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의 불신앙 (마6:1-8)
본문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가 어떤 날 아침에 공교롭게 혼자서 아침 식사를 하게 되었었습니다. 빵과 몇 조각의 고기를 놓고 식사를 하는데 바로 무릎 앞에 사랑하는 개 한 마리가 마틴 루터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루터의 손이 상에 가면 상을 보고, 루터의 손이 입으로 올라가면 입을 보고, 올려보고 내려보고 올려보고 내려보고 열심히 쳐다보는 겁니다. 너무 감동이 돼서 루터가 고기 조각 하나를 찢어서 개에게 주고 그 먹는 것을 보면서 그는 무릎을 치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개가 내가 먹는 이 고기조각 하나를 쳐다보는 것처럼 내가 하나님을 쳐다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 개는 이걸 쳐다보는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나는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고 하며 "하나님 아버지"하고 불러놓고도 이 생각 저 생각… 도대체 이게 무슨 믿음이냐 그거예요.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 세상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 진실하다고 하면서 어째서 이렇게 거짓이 많고 위선이 많고 허세가 많고 잘못됐느냐 하는 거죠. 참 중요한 교훈이 아니겠습니까. 히브리서 11장 6절에 신앙의 기본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반드시 믿어야 할지니라. 그가 계신 것,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 그렇습니다. 이 믿음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많은 문제에 부딪치고 있습니다만은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이 세상에는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중요하고 명예도 지식도 권력도 다 중요할는지 몰라도 우리가 오늘 세상을 떠난다고 한다면 하나님 앞에 갈 때는 오직 한 장의 티켓이 필요합니다.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깨끗한 믿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 오직 믿음 하나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 믿음에 문제가 있는 것이예요. 믿는다고 하면서 믿지 않아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나를 믿어요. 제 아는 친구 한 사람은 아주 진실한 얘기이기는 하지만 좀 듣기 어렵습니다. 날 더러 이렇게 말해요. "내가 처가 집을 믿는 것만큼 하나님을 믿는지 모르겠어." 그래요. 왜냐면 처가 집이 부자예요. 그래 목사의 생활은 어렵지만 전화만 걸면 다 갖다 주거든요. 아이들의 학비고 뭐고 한 번도 걱정해 본 일이 없대요.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에요. 처가 집 믿는 믿음이에요. 이거 확실히 문제 있다. 본인이 진실하게 얘기하는 걸 보았어요. 그 사람들이 돈 있으면 돈 의지하고 지식 있으면 지식 의지하고 학벌 있으면 학벌 의지하고 건강하면 자기 건강을 믿고. 가만히 보세요. 다시 한 번 물어 봅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믿습니까 이 믿음에 문제가 있어요. 그것은 함정이 있고 시험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위선이에요. 외식이요, 형식주의요, 형식적으론 믿음이 있으나 내용이 없어요. 어느 사이에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 자기도 자기에게 속은 거예요. 믿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믿음이 없어요. 믿음이 아니었어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건 바로 모든 생활의 근본이 되는 동기의 문제입니다. 중심의 문제올시다. 인간들은 결과에 의해서 동기와 목적을 평가받으려고 합니다. 잘못된 일인 줄 압니다. 그래도 이것을 통해서 잘 돼서 마지막 결과만 좋으면 이 모든 잘못도 정당화 될 수 있지 않겠느냐 이런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것을 허락지 않습니다. 깊이 알아야 합니다. 그 옛날 독일의 히틀러라는 사람은 세상을 참 소란하게 만든 사람으로 대표자입니다. 그는 많은 군중들 앞에서 네 가지 덕, Four Virture 를 말했습니다.
