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유심히 보시는 것들 (사38:1-6)
본문
몇 년전 미국 연합 감리교회 목회자 세미나를 유리 교회가 숙식을 제공하며 개최하여 모두 눈물을 흘리며 은혜 받고 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 다음에 영국 목사님들을 초청해서 많은 비용을 들여 교역자 세미나를 했는데 많은 교역자들이 은혜 받고 좋아하는데 그 대표되는 목사가 본부의 어떤 목사가 음해하는 말을 듣고 나보고 공산당 같은 목사라고 비난을 하더랍니다. 그 후부터 영국에는 집회를 안가고 발도 안 들여놓기를 결심을 했습니다. 그 후 내가 아는 영국 목사님이 총회장이 되어서 총회에 꼭 오라고 초청해도 가지 않았고 우리교회 출신 박건희 목사가 부흥회를 와달라는 것도 안 갔습니다. 대인 관계에서도 하찮은 말 한마디나 행동하나가 평생 잊혀지지 않는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하고 그의 말 하나 행동 하나가 평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깊은 감화를 주기도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들도록 살려면 하나님이 무엇을 가장 가증히 여기시고 무엇을 기뻐하시고 무엇을 가장 관심 깊게 보시는 지를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관심 깊게 유심히 살펴보시는 몇 가지를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도 아십니다. 멀리서도 우리의 생각을 통촉하신다고 했습니다.
1. 기도의 눈물을 유심히 보십니다. 하나니은 우리가 슬퍼서 울고 기뻐서 우는 그런 눈물을 유심히 보시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눈물과 땀을 유심히 보십니다. 본문 5절에 보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고 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서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고 전하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히스기야가 이 말을 듣고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전심으로 통곡하며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그 영혼을 불러 가시기로 작정하셨다가 뜻을 돌이켜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하시면서 "내가 네 수한을 십오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를 보시고 15년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고 앗수르 왕의 군대 18만 5천명을 진멸시켜 주셨습니다. 기도의 행위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기도의 눈물과 기도의 땀을 귀중히 보시고 유심히 보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교회가 끊임없이 성장하려면 세 가지 습기가 있어야 합니다. 습기가 없으면 식물이 말라죽고 모든 생물이 살수가 없는 것처럼 교회에도 습기가 늘 있어야 생명이 살고 교회가 성장합니다.
첫째는 기도의 눈물이요, 둘째는 수고의 땀이요, 셋째는 헌신의 피입니다. 피를 짜내는 희생과 헌신이 없이는 교회는 성장할 수가 없고 생명이 약동할 수가 없습니다.
2. 우리의 속 중심을 유심히 보십니다. 사람은 겉모양을 보고 판단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래서 세상을 살아갈 때 첫인상이 좋고 외모가 잘생긴 사람이 취직할 때나 법정에서 재판 받을 때 덕을 본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우리의 속 중심을 관심 깊게 보십니다. 우리의 중심이 진실한가 우리의 중심이 선한가를 유심히 살펴보십니다. 얼굴이 못생기고 눈이 없거나 팔다리가 하나 없어도 중심이 진실하고 착하면 얼마든지 하나님 앞에 미남미녀처럼 보일 수가 있습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에 "그 용모와 신장은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키가 크고 인물이 잘난 사울 왕이 교만하고 불순종하여 버리신 다음에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기름 부어 왕을 삼을 때 하신 말씀입니다. 이새의 아들들이 얼마나 준수하고 잘 생겼는지 사무엘도 다짜고짜 기름을 부으려고 했을 때 하나님은 다 아니라고 했습니다. 들에서 양을 치느라고 일곱 아들들 다 선보일 때 부모가 부르지도 않았다는 여덟째아들 막둥이였습니다. 몸에 양의 노린내가 나고 양 똥내가 나고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들어 왔지만 그 중심이 여호와 보시기에 아름다웠기 때문에 기름 부어 왕을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습을 모시지 않고 속중심을 유심히 보십니다. 우리의 속중심이 진실하고 착하고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관심 깊게 살펴보십니다.
