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서로 존경하라 (롬12:9-17)

본문

여러분이 잘 아시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께서 최근에 'The Virtues of Aging, 나이 먹는 것의 미덕'이라고 하는 자그마한 책을 썼습니다. 대통령으로부터 물러나서 멋진 삶을 즐기는 자기자신의 생의 지혜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자기 경험담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80년대, 선거에서 패배한 후에 실업자 신세가 되어서 조오지아주 플래인스 땅콩농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패배자로 돌아갔을 경우 그에게는 반갑지 않은 두 가지 큰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백만불이 넘는 빚입니다. 150년간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으며 대대로 터전으로 가꾸어 오던 기업입니다. 이 농장을 다 팔고 집을 다 팔아도 모자랄 만큼 많은 빚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또한가지는 어쩔 수 없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건입니다. 나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미 늙었습니다. 다시 생을 일으키기에는 농장을 다시 일으키기에는 너무나 나이가 많았습니다. 이 두 가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친구 세 사람과 같이 식당에서 조반식사를 했는데 아시는 대로 미국사람들은 이렇게 같이 식사를 하고도 돈을 따로따로 내거든요. 돈을 내면서 보니까 자기에게 주어진 계산서가 생각보다 돈이 좀 적어요. 그래서 종업원을 불러서 당신이 실수한 게 아니냐고 내게 준 계산서가 왜 이렇게 돈이 적으냐고 그렇게 물었어요. 그 옆에 있던 나이 많은 농부 한 사람이 빙그레 웃으면서 하는 말이 "대통령 양반, 계산서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오. 이 집은 오전 8시 전에 오는 노인들에게는 커피를 공짜로 준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빙그레 웃으며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조그마한 일부터 다시 생각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제 다 잃어버린 거 같애요. 몽땅 잃어버린 거 같은데 동리사람들이 나를 존경해 주고 있어요. 옛 친구들이 나를 존경해 주고 있어요. 온 세계가 그를 존경하고 있어요. 그것을 깨달으면서 흐뭇하게 그는 행복한 나날을 보냅니다.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면서 노인에게 주어지는 지혜, 행복의 요소들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저 오십이 넘었거든 한번 보세요. 조그마한 책인데 우리에게 주는 감동이 아주 큽니다. 한 농부로 돌아간 전 대통령. 여러분 부럽지 않습니까 다 잃은 것 같으나 모든 사람으로부터의 존경을 받는 바로 그러한 인격, 그가 바로 성공한 사람이란 말이요. 그가 행복한 사람이란 말입니다. 여러분 돈을 잃었다면은 부분을 잃은 것입니다. 건강을 잃었다면은 현재를 잃은 겁니다. 존경을 잃었다면 미래를 잃어버린 겁니다. 우리는 어지간히 잘 살아보겠다고 애를 썼습니다. 몸부림쳤습니다. 배우기도 했고, 훈련도 했고, 싸우기도 했고, 어지간히 못된 짓 많이 했습니다. 이제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어차피 다 내놓아야 됩니다. 다 물려주어야 합니다. 어차피 떠나야 됩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잃어서는 안됩니다. 존경입니다. 존경을 잃고 좋은 집에 살면 무엇합니까 존경을 잃고 이 세상을 살자면 얼마나 힘든 것입니까 얼마나 가슴아픈 일입니까 존경을 잃고 자녀를 대하고 가정을 대한다면 이 또한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니와 순페이라고 하는 중국사람이 쓴 '제왕학'이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여기서 지도자론을 말합니다. 