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교회를 꿈꾸자 (계1:9-20)
본문
주님의 마지막 꿈, 교회 지난달에 저는 미국 알래스카 주(州)의 앵커리지라는 도시에 가서 며칠 동안 머무르며 그곳에 있는 10개 한인 교회의 연합 집회를 인도한 일이 있습니다. 교민 5천명에다 교회라고 해 봐야 11개 정도밖에 안 되는 그런 곳이었지만 저는 그 집회를 통해 참 많은 것을 보고 들으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을 이용해서 알래스카 주의 명소 몇 군데를 잠시 여행해 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알래스카에는 맥킨리 산이라고 하는 유명한 산이 있습니다. 해발이 6천 3백 미터로, 북 아메리카의 최고봉에 해당하는 아주 높은 산입니다. 산을 내려오면서 저는 그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4시간을 달려 내려왔는데도 여전히 그 산의 봉우리가 보였던 것입니다. 저는 그 산을 보면서 우주 만물 가운데서 가장 높고, 크시며, 영광스러우신 주님을 생각했습니다. '야, 북미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하더니 진짜 높구나. 산도 높으니 몇 시간을 가도 그 밑에서 빙빙 도는 것 같은 느낌을 받거늘, 이 우주 만물 가운데서 가장 높으시고 크시고 영광스러우신 주님이야 오죽하겠는가 어디를 간다고 주님의 눈을 피하겠는가 어디로 간들 그 크신 영광에서 빠져나갈 수 있겠는가' 그 때 제 마음속에 요한계시록 1장부터 3장까지의 내용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어제도 계셨고, 오늘도 계실 뿐 아니라 내일도 계실 알파와 오메가이십니다. 모든 임금의 머리가 되시며,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한 손에 쥐고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장차 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오실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크고 높으신 주님의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고 있는 관심사가 하나 있습니다. 그분이 전심으로 사랑하시고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는 대상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교회입니다. 가장 높으신 분이 늘 마음에 두고 생각하고 사랑하고 희망을 거는 대상이 교회라는 말입니다. 이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교회라는 존재에 대해 새삼스럽게 주목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교회란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 1장 5절 하반 절부터 6절을 보십시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여기서 교회는 네 가지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이 사랑하시는 우리입니다. 주님이 죄에서 구속해준 우리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그의 나라와 백성으로 삼으신 우리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그의 제사장으로 삼으신 우리입니다. 이러한 우리가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본문 20절을 보십시오.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주님께서 이 세상 마지막에 알려주시고자 하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의 비밀이요, 예수님이 거닐고 계시는 일곱 금 촛대의 비밀입니다. 20절 후반부를 보면 주님은 그 비밀이 무엇인지 이렇게 설명해 주십니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비밀은 전부 일곱 교회에 관한 것입니다.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재림을 준비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교회밖에 없었습니다. 교회를 이처럼 사랑하시기 때문에 주님은 설혹 교회가 조금 잘못된다 해도 절대 실망하지 않으십니다. 요한계시록 2장부터 3장까지 나오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보십시오. 한 두 교회는 그런 대로 괜찮은 교회지만 나머지 다섯 교회는 형편없는 교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런 교회들을 놓고도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마지막 기대를 걸고 회개하라고 촉구하셨습니다. 회개하고 이기기만 하면 이러이러한 상급을 주시겠다고 약속해주시기까지 했습니다. 교회를 그 만큼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좋은 교회를 소원하라 주님께서 이처럼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에 큰 기대를 걸고 계신다면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고 제자가 된 우리들은 얼마나 더 교회를 사랑해야겠습니까 얼마나 더 교회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교회를 사랑하게 되면 자연 이런 소원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그처럼 귀하게 보시고 사랑하신다면 나도 한 생을 살 동안 좋은 교회를 만들어야지. 좋은 교회에 다니면서 우리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야지.' 이것이 바로 저의 소원이요, 또 여러분의 소원이어야 합니다. 좋은 교회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좋은 교회는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까 우리 각 사람이 좋은 신자가 되면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좋은 교회의 전제 조건은 우리 각 사람입니다. 