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사랑하라 (호3:1-5)
본문
미국에 작가 아서 고든 이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가 사는 이웃집에 젊은 내외가 살고 있는데 이웃하고 서로 오고가면서 그렇게 가까이 지내는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아서 고든의 집에 적이 큰 걱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웃에 사는 이 젊은 내외가 결혼 파국을 맞았기 때문입니다. 늘 싸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때때로 가구를 때려부수는 그런 요란한 소리도 들립니다. 그리고 이 부부들이 찾아와서 그저 남편은 아내를 흉보고 아내는 남편 흉을 봅니다. 이렇게 계속 불화한 가정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웃하고 사는 것이 참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남의 일이니 뭐라 할 수도 없고 또 뭐라고 가르치고 인도할 만한 그런, 그런 것도 되지 못합니다. 늘 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이 젊은 부부의 가정에 서광이 비칩니다. 하루아침에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그리고 다시는 싸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만날 때마다 반가운 인사를 주고받게 됩니다. 너무 신기하게 여겨서 물어본 겁니다. 이렇게 가정이 변화되게 된 특별한 비결이 있었느냐고 그렇게 물었더니 이 두 내외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사실은 너무 답답하고 괴로워서 저희들이 존경하는 나이 많은 어느 내과의사를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처방은 있는데 이것을 행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고, 행하기만 하면 도움이 될 텐데…… 하면서 가르쳐 준 것이 여덟 단어의 말입니다. 그 여덟 단어라는게 뭐냐면 "소 아이 러브 힘, 도우 아이 러브 힘(SoI love him, thoughI love him.)", '그래서 사랑하고 그래도 사랑하고' 그겁니다. 이 한 마디를 듣고 와서 그대로 입으로 외우면서 '그래서 사랑하고, 그래도 사랑하고' 이렇게 하는 가운데서 가정이 새로운 가정이 됐다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에 대한 정의입니다. 사랑의 개념입니다. 당신은 사랑을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생명보다도 소중한 이 사랑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이해, 그 개념, 그 정의가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가장 비참한 것은 사랑 아닌 것을 사랑으로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집착일 뿐입니다. 집착과 사랑은 다릅니다. 욕정과 사랑도 다릅니다. 독선과 사랑도 다릅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많은 사람을 괴롭힙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내가 괴로움을 당합니다.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절대로 눈물의 씨앗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자의 마음은 기쁩니다. 사랑을 받으면서 행복합니다. 그래야 사랑이지 어떤 경우든지 사랑에 슬픔이 따르고 사랑에 고통이 따르고 사랑이 그 누구를 괴롭히고 있다고 한다면 그건 절대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 변질되는 것처럼 불행한 일이 없습니다. 저는 늘 생각합니다 사랑이 중생해야 한다고. 사랑 그 뜻, 사랑의 의미 자체가 완전히 중생하기 전에는 내 생애에 아무 변화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지난번 여행 때, 제가 여행할 때는 좀 가벼운 책을 몇 권 사 가지고 다니면서 읽곤 합니다. 지난번 여행 때 전경린 씨가 쓴 '내 생에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 요새는 이렇게 제목이 길어야 좋은 책이래요. 그래서 이런 책을 하나 사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 내용 중에 보면 이래요. 아주 처녀가 순결파예요. 아주 깨끗하게 살고 깨끗하게 결혼을 해서 깨끗하게 일생을 살아 보겠다 하는 그런 순결적 이상을 지니고 있었는데 뜻대로 대학 졸업하자마자 연애가 잘 돼서 결혼을 했어요. 아주 아름다운 가정을 이뤄요 자기 딴에는.
