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이 증거하시는 바 (롬8:12-17)
본문
어떤 날 호랑이 새끼가 어미 호랑이와 놀고 싶어서 등에 업히기도 하고 목을 끌어안기도 하고 여러 모양으로 장난을 치고 있었답니다. 어미 호랑이가 이것을 귀찮게 여겨서 물리치려고 해도 끝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크게 으르렁대면서 목덜미를 물려고 하니까 이때에 새끼호랑이가 겁이 나서 물러서면서 하는 말이 "나 호랑이 새끼 맞아" 그랬답니다. 어미가 말하기를 "그럼 내가 낳았지. 그러니까 너는 호랑이다." 또 물어 보았습니다. "나 어미 호랑이의 새끼 맞아" 자꾸 물어 보니까 귀찮아서 끝에 가서 하는 말이 "야, 이 개새끼야" 그랬답니다. 졸지에 그만 호랑이가 개가 되고 말고요 어미 호랑이는 또 역시 개가 되고 말았어요. 작은 새끼는 강아지가 되고 말았단 말입니다. 여러분 정체감에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누굽니까 여러분은 스스로를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 됨의 정체, 사람됨의 정체, 하나님의 자녀 됨의 정체를 잃어버릴 때 문제가 되는 것이올시다. George H. Bush 라고 하는 미국 전 대통령을 아실 것입니다. 그가 대통령 현직으로 있을 때에 한적한 시골의 초등학교를 방문하게 되는데, 거기서 큰 곤혹을 치렀다고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한 꼬마,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앤소니 핸드슨이라고 하는 이 꼬마가 부시 대통령에게 말하기를 "할아버지, 할아버지 대통령 맞습니까 증명해 보세요." 아 이거 부시가 난처하게 됐습니다. 대통령 증명서는 없거든요. 그래서 기껏 하는 것이 Driver's License, 미국 사람들은 그게 제일 큰 증명서거든요. 운전면허증을 떡 내 놓으니까 "여기에 대통령이라고 써 있지 않잖아요." 크래디트 카드를 보여도 "여기에도 대통령이라고 써 있는 게 없잖아요." 대통령 맞느냐고, 어린아이의 말에 뭐라고 대답 할 길이 없네요. 쩔쩔매고 있다가 밖으로 나가니까, 운동장에 나섰더니 거기에 까만 썬그라스를 낀 아주 우람하게 생긴 대통령 호위하는 분들이 쫙 모여들고, 커다란 리무진 자동차가 거기에 있어서 거기에 올라타는 걸보고 그때에 이 꼬마가 하는 말이 "와 진짜다." 그랬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 된 증거가 뭡니까 도대체 뭘 보고 인정하라는 겁니까 머리를 보나 팔을 보나 행동을 보나 생각하는 걸 보나 하나도 하나님 닮은 데가 없어요. 하는 짓들이 믿음이란 조금도 없어요. 이러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요 만일에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다면 당신들이 살아 있기 어려워요. 이렇게 행동하고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염치도 없습니다. 도대체 내가 하나님의 자녀됨이 뭐냐 하는 겁니다.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증거하지는 못합니다. 증거가 있어야 됩니다. 누군가가 증거해줘야 됩니다. 무엇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실적을, 성과를, 열매를 보여야 됩니다.