우리 개개인이 주님이 칭찬하시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으면 절대 좋은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좋은 교회의 공식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 한번 태어나 행복도 맛보고, 고생도 맛보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예수 믿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개인의 행복과 인생의 의미가 어떤 교회를 다니느냐에 의해 상당부분 좌우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정말 은혜를 받았느냐, 교회를 통해서 정말 삶의 의미를 발견했느냐, 교회를 통해서 정말 뒤돌아보아도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기왕에 다닐 바에야 좋은 교회에 다녀야 하지 않겠습니까 살았다고 하는 이름은 있지만 죽은 송장이나 다름없는 사데 교회나 자만에 빠져 첫 사랑이 식어버린 라오디게아 교회 같은 그런 교회에 몸담을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왕이면 빌라델비아 교회같이 주님이 칭찬하시는 좋은 교회를 다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교회에 몸담고 다니는 이상 우리는 이 교회를 좋은 교회로 만들기 위해 헌신과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지도자의 중요성 오늘 본문을 보면 이 교회를 주님이 원하시는 좋은 교회로 만들어 드릴 수 있기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세 가지 사실이 나옵니다.
첫째로, 좋은 교회가 되려면 지도자의 위치와 중요성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2장 이하를 보십시오. 주님께서 각 교회에 하시는 말씀은 동일한 표현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모든 구절이 하나 같이 각 교회의 사자를 편지의 수신자로 지목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자'란 어떤 사람을 가리킵니까 어떤 성경은 '사자'라는 말을 천사(angel)로 해석합니다. 또 어떤 성경은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messenger)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해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각 교회에 보내신 천사를 '사자'라고 하는 것이라면 주님께서 구태여 그들을 칭찬하거나 경고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불완전한 인간이라면 모르겠지만 하나님을 보좌하는 천사가 무슨 책임질 잘못을 하겠습니까 저는 '사자'라는 말을 좀더 실제적으로 이해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교회에 세우신 지도자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을 보십시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여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 교회에 어떤 지도자들을 세우셨는지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처음에는 선지자들을 주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도들을 주셨고, 복음 전하는 자를 주셨으며, 목사와 교사를 주셨습니다. 목사와 교사는 두 사람이 아니고 한 사람을 말합니다. 양떼를 돌보는 목사인 동시에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교사인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역자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담임 목사든, 아니면 그와 함께 손을 잡고 일하는 부 교역자든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교회를 맡기신 교역자는 누구나 각 교회마다 세우신 하나님의 사자인 것입니다. 교역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특별히 소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목회를 일생의 사명으로 알기 때문에 그들은 교회와 양떼를 위해서라면 자기 생명이라도 기꺼이 바칠 각오를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역자들에 대한 주님의 관심은 다소 특별한 데가 있습니다. 본문 16절 전반부를 보십시오.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주님께서 교역자들을 오른손으로 쥐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저와 같은 왼손잡이야 다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오른손으로 잡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대 여섯 살 먹은 귀한 아들을 데리고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남대문 시장으로 간다면 틀림없이 오른손으로 그를 꼭 잡고 갈 것입니다.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기에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가장 힘있는 손으로 잡는 것입니다. 주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그만큼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을 오른손으로 굳게 붙들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은 교회의 잘 되고 못된 모든 일에 대해 교회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칭찬할 것이 있으면 그 교회의 지도자를 칭찬하십니다. 지도자를 칭찬하는 것은 곧 교회를 칭찬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그 지도자를 호되게 책망합니다. 그 책망은 곧 교회에 대한 책망입니다. 지도자가 어떠하면 그 교회 역시 그러하다는 것은 공식입니다. 지도자가 살아 있습니까 그 교회는 살아 있는 교회입니다. 지도자가 영적으로 병이 들었습니까 그 교회는 병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지도자가 시험에 빠졌습니까 그 교회는 반드시 시험에 빠집니다. 