그런데 어느날 남편이 실수를 합니다. 그는 용납할 수가 없어요.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네가 나를 사랑한다고 하며 어떻게 이런 실수가 있느냐 어떻게 딴 여자를 만날 수 있다는 거냐 어떻게 분해하는지요. 내 인생은 끝났다 그래가지고 2년 동안은 같이 살기는 사는데 완전히 짐승 취급을 합니다. 사람으로 보지를 않습니다. 자기 자신도 말이 없습니다.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바깥에 너무 답답해서 외출 좀 하다가 외간 남자 하나를 만납니다. 거기에 사랑에 화끈하게 빠집니다. 그러면서 그가 깜짝 놀랍니다. 내 속에도 이러한 마음이 있었더냐 어찌 내 마음속에도 저 남편에게 있었던 것 못지 않은 타락성이 내게 있었더냐 말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놀라는 그런 이야기로 시작이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왜 사랑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와 나와 꼭 같은 처지라고 하고 어쩌면 저 사람의 타락이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오히려 저 보다 내가 더 깊은 곳에 부족함과 죄악이 있다는 것을 시인하기 전에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랑일 수 없습니다. 고자세, 높은, 고고한 마음으로 그 누구를 불쌍히 여기는 거 같은 그 따위 사치스러운 사랑이 결코 사랑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참 사랑을 아는 것이 인생의 출발입니다. 사랑의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요한일서 4장 8절에서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느니라" 사랑을 알 때야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요. 하나님의 사랑을 알 때에야 사랑의 사람이 되요. 사랑의 사람이 될 때에야 인생이 시작이 되는 거예요. 깊고 오묘한 말씀이올시다. 오늘 본문 성경에 엄청난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 여인을 사랑하라" 호세아 선지에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십니다. "그 여인을 사랑하라" 그 여인이 누구입니까 고멜이라고 하는 여자인데 애당초 하나님께서 이 고멜을 하나님이 중매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소개해서 저 여자와 결혼하라고 그럽니다. 그 결혼할 당시에도 이 여자는 창녀였습니다. 길거리에 나도는 창녀인데 어쩌면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하고 결혼을 하랍니다.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그는 모든 어려움을 무릅쓰고 그 여자를 데려다가 씻겨서 거룩하게 만들어서 자기 사랑의 대상을 삼고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여자의 품행이 좋지를 않았어요 여전히. 그래서 그둘째아들을 낳은 다음에 이름을 '로암미', '내 백성이 아니다' 라고 이름을 지어요. 거기에 여러 가지 신학적 의미가 있습니다만은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아무래도 좀 수상했던 가봐요. 친자 확인을 좀 해 볼 필요가 있어요. 이게 아무래도 시원치 않지 그랬던 거 같아요. 이제 아들 딸 셋을 낳았어요. 이만하면 안정될만한데 기어이 오늘 성경 말씀대로 딴 남자의 연애를 받아 가출하고 맙니다. 이렇게 된 겁니다 그리고 이 남자 저 남자로 흘러 들어가서 맨 마지막에 이제 그는 더 갈 길이 없어요. 그만 노예로 팔려 갔습니다. 이 더러운 여자, 사람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이 여자를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여인을 사랑하라"고. 여러분 원수를 사랑하는 것 보다 더러운 사람 사랑하기가 더 어려운 것이올시다. 어떤 전도인이 하나님 앞에 헌신하고 가장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살겠습니다 맹세하고 빈민굴에서 전도를 합니다. 문둥병 환자들이 모인 마을에 가서 전도를 합니다. 그들과 함께 살며 전도를 합니다. 살다보니 문둥병 환자 마을에 웬 창녀가 하나 있어요. 이 사람은 창녀 생활을 하다가 병들었어요. 이제 더 살 길이 없어서 죽어 가는 것을 보고 이 전도인이 정성을 다해서 매일같이 방문하고 기도하고 음식도 가져다주고 몸을 씻겨 주기도하고 자리를 옮겨주기도 하고 여러 가지고 봉사했는데 이 창녀는 그 사랑을 받아주질 않습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것은 당신이 기쁘기 때문이요 나 같은 사람에게 봉사하는 것은 당신에게 즐거움이기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니냐고. 나는 어차피 더러운 사람이니까 도와주지 말라고 떠나라고 떠나라고 그럽니다. 그래도 계속 사랑하니까 마지막에는 한다는 소리가 나 같은 사람 열심히 사랑하면은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알량한 천당에 갈 모양인데 그렇지 않아도 천당 갈 테니까 그냥 가시고 나는 내버려두라고. 이렇게 비웃습니다. 그러나 사랑했습니다. 마지막엔 죽기 직전에까지 갔습니다.
