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을 두고 화목하라 (막9:43-50)
본문
70년대에 만들어지고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영화 중에 '대부'라고 하는 그런 크게 유행됐던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마피아 족들의 생태를 보여주는 그런 영화입니다 만은 그 한 장면은 우리 마음에 오래오래 기억되는 그러한 장면입니다. 특별히 저는 바로 그 장면에 크게 충격을 받고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마피아족 두목들이 일곱 명이 모여서 졸개들 다 거느린 앞에서 더 이상 싸우지 말자 하고 화합하는 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끼리 싸우고 보니까 이긴 자나 진 자나 너무 손해가 많다, 그런고로 다시는 싸우지 말자, 합의를 봅니다. 그래서 저들은 아주 거창한 장엄한 예식과 함께 하나됨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 예식은 이렇습니다. 당석에서 손가락 하나씩을 전부 입으로 깨물어서 이걸 끊어 가지고 컵에다가 피를 쭉 받아요. 일곱 사람이 다 돌아가면서 한 컵에다가 피를 받아서 이것을 저어서 다 섞어 가지고 또 다시 일곱 사람이 돌아가면서 이것을 마시는 겁니다. 하나되는 의식치고는 이렇게 거창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확실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절대 싸우지 마라. 우리는 피로 뭉쳤다" 이랬습니다.
그런데 하찮은 일로 인해서 조금씩조금씩 문제가 벌어지기 시작하고 마지막에 싸우기 시작을 하는데요 다 죽어버리고 오직 두 사람 남는 그런 얘기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왜 하나가 되지 못했을까 하나 돼야 된다는 거 알고 있어요. 하나되기로 합의하고 결심했어요. 결국은 하나되지 못했어요. 참으로 중요한 것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불의와 거짓과 악, 죄악을 중심해서는 절대로 하나될 수가 없다는 것. 불의를 중심한 그러한 하나됨의 역사는 실현될 수 없다, 그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됨을 외칩니다. 화합해야겠고, 화목해야겠고, 총화되고, 단결하고……. 특별히 독재자마다 이렇게 외칩니다. 그러나 하나됨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 간단합니다.
첫째는 진실이 없기 때문입니다. 거짓에는 하나됨이 없습니다. 정의와 진리를 떠나서는 하나됨이 없습니다. 야합과 화합은 다릅니다. 야합은 내 이익을 위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야합이요, 화합은 내 이익을 포기하고 희생하면서 하나를 이루는 것이 화합입니다. "나를 중심해서 모여라!" 아무리 외쳐봐야 그것으론 하나가 되지 않습니다. 진리를, 정의를, 의를 중심할 때만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1934년, 생각하면 아득한 옛날 얘기입니다. 그 때 벌써 인도의 간디는 일곱가지 망국론을 마련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나라가 망한다고.
첫째 원칙 없는 정치, 도덕 없는 상업, 노동 없는 부, 인격 없는 교육, 인간성 없는 과학, 양심 없는 쾌락, 희생 없는 신앙. 그 옛날 이야기인데 어쩌면 오늘 우리의 현실을 보면서 말씀한 거 같아요. 확실히 그는 훌륭한 분이었어요. 예언적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가 안 되느냐고요 의를 저버렸기 때문이요. 또 하나는 목적이 달라서 하나가 안되는 겁니다. 목적만 같으면 좀 의견이 다르고 혹, 뜻이 다르고 방법이 달라도 종국에는 하나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방법은 하나인데 목적이 다르면 언젠가는 다 깨지고 맙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중심하는 이기심, 이것이 있는 한, 절대로 하나될 수 없는 것이에요. 또 하나는 지혜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뚜렷한 지도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훌륭한 화해자가 없기 때문이요. 우리가 괴로운 것은 아무리 보아도 쓸만한 인물이 없어요. 뚜렷한 지도자가 없어요. 그래서 하나가 안 되는 겁니다. 우리가 다 같이 신뢰하고 존경할만한 훌륭한 어른이 하나 있으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련만 저마다 잘났다고만 하지 보자 하니 시원치 않아요. 이래서 하나가 안 되는 것이에요. 피스메이커(Peace Maker)가 없기 때문이다 하는 얘기입니다. 오늘 본문 성경에 예수님 친히 말씀하십니다. "서로 화목하라" 이 화목하라고 하는 중요한 주제를 놓고 말씀하시면서 먼저 이 마가복음 9장을 자세히 살펴보면은 몇 가지로 암시해서 하나됨의 길을 말씀합니다. 29절에 보면 기도 없는 제자들의 무능력을 지적합니다. 기도 없이 용기 내 봐도 소용없고, 기도 없이 큰 소리 쳐봐도 아무 소용없더라. 결국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야 능력이 있고 화해할 수 있다. 또 하나는 경쟁심이나 으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나 승부욕을 버리라. 그것이 있는 한, 시기 질투가 있는 곳에 하나됨은 없다 하는 것이고요. 또 나만 옳다고 하는 편견, 그런 고집, 아집 같은 거 이런 마음이 있어서는 하나될 수가 없다.
