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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지킵시다 (막10:1-12)

본문

제가 미국에서 살 때 어느 날 보석상을 지나다가 신기한 광고를 목격했습니다. 그 광고의 내용은 "결혼 반지를 빌려 드립니다" 라는 광고였습니다. 결혼반지를 빌려 드립니다. 이것은 결혼이 어짜피 오래 계속되지 않을 것을 전제하는 그 사회의 비극을 풍자하는 광고처럼 보여졌습니다. 요즘 미국의 보석상에는 freedom ring 이라는 자유의 반지를 만드는 습관이 성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함께 살던 부부가 이혼을 한 후에 반지를 가지고 보석상에 오면 일련의 의식을 치루게 됩니다. 음악이 나오고 멘트가 나오기를 "당신의 과거는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망치를 주면 그 망치를 가지고 반지를 부수는 것입니다. 반지를 부수고난 다음에 옆에 주물속에 집어 넣어서 새로운 반지를 만들면 다시 또 멘트가 나오기를 "이제 당신은 자유입니다."라고 하면서 그 반지를 건네줍니다. 그 반지를 가리켜서 freedom ring 자유의 반지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이런 우려할 만한 세계적인 풍조는 한국에도 이제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혼의 통계율이 급속도로 위험할 만한 수준까지 증가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번에 신문에 보니까, 신세대 부부들이 이혼율이 무려 25%를 육박하고 있다. 네 커플 중에 한 커플로 이혼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작년이죠. 1998년 여름에 제가 대표로 섬기고 있는 한미준 한국교회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에서, Korea Gallup에 의뢰해서 한국인들의 신앙의식 조사를 보고한 일이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non Christian 의 경우, 믿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 이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상황에 따라 이혼할 수 있다.가 41.4%이고 이혼해도 무방하다가1.7%. 이혼에 대한 개방적 견해를 표현한 사람이 모두 43.1%에 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43.1%가 이혼에 대해서 개방적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자. 같은 설문을 교회를 출입하고 있는 개신교인들에게 물어 봤습니다. 이 개신교인들의 통계는상황에 따라 이혼할 수 있다.가 교인들이에요. 34.1%,이혼해도 무방하다.가 1.7%. 교인들의 경우에도 이혼에 대해서 개방적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가 합하면 35.9%로 되어 있습니다. 자 우리가 바로 두 주전에 청지기 부흥 세미나를 가지면서 우리 교인들에게 같은 설문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우리 교인들입니다. 또 그 때 그 집회에 참석하신 분들은 대부분 우리 교회 제직들이 중심이 되어 있는 봉사자들 이었습니다. 자. 이 통계결과가 그저께 저에게 결과보고가 올라 왔어요. 자. 이것은 우리 교인들의 통계입니다. 우리 교인들이 어떤 응답을 보였느냐. 상황에 따라 이혼할 수 있다.33.1%. 이혼해도 무방하다.
1.4%. 합해서 34.5%. 이것은 한국 개신교인들의 average 평균통계 35.9%에서 쬐끔 낮은 34.5%입니다. 별로 차이가 없다는 얘기죠. 별로 차이가 없어요. 오늘 본문에 보시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 앞에 나와 그를 시험하기 위한 질문을 합니다. 본문 2절에 보시면,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은 것입니까. 왜 사람들이 예수를 시험했느냐, 학자들의 견해는 두 가지로 갈라집니다.
