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지구촌을 이처럼 사랑하사 (요3:16,행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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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동시에 우리 교회 창립 5주년을 기념하는 축제 준비 주일이기도 합니다. 지난 93년 말 정확하게 11월 14일 주일에 65명의 교인들이 수지지역의 선경 스매트 카세트 테잎을 만드는 공장 5층 복지관 강당을 빌려서 우리는 새로운 교회에 대한 기대와 열망을 안고 교회 탄생을 위한 첫 준비 모임을 가졌습니다. 7,8주에 걸쳐서 요한 계시록 2장과 3장에 나타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생각 하시면서 우리가 만들 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는가를 같이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94년 1월 첫 주일에 우리는 정식 탄생예배를 드렸습니다. 4개월 간의 준비과정을 거쳐서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5년 전 94년 5월 7일, 94년 5월 7일 날 우리는 조직된 교회로서 창립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전까지 저는 와싱톤 수도인 와싱톤 디씨의 근교인 메릴랜드 주에서 이민목회를 행복하고 보람찬 교회를 목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의 사역을 마무리하고 제가 조국에 돌아와서 한 새로운 교회를 시작할 때 그 당시 제 마음 속에 지배하고 있었던 중요한 질문 하나는 이런 질문이었습니다. 한국에 이미 교회가 많이 있는데 또하나의 교회를 추가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이런 질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이 떠 오를 때 마다 저는 제자신을 향해서 계속해서 이런 대답을 몇 번씩 확인해야만 했습니다. 시작하고자 하는 이 교회 이 교회가 정말 조국의 역사에 보탬이 되고 세상에 축복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다면 이 교회는 시작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하는 것이 생각이었습니다. 정말 조국의 역사에 보탬이 되고 세상의 축복이 될 수 있는 교회 그 교회를 한마디로 말하면 저는 성경에서 그것이 선교적 교회다라는 대답을 얻었습니다 선교적인 교회 미션 마인드를 가진 교회 선교적 교회 마침 그때 그 무렵쯤 되서 메스컴에서는 globalization 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소위 지구촌화라는 단어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모델로 삼을 수 있는 교회가 무엇이겠는가 성경을 읽었을 때 미국에 있었을 때 그때 제 가슴속에 굉장히 부딪쳐 왔던 한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행전 13장에 나타난 안티옥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교회 이름을 안티옥 교회라고 지을까도 생각해 봤는데 안티옥 교회라는 교회는 굉장히 많이 있더라구요. 굉장히 많이 있었기 때문에 안티옥 교회를 하나님이 쓰신 이유를 생각해 보니까 한가지 그것은 하나님의 눈과 가슴을 가지고 지구촌을 섬겼던 교회 그것이 바로 안티옥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안티옥 교회의 비젼을 살려서 지구촌 교회라는 교회의 이름을 결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실 사도행전에 보면 안티옥 교회보다도 큰 교회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그 당시 모든 교회의 모교였고 역사가 오래된 교회였습니다. 안티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보다 훨씬 적은 교회였고 나중에 시작된 교회 였지만은 그 당시 결정적으로 1세기의 세상을 바꾸는데 기여했던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가 아니라 안티옥 교회였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대로 바울이 그 당시 알려진 전 세계 를 3차례에 걸쳐서 선교 여행을 합니다. 그때 Base church가 바로 안티옥 교회였습니다. 안티옥 교회에서 선교사 파송을 받고 축복 받고 지원을 받아서 떠나 갑니다. 전 세계를 전도하고 다시 안티옥 교회로 돌아옵니다. 또 안티옥 교회를 근거로 다시 출발하고 또 교회로 돌어 옵니다. 안티옥 교회는 세계를 복음화하고 세계를 바꾸는 일에 있어 결정적인 홈 베이스의 역할을 했던 교회가 바로 안티옥 교회였습니다. 하나님이 안티옥 교회를 쓰신 이유 다시 말씀 드립니다. 그것은 단순한 이유였습니다. 하나님의 눈 하나님의 가슴을 가지고 지구촌을 바라 보았던 교회 그것이 바로 안티옥 교회 였습니다. 오래 전에 우주인 제임스 어린이라는 사람이 한국을 다녀갔을 때 제가 한번 통역을 했던 일이 있어요. 저는 그분 통역을 하면서 그 분 설교의 첫머리 부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이분이 우주인 이지만 동시에 아주 복음에 대한 불타는 열정을 가지고 있는 평신도 전도자입니다. 이분이 설교의 첫머리 부분에서 자기가 달나라 갔다 온 얘기를 하면서 그가 달나라에 딱 도착하는 순간 제일 먼저 한 일이 가져 갔던 성경을 펼쳐서 시편 19편을 읽었어요.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땅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편 19편을 읽었어요. 그리고 그 우주선이 집으로 돌아올 때 집으로 귀환할 때 우주의 공간에서 바라본 지구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적은 공과도 같았다고 합니다. 그 분 표현이 tiny ball 이라는 표현을 썼던 것이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아주 적은 공과 같은 지구 아름다운 지구 우주선이 지구를 향해서 가까이 가까이 가까이 올 때 그러나 제임스 어린의 마음을 계속해서 붙들고 있었던 성경 구절 한 구절이 있었대요. 그것이 뭐냐하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이 지구촌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것이 하나님의 눈 이예요. 하나님의 가슴입니다. 5년을 지난 우리 교회 앞으로 5년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랩니다. 앞으로 5년 또 앞으로 10년 또 다른 10년을 내다보면서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인가 저는 다시 한번 안티옥 교회에서 우리 교회의 미래상을 찾습니다.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느냐
첫째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주님의 가슴을 가진 교회 주님의 가슴을 가진 교회 따라서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가슴을 가진 교회. 주님의 가슴을 가진 교회. 우리가 사도행전 13장 1절에 보시면 안티옥 교회의 구성원들 구성원들의 이름이 쭈욱 열거 되고 있습니다. 구성원들의 이름이 나와요. 구성원들의 이름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재미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이름들 이것은 특별히 지도자들의 이름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안티옥 교회를 지도하고 있었던 지도층의 면모를 통해서 안티옥 교회를 들여다 볼 수가 있습니다. 이 교회가 어떤 교회냐.