첫째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라.둘째는 역경을 이기는 인내심을 가지라.셋째는 지도자에 대한 충성을 다하라. 그리고 법을 따르는 정신을 가지자. 그래서 애국심, 인내심, 충성심 그리고 준법정신, 네 가지를 주장할 때 모든 국민이 그를 밀었습니다. 지지 성원을 받아서 그는 영웅이 됐습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하여 독일과 또 그리고 온 세계는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왜요 그의 생각 속에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의 생각에는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라도 이 소원만 이루면 또 그리고 게르만 민족을 온 세계에 높이 올려놓으면 된다고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 모든 잘못된 일들은 다 정당화 될 거라고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은 얼마나 많은 손해를, 상처를 입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말씀은 가장 귀한, 가장 깨끗한 믿음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첫째가 은밀하게 하라. 비밀스럽게 하라. 하나님과 나만이 나는 그런 은밀함을 말합니다. 아주 단순한 마음으로 행하라는 겁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마라. 오늘 본문에 세 번이나 강조합니다. 1절, 5절, 15절에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마라. 구제할 때 나팔불지 마라. 현대인들은 자기 PR의 시대가 됐다고 해서 자기 자랑하기를 좋아해요. 그래서 제가 글쎄 이건 개인 의견입니다만은 전에 없던 일이라서 그런지 제 마음에 못마땅한 게 하나 있어요. 그것은 이 명함을 교환할 때가 있는데, 명함을 받고 보니까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자기 사진이 있어요. 그 뿐만 아니라 자기 마누라 사진까지 있어요. 내가 그 분의 마누라까지 알아야 될 이유가 뭡니까 떡 이걸 보여줘요. 난 도대체 이게 못마땅해요. 자기 선전을 하는 거예요. 사람에게 보이려고, 이건 불신앙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기도할 때에 또 자기 자랑하는 것처럼 답답한 게 없고요, 기도할 때에 기도를 통해서 남 훈계하려는 사람도 있어요. 미사 여구를 통해서 많은 사람 앞에 연설을 하는 거예요 도대체가. 이거는 불신앙입니다. 사람에 의식 속에는 이런 것이 좀 있습니다. 그 첫째가 뭐냐하면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날 보고 있으니까. 사람의 욕구 중에 자기 실현의 욕구가 아주 중요하거든요.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려고 합니다. 물론 좋은 의미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해요. 우리 교인들이 특별히 여자 분들이 이렇게 밖에 나오려면은 얼굴을 매만지고 화장도 하고 그런 거 같습니다. 그 깨끗하게 보이려고 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어느 선을 딱 넘으면 시원치 않은 사람이 예쁘게 보이려고,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더 예쁘게 보이려고, 사실은 마음이 지금 썩어서 죽을 지경인데 좀더 밝게 보이려고 뭐 빨간 걸 좀 바른다며. 자 이거 보세요. 이게 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마음이에요. 좋게 보이려고. 더 우스운 것은 남편이 극구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화장하는 여자가 있죠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립니까 그래서 이 화장대 앞에 두 시간 이상 앉아 있는 사람은 상당한 부분의 바람기가 있다는 거 아닙니까 도대체 누구를 유혹하려고,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이 마음 여기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어쨌든 사람들은 누구나 다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데 문제는 여기에 있어요. 사실대로 여기까지가 진실인데 사실 이상으로 보이려는 거예요. 진실 이상으로 보이려고 할 때 이게 거짓이거든요. 사실은 피곤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이런 마음 가지고 사는 사람 아주 피곤합니다. 마지막엔 지쳐서 우울증 환자가 돼 버립니다요. 이것, 이런 신경을 딱 꺼버리고 사는 사람 아주 자유합니다. 오늘도 가만히 보세요. 짙은 화장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얼굴이 썩었어요. 왜 그러냐 남 신경 쓰느라고. 화장 없이 사는 사람이 명랑합니다. 난 이대로 내 모습 이대로 삽이다. 얼마나 자유해요. 이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처럼 불행한 일이 없거든요. 또 평판이나 칭찬을 받으려는 마음, 자기 행위를 통해서 좋은 말 들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실 무슨 별로 잘나지도 못했는데. 뭐 그런다고 잘 될 것도 없어요. 어떻게 좋은 말만 듣고 살겠습니까 어느 사회학자가 연구해 보니까 이거는 80대 20이라고 그럽니다. 언제나 80은 좋은 말을 듣고 20은 나쁜 말을 듣게 돼있어요.