이제 그 여자는 말합니다. "이제는 우리도 헤어져야 될 때가 됐소. 그러니 마지막으로 작별의 키스를 해주세요." 이 전도인은 이 창녀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전도하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거룩한 입술로 이 더러운 창녀의 입에 입을 맞춘 것입니다. 그 때에 이 여자의 마음이 환하게 열리고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여기서 구원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 사랑이 뭡니까 오늘 성경에선 말합니다. 이미 팔려가신 고로 값을 지불해야 데려올 수가 있어요. 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값을 지불하고야 데려올 수가 있어요. 그냥 사랑할 수 있는게 아니예요. 그래서 여기에 보니까 은 열다섯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을 가지고 가서 이건 노예의 값입니다, 여자 노예의 값입니다. 여자를 돈주고 사서 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사랑합니다. 여러분 사랑에는 자격이 있다 없다를 논해서는 안됩니다. 애당초 무자격한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조금이라도 난 사랑 받을 자격이 있어서 받는다고 한다면 대가성에 속합니다.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애당초 전혀 사랑 받을 자격이 없이 사랑 받는 그것이 진짜 사랑이요 내가 누구를 사랑할 때도 사랑할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 효과가 있는가 없는가 보답이 있는가 없는가 사랑할 만한 존재가 되나 못 되나 이런 것 생각하면 벌써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완전히 무자격한 가운데서 사랑을 받고 그리고 아무 미래나 가치나 자격을 보지 말고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어떤 교인 가정에 신방을 갔는데 그 여자아이가 많은 인형을 가지고 놉니다. 유달리 인형이 많은 것을 보고 "야 너 인형 좋아하냐" 그러니까 얘가 되돌려 묻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인형을 좋아하세요그럼 나도 좋아한다그럼 어느 인형을 제일 좋아하세요" 아 이거 골라낼 수가 없어요. 주저주저 하니까 이 어린애가 하는 말이 "나는요, 저 인형을 제일 좋아해요" 그 인형은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다 찢기고 상한 인형이에요. 목사님은 물었습니다. "너 왜 저 인형을 하필이면 제일 좋아하냐저 인형은 아무도 사랑해 주지 않으니까요" 목사님이 그 어린애를 끌어안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 같은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사랑의 이유는 이것뿐입니다 아무도 저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저를 사랑합니다. 이 사랑에는 의롭다함이 있고 거룩케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저스티피케이션(Justification)이 있고 생티피케이션(Sanctification)이 함께 하는 것이올시다. 거룩케 하는 그것이 사랑이요. 뿐만 아니라 오늘 성경 말씀에 더 기가 막힌, 가슴을 뜨겁게 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호세아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 창녀를 다시 불러다 놓고 그 다음에 하는 말 좀 들어보세요. "나와 함께 지내고 행음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좇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사랑은 행동입니다. 사랑은 감상이 아닙니다. 사랑은 함께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값을 지불하고 이 더러운 여자를 다시 사다가 앉혀놓고 "다시는 행음하지 말라 다른 남자를 좇지마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여러분 이 여자, 이 여자를 위해서 순결을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겁니까 그러나 호세아는 말합니다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깨끗하게 너를 사랑하리라 그런고로 너도 남을 좇지마라" 하고 말합니다. 사랑은 전체를 주는 겁니다. 자기 자신을 주는 겁니다. 돈 몇 푼 주고 돌아선다고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호 책임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엄청난 사랑입니다. 호세아서는 자세히 읽어 나가노라면 호세아의 가정에 있었던 이 개인적인 사건과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계속 오버랩하면서 기록해 나가는 걸 읽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고로 호세아서는 하나님의 계시요 계시적 의미가 있는 사건들입니다. 예컨대 이렇게 한번 설명해 볼 수 있습니다. 호세아가 하나님 앞에 불만이 좀 있었던 지도 몰라요. '애당초 하나님 중매하시려면 좀 깨끗한 여자를 만나게 하시지.' 그리고 이 어려운 여자 더러운 여자 그저 집을 나가 버릴 때 '에이고 잘 됐다 다시 장가가야지. 이제 좀 새롭게 시작해야겠다' 라고 후련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호세아 3장은 그렇질 않아요. "호세아야 저 여자를 사랑하라" 명령하십니다. 명령대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뭐라고 했겠습니까 "하나님 정말 사랑하기 힘듭니다. 이거야 장가 안 가는 게 났지. 이런 여자 이거 사랑하기……. 혼자 사는게 났지 이거 정말 힘듭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호세아야, 이 더러운 여자 사랑하기가 힘드냐 내가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 오늘 성경에도 말씀합니다.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 지라도, 다른 신을 섬기고 음행하고 더러워진 이스라엘 그래도 여호와가 저를 사랑한다고. 내가 이스라엘 사랑하기가 이렇게 어렵다." 좀 더 실존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호세아야, 네가 저 여자 사랑하기가 힘드냐 이 사람아, 내가 너 사랑하기가 그렇게 힘들다. 너 같은 더러운 거 사랑하기가 힘들다" 여러분, 이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받는 사랑이 자격이 있어서 받는 겁니까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겁니까 사랑 받을만한 존재가 되는 겁니까 사랑은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마치 창녀와 같이 더러워지고 더러워지고 또 더러워지고 사랑 받고 다시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이런 형편없는 존재예요. 