오늘 성경말씀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8장 9절에 명백하게 말합니다. 또 그리스도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이 두 가지, 확실하게 말씀합니다. 미국에 유학을 가 있는 젊은 목사, 이름을 대지 않겠습니다.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 같이 지내면서 가만히 보니깐 좀 시원치 않아서 "당신 예수 믿어요" 하고 물었어요. 대답하기를 "우리 아버지가 신학대학 총장인데." 저 쪽에서 다시 물어 봅니다. "당신 아버지, 신학대학 총장과 당신하고 무슨 상관이요." 또 심각한 말을 했습니다. "나 목사" 라고. 그러니까 "당신 목사라는 직업하고 당신 예수 믿는 거하고 무슨 상관이요" 대단히 심각한 얘기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직분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요 그리스도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을 때 그리스도 인이요. 그리스도의 영이 그 속에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에요. 철학자 루소는 인간을 이같이 개탄하며 탄식 조로 설명한 일이 있습니다. 인간들이 보통 인간들이 십대는 과자에 움직이고, 이십대는 연인에 움직이고, 삼십대는 쾌락에 움직이고, 사십대는 야심에 움직이고, 오십대는 탐욕에 움직인다. 이 오십대가 넘어서기 시작하면 이 명예에 욕심을 가지는 거예요. 때때로 보면은 면 위원으로 나오겠다고 재산 다 털어넣는 사람이 있어요. 도위원 한번 하겠다가 재산 망쳐버리는 사람도 있잖아요. 이 명예, 하찮은 명예, 여기에다 목숨을 걸어요. 하찮은 일에. 정말 시원치 않은 일에 목숨을 걸고 인생 다 망쳐버리는 불쌍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왜 이러는 것입니까 왜 인간은 고작 요거 밖에 않되느냐 그 말이요. 이것이 루소가 개탄한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그리스도인이란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가득한 사람이요. 남이야 뭐라고 말하든 그 얼굴은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충만한 사람이요.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서 그리스도인이요. 로마서 7장 23절 이하에 보면 사도바울은 많이 고민합니다. "원하는 선은 행할 수 없고 원치 않는 죄만 짓는다. 죄가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자기 자신을 객관시하고 자기 정체를 똑바로 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그는 이 문제에 대해서 결론을 내립니다. '오직 성령님이 나를 자유케 하시는 거다.' 그리스도의 영이 모든 죄와 율법으로부터 나를 자유케 합니다. 이것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요,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영적인 문제입니다. 신비롭게 영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을 때, 그로 인해서 성령님 안에서 자기 정체감을 확인하게 될 때 이것이 그리스도 인이란 말입니다. 저희 교회에서 장로로 시무하다가 세상을 떠난 어느 장로님, 임종 직전에 제가 만났을 때, 그는 무릎을 꿇고 회개의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뭘 하고 있는 겁니까", "회개하고 있습니다. 일생 동안 지은 죄를 다 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고민이 있습니다.왜요회개의 기도를 못하겠습니다. 회개하려고 '아무 때, 아무 때 그 내 잘못입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었습니다' 라고 회개하자마자 옆에서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 때도 내가 너를 사랑했다.' 그래서 회개하려고 하면 또 '사랑….' 나는 감사의 기도 외에 아무 말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 제가 그랬어요. "장로님 참 예수 잘 믿습니다." 여러분 회개하고 뉘우치고 가슴을 치고 이것 때문에 우울증에 걸려 죽어가도 그런 회개가 아니에요.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가운데 있어서 나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 됨을 확인하고 내가 잘못한 것이 분명한데도 그 위에 더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셨음을 깨달으면서 "주여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에 끌려가고 있을 때, 그 인도함을 받을 때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 인이에요. 이건 율법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래서 내 몸은 밝은 이성의 지배를 받고 내 이성은 영의 지배를 받고 내 영혼은 그리스도의 영에 인도함을 받을 때, 그가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존 번연이 지은 유명한 "천로 역정" 이라고 하는 그런 책이 있지요. 어떤 사람은 이것을 극찬해서 이걸 성경 다음으로 가는 책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름지기 우리 모두가 다 이 책을 한 번쯤은 다 읽은 줄 압니다. 그런데 그 거기에 보면 그리스도인이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하늘 나라를 향해서 멀리 여행을 떠나는데, 그 어느 곳에 가서 한 방에 들어가 보았더니 그 방에서 누가 청소를 하는데 그저 비로다가 먼지를 열심히 열심히 쓰니까 그 먼지가 일어 나가지고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뽀얗게…. 쓸려고 하면 할수록 더더 방이 어지러워지고 더러워지는 것을 보았어요. 이제 인도자에게 묻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저것이 율법이니라. 바르게 해보려고 애쓰고 또 애쓰고 노력하면 할수록 점점 더 죄가 많아지고 점점 더 어지러워지느니라." 바로 옆방을 들어가 보니까 그 옆방에는 먼지가 똑같이 많은데 쫙 다 물을 뿌리고 그리고 청소를 하니까 깨끗하게 청소가 되요. "이건 무슨 뜻입니까이것은 성령님이니라. 이건 은혜의 역사니라."