그런데 80의 좋은 말을 들은 거 고맙게는 생각 안하고, 20 나쁜 말 듣는 거 이거 신경 쓰고 잠을 못 자는 거예요. 그 사람도 위선자요. 대단한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의 평판이나 칭찬, 너무 신경 쓰는 거 불행한 일이고요. 또 사람으로부터 오는 유익을 생각합니다. 이익을 계산합니다. 여기에 또한 문제가 있어요. 어떤 일 보자마자 내게 돌아오는 이익부터 계산하는 거예요. 성경에 보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가 있지 않습니까 여리고로 가는 길에 불한당 맞은 사람, 강도 만난 사람이 피투성이가 돼서 죽기 직전에 누워있었다. 제사장이 보고 지나가고, 레위 사람이 그저 보고 지나갔다. 마지막에 너희들이 멸시하는 천한 사람이지만 사마리아 사람이 저를 돌보았다. 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제 생각해 보십시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왜 안 도와 주었느냐 저는 그런 생각을 해요. 이게 예루살렘 한 가운데서 된 일이라면 도와주었을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보니까, 그러나 이게 산 중에서 된 일이니깐 아무도 안 보잖아요. 그래 안 도와 주었어요. 그 뿐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이겁니다. 저 사람을 도와주다가 내게 어떤 불이익이 올 것이냐 이걸 계산을 했습니다. 만일에 내가 저 사람을 만지다가 저 사람이 죽어 버리면 시체를 만진 게 되요. 시체를 만지면 일주일 동안 성전에 못 들어가요. 그럼 난 제사장 직무를 감당할 수 없지 않느냐 저 사람을 도와주다 내게 돌아오는 불이익, 이것을 생각한 나머지 도와줄 수가 없었어요.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생각이 달랐습니다. 저 사람을 내가 안 도와주면 저 사람이 죽거든요. 내게 오는 이익이나 불이익을 생각한 것이 아니고 이 사람을 먼저 생각한 거예요. 그 사람의 죽음을 생각한 거예요. 생명을 소중히 여긴 나머지 내가 어떻게 될 건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를 도울 수가 있었어요. 이것이 믿음이요. 그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말씀에 예수님은 계속 말씀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마라." 물론 사람에게 소유욕도 있고 명예욕도 있고 지배하는 요구하는 정치적인 욕망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것은 자기 실현의 욕구인데 이것을 자기 진실에서 찾지 못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찾으려고 할 때 병드는 겁니다. 그런고로 사람은 먼저 이웃으로부터 자유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나 이렇게 평가하든 저렇게 평가하든 그 일이 내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여론이이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어요. 사실이 무서울 뿐이지. 어떠한 나쁜 여론도 사실이 아니라면 꼭 넉달만 지나가면 없어진답니다. No problem. 초조하게 변명하려고 들지도 말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뛰어들 것도 없어요. 문제는 사실만이 문제요. 그런고로 우리는 모든 사람의 시선과 평판으로부터 일단 자유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유해야 합니다. 자기 욕망, 자기 명예욕, 자기 허영, 자기 위선취향적 성향, 이 이런 것들로부터 완전히 자유 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 이 교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할 때 그는 정말 행복할 것입니다. 좀더 깊은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께 대한 신앙, 그것에서부터도 또 자유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하면, 하나님께로 받는 축복, 보상, 또 하님 앞에 의로운 자로 나타나고자 싶은 고 자기의. Self Righteousness 에 매이는 마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 받겠다고 하는 그런 마음, 나는 하나님의 심판되시니, 큰 칭찬과 복을 받아 낼려고 하는 그런 마음. 사실은 이것으로부터도 자유해야 합니다. 왜요 내가 언제 죄인이 아니었습디까 내가 오늘 백 번 맹세한들 앞으로 죄 안 짓고 살수 있습니까 과거도 미래도 나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는 말합니다. 오직 믿음은 오직 긍휼을 말하는 것이다. 그저 하나님,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과거도 미래도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궁휼만 의지하겠습니다. 이래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기 의로부터 완전히 자유하게 될 때 그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선한 일을 해서 그 결과로 칭찬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칭찬 받기 위해 선한 일을 하면 불신앙입니다. 깊이 생각해야합니다. 또한 오늘 성경에 말씀하시는 두 번째 중요한 교리는 하나님이 보신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신다. 하나님이 들으신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기도하기 전에 아십니다. 그런고로 하나님 앞에 정보 제공하려고 하는 기도를 해서는 안됩니다. 모르시는 하나님 알려 드리려고 하고, 어떨 때는 하나님의 고문관이 되려고 해요. "그래선 안됩니다. 이래야 됩니다. 내게 복을 줘야지 왜 저 사람에게 줍니까" 뭐 이따위 기도요. 이게 얼마나 불신앙입니까 하나님의 그 크신 역사 앞에 무슨 잔소리가 이렇게 많아. 무슨 불만이 이렇게 많아요. 이게 다 열심히 기도하는 것 같아도 불신앙이예요. 특별히 성경에 보면은 "중언부언하지 마라. 말을 많이 해야될 것처럼 생각하지 마라" 이것 또한 불신앙이요. 그런고로 신앙하는 생활 중에 많은 불신앙적 요소가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아십니다. 깊이 아십니다. 여러분 이런 말이 있잖아요. 아담 이브 신드롬이라는 말이 있어요.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 삽니다.