3. 성도의 죽음을 유심히 보십니다. 시편 116편 5절에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부모가 자식이 건강해서 잘 뛰놀 때는 무심히 보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식이 병들어 눕게 되면 모든 일을 전폐하고 가까이 와서 지켜보며 근심스럽게 바라봅니다. 더욱이 숨이 넘어가려고 힘들게 들이쉬고 내쉴 때는 밤 세는 줄을 모르고 유심히 지켜보게 됩니다. 이와 같이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이 병들어 고통을 당하거나 죽음에 임박하여 숨을 헐떡이게 되면 다른 어느 때보다도 천군, 천사까지 동원하시면서 관심 깊게 지켜보시는 것입니다. 성도가 헐떡거리는 숨결 하나하나 신음하는 소리 하나하나를 관심 깊게 들으시면 지켜보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3절에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자금이후론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님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죽는 순간이야말로 평생 그리워하던 천국에 들어가는 복된 순간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 1장 21-24절에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었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욱 유익하리로다" 디모데후서 4장 7-8절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고믿음을 지켰으니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니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자에게니라" 죽음을 마치 기다리던 결혼식 날처럼 생각하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는 것도 중요하고 생존하여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죽는 순간입니다. 죽기를 잘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신 것도 죽었거나 부활하신 것도 교회를 세우신 것도 모두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도의 죽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십니다.
4. 우리의 헌금행위를 유심히 보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헌금행위를 유심히 살피시기 위해 어느 날 성전에서 헌금통을 향해 앉으셔서 사람들이 헌금하는 것을 하나하나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지켜 보셨습니다. 왜 헌금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보셨을까요 돈이 탐나서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주님께는 돈이 필요 없습니다. 천하 만물이 다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면 왜 주님께서 유심히 살피셨을까요 "네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하신 말씀대로 우리의 물질이 가는 곳에 마음도 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유심히 보시는 중에 부자는 많이 넣고 가난한 자는 적게 넣는데 그 중 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감탄하시면서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한 사람 중에 가장 많이 헌금했다고 칭찬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2장 41절) 그 과부는 동전 몇 개 바쳤지만 그 집의 생활비 전부를 바쳤기 때문입니다. 비록 요사이로 말하면 라면 몇 개 값이지만 그 집안 식구 전체가 먹어야 할 생활비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헌금 행위를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가지셨기에 헌금통을 향하여 앉으셔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켜 보셨겠습니까 그리고 이 과부를 칭찬하였겠습니까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헌금하는 시간마다 우리의 손길이 헌금대에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물질이 가는 곳에 우리의 마음과 정성도 따라 가기 때문입니다. 두말할 것 없이 그 신자가 얼마나 물질을 아낌없이 바칠 줄 아는 가를 보면 그 사람의 신앙 상태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한번은 무디 선생이 돈 3,000불이 필요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바쁜데 사람을 찾아가 사정할 수도 없고 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합니다.그런데 주일날 어느 부인이 들어와 봉투를 놓고 가서 식사 후에 얼마나 들었나 뜯어보니까 3,000불이 들었더랍니다.
그런데 그 수표에 액수를 쓰는데 처음에 1,000불을 썼다가 마음이 편치 않아서 지우고 2,000불을 썼다가 다시 하나님이 책망하시는 것 같아 3,000불로 적었더랍니다. 얼마나 성령님의 감동에 순종하려고 노력했으면 두 번이나 지우고 다시 썼겠습니까 대구에 서현교회에 정류만 장로님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그는 한의사였는데 죽을병이 걸려서 살 가망성이 없었는데 기도하기를 "한번만 살려주시면 큰 예배당을 지어 바치겠습니다"하고 서원기도를 하고 온 교인들도 그를 위해 밤을 새워가며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당시 동양 최대의 성전을 화강암으로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상한 병이 유행해서 약을 지어주면 신기하게 낫곤 했습니다. 다 른 병원이나 약방에서는 절대로 낫질 않는데 이 정규만 장로님한테 지어먹으면 꼭 낳습니다. 그래서 그 약방문 앞에는 장사진을 이루었고 매일 돈을 가마니로 긁어 담아 다가 성전을 지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려니까 그런 방법으로 물질을 쏟아 부어 주셨습니다. 전에 황해도 재령에 정찬유 장로란 분이 있었습니다. 사업도 잘해서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래서 큰 양옥집을 지으려고 설계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그 날밤 잠을 자는데 꿈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집은 양철지붕으로 있는데 네 집만 잘 지으려고 하느냐"고 하셨습니다.
