝히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했던 것처럼 모든 피조 물은 성령님의 역사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고 생명이 보존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혼란한 세계에 빛으로 창조하셨고 그 다음에 빛과 어두움을 나누었고, 어 두움을 밤이라 빛을 낮이라 칭하셨습니다. 혼란한 세계에 빛을 비추셨지요.
물론 이 가운데 6일 동안의 창조가 이루어집니다. 빛 가운데서 하신 것이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빛이 있을 때만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혼란할 때도 신이 수면 에 운행하셨고 그리고 빛이 비추므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눈에 보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일은 드러난 것만 있는 것이 아니고 감추인 일들이 더욱 많 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찬미하는 일 보다도 우리가 이해하지 못 하는 일이 더 많지요.
그런데 여기서 빛을 비추시고 빛 가운데서 모든 것을 모든 질서를 제공하시는 것은 고린도후서 4:6절에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다" 하는 것처럼 새 창조에 있어서도 모든 것을 빛 가운데서 정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여기 창조에서의 빛이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고린도후서에 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라고 해서 그리스도의 얼굴에 하나님을 아는 영광 의 빛이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첫 창조의 빛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서 일어날 새 창조의 빛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새 창조의 빛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지요. 이 하나님의 영광 을 아는 빛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우리에게 밝히 비추었는데 그 사 실을 창세기에서는 첫 창조의 빛으로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첫 창조에서 그리스도는 말씀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첫 창조의 빛은 앞으로 재 창조 때 이루어질 영광의 빛을 예고해 주는 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가 만물을 재 창조 할 때 영광의 빛 이 되어서 그리스도를 중심해서 만물이 재 배치 되는 것처럼 여기 첫 창조에서도 빛 가운데서 만물을 배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은 이처럼 모형적으로 여러가지를 나타내 줍니다. 그렇다고 해서 꼭 "이것이면 이러한 것이고 저것이면 저러한 것이다" 라고 단정하여 말하기는 어렵 습니다.
왜냐하면 여러 모양으로 그것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5절, "하나님께서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고 저녁이 되매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이 창조의 날을 보면 반드시 밤으로 시작해서 아침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 시작했던 일은 어두움 가운데서 준비하신 일들 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첫 빛이 비취면 하나님이 하시던 일들이 빛 가운데 광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지금 우리 맘에서 하나님의 창조하시는 일도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이 죄 가운데 공허하고 혼미할 것 같으면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신 것처럼 성령님의 역사로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셔서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그 때에야 하나님이 내 안에서 하신 일을 우리가 비로소 찬미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 각 날마다 밤이 되고 아침 이 되니 이 첫 창조는 그리스도로 부터 시작된 재 창조의 모형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6-8절의 둘째날의 하늘은 1절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의 하 늘과 땅과는 다른 창조 입니다. 1절의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밝히 드러나 있는 천사들의 처소, 하나님이 친히 임재하시는 그런 자리를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천국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천국 하면 하늘 저 멀리 어디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어느 장소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천국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 은 인성(육신)을 입으시고 가 계십니다. 그러니까 우리와 같은 육을 가지신 예수님 이 계실 수 있는 곳이니까 그 곳도 만들어진 세계이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장소적인 곳입니다. 장소적이란 말은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는 곳을 말하는 것이 지요. 그러니까 천국도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어떤 한 장소인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에 그곳이 어디라고 꼭 짚어서 말하지는 않지만 장소적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인성(人性)을 가진 인간의 몸을 입으신 분이 지금 하늘 보좌에 계시다고 말합니다. 물론 부활체로 변형된 모습 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와 동일한 육신인 것은 분명 하거든요 사람의 몸을 입으 시고 오신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 때에 하늘과 땅을 만드셨습니다. 천사들이 하나님 을 경배하고 영광이 가장 찬란하게 나타나는 천국을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함께 땅을 지으신 것입니다.