그런데 무슨 불만이 많아요 뭐 때문에 선악과를 따먹어야 합니까 또 그런가하면 죄를 짓고 숨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세요. 또 죄를 서로 전가하는 모습도 보세요. 아담, 하와로부터 물려받은 원죄적 죄악 현상이 우리 마음속에 그대로 있어요. 이 모두가 한마디로 말하면 불신앙이었어요. 에덴동산에서 불신앙이었어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앙이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이올시다. 그런고로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신다. 하나님이 아신다." 그 말로 충분히 위로가 됩니다. 충분히 만족합니다. 이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고 하나님이 보신다 할 때에 두려움이 앞서면은 그 사람은 신앙에서 멀어진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욥기 22장에 보면 "오직 그가 아십니다. 아무도 몰라도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우리의 깊은 뜻을 아십니다. 우리의 동기를 아십니다. 숨은 마음까지 다 아십니다. 특별히 예수님 친히 비유로 말씀하신 것 들어보세요. 어떤 사람이 바리새 교인이 많은 돈으로 헌금을 합니다. 자랑하면서. 그러나 과부는 너무 적은 돈이라서 부끄러워서 과부가 엽전 두 푼, 두 렙돈을 이걸 갔다가 하나님의 성전에 정말 숨겨가면서 드렸다 그 말이에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 부자는 적은 것을 드렸고 이 과부는 자기의 생활 전부를 드렸느니라." 나 거기에 이의 제기 하겠습니다. 그게 전부입니까 입은 옷도 있고 집도 있고 또 아직도 가진 게 많이 있어요. 문제는 엽전 두 푼이지만은 하나님은 받으실 때 전부로 받았다는 얘깁니다. 왜요 정성이 있으니까. 그 마음이 거기 담겼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여인의 신실함을 아십니다. 고넬료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구제한 것이 하나님께 상달되었다고 말합니다. 비록 로마 사람이지만은 그 중심이 하나님께 있었어요. 하나님이 그를 아셨습니다. 다 알고 계셨습니다. 또한가지 오늘 본문이 주시는 교훈은 하나님이 갚으신다는 데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믿음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이 채워주시고 하나님이 갚아 주십니다. 예수님이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냉수 한 그릇, 냉수 한 그릇을 주의 이름으로 주었을 때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어떤 선행이든 어떤 의든 어떤 기도든 하나님이 갚으신다는 것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늘에 쌓아 두는 것입니다. 이건 하나님이 갚으십니다. 죄송하지만 제 개인적인간증을 드립니다. 저는 북한에서 나올 때 혈혈단신 성경책 하나 들고 덜렁덜렁 뛰어 나왔습니다만은 오늘까지 밥 굶은 일없고 또 유학도 하고 넉넉하게 제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재벌보다 제가 잘 삽니다. 재벌들은 빚이 많데요 나는 빚이 없으니까. 아무 돈걱정 안하고 사는데 이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생각합니다. 저의 집에서 어렸을 때 보니까 거지가 많이 찾아오고 불쌍한 사람들 올 때 참 정성을 다해서 도와요. 그 배고프다고 온 사람에게 쌀을 줄 때 며느리가 얼마를 갖다 주면은 시어머니가 뒤에서 보고, "야 좀 더 갖다 줘라. 어려운 거 같다." 꼭 그렇게 말씀하세요. 왜 많이 주느냐 하는 일은 없어요. 또 어떤 때 배고파서 밥을 먹고 가야 될 사람일 때는 "꼭 밥상을 받쳐라." 그럽니다. 그냥 갖다 주면 안된데요. "밥상을 받쳐서 제대로 잡숫도록 해라." 이 말씀을 하세요. 그 덕에 내가 오늘 잘 삽니다. 나는 그 때는 몰랐습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무슨 일을 많이 하고 계신지 몰랐습니다. 여기 와서 보니까 어떤 목사님들이 제게 말씀하세요. "할아버지가 내게 장학금을 주어서 내가 일본 가서 공부했구만. 당신의 할아버지가 장학금을 주어서 내가 목사가 됐다고." 그렇게 장학금을 많이 줬더라고요. 할아버지는 이걸 말한 바가 없어요. 내가 유학을 두 번 갔는데 넉넉한 장학금을 받아서 가서 공부했습니다. 저는 돈 한 푼 가지고 간 게 없거든요.