첫째는, 그 당시 이스라엘 땅, 팔레스타인을 통치하고 있었던 로마에 의해서 임명된 왕은 헤롯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헤롯왕이 이혼을 했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침례요한, 세례요한이 비판하다가 그것 때문에 목숨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잘못 대답하면 그것 때문에 헤롯에게 죽을 수도 있는, 그런 함정이 파져있는 질문이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또 다른 학자들은 이것이 그 당시 유행하던 이혼에 대한 두 가지 견해 중에 예수님이 어디에 속해있는가를 테스트하기 위한 질문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 랍비들은,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을 랍비 혹은 래바이라고 부르죠, 그 랍비의 학파가 두가지로 나뉘어 있었는데 한 학파를 가리켜서 '힐랠'학파 라고 부르고, 다른 학파는 '샴마이'라는 학파로 불리워집니다. 하나는 자유주의를 대표하고 하나는 보수주의를 대표합니다. 소위 힐랠파는 자유주의파라고 할 수 있고 이들은 아주 개방적인 이혼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학파에 속한 사람들은 언제든지 아내와 이혼할 수 있었습니다. 이 힐랠파의 문서들을 보면 우습지도 않은 이유로 그 당시의 남자들이 아내를 이혼하고 있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혼 사유들에 보면 이런 사유들이 있어요. "아침밥을 태웠음으로", "반찬에 소금을 많이 넣었음으로", "집안 청소가 형편 없었음으로", 또 "남편에게 심하게 말대꾸를 했음으로", "길거리에서 여성들이 얼굴을 함부로 보였음으로.“ 자, 이런 때가 있었어요. 여러분. 그래서 이 시대에 사는 여성들은, 이 시대에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영영 세세토록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멘은 한 사람만 했어요. 그러나 여전히 샴마이라는 보수주의파는 배우자의 부정이외에는 어떤 것도 이혼이 합리화 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느 파에 속할까 테스트하려는 그런 의도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질문을 받으며 예수님은 성경적 이혼관을 밝혀 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이혼문제를 넘어서서 결혼의 신성함을 다시 한번 천명하시고 그리고 더 나아가 가정이 왜 중요한 것인가를 오늘날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 유명한 대 로마 제국이 멸망한 원인이 단순히 정치적이거나 군사적인 이유가 아니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로마 제국 멸망의 직접적 원인 가운데 하나는, 도덕적 원인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성도덕의 문란 특별히 가정의 붕괴가 로마 제국의 멸망과 직접적인 관련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유명한 역사적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로마의 철학자인 쎄니카는 그가 스피치 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것을 역설했습니다. "로마의 애국자들이여 가정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가정을 지키십시오. 로마의 애국자들이여 가정으로 돌아가 가정을 지키십시오." 자. 오늘 보문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가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속에서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요. 우리는 본문의 교훈을 몇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혼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혼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자, 본문 2절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 앞에 나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습니까. 자, 예수님 대답이 뭡니까. 예수님은 직접적인 대답을 하는 대신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너희들에게 어떻게 명하였느냐. 오히려 그들에게 반문을 했습니다. 왜 모세의 대답을 물었을까요. 지금 주님은 이 대답을 시도하기 위해서 구약성경의 모세의 말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실 성경의 권위를 넘어설 수 있는 분이 있다면 예수님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 예수님은 성경의 권위 아래 스스로를 두시고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성경에서 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예수님의 제자라면 지금도 우리는 어떤 인생에 문제의 해답을 구할 때마다 성경의 권위로 돌아가서 성경의 말씀에서 그 대답을 찾아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자, 이 질문을 했더니 대답이 뭐예요 4절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본문 4절 다같이 읽습니다. 시작. '가로되 모세는 이혼증서를 써주어 내어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그들의 대답은 성경적으로 올바른 대답이었습니다. 이것은 신명기 24장 1절부터 4절까지의 나온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정확한 대답을 했어요. 예수님이 이 대답을 몰라서 그들에게 물었을까요. 그 대답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이 이 질문을 물으신 중요한 이유가 있는 것은, 구약시대 모세의 법에 이혼할 때 이혼 증서를 주는 습관이 왜 나왔느냐라는 기원을 물어 보심으로써 이혼을 허용하신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가를 그들에게 밝혀 주시고자 한 것입니다. 자, 모세의 법 이전에는 사람들이 이혼할 때 그냥 아무런 이혼증서 없이 이혼을 해 버렸어요.