구제불능한 존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고요. 여기서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받는 사랑 자체가 이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1968년 조용한 사건이지만은 위대한 일이 있었습니다. 세계 제 2차대전 당시에 나치 독일이 유대사람 600만을 죽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 학살에 원흉이었던 아이히만이라는 사람이 체포되어 가지고 재판을 받고 사형선고를 받았고 이제사형집행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바로 그 시점에서 유대사람 중에 꼴란즈라고 하는 사람은 아이히만을 석방해 달라고 대대적으로 데모를 했어요. 대대적으로 석방 운동을 했습니다.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그는 상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아이히만을 죽인다고 해서 죽은 유대사람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사형하지 않고 내버려두어도 인생은 다 죽듯이 저 사람도 곧 죽을 텐데 뭐 미리 죽일 거 없지 않느냐셋째는 하나님은 그의 영혼을 이미 심판 하셨으니 우리가 심판할 것 없지 않느냐넷째는 동생을 죽인 가인도 하나님은 용서하셨는데 우리가 누구를 정죄해서 그것이 옳단 말이냐고 마지막 다섯째가 너무나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사랑이 식어지는 세상에 이제부터라고 참 사랑을 심어 가야하지 않겠느냐고. 여러분 언제까지 보복을 할 겁니까 언제까지 보복에서 보복으로 원수갚는 것으로 점철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이제부터라도 그 누군가라도 원수를 사랑하고 다시 참 사랑을 심어가야 미래가 보일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아이히만을 석방하라고 그는 석방운동을 했습니다. 여러분 참 사랑을 알 때에 아무 두려움이 없습니다 참 사랑을 믿을 때에 그는 어떤 형편에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참 사랑을 행하게 될 때에 기쁨과 행복과 담력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참 사랑 바로 그 곳에 밝은 미래가 보이는 것이올시다.
그런데 이 아서 고든의 집에 적이 큰 걱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웃에 사는 이 젊은 내외가 결혼 파국을 맞았기 때문입니다. 늘 싸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때때로 가구를 때려부수는 그런 요란한 소리도 들립니다. 그리고 이 부부들이 찾아와서 그저 남편은 아내를 흉보고 아내는 남편 흉을 봅니다. 이렇게 계속 불화한 가정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웃하고 사는 것이 참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남의 일이니 뭐라 할 수도 없고 또 뭐라고 가르치고 인도할 만한 그런, 그런 것도 되지 못합니다. 늘 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이 젊은 부부의 가정에 서광이 비칩니다. 하루아침에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그리고 다시는 싸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만날 때마다 반가운 인사를 주고받게 됩니다. 너무 신기하게 여겨서 물어본 겁니다. 이렇게 가정이 변화되게 된 특별한 비결이 있었느냐고 그렇게 물었더니 이 두 내외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사실은 너무 답답하고 괴로워서 저희들이 존경하는 나이 많은 어느 내과의사를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처방은 있는데 이것을 행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고, 행하기만 하면 도움이 될 텐데…… 하면서 가르쳐 준 것이 여덟 단어의 말입니다. 그 여덟 단어라는게 뭐냐면 "소 아이 러브 힘, 도우 아이 러브 힘(SoI love him, thoughI love him.)", '그래서 사랑하고 그래도 사랑하고' 그겁니다. 이 한 마디를 듣고 와서 그대로 입으로 외우면서 '그래서 사랑하고, 그래도 사랑하고' 이렇게 하는 가운데서 가정이 새로운 가정이 됐다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에 대한 정의입니다. 사랑의 개념입니다. 당신은 사랑을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생명보다도 소중한 이 사랑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이해, 그 개념, 그 정의가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가장 비참한 것은 사랑 아닌 것을 사랑으로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집착일 뿐입니다. 집착과 사랑은 다릅니다. 욕정과 사랑도 다릅니다. 독선과 사랑도 다릅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많은 사람을 괴롭힙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내가 괴로움을 당합니다.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절대로 눈물의 씨앗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자의 마음은 기쁩니다. 사랑을 받으면서 행복합니다. 그래야 사랑이지 어떤 경우든지 사랑에 슬픔이 따르고 사랑에 고통이 따르고 사랑이 그 누구를 괴롭히고 있다고 한다면 그건 절대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 변질되는 것처럼 불행한 일이 없습니다. 저는 늘 생각합니다 사랑이 중생해야 한다고. 사랑 그 뜻, 사랑의 의미 자체가 완전히 중생하기 전에는 내 생애에 아무 변화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지난번 여행 때, 제가 여행할 때는 좀 가벼운 책을 몇 권 사 가지고 다니면서 읽곤 합니다. 지난번 여행 때 전경린 씨가 쓴 '내 생에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 요새는 이렇게 제목이 길어야 좋은 책이래요. 그래서 이런 책을 하나 사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 내용 중에 보면 이래요. 아주 처녀가 순결파예요. 아주 깨끗하게 살고 깨끗하게 결혼을 해서 깨끗하게 일생을 살아 보겠다 하는 그런 순결적 이상을 지니고 있었는데 뜻대로 대학 졸업하자마자 연애가 잘 돼서 결혼을 했어요. 아주 아름다운 가정을 이뤄요 자기 딴에는.