상식적인 얘기입니다마는 큰 충격을 줍니다. 지도자 가운데는 형편없는 지도자, 지도자 같지 않은 지도자가 있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경멸을 받는 지도자가 있다. 두고두고 경멸을 받는 지도자. 두 번째 사람은 두려움의 대상인 지도자. 지금도 생각하면 몸서리가 치는, 무서운 지도자, 역사에 없었어야 될 사람 그런 지도자들이 있다. 세번째 사람은 존경받는 지도자. 언제나 사람을 생각할 때 그 인격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 가슴이 훈훈해 오는 그런 분, 그런 지도자가 있더라 하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자신은 지금 존경이라고 하는 문제 앞에서 얻었습니까, 잃었습니까 존경이란 인간의 질적 무게를 말하는 것이올시다. 그의 소유다, 지식이다, 명예다, 권력이다 하는 것은 양적이라 한다면 존경은 질적인 평가기준이올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지음 받은 인간, 존귀한 존재입니다. 고귀한 존재입니다. 마땅히 존경을 받고, 존경해야하는 그러한 존재입니다. 에리히 프롬이라고 하는 심리학자는 '사랑의 기술'이라고 하는 책에서 사랑의 속성을 다섯 가지로 말합니다. 관심, 이해 그리고 존경, 책임지는 것, 그리고 베푸는 것. 이것이 인간의 다섯 가지 기본적인 사랑의 속성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삶의 동기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어떤 관계 속에서 삽니까
첫째가 형벌에 쫓기는 동기 유형이 있습니다. 항상 두려워하며 삽니다. 무언가 무서워하며 삽니다. 사람 만나는 것이 무섭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하루종일 전화가 오는데 전화벨 소리가 '따르릉'하고 올 때, '아 반갑다. 거 누군지 몰라도 날 찾아준다니 반갑다' 그런 마음으로 수화기를 듭니까, 아니면 전화만 '따르릉'하면 덜컹 합니까 '또 무슨 일이 터졌나, 또 누가 나를 괴롭히는가, 또 누가 나를 못 살게 구는가' 전화소리만 들으면 덜컹하는 사람, 이거 문제입니다요. 피해망상에 살고, 우울증에 살고, 고독에 사는 이 사람, 이게 살아있는 겁니까 죽은 겁니까 인격적으로는 벌써 죽은 거예요 산 게 아닙니다 그거는요. 사람을 반가워할 줄 모른다는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입니까, 왜 이런 무서운 감옥에 살아야 되는 것입니까 제가 지난 주간에 아마존 깊은 숲속에 잠깐 들어갔습니다. 아주 동물들과 함께 삽니다. 37미터나 되는 높은 나무 꼭대기에다가 까치집처럼 방을 하나 꾸려 놓았는데 이름해서 '타잔스 하우스' 그랬어요. 제가 그 집에서 살았어요. 아 그저 뭐, 원숭이들이 그냥, 그냥 와그락 대고 서로 싸우고 그 사이에서 문만 열면 원숭이가 눈앞에 나타나 어깨에 앉고, 그저 붙들리고 그러는대요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 갔을 때마다 바나나를 가지고 다니면서 한쪽씩 이렇게 주게 되는데 좋다고 먹는데, 참 이상한 것은 줄 때 고맙게 받아먹으면 좋으련만 탁 잡아채더라고요. 왜 이놈들은 말이에요 내가 좋은 마음으로 주려고 하는데 왜 곱게 받지 못하고 갈고리로 채듯이 확 뺐어요. 꼭 그렇습니다. 그래 제가 이거 왜 이러냐고 내가 물었더니 "그것이 동물입니다." 그러더라고요.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주어도 좋게 받지를 못해요. 오늘도 보세요. 우리 사람답지 못한 사람은 좋은 마음으로 주면 좀 감사한 마음으로 받으면 좋겠는데 꼭 갈고리로 잡아당기듯이 말이예요 꼭 빼앗는 마음으로 말이에요. 그러면 주어 놓고도 꼭 강도 만나는 기분이에요. 이 사이에 존경이 없기 때문이에요. 왜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두려움, 쫓김, 불안과 공포의 이러한 관계에 전혀 존경이 없는 신뢰가 없는 그 관계 속에 사는 것. 또 하나는 항상 보상적 관계에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내게 오는 유익, 손익 계산이 빠릅니다. 그래서 악수를 해도 '이 분과 악수해서 내게 무슨 이득이 돌아올 것인가' 계산하고 악수를 합니다. 뭐 반갑다고 하는 거 같지만 그건 상술입니다.