그 이튿날 집을 지으려든 것을 중단하고 크고 아름다운 성전을 지어서 봉헌하고 자기 집을 지었습니다. 그 후손들도 복을 받아 남한에서 큰 사업가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위하여 하나님이 원하실 때 순종하여 헌금할 때 하나님은 결코 그 정성을 잊지 않고 더 크게 더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감동이 올 때 불순종하면 하나님은 그 물질을 다 불어버리신다고 하셨습니다. 학개서 1장에 보면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를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그런데 성전은 안 짓고 집에 가져가기에만 빨랐으므로 "내가 그것을 불어 버렸느니라"(1장 19절) 또 "너로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식물을 그쳤으며 내가 한재를 불러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드디어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하자 하나님께서는 학개서 2장 7-9절에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실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2장 7-9절)고 말씀 하셨으며 또 2장 19절에는 전에는 너희가 성전 건축에 힘쓰지 않으므로 비가 오지 않아 흉년이 들고 곡식 소출이 없고 나무에 열매가 없었지만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음 문을 열어 성전 건축을 위해 정성을 바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 "불필요한 재난, 사고, 손실을 막아주시고 그날부터 복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헌금을 드릴 때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1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려야함 강제에 못 이겨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출애굽기 36장에 "자원하는 예물"로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불러서" 성전을 지었다고 했습니다. 신명기 23장 23절에 "무릇 자원하는 예물을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대로 행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힘을 다해 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부요하면 부한 형편에서 힘과 정성을 다해 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신명기 16장 10절에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드리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3절에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드렸다고 했습니다.
3 즐거움으로 드려야 합니다. 누가 선물을 여러분께 가져오면서 불평하며 얼굴을 찡그리고 가져오면 받고 싶겠습니까 기왕이면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유심히 관찰해 보시는 것, 기도의 눈물과 우리의 속 중심과 성도의 죽음과 성도의 헌금 행위라는 것 잊지 마시지 바랍니다.
1. 기도의 눈물을 유심히 보십니다. 하나니은 우리가 슬퍼서 울고 기뻐서 우는 그런 눈물을 유심히 보시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눈물과 땀을 유심히 보십니다. 본문 5절에 보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고 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서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고 전하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히스기야가 이 말을 듣고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전심으로 통곡하며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그 영혼을 불러 가시기로 작정하셨다가 뜻을 돌이켜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하시면서 "내가 네 수한을 십오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를 보시고 15년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고 앗수르 왕의 군대 18만 5천명을 진멸시켜 주셨습니다. 기도의 행위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기도의 눈물과 기도의 땀을 귀중히 보시고 유심히 보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교회가 끊임없이 성장하려면 세 가지 습기가 있어야 합니다. 습기가 없으면 식물이 말라죽고 모든 생물이 살수가 없는 것처럼 교회에도 습기가 늘 있어야 생명이 살고 교회가 성장합니다.
첫째는 기도의 눈물이요, 둘째는 수고의 땀이요, 셋째는 헌신의 피입니다. 피를 짜내는 희생과 헌신이 없이는 교회는 성장할 수가 없고 생명이 약동할 수가 없습니다.