그런데 어느날 남편이 실수를 합니다. 그는 용납할 수가 없어요.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네가 나를 사랑한다고 하며 어떻게 이런 실수가 있느냐 어떻게 딴 여자를 만날 수 있다는 거냐 어떻게 분해하는지요. 내 인생은 끝났다 그래가지고 2년 동안은 같이 살기는 사는데 완전히 짐승 취급을 합니다. 사람으로 보지를 않습니다. 자기 자신도 말이 없습니다.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바깥에 너무 답답해서 외출 좀 하다가 외간 남자 하나를 만납니다. 거기에 사랑에 화끈하게 빠집니다. 그러면서 그가 깜짝 놀랍니다. 내 속에도 이러한 마음이 있었더냐 어찌 내 마음속에도 저 남편에게 있었던 것 못지 않은 타락성이 내게 있었더냐 말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놀라는 그런 이야기로 시작이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왜 사랑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와 나와 꼭 같은 처지라고 하고 어쩌면 저 사람의 타락이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오히려 저 보다 내가 더 깊은 곳에 부족함과 죄악이 있다는 것을 시인하기 전에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랑일 수 없습니다. 고자세, 높은, 고고한 마음으로 그 누구를 불쌍히 여기는 거 같은 그 따위 사치스러운 사랑이 결코 사랑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참 사랑을 아는 것이 인생의 출발입니다. 사랑의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요한일서 4장 8절에서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느니라" 사랑을 알 때야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요. 하나님의 사랑을 알 때에야 사랑의 사람이 되요. 사랑의 사람이 될 때에야 인생이 시작이 되는 거예요. 깊고 오묘한 말씀이올시다. 오늘 본문 성경에 엄청난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 여인을 사랑하라" 호세아 선지에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십니다. "그 여인을 사랑하라" 그 여인이 누구입니까 고멜이라고 하는 여자인데 애당초 하나님께서 이 고멜을 하나님이 중매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소개해서 저 여자와 결혼하라고 그럽니다. 그 결혼할 당시에도 이 여자는 창녀였습니다. 길거리에 나도는 창녀인데 어쩌면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하고 결혼을 하랍니다.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그는 모든 어려움을 무릅쓰고 그 여자를 데려다가 씻겨서 거룩하게 만들어서 자기 사랑의 대상을 삼고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여자의 품행이 좋지를 않았어요 여전히. 그래서 그둘째아들을 낳은 다음에 이름을 '로암미', '내 백성이 아니다' 라고 이름을 지어요. 거기에 여러 가지 신학적 의미가 있습니다만은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아무래도 좀 수상했던 가봐요. 친자 확인을 좀 해 볼 필요가 있어요. 이게 아무래도 시원치 않지 그랬던 거 같아요. 이제 아들 딸 셋을 낳았어요. 이만하면 안정될만한데 기어이 오늘 성경 말씀대로 딴 남자의 연애를 받아 가출하고 맙니다. 이렇게 된 겁니다 그리고 이 남자 저 남자로 흘러 들어가서 맨 마지막에 이제 그는 더 갈 길이 없어요. 그만 노예로 팔려 갔습니다. 이 더러운 여자, 사람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이 여자를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여인을 사랑하라"고. 여러분 원수를 사랑하는 것 보다 더러운 사람 사랑하기가 더 어려운 것이올시다. 어떤 전도인이 하나님 앞에 헌신하고 가장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살겠습니다 맹세하고 빈민굴에서 전도를 합니다. 문둥병 환자들이 모인 마을에 가서 전도를 합니다. 그들과 함께 살며 전도를 합니다. 살다보니 문둥병 환자 마을에 웬 창녀가 하나 있어요. 이 사람은 창녀 생활을 하다가 병들었어요. 이제 더 살 길이 없어서 죽어 가는 것을 보고 이 전도인이 정성을 다해서 매일같이 방문하고 기도하고 음식도 가져다주고 몸을 씻겨 주기도하고 자리를 옮겨주기도 하고 여러 가지고 봉사했는데 이 창녀는 그 사랑을 받아주질 않습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것은 당신이 기쁘기 때문이요 나 같은 사람에게 봉사하는 것은 당신에게 즐거움이기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니냐고. 나는 어차피 더러운 사람이니까 도와주지 말라고 떠나라고 떠나라고 그럽니다. 그래도 계속 사랑하니까 마지막에는 한다는 소리가 나 같은 사람 열심히 사랑하면은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알량한 천당에 갈 모양인데 그렇지 않아도 천당 갈 테니까 그냥 가시고 나는 내버려두라고. 이렇게 비웃습니다. 그러나 사랑했습니다. 마지막엔 죽기 직전에까지 갔습니다.