이렇게 삽니다. 이제 또 앞에 이제 선거가 있으면 또 찾아오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어느 교회에 나가면은 표를 좀 더 얻을 수 있을까' 이런 마음으로 출입하는 이런 사람들, 또 어떤 때는 저를 만나자고 전화도 와요. 아 그것도 한 일년 전부터 만나자고 그래야지 선거 앞두고 만나자면 제가 만날 사람입니까 그 만나자는 말부터가 도대체가 이게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하는 짓인가 말이에요.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는 건가 여러분 교회를 나가도 존경하는 마음으로 나가는 것과 이 교회를 나가서 내게 무슨 이득이 돌아오겠는가 이것부터 생각하는 이러한 삶이라는 것은 피곤한 것입니다. 참으로 이익부터 먼저 챙기는 그러한 인격, 그러한 관계성이라는 것은 무척이나 사람을 고달프게 만듭니다. 기회주의적이고, 실리적이고, 자기 중심적이요. 자기 인격을, 소중한 존경을 좀먹어 나가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은 존경을 받지 못해요. 그런가하면 존경하는 사람 모든 사람을 존경합니다. 존경할 때 또 내가 존경을 받게 됩니다. 존경할 때에 내 마음에 평안이 있습니다. 신뢰가 있습니다. 자유함이 있습니다. 마음 슬프게 생각하는 것은 오늘 와서 '교육부재'라고 하는 말을 많이 듣게 됩니다. 교육이 부재가 아닙니다. 교육제도가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교육기구가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교육의 뿌리가 되는 존경이 없다는 겁니다. 존경 없이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저는 신문에서 이런 사실을 보고 너무 마음 아프게 생각합니다. 요새 중고등학생들 엉망이라 그래요. 방문해보고 깜짝 놀랐대요. 30%가 엎드려 잠자고 있는데도 선생님이 "이놈들아! 깨라."고 하는 말을 못 한 대요. 왜요 매질하지 못하니까요. 아 때릴 놈은 때려야지. 이거는 손대지 마라고 그래요. 30%가 엎드려 자는데 그걸 놓고 가르친다고 하니 선생님 존경하지 않는 부모, 선생을 존경할 줄 모르는 학생, 이러고 교육이 됩니까 존경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 가르치는 이 선생의 모습을 생각해보세요. 무슨 재미로 가르치겠어요. 적어도 교육은 돈 벌려고 하는 것 아닙니다. 재미가 있다면 존경받는 재미인데 이것마저 없는 교육, 돈 받고 그거 가르치러 가서 그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이 교육이 실종되어 가는 것을 마음 아프게 생각합니다. 뿌리는 바로 여기에 있어요. 존경이 없다는 거예요. 도대체 존경할 줄을 몰라요. 우리 부모님들이 선생을 존경하지 않는데 학생이 선생을 존경하겠습니까 존경이 없는데 무슨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까 존경은 존경하는 마음만큼 인간은 존경을 하는 마음만큼 성숙한다 합니다.
왜냐하면 자, 몸은 성장합니다. 인격은 성숙합니다. 내적 세계를 성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내가 존경하는 자가 있을 때 존경하고 우러러보는 순간 어느 사이에 나도 그에 가까이 가게 됩니다. 존경할 때에 내 인격이 점점 성숙해 올라갑니다마는 '존경하는 자가 없다'하는 순간에 벌써 내 성숙은 멎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존경하지 않는다 하는 사람은 벌써 인격이 파탄된 사람입니다. 그걸 알아야합니다. 자, 참된 행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마음. 우리 마음속에 존경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 그것이 행복입니다.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자신을 위해서 불행한 일입니다. 또한 가지, 존경하는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주변에 남편도 존경하고, 아내도 존경하고, 심지어는 자식도 존경하고, 부모님을 존경하고,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존경하며 산다는 그런 분이 눈에 보입니다. '아 내 주위에 존경할 어른들이 많다' 이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인데 '아무리 봐도 없다. 위를 보나 밑을 보나 다 죽일 놈뿐이다' 이건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건 참으로 자신이 불행한 사람이에요. 자신이 참 얼마나 병들었다는 걸 모르고 있는 거예요. 이게 참으로 병든 사람이지요. 또 존경하는 관계 속에 살아야 합니다. 남편을 존경하며 사는 것과 억지로 사는 것과 헤어지지 못해서 사는 것과 죽지 못해 사는 것. 어떻습니까 남편도 아내도 존경하고 나면 이렇게 편할 수가 없어요. 존경하면 잔소리가 없어져요. 물을 것도 없잖아요. '그럴만하기에 그렇겠지.' 얼마나 편합니까
그런데 이걸 빡빡 긁어요. 왜 존경이 없으니까요. 신뢰가 안 가니까. 얼마나 불행합니까, 누가 실수를 했습니까 여러분들 생각해요. 또 실수했구나, 또 터졌구나 내 그럴 줄 알았어. 이거 참 불행한 심사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요, 그런가하면 남의 실수를 볼 때 '그래. 나도 그럴 수밖에 없을 거야. 아니, 내가 그 처지라면은 나는 더 잘못했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 이 사람이 사람을 존경할 줄 아는 사람이에요. 어떤 경우를 봐도 나도 그럴 거라고. '아니 저 사람은 실수했지마는 나보다 더 훌륭한 데가 있다고, 내가 그 처지라면 나는 더 형편없었을 거라고 이렇게만 생각이 될 때 이 사람은 존경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에요. 행복한 사람이올시다. 이 겸손, 이 자세가 그의 인격을 높여 주는 것이에요. 