첫째 특성은 이런 것입니다. 교회는 귀족과 평민이 잘 어울리고 있었던 교회다. 귀족. 귀족이라는 말은 귀찮은 족속이다. 이런 말입니다. 귀족과 평민이 잘 함께 잘 어울리고 있었던 교회. 여기에 보면 이런 사람이 나와요.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그렇죠 그 당시 로마 정부의 임명을 받고 이스라엘 땅을 통치하던 사람이 헤롯 이라는 왕이었습니다. 아주 강력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바로 이교회의 지도자였고 교인이었습니다. 이런 귀족들과 평민들이 잘 섞였던 교회. 뿐만 아니라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잘 어울리고 있었던 교회. 마나엔 같은 사람은 부자였겠죠. 또 바나바, 바나바 이 바나바는 우리가 사도행전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의 결정적인 재정적 필요가 있을 때 자기 밭을 팔아서 헌납을 했습니다. 즉 경제적 여유가 있었단 말이죠. 여유가 있으니까 그 일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 부자 그러나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사람들도 함께 잘 어울리고 있었던 교회 또 그런가 하면 좀 어려운데요. 흑인과 백인이라는 인종적 편견도 뛰어넘은 교회. 제가 미국 살아봐서 잘 아는데 민주주의가 잘 발달된 미국 사회에서 아직도 흑인과 백인 사이의 인종적 위화감이라는 것은 극복되지 못한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질병입니다.
그런데 오래 전에 안티옥 교회는 이를 극복 했습니다. 어떻게 알았냐 하면 자 여기 지도자 가운데 이런 사람이 나옵니다. 니게르라 하는 시몬과 나오죠 니게르라는 단어가 니그로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예요. 그 뿌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흑인이라는 말입니다. 흑인 시몬 또 구레네 사람 누기오 구레네는 북아프리카 지역을 말합니다. 이 사람도 흑인 이었을 가능성이 많아요. 흑인과 백인이 함께 어울린 교회 안티옥 교회입니다. 거기다가 또 보면 이름들의 명단 속에서 제일 먼저 나온 사람이 누굽니까 13장 1절에 제일 먼저 나온 사람이 누구죠 바나바 제일 나중에 나온 사람이 누굽니까 사울 이예요. 저는 이것이 연장자의 순서일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바나바가 제일 나이가 많은 사람이고 사울은 갓 예수 믿은 20대의 청년 아주 젊은이 였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과 청년이 또 함께 잘 어울리던 교회 여러분 교회가 이런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는 아주 넓은 가슴이 필요해요. 넓은 가슴이 아니고는 이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아주 큰 가슴이 있어야 이런 다양한 계층을 끌어 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가 무엇입니까 경제위기보다도 심각한 것이 계층간의 위화감의 극복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예요. 나라는 굉장히 좁다란 적은 나란데 얼마나 계층이 다양해요. 그리고 얼마나 그 갈등이 심각합니까. 좁은 땅덩이를 남과 북으로 나눠놓고 거기다 요새는 동쪽과 서쪽으로 나눠 놓고 말 이예요. 동서로 나누어서 계속해서 전라도 경상도 해가면서 싸우고 있단 말이예요. 여야의 극한 상황적인 대립의 계층적인 갈등들 노사의 대립 저는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한국 사회가 21세기를 열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불행한 사실은 이러한 계층적 갈등이 교회 안에도 여전히 들어와 있다는 사실 이예요. 교회 안에도 어떤 목사님들 얘기를 들어보면 어떤 교회는 경상도 교회 경상도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도 있대요. 어떤 교회는 전라도 교회도 있답니다. 전라도 사람들만 모이고 조금 그 시기가 지나가긴 했습니다마는 어떤 교회는 니북 사람들만 모이는 이북 사람들만 모이는 교회 있고 말이죠. 그래가지고 어떻게 우리가 이 세상을 바꿀 수가 있겠는가 오죽하면 교회를 향한 이런 조크가 휴머가 생겼겠어요. 처음에 이 얘기 듣고 웃었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심각하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두 청년이 전철에서 싸움이 났는데 목소리가 자꾸만 옥타브가 높아지니까 보다 못한 나이 많은 분이 냅다 소리를 쳤답니다. 여보게 젊은이들 어딘 줄 알고 싸워 조용히 하게 여기가 교회인줄 아나. 사회속에서 교회의 이미지가 얼마나 추락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하나의 죠크라고 생각이 됩니다. 물론 교회도 사람들이 모이니까 그런 인간적인 갈등이 있을 수가 있죠. 전 초대교회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초대 교회 가운데 빌립보 교회는 아주 좋은 교회였어요. 건강한 교회요. 그러나 빌립보 교회는 인간적인 갈등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빌립보서를 읽어보시면 참 좋은 멧세지가 있는 교회인데 기쁨의 멧세지. 항상 기뻐하라. 바울이 이 멧세지를 주었던 아주 행복한 교회. 그러나 빌립보서 안에 보면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여자분이 등장합니다. 틀림없이 이 두 사람은 아마 빌립보 교회의 여선교회의 회장님과 총부님 이었을 거예요. 이 두분 사이가 안 좋았단 말이죠. 바울이 편지를 쓰면서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유오디아 여사를 권하고 순두게 여사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어라. 이렇게 말 합니다.