여러분 내 노력으로 바로 해 보려고, 뭐 큰 일 해보려고 몸부림치고 애써보세요. 볼수록볼수록 점점 더 먼지만 나요. 점점 더 형편없는 인간이 되어 가는 것을 여러분이 체험할 것입니다. 오직 은혜, 오직 성령님, 역사 안에서만 깨끗하게 모든 율법과 죄와 허무함과 불의함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것이에요. 또한 가지는 오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양자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이건 본 아들이 아니에요. 잘못된 자녀지만은 이제 양자가 되었다. 그래서 두려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했고, 양자의 영을 받았느니라. 우리 마음속에 양자의 영이 있다는 거지요. 양자됨이 이루어졌다는 거죠. 그건 자유의 영이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선택 속에서 이루어지는 겁니다. 양자라고 하면은 전에 내가 속했던 그 가정의 모든 문제와 내가 무관합니다. 신분과도 무관합니다. 옛날에 내가 종의 노예 생활을 했다 하더라도 이제 오늘 내가 귀족에게 양자 되면 귀족입니다. 그 날부터 귀족입니다. 이것이 양자라는 것이에요. 또한 옛 집에 모든 책임과 또 그 부채로부터 무관합니다. 옛날에는 부채는 꼭 갚아야 되요. 요새 보니까 뭐 감옥에 가서 몇 달 살다 나오면 다 끝난다고 합디다만은 옛날엔 그렇질 못했어요. 한 번 빚을 졌으면 갚아야 되요. 죽을 때까지 갚아야 되요. 못 갚으면 자식이 갚아야 되요. 자식이 노예로 팔려가요, 돈이 없으면. 그리고 또 몸으로 팔려가서 마누라도 팔려 가는 거예요. 이렇게 빚이 무서웠어요.
그런데 이제 문제는 내 본 집이 지금 엄청난 빚더미에 앉아서 나는 꼭 노예로 팔려 갈 수 밖에 없는 존재예요. 그러나 그 누군가가 와서 이 사람을 다른 집으로 양자로 데려 가면은 그 모든 책임으로부터 벗어납니다. 이게 기가 막힌 거예요. 그래서 오늘 성경 말씀에 '우리는 다 같이 빚진 자' 라고 하는 말이 여기서 나온 거예요. 우리는 그래서 모든 옛 빚으로부터, 죄의 빚으로부터 자유했다 하는 말씀이고요. 또 하나는 이제 양자 된 이 집의 모든 신분을 내가 그대로 일시에 물려받는 겁니다. 유산도 물려받고 신분도 물려받아서 역사에 보면은 클리우디우스라고 하는 황제, 로마 황제의 아들 네로가 있습니다. 그 네로는 원래 노예의 자식입니다. 노예의 자식인데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양자가 되어서 대 로마 제국의 왕이 됩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양자가 되면 바로 그 순간 이 집의 모든 권리를 내가 물려받고 뿐만 아니라 그 신분까지 그 명예까지 다 물려받는 것이요. 이 양자올시다. 참 문제가 좀 있습니다. 외국에는 양자 법이 많아요. 중국에도 그렇고 서양엔 더더욱 그런데 우리는 참 이 문제의 문제가 많아요. 그래서 이 아이들을 외국까지 팔아먹고 말야 이렇게 돼서 부끄러움을 사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을 우리가 양자 해야 되겠는데 이게 잘 안돼요.
보세요. 이 이게 핏줄기의 고정관념 때문에 문제요. 그래서 양자를 해서 외국 가서 그 핏덩이를 데려다가 잘 키워 가지고 노니까 또 친부모를 찾겠다고 한국까지 옵니다. 이게 망조라는 거예요. 얼마나 슬픈 얘기입니까 양부모가 좋아서 알선해 줍디다만은 왜 이러해야 되느냐 하는거에요. 낳자마자 단 한 번도 젖 한 번 먹여보지 않은 어머니를 왜 어머니라 불러야 됩니까 이게 유교적 고정관념이에요. 양자 되었으면 이제는 그 집, 엄연히 그 집 아들이요 그 집 자녀입니다. 그 도리를 다 해야지 뭘 이제 그걸 뭐 20년 30년 전 핏줄기를 찾겠다고 몸부림치고 만났다고 울고…. 이거는 세계 사람들이 보면서 참 웃긴다고 그럽니다 이게. 부끄러운 일이올시다. 양자 됐으면 잊어버려. 그리고 오늘 내 신분만이 이것이 내게 주어진 신분이에요. 이걸 알아야 합니다. 런데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적 선택권에서 이루어지는 거예요. 자 양자할 때, 양자 해놓고 키워가다가 쓸만하면 호적에 올리는 겁니까 그게 아니에요. 그저 핏덩이든 몇 살이든 일단 먼저 딱 호적에 올려놓고 양자를 만든 다음에 그 다음에 양자로 키워가는 거죠. 이것이 양자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자녀나, 우리의 수준이나 우리의 어떤 도덕적 수준 묻지 않아요. 먼저 양자 하시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도록 키우시는 거예요. 양육하시는 것이란 말입니다. 저는 이 얘기를 할 때마다 늘 마음에 생각나는 얘기가 하나 있어요. 제가 인천에서 목회할 때의 일입니다. 장로님에게 아들이 없어서 늦게, 그냥 괜찮다괜찮다 하다가 나이 많아져서는 생각이 달라졌어요. 이것도 또 우리 고유한 문화지요. 그래가지고 하나 양자를 했어요. 아주 어린 걸 했으면 차라리 좋을 걸 한 네 살인가 그렇게 되는 아이를 하나 양자를 했어요. 걔 생일날이 됐어요. 제가 갔었는데 걔 생일날 음식을 다 차려놓고 감사기도를 했어요. 감사기도 하고 나니까 여기에 놨던 맛있는 과자 몇 개가 없어졌어요. 기도하는 동안에 애가 갔다 감춘 거예요. 장로님이 이걸 놓고 눈물을 흘리는 걸 보았어요. 이거 내 아들인데 내가 네게 다 주었는데, 오늘도 죽으면 이 재산이, 큰 빌딩이 네 건데 왜 너는 그렇게 과자를 갖다가 감추느냐 이거예요. 이건 고아원에 있을 때 버릇이거든요. 이 집의 양자가 됐지만은 아직도 그 버릇이 좀 남아 있어서 이걸 고치기가 어려워요. 많은 시간이 걸리더만요. 오늘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 되기는 했지만은, 그저 어떤 사람은 무당 끼가 좀 있어서 어떤 사람은 점보는 끼가 좀 있고 어떤 사람은 그저 그 못된 끼들이 아직도 남아있었어요. 