그런데 그거는 우리 할아버지가 장학금 준 것을 내가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현실적으로 보상하시고 미래에 보상하시고 자손에게 보상하시고 하늘나라에서 보상하신다고 하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세요. 이것이 신앙이요. 이제 초조해 할 것도 없고 불안해 할 것도 없어요. 나 모르게 비밀스럽게 은근히 한 일도 하나님이 또 은근히 갚아 주세요.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이 은밀하게 이것이 하나님의 보상하시는 방법입니다. 신앙인에게 불신앙이 많습니다. 바리새 교인과 서기관들 누구보다 잘 믿는다는 사람들이지만은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어요. 자기 의를 믿었고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다가 씻을 수 없는 죄인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참 믿음, 참 자유, 참 행복 그것은 은밀한 가운데, 그리고 비밀한 가운데 깨끗한 하나님께 향한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때, 거기에 진정한 행복과 자유와 용기가 있는 것입니다. 또 지혜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고 하며 "하나님 아버지"하고 불러놓고도 이 생각 저 생각… 도대체 이게 무슨 믿음이냐 그거예요.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 세상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 진실하다고 하면서 어째서 이렇게 거짓이 많고 위선이 많고 허세가 많고 잘못됐느냐 하는 거죠. 참 중요한 교훈이 아니겠습니까. 히브리서 11장 6절에 신앙의 기본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반드시 믿어야 할지니라. 그가 계신 것,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 그렇습니다. 이 믿음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많은 문제에 부딪치고 있습니다만은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이 세상에는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중요하고 명예도 지식도 권력도 다 중요할는지 몰라도 우리가 오늘 세상을 떠난다고 한다면 하나님 앞에 갈 때는 오직 한 장의 티켓이 필요합니다.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깨끗한 믿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 오직 믿음 하나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 믿음에 문제가 있는 것이예요. 믿는다고 하면서 믿지 않아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나를 믿어요. 제 아는 친구 한 사람은 아주 진실한 얘기이기는 하지만 좀 듣기 어렵습니다. 날 더러 이렇게 말해요. "내가 처가 집을 믿는 것만큼 하나님을 믿는지 모르겠어." 그래요. 왜냐면 처가 집이 부자예요. 그래 목사의 생활은 어렵지만 전화만 걸면 다 갖다 주거든요. 아이들의 학비고 뭐고 한 번도 걱정해 본 일이 없대요.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에요. 처가 집 믿는 믿음이에요. 이거 확실히 문제 있다. 본인이 진실하게 얘기하는 걸 보았어요. 그 사람들이 돈 있으면 돈 의지하고 지식 있으면 지식 의지하고 학벌 있으면 학벌 의지하고 건강하면 자기 건강을 믿고. 가만히 보세요. 다시 한 번 물어 봅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믿습니까 이 믿음에 문제가 있어요. 그것은 함정이 있고 시험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위선이에요. 외식이요, 형식주의요, 형식적으론 믿음이 있으나 내용이 없어요. 어느 사이에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 자기도 자기에게 속은 거예요. 믿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믿음이 없어요. 믿음이 아니었어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건 바로 모든 생활의 근본이 되는 동기의 문제입니다. 중심의 문제올시다. 인간들은 결과에 의해서 동기와 목적을 평가받으려고 합니다. 잘못된 일인 줄 압니다. 그래도 이것을 통해서 잘 돼서 마지막 결과만 좋으면 이 모든 잘못도 정당화 될 수 있지 않겠느냐 이런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것을 허락지 않습니다. 깊이 알아야 합니다. 그 옛날 독일의 히틀러라는 사람은 세상을 참 소란하게 만든 사람으로 대표자입니다. 그는 많은 군중들 앞에서 네 가지 덕, Four Virture 를 말했습니다.