그런데 같은 마음이 뭐냐. 빌립보서 2장에 보시면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라 이런 얘기입니다. 유오디아 여사여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세요. 순두게 여사여 당신도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세요. 그러면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있을 필요가 있느냐 이말이죠. 주님의 하트. 주님의 마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여러분 세상을 사랑했단 말이 물리적인 지구를 사랑했단 말이 아니죠. 하나님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셨다. 세상에 있는 잘난 사람, 세상에 있는 못난 사람, 세상에 있는 유식한 사람, 세상에 있는 무식한 사람, 세상에 살고 있는 전라도 사람, 경상도 사람, 세상 속에 살고 있는 흑인, 백인, 세상속에 있는 다른 종교의 배경을 가진 사람, 기독교, 회교, 장로교, 감리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저는 한 교회가 세상을 바꾸는 일에 다소나마 기여하고 영향력을 행사 하려면 무엇보다도 세상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끌어 안을 수 있는 큰 가슴 주님의 가슴인데 저는 우리 교회가 이런 모든 계층간의 갈등과 위화감을 넘어서서 이런 주님의 큰 가슴을 가진 교회가 되기를 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여기에 있는 여러분이 말이죠. 저와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의 심정을 품게 되기를 기도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가슴을 가진 교회. 그래서 하나님의 가슴을 가지고 사람들을 안을 수 있는 교회, 주님의 가슴을 가진 교회, 안티옥 교회가 그런 교회입니다. 두번째로 이 교회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교회였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주님의 음성을 듣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13장 2절을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절 다같이 읽어요. 다같이 시작. 주를 섬겨 금식할 때. 여기 2절 말씀이 주를 섬겨 금식할 때 이렇게 시작합니다.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주를 섬기면서 금식 할 때 이 말이 얼른 안 들어오죠 머리속에. 본래는 이런 뜻입니다. 주님을 예배하며 금식할 때 예배하며 금식할 때 대부분의 영어 번역에 보시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원문의 뜻입니다. While they were worshipping in the Lord. 주님을 예배하고 있는 동안에 주님을 금식하며 예배하고 있는 동안에 성령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여러분 안티옥 교회는 예배를 드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당시에 금식을 했던 것 같아요. 금식하고 예배를 드렸다. 왜 금식을 하며 예배를 드렸을까 그것은 예배에 대한 특별한 기대가 있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예배하고 있었다. 아 예배 시간에 그들이 기도하고 있었던 어떤 문제에 관해서 하나님의 응답을 들었으면 좋겠다. 주님의 뜻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런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말이죠. 여러분 사람들이 저는 예배란 것이 엄청난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예배 드리고 가서도 내 인생이 변하지 않는다. 안 변한 사람 많아요. 목적이 없어요. 아니면 시시한 목적이든가 시시한 목적이든가 그러면 안 변해요. 예배에 참석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예배의 목적이 있어야 돼요. 요즘 모범적인 교회로 떠오르고 있는 우리교회 평신도 지도자 훈련에 텍스트로 사용한 새들백 교회의 목표 중에 하나가 뭐냐하면 목적을 가진 교회가 되자. perpose driven church 목적을 가진 교회 예배 드릴 때에도 목적이 분명한 예배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드리자 말이죠. 오늘 많은 사람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드려요. 예배에 참석했다. 간다. 그러니까 그 예배에 그 정도에 참석해도인생이 안 변해요. 예배는 왔다 가지만 인생이 변하지 않는다 말이죠. 우리 안내하는 집사님들이 한번은 저에게 사정을 하드라구요. 목사님 참 난 이해가 안가요. 그래서 뭐가 이해가 안가냐니깐 어떤 교인은 설교도 끝나고 나서 예배 끝날 때 10분쯤 되면 그때 오신대요. 그래서 가만히 관찰을 했대요. 요다음 예배에 그분이 참석하겠거니 그랬더니 그냥 가시더래요. 그래서 아 한번 어쩌다 그랬나보다 이해를 할려고 그랬는데 그 다음 주일에도 예배 끝나기 10분전에 오셔서 끝나고 10분 후에 가신대요. 목사님 나는 아무리 이해를 할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그 집사님 보고 그랬습니다. 나는 이해가 잘 되요. 그랬어요. 이해가 잘 되요. 그런 사람 많습니다. 많진 않지만 더러 더러 있어요. 저는 그것이 아주 전형적인 한국인의 한 습관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예를 들어서 어떤 명승지 같은데 관광 가잖아요. 관광가면 관광 가는 목적이 있어야 돼요. 좀 공부 했으면 좋겠다. 일본 사람들이 수첩 갖고 말이죠. 막 적고 역사를 보고 공부해요. 우리가 21세기를 향해 그런 마음이 있어야 되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뭘합니까. 관광지에 가면 딱 너나 할 것 없이 뭐예요. 사진 찍어요. 왔노라 보았노라 찍었노라. 땡 그러고 가는 거예요. 이게 무슨 역사가 있는지 뭔지 관심 없어요. 그런데 똑같은 의식이 교회에도 지배해요. 그러니까 교회 와요 교회 왔노라 보았노라 예배 참석했다 도장 찍고 가는 거예요. 그게 그래도 안 한거 보다 낫다. 예배 참석하니까 기분이 좋더라. 골프 칠 때 공도 잘 맞더라. 그 정도의 목적 없는 예배 인생이 변하겠어요. 그 정도 갖고. 왜 안티옥 교인들이 예배 드리면서 금식을 했느냐. 정말 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싶다. 기도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의 응답을 구한다.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하나님의 메시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내 미래가 어떻게 바꾸어져야 하느냐.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엎드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하나님 이 말씀 속에는 내 인생이 걸려 있습니다. 하나님 나를 가르쳐 주시고 인도해 주십시오. 이런 의지가 있어야 된다. 이런 의지 주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것. 저는 이번 특별히 축제 기간동안 우리 교우들이 그런 마음으로 나오셨으면 좋겠어요. 잔치한다 정도가 아니라 저는 정말 이번에 제자신도 그렇고 우리 교회 5년, 10년, 20년 우리교회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다. 하나님이 어떤 비젼을 갖고 계신지, 하나님의 어떤 기대를 갖고 계신지, 우리가 어떻게 그 기대를 이루어드릴 수가 있는지, 그것을 위해서 함께 우리가 기대를 가지고 나오는 잔치가 될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면 제가 주일날 마다 앞으로 설교를 계속 하겠습니다마는, 저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설교를 이번 수요일 저녁 목요일 저녁 금요일 저녁 이 사흘 저녁에 저는 제 생애에 가장 중요한 설교를 하게 될 것입니다. 왜 웃어요 여러분. 교회는 저는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믿습니까 여러분 가족 이예요. 가족이 뭡니까. 좋은 일이 있을 때 모이는게 가족 이예요. 좋은 일이 있을 때 모이는 거예요. 슬픈 일이 있을 때 모이는거 그게 가족 입니다. 자 교회가 공동체로 모여서 정말 하나님의 음성과 비젼을 발견하기 원한다. 주일날 아침만 땡 하고 가신 분은 가족 아니예요. 저는 한번도 여러분에게 겉으론 얘기 안 했지만 주일날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을 한번도 가족으로 생각해 본일이 없습니다. 인사는 제가 하지만 속으로 당신은 내 가족 아니야. 그건 가족이 아니예요. 가족은 이렇게 기쁜 일을 나누어야 되요. 슬픈 일도 나누어야죠.