가끔 보면은 한심한 짓을 좀 해요. 그러나 양자됨은 분명해요. 이 사실은 의심할 필요가 없어요. 그래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거 이게 보통 특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하나님은, 심지어는 하나님이란 말씀도 없어요. 주기도문 가운데 보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러고 끝났어요.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요. 누가 날더러 아버지라고 부를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요새 이 교회에 못 나옵디다만은 가끔 몸이 아파서 못 나온다는데, 대전에 있어요 그 청년이.
그런데 가끔 교회에 나와 가지고는 내가 예배 마치고 나가기만 하면 붙들고 "아버님, 아버님" 자꾸 그래서 아주 힘들어요. 그래 "내가 어떻게 니 아버지냐" 그러니까 "아버지고 말고요." 요새도 가끔 내가 운동을 하다 보면은 전화가 왔다고 그래요. 그래 누군가 받으면은 "아버님 안녕하세요." 그래요. 글쎄올시다. 진짜 내 아들이 날더러 아버지라고 부르면 나를 기쁜 게 하는 것이지만 자 이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청년이 날더러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건 나를 힘들게 하는 거예요. 누가 나를 아버지라고 부를 것입니까 마찬가지로 감히 하나님을 누가 아버지라고 부를 것입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자,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자, 바로 그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에요. 성령님 안에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아빠라고 하는 말은 이건 아람어입니다. 아람어나 한국어나 만국 통일어요. 아주 어렸을 때는 아빠 아빠 그러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빠 아버지' 하고 번역을 한 겁니다. 너무너무 귀한 말씀이에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바로 거기에 내 정체가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는 후사라고 했습니다. 후사, 이거 또한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가 되었습니다. 이 물에는 수압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래서 우린 물 속에 깊이 들어가면 파열돼서 습니다. 사람이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물 속 깊이 탐색하기 위해서 아주 강철로 굉장히 튼튼한 강철로 배를 만들었어요. "프레시 호" 라고 하는 배를 만들어 가지고 바다 깊이 들어갔는데 이건 강철이니까 틀림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파열이 됐어요. 그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바다 깊은 속에 물고기는 삽니다. 그 깊은, 수압이 높은 그 속에도 물고기는 살아요.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느냐 이거예요. 중요한 건 이것입니다. 그 물의 수압과 물고기의 자기 몸 안에 있는 압력이 같기 때문이에요. 그래야 살아 남을 수 있는 거예요.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그가 우리의 후견인이 됨으로서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정해 주실 때,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 갈 수 있는 것이올시다. '레 미제라블' 이라고 하는 소설 여러분이 잘 알 겁니다. 레 미제라블에 그 보면은 이 빅토르 위고의 책 가운데 고아소녀 코제트라고 하는 소녀가 나옵니다. 불쌍한 고아입니다. 지금은 양부모가 돌아보아주기는 하지만은 여러 가지로 어렵습니다. 밖에 나가서도 업신을 받고 가정 안에서도 그렇고 집안에서나 밖에서나 정말로 겨우겨우 어렵게 살아가는 모든 고통을 겪고 있는 어린아이입니다. 불쌍한 아이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 장발장이라고 하는 엄청난 부자가 저의 후견인이 됩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할 때 애는 그 때부터 신바람이 납니다. 거침없이 활발하게 명랑하게 살아가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후견인이요, 그리스도가 내 후견인이요, 성령님이 이것을 증거해 주실 때 신바람 나게 살아 갈 수 있는 것이에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님이 나의 나 됨을 증거 하십니다. 그런고로 율법과 죄로부터 자유합니다. 오직 그 안에 사랑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자녀된 사랑이 나와 함께 하심을 확증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고난을 당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되는 일입니다. 