첫째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라.둘째는 역경을 이기는 인내심을 가지라.셋째는 지도자에 대한 충성을 다하라. 그리고 법을 따르는 정신을 가지자. 그래서 애국심, 인내심, 충성심 그리고 준법정신, 네 가지를 주장할 때 모든 국민이 그를 밀었습니다. 지지 성원을 받아서 그는 영웅이 됐습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하여 독일과 또 그리고 온 세계는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왜요 그의 생각 속에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의 생각에는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라도 이 소원만 이루면 또 그리고 게르만 민족을 온 세계에 높이 올려놓으면 된다고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 모든 잘못된 일들은 다 정당화 될 거라고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은 얼마나 많은 손해를, 상처를 입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말씀은 가장 귀한, 가장 깨끗한 믿음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첫째가 은밀하게 하라. 비밀스럽게 하라. 하나님과 나만이 나는 그런 은밀함을 말합니다. 아주 단순한 마음으로 행하라는 겁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마라. 오늘 본문에 세 번이나 강조합니다. 1절, 5절, 15절에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마라. 구제할 때 나팔불지 마라. 현대인들은 자기 PR의 시대가 됐다고 해서 자기 자랑하기를 좋아해요. 그래서 제가 글쎄 이건 개인 의견입니다만은 전에 없던 일이라서 그런지 제 마음에 못마땅한 게 하나 있어요. 그것은 이 명함을 교환할 때가 있는데, 명함을 받고 보니까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자기 사진이 있어요. 그 뿐만 아니라 자기 마누라 사진까지 있어요. 내가 그 분의 마누라까지 알아야 될 이유가 뭡니까 떡 이걸 보여줘요. 난 도대체 이게 못마땅해요. 자기 선전을 하는 거예요. 사람에게 보이려고, 이건 불신앙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기도할 때에 또 자기 자랑하는 것처럼 답답한 게 없고요, 기도할 때에 기도를 통해서 남 훈계하려는 사람도 있어요. 미사 여구를 통해서 많은 사람 앞에 연설을 하는 거예요 도대체가. 이거는 불신앙입니다. 사람에 의식 속에는 이런 것이 좀 있습니다. 그 첫째가 뭐냐하면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날 보고 있으니까. 사람의 욕구 중에 자기 실현의 욕구가 아주 중요하거든요.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려고 합니다. 물론 좋은 의미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해요. 우리 교인들이 특별히 여자 분들이 이렇게 밖에 나오려면은 얼굴을 매만지고 화장도 하고 그런 거 같습니다. 그 깨끗하게 보이려고 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어느 선을 딱 넘으면 시원치 않은 사람이 예쁘게 보이려고,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더 예쁘게 보이려고, 사실은 마음이 지금 썩어서 죽을 지경인데 좀더 밝게 보이려고 뭐 빨간 걸 좀 바른다며. 자 이거 보세요. 이게 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마음이에요. 좋게 보이려고. 더 우스운 것은 남편이 극구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화장하는 여자가 있죠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립니까 그래서 이 화장대 앞에 두 시간 이상 앉아 있는 사람은 상당한 부분의 바람기가 있다는 거 아닙니까 도대체 누구를 유혹하려고,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이 마음 여기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어쨌든 사람들은 누구나 다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데 문제는 여기에 있어요. 사실대로 여기까지가 진실인데 사실 이상으로 보이려는 거예요. 진실 이상으로 보이려고 할 때 이게 거짓이거든요. 사실은 피곤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이런 마음 가지고 사는 사람 아주 피곤합니다. 마지막엔 지쳐서 우울증 환자가 돼 버립니다요. 이것, 이런 신경을 딱 꺼버리고 사는 사람 아주 자유합니다. 오늘도 가만히 보세요. 짙은 화장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얼굴이 썩었어요. 왜 그러냐 남 신경 쓰느라고. 화장 없이 사는 사람이 명랑합니다. 난 이대로 내 모습 이대로 삽이다. 얼마나 자유해요. 이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처럼 불행한 일이 없거든요. 또 평판이나 칭찬을 받으려는 마음, 자기 행위를 통해서 좋은 말 들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실 무슨 별로 잘나지도 못했는데. 뭐 그런다고 잘 될 것도 없어요. 어떻게 좋은 말만 듣고 살겠습니까 어느 사회학자가 연구해 보니까 이거는 80대 20이라고 그럽니다. 언제나 80은 좋은 말을 듣고 20은 나쁜 말을 듣게 돼있어요.
그런데 80의 좋은 말을 들은 거 고맙게는 생각 안하고, 20 나쁜 말 듣는 거 이거 신경 쓰고 잠을 못 자는 거예요. 그 사람도 위선자요. 대단한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의 평판이나 칭찬, 너무 신경 쓰는 거 불행한 일이고요. 또 사람으로부터 오는 유익을 생각합니다. 이익을 계산합니다. 여기에 또한 문제가 있어요. 어떤 일 보자마자 내게 돌아오는 이익부터 계산하는 거예요. 성경에 보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가 있지 않습니까 여리고로 가는 길에 불한당 맞은 사람, 강도 만난 사람이 피투성이가 돼서 죽기 직전에 누워있었다. 제사장이 보고 지나가고, 레위 사람이 그저 보고 지나갔다. 마지막에 너희들이 멸시하는 천한 사람이지만 사마리아 사람이 저를 돌보았다. 