또 하나는 본의 아니게 남을 실족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은 나는 나대로서 살아갈 수 있지만은 다른 사람에게 덕을 끼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럴 때는 배려의식이 필요합니다. 나로서는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지 말아야 되죠. 남을 실족시키는 실망시키는 일들이 많아. 내 돈 내가 쓰는데 누가 뭐라나 그러나 이것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안 써야지요. 내가 내 맘대로 가는데 누가 말릴거요 그러나 이것이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하고 실망케 하고 낙심케 한다면 거둬버려, 그런 얘기입니다. 그래서 눈이 범죄케 하거든 빼 버리라, 손이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발이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차라리 절름발이가 돼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온 몸이 성해서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낫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누누이 깊은 면에서 하나됨의 원리를 말씀하고 결론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 말씀하십니다. 소금은 3대 기능을 가졌습니다. 아시는 대로 먼저는 맛을 내는 겁니다. 우스운 얘기지만 어떤 분이 "소금은 몸에 나쁘다. 당신 혈압도 높으니까 먹지마라." 그래 소금을 깨끗이 안 먹으려고 했다고 그래요. 좌우간 설렁탕도 소금을 안 치고 먹었다니까 대단한 사람이에요. 그거 무슨 맛으로 먹었겠어요. 어쨌든 그렇게 했대요. 그렇게 했는데 또 다른 어떤 교수님이 말씀하기를, 아니라고 산 사람은 소금을 먹어야 하는 거라고 소금이 좋다는 얘기를 열심히 말씀하니까 아 그걸 듣고 '옳다', 그 다음에 소금을 쳐서 먹었더니 이렇게 맛있을 수가 없는 거예요. 여러분 소금은 맛을 냅니다. 소금 없는 그것 먹을 수 없지요, 맛있게 먹을 수가 없어요. 요새는 음식을 대접할 때 보면은 쉽게 그저 우리 한다는 말이 두 가지가 있어요. "많이 잡수세요" 그건 욕입니다. 많이 먹어, 내가 굶고 사나. 많이 먹으라면 빨리 죽으라는 거나 마찬가지요. 더구나 노인에게 많이 잡수라는 것은 빨리 가시라는 거요. 그거 좋지 않은 일이고요. 그래서 조금 더 유식하게 말한다고 "맛있게 잡수세요" 또 고상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즐거운 시간이 되십시오" 거 괜찮은 얘기예요. 그래 옛날 어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간이 맞습니까" 이 젊은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모르누만. 옛날 어른들은 식사를 대접하면서 "간이 맞습니까" 그랬어요. 요 간이 맞아야 맛있으니까. "우리 집 음식이 간이 맞습니까" 그래요. 그만큼 간은 중요한 거예요. 소금 맛이 결국은 모든 음식의 맛을 만들어 내는 거지요. 또 하나는 여러분 아시는 대로 방부제지요. 뭐 지금은 냉동하는 방법이 있지만은 또 다른 여러 방법도 있어요. 하지만 옛날에는 방부제란 오로지 소금이요. 그래서 절여서……. 그래서 우리가 짠 걸 많이 먹게 된 거 아닙니까. 절인 음식. 어쨌든 썩지 않게 하려면 소금을 많이 쳐서 절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방부제 역할을 하는 거지요. 또 하나 그것은 고르게 하는 것이에요. 이 소금을 넣으면 다 고르게 됩니다. 이게 바로 오늘 주시는 테마올시다. 여기서 뻣뻣한 것이 노골노골하게 되요. 여기서 숨이 죽어요. 그래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고르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구약성경에 보면은 제사에 소금이 쓰여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레위기 2장 13절에 보면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제물에 소금을 둘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베디드멜라, 언약의 소금, 아주 신비로운 의미가 여기에 있고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언약의 소금을 치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모든 제물은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제물 그대로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제물은 죽여야 됩니다. 