저는 오늘날 한국 교회의 심각한 문제 중에 하나가 개인주의예요. 주일날 아침에 와서 한번 예배 드리고 의무 다했다. 저는 이번 기회에 가족이 되시길 바래요. 좀 마을 목장도 참여하고 정말 공동체 의식을 갖고 우리가 한번 세상을 바꾸는 교회가 되려면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공동체. 모였다 흩어지는 무력한 관중. 잠실벌에 야구장에 모였다 흩어지는 관중. 그 사람들을 통해서 한국이 바뀔까요 그건 인터테이먼트예요. 재미만 보고 가는 거예요. 그렇게 교회 온 사람들 많아요. 그런 공동체는 세상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정말 공동체. 하나님의 비젼과 하나님의 가슴을 가지고 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 저는 이번 기회에 우리가 모두 공동체로 서서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예배 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비젼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교회. 자 보세요. 2절에 주를 섬겨 금식할 때 성령님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킬 일이 있다. 예배를 드리다가 성령님의 음성을 들었어요. 내가 시킬일이 있다. 아 내가 할 일이 있구나. 인생의 미션을 발견했어요. 존재하는 이유. 내가 인간으로 존재하는 이유 내가 할일 나의 사명 우리의 미션 그 미션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모든 것이 달라지는 거예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교회 마지막 세번째로는 주님의 소명에 순종하는 교회 이 안티옥 교회는 주님의 소명에 순종하는 교회. 음성만 듣지 않았어요. 어떤 사람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냥 흘려버려요. 내가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은 주님의 멧세지를 받았다는 것은 이제 그대로 살겠다. 응답이 있어야 되요. 구체적 응답이 있어야 되요. 지난 수요일이 5월 5일인데 재미난 얘기를 했는데 얼마 안 나왔더라구요. 수요일날이 어린이 날이라 그런지 다시 한번 할께요. 어떤 목사님이 교인이 우리 집사님이 몇 주째 교회 안 나오니까 궁금해갖고 심방을 갔어요. 저녁 늦게 밤늦게 심방을 갔어요. 틀림없이 있겠지 밤 늦게 가면. 그래서 아파트 초인종을 눌렀는데 대답이 없어요. 분명히 아까까지 뭐라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는데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 아무도 응답이 없는 거예요. 틀림없이 있는데 대답을 안해요. 목사님이 할 수 없이 쪽지를 하나 놓고 갔어요. 아무개 집사님 목사가 다녀갑니다. 그리고, 그 아래 계시록 3장 20절 딱 썼어요. 쪽지를. 계시록 3장 20절 모르죠 뭔지.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너에게로 들어가리라 그리고 가셨어요. 그걸 보니까 나중에 그 교인이 미안 했든지 그 다음주에 나왔어요. 그 교인이 교회를.
그런데 목사님은 안보고 인사 안하고 그냥 갔어요. 그래서, 목사님 사무실에다 쪽지를 또 하나 남겨놓았어요. 목사님 제가 다녀갑니다. 교회 다녀갑니다. 지난밤은 참 죄송했습니다. 창세기 3장 10절. 목사님이 이상해서 창세기 3장 10절을 딱 봤더니 내가 하나님의 목소리을 듣고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잘 들어야 돼, 잘. 기왕 들을려면은 잘 들어야 돼. 그리고 제대로 응답 해야 돼. 도망 가지말고 제대로 응답해야 합니다 자 안티옥 교회가 어떻게 응답했느냐. 3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3절 다같이 시작.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자 성령님이 시킬 일이 있다. 그 시킬 일이 뭐냐 하면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보내라. 바나바와 사울은 안티옥 교회의 목사님 이예요. 그 교회가 사랑하는 목사님 두 분을 세계 선교를 위해서 선교사로 보내라. 희생이죠. 그냥 좋은 지도자를 모시고 있으면 얼마나 좋은데. 그러나 안티옥 교회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에 순종했습니다. 그 소명에 순종했습니다. 어떤 마음 이었을까요 더 넓은 세상이 축복을 얻기 위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축복을 얻기 위해서, 그들이 사랑했던 지도자를 세계 선교를 위해서 내어 주었어요. 희생 이예요. 여러분 주님의 음성에 응답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또 희생이 필요해요. 헌신과 희생을 얼마나 하느냐가 얼마나 그 공동체가 쓰임을 받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왜 헌신하고 희생 할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이미 사랑을 경험 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사랑을 경험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의 표현이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내어 보내 주셨어요. 저 유명한 선교사 데이빗 리빙스톤이 아프리카 선교사가 영국에 와서 교회마다 다니면서 집회를 합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 갈 선교사를 모집하는데, 젊은 청년 하나가 튀어 나왔어요. 그때 저 뒤에서 부인이 소리를 쳐요. 제임스 너는 안돼, 너는 안돼. 아들 같애요. 가만히 보니깐 그때 데이빗 리빙스톤 유명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부인, 부인. 부인이 그리스도인 이라면 요한복음 3장 16절을 아시지요.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선교사로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희생 이예요. 하나님의 희생. 우리가 하나님의 희생 때문에, 사랑하시기 때문에, 희생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 때문에, 우리가 구원 받고 새로운 삶이 되었다면 이제 우리는 이 세상에 사랑을 주기 위해서 어떤 희생을 할 것인가. 오늘 어버이 주일이죠. 나는 어버이주일에다 어머니 날 안그러고 아버지는 왜 붙였는지. 아버지는 별로 한 일이 없는 것 같은데 말이죠. 옛날 어머니 날이 더 좋은 거 같애요. 어머니. 왜 어머니를 생각하면 우리의 가슴에 어떤 느낌이 옵니까 희생 때문 이예요. 희생 왜 그렇겠어요. 사랑으로 말미암은 희생.
그렇다면 우리가 그 어머니에게 어떻게 우리편에서 이제사랑을 표현 할 것인가. 어떻게 사랑을 표현 할 것인가. 요즘 베스트 셀러로 팔리고 있는 치킨 슾 스토리에 보니까 거기에 이런 얘기가 있더라구요. 래리 제임스라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인데 자기 사랑했던 엄마가 치매 환자가 되셨어요. 자식들 위해서 희생하고 한평생 도와 준 좋은 어머니였는데. 어머니가 치매가 걸렸어요. 치매 환자 수용소 메디칼 센터에 입원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매주 가서 자기 어머니를 보는 거예요.
그런데 아들을 몰라봐요. 엄마. 그러면 넌 누구니. 당신 이름은 뭐예요. 아니 엄마가 자식을 못 알아보니 자식편에서 얼마나 안타깝겠어요. 그래서 래리라는 그리스도인 젊은이가 이런 기도를 했답니다. 하나님 한번만 우리 엄마가 나를 알아보고 아들아, 아들아 이렇게 부를 수 있도록 하나님 우리 엄마를 도와 주세요.
그런데 병세가 계속 악화 되는 거예요. 그러다가 무의식 상태 속에 코마 상태에 들어 갔습니다. 식구들이 다 모였습니다. 아마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가실 모양이라고.
그런데 갑자기 무의식 상태속에서 정신이 나셨어요. 어머니가 두리번 거리는데 알아보시는 것 같더라고. 어머니! 하고서 아들이 엄마의 손을 딱 잡았더니 엄마가 손을 이렇게 펴더니 아들의 손등을 세 번 두들기더래요. 그 세 번 두들기자마자 아들은 와락 하고 울기 시작 했습니다. 그 이유가 있어요. 아버진 벌써 돌아 가셨지만, 아버지 어머니가 부부사이의 사랑을 표현한 독특한 방법이 있는데 이 분들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부부사랑을 표현할 때는 항상 두 번씩 손등을 두들겼대요.