둘째날 창조한 하늘은 우리가 말하는 지금 보이는 하늘을 말합니다. 그리고 둘째 날의 땅도 지금 우리들이 사는 장소를 말합니다. 이 땅에 하나님은 풍성한 잠재력을 심으셨습니다. 인간은 이 풍성한 잠재력을 개발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더 크게 드러내고 찬미하도록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범죄한 인간은 이 땅 의 풍성한 잠재력을 조금 개발해 놓고 말하기를 "내가 이만큼 했다. 내가 하나님이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여 더 편리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은 무한한 잠재력을 심으셨습니다. 이것을 개발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더 밝히 드러내도록 하는 일을 인간은 책임으로 맡아 가지고 있는 것이지 요. 여기에서 우리는 모든 생명이 하나님으로 부터 왔음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14절부터 보면, 빛의 휴대자인 광명들을 창조하셨습니다. 1절의 창조 만 무에서 창조한 것이고 나머지는 먼저 창조했던 것에다 질서를 주시고 생명을 주 시는 그런 창조 입니다. 그러니까 첫 날에 어떻게 밤이 되고 낮이 되었습니까 그 빛은 무엇입니까 분명히 태양과 달은 아니었습니다. 이 빛은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 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러니까 태양과 달이 있어도 그것은 참 빛되신 하나님 을 보여 주는 그런 방법들이지 그것들이 빛 자체는 아니지요. 그러니까 그 때에 처 음 태양과 달을 창조했는지 아니면 혼란한 우주를 재조정 하면서 그 때 태양과 달을 제 위치에 고정하셨는지 우리들은 그런 것 까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구의 낮과 밤이 된 것은 태양이 있어서 된 것이라기 보다는 지구가 스 스로 돌기 때문에 자전(自轉)으로 된 것이니까 우리들이 지구가 빨리 돌았는지 늦게 돌았는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성경의 하루는 지금 우리들이 알고 있는 24시 간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달을 두고 별을 두고 태양을 두었다 했는데 이런 것은 일시를 정하고 년 한을 정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빛과 어둠을 떠나서는 다 살 수가 없지요. 그래서 한 해가 가면 한 해가 오고 그래서 하나님이 내 날을 계수(計數)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날이 지나갈 때 세상은 단순히 우연히 왔다 우연히 지나가는 것이 아 니라 하나님이 날을 계수(計數)하고 있음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을 것이예요. 그래서 시편 90:12절에서도 말하기를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計數)함을 가르치 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헛되이 늙지 않을 것입니다. 시편 기자가 말할 때 "내가 이제까지 많은 고생을 했지마는 내 죄악 때문에 내 이제까지 지냈던 것이 하나님 앞에서 순식간에 지나 갔습니다. 돌아보면 매맞 을 것 뿐입니다. 하나님, 내 날을 하나님 앞에서 계수(計數)하게 하옵소서! 지혜롭 게 하소서!" 한 것입니다. 사람이 있는 곳은 손바닥 넓이처럼 좁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해마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고 하나님께서 모든 날을 계수(計數)하시고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이 끝이 있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과 베드로서에도 이 일월성신을 가지고 마지막의 징조에 대하여 설 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든 태양은 성경에서 말하기를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을 그리스도의 영광이라고 말하여 비유적으로 해보다 찬란한 빛 가운데서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만들어진 태양의 빛도 우리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하는데 하물 며 하나님의 영원한 빛은 더더구나 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만일 보면 죽을 것이예요.
그런데도 어리석은 사람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보여 주면 내가 믿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보면 우리는 죽을 것이예요. 그것을 그 사 실을 가장 강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 바로 태양의 빛을 우리가 똑바로 쳐다 볼 수 없 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피조된 빛인 태양을 비출 때에도 하나님의 빛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날 개 아래서 빛 가운데서 아무 것도 숨기지 못할 것을 알고, 하나님의 광명한 빛 가운 데서 내 발걸음을 쓰실 때 내가 아무도 피하지 못할 줄 알고, 우리가 그 거룩한 빛 앞에 설 줄 알고, 우리의 행위를 조심하고 우리가 하나님 눈 앞에서 행하는 것처럼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밤의 아들이 아니고 빛의 아들입니다. 그렇게 살아야 될 것입니다. 그러 니 하나님께서 밤에도 달을 주시고 사람을 즐겁게 하시고 시원케 하십니다. 그리고 별들을 볼 때 우리가 얼만큼 작은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별들을 보노라면 우리 가 얼마나 작은가 하는 것을 실감합니다. "별 하나 꽁꽁 나 하나 꽁꽁."하면서 밤 하늘을 바라 보면 그 무한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인간은 우주에 비해서 참 작습니다. 