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는 자의 기쁨 (요4:34-38)
본문
1910년 한일 합방이라고 하는 치욕적인 사건이 있은 뒤에 우리 한국에 많은 지성인들 뜻이 있는 분들이 해외로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북만주로 많이 갔고 심지어는 구라파로 혹은 북미로 각 나라로 흩어져서 이렇게 이민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얼마가 생전 듣도 보지 못한 남미로 이민을 가게 되었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보따리를 쌌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게 될 때 그들의 마음은 매우 무거웠습니다. 그들의 봇짐 속에는 배추, 무, 고추 이것들의 채소의 씨앗을 가지고 갔습니다. 우리는 어디를 가나 김치를 먹어야겠고 매운 것을 먹어야 했기 때문에 낯선 지방에서 어떤 다른 양식을 취하더라도 이것만은 꼭 가지고가야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가자마자 그들은 자기 집 뜨락에 배추, 고추, 무를 심었습니다. 아주 무성하게 잘 자랐고 그래서 이것을 뜯어서 다소간의 식량을 하며 고향생각을 달래게 됩니다. 꼭 같이 독일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그 시간에 있었답니다. 이 분들은 자기 집 뜨락 옆을 돌아다니면서 구덩이를 파고 거기에다가 호두 씨앗을 심는 겁니다. 그래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이렇게 말했다지 않습니까 "호두를 심어놓으면 20년 후에 호두가 열릴는지 안 열릴는지 알 수 없는 것인데 그걸 무엇하러 지금 심느냐"고. 그러나 결과는 어떻게 됐느냐 하면 채소를 심었던 사람들은 그저 그대로 그 모양으로 살았고 호두를 심었던 사람들은 지금 세계의 호두 생산의 70%가 바로 거기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결정적인 약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만사를 조급히 생각하는 겁니다. 좀 더 멀리 좀 더 깊이 그리고 심어야 하는 건데 우리는 오늘 심어서 내일 거둘 수 있는 것 여기에 흥미가 있고 10년 20년 먼 후에 될 일에 대해서는 우리는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거기에 약점이 있습니다. 조급하게 서두르는 것, 조급하게 출세하고 조급하게 부자 되고 이러다가 전부 내가 다치는 겁니다. 튼튼하게 다져가지를 못하고 불법으로 편법으로 비상조치로 그렇게만 연기해 나가다가 오늘과 같은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맞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둔다.
이 보다 더 확실한 진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보다 더 단순한 진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이 진리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 엄연한 진리를 부인하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거역하기도 합니다. 거둘 것을 생각한다면 심는 것 조심해야 됩니다. 거두는 날을 생각한다면 오늘 내가 무엇을 심어야 할 것인지도 충분히 알만 하건만 사람들은 이 진리를 떠나서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심고 거두는 이치 앞에 사람들은 이래서 실수를 합니다. 하나는 당장 먹는 것이 아니니까. 심어 놓는다는 것은 먼 훗날에 될 일이니까 말이죠. 그래서 당장 먹어버릴 일만 따라가는 것이에요. 또 하나는 심고 거둔다고 하는 것은 긴 시간이 걸려야 합니다. 몇 달, 일년, 어떤 때는 10년 20년 후에 거두게 됩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조급한 사람에게 쓰는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저 사람 가을 보리 심어 못 먹겠구만"그럽니다. 보리는 가을에 심습니다. 한 겨울이 지나서 봄에 다시 싹이 나면서 보리가 열립니다. 저 사람은 가을 보리 심어 먹을 사람이 못 된다, 이건 조급하다 그 소리요. 또 그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우물가에 가서 숭늉 내라고 한다." 그게 그렇게 빨리 되는 것입니까 기다리는데 우리의 약점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심는다는 것은 하나의 수고입니다. 