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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에 이르는 향기 (고전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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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거나 말거나 이것은 사실입니다. 믿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얘깁니다. 어떤 사람이 부산에 살면서 좋은 개 한 마리를 키우고 또 훈련을 시켜서 물건을 사러갈 때마다 직접가지 아니하고 개에게 심부름을 시키곤 했답니다. 장바구니에다가 돈을 넣고 물건 사야할 쪽지를 거기다 넣어서 개에다가 물려주면 이 개가 가게에 가서 장을 보아 가지고 오는 겁니다. 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신기하게 생각했더랍니다. 그런데 이 사람네가 대구로 이사하게 됐습니다. 주인은 자기가 지금 대구에 와 있다는 생각을 잠깐 잊어버리고 개에게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이 개는 장바구니를 입에 물고 집을 떠났는데 사흘동안 돌아오지 않는 겁니다. 사흘 후에 그 부산에 있는 가게에서 서울 이 집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개가 여기 심부름 왔다고. 그 놀랍지 않습니까 개가 어떻게 길을 알며 어떻게 부산까지 갈 수 있겠나. 문제는 이것입니다. 개는 자기 냄새를 맡는 겁니다. 자기가 어디로 지내왔던지 지내온 대로 그 냄새가 남아 있어서 그걸 추적해서 다니기 때문에 길을 잃지 않는 것이올시다. 개는 사람에 비해서 코가 400배가 예민하답니다 400배. 그래서 엄청나게 이 냄새를 맡아서 이렇게 길을 잃지 않고 다닐 수 있다 하는 얘깁니다. 모든 물체에는 냄새가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물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에게도 냄새가 있는 것이에요. 우스운 얘기입니다 만은 제가 LA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간혹 한국 가정에서 저를 초대해서 한 번 혼자서 와 계시는데 한번 오라고 해서 저녁을 가끔 대접받곤 했습니다. 어떤 가정에 오래 전에 한 번 갔던 일이 있고 다시 초대를 받았는데 제가 차를 운전해서 밤에 거기까지 갔는데 거의 다 가서 생각나는 것은 집 주소를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 미국사람들의 집은 바람벽에다가 번호를 써 붙였는데 이 집 번호를 보고야 찾겠는데 번호를 잊어버린 겁니다. '이 어떡하나' 난감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혜를 냈습니다. 창문을 다 열어놓고 천천히 동리를 빙빙 돌았습니다. 돌다 보니까 된장 냄새가 나는 집이 있더라고요. 그래 그 집으로 들어가서 집을 무사히 찾았습니다. 그 뒤에 제가 스스로 생각한 것은 개가 따로 없다 이것입니다.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의 냄새가 납니다. 여러분 이 마늘을 잡수시고 김치를 잡수시기 때문에 아무리 뭐 이를 닦고 향수를 뿌리고 별 짓 다 해도요 어림도 없습니다. 피부에서 냄새가 배어 나옵니다. 그래 한국사람의 냄새가 달라요. 나는 이걸 경험했습니다. 제가 기숙사에 오년을 살았거든요. 서양사람들 하고만 같이 살다가 가끔 한국 분들하고 만나면요 냄새가 대단합니다. 그러니까 한국사람은 한국냄새가 있고 서양사람은 서양냄새가 빠다냄새가 나고 그런 거 아닙니까 각각 냄새를 가지고 있다 하는 말입니다. 이걸 부인할 수가 없어요. 더 무서운 것은 마음에서 냄새가 나는 거예요. 착한 마음을 가졌을 때에 향내가 나고, 많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고, 생기를 주고, 활기를 주고, 소망을 주고, 총명을 주고, 건강을 주고, 화평을 줍니다. 그런가 하면 마음이 악하고, 혹은 시기, 질투, 이런 마음으로 가득 차면은 불쾌해지고 기분을 상하게 하고 용기를 잃어버리게 하고 좀 더 나아가서는 화를 내게 만들어요. 이건 사망에 이르는 냄새입니다. 