산 양을 죽이고, 산 소를, 산 비둘기를 재단 앞에서 죽여서, 그것도 깨끗한 것이어야 되요 죽어 가는 것은 안 되요, 깨끗하게 펄펄 살아 있는 짐승을 바로 그 자리에서 죽여서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것이 제사 의식입니다. 이제 이것이 동물이 아니고 채소라 그 말이요. 그 채소를 드리는 제사를 소제라고 합니다. 채소를 가지고 와서 드리려고 할 때에 그것은 소금을 쳐서 뻣뻣한 채소를 부드럽게 만들어 가지고 그리고 드리라 이겁니다. 그러한 말씀이올시다. 그러니까 '숨을 죽인다' 마치 양을 죽이는 거 같은 그런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뻣뻣한 사람 죽여야 되요. 그걸 알아야 되요. 목이 곧은 사람 목을 굽혀야 됩니다. 어깨에 힘 주는 사람, 힘을 빼야 됩니다. 눈 높이가 높은 사람, 낮추어야 됩니다. 잘났다는 사람, 이제자기가 가장 못난 사람인 것으로 생각을 돌려야 합니다. 교만한 사람 겸손해져야 됩니다. 여러분 이것이 소금을 치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못하면 하나님이 하게 하십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당신 보시기에 합당한 자로 만듭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 여지없이 낮추어 버립니다. 잘났다는 사람, 잘났다는 생각을 깨끗이 포기할 때까지 하나님은 진노의 고삐를 늦추지 않습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 앞에 나올 때 이런 성도의 교제 속에 완전히 깨끗한 겸손이 있어야 됩니다. 완전히 나로서는 죽어가지고 아주 절인 배추처럼 아주 부드럽게 되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쳐집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바른 예배를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오늘도 역사하는 것을 역력히 볼 수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아직도 덜 죽은 사람이 있어요. 숨이 좀 덜 죽었어. 그래서 은혜가 없어요. 그래서 은혜 받지도 못해요. 그래서 모든 성도의 교제 속에도 기쁨도 없고 사랑도 없어요. 자 하나님의 하시는 역사를 보세요. "소금을 두라!" 유대사람의 격언에는 "소금이 없으면 세상은 살아갈 수 없다" 그만큼 저들은 소금을 소중히 여깁니다. 양을 키우지만은 양에게 소금을 먹이지 아니하면 양이 기운을 차리지 못합니다. 꼭 소금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 우리가 월급 받을 때 샐러리(Salary)라고 그러죠. 그게 본래 소금이라는 뜻이요. 옛날엔 이렇게 임금을 소금으로 줄 때가 있었다 그런 얘기입니다. 그런가 하면 라틴 사람들의 격언에는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것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태양이고 하나는 소금이다" 그런 문언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그만큼 소금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에 주시는 귀한 말씀의 뜻을 생각합니다. "소금! 소금으로 고르게 하라" 소금은 그 기능을 다 하기 위해서 두 가지로 역사합니다. 하나는 녹아집니다. 녹지 않는 소금은 소용없습니다. 녹아져야 되요. 형체가 없어집니다. 깨끗이 녹아집니다. 그래야만 소금이 소금될 수 있습니다. 자기 역할을 할 수가 있어요. 녹지 않는 소금은 소금이 아닙니다. 형체가 없어지지 아니하면 소금 구실을 못합니다. 동시에 소금은 다 녹아 없어지면서도 제 맛은 항상 지켜갑니다. 본질을 잃지 않습니다. 형체는 없어졌으나 본질은 살아있습니다. 이것이 소금의 특성이에요. 그리고 다른 물체에 영향을 줄지언정 자기는 영향받지를 않습니다. 여러분 소금 썩은 거 봤습니까 썩어지는 물체를 썩지 않게 할 수는 있어도 썩어지는 물체 때문에 자기가 썩는 일은 없어요. 자기 맛이 변하질 않아요.