수고가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야 거둔다는 겁니다. 거둘 생각만 하지 수고를 먼저 지불할 마음이 없어요. 이 사람은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는 사람입니다. 또 하나는 언제 거두게 될지 그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내가 심고 누가 거두게 될는지 그걸 모르겠어요. 이래서 믿음이 없고 이래서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심는 것은 선택입니다. 그러나 거두는 것은 심판입니다.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입니다. 콩을 심었으면 콩을 거둘 것이고 거둘 때 가서 콩 아닌 팥을 거두겠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심는 것은 자유입니다. 거둘 때는 불가부득이 심판으로 떨어지는 겁니다. 이화대학 부속병원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거기에 여전도사님으로 수고하던 분이 직접 제게 들려준 말씀입니다. 돈 많은 집 며느리가 아이를 낳으러 왔습니다. 보통은 일반 산실에서 낳는 것이지만 돈이 워낙 많아서 특실에서 아이를 낳게 되고 그리고 뭐 화환이 아주 즐비하게 들어왔고 굉장하게 이렇게 환영을 받으면서 정말 공주처럼 환영을 받으면서 아이를 낳았어요. 마침 아들을 낳았는데 문제는 이겁니다. 혈액 조사를 해보니까 그 아이가 그 집안에서 태어날 아이가 아니에요. 그 아버지가 지금 그 아버지가 아니란 말이에요. 이걸 알고 간호원들이 숙덕숙덕하고 의사들이 숙덕숙덕 하다가 마침내 이것을 미리 알리는 게 좋겠다고 그 어려운 일을 여전도사님에게 책임을 지웠어요. 들어가서 얘기하라고. 조용한 시간에 당신이 이렇게 아이를 낳고 이 집에서 환영을 받지 만은 사실은 저 아이는 이 집 아이가 아니요, 하고 선언을 하니까 처음에는 펄쩍 뛰었지만은 그래봐도 소용없다고 애가, 아이가 크면은 언젠가는 다 알게 될 텐데 그래서 미리 알라는 거라고. 그랬더니 울면서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하지만 어떻게 하긴 어떡해요 심은 대로 거둬야지…….
여러분 이걸 알아야 합니다. 심을 때는 제 마음대로 심었겠지 원하건 원치 않건 추수는 심판이요. 그대로 거두어야 했다 그 말이요. 본문에 나타난 말씀은 아주 깊은 뜻이 있는 말씀이올시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마리아 땅을 지나갑니다. 멸시하는 사마리아 땅을 지나가다가 수가성 가까이 우물가에 앉았을 때 불쌍한 여자 하나가 물 길러 나옵니다. 이 여자는 팔자가 기구합니다. 전에 남편 다섯이 있었는데 지금은 네 남편이 아니라고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정말로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전설대로는 남편이 죽고 그 다음에 또 개가했다가 또 다시 또 이혼 당하고 뭐……. 어쨌든 남편 다섯, 지금은 남의 남편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기 때문에 다른 여인들과 어울리질 못하고 아침저녁 서늘할 때 물 길러 나오질 못하고 홀로 이 뜨거운 햇볕에 물 길러 나온 이런 불쌍한 여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만나서 전도합니다. 예수께서 메시아 됨을 알고 그가 예배의 처소에 대해서 깨닫고 주님을 만나는 시간에 구원을 받습니다. 그 때에 그는 물동이를 놔두고 그렇게도 자기를 멸시하던 그 동네 사람들에게 뛰어 들어가서 전도합니다.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동네 사람들이 예수를 보기 위해서 무리를 지어서 우물가로 나옵니다. 그 나오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추수 때가 되었도다." 한 사람이 전도 받고 기쁨으로 나아가서 간증할 때 저 많은 사람이 와 몰려오는 것을 보면서 이야말로 추수 때가 되었도다! 예수님의 깊은 통찰력을 여기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는 누군가가 심었고 지금은 거둘 때다. 한 사람이 심고 많은 사람이 거둔다 하면서 추수의 기쁨, 추수자의 감사하는 마음을 여기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먼저 생각할 것은 내가 심고 내가 거둔다고 하는 이치입니다. 인생은 그 자체가 농사입니다. 한편 거두고 한편은 심습니다. 어느 때까지 심고 어느 때까지 거두는 게 아닙니다. 계속적으로 거두고 심고, 거두고 심고, 심고 거두는 것이 인생사입니다.