2. 우리의 속 중심을 유심히 보십니다. 사람은 겉모양을 보고 판단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래서 세상을 살아갈 때 첫인상이 좋고 외모가 잘생긴 사람이 취직할 때나 법정에서 재판 받을 때 덕을 본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우리의 속 중심을 관심 깊게 보십니다. 우리의 중심이 진실한가 우리의 중심이 선한가를 유심히 살펴보십니다. 얼굴이 못생기고 눈이 없거나 팔다리가 하나 없어도 중심이 진실하고 착하면 얼마든지 하나님 앞에 미남미녀처럼 보일 수가 있습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에 "그 용모와 신장은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키가 크고 인물이 잘난 사울 왕이 교만하고 불순종하여 버리신 다음에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기름 부어 왕을 삼을 때 하신 말씀입니다. 이새의 아들들이 얼마나 준수하고 잘 생겼는지 사무엘도 다짜고짜 기름을 부으려고 했을 때 하나님은 다 아니라고 했습니다. 들에서 양을 치느라고 일곱 아들들 다 선보일 때 부모가 부르지도 않았다는 여덟째아들 막둥이였습니다. 몸에 양의 노린내가 나고 양 똥내가 나고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들어 왔지만 그 중심이 여호와 보시기에 아름다웠기 때문에 기름 부어 왕을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습을 모시지 않고 속중심을 유심히 보십니다. 우리의 속중심이 진실하고 착하고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관심 깊게 살펴보십니다.
3. 성도의 죽음을 유심히 보십니다. 시편 116편 5절에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부모가 자식이 건강해서 잘 뛰놀 때는 무심히 보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식이 병들어 눕게 되면 모든 일을 전폐하고 가까이 와서 지켜보며 근심스럽게 바라봅니다. 더욱이 숨이 넘어가려고 힘들게 들이쉬고 내쉴 때는 밤 세는 줄을 모르고 유심히 지켜보게 됩니다. 이와 같이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이 병들어 고통을 당하거나 죽음에 임박하여 숨을 헐떡이게 되면 다른 어느 때보다도 천군, 천사까지 동원하시면서 관심 깊게 지켜보시는 것입니다. 성도가 헐떡거리는 숨결 하나하나 신음하는 소리 하나하나를 관심 깊게 들으시면 지켜보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3절에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자금이후론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님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죽는 순간이야말로 평생 그리워하던 천국에 들어가는 복된 순간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 1장 21-24절에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었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욱 유익하리로다" 디모데후서 4장 7-8절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고믿음을 지켰으니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니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자에게니라" 죽음을 마치 기다리던 결혼식 날처럼 생각하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는 것도 중요하고 생존하여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죽는 순간입니다. 죽기를 잘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신 것도 죽었거나 부활하신 것도 교회를 세우신 것도 모두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도의 죽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십니다.
4. 우리의 헌금행위를 유심히 보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헌금행위를 유심히 살피시기 위해 어느 날 성전에서 헌금통을 향해 앉으셔서 사람들이 헌금하는 것을 하나하나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지켜 보셨습니다. 왜 헌금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보셨을까요 돈이 탐나서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주님께는 돈이 필요 없습니다. 천하 만물이 다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면 왜 주님께서 유심히 살피셨을까요 "네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하신 말씀대로 우리의 물질이 가는 곳에 마음도 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유심히 보시는 중에 부자는 많이 넣고 가난한 자는 적게 넣는데 그 중 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감탄하시면서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한 사람 중에 가장 많이 헌금했다고 칭찬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2장 41절) 그 과부는 동전 몇 개 바쳤지만 그 집의 생활비 전부를 바쳤기 때문입니다. 비록 요사이로 말하면 라면 몇 개 값이지만 그 집안 식구 전체가 먹어야 할 생활비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헌금 행위를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가지셨기에 헌금통을 향하여 앉으셔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켜 보셨겠습니까 그리고 이 과부를 칭찬하였겠습니까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헌금하는 시간마다 우리의 손길이 헌금대에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물질이 가는 곳에 우리의 마음과 정성도 따라 가기 때문입니다. 두말할 것 없이 그 신자가 얼마나 물질을 아낌없이 바칠 줄 아는 가를 보면 그 사람의 신앙 상태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한번은 무디 선생이 돈 3,000불이 필요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바쁜데 사람을 찾아가 사정할 수도 없고 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합니다.그런데 주일날 어느 부인이 들어와 봉투를 놓고 가서 식사 후에 얼마나 들었나 뜯어보니까 3,000불이 들었더랍니다.