존경할 자가 없다는 사람, 불행합니다. 존경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 참으로 불행한 것이올시다. 어떤 부인이 어지간히 어려운 가운데서도 남편을 잘 돌보고 또 남편을 잘 섬기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심방을 갔다가 제가 한번 물어보았어요. "그 남편이 지금도 그렇게 술을 많이 하십니까그렇죠. 뭐.그래 어떻게 그렇게 평안하게 오늘까지 살아왔습니까, 한평생." 그분 대답이 이래요. "성경에 있잖아요. 원수를 사랑하라" 생각해보세요. 남편을 원수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해요. 사랑은 사랑입니다마는 존경이 없는 사랑, 그것은 불행입니다. 피차 못할 짓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상대방에게 있는게 아니에요. 어디에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지요. 내 마음이 교만하기 때문이에요. 존경을 잃어버린 겁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가운데 바리새교인의 기도가 있습니다. 바리새교인은 의로운 사람입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를 바치고, 종교적으로 깨끗하게 정결하게 사는 사람이에요. 그러나 예수님이 그를 죄인이라고 정죄합니다. 왜 그는 사람을 멸시했어요. 세리는 분명히 세리요. 그러나 그는 성전에서 기도하면서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나는 저 사람과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예수님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외형적으로는 분명히 바리새인 교인이 의인입니다마는 존경이 없어요. 그건 살인도 아니요, 간음도 아니요, 도적질도 아닙니다. 사람을 멸시하는 죄가 있어요. 이 죄는 사함 받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을 존경하지 않는 것, 어느 사이에 존경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 이것이 내 성품 속에 있는 무서운 죄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사랑하라" 아가페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사랑을 세 단계로 잘 분석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필아델피아. 필아델피아라고 하는 말은 이것은 친구의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필로스톨게. 스톨게라고 하는 말은 혈연관계를 말합니다. 혈연관계로서의 사랑. 이것을 우애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래서 형제사랑, 그 다음에 우애, 그리고 티마알레소우스. 티마란 공경하는 것이에요. 어느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사랑이 아니에요. 형제처럼 친하게 여기는 것도 아니에요. 이제는 높이는 사랑이에요. 여러분 불쌍한 사람에게 떡 한 그릇 주고, 돈 얼마 주는 것. 우리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이것 가지고는 사랑이라고 볼 수가 없어요. 참 사람은 높이는 사랑이 있어야 되요. 하향식의 사랑이 아니라 높일 줄 아는 사랑, 사람을 높이 사랑하는 그런 사랑의 질을 배워야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날, 열두 제자를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갔답니다. 더운 날인데. 올라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손에 들 수 있을 정도로 큰 돌 하나씩을 들고 산을 올라가자" 말씀하셨습니다. 이 무슨 뜻인지 알 바가 아니죠. 베드로는 그저 존경하는 분의 말씀이니까 제일 큰돌을 들머지고 땀을 흘리며 올라가요. 다른 제자들도 돌 조그마한 것을 들고 올라가는데 가롯 유다는 들고 올라가다가 무거우니까 바꾸고, 또 바꾸고, 마지막에 자갈돌 같은 거 주머니에 넣고 어차피 가지고 가랬으니까 가지고는 갑니다. 다 올라간 다음에 아무 말씀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다같이 기도하자. 식사기도 하자. 지금 들고 온 돌 다같이 떡이 되기를 바라노라."그랬대요. 아 베드로는 큰 떡을 가졌는데 이 가롯 유다는 이렇게 된 겁니다. 존경하는 자의 말씀을 비판하지 마세요. 인격에 대해서 묻지 마세요. 존경이면 그만이오. 여기엔 질문이 없어요, 비판도 없어요. 그저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그런 일이 있으면 있는가보다. 존경에 변함이 없어요. 존경은 절대적인 것이요. 여기에 신뢰가 있고, 여기에 순종이 있고, 여기에 무한한 자유가 있는 것이요 평안이 있는 것이에요.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존경해야돼요.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존경하라. 서로 존경하라." 누구는 존경받고, 누구는 존경하고 그게 아니에요. 서로 존경하라. 그리고 먼저 존경하라. 효자가 효자를 낳는 겁니다. 내가 효도하지 않았는데 자식이 내게 효도할 것입니까 내가 존경하지 않았는데 내가 존경받을 것입니까 내 한평생 존경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높이며 살아보세요. 이제 모든 사람이 나를 존경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존경하라. 서로 존경하라. 그리고 먼저 존경하라. 여기에 참 평안의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360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