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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한 자의 복 (마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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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교회의 여집사님이 한 권의 책을 읽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주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 어떻게 강아지를 훈련시키나, 강아지 훈련시키는 방법에 대해서 쓴 책이었습니다. 아무리 포악한 개라도 이 방법으로 훈련을 시키면 아주 온순한 개가되고 잘 길들여진다하는 그런 비법을 상세하게 쓴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 속으로 섬광처럼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성급하고 고약한 성격의 남편, 이 남편을 이 책으로 길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책이 지정해 주는 대로 조금이라도 잘했을 때에 열심히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또 뭘 잘하면은 보상을 주었습니다. 상급을 주고 또 그리고 머리와 목을 부드럽게 만져주고 꾸준히 이렇게 인내로 그 훈련 과정대로 실시한 결과 아주 큰 성공을 거두어서 쾌재를 불렀습니다. 강아지 훈련시키는 방법이 이렇게 남편을 딴사람 만들 줄 몰랐습니다. 너무나도 효과적이었어요.
그런데 단 두 주일만에 이 꿈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장롱에 넣어둔 이 책을 남편이 발견한 겁니다. 그리고 그만 화가 나서 자기를 강아지 취급했다고 해서 전보다 더 포악한 못된 남편이 돼버렸답니다. 온유는 수단이 아닙니다. 여러분 진실과 온유만이 참된 결과를 낳는 것이올시다. 헬라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네단계로 사람들을 나누어서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어려서는 겸손하라. 어린 사람은 겸손을 배워야 한다. 또 혈기가 왕성한 젊은 때에는 온유하라. 그래서 온유를 잊지 말아야 한다. 장년이 되어서는 공정하라. 욕심이 지나치기 쉬워요. 그런고로 공정을 잊지 마라. 늙어서는 신중 하라. 잘못하면 주책뿐이니까. 이렇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성경에서는 예수님 친히 말씀하시기를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행복의 근본이요, 행복의 뿌리, 복의 뿌리가 온유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온유라는 말은 참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짐승도 잘 길들여지면 온유하다고 해요. 사람도 좋은 성품의 사람을 온유하다고 하고요, 심지어는 하나님께 까지도 하나님을 온유한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겸손한 하나님이라고는 안합니다. 하나님의 속성중의 하나가 온유함입니다. 그만큼 온유라는 말은 하나님께까지도 쓰여지는 그러한 소중한 덕목이요, 또 용어입니다.
이 온유란 말은 원래 프라우스라든가, 프라이아라는 이 헬라 말은, 헬라 사람들 헬라 철학자들이 말해주는 개념은 이렇습니다. 특별히 여러분이 잘 아는 아리스토텔레스같은 사람은 이 프라우스라고 하는 말, 온유라는 말은 곧 중용을 말하는 것이다. 극단을 피하는, 극단이 아닌, extreme이 아닌, 그런 중용의 도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런 말입니다. 온유는 결코 약해지는 게 아닙니다. 이것은 가장 강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것을 온유라 한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또는 온유라는 말의 의미는 자기를 스스로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셀프 컨트롤, 자기 자제력을 말하는 것이올시다. 자제능력. 다시 말해서 본능적인 강한 충동을 스스로 잘 다스릴 줄 알고 격동적 감정도 다스릴 줄 알고, 극단적인 정열 이것도 잘 제어할 줄 아는, 요새 말로 감정을 잘 다스리는, EQ, 높은 수준의 EQ를 말하는 것이올시다. 자메이카에 가서 선교하는 선교사가 그 나라 원주민들을 놓고 "온유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라고 가르치면서 "당신들의 말속에 온유라는 말을 무슨 뜻으로 해석합니까"하고 말했더니 한 사람이 대답하기를, "사나운 물음에 대하여 부드럽게 대답하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하더랍니다. 