하나님은 만상을 지으셔서 그것들에게 질서를 주시고 지금도 운행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늘의 달과 별이 제 질서를 찾아서 도는 것을 볼 때에 하물며 지극히 적은 내 일에 대해서야 일찌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사신 나를 어찌 돌보 시지 않겠는가 그런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만상을 운행하실 때 오히려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사신 나 를 위해서 모든 것이 움직인다고 해도 좋습니다. 성경에서 "공중에 나는 새를 보아 라 들의 백합화를 보아라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참조;마 6:25-31) 말씀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저 큰 광명과 별을 전 우주를 움직이는데 하물며 인간사 적은 일을 움직 이지 못할 줄 알고 우리가 두려워서 떨어서는 안되지요. 우리는 전 우주의 지극히 작은 부분 입니다마는 하나님의 사랑의 시선은 우리를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해서 배치된 것입니다. 20-23절, 다섯째 날의 일입니다. 이것은 저녁 때 창조하신 것이지요. 그리고 아 침에 해가 뜨면 하나님의 창조하신 것이 그 빛 가운데 광명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기 보니까 각기 동물들을 각기 종류대로 만드셨습니다. "땅은 낼지어다!" 그런 식 이지요. 그리고 바다에는 물고기가 살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작품을 보면 너무 너무 신기하지요. 고래처럼 무지무지하게 물고기가 있는가 하면 조그만 물고기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 공통성이 있습니다. 또 천차만별 입니다. 인도에 가면 지름이 9M 짜리 꽃도 있답니다. 그러면 얼마만큼 큽니까 꽃이 그렇게 커요.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만물을 각양 종류대로 창조하고 온 인류를 땅에 흩으셨습 니까 그것은 어디 있든지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동물 도 여기 보면 물고기를 창조하고 그 다음에 새들을 창조 하셨습니다. 물고기에서 새 들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각기 종류대로 창조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바 다를 보면 하나님이 얼만큼 풍족하십니까 하나님이 얼만큼 넓으신가 그리고 그 안 에 얼만큼 무수한 생물이 있는가 하나님의 풍성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래를 기준해서 물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큰 파도가 몰려와도 모래턱에 서면 그것은 멈추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다를 꿰뚫을 수 있어도 모래는 꿰뚫지 못하고 멈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경계를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내 경계를 넘는구나 하고 예례미 야서에서 여러번 말씀 하셨습니다. 렘 5:22-2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주어 바다의 계한(界限)을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계 한을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흉용하나 그것을 이기지 모하며 뛰노 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너희 백성들은 배반하며 패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시 104:9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 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성경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와 관계해 오셨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우리를 사랑하시는 숨결을 느끼고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창조 하신 하나님의 손길에서 어떻게 우리와 관계 하셨는가를 살폈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이 말씀으로 오늘도 우리와 관계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말씀에 은혜 를 주시려 하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있기를 원합니다. 아멘.
'다시 생각하기 위한 질문'
1.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언약의 의미는 무엇인가
2.창조주가 피조물을 언약의 당사자로 부르신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3.만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아무런 언약이 없다면 하나님과 인간은 어떤 관계일 것인가
4.하나님과 인간(혹은 세상) 사이의 언약의 특성 가운데 대표성이 있다. 이 점을 깊이 생각해 보라. 첫 언약의(행위언약) 대표자인 아담과
둘째 언약(새언약)의 대표 자인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5.하나님의 일에 협력자로서 인간의 언약적 삶을 생각해 보라.
6.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은 어떠한 존재인가
7.첫 언약의 도구로 나타나는 두 나무의 의미는 무엇인가
8.하나님이 사람을 흙으로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생령이 되었다 고 했는데 이 생령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
9.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신 목적은 무엇인가
10.에덴이 네 강의 근원으로 출발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1.창조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사람은 땅을 경작하므로 창조에 대해 반응한다. 창조내에서 진행되는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문화적 사명을 고려해 보라.