행복한 사람의 조건을 세 가지로 말합니다. 세 가지를 가져야 된다. 썸띵 투 두(Something to do), 할 일이 있어야 된다, 썸띵 투 호프(Something to hope), 소망이 있어야 된다, 썸띵 투 러브(Something to love), 사랑할 사람이 있어야 된다, 이것이 행복의 세 가지 조건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심은 대로 거두는 겁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해야 할 일이 없는 것은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할 수 있을 때 하지 못한 사람은 하고 싶을 때 할 수 없게 되는 것이에요. 오늘 할 수 없다, 할 일이 없다는 말은 지난날에 게을렀다는 뜻이에요. 게으름을 심었기에 오늘 할 일이 없는 거예요. 쓸모가 없으니까요. 또 지난날에 부정하게 살았고 불의하게 살았고 양심에 가책을 느끼며 살았고 죄 중에 살았기 때문에 그에게는 미래가 보이질 않습니다. 밝은 미래는 의로운 생활에서 바라볼 수 있는 거예요. 부정한 세월을 산 사람에게 미래가 보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소망이 없어요. 또한 사랑의 대상이 없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사람은 40이 되면은 주변환경에 책임을 지라. 여러분, 지금 주변 사람들이 다 나를 반갑게 대해줍니까 누구를 만나도 누구를 보아도 다 나에게 반갑게 좋게 대해주거든 내가 선하게 산 줄로 알고 아무리 봐도 나를 반갑게 대하는 사람이 없어. 온 세상에 나는 혼자다, 왕따 당하고 있단 말이예요. 그것은 내가 남을 멸시하고 살았다는 증거예요. 당신은 교만한 사람이기 때문이요 교만을 심었기에 친구가 없어요.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사랑 받을 수 없는 거예요. 그런고로 사랑의 대상이 있다는 것, 그것은 귀한 인생의 추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생각해야합니다. 과거에 심고 현재에 거두고 현재에 심고 또 미래에 거둡니다. 내가 심고 내가 거둡니다. 내 운명은 내 것입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성경 말씀에는 이 같은 엄한 율법의 말씀을 넘어서는 진리가 있습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은 율법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은 율법을 넘어서 은혜의 길을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한 사람이 심고 많은 사람이 거둔다 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려 기쁨으로 거둔다, 시편 126편 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의 나의 생활, 내 윤택한 생활, 이 만큼의 생활이 내가 심어서 된 일입니까 그건 교만입니다. 오히려 그 누군가가 심었고 내가 거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눈물을 흘리며 심었고 나는 그것을 거두는, 거두는 추수자의 기쁨을 내가 누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로만 보아도 과거에 우리 어른들이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나라 없이 고생했지요, 또 전쟁 때 고생했지요, 믿는 사람들이 많이 순교 당했습니다. 그 많은 고생을 하고 그 의롭게 살면서 그렇게 어려운 고생을 맞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대가로 이만큼의 복을 누립니다. 우리는 625라고 하는 전쟁은 참 뼈아픈 경험이었습니다 만은 알고 보면 역사가의 말대로 온 세계가 적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가 한국 전쟁이었습니다. 우리는 한국 전쟁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거기서 힘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이만큼의 번영과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심었습니다. 우리가 거두고 있는 겁니다. 간간이 이제는 나이가 좀 들고 보니까 후배 목사님들이 물어보기도 합니다. "목사님, 40년 동안 목회 하시는 중에 계속해서 늘 건강하게 지내셨는데 그 건강의 비결이 뭡니까"라고 묻습니다. 물론 나는 나름대로 대답합니다. 이것저것을 대답합니다 만은 대답하지 않는 비밀이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보통으로는 말하지 않습니다. 이 시간에 말합니다. 그것은 저를 위해서 기도하는 어머니입니다. 마흔 한 살에 저를 낳아서 저를 위해서 평생을 기도하시고 94세가 되도록 오로지 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가신 그 어머니입니다. 제가 남쪽으로 온 다음에도 예배당은 다 불타 없어졌는데 그 예배당 터에서 가마니때기를 쓰고 엎드려 밤을 새웁니다. 눈이 하얗게 옵니다. 아침에 눈 속에서 툭툭 털고 일어나는 것을 본 분들이 제게 말씀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기도한 어머니가 있어서 오늘 내가 있는 겁니다. 그가 심고 내가 거두는 겁니다.