I love you 하는 대신에 손을 두 번. 그리고 정말 진한 사랑을 표현 하고 싶을 때는 세 번 엄마가 갑자기 아들의 손등을 세 번 두들기는 거예요. 얼마나 좋은지 아들도 갑자기 자기 손을 들어 갖고 엄마의 손등에다가 세 번 두들기니까 엄마가 갑자기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환한 웃음을 웃더니. 할렐루야. 그리고 세상을 떠나가셨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받은자가 또 표현을 해야되요. 사랑이 표현되지 못할 때 거기서 인생이라는 것은 모두가 다 회색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면 이제 우리는 이 세상을 향해서 어떻게 사랑을 표현 할 것인가. 여기에 우리 교회의 미래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가 희생할 때 세상은 하나님의 새로운 축복을 경험하기 시작 할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이 교회는 시작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하는 것이 생각이었습니다. 정말 조국의 역사에 보탬이 되고 세상의 축복이 될 수 있는 교회 그 교회를 한마디로 말하면 저는 성경에서 그것이 선교적 교회다라는 대답을 얻었습니다 선교적인 교회 미션 마인드를 가진 교회 선교적 교회 마침 그때 그 무렵쯤 되서 메스컴에서는 globalization 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소위 지구촌화라는 단어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모델로 삼을 수 있는 교회가 무엇이겠는가 성경을 읽었을 때 미국에 있었을 때 그때 제 가슴속에 굉장히 부딪쳐 왔던 한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행전 13장에 나타난 안티옥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교회 이름을 안티옥 교회라고 지을까도 생각해 봤는데 안티옥 교회라는 교회는 굉장히 많이 있더라구요. 굉장히 많이 있었기 때문에 안티옥 교회를 하나님이 쓰신 이유를 생각해 보니까 한가지 그것은 하나님의 눈과 가슴을 가지고 지구촌을 섬겼던 교회 그것이 바로 안티옥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안티옥 교회의 비젼을 살려서 지구촌 교회라는 교회의 이름을 결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실 사도행전에 보면 안티옥 교회보다도 큰 교회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그 당시 모든 교회의 모교였고 역사가 오래된 교회였습니다. 안티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보다 훨씬 적은 교회였고 나중에 시작된 교회 였지만은 그 당시 결정적으로 1세기의 세상을 바꾸는데 기여했던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가 아니라 안티옥 교회였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대로 바울이 그 당시 알려진 전 세계 를 3차례에 걸쳐서 선교 여행을 합니다. 그때 Base church가 바로 안티옥 교회였습니다. 안티옥 교회에서 선교사 파송을 받고 축복 받고 지원을 받아서 떠나 갑니다. 전 세계를 전도하고 다시 안티옥 교회로 돌아옵니다. 또 안티옥 교회를 근거로 다시 출발하고 또 교회로 돌어 옵니다. 안티옥 교회는 세계를 복음화하고 세계를 바꾸는 일에 있어 결정적인 홈 베이스의 역할을 했던 교회가 바로 안티옥 교회였습니다. 하나님이 안티옥 교회를 쓰신 이유 다시 말씀 드립니다. 그것은 단순한 이유였습니다. 하나님의 눈 하나님의 가슴을 가지고 지구촌을 바라 보았던 교회 그것이 바로 안티옥 교회 였습니다. 오래 전에 우주인 제임스 어린이라는 사람이 한국을 다녀갔을 때 제가 한번 통역을 했던 일이 있어요. 저는 그분 통역을 하면서 그 분 설교의 첫머리 부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이분이 우주인 이지만 동시에 아주 복음에 대한 불타는 열정을 가지고 있는 평신도 전도자입니다. 이분이 설교의 첫머리 부분에서 자기가 달나라 갔다 온 얘기를 하면서 그가 달나라에 딱 도착하는 순간 제일 먼저 한 일이 가져 갔던 성경을 펼쳐서 시편 19편을 읽었어요.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땅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편 19편을 읽었어요. 그리고 그 우주선이 집으로 돌아올 때 집으로 귀환할 때 우주의 공간에서 바라본 지구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적은 공과도 같았다고 합니다. 그 분 표현이 tiny ball 이라는 표현을 썼던 것이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아주 적은 공과 같은 지구 아름다운 지구 우주선이 지구를 향해서 가까이 가까이 가까이 올 때 그러나 제임스 어린의 마음을 계속해서 붙들고 있었던 성경 구절 한 구절이 있었대요. 그것이 뭐냐하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이 지구촌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것이 하나님의 눈 이예요. 하나님의 가슴입니다. 5년을 지난 우리 교회 앞으로 5년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랩니다. 앞으로 5년 또 앞으로 10년 또 다른 10년을 내다보면서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인가 저는 다시 한번 안티옥 교회에서 우리 교회의 미래상을 찾습니다.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느냐
첫째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주님의 가슴을 가진 교회 주님의 가슴을 가진 교회 따라서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가슴을 가진 교회. 주님의 가슴을 가진 교회. 우리가 사도행전 13장 1절에 보시면 안티옥 교회의 구성원들 구성원들의 이름이 쭈욱 열거 되고 있습니다. 구성원들의 이름이 나와요. 구성원들의 이름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재미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이름들 이것은 특별히 지도자들의 이름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안티옥 교회를 지도하고 있었던 지도층의 면모를 통해서 안티옥 교회를 들여다 볼 수가 있습니다. 이 교회가 어떤 교회냐.
첫째 특성은 이런 것입니다. 교회는 귀족과 평민이 잘 어울리고 있었던 교회다. 귀족. 귀족이라는 말은 귀찮은 족속이다. 이런 말입니다. 귀족과 평민이 잘 함께 잘 어울리고 있었던 교회. 여기에 보면 이런 사람이 나와요.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그렇죠 그 당시 로마 정부의 임명을 받고 이스라엘 땅을 통치하던 사람이 헤롯 이라는 왕이었습니다. 아주 강력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바로 이교회의 지도자였고 교인이었습니다. 이런 귀족들과 평민들이 잘 섞였던 교회. 뿐만 아니라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잘 어울리고 있었던 교회. 마나엔 같은 사람은 부자였겠죠. 또 바나바, 바나바 이 바나바는 우리가 사도행전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의 결정적인 재정적 필요가 있을 때 자기 밭을 팔아서 헌납을 했습니다. 즉 경제적 여유가 있었단 말이죠. 여유가 있으니까 그 일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 부자 그러나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사람들도 함께 잘 어울리고 있었던 교회 또 그런가 하면 좀 어려운데요. 흑인과 백인이라는 인종적 편견도 뛰어넘은 교회. 제가 미국 살아봐서 잘 아는데 민주주의가 잘 발달된 미국 사회에서 아직도 흑인과 백인 사이의 인종적 위화감이라는 것은 극복되지 못한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질병입니다.