선교사가 여기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아주 격한 말로 네게 질문해 올 때 내가 아주 부드럽게 온유하게 대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온유다. 온유한 사람에게 온유, 그건 온유가 아닙니다. 격한, 과격한 사람 앞에서 부드러워질 수 있는 것, 그것이 온유다 라고 말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기본 성품이지만은 타락된 인간은 이것을 잃어 버렸습니다. 이제 이것은 긴 훈련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다듬어진 인격입니다. 이것은 훈련된 성품을 말하는 것입니다. 배우고 가르치고, 또 명상하고 그리고 많은 사건을 통해서 실패를 거듭하면서 다듬어지고 훈련되어서 제자훈련. Discipline, 제자훈련을 겪어서 이같은 성품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에요. 우리 가끔 우리는 이런 성품에 대해서 말할 때마다 그것은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거기에 중요한 과오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온유하게 태어난 사람도 좀 있고 좀더 과격한 성격의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본성이 아닙니다. 문제는 한평생 살면서 온유는 배우는 것이예요. 온유는 익혀 나가는 것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딱 중요한 예가 있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에 모든 사람보다 승하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의 온유함을 온 인류 중에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고 인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한 온유 입니다. 민수기 12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합시다. 모세가 본래 그랬습니까 모세는 바로의 궁전에서 공주의 아들로 성장합니다. 40년 동안, 왕자와 같이, 세자와 같이 영광을 누리며 많은 노예와 많은 문무백관 많은 정치가 속에서 높이 높이 귀하게 귀하게 그렇게 자란 사람이에요. 그러기에 거리에 나갔다가 자기 마음 안 드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대로 애굽사람을 때려죽이는 그런 사람이에요. 그렇게 격한 사람이에요. 이것이 모세의 본래의 모습이요. 그러나 그는 미디안 광야로 쫓겨납니다. 그리고 40년 동안 제사장 이드로, 장인의 양을 칩니다. 자기 기업도 아닌 처갓집 양을 40년 동안 아무 소망도 기대감도 없이 이렇게 몰고 다니면서 양을 먹이는 목자가 되어 버립니다. 이 40년 동안 그는 낮아지고 낮아지고 다듬어지고 다듬어져서 이렇게 온유한 사람이 된 거예요. 이제 보십시다. 바로 민수기 12장에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 역시 인간이기에 어떤 이유인지는 알 바가 아닙니다만은 그는 자기 집에 있는 사람, 노예입니다. 에티오피아 여자를 소실로 취하게 됩니다. 어디까지나 그건 모세의 실수입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가 이방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 막 비난이 빗발칩니다. 그 얼마나 많은 욕을 당해야 했겠습니까 특별히 그 누나되는 사람은 말할 수 없는 폭언을 합니다. 이 많은 핍박과 어려움을 겪을 때, 모세가 어떻게 겪었는지 자세히 성경에 기록이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랬겠지요 "죄인보고 죄인이라고 그러는데 할 말 없는 거지. 잘못한 것을 잘못 했다고 그러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할 것인가. 크게 욕하든 핍박을 하든 할 말이 없지." 어쨌든 잘 참고 잘 견디어 냈습니다. 온유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온유함을 인정을 하십니다. "온 천하에 모세같이 온유한 사람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그 온유를 인정하시고 하나님이 그 편을 들어주시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그를 삼으십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온유함! 이렇게 다듬어 지는 것이에요. 가꾸어지는 것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래저래 많은 정을 맞고 매를 맞고 온유, 온유, 겸손하게 되어 지는 겁니다.