여기 물적 증거가 있습니다. 제가 아는 친구 목사님이 교회에서 목회 하는데 그 교회가 한 오백명 모이는데 그 교회 마당이 바로 사택입니다. 거기에 개를 한 마리 키우는데 그 수백명의 사람, 어린아이까지 오고 가고 해도 이 개가 절대로 짖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어쩌다가 수상한 사람 하나만 오면 막 짖습니다. 개가 얼굴보고 아는 게 아니에요. 냄새로 아는 겁니다. 수상한 사람은 수상한 냄새가 나거든요. 믿거나 말거나. 이걸 알아야 되요. 자기 냄새를 풍기고 있다는 걸 나는 모르지만 저 예민한, 400배가 예민한 개는 알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짖는 거예요. 소리를 듣고 짖는 게 아니요. 냄새로 구별하는 것이올시다. 자 이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요새는 감성공학이라고 하는 학문이 있다고 합니다, 저도 잘 모르는 얘깁니다만은. 왜냐면은 요새 지성보다 감성이 중요하니까. 감성지수가 높아야 합니다. 감성지수를 물리적으로 해결하다 보니까 이런 얘기들이 나옵니다. 감성을 움직이는 게 뭐냐 할 때 빛, 소리, 진동, 냄새, 이런 것들이요. 그래서 이것들이 신경과 그 뇌파에 적용을 하고 심장 맥박을 좌우하면서 감성을 움직인다 하는 겁니다. 이제 냄새 즉, 향내로 돌아가 생각해 보면 좋은 냄새는 방부적 역할을 하고 살균 효과가 있고 피부 세포를 재생한다 그랬어요. 좋은 냄새를 맡아야 피부색이 좋아진다. 그리고 또 성장 촉진을 하고 통증을 제거하기도 하고 면역기능을 높여주고 정신신체를 조절해 준다. 다시 말해서 감정 조절하고 기억력도 그리고 인지능력도 높여준다. 그게 향기올시다. 그 이유는 이 코가 뇌하고 가까이 있기 때문에 이 코에 작용하게 될 때 이것은 즉각으로 뇌에 전달이 되면서 바로 호르몬 분비를 조절하게 된다. 어떻습니까 그런고로 이 냄새가 주는 효과, 그건 육체에는 말할 것 없지만은 그 온 몸에 큰 영향을 주고 있고 심지어는 기분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가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고, 소망에 차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그런 얘기입니다. 정신 상태가 맑아지기도 하고 흐려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선해지기도 하고 악해지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감성 공학이 주는 결론입니다.
이 냄새라는 것은 퍼지는 것이고 또 전파되는 것입니다. 냄새는 진실합니다. 말은 거짓말을 할 수 있어도 냄새는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이건 남는 것이요 이것은 배어드는 것이올시다. 축적됩니다. 그 뿐 아니라 영향력을 끼칩니다. 또한 냄새는 동화작용도 잘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대로 수색견이 바로 이것을, 이 냄새의 진실을 따라서 수색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 문제는 인간의 냄새입니다. 사랑은 향기요 증오는 악취로 작용합니다. 대단히 답답하고 슬픈 얘기지만 어린아이들의 냄새는 참 향기롭고 좋습니다. 젊은이의 냄새도 좋습니다. 늙은이의 냄새가 좀 힘듭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냄새의 진실은 막을 길이 없어요. 노화라고 하는 냄새 이것이 있는 것이에요. 오늘 본문 성경에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그리스도의 향기! 이거 중요한 말씀이요. 역사적 배경을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옛날은 전쟁을 할 때가 되면은 육박전을 했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겁니다. 저는 진짜 육박전은, 제가 정말로 무서운 육박전은 딱 한번 참전한 때가 있었습니다만은 참 무서운 겁니다. 멀리서 총을 쏘고 폭탄을 터뜨리고 하는 게 아니고, 마주 서 가지고 그냥 찌르고, 베고, 때리고 하는 이런 육박전 말입니다. 이렇게 몸으로 부딪치는 싸움을 했거든요. 온 몸에 피가 묻고 그 살기가 등등하고 이렇습니다.