이제 그 여자는 말합니다. "이제는 우리도 헤어져야 될 때가 됐소. 그러니 마지막으로 작별의 키스를 해주세요." 이 전도인은 이 창녀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전도하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거룩한 입술로 이 더러운 창녀의 입에 입을 맞춘 것입니다. 그 때에 이 여자의 마음이 환하게 열리고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여기서 구원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 사랑이 뭡니까 오늘 성경에선 말합니다. 이미 팔려가신 고로 값을 지불해야 데려올 수가 있어요. 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값을 지불하고야 데려올 수가 있어요. 그냥 사랑할 수 있는게 아니예요. 그래서 여기에 보니까 은 열다섯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을 가지고 가서 이건 노예의 값입니다, 여자 노예의 값입니다. 여자를 돈주고 사서 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사랑합니다. 여러분 사랑에는 자격이 있다 없다를 논해서는 안됩니다. 애당초 무자격한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조금이라도 난 사랑 받을 자격이 있어서 받는다고 한다면 대가성에 속합니다.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애당초 전혀 사랑 받을 자격이 없이 사랑 받는 그것이 진짜 사랑이요 내가 누구를 사랑할 때도 사랑할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 효과가 있는가 없는가 보답이 있는가 없는가 사랑할 만한 존재가 되나 못 되나 이런 것 생각하면 벌써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완전히 무자격한 가운데서 사랑을 받고 그리고 아무 미래나 가치나 자격을 보지 말고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어떤 교인 가정에 신방을 갔는데 그 여자아이가 많은 인형을 가지고 놉니다. 유달리 인형이 많은 것을 보고 "야 너 인형 좋아하냐" 그러니까 얘가 되돌려 묻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인형을 좋아하세요그럼 나도 좋아한다그럼 어느 인형을 제일 좋아하세요" 아 이거 골라낼 수가 없어요. 주저주저 하니까 이 어린애가 하는 말이 "나는요, 저 인형을 제일 좋아해요" 그 인형은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다 찢기고 상한 인형이에요. 목사님은 물었습니다. "너 왜 저 인형을 하필이면 제일 좋아하냐저 인형은 아무도 사랑해 주지 않으니까요" 목사님이 그 어린애를 끌어안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 같은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사랑의 이유는 이것뿐입니다 아무도 저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저를 사랑합니다. 이 사랑에는 의롭다함이 있고 거룩케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저스티피케이션(Justification)이 있고 생티피케이션(Sanctification)이 함께 하는 것이올시다. 거룩케 하는 그것이 사랑이요. 뿐만 아니라 오늘 성경 말씀에 더 기가 막힌, 가슴을 뜨겁게 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호세아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 창녀를 다시 불러다 놓고 그 다음에 하는 말 좀 들어보세요. "나와 함께 지내고 행음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좇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사랑은 행동입니다. 사랑은 감상이 아닙니다. 사랑은 함께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값을 지불하고 이 더러운 여자를 다시 사다가 앉혀놓고 "다시는 행음하지 말라 다른 남자를 좇지마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여러분 이 여자, 이 여자를 위해서 순결을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겁니까 그러나 호세아는 말합니다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깨끗하게 너를 사랑하리라 그런고로 너도 남을 좇지마라" 하고 말합니다. 사랑은 전체를 주는 겁니다. 자기 자신을 주는 겁니다. 