그런데 오래 전에 안티옥 교회는 이를 극복 했습니다. 어떻게 알았냐 하면 자 여기 지도자 가운데 이런 사람이 나옵니다. 니게르라 하는 시몬과 나오죠 니게르라는 단어가 니그로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예요. 그 뿌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흑인이라는 말입니다. 흑인 시몬 또 구레네 사람 누기오 구레네는 북아프리카 지역을 말합니다. 이 사람도 흑인 이었을 가능성이 많아요. 흑인과 백인이 함께 어울린 교회 안티옥 교회입니다. 거기다가 또 보면 이름들의 명단 속에서 제일 먼저 나온 사람이 누굽니까 13장 1절에 제일 먼저 나온 사람이 누구죠 바나바 제일 나중에 나온 사람이 누굽니까 사울 이예요. 저는 이것이 연장자의 순서일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바나바가 제일 나이가 많은 사람이고 사울은 갓 예수 믿은 20대의 청년 아주 젊은이 였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과 청년이 또 함께 잘 어울리던 교회 여러분 교회가 이런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는 아주 넓은 가슴이 필요해요. 넓은 가슴이 아니고는 이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아주 큰 가슴이 있어야 이런 다양한 계층을 끌어 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가 무엇입니까 경제위기보다도 심각한 것이 계층간의 위화감의 극복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예요. 나라는 굉장히 좁다란 적은 나란데 얼마나 계층이 다양해요. 그리고 얼마나 그 갈등이 심각합니까. 좁은 땅덩이를 남과 북으로 나눠놓고 거기다 요새는 동쪽과 서쪽으로 나눠 놓고 말 이예요. 동서로 나누어서 계속해서 전라도 경상도 해가면서 싸우고 있단 말이예요. 여야의 극한 상황적인 대립의 계층적인 갈등들 노사의 대립 저는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한국 사회가 21세기를 열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불행한 사실은 이러한 계층적 갈등이 교회 안에도 여전히 들어와 있다는 사실 이예요. 교회 안에도 어떤 목사님들 얘기를 들어보면 어떤 교회는 경상도 교회 경상도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도 있대요. 어떤 교회는 전라도 교회도 있답니다. 전라도 사람들만 모이고 조금 그 시기가 지나가긴 했습니다마는 어떤 교회는 니북 사람들만 모이는 이북 사람들만 모이는 교회 있고 말이죠. 그래가지고 어떻게 우리가 이 세상을 바꿀 수가 있겠는가 오죽하면 교회를 향한 이런 조크가 휴머가 생겼겠어요. 처음에 이 얘기 듣고 웃었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심각하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두 청년이 전철에서 싸움이 났는데 목소리가 자꾸만 옥타브가 높아지니까 보다 못한 나이 많은 분이 냅다 소리를 쳤답니다. 여보게 젊은이들 어딘 줄 알고 싸워 조용히 하게 여기가 교회인줄 아나. 사회속에서 교회의 이미지가 얼마나 추락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하나의 죠크라고 생각이 됩니다. 물론 교회도 사람들이 모이니까 그런 인간적인 갈등이 있을 수가 있죠. 전 초대교회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초대 교회 가운데 빌립보 교회는 아주 좋은 교회였어요. 건강한 교회요. 그러나 빌립보 교회는 인간적인 갈등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빌립보서를 읽어보시면 참 좋은 멧세지가 있는 교회인데 기쁨의 멧세지. 항상 기뻐하라. 바울이 이 멧세지를 주었던 아주 행복한 교회. 그러나 빌립보서 안에 보면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여자분이 등장합니다. 틀림없이 이 두 사람은 아마 빌립보 교회의 여선교회의 회장님과 총부님 이었을 거예요. 이 두분 사이가 안 좋았단 말이죠. 바울이 편지를 쓰면서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유오디아 여사를 권하고 순두게 여사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어라. 이렇게 말 합니다.
그런데 같은 마음이 뭐냐. 빌립보서 2장에 보시면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라 이런 얘기입니다. 유오디아 여사여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세요. 순두게 여사여 당신도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세요. 그러면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있을 필요가 있느냐 이말이죠. 주님의 하트. 주님의 마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여러분 세상을 사랑했단 말이 물리적인 지구를 사랑했단 말이 아니죠. 하나님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셨다. 세상에 있는 잘난 사람, 세상에 있는 못난 사람, 세상에 있는 유식한 사람, 세상에 있는 무식한 사람, 세상에 살고 있는 전라도 사람, 경상도 사람, 세상 속에 살고 있는 흑인, 백인, 세상속에 있는 다른 종교의 배경을 가진 사람, 기독교, 회교, 장로교, 감리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저는 한 교회가 세상을 바꾸는 일에 다소나마 기여하고 영향력을 행사 하려면 무엇보다도 세상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끌어 안을 수 있는 큰 가슴 주님의 가슴인데 저는 우리 교회가 이런 모든 계층간의 갈등과 위화감을 넘어서서 이런 주님의 큰 가슴을 가진 교회가 되기를 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여기에 있는 여러분이 말이죠. 저와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의 심정을 품게 되기를 기도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가슴을 가진 교회. 그래서 하나님의 가슴을 가지고 사람들을 안을 수 있는 교회, 주님의 가슴을 가진 교회, 안티옥 교회가 그런 교회입니다. 두번째로 이 교회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교회였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주님의 음성을 듣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13장 2절을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절 다같이 읽어요. 다같이 시작. 주를 섬겨 금식할 때. 여기 2절 말씀이 주를 섬겨 금식할 때 이렇게 시작합니다.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주를 섬기면서 금식 할 때 이 말이 얼른 안 들어오죠 머리속에. 본래는 이런 뜻입니다. 주님을 예배하며 금식할 때 예배하며 금식할 때 대부분의 영어 번역에 보시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원문의 뜻입니다. While they were worshipping in the Lord. 주님을 예배하고 있는 동안에 주님을 금식하며 예배하고 있는 동안에 성령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여러분 안티옥 교회는 예배를 드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당시에 금식을 했던 것 같아요. 금식하고 예배를 드렸다. 왜 금식을 하며 예배를 드렸을까 그것은 예배에 대한 특별한 기대가 있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예배하고 있었다. 아 예배 시간에 그들이 기도하고 있었던 어떤 문제에 관해서 하나님의 응답을 들었으면 좋겠다. 주님의 뜻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런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말이죠. 