전쟁은 이렇게 해서 어느 편이 이기고 어느 편이 지게 됩니다. 이긴 편도 온 몸에 피가 묻고 그 마음도 살기가 등등합니다. 바로 이런 상태입니다. 그런 중에 전쟁에 이기고 성에 들어옵니다. 이걸 개선이라고 그러죠. 개선행진이 이루어집니다. 그럴 대는 앞에 장군이 말을 타고 갑니다. 그 뒤에 커다란 향로가 마차 위에 실려있고 거기에다가 많은 향을 피워서 향이 연기가 아주 그야말로 옹기점 연기처럼 많이 피워 오릅니다. 그리고 그 뒤에 전쟁에 가담한, 이긴 군사들이 의기양양하게 발을 맞추어 들어옵니다. 바로 그 뒤에는 이제 패전한 군인들, 전범들, 포로들, 쇠사슬에 묶여서 간신히 걸음을 옮기면서 끌려들어옵니다. 이 패전군 바로 뒤에는 전리품이 마차에 실려서 들어옵니다. 이게 행진입니다. 이 큰 행진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향입니다. 이 향불을 엄청나게 큰 향로로 피워 대는데 왜 이렇게 하느냐 하면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위생적 요인입니다. 피 비린내가 나니까요. 이 피 비린내, 이걸 맡으면은 살기가 올라옵니다. 미운 마음이 생깁니다. 복수심이 생깁니다. 그런고로 이 피 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서 향을 피우는 것이에요. 위생적 요소가 크고요. 그 다음에는 좀 미신적인 거 같지만은 당시로서는 이것이 중요합니다. 죽은 사람들, 그 가운데는 억울하게 죽은 사람도 많거든요. 그 사람들의 악령이 쫓아온다고 생각해서 이 악령들을 떨쳐 버리기 위해서 향불을 피우는 거예요. 악령은 이 향을 싫어한다 생각해서 이 향불을 피웠다 이말입니다. 자 이제 이 연기가 올라오고 많은 사람들이, 주민들이 모여서 환호성을 올리고 개선 장군과 그 일행을 맞이하게 됩니다. 만세를 부르면서. 이제 생각해 보세요. 여기에 이 향은 심판적 요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향을 기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긴 사람들은 기뻐하고, 승리자는 기뻐하고 이 승리한 군인들을 환영하는, 승리자와 이 개선하는 사람들과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은 기뻐합니다. 이 향내를 맡으면서 생기가 솟아오릅니다. 용기가 생깁니다. 생명에 이릅니다. 기운이 없던 사람도 기운을 내고, 정말 앓아 누웠던 사람도 이 향기를 맡으면서 병이 낳는 거예요. 그런 생명적 큰 역사가 이루어집니다만은 저 뒤에 따라오는 포로들, 그 패전 군인들에게는 이 냄새는 사약입니다. 이 냄새가 그렇게 싫을 수가 없어요. 그뿐만 아니라 이렇게 끌려가서 이제 처형당합니다. 그런고로 죽음에 이르는 냄새가 됩니다.
오늘 성경말씀 대로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냄새요 어떤 사람은 죽음에 이르는 냄새라, 이 말 그대로가 사실입니다. 문자대로 사실입니다. 이 향이, 이 냄새가 구원에 이르는 자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냄새요,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냄새요,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건 죽음에 이르는 냄새요. 그래서 심판적 요소가 있는 것이올시다. 예수님의 생애를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역사하실 때 마치 개선장군처럼 역사합니다. 예수님이 가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모든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용기를 얻습니다. 그리고 모든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소경은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는 일으키고 문둥병자는 깨끗케 하고 열병을 고치고…….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 앞에는 병자가 있을 수 없어요. 병자를 그냥 보고 지나치는 법이 없어요. 모든 병자를 다 고치고 특별히 죽은 자도 살리셨어요. 예수님 앞에는 시체가 누워있을 수가 없어요. 모든 병자, 심지어는 장례식 하는 걸 보고 따라가서 죽은 자를 일으키십니다. 예수님 앞에는 죽음이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단 말입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재미있는 농담을 합니다. "예수님은 다 해 보셨지만 장례식을 못 해 봤다고" 장례식 하러 갔다가 살려내고 말았으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또 더 짓궂은 아이들은 재미있는 얘기를 합니다. "예수님은 어디든지 가실 수 있지만은 공동묘지 옆으로 지나가면 안된다"고. 다 살아날 테니까. 그도 그럴듯한 얘기예요.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생명적 역사가 불 듯이 일어나는 것이에요. 영적으로 육적으로 사회적으로 밝은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보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을 듣자마자 헤롯은 아이쿠, 메시아가 왔다면 나는 보좌를 내 놔야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는 당장 아기예수를 죽이려고 계책을 꾸미고 있지 안습니까 그렇지요. 그런가하면 바리새교인, 서기관, 제사장, 이 사람들 기득권, 자기들이 가졌던 지식, 자기들의 명예,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예수님에게 보좌를 양보하지 않으려고하고 보니깐 그들은 예수님의 풍기는 냄새가 그렇게 싫었어요. 아주 고약하게 느꼈어요. 그래서 마침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게 되는 거예요. 예수님의 냄새가 역겨워서 견딜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깊이 생각할 문제올시다. 꼭같은 냄새인데 한 사람에게는 구원에 이르는 냄새요, 한 무리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되었단 말이에요. 