병들었습니까 그건 하나님의 사랑이요, 실패했습니까 그 속에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 있음을 성령님이 증거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보세요. 눈 앞에 십자가가 있을 때, 요한복음 18장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사랑하는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주는 십자가로 그렇게 믿기에 십자가를 질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런고로 우리는 오늘도 그 크신 성령님의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증 받을 수 있을 때 모든 사건에서 모든 환경에서 계속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꼬마,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앤소니 핸드슨이라고 하는 이 꼬마가 부시 대통령에게 말하기를 "할아버지, 할아버지 대통령 맞습니까 증명해 보세요." 아 이거 부시가 난처하게 됐습니다. 대통령 증명서는 없거든요. 그래서 기껏 하는 것이 Driver's License, 미국 사람들은 그게 제일 큰 증명서거든요. 운전면허증을 떡 내 놓으니까 "여기에 대통령이라고 써 있지 않잖아요." 크래디트 카드를 보여도 "여기에도 대통령이라고 써 있는 게 없잖아요." 대통령 맞느냐고, 어린아이의 말에 뭐라고 대답 할 길이 없네요. 쩔쩔매고 있다가 밖으로 나가니까, 운동장에 나섰더니 거기에 까만 썬그라스를 낀 아주 우람하게 생긴 대통령 호위하는 분들이 쫙 모여들고, 커다란 리무진 자동차가 거기에 있어서 거기에 올라타는 걸보고 그때에 이 꼬마가 하는 말이 "와 진짜다." 그랬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 된 증거가 뭡니까 도대체 뭘 보고 인정하라는 겁니까 머리를 보나 팔을 보나 행동을 보나 생각하는 걸 보나 하나도 하나님 닮은 데가 없어요. 하는 짓들이 믿음이란 조금도 없어요. 이러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요 만일에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다면 당신들이 살아 있기 어려워요. 이렇게 행동하고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염치도 없습니다. 도대체 내가 하나님의 자녀됨이 뭐냐 하는 겁니다.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증거하지는 못합니다. 증거가 있어야 됩니다. 누군가가 증거해줘야 됩니다. 무엇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실적을, 성과를, 열매를 보여야 됩니다.
오늘 성경말씀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8장 9절에 명백하게 말합니다. 또 그리스도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이 두 가지, 확실하게 말씀합니다. 미국에 유학을 가 있는 젊은 목사, 이름을 대지 않겠습니다.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 같이 지내면서 가만히 보니깐 좀 시원치 않아서 "당신 예수 믿어요" 하고 물었어요. 대답하기를 "우리 아버지가 신학대학 총장인데." 저 쪽에서 다시 물어 봅니다. "당신 아버지, 신학대학 총장과 당신하고 무슨 상관이요." 또 심각한 말을 했습니다. "나 목사" 라고. 그러니까 "당신 목사라는 직업하고 당신 예수 믿는 거하고 무슨 상관이요" 대단히 심각한 얘기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직분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요 그리스도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을 때 그리스도 인이요. 그리스도의 영이 그 속에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에요. 철학자 루소는 인간을 이같이 개탄하며 탄식 조로 설명한 일이 있습니다. 인간들이 보통 인간들이 십대는 과자에 움직이고, 이십대는 연인에 움직이고, 삼십대는 쾌락에 움직이고, 사십대는 야심에 움직이고, 오십대는 탐욕에 움직인다. 이 오십대가 넘어서기 시작하면 이 명예에 욕심을 가지는 거예요. 때때로 보면은 면 위원으로 나오겠다고 재산 다 털어넣는 사람이 있어요. 도위원 한번 하겠다가 재산 망쳐버리는 사람도 있잖아요. 이 명예, 하찮은 명예, 여기에다 목숨을 걸어요. 하찮은 일에. 정말 시원치 않은 일에 목숨을 걸고 인생 다 망쳐버리는 불쌍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왜 이러는 것입니까 왜 인간은 고작 요거 밖에 않되느냐 그 말이요. 이것이 루소가 개탄한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그리스도인이란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가득한 사람이요. 남이야 뭐라고 말하든 그 얼굴은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충만한 사람이요.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서 그리스도인이요. 로마서 7장 23절 이하에 보면 사도바울은 많이 고민합니다. "원하는 선은 행할 수 없고 원치 않는 죄만 짓는다. 죄가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자기 자신을 객관시하고 자기 정체를 똑바로 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그는 이 문제에 대해서 결론을 내립니다. '오직 성령님이 나를 자유케 하시는 거다.' 