1 2.결혼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결혼은 하나님의 언약으로 주어졌다. 언약이 행과 결혼에 대한 정절을 지키는 일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13.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한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14.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 것인가 남편은 권위 행사자로, 아내는 복 종하는 자로 서는가 아니면 상호 협력자인가 언약의 의무들과 더불어 상호간의 사랑과 봉사가 어떻게 결혼 속에서 조화 되어야 하는가
15.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지어준 일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왜냐하면 성경은 만물을 누가 만들었는가 그런 것을 말하려는 책은 아닙니다. 물론 그런 것이 과학적으로 분 명히 맞기는 하지만 성경은 '천사 연구 논문집'도 아니고 '마귀 연구 논문집'도 아 니며 물건들이 어떻게 생겼는가 하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또 하나님은 어떻게 생겼는가 그런 것을 연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떻게 피조물과 관계 하시는가에 대하여, 피조물과의 관계에 대하여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만물을 만드셨다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지금도 붙들고 계시고, 하나님이 만물을 통치하 실 때 인간을 대리 통치자로 세우셨으며, 그래서 인간은 만물의 왕으로 서 있었다고 하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부분이 강조점인 것입니다.이것이 1장과 2장의 주된 내용입니다. 그리고 1:1,
2,3절에서는 하나님의 창조와 창조의 순서를 말합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에서는 분명히 말하기를 이 만물은 하나님의 음성이며 지금도 하나님은 이 피조 물 세계에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증거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들도 만든 물 건의 순서만 볼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이 피조물을 통해서 인간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리셨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세계에서 대리 통치자인 인간이 이 만물을 잘 다스렸는가 아니 면 하나님을 거스리고 잘못 했는가 하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만물 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거룩한 성전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창세기 1장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든 만물에 게서 영광을 나타내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1:1절,"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것은 원시창조를 말합니다. 본래의 창조, 그러니까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물질을 만드신 것을 말하지요. 그리고 그 다음 계속해서 많은 물질을 만드신 것 같지만 1절 이후의 창조는 이미 창조된 것에다가 어떤 질서를 부 여하신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1절의 창조는 그러니까 시간과 공간이 아울러서 있는 물질을 창조하셨음을 말하는 창조의 선언이지요. 2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 행하시니라" 이 부분은 기독교에서 가장 신비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암시적으로 설명된 곳입니다. 여기에서는 분명하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을 구분하여 말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피조물과 관계하시는 면에서 신내(神內) 의 존재방식(存在方式)에서 삼위(三位)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것을 우리는 말하기 를 삼위일체(三位一體) 되시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 2절에서 분명하게 하나님의 세 위격(位格)에 대하여 확실하게 밝혔 으면 우리가 이해하기 쉬울 것인데 왜 그렇게 불분명하게 기록했을까 하고 궁금해 하실 것입니다. 거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창세기를 모세가 기록했는데 그 당시 성경을 받아 보는 구약 시대의 백성들이 살던 환경을 감안하여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시대 제약적인 특성) 그렇게 하나님의 세 위격에 대하여 말할 때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었습니다. 당시 구약 백성들은 많 은 이방 나라들과 접촉하며 살았는데 그들 이방 나라들은 모두 다신교(多神敎), 그 러니까 많는 신들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주변의 이방 나라들이 섬기는 그 런 하찮은 신들(우상)과 한 분 참되신 하나님과 분명한 구분을 나타내고 강조할 필 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구약 백성들은 오직 한 하나님, 유일신(有一神) 교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까닭은 많은 신들을 섬기며 사는 이방 나라들로 부터 자기 백성을 보존하시 고 하나님의 계시를 보존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게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한 분 이시라는 데에 모든 강조를 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 보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속을 이루실 때에 하나님의 세 위격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 대표적인 곳이 마태복음 3:16-17절의 내 용 입니다. 거기 보면 하늘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음성이 있고, 물에서 올라 오 시는 아들이 있고, 그리고 비둘기 처럼 강림하시는 성령님이 있습니다. 거기서 삼위일 체가 밝히 드러나지만 구약에는 유일신에 대한 강조가 있기 때문에 삼위일체 교리는 밝히 나타나지 않습니다. 구약에는 지옥이나 천국이라는 표현이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단순히 음부와 어둠의 장소로, 고통하는 장소로 표현했던 것도 당시 백성들의 이해 수준을 감안하 여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시대 제약적인 특성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보면 밝히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2절과 3절 초두에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라고 했는데, 말씀은 곧 능력 이십니다. 말씀이 창조하시는 능력으로 창조하고 있지요. 말씀을 '발설(發舌)하시는 하나님'과 그리고 '권세있는 말씀'(Logos)이 세상을 창조하시는데 창조하시는 방법 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라는 말씀으로 보면 성령님께서 말씀을 능력으로 만상에 드러나게 하십니다. 이렇게 창조에 있어서 성부로 부터 성자로 말미암아 그리고 성령님 안에서 창조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분명하게 그렇게 하나님의 삼위에 대한 명확한 구절은 아니지만 그 래도 어느 정도 나타내 주고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중보자로서 자기 아들을 보내 셨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날 때 아들로 나타납니다. 그 때에야 삼위 일체 교리가 밝히 나타나고 창세기 1장에서는 그렇게 밝히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했던 것처럼 모든 피조 물은 성령님의 역사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고 생명이 보존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혼란한 세계에 빛으로 창조하셨고 그 다음에 빛과 어두움을 나누었고, 어 두움을 밤이라 빛을 낮이라 칭하셨습니다. 혼란한 세계에 빛을 비추셨지요.