그런데 요새 맛 간 교인들이 많아요. 아무리 봐도 예수 냄새가 나질 않아요. 맛이 갔어. 여기에 문제가 있는 거요. 제가 아는 이런 공무원 고위직에 있는 분이 계세요. 언제 한 번 점심을 하면서 고충을 얘기합니다. "자 위에도 어른이 있고 밑에도 부하들이 있고……. 참 이 중간 위치에서 참 곤란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으로 참 곤란합니다. 교회 나가는 것도 그렇지만은 예수 믿는 사람이기에 안 갈 때 가야되고 가지 말아야 될 곳도 있고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는데 해야되고……. 참 이거 공무원으로 예수 믿기 힘듭니다" 그러더라고요. 제가 그 얘기에 이렇게 말 한 일이 있습니다. "내 말을 잘 들으세요. 하위직은 좀 고달프긴 하지만은 명은 길어. 오래 있을 수 있지만 당신 정도 되면 이게 고위직이라는게 오래 못 가. 당신 생각에 얼마간이나 이 자리에 있을 거 같으냐고, 그거 뭐 한 번 북풍남풍 불면 추풍낙엽이죠 뭐. 어느 때 어디 연루 되가지고 떨어져 나갈는지 모르지요. 어차피 오래 못 있지요 잘 해야 1년이지."그랬더니 그렇다고 그래요. "
그렇다면 내일이라도 고만 둘 마음 가지고 사표를 제출하지는 말아도 사표 써 놓고 그리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알았나 그리고 떳떳하게 고만 두라고 고만 둔 다음에 잘했다 싶게 하라고, 이 자리에 붙어 있으려고 쓸데없는 얘기하지도 말고 하고 싶지 않은 일 하지도 말고 비겁하게 살지 말어. 알았어요"했더니 "알았습니다" 하더라고요. 그 다음에 저희 교회 소망지 딱 같다 책상에 놓고 오는 사람마다 하나씩 주는 거요, 예수 믿으라고. 그 자리에 앉아 가지고 만나는 사람마다 전도하고 그러세요 했더니 소신껏 일하는 분이라고 또 진급했어요.
여러분 제발 시시하게 살지 맙시다. 그 자리 지키느라고 그 양심을 거역하며 그러지 맙시다. 좀 떳떳하게 살 수 없겠어요. 소금은 녹아져요. 분명히 녹아 없어지는 형체는 없는데 본질은 그대로 살아 있는 거예요. 어디가나 짠맛은 그대로 있어야 하는 것이에요. 이것이 변질되면 안 되요. 예수님 강조하십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무엇에 쓰리요" 소금은 절대로 제 맛을 잃어버리지 않아요. 그것이 소금이요.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에베소서에 보면은 하나님과 우리 사람을 화목케 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오셨다 그랬어요. 그는 분명 십자가에 죽어서 형체가 없어요. 하나님의 아들의 형체, 거룩한 위상, 다 없어진 거 같으나 그러나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이여 이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그는 그대로의 본질을 그대로 지켜갑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습니다. 그의 형체는 없어졌으나 그의 정신, 그의 믿음은 그대로 살아서 자기를 죽이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습디까. 이것이 소금이에요. "밀알 한 알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죽어요 분명히 죽어요 형체가 없어져요. 그러나 그 생명력은 살아서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것이 소금입니다. 저는 20세기가 낳은 인물 중에 가장 훌륭한 어른은 넬슨 만델라를 들고 싶습니다. 그는 인종차별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남아공화국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습니까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습니까 여러분 27년 동안 감옥에 있었어요. 그 고통스러운 곳에서. 요새 뭐 몇 달 갔다오고 훈장 단 것처럼 내세우는 사람이 있는데 이거 아니에요. 정의를 위하여, 오직 하나되기를 위하여, 그는 백인과 흑인의 인종차별 없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싸우다가 무려 27년 동안 감옥에 있었어요. 그리고 그는 감옥에서 나와서 이제 온 민족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되는데 한 번 보세요. 대통령 되고 나서 바로 자기를 괴롭히던 그 많은 백인들 그 모든 정적들을 다 사면해 버렸어요. 다 용서해 버렸어요. 그는 누구도 저주하지 않았어요. 누구도 비판하지 않았어요. 자기를 괴롭힌 자를 절대로 원수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대통령 기간의 직무를 마치고 그가 그 특유한 웃음을 웃으면서 고향으로 가는 모습을 보세요. 아무 미련 없이 고향으로 갔어요. 대통령은 그만 둔 다음에 잘 살아야 되는 거요. 그게 더 중요한 거예요. 대통령직을 할 때보다도 그만 둔 다음에 얼마나 존경을 받느냐 그것이 문제예요. 백담사로 가도 안 되고, 감옥으로 가도 안 되고, 청문회에 나가도 안 되는 거요. 이걸 아셔야 되요. 대통령은 그만 둔 다음에 더 높은 존경을 받고 조용하게 행복하게 살아야 그게 민주주의라는 거예요.