그런데 이혼을 한 다음에 '나 너하고 못살겠다. 나가라' 이혼을 한 다음에 다시 그 여자를 데리고 와서 사는 일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사회에서는 모세의 법이 발효되고 반포된 다음에는 그 습관이 없어지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이혼증서를 일단 주게 되면 다시는 그 이혼했던 상대와 결합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혼 앞에 심각해지기 시작한 거예요. 내가 한 번 이혼을 해 버리면 저 여자하고 관계는 다시는 회복될 수 없다. 그래서 이혼증서를 주는 습관을 제도화함으로 말미암아서 이혼을 심각하게 생각하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이혼할 때 좀 심각하게 생각하거라.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사건인지 아느냐. 이렇게 이 사건을 통해서 모세는 그 당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자 한 것입니다. 자 이러한 제도가 설정된 이유가 어디 있는가를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밝혀 주십니다. 자, 5절을 계속 읽겠습니다. 본문 5절입니다. 다같이 시작.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다시 말하면 이혼은 하나님의 본래적 의도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이 모세의 법에 제도로 나타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원천이 어디에 있다고 했습니까.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에 있는 죄악성 때문에 불가피하게 필요악과 같이 이 제도가 생겨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 그 원인은 사람의 마음의 완악함 때문이다. 자, 여기서 마음의 완악하다는 것이 뭘 의미 할까요. 이 단어를 연구해 보면, 이 단어가 자주 쓰이는 성경의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자, 모세가 바로와 대결할 때 바로가 점점 마음이 어떻게 돼요. 강팍해졌다. 혹은 완악해 졌다. 똑같은 단어가 쓰여지고 있어요. 그때 이 완악함이란 이런 뜻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뜻을 앎에도 불구하고 자기 길을 가겠다. 내 갈길을 가겠다는 고집. 그것이 완악입니다. 자,
그런데 이혼할 때 비슷한 사람들의 심리가 움직인다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크리스챤들이 이혼을 할 경우에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사람들이 어디 있어요. 다 알죠. 그러나 그 뜻을 알면서도 나는 이제 내 갈길을 가야겠다. 거기에 고집이 있습니다. 완악함이 있습니다. 이런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불가피하게 필요악에서 이혼의 제도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규명하고자 한 것입니다. 자, 이런 사실을 전제하면서 주님이 이것을 환기시키신 이유는 이것은 하나님의 의도는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상당한 상처를 남긴다,
그렇다면 이혼의 위기 앞에서 좀더 신중하게 생각할 수는 없느냐, 지금 이 질문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젊은 세대의 부부들이 신혼부부들이 이혼이 증가되고 있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몰라서. 이런 원인도 있겠죠. 그러나 아마도 더 많은 사람들은 인내심의 결핍 때문이 아닐까. 요즘 젊은 세대들이 information도 많고, 아주 sharp하고 똑똑하지만, 인내심이 기성세대들이 비해서 상당히 결핍되어 있는 것 같아요. 또 정확하게 더 말하면 신중하지 못하다. 너무 쉽게 이것을 결단한다. 너무 중요한 일을 너무 쉽게 결단한다. 이 신중성의 결핍을 우리는 지적해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갑자기 소크라테스 생각이 났습니다. 여러분.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그가 위대한 철학자로도 유명하지만 그 사람 못지않게 그 부인이 유명하죠. 아내가 왜 유명합니까. 악처로 유명합니다. 한번은 소크라테스 집에 손님들이 찾아 왔어요.
그런데 아내가 막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소크라테스가 너무 황당해 가지고 당황을 하면서 자기 아내를 보고, 손님이 왔으니 조용히 하자. 그러니까 더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더 소리를 지르고 막 화를 내는 거예요. 그러더니 옆에 있는 물동이 하나를 갑자기 집어들어 소크라테스 머리 위에 물동이를 뒤집어 씌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손님들이, 아내가 자리를 비켜난 틈에, 아니 어떻게 사시냐고 이 정도가 되면 이혼을 생각해 보셔야지 라고 했더니 소크라테스가 이런 유명한 대답을 했답니다. "천둥이 치면 비가 오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소." 그 다음 말이 또 걸작이예요. "또 비가 오면 날은 곧 개이지 않겠소." 저는 오늘을 살고 있는 젊은 세대가 이런 마음의 여유를 좀 가질 수가 있다면 얼마나 많은 이혼들이 예방될 수가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본받아 그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고자 한다면, 이런 인내심이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 안에 심어진다면 우리는 수많은 이혼의 위기들이 극복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우리의 가정을 견고하게 지키시길 원하십니까. 무엇보다 이혼을 신중하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창조의 계획을 존중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창조의 계획을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 이혼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의 완악함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강조한 다음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의 6절에 "창조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 창조시로부터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몸이니" 여기 '창조시로부터' 라는 말은 하나님은 창조할 때에 본래의 계획은 이렇다 이 말입니다. 오리지날 플랜은 이렇다. 하나님의 창조의 계획은 본래는 이렇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행복한 삶이 무엇일까요 자연스러운 삶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럽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계획과 리듬을 따라가는 것이 제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을 깨뜨리면 사고가 납니다. 창조의 법칙대로 사는 것이 제일 자연스럽고 그것이 행복한 삶이다.