그런데 그 수표에 액수를 쓰는데 처음에 1,000불을 썼다가 마음이 편치 않아서 지우고 2,000불을 썼다가 다시 하나님이 책망하시는 것 같아 3,000불로 적었더랍니다. 얼마나 성령님의 감동에 순종하려고 노력했으면 두 번이나 지우고 다시 썼겠습니까 대구에 서현교회에 정류만 장로님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그는 한의사였는데 죽을병이 걸려서 살 가망성이 없었는데 기도하기를 "한번만 살려주시면 큰 예배당을 지어 바치겠습니다"하고 서원기도를 하고 온 교인들도 그를 위해 밤을 새워가며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당시 동양 최대의 성전을 화강암으로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상한 병이 유행해서 약을 지어주면 신기하게 낫곤 했습니다. 다 른 병원이나 약방에서는 절대로 낫질 않는데 이 정규만 장로님한테 지어먹으면 꼭 낳습니다. 그래서 그 약방문 앞에는 장사진을 이루었고 매일 돈을 가마니로 긁어 담아 다가 성전을 지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려니까 그런 방법으로 물질을 쏟아 부어 주셨습니다. 전에 황해도 재령에 정찬유 장로란 분이 있었습니다. 사업도 잘해서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래서 큰 양옥집을 지으려고 설계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그 날밤 잠을 자는데 꿈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집은 양철지붕으로 있는데 네 집만 잘 지으려고 하느냐"고 하셨습니다.
그 이튿날 집을 지으려든 것을 중단하고 크고 아름다운 성전을 지어서 봉헌하고 자기 집을 지었습니다. 그 후손들도 복을 받아 남한에서 큰 사업가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위하여 하나님이 원하실 때 순종하여 헌금할 때 하나님은 결코 그 정성을 잊지 않고 더 크게 더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감동이 올 때 불순종하면 하나님은 그 물질을 다 불어버리신다고 하셨습니다. 학개서 1장에 보면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를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그런데 성전은 안 짓고 집에 가져가기에만 빨랐으므로 "내가 그것을 불어 버렸느니라"(1장 19절) 또 "너로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식물을 그쳤으며 내가 한재를 불러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드디어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하자 하나님께서는 학개서 2장 7-9절에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실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2장 7-9절)고 말씀 하셨으며 또 2장 19절에는 전에는 너희가 성전 건축에 힘쓰지 않으므로 비가 오지 않아 흉년이 들고 곡식 소출이 없고 나무에 열매가 없었지만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음 문을 열어 성전 건축을 위해 정성을 바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 "불필요한 재난, 사고, 손실을 막아주시고 그날부터 복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헌금을 드릴 때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1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려야함 강제에 못 이겨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출애굽기 36장에 "자원하는 예물"로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불러서" 성전을 지었다고 했습니다. 신명기 23장 23절에 "무릇 자원하는 예물을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대로 행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힘을 다해 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부요하면 부한 형편에서 힘과 정성을 다해 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신명기 16장 10절에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드리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3절에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드렸다고 했습니다.
3 즐거움으로 드려야 합니다. 누가 선물을 여러분께 가져오면서 불평하며 얼굴을 찡그리고 가져오면 받고 싶겠습니까 기왕이면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유심히 관찰해 보시는 것, 기도의 눈물과 우리의 속 중심과 성도의 죽음과 성도의 헌금 행위라는 것 잊지 마시지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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