그런데 왜 우리는 이 모양입니까 깊이 생각하세요. 그분은 욕심이 없었어요 전혀 욕심이 없었어요. 그는 정말로 나라를 사랑했고 민족을 사랑했어요. 의를 사랑했을 뿐이요. 그리고 자기 희생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나를 완전히 희생해야 되요. 녹아 형체가 없어져야 비로소 화해의 역사는 이루어지는 거예요. 자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신비로운 말씀이요. 신비로운 말씀이요. "소금처럼 녹아 없어져라.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본질은 그대로 지켜가라." 이 신비로운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화목하게 하시고 하나되게 하시는 역사를 이루어 가고 계시는 것이올시다.
그런데 하찮은 일로 인해서 조금씩조금씩 문제가 벌어지기 시작하고 마지막에 싸우기 시작을 하는데요 다 죽어버리고 오직 두 사람 남는 그런 얘기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왜 하나가 되지 못했을까 하나 돼야 된다는 거 알고 있어요. 하나되기로 합의하고 결심했어요. 결국은 하나되지 못했어요. 참으로 중요한 것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불의와 거짓과 악, 죄악을 중심해서는 절대로 하나될 수가 없다는 것. 불의를 중심한 그러한 하나됨의 역사는 실현될 수 없다, 그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됨을 외칩니다. 화합해야겠고, 화목해야겠고, 총화되고, 단결하고……. 특별히 독재자마다 이렇게 외칩니다. 그러나 하나됨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 간단합니다.
첫째는 진실이 없기 때문입니다. 거짓에는 하나됨이 없습니다. 정의와 진리를 떠나서는 하나됨이 없습니다. 야합과 화합은 다릅니다. 야합은 내 이익을 위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야합이요, 화합은 내 이익을 포기하고 희생하면서 하나를 이루는 것이 화합입니다. "나를 중심해서 모여라!" 아무리 외쳐봐야 그것으론 하나가 되지 않습니다. 진리를, 정의를, 의를 중심할 때만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1934년, 생각하면 아득한 옛날 얘기입니다. 그 때 벌써 인도의 간디는 일곱가지 망국론을 마련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나라가 망한다고.
첫째 원칙 없는 정치, 도덕 없는 상업, 노동 없는 부, 인격 없는 교육, 인간성 없는 과학, 양심 없는 쾌락, 희생 없는 신앙. 그 옛날 이야기인데 어쩌면 오늘 우리의 현실을 보면서 말씀한 거 같아요. 확실히 그는 훌륭한 분이었어요. 예언적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가 안 되느냐고요 의를 저버렸기 때문이요. 또 하나는 목적이 달라서 하나가 안되는 겁니다. 목적만 같으면 좀 의견이 다르고 혹, 뜻이 다르고 방법이 달라도 종국에는 하나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방법은 하나인데 목적이 다르면 언젠가는 다 깨지고 맙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중심하는 이기심, 이것이 있는 한, 절대로 하나될 수 없는 것이에요. 또 하나는 지혜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뚜렷한 지도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훌륭한 화해자가 없기 때문이요. 우리가 괴로운 것은 아무리 보아도 쓸만한 인물이 없어요. 뚜렷한 지도자가 없어요. 그래서 하나가 안 되는 겁니다. 우리가 다 같이 신뢰하고 존경할만한 훌륭한 어른이 하나 있으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련만 저마다 잘났다고만 하지 보자 하니 시원치 않아요. 이래서 하나가 안 되는 것이에요. 피스메이커(Peace Maker)가 없기 때문이다 하는 얘기입니다. 오늘 본문 성경에 예수님 친히 말씀하십니다. "서로 화목하라" 이 화목하라고 하는 중요한 주제를 놓고 말씀하시면서 먼저 이 마가복음 9장을 자세히 살펴보면은 몇 가지로 암시해서 하나됨의 길을 말씀합니다. 29절에 보면 기도 없는 제자들의 무능력을 지적합니다. 기도 없이 용기 내 봐도 소용없고, 기도 없이 큰 소리 쳐봐도 아무 소용없더라. 결국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야 능력이 있고 화해할 수 있다. 또 하나는 경쟁심이나 으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나 승부욕을 버리라. 그것이 있는 한, 시기 질투가 있는 곳에 하나됨은 없다 하는 것이고요. 또 나만 옳다고 하는 편견, 그런 고집, 아집 같은 거 이런 마음이 있어서는 하나될 수가 없다.