여러분 이걸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을 은총적 세계관이라고 할 것입니다. 나의 나 됨은 내가 된 것이 아니고 내가 심은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나를 위해 수고하고 땀을 흘리고 희생하고 많은 순교자의 피가 있고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이만큼의 은혜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이 심고 많은 사람이 거둔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또 다시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은 더 깊은 말씀이 있습니다. 넉 달이 지나야 추수 때가 온다고 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그건 기다려야죠. 넉 달 후에 추수가 오겠죠. 그러나 영적으로 볼 때는 그런 물질적으로는 넉 달 후에 추수하겠지만 영적으로는 지금 추수할 때가 됐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로 밀려오는 것을 보면서 "추수 때가 되었도다. 희어져 추수 때가 되었도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 선지자들의 많은 피가 거기에 있고 그리고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것입니다. 이제 한 사람이 심고 많은 사람이 거두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심는 자의 기쁨, 그는 언제나 가을을 바라보며 심습니다. 내가 심고 내가 거둘 것을 생각하며 심습니다 만은 그것만은 아닙니다. 오늘 심고 언제 누구가 거두게 되던지 나는 심어야 합니다. 나이 80, 90이 되어서도 사과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그 누군가가 거둘 것이니까 말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심어야 하겠습니까 심으면서 거두는 자의 기쁨을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기뻐한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심는 오늘, 거두는 내일을 확실하게 바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의 설교 중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모라비아 교파 출신인 조지 스미스라고 하는 청년이 아주 신앙이 좋아서 자기는 아프리카에 가서 한 평생을 바치고 그 땅에서 죽으리라 생각을 하고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기 위한 모든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후원자를 얻어서 아프리카로 갔는데 몇 달 되지 않아서 정부로부터 추방을 당합니다. 그는 몇 달 동안에 딱 한 사람 전도했습니다. 한 사람밖에 전도를 못 했는데 추방을 당해서 그는 아프리카를 향하여 사랑하는 마음으로 늘 기도하고 기도하다가 몇 달 후에 죽었습니다. 조사해 보니까 몇 년 후에 조사해 보니 이 조지 스미스가 전도한 바로 그 사람이 거기서 전도인이 되어서 훌륭한 역할을 해서 정확하게 만삼천명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심어서 많은 사람이 거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내가 심지 않은 것을 공짜로 거두어들이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남은 시간을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심을 것입니까 내가 심어서 그 누군가가 거두게 될 테인데 지금 나는 무엇을 심고 있는 겁니까 갈라디아 6장에 보면 신령한 것을 심는 사람은 영생을 거두고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심는 자는 멸망을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지금 무엇을 심고 있습니까 의와 진실과 화평과 사랑, 복음을 심어서 우리만이 아니라 우리 후손도 그렇고 먼 훗날에 그 누군가가 다 거둘 수 있는 그러한 것을 심고 우리는 심으면서 또한 거두는 저 가을을 바라보며 심는 자가 거두는 자의 기쁨과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그러한 신앙적 미래를 살아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반드시 거두게 될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이치를 무시하지 맙시다. 인생은 추수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업수이 여기지도 말고 오늘 들어 나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처럼 생각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뿌리고 거두고 거두며 뿌립니다. 오늘도 우리가 심지 않는 것을 거두며 살고 다시 우리가 부지런히 심어서 먼 훗날 우리의 후손과 그리고 그 누군가가 거두는 축복을 누리게 될 수 있는 그러한 오늘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보다 더 확실한 진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보다 더 단순한 진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이 진리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 엄연한 진리를 부인하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거역하기도 합니다. 