지도자가 위선자입니까 그 교회는 틀림없이 위선자들로 가득 차게 마련입니다. 모든 것이 지도자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지도자가 서면 교회가 서고, 지도자가 쓰러지면 교회가 쓰러집니다. 그래서 잘되고 못되는 모든 책임을 지도자들에게 물으시는 것입니다. 평신도들의 입장에서 말하면 개개인의 영적인 생명과 행복, 인생의 보람이 전부 교회 지도자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좋은 지도자를 만났습니까 은혜를 충만히 받으면서 영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좋은 지도자를 만나지 못했습니까 신앙생활 잘 하려다가 숫하게 상처를 입고 괴로운 한 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교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교회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를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교회 지도자가 주님께서 맡기신 그 일을 충성되게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온갖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지도자를 사랑하라 여러분이 교회 지도자를 위해서 반드시 해야할 일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교회 지도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이 가고 안 가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 가운데 저와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거의 없습니다. 교회 지도자니까 설교도 듣는 것이고, 지나가다가 만나면 인사도 하는 것이지, 솔직히 말해서 저와 여러분은 인간적으로 그렇게 가깝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별로 친하지도 않은 목사가 뭐가 그렇게 대단하냐고 생각하실 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영적인 생명과 행복이 교회 지도자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간다고 한번 상상을 해 보십시오. 뉴욕까지 가려면 아마 점보기로 열 대여섯 시간 정도 날아가야 될 지 모릅니다. 만의 하나 공중에 떠 있는 동안 엔진이 멈추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끝장입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지 않고는 비행기를 탈 수가 없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 보면 기장을 만날 때가 종종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인가는 기장이 나와서 인사를 하는데 보니까 고등학교 때부터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던 바로 그 친구였다고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렇다고 해서 "재수 없게 저 놈을 여기서 만날게 뭐야 에라 이 놈아. 가다가 뒤져버려라." 하고 저주 할 수 있습니까 절대 못합니다. 그 말은 곧 자기보고 죽으라는 저주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밉고 보기 싫어도 그가 비행기를 몰고 가는 이상, "저 사람을 꼭 돌보아 주십시오. 비행기를 모는 동안 사고 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 하고 부득불 그를 위해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목사 역시 마찬가지 위치에 있습니다. 목사를 보면 마음에 들고 좋을 때도 있지만 마음에 안 들고 미울 때도 분명 있을 수 있습니다. 설교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받을 수도 있지만 '오늘은 왜 저런 설교를 하냐'하고 기분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두 시간을 운전해서 왔는데 오늘은 설교를 영 죽 쓰시는구먼.'하고 불평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목사가 좋을 때도 있고, 나쁜 때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좋고 나쁘고에 너무 연연하면 안 됩니다. 교회 지도자는 여러분의 생명과 행복, 인생의 의미를 좌우할 수 있는 너무나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지도자를 사랑해야 됩니다. 사랑하지 않고 마음을 닫아버리면 천사의 말을 할 지라도 여러분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순식간에 병들어버리고, 감당할 수 없는 시험에 빠져 결국 망하게 될 것입니다.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라
둘째는,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담임 목사나 교역자를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고 계십니까 "주여, 옥 목사를 위시해서 사랑의 교회에 있는 수십 명의 목사님들, 오늘도 사역 잘하게 해 주옵소서. 아멘." 하고 5초 짜리 기도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면서 자기 남편을 위해서는 "주여, 좋은 남편 주신 것 감사합니다. 우리 남편이 오늘도 직장에 나가면 이런저런 일들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일 하나 하나 마다 함께 해주시고 도와주세요."하고 15분, 20분 동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기도합니다. 남편을 위해서는 20분 짜리 기도를 하면서, 목사를 위해서는 5초 짜리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남편이나 가족을 위한 기도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기도 못지 않게 교회 지도자를 위한 기도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얼마나 전에 일본 목사님 한 분과 함께 식사를 한 일이 있습니다. 