물론 이 가운데 6일 동안의 창조가 이루어집니다. 빛 가운데서 하신 것이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빛이 있을 때만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혼란할 때도 신이 수면 에 운행하셨고 그리고 빛이 비추므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눈에 보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일은 드러난 것만 있는 것이 아니고 감추인 일들이 더욱 많 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찬미하는 일 보다도 우리가 이해하지 못 하는 일이 더 많지요.
그런데 여기서 빛을 비추시고 빛 가운데서 모든 것을 모든 질서를 제공하시는 것은 고린도후서 4:6절에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다" 하는 것처럼 새 창조에 있어서도 모든 것을 빛 가운데서 정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여기 창조에서의 빛이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고린도후서에 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라고 해서 그리스도의 얼굴에 하나님을 아는 영광 의 빛이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첫 창조의 빛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서 일어날 새 창조의 빛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새 창조의 빛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지요. 이 하나님의 영광 을 아는 빛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우리에게 밝히 비추었는데 그 사 실을 창세기에서는 첫 창조의 빛으로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첫 창조에서 그리스도는 말씀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첫 창조의 빛은 앞으로 재 창조 때 이루어질 영광의 빛을 예고해 주는 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가 만물을 재 창조 할 때 영광의 빛 이 되어서 그리스도를 중심해서 만물이 재 배치 되는 것처럼 여기 첫 창조에서도 빛 가운데서 만물을 배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은 이처럼 모형적으로 여러가지를 나타내 줍니다. 그렇다고 해서 꼭 "이것이면 이러한 것이고 저것이면 저러한 것이다" 라고 단정하여 말하기는 어렵 습니다.
왜냐하면 여러 모양으로 그것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5절, "하나님께서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고 저녁이 되매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이 창조의 날을 보면 반드시 밤으로 시작해서 아침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 시작했던 일은 어두움 가운데서 준비하신 일들 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첫 빛이 비취면 하나님이 하시던 일들이 빛 가운데 광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지금 우리 맘에서 하나님의 창조하시는 일도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이 죄 가운데 공허하고 혼미할 것 같으면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신 것처럼 성령님의 역사로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셔서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그 때에야 하나님이 내 안에서 하신 일을 우리가 비로소 찬미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 각 날마다 밤이 되고 아침 이 되니 이 첫 창조는 그리스도로 부터 시작된 재 창조의 모형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6-8절의 둘째날의 하늘은 1절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의 하 늘과 땅과는 다른 창조 입니다. 1절의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밝히 드러나 있는 천사들의 처소, 하나님이 친히 임재하시는 그런 자리를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천국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천국 하면 하늘 저 멀리 어디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어느 장소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천국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 은 인성(육신)을 입으시고 가 계십니다. 그러니까 우리와 같은 육을 가지신 예수님 이 계실 수 있는 곳이니까 그 곳도 만들어진 세계이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장소적인 곳입니다. 장소적이란 말은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는 곳을 말하는 것이 지요. 그러니까 천국도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어떤 한 장소인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에 그곳이 어디라고 꼭 짚어서 말하지는 않지만 장소적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인성(人性)을 가진 인간의 몸을 입으신 분이 지금 하늘 보좌에 계시다고 말합니다. 물론 부활체로 변형된 모습 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와 동일한 육신인 것은 분명 하거든요 사람의 몸을 입으 시고 오신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 때에 하늘과 땅을 만드셨습니다. 천사들이 하나님 을 경배하고 영광이 가장 찬란하게 나타나는 천국을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함께 땅을 지으신 것입니다.