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제 생각해 보십시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왜 안 도와 주었느냐 저는 그런 생각을 해요. 이게 예루살렘 한 가운데서 된 일이라면 도와주었을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보니까, 그러나 이게 산 중에서 된 일이니깐 아무도 안 보잖아요. 그래 안 도와 주었어요. 그 뿐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이겁니다. 저 사람을 도와주다가 내게 어떤 불이익이 올 것이냐 이걸 계산을 했습니다. 만일에 내가 저 사람을 만지다가 저 사람이 죽어 버리면 시체를 만진 게 되요. 시체를 만지면 일주일 동안 성전에 못 들어가요. 그럼 난 제사장 직무를 감당할 수 없지 않느냐 저 사람을 도와주다 내게 돌아오는 불이익, 이것을 생각한 나머지 도와줄 수가 없었어요.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생각이 달랐습니다. 저 사람을 내가 안 도와주면 저 사람이 죽거든요. 내게 오는 이익이나 불이익을 생각한 것이 아니고 이 사람을 먼저 생각한 거예요. 그 사람의 죽음을 생각한 거예요. 생명을 소중히 여긴 나머지 내가 어떻게 될 건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를 도울 수가 있었어요. 이것이 믿음이요. 그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말씀에 예수님은 계속 말씀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마라." 물론 사람에게 소유욕도 있고 명예욕도 있고 지배하는 요구하는 정치적인 욕망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것은 자기 실현의 욕구인데 이것을 자기 진실에서 찾지 못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찾으려고 할 때 병드는 겁니다. 그런고로 사람은 먼저 이웃으로부터 자유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나 이렇게 평가하든 저렇게 평가하든 그 일이 내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여론이이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어요. 사실이 무서울 뿐이지. 어떠한 나쁜 여론도 사실이 아니라면 꼭 넉달만 지나가면 없어진답니다. No problem. 초조하게 변명하려고 들지도 말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뛰어들 것도 없어요. 문제는 사실만이 문제요. 그런고로 우리는 모든 사람의 시선과 평판으로부터 일단 자유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유해야 합니다. 자기 욕망, 자기 명예욕, 자기 허영, 자기 위선취향적 성향, 이 이런 것들로부터 완전히 자유 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 이 교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할 때 그는 정말 행복할 것입니다. 좀더 깊은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께 대한 신앙, 그것에서부터도 또 자유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하면, 하나님께로 받는 축복, 보상, 또 하님 앞에 의로운 자로 나타나고자 싶은 고 자기의. Self Righteousness 에 매이는 마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 받겠다고 하는 그런 마음, 나는 하나님의 심판되시니, 큰 칭찬과 복을 받아 낼려고 하는 그런 마음. 사실은 이것으로부터도 자유해야 합니다. 왜요 내가 언제 죄인이 아니었습디까 내가 오늘 백 번 맹세한들 앞으로 죄 안 짓고 살수 있습니까 과거도 미래도 나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는 말합니다. 오직 믿음은 오직 긍휼을 말하는 것이다. 그저 하나님,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과거도 미래도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궁휼만 의지하겠습니다. 이래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기 의로부터 완전히 자유하게 될 때 그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선한 일을 해서 그 결과로 칭찬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칭찬 받기 위해 선한 일을 하면 불신앙입니다. 깊이 생각해야합니다. 또한 오늘 성경에 말씀하시는 두 번째 중요한 교리는 하나님이 보신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신다. 하나님이 들으신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기도하기 전에 아십니다. 그런고로 하나님 앞에 정보 제공하려고 하는 기도를 해서는 안됩니다. 모르시는 하나님 알려 드리려고 하고, 어떨 때는 하나님의 고문관이 되려고 해요. "그래선 안됩니다. 이래야 됩니다. 내게 복을 줘야지 왜 저 사람에게 줍니까" 뭐 이따위 기도요. 이게 얼마나 불신앙입니까 하나님의 그 크신 역사 앞에 무슨 잔소리가 이렇게 많아. 무슨 불만이 이렇게 많아요. 이게 다 열심히 기도하는 것 같아도 불신앙이예요. 특별히 성경에 보면은 "중언부언하지 마라. 말을 많이 해야될 것처럼 생각하지 마라" 이것 또한 불신앙이요. 그런고로 신앙하는 생활 중에 많은 불신앙적 요소가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아십니다. 깊이 아십니다. 여러분 이런 말이 있잖아요. 아담 이브 신드롬이라는 말이 있어요.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 삽니다.