그리스도의 영이 모든 죄와 율법으로부터 나를 자유케 합니다. 이것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요,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영적인 문제입니다. 신비롭게 영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을 때, 그로 인해서 성령님 안에서 자기 정체감을 확인하게 될 때 이것이 그리스도 인이란 말입니다. 저희 교회에서 장로로 시무하다가 세상을 떠난 어느 장로님, 임종 직전에 제가 만났을 때, 그는 무릎을 꿇고 회개의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뭘 하고 있는 겁니까", "회개하고 있습니다. 일생 동안 지은 죄를 다 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고민이 있습니다.왜요회개의 기도를 못하겠습니다. 회개하려고 '아무 때, 아무 때 그 내 잘못입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었습니다' 라고 회개하자마자 옆에서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 때도 내가 너를 사랑했다.' 그래서 회개하려고 하면 또 '사랑….' 나는 감사의 기도 외에 아무 말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 제가 그랬어요. "장로님 참 예수 잘 믿습니다." 여러분 회개하고 뉘우치고 가슴을 치고 이것 때문에 우울증에 걸려 죽어가도 그런 회개가 아니에요.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가운데 있어서 나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 됨을 확인하고 내가 잘못한 것이 분명한데도 그 위에 더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셨음을 깨달으면서 "주여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에 끌려가고 있을 때, 그 인도함을 받을 때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 인이에요. 이건 율법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래서 내 몸은 밝은 이성의 지배를 받고 내 이성은 영의 지배를 받고 내 영혼은 그리스도의 영에 인도함을 받을 때, 그가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존 번연이 지은 유명한 "천로 역정" 이라고 하는 그런 책이 있지요. 어떤 사람은 이것을 극찬해서 이걸 성경 다음으로 가는 책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름지기 우리 모두가 다 이 책을 한 번쯤은 다 읽은 줄 압니다. 그런데 그 거기에 보면 그리스도인이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하늘 나라를 향해서 멀리 여행을 떠나는데, 그 어느 곳에 가서 한 방에 들어가 보았더니 그 방에서 누가 청소를 하는데 그저 비로다가 먼지를 열심히 열심히 쓰니까 그 먼지가 일어 나가지고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뽀얗게…. 쓸려고 하면 할수록 더더 방이 어지러워지고 더러워지는 것을 보았어요. 이제 인도자에게 묻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저것이 율법이니라. 바르게 해보려고 애쓰고 또 애쓰고 노력하면 할수록 점점 더 죄가 많아지고 점점 더 어지러워지느니라." 바로 옆방을 들어가 보니까 그 옆방에는 먼지가 똑같이 많은데 쫙 다 물을 뿌리고 그리고 청소를 하니까 깨끗하게 청소가 되요. "이건 무슨 뜻입니까이것은 성령님이니라. 이건 은혜의 역사니라."
여러분 내 노력으로 바로 해 보려고, 뭐 큰 일 해보려고 몸부림치고 애써보세요. 볼수록볼수록 점점 더 먼지만 나요. 점점 더 형편없는 인간이 되어 가는 것을 여러분이 체험할 것입니다. 오직 은혜, 오직 성령님, 역사 안에서만 깨끗하게 모든 율법과 죄와 허무함과 불의함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것이에요. 또한 가지는 오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양자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이건 본 아들이 아니에요. 잘못된 자녀지만은 이제 양자가 되었다. 그래서 두려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했고, 양자의 영을 받았느니라. 우리 마음속에 양자의 영이 있다는 거지요. 양자됨이 이루어졌다는 거죠. 그건 자유의 영이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선택 속에서 이루어지는 겁니다. 양자라고 하면은 전에 내가 속했던 그 가정의 모든 문제와 내가 무관합니다. 신분과도 무관합니다. 옛날에 내가 종의 노예 생활을 했다 하더라도 이제 오늘 내가 귀족에게 양자 되면 귀족입니다. 그 날부터 귀족입니다. 이것이 양자라는 것이에요. 또한 옛 집에 모든 책임과 또 그 부채로부터 무관합니다. 옛날에는 부채는 꼭 갚아야 되요. 요새 보니까 뭐 감옥에 가서 몇 달 살다 나오면 다 끝난다고 합디다만은 옛날엔 그렇질 못했어요. 한 번 빚을 졌으면 갚아야 되요. 죽을 때까지 갚아야 되요. 못 갚으면 자식이 갚아야 되요. 자식이 노예로 팔려가요, 돈이 없으면. 그리고 또 몸으로 팔려가서 마누라도 팔려 가는 거예요. 이렇게 빚이 무서웠어요.