둘째날 창조한 하늘은 우리가 말하는 지금 보이는 하늘을 말합니다. 그리고 둘째 날의 땅도 지금 우리들이 사는 장소를 말합니다. 이 땅에 하나님은 풍성한 잠재력을 심으셨습니다. 인간은 이 풍성한 잠재력을 개발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더 크게 드러내고 찬미하도록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범죄한 인간은 이 땅 의 풍성한 잠재력을 조금 개발해 놓고 말하기를 "내가 이만큼 했다. 내가 하나님이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여 더 편리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은 무한한 잠재력을 심으셨습니다. 이것을 개발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더 밝히 드러내도록 하는 일을 인간은 책임으로 맡아 가지고 있는 것이지 요. 여기에서 우리는 모든 생명이 하나님으로 부터 왔음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14절부터 보면, 빛의 휴대자인 광명들을 창조하셨습니다. 1절의 창조 만 무에서 창조한 것이고 나머지는 먼저 창조했던 것에다 질서를 주시고 생명을 주 시는 그런 창조 입니다. 그러니까 첫 날에 어떻게 밤이 되고 낮이 되었습니까 그 빛은 무엇입니까 분명히 태양과 달은 아니었습니다. 이 빛은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 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러니까 태양과 달이 있어도 그것은 참 빛되신 하나님 을 보여 주는 그런 방법들이지 그것들이 빛 자체는 아니지요. 그러니까 그 때에 처 음 태양과 달을 창조했는지 아니면 혼란한 우주를 재조정 하면서 그 때 태양과 달을 제 위치에 고정하셨는지 우리들은 그런 것 까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구의 낮과 밤이 된 것은 태양이 있어서 된 것이라기 보다는 지구가 스 스로 돌기 때문에 자전(自轉)으로 된 것이니까 우리들이 지구가 빨리 돌았는지 늦게 돌았는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성경의 하루는 지금 우리들이 알고 있는 24시 간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달을 두고 별을 두고 태양을 두었다 했는데 이런 것은 일시를 정하고 년 한을 정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빛과 어둠을 떠나서는 다 살 수가 없지요. 그래서 한 해가 가면 한 해가 오고 그래서 하나님이 내 날을 계수(計數)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날이 지나갈 때 세상은 단순히 우연히 왔다 우연히 지나가는 것이 아 니라 하나님이 날을 계수(計數)하고 있음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을 것이예요. 그래서 시편 90:12절에서도 말하기를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計數)함을 가르치 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헛되이 늙지 않을 것입니다. 시편 기자가 말할 때 "내가 이제까지 많은 고생을 했지마는 내 죄악 때문에 내 이제까지 지냈던 것이 하나님 앞에서 순식간에 지나 갔습니다. 돌아보면 매맞 을 것 뿐입니다. 하나님, 내 날을 하나님 앞에서 계수(計數)하게 하옵소서! 지혜롭 게 하소서!" 한 것입니다. 사람이 있는 곳은 손바닥 넓이처럼 좁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해마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고 하나님께서 모든 날을 계수(計數)하시고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이 끝이 있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과 베드로서에도 이 일월성신을 가지고 마지막의 징조에 대하여 설 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든 태양은 성경에서 말하기를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을 그리스도의 영광이라고 말하여 비유적으로 해보다 찬란한 빛 가운데서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만들어진 태양의 빛도 우리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하는데 하물 며 하나님의 영원한 빛은 더더구나 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만일 보면 죽을 것이예요.