또 하나는 본의 아니게 남을 실족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은 나는 나대로서 살아갈 수 있지만은 다른 사람에게 덕을 끼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럴 때는 배려의식이 필요합니다. 나로서는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지 말아야 되죠. 남을 실족시키는 실망시키는 일들이 많아. 내 돈 내가 쓰는데 누가 뭐라나 그러나 이것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안 써야지요. 내가 내 맘대로 가는데 누가 말릴거요 그러나 이것이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하고 실망케 하고 낙심케 한다면 거둬버려, 그런 얘기입니다. 그래서 눈이 범죄케 하거든 빼 버리라, 손이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발이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차라리 절름발이가 돼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온 몸이 성해서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낫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누누이 깊은 면에서 하나됨의 원리를 말씀하고 결론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 말씀하십니다. 소금은 3대 기능을 가졌습니다. 아시는 대로 먼저는 맛을 내는 겁니다. 우스운 얘기지만 어떤 분이 "소금은 몸에 나쁘다. 당신 혈압도 높으니까 먹지마라." 그래 소금을 깨끗이 안 먹으려고 했다고 그래요. 좌우간 설렁탕도 소금을 안 치고 먹었다니까 대단한 사람이에요. 그거 무슨 맛으로 먹었겠어요. 어쨌든 그렇게 했대요. 그렇게 했는데 또 다른 어떤 교수님이 말씀하기를, 아니라고 산 사람은 소금을 먹어야 하는 거라고 소금이 좋다는 얘기를 열심히 말씀하니까 아 그걸 듣고 '옳다', 그 다음에 소금을 쳐서 먹었더니 이렇게 맛있을 수가 없는 거예요. 여러분 소금은 맛을 냅니다. 소금 없는 그것 먹을 수 없지요, 맛있게 먹을 수가 없어요. 요새는 음식을 대접할 때 보면은 쉽게 그저 우리 한다는 말이 두 가지가 있어요. "많이 잡수세요" 그건 욕입니다. 많이 먹어, 내가 굶고 사나. 많이 먹으라면 빨리 죽으라는 거나 마찬가지요. 더구나 노인에게 많이 잡수라는 것은 빨리 가시라는 거요. 그거 좋지 않은 일이고요. 그래서 조금 더 유식하게 말한다고 "맛있게 잡수세요" 또 고상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즐거운 시간이 되십시오" 거 괜찮은 얘기예요. 그래 옛날 어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간이 맞습니까" 이 젊은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모르누만. 옛날 어른들은 식사를 대접하면서 "간이 맞습니까" 그랬어요. 요 간이 맞아야 맛있으니까. "우리 집 음식이 간이 맞습니까" 그래요. 그만큼 간은 중요한 거예요. 소금 맛이 결국은 모든 음식의 맛을 만들어 내는 거지요. 또 하나는 여러분 아시는 대로 방부제지요. 뭐 지금은 냉동하는 방법이 있지만은 또 다른 여러 방법도 있어요. 하지만 옛날에는 방부제란 오로지 소금이요. 그래서 절여서……. 그래서 우리가 짠 걸 많이 먹게 된 거 아닙니까. 절인 음식. 어쨌든 썩지 않게 하려면 소금을 많이 쳐서 절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방부제 역할을 하는 거지요. 또 하나 그것은 고르게 하는 것이에요. 이 소금을 넣으면 다 고르게 됩니다. 이게 바로 오늘 주시는 테마올시다. 여기서 뻣뻣한 것이 노골노골하게 되요. 여기서 숨이 죽어요. 그래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고르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구약성경에 보면은 제사에 소금이 쓰여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레위기 2장 13절에 보면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제물에 소금을 둘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베디드멜라, 언약의 소금, 아주 신비로운 의미가 여기에 있고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언약의 소금을 치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모든 제물은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제물 그대로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제물은 죽여야 됩니다. 산 양을 죽이고, 산 소를, 산 비둘기를 재단 앞에서 죽여서, 그것도 깨끗한 것이어야 되요 죽어 가는 것은 안 되요, 깨끗하게 펄펄 살아 있는 짐승을 바로 그 자리에서 죽여서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것이 제사 의식입니다. 이제 이것이 동물이 아니고 채소라 그 말이요. 그 채소를 드리는 제사를 소제라고 합니다. 채소를 가지고 와서 드리려고 할 때에 그것은 소금을 쳐서 뻣뻣한 채소를 부드럽게 만들어 가지고 그리고 드리라 이겁니다. 