동경에 있는 요도바시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미네노 목사님이라는 분인데, 그 교회는 전통도 오래고, 일본 교회로서는 큰 교회로 꼽히는 교회입니다. 그분은 예전에 우리 교회에서 제자훈련 지도자 세미나도 받고 가신 분으로 선명회의 일본 총재로 일하시는 중견 목사님이십니다. 저는 그 목사님이 식사를 하면서 들려주신 말씀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제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더니 대뜸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옥 목사님, 저는 아침마다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해 드리고 있습니다." 그 말이 제게 특별히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은 정작 제자신은 미네노 목사님을 위해 한번도 기도해준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교회를 도매금으로 묶어 "주여, 세미나를 마치고 간 일본 목사님들이 목회를 잘해서 일본 교회가 부흥하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기는 했지만 특정한 목사님을 위해 기도해 준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저를 위해서 지금까지 기도하고 있다니 제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물 건너에 있는 외국 목사도 저를 위해서 기도해준다고 하는데 이 교회를 다니면서 좋으나 싫으나 옥 목사를 통해 영의 양식을 받는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저를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담임 목사나 부교역자들을 위해서 5초 짜리 기도하면 안 됩니다. 적어도 10분 정도는 기도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지도자들이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에게 순종하라
셋째로, 지도자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지도자가 말씀대로 목회를 잘 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지도자가 잘못하는데 순종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늘날 마귀는 교회 지도자와 교인들 사이를 이간시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지도자와 교인들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목사의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게 만들고, 순종하지 않게 만듭니다. 교인들을 오합지졸로 만든 후에 나중에 자기 마음대로 짓밟아 보려고 마지막 사력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마귀가 즐겨 사용하는 전략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 교회를 위시해서 세계 교회를 보면 순종하지 않는 교인들 때문에 교회가 초토화되고 있습니다. 순종하지 하지 않으니까 너나 할 것 없이 교인들이 영양실조에 걸려 병이 듭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성령님의 도구가 아니라 마귀의 도구가 되어 교회를 무력화시키는데 일조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요즈음 미국에서 각광을 받는 목사님 한 분이 계십니다. 릭 워렌 이라는 목사님인데, 15년 전에 LA에 새들백 교회를 개척하여 지금까지 목회하고 있는 분입니다. 지난번에 제가 그 교회에 참석했을 때 보니까 그 교회는 장년 출석수가 11,000명에서 12,000명 사이로 우리 교회와 규모가 비슷했습니다. 우리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교회가 놀랍게 부흥을 해서 지금은 미국 전역에 있는 교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좋은 교회입니다. 저는 최근에 그 목사님이 쓴 책을 읽고 참 감명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15년 전에 새들백 교회를 개척하기 전에 이런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목회의 꿈에만 젖어 가지고 무작정 개척하기보다는 사전에 철저히 연구하고 시작하자.' 그는 먼저 미국에 있는 수십 만 교회 중에서 특별히 건강하게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주변에 좋은 영향을 많이 미치는 500개 교회를 선정하고는 그 교회들이 그럴 수 있는 원인이 무엇인가를 면밀히 분석해 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500개 교회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한 가지 특성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장기 목회였습니다. 대부분이 10년, 20년, 30년, 어떤 경우에는 40년 동안 담임 목사 한 사람이 장기적으로 목회 하는 그런 교회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성장하지 않고, 문제가 끊이지 않는 교회들을 살펴보았는데, 역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이 교역자가 자주 바뀌는 교회였다는 사실입니다. 그 목사님은 이와 같이 교역자가 자주 바뀌는 교회를 어머니가 자주 바뀌는 아이들에 비유했습니다. 무슨 소린가 하고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있을 지 모르지만 미국에서는 3년이 멀다하고 엄마가 바뀌는 가정이 부지기수입니다. 엄마가 자꾸 바뀌면 죽어나는 것은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의 정서적 울타리가 되어야 할 엄마가 3년마다, 어떤 경우에는 1년에 두세 번씩 바뀌어 버리니 어떻게 그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도 지도자들이 자주 바뀌면 영적으로 그와 비슷한 피해를 본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 삼아 그 목사님은 결심을 단단해 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면 나도 꼭 장기 목회를 해야지. 적어도 30년은 그 교회에서 목회하자.'