그런데 결혼에 대한 창조의 계획은 무엇인가 어느 날 하나님께서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사랑하게 하시고 이 두사람으로 하여금 한 몸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믿고 한 평생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한 몸을 이루어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본래의 계획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둘이 한 몸이 되는 대신에 셋이 한 몸이 되고, 넷이 한 몸이 되기도 하고. 이런 비극들이 일어나기도 하지요. 오죽하면 이런 유우머가 생겼을까요 에덴 동산에 살고 있던 아담이 계속 한 여자만 보고 사니까 권태가 생겼습니다. 그러자 아담이 사라졌습니다. 며칠후에 나타난 아담을 보고 하와가 뭐를 했을까요 갈비뼈를 세어 봤대요. 혹시 하나 빼서 다른 여자를 만들었을까봐.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아내-여기 9절에 보시면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하나님이 짝지어 주셨다면 오리지날 하게 주신 그 남편, 그 아내보다 더 나은 대안은 없습니다. 저 유명한 자동차왕으로 불리워지던 헨리 포드는 자동차왕이었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가정인이었습니다. 그가 50대의 생일날을 맞이해서 많은 손님들이 자기 집에 왔습니다. 생일 파티가 벌어지고 있는데 한 사람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당신이 가정생활, 부부생활에도 성공한 비밀은 뭡니까 이 때 헨리 포드는 이런 재미난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제가 부부생활에 성공한 비밀은 자동차 산업에 성공한 것과 거의 비슷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희 회사가 자동차 산업에 성공한 것은 한 가지 모델만 집중적으로 개발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마찬가지로 한 여자만 집중적으로 개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바꾸어 갖고 싶은 호기심은 결코 가정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 통계학적인 실증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여류언론인, 방송인, TV에도 자주 나오는 앵커우먼 가운데 바바라 월터스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혼녀입니다. 아주 똑똑한 샤프한 분입니다. 이제 마음이 고독하니까 재혼을 해야겠다. 그래서 어떤 대상이 좋을까 이번에는 제대로 하자. 자기의 적성을 쭉 컴퓨터에 넣고 자기의 적성에 맞는 후보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내니까 굉장히 많은 남자들이 지원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많은 남자들의 인포메이션을 살펴보면서 자기의 적성과 가장 어울리는 남자가 누구인가 하면서 계속 줄여가는 거예요. 마지막에 드디어 후보가 나왔습니다. 누구였을까요 이혼했던 남편이었습니다. 그 메시지는 뭡니까 아주 간단한 메시지입니다. 갈아봤자 소용없다. 하나님의 창조의 계획을 존중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가정을 지키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이혼은 범죄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혼은 범죄입니다. 자, 오늘 본문 10절에 보시면 '집에서 제자들이 이 일을 다시 이 일을 묻자온대' 이것이 너무 심각한 주제니까 집에 들어와 제자들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어떻게 대답을 하셨어요 11절과 12절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 성서학자들은 12절을 보고는 놀라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학자들은 11절의 이 말씀을 가리켜서 이것은 파격적이다. 아니 이것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말해요. 11절이 굉장히 엄청난 말씀이예요. 그 당시에 여권, 전혀 여성의 인권이 고려되지 않던 시절에 이것은 파격적이다 못해 혁명적이다.
왜냐하면 여기에 누구든지 아내를 내어버리는 사람은 간음을 행하는 것이다. 아내를 쉽게 내어버리던 시대에 성경은 말하기를,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아내를 내어버리는 자는 간음을 행하는 것이다. 물론 이혼이 합법화될 수 있는 상황이 몇 개 있습니다.