잠언 16장 32절에는 말합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성을 빼앗는 자보다. 온유한 사람은 절대로 약자가 아닙니다 가장 강한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을 빼앗는 용사보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온유한 사람은 훨씬 더 강한 사람이다. 그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전 언젠가 젊었을 때 책을 읽으면서 서점에서, 낡은 서점에서 이런 책을 구했습니다. 저는 그 제목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가장 온유한 선지가 칼빈 그런 책입니다. 제가 알기는 칼빈은 성격이 급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가장 온유한 선지자 칼빈. 도대체 이게 이해가 안돼서 그 책을 샀습니다. 그리고 한번 자세히 읽어보았습니다. 이러한 이야기입니다. 칼빈은 완벽주의자요 강직한 사람입니다. 제네바에다 하나님의 나라와 같은 거룩한 성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완벽한 도시를 만들려고 그는 정치가들의 힘을 빌어서 그 나라를 바로 다스리려고 했습니다. 물론 술도 담배도 없고 창녀도 없는 깨끗한 도시, 거짓과 불의가 용납하지 않는 그런 사회를 만들려고,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을 처형해야 했고 심지어는 화형에 처한 일도 있습니다. 이렇게 강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제네바를 깨끗한 도시로 만들어 가고 있었는데, 이렇게 하다 보니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너무 지나치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의회에서 결의 해 가지고 칼빈을 추방해 버렸어요. 칼빈은 추방당해서 아무 말 없이 "스트라우스부르크"라고 하는 곳에 갑니다. 스트라우스부르크 라는 곳에 가서 자기 친구가 목회 하는데 가서 얹혀서 "둘이서 같이 목회 하세" 그리고 거기서 조용히 지내면서 그저 저술을 하면서 지내려고 했습니다. 3년이 지난 다음에 제네바 시는 엉망이 됐습니다. 다시 모든 사람이 타락하기 시작하는데 정신이 없어 의회는 많이 의논하다가, "칼빈 선생님을 다시 모셔 오십시다. 제네바로 모셔 오십시다!" 하고 결의를 했어요. 대표가 가서 칼빈 선생님께 "다시 가십시다"하고 말할 때 칼빈은 "그러지"하고 나섰습니다. 친구는 말렸습니다. 아, 정신나갔냐고 의회에서 결의하고 추방할 때는 언제고 이제 또 초대한다고 가느냐고.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 같으면 안 갑니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하나님의 부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필요하다면 가야지." 하고 다시 제네바로 돌아옵니다.
이것이 온유한 사람이에요. 그래 칼빈은 위대한 것이에요 능력의 사람이에요. 여러분 온유하다는 것은 자기의 사사로운 감정이나 인간적인 격정 같은 거 다 불식하고 오로지 주님의 뜻에 조용히 순종하는,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거기에 온유함에 있습니다. 또한 프라우테이스라고 하는 형용사로 표현하게 되면 이것은 휴밀리티를 말합니다. 이것은 배움의 자세입니다. 듣고싶어하는 마음 듣는 마음 배우는 마음을 가르치는 겁니다. 여러분 항상 자기의 연약함과 무지함을 알고 나는 꼭 배워야하고 더 필요하다 생각하는 겁니다. 이 수학하는 마음, 이 듣는 자세, 이것이 온유함입니다. 가만히 보면 자기 잘났다고 하는 사람 남의 말 안들어요. 자기 말만 하려고 그래요. 이건 불행한 일입니다. 자기 발전이 없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언제나 마음을 열고 듣는 자세를 가져요. 그게 온유함입니다. 오래 전에 제가 이화대학에 가서 배우자 선택에 대한 강의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남자는 이런 여자에게 이런 여자는 이런 남자가 좋을 거다. 결혼이란 이런 거다. 사랑이란 이렇게 해야한다. 그런 강의를 했습니다. 그런 특강을 했는데 학생 하나가 제게 질문을 합니다. 끝난 다음에 아주 맹랑한 아가씨예요. 뭐라고 질문하는고 하니 "목사님이 만일 지금 총각이라면 어떤 여자와 결혼하겠습니까" 그렇게 물어보는 거에요. 구체적으로 물어봐요. 그래서 제가 좋다고. 이건 한마디로 대답해야 될 시간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Receptivity가 제일 좋은 여자하고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래서 수용성이 좋은 여자, 내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할 때, 옆에서 들으면서 "옳은 말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말이 옳아요." 이렇게 내 말을 잘 듣는 난 그런 사람이 좋다. 만일에 내가 무슨 말을 할 때 "'말도 안돼. 미쳤냐' 이런 식으로 나오는 여자라면 미스코리아라도 못산다" 랬어요. 반갑지 않다. 여러분의 마음을 주고 싶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내게 마음을 열어주는 사람이에요. 이게 온유함이에요. 온유하고야 들을 수 있고 온유하고야 상대방의 인격을 존경할 수 있어요. 그래야 듣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거에요. 이건 온유함이 기본이에요. 그래서 제가 결혼 주례할 때 늘 이야기합니다마는 "너희들 행복하게 살려거든 마음을 비워라. 잘난 체하지 마라. 부부간에 잘난 체 해 봤댔자 무엇이 대단한 거냐. 상대방을 업수히 여기면 시원치 않은 사람하고 사는 너는 나은 거냐 피장파장이다." 그럴 거 없어요. 마음을 비우고 낮추라. 겸손하지 아니하면 사랑하지도 못합니다. 사랑을 받을 줄도 모릅니다. 이것을 잊지 말라고 권면해 봅니다.