그런데도 어리석은 사람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보여 주면 내가 믿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보면 우리는 죽을 것이예요. 그것을 그 사 실을 가장 강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 바로 태양의 빛을 우리가 똑바로 쳐다 볼 수 없 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피조된 빛인 태양을 비출 때에도 하나님의 빛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날 개 아래서 빛 가운데서 아무 것도 숨기지 못할 것을 알고, 하나님의 광명한 빛 가운 데서 내 발걸음을 쓰실 때 내가 아무도 피하지 못할 줄 알고, 우리가 그 거룩한 빛 앞에 설 줄 알고, 우리의 행위를 조심하고 우리가 하나님 눈 앞에서 행하는 것처럼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밤의 아들이 아니고 빛의 아들입니다. 그렇게 살아야 될 것입니다. 그러 니 하나님께서 밤에도 달을 주시고 사람을 즐겁게 하시고 시원케 하십니다. 그리고 별들을 볼 때 우리가 얼만큼 작은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별들을 보노라면 우리 가 얼마나 작은가 하는 것을 실감합니다. "별 하나 꽁꽁 나 하나 꽁꽁."하면서 밤 하늘을 바라 보면 그 무한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인간은 우주에 비해서 참 작습니다. 하나님은 만상을 지으셔서 그것들에게 질서를 주시고 지금도 운행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늘의 달과 별이 제 질서를 찾아서 도는 것을 볼 때에 하물며 지극히 적은 내 일에 대해서야 일찌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사신 나를 어찌 돌보 시지 않겠는가 그런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만상을 운행하실 때 오히려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사신 나 를 위해서 모든 것이 움직인다고 해도 좋습니다. 성경에서 "공중에 나는 새를 보아 라 들의 백합화를 보아라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참조;마 6:25-31) 말씀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저 큰 광명과 별을 전 우주를 움직이는데 하물며 인간사 적은 일을 움직 이지 못할 줄 알고 우리가 두려워서 떨어서는 안되지요. 우리는 전 우주의 지극히 작은 부분 입니다마는 하나님의 사랑의 시선은 우리를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해서 배치된 것입니다. 20-23절, 다섯째 날의 일입니다. 이것은 저녁 때 창조하신 것이지요. 그리고 아 침에 해가 뜨면 하나님의 창조하신 것이 그 빛 가운데 광명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기 보니까 각기 동물들을 각기 종류대로 만드셨습니다. "땅은 낼지어다!" 그런 식 이지요. 그리고 바다에는 물고기가 살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작품을 보면 너무 너무 신기하지요. 고래처럼 무지무지하게 물고기가 있는가 하면 조그만 물고기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 공통성이 있습니다. 또 천차만별 입니다. 인도에 가면 지름이 9M 짜리 꽃도 있답니다. 그러면 얼마만큼 큽니까 꽃이 그렇게 커요.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만물을 각양 종류대로 창조하고 온 인류를 땅에 흩으셨습 니까 그것은 어디 있든지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동물 도 여기 보면 물고기를 창조하고 그 다음에 새들을 창조 하셨습니다. 물고기에서 새 들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각기 종류대로 창조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바 다를 보면 하나님이 얼만큼 풍족하십니까 하나님이 얼만큼 넓으신가 그리고 그 안 에 얼만큼 무수한 생물이 있는가 하나님의 풍성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래를 기준해서 물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큰 파도가 몰려와도 모래턱에 서면 그것은 멈추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다를 꿰뚫을 수 있어도 모래는 꿰뚫지 못하고 멈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경계를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내 경계를 넘는구나 하고 예례미 야서에서 여러번 말씀 하셨습니다. 렘 5:22-2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주어 바다의 계한(界限)을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계 한을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흉용하나 그것을 이기지 모하며 뛰노 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너희 백성들은 배반하며 패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시 104:9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 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성경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와 관계해 오셨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우리를 사랑하시는 숨결을 느끼고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창조 하신 하나님의 손길에서 어떻게 우리와 관계 하셨는가를 살폈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이 말씀으로 오늘도 우리와 관계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말씀에 은혜 를 주시려 하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있기를 원합니다. 아멘.
'다시 생각하기 위한 질문'
1.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언약의 의미는 무엇인가
2.창조주가 피조물을 언약의 당사자로 부르신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3.만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아무런 언약이 없다면 하나님과 인간은 어떤 관계일 것인가
4.하나님과 인간(혹은 세상) 사이의 언약의 특성 가운데 대표성이 있다. 이 점을 깊이 생각해 보라. 첫 언약의(행위언약) 대표자인 아담과
둘째 언약(새언약)의 대표 자인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5.하나님의 일에 협력자로서 인간의 언약적 삶을 생각해 보라.
6.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은 어떠한 존재인가
7.첫 언약의 도구로 나타나는 두 나무의 의미는 무엇인가
8.하나님이 사람을 흙으로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생령이 되었다 고 했는데 이 생령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
9.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신 목적은 무엇인가
10.에덴이 네 강의 근원으로 출발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1.창조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사람은 땅을 경작하므로 창조에 대해 반응한다. 창조내에서 진행되는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문화적 사명을 고려해 보라.
1 2.결혼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결혼은 하나님의 언약으로 주어졌다. 언약이 행과 결혼에 대한 정절을 지키는 일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13.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한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14.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 것인가 남편은 권위 행사자로, 아내는 복 종하는 자로 서는가 아니면 상호 협력자인가 언약의 의무들과 더불어 상호간의 사랑과 봉사가 어떻게 결혼 속에서 조화 되어야 하는가
15.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지어준 일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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