그런데 이와 같은 장기 목회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인들이 지도자에게 전적으로 순종하는 풍토가 교회 안에 마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은 한 가지 독특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등록할 때 아예 교인들로부터 서약을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서약 내용이 걸작입니다. 먼저는, 지도자에게 절대 복종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돌아다니면서 남의 험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고 은혜가 안 되면 조용히 떠난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서약을 아주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합의하고 도장 찍어도 나중에 가면 딴 소리를 하는 예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아주 철저하게 서약을 받습니다. 현재 11,000명 정도 출석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등록한 교인은 6천여 명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나머지 5천여 명은 등록을 안 하고 다니고 있는 셈입니다. 정말 진지하게 서약하지 않으면 등록을 받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런 목회가 도대체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까 우리 한국 교회는 교인 하나라도 더 늘리기 위해서 아무 조건 없이 등록을 받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만 해도 등록할 때 그 교회처럼 어떤 전제 조건을 마련해 놓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서약 같은 것으로 교회의 문을 좁혀놓는다는 것이 성장을 스스로 제한시키는 행동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교회가 오히려 은혜 충만하고 건강해서 미국에서 주목받는 교회로 성장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아직 등록하지 않고 있는 5천 명도 이 교회 저 교회를 철새처럼 왔다가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서약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예비 등록 교인들인 것입니다. 저는 그 목사님이 왜 이토록 과격하게 하시는 지 그 이유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활동하는 마귀의 책략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마귀는 성도들이 지도자에게 순종하지 못하게 하려고 안달이 되어 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그럴 듯한 말로 성도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립니다만 교회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가르치는 지도자가 있으면 무조건 복종하고 따라가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 목사님이 생명을 걸고 시대를 역행하는 듯한 그런 정책을 쓰는 것은 주님이 가장 사랑하시고 마지막 꿈을 걸고 있는 교회가 만의 하나라도 사탄의 책략에 휘말려 잘못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어 순종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주일날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고 계십니까 들은 말씀은 전부 잊어버린 채 말씀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듣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살기 위해서입니까 살기 위해서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도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도할 때 순종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끊임없이 성장하라
둘째로, 좋은 교회가 되려면 여러분 자신이 끊임없이 성장해야 합니다. 계속 믿음이 자라가야 합니다. 발육이 부진한 자녀들이 있는 가정을 보십시오. 그 부모나 가족이 얼마나 고통을 겪습니까 발육이 멈추어 버린 교인들만 가득한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를 비롯해서 모든 성도들이 상처를 입고,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교회가 되려면 목사로부터 시작해서 어린아이까지 모든 성도들이 영적으로 끊임없이 자라가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가 자라야 될 최고봉은 예수의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예수처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삶, 인격 전부가 예수님과 닮아 가는 것입니다. 물론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사는 한 우리가 이 봉우리를 완전히 정복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난 50년 동안 1만 2천 명 가량의 사람들이 맥킨리 산 정복에 도전을 했습니다. 이 가운데서 정상 정복에 성공한 사람은 56퍼센트 정도라고 합니다. 맥킨리 산이 아무리 높다 하지만 땅에 있는 산이기 때문에 기어올라가면 성공할 확률은 50퍼센트 이상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처럼 되는 봉우리는 평생을 씨름해도 안 됩니다. 