여러분 배우는 마음 받아들이는 마음 이것이 온유입니다. 그래서 온유한 자는 범사에 배울 수 있고 모든 경우에서 지혜를 얻습니다. 또한 온유한 자에게 주시는 축복은 이렇습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그랬습니다.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의 그 원 개념은 영어로 말하면 Ownership 입니다. 땅을 내 소유로 삼고 그것을 즐긴다 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온유할 때 내가 만나는 사람을 온유하게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교만하면서 상대방을 온유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내가 먼저 온유하면 내 주변사람이 다 온유해집니다. 그러면 나의 소유가 내 것이 됩니다. 여기가 내 나라가 됩니다. 나의 주권이 확장됩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고로 온유한 자는 소유와 자기의 권위를 인해서 부자유를 느끼지 않습니다. 온유한 자는 근심이 없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많이 가지고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온유한 자만이 적은 것을 가지고도 만족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높은 권좌에 있는 순간 불안합니다. 걱정과 근심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온유한 자는 높은 권좌에 있어도 마음이 평안합니다. 그것이 온유한 자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소유 자체가 복이 아닙니다. 소유를 복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이 복입니다. 그것을 축복으로 누릴 수 있는 길은 온유함에 있는 겁니다. 통계적으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카네기 공과 대학에서 일만명을 상대로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사람이 성공을 하는 비결이 어디 있느냐 그걸 지식이냐 기술이냐 얘기했는데 기술과 지식은 15%밖에는 안 된다고 그랬어요. 85%는 인간성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의 화평과 온유한 마음, 그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그렇게 통계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버드대학에서 조사한 대로 보면은 많은 사람이 해고당하는데 해고당하는 이유가 지식과 기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00%가 그 사람의 잘못된 인간성 때문이래요. 그 사람의 잘못된 성격으로 인하여 해고당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온유함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온유하다고 할 때 땅을 차지하는 권세를 누린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특별히 여러분 아시는 대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만물을 다스리라" 했습니다. 다스리는 즐거움, 정치적 욕망에 대한 충족을 허락하셨어요. 이 다스리는 행복. 그런데 그들이 교만함으로 인해서 이 권리를 빼앗겼습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신비하게 말씀을 드리면 땅을 차지한다는 말은 곧 가나안 땅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항상 그리고 바라던 영원한 가나안 땅! 그런고로 이것은 천국을 말합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습니다. 결국은 가나안 땅 하늘나라를 소유하게 되겠다 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뭐니뭐니 해도 제일 중요한 것은 용서하는 일이요, 인내하는 일이요, 화평하는 일이요,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런 덕이 있을 때 거기에 행복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랑하고 싶으면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 교만하기 때문이에요. 화평해야 될 줄 알면서 화평을 못 만들어요. 왜 온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고로 용서와 인내와 화평의 모든 것의 뿌리가 그 뿌리가 온유에요. 온유한 자만이 이것을 가능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격의 뿌리입니다. 1997년 4월 23일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가 나와 있어요. 조용필씨가 16번째 앨범을 내 놓게 됩니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전에는 소리를 힘으로 내 질러서야 속이 후련했습니다. 발악을 하듯이 노래를 불렀어요. 그러나 사십이 넘어서 깨달은 것은 지금 내가 편하게 노래해야 듣는 사람도 평안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조용필씨가 그랬어요. 내가 온유하고 평안해야 다른 사람을 평안하게 하고요. 그래야 바로 그 자리가 당신의 행복의 복음자리가 되는 것이에요. 온유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많은 시련을 통해서 내게 주시는 놀라운 선물입니다. 다듬고 가꾸고 배우고 익혀서 온유한 성품에 도달하면 그리할 때에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땅을 다스리는 권세를 그에게 허락하십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땅을 다스리는 땅을 기업으로 땅의 소유권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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