그런데 이제 문제는 내 본 집이 지금 엄청난 빚더미에 앉아서 나는 꼭 노예로 팔려 갈 수 밖에 없는 존재예요. 그러나 그 누군가가 와서 이 사람을 다른 집으로 양자로 데려 가면은 그 모든 책임으로부터 벗어납니다. 이게 기가 막힌 거예요. 그래서 오늘 성경 말씀에 '우리는 다 같이 빚진 자' 라고 하는 말이 여기서 나온 거예요. 우리는 그래서 모든 옛 빚으로부터, 죄의 빚으로부터 자유했다 하는 말씀이고요. 또 하나는 이제 양자 된 이 집의 모든 신분을 내가 그대로 일시에 물려받는 겁니다. 유산도 물려받고 신분도 물려받아서 역사에 보면은 클리우디우스라고 하는 황제, 로마 황제의 아들 네로가 있습니다. 그 네로는 원래 노예의 자식입니다. 노예의 자식인데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양자가 되어서 대 로마 제국의 왕이 됩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양자가 되면 바로 그 순간 이 집의 모든 권리를 내가 물려받고 뿐만 아니라 그 신분까지 그 명예까지 다 물려받는 것이요. 이 양자올시다. 참 문제가 좀 있습니다. 외국에는 양자 법이 많아요. 중국에도 그렇고 서양엔 더더욱 그런데 우리는 참 이 문제의 문제가 많아요. 그래서 이 아이들을 외국까지 팔아먹고 말야 이렇게 돼서 부끄러움을 사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을 우리가 양자 해야 되겠는데 이게 잘 안돼요.
보세요. 이 이게 핏줄기의 고정관념 때문에 문제요. 그래서 양자를 해서 외국 가서 그 핏덩이를 데려다가 잘 키워 가지고 노니까 또 친부모를 찾겠다고 한국까지 옵니다. 이게 망조라는 거예요. 얼마나 슬픈 얘기입니까 양부모가 좋아서 알선해 줍디다만은 왜 이러해야 되느냐 하는거에요. 낳자마자 단 한 번도 젖 한 번 먹여보지 않은 어머니를 왜 어머니라 불러야 됩니까 이게 유교적 고정관념이에요. 양자 되었으면 이제는 그 집, 엄연히 그 집 아들이요 그 집 자녀입니다. 그 도리를 다 해야지 뭘 이제 그걸 뭐 20년 30년 전 핏줄기를 찾겠다고 몸부림치고 만났다고 울고…. 이거는 세계 사람들이 보면서 참 웃긴다고 그럽니다 이게. 부끄러운 일이올시다. 양자 됐으면 잊어버려. 그리고 오늘 내 신분만이 이것이 내게 주어진 신분이에요. 이걸 알아야 합니다. 런데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적 선택권에서 이루어지는 거예요. 자 양자할 때, 양자 해놓고 키워가다가 쓸만하면 호적에 올리는 겁니까 그게 아니에요. 그저 핏덩이든 몇 살이든 일단 먼저 딱 호적에 올려놓고 양자를 만든 다음에 그 다음에 양자로 키워가는 거죠. 이것이 양자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자녀나, 우리의 수준이나 우리의 어떤 도덕적 수준 묻지 않아요. 먼저 양자 하시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도록 키우시는 거예요. 양육하시는 것이란 말입니다. 저는 이 얘기를 할 때마다 늘 마음에 생각나는 얘기가 하나 있어요. 제가 인천에서 목회할 때의 일입니다. 장로님에게 아들이 없어서 늦게, 그냥 괜찮다괜찮다 하다가 나이 많아져서는 생각이 달라졌어요. 이것도 또 우리 고유한 문화지요. 그래가지고 하나 양자를 했어요. 아주 어린 걸 했으면 차라리 좋을 걸 한 네 살인가 그렇게 되는 아이를 하나 양자를 했어요. 걔 생일날이 됐어요. 제가 갔었는데 걔 생일날 음식을 다 차려놓고 감사기도를 했어요. 감사기도 하고 나니까 여기에 놨던 맛있는 과자 몇 개가 없어졌어요. 기도하는 동안에 애가 갔다 감춘 거예요. 장로님이 이걸 놓고 눈물을 흘리는 걸 보았어요. 이거 내 아들인데 내가 네게 다 주었는데, 오늘도 죽으면 이 재산이, 큰 빌딩이 네 건데 왜 너는 그렇게 과자를 갖다가 감추느냐 이거예요. 이건 고아원에 있을 때 버릇이거든요. 이 집의 양자가 됐지만은 아직도 그 버릇이 좀 남아 있어서 이걸 고치기가 어려워요. 많은 시간이 걸리더만요. 오늘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 되기는 했지만은, 그저 어떤 사람은 무당 끼가 좀 있어서 어떤 사람은 점보는 끼가 좀 있고 어떤 사람은 그저 그 못된 끼들이 아직도 남아있었어요. 가끔 보면은 한심한 짓을 좀 해요. 그러나 양자됨은 분명해요. 이 사실은 의심할 필요가 없어요. 그래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거 이게 보통 특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하나님은, 심지어는 하나님이란 말씀도 없어요. 주기도문 가운데 보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러고 끝났어요.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요. 누가 날더러 아버지라고 부를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요새 이 교회에 못 나옵디다만은 가끔 몸이 아파서 못 나온다는데, 대전에 있어요 그 청년이.