거둘 것을 생각한다면 심는 것 조심해야 됩니다. 거두는 날을 생각한다면 오늘 내가 무엇을 심어야 할 것인지도 충분히 알만 하건만 사람들은 이 진리를 떠나서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심고 거두는 이치 앞에 사람들은 이래서 실수를 합니다. 하나는 당장 먹는 것이 아니니까. 심어 놓는다는 것은 먼 훗날에 될 일이니까 말이죠. 그래서 당장 먹어버릴 일만 따라가는 것이에요. 또 하나는 심고 거둔다고 하는 것은 긴 시간이 걸려야 합니다. 몇 달, 일년, 어떤 때는 10년 20년 후에 거두게 됩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조급한 사람에게 쓰는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저 사람 가을 보리 심어 못 먹겠구만"그럽니다. 보리는 가을에 심습니다. 한 겨울이 지나서 봄에 다시 싹이 나면서 보리가 열립니다. 저 사람은 가을 보리 심어 먹을 사람이 못 된다, 이건 조급하다 그 소리요. 또 그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우물가에 가서 숭늉 내라고 한다." 그게 그렇게 빨리 되는 것입니까 기다리는데 우리의 약점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심는다는 것은 하나의 수고입니다. 수고가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야 거둔다는 겁니다. 거둘 생각만 하지 수고를 먼저 지불할 마음이 없어요. 이 사람은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는 사람입니다. 또 하나는 언제 거두게 될지 그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내가 심고 누가 거두게 될는지 그걸 모르겠어요. 이래서 믿음이 없고 이래서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심는 것은 선택입니다. 그러나 거두는 것은 심판입니다.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입니다. 콩을 심었으면 콩을 거둘 것이고 거둘 때 가서 콩 아닌 팥을 거두겠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심는 것은 자유입니다. 거둘 때는 불가부득이 심판으로 떨어지는 겁니다. 이화대학 부속병원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거기에 여전도사님으로 수고하던 분이 직접 제게 들려준 말씀입니다. 돈 많은 집 며느리가 아이를 낳으러 왔습니다. 보통은 일반 산실에서 낳는 것이지만 돈이 워낙 많아서 특실에서 아이를 낳게 되고 그리고 뭐 화환이 아주 즐비하게 들어왔고 굉장하게 이렇게 환영을 받으면서 정말 공주처럼 환영을 받으면서 아이를 낳았어요. 마침 아들을 낳았는데 문제는 이겁니다. 혈액 조사를 해보니까 그 아이가 그 집안에서 태어날 아이가 아니에요. 그 아버지가 지금 그 아버지가 아니란 말이에요. 이걸 알고 간호원들이 숙덕숙덕하고 의사들이 숙덕숙덕 하다가 마침내 이것을 미리 알리는 게 좋겠다고 그 어려운 일을 여전도사님에게 책임을 지웠어요. 들어가서 얘기하라고. 조용한 시간에 당신이 이렇게 아이를 낳고 이 집에서 환영을 받지 만은 사실은 저 아이는 이 집 아이가 아니요, 하고 선언을 하니까 처음에는 펄쩍 뛰었지만은 그래봐도 소용없다고 애가, 아이가 크면은 언젠가는 다 알게 될 텐데 그래서 미리 알라는 거라고. 그랬더니 울면서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하지만 어떻게 하긴 어떡해요 심은 대로 거둬야지…….
여러분 이걸 알아야 합니다. 심을 때는 제 마음대로 심었겠지 원하건 원치 않건 추수는 심판이요. 그대로 거두어야 했다 그 말이요. 본문에 나타난 말씀은 아주 깊은 뜻이 있는 말씀이올시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마리아 땅을 지나갑니다. 멸시하는 사마리아 땅을 지나가다가 수가성 가까이 우물가에 앉았을 때 불쌍한 여자 하나가 물 길러 나옵니다. 이 여자는 팔자가 기구합니다. 전에 남편 다섯이 있었는데 지금은 네 남편이 아니라고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정말로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전설대로는 남편이 죽고 그 다음에 또 개가했다가 또 다시 또 이혼 당하고 뭐……. 어쨌든 남편 다섯, 지금은 남의 남편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기 때문에 다른 여인들과 어울리질 못하고 아침저녁 서늘할 때 물 길러 나오질 못하고 홀로 이 뜨거운 햇볕에 물 길러 나온 이런 불쌍한 여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만나서 전도합니다. 예수께서 메시아 됨을 알고 그가 예배의 처소에 대해서 깨닫고 주님을 만나는 시간에 구원을 받습니다. 그 때에 그는 물동이를 놔두고 그렇게도 자기를 멸시하던 그 동네 사람들에게 뛰어 들어가서 전도합니다.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동네 사람들이 예수를 보기 위해서 무리를 지어서 우물가로 나옵니다. 그 나오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추수 때가 되었도다." 한 사람이 전도 받고 기쁨으로 나아가서 간증할 때 저 많은 사람이 와 몰려오는 것을 보면서 이야말로 추수 때가 되었도다! 예수님의 깊은 통찰력을 여기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는 누군가가 심었고 지금은 거둘 때다. 한 사람이 심고 많은 사람이 거둔다 하면서 추수의 기쁨, 추수자의 감사하는 마음을 여기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먼저 생각할 것은 내가 심고 내가 거둔다고 하는 이치입니다. 인생은 그 자체가 농사입니다. 한편 거두고 한편은 심습니다. 어느 때까지 심고 어느 때까지 거두는 게 아닙니다. 계속적으로 거두고 심고, 거두고 심고, 심고 거두는 것이 인생사입니다.