그러한 말씀이올시다. 그러니까 '숨을 죽인다' 마치 양을 죽이는 거 같은 그런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뻣뻣한 사람 죽여야 되요. 그걸 알아야 되요. 목이 곧은 사람 목을 굽혀야 됩니다. 어깨에 힘 주는 사람, 힘을 빼야 됩니다. 눈 높이가 높은 사람, 낮추어야 됩니다. 잘났다는 사람, 이제자기가 가장 못난 사람인 것으로 생각을 돌려야 합니다. 교만한 사람 겸손해져야 됩니다. 여러분 이것이 소금을 치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못하면 하나님이 하게 하십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당신 보시기에 합당한 자로 만듭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 여지없이 낮추어 버립니다. 잘났다는 사람, 잘났다는 생각을 깨끗이 포기할 때까지 하나님은 진노의 고삐를 늦추지 않습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 앞에 나올 때 이런 성도의 교제 속에 완전히 깨끗한 겸손이 있어야 됩니다. 완전히 나로서는 죽어가지고 아주 절인 배추처럼 아주 부드럽게 되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쳐집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바른 예배를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오늘도 역사하는 것을 역력히 볼 수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아직도 덜 죽은 사람이 있어요. 숨이 좀 덜 죽었어. 그래서 은혜가 없어요. 그래서 은혜 받지도 못해요. 그래서 모든 성도의 교제 속에도 기쁨도 없고 사랑도 없어요. 자 하나님의 하시는 역사를 보세요. "소금을 두라!" 유대사람의 격언에는 "소금이 없으면 세상은 살아갈 수 없다" 그만큼 저들은 소금을 소중히 여깁니다. 양을 키우지만은 양에게 소금을 먹이지 아니하면 양이 기운을 차리지 못합니다. 꼭 소금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 우리가 월급 받을 때 샐러리(Salary)라고 그러죠. 그게 본래 소금이라는 뜻이요. 옛날엔 이렇게 임금을 소금으로 줄 때가 있었다 그런 얘기입니다. 그런가 하면 라틴 사람들의 격언에는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것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태양이고 하나는 소금이다" 그런 문언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그만큼 소금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에 주시는 귀한 말씀의 뜻을 생각합니다. "소금! 소금으로 고르게 하라" 소금은 그 기능을 다 하기 위해서 두 가지로 역사합니다. 하나는 녹아집니다. 녹지 않는 소금은 소용없습니다. 녹아져야 되요. 형체가 없어집니다. 깨끗이 녹아집니다. 그래야만 소금이 소금될 수 있습니다. 자기 역할을 할 수가 있어요. 녹지 않는 소금은 소금이 아닙니다. 형체가 없어지지 아니하면 소금 구실을 못합니다. 동시에 소금은 다 녹아 없어지면서도 제 맛은 항상 지켜갑니다. 본질을 잃지 않습니다. 형체는 없어졌으나 본질은 살아있습니다. 이것이 소금의 특성이에요. 그리고 다른 물체에 영향을 줄지언정 자기는 영향받지를 않습니다. 여러분 소금 썩은 거 봤습니까 썩어지는 물체를 썩지 않게 할 수는 있어도 썩어지는 물체 때문에 자기가 썩는 일은 없어요. 자기 맛이 변하질 않아요.
그런데 요새 맛 간 교인들이 많아요. 아무리 봐도 예수 냄새가 나질 않아요. 맛이 갔어. 여기에 문제가 있는 거요. 제가 아는 이런 공무원 고위직에 있는 분이 계세요. 언제 한 번 점심을 하면서 고충을 얘기합니다. "자 위에도 어른이 있고 밑에도 부하들이 있고……. 참 이 중간 위치에서 참 곤란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으로 참 곤란합니다. 교회 나가는 것도 그렇지만은 예수 믿는 사람이기에 안 갈 때 가야되고 가지 말아야 될 곳도 있고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는데 해야되고……. 참 이거 공무원으로 예수 믿기 힘듭니다" 그러더라고요. 제가 그 얘기에 이렇게 말 한 일이 있습니다. "내 말을 잘 들으세요. 하위직은 좀 고달프긴 하지만은 명은 길어. 오래 있을 수 있지만 당신 정도 되면 이게 고위직이라는게 오래 못 가. 당신 생각에 얼마간이나 이 자리에 있을 거 같으냐고, 그거 뭐 한 번 북풍남풍 불면 추풍낙엽이죠 뭐. 어느 때 어디 연루 되가지고 떨어져 나갈는지 모르지요. 어차피 오래 못 있지요 잘 해야 1년이지."그랬더니 그렇다고 그래요. "
그렇다면 내일이라도 고만 둘 마음 가지고 사표를 제출하지는 말아도 사표 써 놓고 그리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알았나 그리고 떳떳하게 고만 두라고 고만 둔 다음에 잘했다 싶게 하라고, 이 자리에 붙어 있으려고 쓸데없는 얘기하지도 말고 하고 싶지 않은 일 하지도 말고 비겁하게 살지 말어. 알았어요"했더니 "알았습니다" 하더라고요. 그 다음에 저희 교회 소망지 딱 같다 책상에 놓고 오는 사람마다 하나씩 주는 거요, 예수 믿으라고. 그 자리에 앉아 가지고 만나는 사람마다 전도하고 그러세요 했더니 소신껏 일하는 분이라고 또 진급했어요.