그런가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그 교훈을 바로 깨달았는지, 그건 의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삼년동안 동행을 하게 됩니다. 이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성령님이 충만하게 될 때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부활의 복음을 전하게 되는데 기탄없이 말했다고 사도행전 4장 13절에서 말합니다. 그 말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심지어 예수의 제자들을 다 몰살해 버리려고 하는데, 이미 죽이기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넘어서서 죽음의 공포, 모든 불안을 다 넘어서 담대하게 기탄없이 거침없이 복음을 전하는 거예요. 저들은 놀랐습니다. 이 사람들이 불학무식한 사람들인줄 알았는데 '아그람마타' 라고 그럽니다. 글도 모르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용기 있게 지혜롭게 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그 복음만 전했습니까 이 전하는 것이 표적으로 일어났어요.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문둥이가 깨끗해지고…….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3,000명이 모여서 회개하고……. 굉장하지 않았습니까 자 이렇게 될 때에 기탄없이 말하는 걸 보고, 저들이 놀랐습니다. 이제 해석이 나왔습니다. 이거 어떻게 된건가 저들이 예수와 함께 했다는 걸 알았어요. 예수님과 삼년 동안 함께 하더니 예수님의 냄새가 뱄어요. 예수님의 영향을 받았어요. 그래서 이제는 예수의 향기가 되었어요. 가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저의 아이들이 어릴 때 겪었습니다만은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가면 어린아이들이 냄새 맡고는 "아버지 담배 피었어." 그러더라고요. "담배라니" 담배 냄새 난다고, 그렇죠. 내가 버스를 타고 다니니까 거기 담배 피우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 버스를 타고 어디어디 둘러 오다보면 벌써 냄새가 내 몸에 배서 집에 들어서자마자 이 순진한 아이는 담배 냄새 난다고 당장 얘기해요.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누구와 함께 했는지 냄새가 난다고요. 그리스도와 함께 했으면 그리스도와 오랫동안 함께 하고 그리스도를 사랑했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면 그리스도의 냄새가 나고 그렇죠 좋지 않은 사람과 함께 했으면 거기서 악취가 묻어오는 것이죠.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냄새를 풍겼어요. 생명의 냄새를 풍겼단 말이에요. 여러분 요새 우리는 신문을 보면서 가끔 슬픈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뭐 요새 뭐 누구누구 할 것 없이 다 잘못되고 다 부정합니다만은 그렇다고 하지만은 지금 대표적으로 몇 사람 구설수에 올라서 뭐 감옥에 들락날락하고 신문에 이름나는 사람이 있자나요.
그런데 문제는 가끔 제게 질문이 와요. "목사님 그분들 가운데 누구누구누구가 기독교인이라면서요" 이게 답답합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일은 과일인데 선 과일이 있느니라. 설어서 선 냄새가 나고 과일은 과일인데 썩어서 썩은 과일의 냄새가 나는 거다. 이 기독교인은 기독교인인데, 분명히 교회는 다니는 사람이지만은 선교인이다, 아니면 썩었다 이거요. 그런고로 나타나야 될 그리스도의 향기가 그 생활에 그 몸에 없다 그 말이에요. 이걸 알아야 되요. 그런고로 그리스도와 함께 해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화 할 때, 알게 모르게 심지어는 의식 이전의 얘기요. 나도 모르게 벌써 그리스도의 냄새가 많이 뱄어요. 저는 이런 일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외국 가서 보니까 우리 소망교인들이 사방에 흩어져서, 온 세계에 흩어졌는데 거기에 있는 교인들보고 우리 목사님들이 제게 말하기를 물론 좋은 얘기로 하는 거죠. "목사님, 소망교회 교인들은 달라요." 그래요. 아주 좋은 얘기예요. 두가지, 소망 교회 교인들은 시간을 잘 지켜요. 소망교회 교인들은 자기 자랑을 안해요. 아주 좋은 얘기요. 소망교회 다녔으면 소망교회 스타일이 있어야지. 안 그래요 뭔가 달라야지요 다를 수밖에 진짜 교인이면 다를 수밖에. 뭐 의식적으로 달라 보이려고 애쓸 것도 없어요. 부지런히 그리스도와 함께 하고 교회생활 하는 가운데서 냄새가 배는 거요. 예수 냄새가 충만하게 되는 겁니다. 갈라디아 1장 23절에 보면 바울이 참 부러운 말씀합니다.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무슨 말인고 하니, 다만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 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 내가 예수를 핍박하던 사람인데 내가 확 돌아버려서 이제 예수의 제자가 되고 복음을 전한다 말입니다. 결국은 바울의 말은 이렇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여러분 나로 말미암아 내 주변사람이 무슨 냄새를 맡고 있습니까 나로 말미암아 저가 그리스도의 냄새를 맡고 나로 말미암아 저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고 나로 말미암아 저가 그리스도의 사랑에 접할 수 있을 때 그가 그리스도인이요. 나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냄새가 전해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 오늘도 누구와 함께 하고 계십니까 내 주변에는 어떤 냄새가 풍기고 있습니까 분명히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 거기에 길이 있고 생명의 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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