돈 몇 푼 주고 돌아선다고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호 책임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엄청난 사랑입니다. 호세아서는 자세히 읽어 나가노라면 호세아의 가정에 있었던 이 개인적인 사건과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계속 오버랩하면서 기록해 나가는 걸 읽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고로 호세아서는 하나님의 계시요 계시적 의미가 있는 사건들입니다. 예컨대 이렇게 한번 설명해 볼 수 있습니다. 호세아가 하나님 앞에 불만이 좀 있었던 지도 몰라요. '애당초 하나님 중매하시려면 좀 깨끗한 여자를 만나게 하시지.' 그리고 이 어려운 여자 더러운 여자 그저 집을 나가 버릴 때 '에이고 잘 됐다 다시 장가가야지. 이제 좀 새롭게 시작해야겠다' 라고 후련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호세아 3장은 그렇질 않아요. "호세아야 저 여자를 사랑하라" 명령하십니다. 명령대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뭐라고 했겠습니까 "하나님 정말 사랑하기 힘듭니다. 이거야 장가 안 가는 게 났지. 이런 여자 이거 사랑하기……. 혼자 사는게 났지 이거 정말 힘듭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호세아야, 이 더러운 여자 사랑하기가 힘드냐 내가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 오늘 성경에도 말씀합니다.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 지라도, 다른 신을 섬기고 음행하고 더러워진 이스라엘 그래도 여호와가 저를 사랑한다고. 내가 이스라엘 사랑하기가 이렇게 어렵다." 좀 더 실존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호세아야, 네가 저 여자 사랑하기가 힘드냐 이 사람아, 내가 너 사랑하기가 그렇게 힘들다. 너 같은 더러운 거 사랑하기가 힘들다" 여러분, 이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받는 사랑이 자격이 있어서 받는 겁니까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겁니까 사랑 받을만한 존재가 되는 겁니까 사랑은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마치 창녀와 같이 더러워지고 더러워지고 또 더러워지고 사랑 받고 다시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이런 형편없는 존재예요. 구제불능한 존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고요. 여기서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받는 사랑 자체가 이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1968년 조용한 사건이지만은 위대한 일이 있었습니다. 세계 제 2차대전 당시에 나치 독일이 유대사람 600만을 죽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 학살에 원흉이었던 아이히만이라는 사람이 체포되어 가지고 재판을 받고 사형선고를 받았고 이제사형집행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바로 그 시점에서 유대사람 중에 꼴란즈라고 하는 사람은 아이히만을 석방해 달라고 대대적으로 데모를 했어요. 대대적으로 석방 운동을 했습니다.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그는 상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아이히만을 죽인다고 해서 죽은 유대사람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사형하지 않고 내버려두어도 인생은 다 죽듯이 저 사람도 곧 죽을 텐데 뭐 미리 죽일 거 없지 않느냐셋째는 하나님은 그의 영혼을 이미 심판 하셨으니 우리가 심판할 것 없지 않느냐넷째는 동생을 죽인 가인도 하나님은 용서하셨는데 우리가 누구를 정죄해서 그것이 옳단 말이냐고 마지막 다섯째가 너무나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사랑이 식어지는 세상에 이제부터라고 참 사랑을 심어 가야하지 않겠느냐고. 여러분 언제까지 보복을 할 겁니까 언제까지 보복에서 보복으로 원수갚는 것으로 점철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이제부터라도 그 누군가라도 원수를 사랑하고 다시 참 사랑을 심어가야 미래가 보일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아이히만을 석방하라고 그는 석방운동을 했습니다. 여러분 참 사랑을 알 때에 아무 두려움이 없습니다 참 사랑을 믿을 때에 그는 어떤 형편에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참 사랑을 행하게 될 때에 기쁨과 행복과 담력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참 사랑 바로 그 곳에 밝은 미래가 보이는 것이올시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