여러분 제발 시시하게 살지 맙시다. 그 자리 지키느라고 그 양심을 거역하며 그러지 맙시다. 좀 떳떳하게 살 수 없겠어요. 소금은 녹아져요. 분명히 녹아 없어지는 형체는 없는데 본질은 그대로 살아 있는 거예요. 어디가나 짠맛은 그대로 있어야 하는 것이에요. 이것이 변질되면 안 되요. 예수님 강조하십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무엇에 쓰리요" 소금은 절대로 제 맛을 잃어버리지 않아요. 그것이 소금이요.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에베소서에 보면은 하나님과 우리 사람을 화목케 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오셨다 그랬어요. 그는 분명 십자가에 죽어서 형체가 없어요. 하나님의 아들의 형체, 거룩한 위상, 다 없어진 거 같으나 그러나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이여 이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그는 그대로의 본질을 그대로 지켜갑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습니다. 그의 형체는 없어졌으나 그의 정신, 그의 믿음은 그대로 살아서 자기를 죽이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습디까. 이것이 소금이에요. "밀알 한 알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죽어요 분명히 죽어요 형체가 없어져요. 그러나 그 생명력은 살아서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것이 소금입니다. 저는 20세기가 낳은 인물 중에 가장 훌륭한 어른은 넬슨 만델라를 들고 싶습니다. 그는 인종차별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남아공화국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습니까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습니까 여러분 27년 동안 감옥에 있었어요. 그 고통스러운 곳에서. 요새 뭐 몇 달 갔다오고 훈장 단 것처럼 내세우는 사람이 있는데 이거 아니에요. 정의를 위하여, 오직 하나되기를 위하여, 그는 백인과 흑인의 인종차별 없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싸우다가 무려 27년 동안 감옥에 있었어요. 그리고 그는 감옥에서 나와서 이제 온 민족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되는데 한 번 보세요. 대통령 되고 나서 바로 자기를 괴롭히던 그 많은 백인들 그 모든 정적들을 다 사면해 버렸어요. 다 용서해 버렸어요. 그는 누구도 저주하지 않았어요. 누구도 비판하지 않았어요. 자기를 괴롭힌 자를 절대로 원수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대통령 기간의 직무를 마치고 그가 그 특유한 웃음을 웃으면서 고향으로 가는 모습을 보세요. 아무 미련 없이 고향으로 갔어요. 대통령은 그만 둔 다음에 잘 살아야 되는 거요. 그게 더 중요한 거예요. 대통령직을 할 때보다도 그만 둔 다음에 얼마나 존경을 받느냐 그것이 문제예요. 백담사로 가도 안 되고, 감옥으로 가도 안 되고, 청문회에 나가도 안 되는 거요. 이걸 아셔야 되요. 대통령은 그만 둔 다음에 더 높은 존경을 받고 조용하게 행복하게 살아야 그게 민주주의라는 거예요.
그런데 왜 우리는 이 모양입니까 깊이 생각하세요. 그분은 욕심이 없었어요 전혀 욕심이 없었어요. 그는 정말로 나라를 사랑했고 민족을 사랑했어요. 의를 사랑했을 뿐이요. 그리고 자기 희생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나를 완전히 희생해야 되요. 녹아 형체가 없어져야 비로소 화해의 역사는 이루어지는 거예요. 자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신비로운 말씀이요. 신비로운 말씀이요. "소금처럼 녹아 없어져라.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본질은 그대로 지켜가라." 이 신비로운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화목하게 하시고 하나되게 하시는 역사를 이루어 가고 계시는 것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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