그런데 무슨 불만이 많아요 뭐 때문에 선악과를 따먹어야 합니까 또 그런가하면 죄를 짓고 숨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세요. 또 죄를 서로 전가하는 모습도 보세요. 아담, 하와로부터 물려받은 원죄적 죄악 현상이 우리 마음속에 그대로 있어요. 이 모두가 한마디로 말하면 불신앙이었어요. 에덴동산에서 불신앙이었어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앙이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이올시다. 그런고로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신다. 하나님이 아신다." 그 말로 충분히 위로가 됩니다. 충분히 만족합니다. 이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고 하나님이 보신다 할 때에 두려움이 앞서면은 그 사람은 신앙에서 멀어진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욥기 22장에 보면 "오직 그가 아십니다. 아무도 몰라도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우리의 깊은 뜻을 아십니다. 우리의 동기를 아십니다. 숨은 마음까지 다 아십니다. 특별히 예수님 친히 비유로 말씀하신 것 들어보세요. 어떤 사람이 바리새 교인이 많은 돈으로 헌금을 합니다. 자랑하면서. 그러나 과부는 너무 적은 돈이라서 부끄러워서 과부가 엽전 두 푼, 두 렙돈을 이걸 갔다가 하나님의 성전에 정말 숨겨가면서 드렸다 그 말이에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 부자는 적은 것을 드렸고 이 과부는 자기의 생활 전부를 드렸느니라." 나 거기에 이의 제기 하겠습니다. 그게 전부입니까 입은 옷도 있고 집도 있고 또 아직도 가진 게 많이 있어요. 문제는 엽전 두 푼이지만은 하나님은 받으실 때 전부로 받았다는 얘깁니다. 왜요 정성이 있으니까. 그 마음이 거기 담겼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여인의 신실함을 아십니다. 고넬료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구제한 것이 하나님께 상달되었다고 말합니다. 비록 로마 사람이지만은 그 중심이 하나님께 있었어요. 하나님이 그를 아셨습니다. 다 알고 계셨습니다. 또한가지 오늘 본문이 주시는 교훈은 하나님이 갚으신다는 데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믿음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이 채워주시고 하나님이 갚아 주십니다. 예수님이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냉수 한 그릇, 냉수 한 그릇을 주의 이름으로 주었을 때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어떤 선행이든 어떤 의든 어떤 기도든 하나님이 갚으신다는 것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늘에 쌓아 두는 것입니다. 이건 하나님이 갚으십니다. 죄송하지만 제 개인적인간증을 드립니다. 저는 북한에서 나올 때 혈혈단신 성경책 하나 들고 덜렁덜렁 뛰어 나왔습니다만은 오늘까지 밥 굶은 일없고 또 유학도 하고 넉넉하게 제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재벌보다 제가 잘 삽니다. 재벌들은 빚이 많데요 나는 빚이 없으니까. 아무 돈걱정 안하고 사는데 이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생각합니다. 저의 집에서 어렸을 때 보니까 거지가 많이 찾아오고 불쌍한 사람들 올 때 참 정성을 다해서 도와요. 그 배고프다고 온 사람에게 쌀을 줄 때 며느리가 얼마를 갖다 주면은 시어머니가 뒤에서 보고, "야 좀 더 갖다 줘라. 어려운 거 같다." 꼭 그렇게 말씀하세요. 왜 많이 주느냐 하는 일은 없어요. 또 어떤 때 배고파서 밥을 먹고 가야 될 사람일 때는 "꼭 밥상을 받쳐라." 그럽니다. 그냥 갖다 주면 안된데요. "밥상을 받쳐서 제대로 잡숫도록 해라." 이 말씀을 하세요. 그 덕에 내가 오늘 잘 삽니다. 나는 그 때는 몰랐습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무슨 일을 많이 하고 계신지 몰랐습니다. 여기 와서 보니까 어떤 목사님들이 제게 말씀하세요. "할아버지가 내게 장학금을 주어서 내가 일본 가서 공부했구만. 당신의 할아버지가 장학금을 주어서 내가 목사가 됐다고." 그렇게 장학금을 많이 줬더라고요. 할아버지는 이걸 말한 바가 없어요. 내가 유학을 두 번 갔는데 넉넉한 장학금을 받아서 가서 공부했습니다. 저는 돈 한 푼 가지고 간 게 없거든요.
그런데 그거는 우리 할아버지가 장학금 준 것을 내가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현실적으로 보상하시고 미래에 보상하시고 자손에게 보상하시고 하늘나라에서 보상하신다고 하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세요. 이것이 신앙이요. 이제 초조해 할 것도 없고 불안해 할 것도 없어요. 나 모르게 비밀스럽게 은근히 한 일도 하나님이 또 은근히 갚아 주세요.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이 은밀하게 이것이 하나님의 보상하시는 방법입니다. 신앙인에게 불신앙이 많습니다. 바리새 교인과 서기관들 누구보다 잘 믿는다는 사람들이지만은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어요. 자기 의를 믿었고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다가 씻을 수 없는 죄인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참 믿음, 참 자유, 참 행복 그것은 은밀한 가운데, 그리고 비밀한 가운데 깨끗한 하나님께 향한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때, 거기에 진정한 행복과 자유와 용기가 있는 것입니다. 또 지혜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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