행복한 사람의 조건을 세 가지로 말합니다. 세 가지를 가져야 된다. 썸띵 투 두(Something to do), 할 일이 있어야 된다, 썸띵 투 호프(Something to hope), 소망이 있어야 된다, 썸띵 투 러브(Something to love), 사랑할 사람이 있어야 된다, 이것이 행복의 세 가지 조건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심은 대로 거두는 겁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해야 할 일이 없는 것은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할 수 있을 때 하지 못한 사람은 하고 싶을 때 할 수 없게 되는 것이에요. 오늘 할 수 없다, 할 일이 없다는 말은 지난날에 게을렀다는 뜻이에요. 게으름을 심었기에 오늘 할 일이 없는 거예요. 쓸모가 없으니까요. 또 지난날에 부정하게 살았고 불의하게 살았고 양심에 가책을 느끼며 살았고 죄 중에 살았기 때문에 그에게는 미래가 보이질 않습니다. 밝은 미래는 의로운 생활에서 바라볼 수 있는 거예요. 부정한 세월을 산 사람에게 미래가 보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소망이 없어요. 또한 사랑의 대상이 없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사람은 40이 되면은 주변환경에 책임을 지라. 여러분, 지금 주변 사람들이 다 나를 반갑게 대해줍니까 누구를 만나도 누구를 보아도 다 나에게 반갑게 좋게 대해주거든 내가 선하게 산 줄로 알고 아무리 봐도 나를 반갑게 대하는 사람이 없어. 온 세상에 나는 혼자다, 왕따 당하고 있단 말이예요. 그것은 내가 남을 멸시하고 살았다는 증거예요. 당신은 교만한 사람이기 때문이요 교만을 심었기에 친구가 없어요.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사랑 받을 수 없는 거예요. 그런고로 사랑의 대상이 있다는 것, 그것은 귀한 인생의 추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생각해야합니다. 과거에 심고 현재에 거두고 현재에 심고 또 미래에 거둡니다. 내가 심고 내가 거둡니다. 내 운명은 내 것입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성경 말씀에는 이 같은 엄한 율법의 말씀을 넘어서는 진리가 있습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은 율법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은 율법을 넘어서 은혜의 길을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한 사람이 심고 많은 사람이 거둔다 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려 기쁨으로 거둔다, 시편 126편 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의 나의 생활, 내 윤택한 생활, 이 만큼의 생활이 내가 심어서 된 일입니까 그건 교만입니다. 오히려 그 누군가가 심었고 내가 거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눈물을 흘리며 심었고 나는 그것을 거두는, 거두는 추수자의 기쁨을 내가 누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로만 보아도 과거에 우리 어른들이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나라 없이 고생했지요, 또 전쟁 때 고생했지요, 믿는 사람들이 많이 순교 당했습니다. 그 많은 고생을 하고 그 의롭게 살면서 그렇게 어려운 고생을 맞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대가로 이만큼의 복을 누립니다. 우리는 625라고 하는 전쟁은 참 뼈아픈 경험이었습니다 만은 알고 보면 역사가의 말대로 온 세계가 적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가 한국 전쟁이었습니다. 우리는 한국 전쟁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거기서 힘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이만큼의 번영과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심었습니다. 우리가 거두고 있는 겁니다. 간간이 이제는 나이가 좀 들고 보니까 후배 목사님들이 물어보기도 합니다. "목사님, 40년 동안 목회 하시는 중에 계속해서 늘 건강하게 지내셨는데 그 건강의 비결이 뭡니까"라고 묻습니다. 물론 나는 나름대로 대답합니다. 이것저것을 대답합니다 만은 대답하지 않는 비밀이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보통으로는 말하지 않습니다. 이 시간에 말합니다. 그것은 저를 위해서 기도하는 어머니입니다. 마흔 한 살에 저를 낳아서 저를 위해서 평생을 기도하시고 94세가 되도록 오로지 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가신 그 어머니입니다. 제가 남쪽으로 온 다음에도 예배당은 다 불타 없어졌는데 그 예배당 터에서 가마니때기를 쓰고 엎드려 밤을 새웁니다. 눈이 하얗게 옵니다. 아침에 눈 속에서 툭툭 털고 일어나는 것을 본 분들이 제게 말씀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기도한 어머니가 있어서 오늘 내가 있는 겁니다. 그가 심고 내가 거두는 겁니다.