첫째로, 배우자의 부정. 그러나 배우자가 한번 부정했다 그래서 그것이 무조건 이혼의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성경에 나타난 이 부분들을 조심성스럽게 연구해 보면 그것은 부정이 습관화되어 있는 사람이예요. 부정이 life style이 되어있는 사람. 이런 경우에 이혼은 합법화될 수 있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또 하나 이혼의 합법적인 케이스 가운데 하나를 종교개혁자들은 고린도전서 7장을 읽으면서 이런 곳에서 찾았어요. 만약 내 짝이, 배우자가 불신자일 경우에 불신자인 그가 나를 버린다면 그 이혼은 합법화 될 수가 있다. 버리는 케이스 중에 이런 것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남편이 그냥 행방 불명이 되었어요. 사라졌어요.
그런데 그 의도가 버릴 의도가 있다.
그렇다면 이혼은 합법화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해석들을 종교 개혁자들이 했습니다. 이런 몇 가지의 케이스를 제외하고 남자가 아내를 버리는 것 그것은 간음이다. 성경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간음이라는 것은 구약성경에 보면 돌로 쳐 죽이는 것이예요. 다시 말하면 이 얘기는 그렇게 남편이 아내를 버리는 것은 심각한 범죄다. 성경은 여기 이혼이라는 범죄의 심각성을 예수님의 입술을 빌어 강조하신 것입니다. 구약에도 보면 말라기2장 16절에 '하나님은 이혼하는 것을 미워하시느니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조심해서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혼한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아니예요. 하나님은 죄인을 향해서 끝없는 애정과 그리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혼이라는 행동 그 자체는 미워하신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혼의 죄는 가정을 파괴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깨뜨립니다. 그것은 후손들에게 피할 수 없는 여러가지 상처를 남깁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를 그리고 이땅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에 중대한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혼하는 것을 미워하신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자, 이것은 심각한 경고입니다. 이것은 심각한 경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 이렇게 심각한 어조로 성경이 이혼을 경계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그 만큼 가정이 소중하기 때문에, 그렇게 가정을 보호하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가정이 보호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 조건 없는 언약, 그리고 조건 없는 헌신을 통해서, 조건 없는 사랑 속에 부부는 들어가야 합니다. 자, 이혼의 가능성은 언제부터 시작되냐 하면 조건부 발상을 시작할 때, 상황에 따라 이혼은 가능하다. 지금 이 통계치 30-40% 크리스챤들도 30% 이상이 상황에 따라 가능하다, 이미 우리는 상황윤리를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스도인들도. 자, 이런 사고를 갖기 시작하면 그것은 이혼을 향해서 마음을 쉽게 열 수 밖에 없는 생각의 틀을 이미 우리 안에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조건부로 사랑하는 사람은 쉽게 가정의 위기를 견뎌낼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저 유명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집에 제자들이 놀러 왔습니다. 제자들이 놀러 와서 미세스 아인슈타인에게 아인슈타인의 부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사모님, 사모님은 상대성의 원리를 이해하시죠' 남편이 발견하고 강조한 것이니까 상대성의 원리를 이해하십니까 그러니까 이 부인이 ‘상대성 원리요 솔직히 말해서 잘 몰라요. 그러나 이만큼은 알아요. 내가 이해하는 상대성 원리는 내가 저 사람에게 잘해주면 저 사람도 나에게 잘하고 또 저 사람이 나한테 잘해주면 나도 저 사람을 잘 해준다. 제가 이해하는 상대성의 원리는 그것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대적 사고를 갖고 부부의 삶을 나누고 있습니까 그러니까 저 사람이 잘못하면 언제든지 깰 수 있다. 만약 이런 사고를 허용하면 가정의 위기는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미국의 역사 속에 아마 가장 존경을 받는 대통령 중에 한 사람은 루즈벨트라는 대통령일 것입니다. 미국의 대공항을 극복한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이분은 부인이 훌륭해요. 사실은. 훌륭한 사람의 옆에는 항상 훌륭한 부인이 있는 법입니다.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마는 그렇다고 제가 훌륭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엘레나라는 이 부인이 참 가난할 때 시집을 왔어요. 그래서 여섯자녀를 낳아서 어려움속에, 역경속에서 키웠습니다. 키우는 과정에서 한 아이를 잃어버립니다. 참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아프기 시작합니다. 다리가 마르기 시작합니다. 