이것은 미완성의 봉우리요, 과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가 서 있는 자리까지 올라와야 돼. 계속 올라와." 올라가다 죽으면 그대로 주님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죽을 때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성장을 멈추면 안 됩니다. 성장을 멈추어 버리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병들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보십시오. 처음에는 모두 양질의 교회로 자랐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목회자가 병이 들고, 자라기를 멈추어 버렸습니다. 교회의 중직을 맡은 직분자들도 배가 불러서 성장을 멈추어 버렸습니다. 그 결과 사데 교회 같이 영적으로 죽은 교회가 되지 않았습니까 버가모 교회와 두아디라 교회 같이 돈을 사랑하고, 자기 쾌락을 추구하는데 정신을 쏟는 성도들만 모이는 세속화된 교회가 되지 않았습니까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나는 이만큼 하면 됐다.' 하고 스스로 자만하고 주를 향한 열심을 모두 잃어버려 주님이 토해내고 싶을 정도로 역겨운 교회가 되지 않았습니까 성장을 멈추어 버렸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배가 불러 더 이상 기도도 않고, 일도 하지 않고, 영적인 싸움도 하지 않으니까 자동적으로 성장이 멈추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성장이 멈추어버린 성도들이 모이는 교회는 절대 좋은 교회가 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주님이 서 계신 곳까지 가기 위해서 성장하고 있습니까 성장하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말씀을 공부하고 있습니까 성장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기도하고 있습니까 성장하기 위해서 얼마나 간절히 은혜를 사모하고 있습니까 은혜를 받기 위해서라면 천리 만리라도 달려갈 만큼 갈급한 심정이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에는 교회에서 중직을 맡고 나면 신앙생활의 최고 경지에 이른 줄 알고 더 이상 성장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직분을 맡았든, 맡지 않았든 우리는 성장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성장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영적으로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처럼 되는 그 경지까지 우리 모두 끊임없이 자라가야 합니다. 아이들을 키워 보면 귀여울 때도 미울 때도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 볼 때 가장 귀여운 때가 두 번 정도 있는 것 같습니다. 네댓 살이 되면 재롱피우는 것이 얼마나 귀엽습니까 저는 아들들 키울 때는 잘 몰랐는데 손녀를 보니까 재롱피우는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재롱을 부리는지 하루 종일 그 애 하고 놀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럴 때는 정말 예쁩니다. 아무리 고생이 심해도 부모는 그 모든 고생을 다 잊어버립니다. 또한번 예쁘고 좋은 때가 있습니다. 대학 졸업하고 이제 시집장가를 가려고 한참 멋을 내고 어른이 된 것처럼 우쭐해 하는 것을 보면 부모 마음이 흐뭇해집니다. '야, 내 아들, 참 멋있다.' '아무리 내 딸이지만 너무 예쁘다.' 하고 뿌듯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다 보면 보기 싫을 때도 적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들어갈까 말까 할 때부터 시작해서 한 오륙 년 동안 온갖 개구쟁이 짓을 골라하는 것을 보면 그냥 쥐어박아 주고 싶을 정도로 밉습니다. 청소년 때는 또 어떻습니까 몸은 어른인데 생각은 아직 아이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차라리 아이라면 귀엽게 봐 주기라도 할텐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이 너무나 꼴사납습니다. 그러니까 보기만 해도 미운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참 귀엽고 사랑스러운 때가 있는가 하면 무엇을 해도 밉살스러운 때가 있습니다. 예수를 갓 믿고 한
3, 4년 동안 은혜 가운데 푹 빠져 환한 모습으로 천사처럼 사는 것을 보면 얼마나 귀여운 지 모릅니다. 교회가 좋아지려면 안 믿는 사람들이 자꾸 들어와서 대여섯 살 먹은 아이가 재롱을 피우듯이 재롱 피우는 교인이 자꾸 많아져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성장해서 무엇을 시켜도 안심하고 시킬 수 있고, 그 인격과 그 삶을 보면 자랑하고 싶고, 쳐다볼 때마다 은혜가 되는 그런 사람들 역시 자꾸 많아져야 합니다. 그럴 때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보면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서 어린아이처럼 개구쟁이 짓만 합니다. 물론 교회 안에 이런 분들이 없을 수는 없지만 이런 교인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면 그 교회는 틀림없이 질적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장이 멈추어 버리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도록 온 교회가 힘써야 합니다. 열심히 일하라