여러분 사람들이 저는 예배란 것이 엄청난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예배 드리고 가서도 내 인생이 변하지 않는다. 안 변한 사람 많아요. 목적이 없어요. 아니면 시시한 목적이든가 시시한 목적이든가 그러면 안 변해요. 예배에 참석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예배의 목적이 있어야 돼요. 요즘 모범적인 교회로 떠오르고 있는 우리교회 평신도 지도자 훈련에 텍스트로 사용한 새들백 교회의 목표 중에 하나가 뭐냐하면 목적을 가진 교회가 되자. perpose driven church 목적을 가진 교회 예배 드릴 때에도 목적이 분명한 예배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드리자 말이죠. 오늘 많은 사람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드려요. 예배에 참석했다. 간다. 그러니까 그 예배에 그 정도에 참석해도인생이 안 변해요. 예배는 왔다 가지만 인생이 변하지 않는다 말이죠. 우리 안내하는 집사님들이 한번은 저에게 사정을 하드라구요. 목사님 참 난 이해가 안가요. 그래서 뭐가 이해가 안가냐니깐 어떤 교인은 설교도 끝나고 나서 예배 끝날 때 10분쯤 되면 그때 오신대요. 그래서 가만히 관찰을 했대요. 요다음 예배에 그분이 참석하겠거니 그랬더니 그냥 가시더래요. 그래서 아 한번 어쩌다 그랬나보다 이해를 할려고 그랬는데 그 다음 주일에도 예배 끝나기 10분전에 오셔서 끝나고 10분 후에 가신대요. 목사님 나는 아무리 이해를 할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그 집사님 보고 그랬습니다. 나는 이해가 잘 되요. 그랬어요. 이해가 잘 되요. 그런 사람 많습니다. 많진 않지만 더러 더러 있어요. 저는 그것이 아주 전형적인 한국인의 한 습관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예를 들어서 어떤 명승지 같은데 관광 가잖아요. 관광가면 관광 가는 목적이 있어야 돼요. 좀 공부 했으면 좋겠다. 일본 사람들이 수첩 갖고 말이죠. 막 적고 역사를 보고 공부해요. 우리가 21세기를 향해 그런 마음이 있어야 되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뭘합니까. 관광지에 가면 딱 너나 할 것 없이 뭐예요. 사진 찍어요. 왔노라 보았노라 찍었노라. 땡 그러고 가는 거예요. 이게 무슨 역사가 있는지 뭔지 관심 없어요. 그런데 똑같은 의식이 교회에도 지배해요. 그러니까 교회 와요 교회 왔노라 보았노라 예배 참석했다 도장 찍고 가는 거예요. 그게 그래도 안 한거 보다 낫다. 예배 참석하니까 기분이 좋더라. 골프 칠 때 공도 잘 맞더라. 그 정도의 목적 없는 예배 인생이 변하겠어요. 그 정도 갖고. 왜 안티옥 교인들이 예배 드리면서 금식을 했느냐. 정말 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싶다. 기도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의 응답을 구한다.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하나님의 메시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내 미래가 어떻게 바꾸어져야 하느냐.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엎드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하나님 이 말씀 속에는 내 인생이 걸려 있습니다. 하나님 나를 가르쳐 주시고 인도해 주십시오. 이런 의지가 있어야 된다. 이런 의지 주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것. 저는 이번 특별히 축제 기간동안 우리 교우들이 그런 마음으로 나오셨으면 좋겠어요. 잔치한다 정도가 아니라 저는 정말 이번에 제자신도 그렇고 우리 교회 5년, 10년, 20년 우리교회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다. 하나님이 어떤 비젼을 갖고 계신지, 하나님의 어떤 기대를 갖고 계신지, 우리가 어떻게 그 기대를 이루어드릴 수가 있는지, 그것을 위해서 함께 우리가 기대를 가지고 나오는 잔치가 될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면 제가 주일날 마다 앞으로 설교를 계속 하겠습니다마는, 저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설교를 이번 수요일 저녁 목요일 저녁 금요일 저녁 이 사흘 저녁에 저는 제 생애에 가장 중요한 설교를 하게 될 것입니다. 왜 웃어요 여러분. 교회는 저는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믿습니까 여러분 가족 이예요. 가족이 뭡니까. 좋은 일이 있을 때 모이는게 가족 이예요. 좋은 일이 있을 때 모이는 거예요. 슬픈 일이 있을 때 모이는거 그게 가족 입니다. 자 교회가 공동체로 모여서 정말 하나님의 음성과 비젼을 발견하기 원한다. 주일날 아침만 땡 하고 가신 분은 가족 아니예요. 저는 한번도 여러분에게 겉으론 얘기 안 했지만 주일날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을 한번도 가족으로 생각해 본일이 없습니다. 인사는 제가 하지만 속으로 당신은 내 가족 아니야. 그건 가족이 아니예요. 가족은 이렇게 기쁜 일을 나누어야 되요. 슬픈 일도 나누어야죠.
저는 오늘날 한국 교회의 심각한 문제 중에 하나가 개인주의예요. 주일날 아침에 와서 한번 예배 드리고 의무 다했다. 저는 이번 기회에 가족이 되시길 바래요. 좀 마을 목장도 참여하고 정말 공동체 의식을 갖고 우리가 한번 세상을 바꾸는 교회가 되려면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공동체. 모였다 흩어지는 무력한 관중. 잠실벌에 야구장에 모였다 흩어지는 관중. 그 사람들을 통해서 한국이 바뀔까요 그건 인터테이먼트예요. 재미만 보고 가는 거예요. 그렇게 교회 온 사람들 많아요. 그런 공동체는 세상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정말 공동체. 하나님의 비젼과 하나님의 가슴을 가지고 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 저는 이번 기회에 우리가 모두 공동체로 서서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예배 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비젼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교회. 자 보세요. 2절에 주를 섬겨 금식할 때 성령님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킬 일이 있다. 예배를 드리다가 성령님의 음성을 들었어요. 내가 시킬일이 있다. 아 내가 할 일이 있구나. 인생의 미션을 발견했어요. 존재하는 이유. 내가 인간으로 존재하는 이유 내가 할일 나의 사명 우리의 미션 그 미션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모든 것이 달라지는 거예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교회 마지막 세번째로는 주님의 소명에 순종하는 교회 이 안티옥 교회는 주님의 소명에 순종하는 교회. 음성만 듣지 않았어요. 어떤 사람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냥 흘려버려요. 내가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은 주님의 멧세지를 받았다는 것은 이제 그대로 살겠다. 응답이 있어야 되요. 구체적 응답이 있어야 되요. 지난 수요일이 5월 5일인데 재미난 얘기를 했는데 얼마 안 나왔더라구요. 수요일날이 어린이 날이라 그런지 다시 한번 할께요. 어떤 목사님이 교인이 우리 집사님이 몇 주째 교회 안 나오니까 궁금해갖고 심방을 갔어요. 저녁 늦게 밤늦게 심방을 갔어요. 틀림없이 있겠지 밤 늦게 가면. 그래서 아파트 초인종을 눌렀는데 대답이 없어요. 분명히 아까까지 뭐라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는데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 아무도 응답이 없는 거예요. 틀림없이 있는데 대답을 안해요. 목사님이 할 수 없이 쪽지를 하나 놓고 갔어요. 아무개 집사님 목사가 다녀갑니다. 그리고, 그 아래 계시록 3장 20절 딱 썼어요. 쪽지를. 계시록 3장 20절 모르죠 뭔지.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너에게로 들어가리라 그리고 가셨어요. 그걸 보니까 나중에 그 교인이 미안 했든지 그 다음주에 나왔어요. 그 교인이 교회를.