여러분 이걸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을 은총적 세계관이라고 할 것입니다. 나의 나 됨은 내가 된 것이 아니고 내가 심은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나를 위해 수고하고 땀을 흘리고 희생하고 많은 순교자의 피가 있고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이만큼의 은혜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이 심고 많은 사람이 거둔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또 다시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은 더 깊은 말씀이 있습니다. 넉 달이 지나야 추수 때가 온다고 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그건 기다려야죠. 넉 달 후에 추수가 오겠죠. 그러나 영적으로 볼 때는 그런 물질적으로는 넉 달 후에 추수하겠지만 영적으로는 지금 추수할 때가 됐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로 밀려오는 것을 보면서 "추수 때가 되었도다. 희어져 추수 때가 되었도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 선지자들의 많은 피가 거기에 있고 그리고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것입니다. 이제 한 사람이 심고 많은 사람이 거두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심는 자의 기쁨, 그는 언제나 가을을 바라보며 심습니다. 내가 심고 내가 거둘 것을 생각하며 심습니다 만은 그것만은 아닙니다. 오늘 심고 언제 누구가 거두게 되던지 나는 심어야 합니다. 나이 80, 90이 되어서도 사과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그 누군가가 거둘 것이니까 말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심어야 하겠습니까 심으면서 거두는 자의 기쁨을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기뻐한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심는 오늘, 거두는 내일을 확실하게 바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의 설교 중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모라비아 교파 출신인 조지 스미스라고 하는 청년이 아주 신앙이 좋아서 자기는 아프리카에 가서 한 평생을 바치고 그 땅에서 죽으리라 생각을 하고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기 위한 모든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후원자를 얻어서 아프리카로 갔는데 몇 달 되지 않아서 정부로부터 추방을 당합니다. 그는 몇 달 동안에 딱 한 사람 전도했습니다. 한 사람밖에 전도를 못 했는데 추방을 당해서 그는 아프리카를 향하여 사랑하는 마음으로 늘 기도하고 기도하다가 몇 달 후에 죽었습니다. 조사해 보니까 몇 년 후에 조사해 보니 이 조지 스미스가 전도한 바로 그 사람이 거기서 전도인이 되어서 훌륭한 역할을 해서 정확하게 만삼천명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심어서 많은 사람이 거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내가 심지 않은 것을 공짜로 거두어들이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남은 시간을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심을 것입니까 내가 심어서 그 누군가가 거두게 될 테인데 지금 나는 무엇을 심고 있는 겁니까 갈라디아 6장에 보면 신령한 것을 심는 사람은 영생을 거두고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심는 자는 멸망을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지금 무엇을 심고 있습니까 의와 진실과 화평과 사랑, 복음을 심어서 우리만이 아니라 우리 후손도 그렇고 먼 훗날에 그 누군가가 다 거둘 수 있는 그러한 것을 심고 우리는 심으면서 또한 거두는 저 가을을 바라보며 심는 자가 거두는 자의 기쁨과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그러한 신앙적 미래를 살아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반드시 거두게 될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이치를 무시하지 맙시다. 인생은 추수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업수이 여기지도 말고 오늘 들어 나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처럼 생각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뿌리고 거두고 거두며 뿌립니다. 오늘도 우리가 심지 않는 것을 거두며 살고 다시 우리가 부지런히 심어서 먼 훗날 우리의 후손과 그리고 그 누군가가 거두는 축복을 누리게 될 수 있는 그러한 오늘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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