그런데 가끔 교회에 나와 가지고는 내가 예배 마치고 나가기만 하면 붙들고 "아버님, 아버님" 자꾸 그래서 아주 힘들어요. 그래 "내가 어떻게 니 아버지냐" 그러니까 "아버지고 말고요." 요새도 가끔 내가 운동을 하다 보면은 전화가 왔다고 그래요. 그래 누군가 받으면은 "아버님 안녕하세요." 그래요. 글쎄올시다. 진짜 내 아들이 날더러 아버지라고 부르면 나를 기쁜 게 하는 것이지만 자 이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청년이 날더러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건 나를 힘들게 하는 거예요. 누가 나를 아버지라고 부를 것입니까 마찬가지로 감히 하나님을 누가 아버지라고 부를 것입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자,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자, 바로 그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에요. 성령님 안에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아빠라고 하는 말은 이건 아람어입니다. 아람어나 한국어나 만국 통일어요. 아주 어렸을 때는 아빠 아빠 그러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빠 아버지' 하고 번역을 한 겁니다. 너무너무 귀한 말씀이에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바로 거기에 내 정체가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는 후사라고 했습니다. 후사, 이거 또한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가 되었습니다. 이 물에는 수압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래서 우린 물 속에 깊이 들어가면 파열돼서 습니다. 사람이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물 속 깊이 탐색하기 위해서 아주 강철로 굉장히 튼튼한 강철로 배를 만들었어요. "프레시 호" 라고 하는 배를 만들어 가지고 바다 깊이 들어갔는데 이건 강철이니까 틀림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파열이 됐어요. 그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바다 깊은 속에 물고기는 삽니다. 그 깊은, 수압이 높은 그 속에도 물고기는 살아요.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느냐 이거예요. 중요한 건 이것입니다. 그 물의 수압과 물고기의 자기 몸 안에 있는 압력이 같기 때문이에요. 그래야 살아 남을 수 있는 거예요.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그가 우리의 후견인이 됨으로서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정해 주실 때,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 갈 수 있는 것이올시다. '레 미제라블' 이라고 하는 소설 여러분이 잘 알 겁니다. 레 미제라블에 그 보면은 이 빅토르 위고의 책 가운데 고아소녀 코제트라고 하는 소녀가 나옵니다. 불쌍한 고아입니다. 지금은 양부모가 돌아보아주기는 하지만은 여러 가지로 어렵습니다. 밖에 나가서도 업신을 받고 가정 안에서도 그렇고 집안에서나 밖에서나 정말로 겨우겨우 어렵게 살아가는 모든 고통을 겪고 있는 어린아이입니다. 불쌍한 아이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 장발장이라고 하는 엄청난 부자가 저의 후견인이 됩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할 때 애는 그 때부터 신바람이 납니다. 거침없이 활발하게 명랑하게 살아가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후견인이요, 그리스도가 내 후견인이요, 성령님이 이것을 증거해 주실 때 신바람 나게 살아 갈 수 있는 것이에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님이 나의 나 됨을 증거 하십니다. 그런고로 율법과 죄로부터 자유합니다. 오직 그 안에 사랑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자녀된 사랑이 나와 함께 하심을 확증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고난을 당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되는 일입니다. 병들었습니까 그건 하나님의 사랑이요, 실패했습니까 그 속에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 있음을 성령님이 증거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보세요. 눈 앞에 십자가가 있을 때, 요한복음 18장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사랑하는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주는 십자가로 그렇게 믿기에 십자가를 질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런고로 우리는 오늘도 그 크신 성령님의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증 받을 수 있을 때 모든 사건에서 모든 환경에서 계속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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