쉽게 진단되지 않는 것으로 다리를 절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남편은 휠체어를 타야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광경을 본 친척 중에 한 사람이 엘레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 지경이 되어서도 사시겠습니까 이혼을 생각해 보시죠 이때 엘레나는 이런 유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제가 사랑한 것은 남편의 다리가 아닙니다. 저는 남편을 사랑했습니다. 저는 남편의 다리 때문에 결혼한 것이 아니라 남편을 사랑했습니다. 그 다리는 그 다리가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 우리의 관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조건을 뛰어 넘은 사랑의 언약만이 가정을 지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혼은 심각한 범죄입니다. 그러나 사랑하시는 여러분, 저는 이 한마디 말을 성경적으로 덧붙여야겠습니다. 그것은 이혼은 심각한 범죄지만, 그리고 그것은 매우 가슴 아픈 상처를 남기지만 이혼은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는 아닙니다. 물론 이것은 많은 대가를 요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은 용서받을 수 없도록 사람을 영원히 파멸시키는 범죄는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이혼하신 분들에게는 따뜻한 마음으로 그들이 건강한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또 이혼하는 과정에 있어서 억울한 피해자가 둘 중에 한 사람 있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구별해서 바라보고 그의 정당성과 그의 순결성을 이해하고, 그 사람이 다시 정상적인 자리에 설 수 있도록 돕는 치료적 노력이 저는 교회 안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최선의 방법은 이혼을 예방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이 이혼의 위기가 있다고 생각되십니까 아니면 작은 어떤 틈새가 있다고 생각되십니까 그것을 미리 예방해야 합니다. 예방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의 준비입니다. 자, 사람들은 왜 이혼한다고 성경은 가르쳤습니까 마음의 완악함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혼을 예방할 수 있는 마음 자리는 무얼까요 완악한 마음의 반대는 부드러운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완악한 마음을 정의했습니다. 완악한 마음은 뭘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자기길을 가겠다는 고집이 바로 마음의 완악함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의 부드러움이란 뭘까요 부드러움이라는 것은 헬렐레하는 것이 아니예요. 부드러움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예요.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이 이 위기를 극복하고 세워지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이 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다시 한번 주 앞에 견고하게 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뜻이 이혼이 아닌 우리 부부가 위기를 극복하고 세워지는 이 삶을 위하여 제대로 주 앞에 서보겠다.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이예요. 그러나 이것이 너무 어려운 환경이고 너무 어려운 고통이고 너무 견디기가 힘들다고 생각이 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십자가 앞으로 오셔야 합니다. 흥미로운 것 오늘 주님께서 이 말씀을 주실 때 1절에서 보시면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지경과 요단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북쪽으로부터 남쪽으로 예수님은 지금 예루살렘을 향해 걷고 계십니다. 십자가를 향해 가시면서도상에서 저는 이 말씀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 가정에 피할 수 없는 역경과 고통과 딜레마가 부부사이에도 있다면 그 문제를 가지시고 내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내혼자의 힘으로 이것을 처리하기에는 너무나 이것은 힘들다.
그렇다면 그 갈등, 그 고통, 그 아픔을 가지고 십자가 앞에 오십시오. 그리고 십자가 아래 여러분의 짐을 내려놓으십시오. 우리의 허물과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분, 장사한지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의 능력 안에서 우리가 극복할 수 없는 위기는 없다고 믿습니다. 십자가의 거룩한 피와 성령님의 능력은 우리의 가정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아래에 오십시오. 그 짐을 내려놓으십시오. 십자가는 여러분의 가정이 다시 설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할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은 또한번 회복될 것입니다. 저는 감히 세네카의 말을 이렇게 바꾸어서 말하고 싶어요 로마의 애국자들이여 가정을 지키십시다. 저는 이 말을 바꾸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여러분의 가정을 견고하게 지키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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