그런데 목사님은 안보고 인사 안하고 그냥 갔어요. 그래서, 목사님 사무실에다 쪽지를 또 하나 남겨놓았어요. 목사님 제가 다녀갑니다. 교회 다녀갑니다. 지난밤은 참 죄송했습니다. 창세기 3장 10절. 목사님이 이상해서 창세기 3장 10절을 딱 봤더니 내가 하나님의 목소리을 듣고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잘 들어야 돼, 잘. 기왕 들을려면은 잘 들어야 돼. 그리고 제대로 응답 해야 돼. 도망 가지말고 제대로 응답해야 합니다 자 안티옥 교회가 어떻게 응답했느냐. 3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3절 다같이 시작.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자 성령님이 시킬 일이 있다. 그 시킬 일이 뭐냐 하면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보내라. 바나바와 사울은 안티옥 교회의 목사님 이예요. 그 교회가 사랑하는 목사님 두 분을 세계 선교를 위해서 선교사로 보내라. 희생이죠. 그냥 좋은 지도자를 모시고 있으면 얼마나 좋은데. 그러나 안티옥 교회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에 순종했습니다. 그 소명에 순종했습니다. 어떤 마음 이었을까요 더 넓은 세상이 축복을 얻기 위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축복을 얻기 위해서, 그들이 사랑했던 지도자를 세계 선교를 위해서 내어 주었어요. 희생 이예요. 여러분 주님의 음성에 응답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또 희생이 필요해요. 헌신과 희생을 얼마나 하느냐가 얼마나 그 공동체가 쓰임을 받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왜 헌신하고 희생 할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이미 사랑을 경험 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사랑을 경험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의 표현이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내어 보내 주셨어요. 저 유명한 선교사 데이빗 리빙스톤이 아프리카 선교사가 영국에 와서 교회마다 다니면서 집회를 합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 갈 선교사를 모집하는데, 젊은 청년 하나가 튀어 나왔어요. 그때 저 뒤에서 부인이 소리를 쳐요. 제임스 너는 안돼, 너는 안돼. 아들 같애요. 가만히 보니깐 그때 데이빗 리빙스톤 유명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부인, 부인. 부인이 그리스도인 이라면 요한복음 3장 16절을 아시지요.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선교사로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희생 이예요. 하나님의 희생. 우리가 하나님의 희생 때문에, 사랑하시기 때문에, 희생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 때문에, 우리가 구원 받고 새로운 삶이 되었다면 이제 우리는 이 세상에 사랑을 주기 위해서 어떤 희생을 할 것인가. 오늘 어버이 주일이죠. 나는 어버이주일에다 어머니 날 안그러고 아버지는 왜 붙였는지. 아버지는 별로 한 일이 없는 것 같은데 말이죠. 옛날 어머니 날이 더 좋은 거 같애요. 어머니. 왜 어머니를 생각하면 우리의 가슴에 어떤 느낌이 옵니까 희생 때문 이예요. 희생 왜 그렇겠어요. 사랑으로 말미암은 희생.
그렇다면 우리가 그 어머니에게 어떻게 우리편에서 이제사랑을 표현 할 것인가. 어떻게 사랑을 표현 할 것인가. 요즘 베스트 셀러로 팔리고 있는 치킨 슾 스토리에 보니까 거기에 이런 얘기가 있더라구요. 래리 제임스라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인데 자기 사랑했던 엄마가 치매 환자가 되셨어요. 자식들 위해서 희생하고 한평생 도와 준 좋은 어머니였는데. 어머니가 치매가 걸렸어요. 치매 환자 수용소 메디칼 센터에 입원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매주 가서 자기 어머니를 보는 거예요.
그런데 아들을 몰라봐요. 엄마. 그러면 넌 누구니. 당신 이름은 뭐예요. 아니 엄마가 자식을 못 알아보니 자식편에서 얼마나 안타깝겠어요. 그래서 래리라는 그리스도인 젊은이가 이런 기도를 했답니다. 하나님 한번만 우리 엄마가 나를 알아보고 아들아, 아들아 이렇게 부를 수 있도록 하나님 우리 엄마를 도와 주세요.
그런데 병세가 계속 악화 되는 거예요. 그러다가 무의식 상태 속에 코마 상태에 들어 갔습니다. 식구들이 다 모였습니다. 아마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가실 모양이라고.
그런데 갑자기 무의식 상태속에서 정신이 나셨어요. 어머니가 두리번 거리는데 알아보시는 것 같더라고. 어머니! 하고서 아들이 엄마의 손을 딱 잡았더니 엄마가 손을 이렇게 펴더니 아들의 손등을 세 번 두들기더래요. 그 세 번 두들기자마자 아들은 와락 하고 울기 시작 했습니다. 그 이유가 있어요. 아버진 벌써 돌아 가셨지만, 아버지 어머니가 부부사이의 사랑을 표현한 독특한 방법이 있는데 이 분들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부부사랑을 표현할 때는 항상 두 번씩 손등을 두들겼대요.
I love you 하는 대신에 손을 두 번. 그리고 정말 진한 사랑을 표현 하고 싶을 때는 세 번 엄마가 갑자기 아들의 손등을 세 번 두들기는 거예요. 얼마나 좋은지 아들도 갑자기 자기 손을 들어 갖고 엄마의 손등에다가 세 번 두들기니까 엄마가 갑자기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환한 웃음을 웃더니. 할렐루야. 그리고 세상을 떠나가셨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받은자가 또 표현을 해야되요. 사랑이 표현되지 못할 때 거기서 인생이라는 것은 모두가 다 회색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면 이제 우리는 이 세상을 향해서 어떻게 사랑을 표현 할 것인가. 여기에 우리 교회의 미래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가 희생할 때 세상은 하나님의 새로운 축복을 경험하기 시작 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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