셋째로, 좋은 교회가 되려면 여러분이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먼저는, 가정이나 사회에서 여러분이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십시오. 여러분의 직업은 곧 하나님의 일입니다. 여러분의 가정 생활은 하나님이 주신 소명입니다. 이 소명을 등한히 여기면서 주의 일한다고 떠들면 안 됩니다. 우리 교회는 그런 사람을 절대 용납하지 않습니다. 우선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다음에는 교회가 제시하는 영적인 사역을 위해 좀더 직접적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시간이나 물질을 바쳐야 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일을 위해 정성을 모을 때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널리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간혹 보면 자기 직업이 주의 일이라는 것을 핑계삼아 교회 안에서 필요한 일들에 대해서 눈을 돌려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모두 잘 해야 합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교회가 힘쓰는 영적인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교회 안에서나 세상에서 열심히 뛰는 사람들이 많이 모일 때 그 교회는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좋은 교회가 주는 축복 우리가 이 교회를 좋은 교회로 만들면 그 모든 축복이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주님은 일곱 교회에게 이와 같은 상급을 약속해주셨습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이기는 자에게는 만나를 주고 흰 돌을 주겠다.이기는 자에게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겠다." 말씀대로 순종하면 좋은 교회가 될 것이고, 좋은 교회가 되면 주님이 이와 같은 축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좋은 교회는 기도 응답이 빠릅니다. 우리가 혼자 기도할 때도 하나님이 응답을 주시지만 좋은 교회일수록 그 응답이 빠릅니다. 좋은 교회일수록 은혜가 넘치기 때문에 그 은혜를 통해서 자신이 절대적으로 행복해집니다. 심령이 은혜로 윤택해지면 신경질이 사라집니다. 인간관계가 부드러워집니다. 부부 사이가 원만해집니다. 그러나 은혜가 메마르면 자기도 모르게 자꾸 짜증을 부립니다. 신경질을 냅니다. 남편이 이것저것 다 사주는데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철저하게 이기주의자가 되어 인간관계가 사나워집니다. 피차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세상적으로 누리는 것이 많다 해도 절대 행복하지 못합니다. 좋은 교회를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모 언론사에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형제 한 분이 제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를 읽으면서 저는 참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 믿은 지 4년밖에 안 된 분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성격적으로도 많이 변했습니다. 가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저 자신도 놀랄 정도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아름답고 좋게 보려고 합니다. 예전처럼 남을 미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동차만 타면 아름다운 찬송이 흘러나옵니다. 자동차 안에 테이프가 열 일곱 개나 됩니다. 그 테이프를 들으면 차가 막혀도, 다른 차가 끼어 들어도 신경질이 하나도 안 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은혜 받으면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행복해집니다. 우리가 행복하면 우리 옆에 있는 사람들도 함께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반대로 심령의 은혜가 메말라 버리면 우리는 피차 공격하며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서로가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각성 전도집회를 앞두고 있습니다만 다른 사람을 구원해서 교회로 데리고 나오는 것보다 더 우선되는 것은 이 교회를 좋은 교회로 만드는 것입니다. 좋은 교회를 만들어 놓고 다른 사람을 데려와야 그 사람도 행복하고, 우리도 행복합니다. 교회의 영적 수준이 엉망인데 사람만 자꾸 끌어들이면 더 질적으로 떨어지는 교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후반기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좋은 교회를 이루자는 꿈을 가지고 높고 크신 예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립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자신이 먼저 좋은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를 사랑하고 위해서 기도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성장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이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만유 중에 높이 계신 주님께서 이 교회를 통해 영원토록 다스리시며 영광 받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그런데 이와 같이 크고 높으신 주님의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고 있는 관심사가 하나 있습니다. 그분이 전심으로 사랑하시고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는 대상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교회입니다. 가장 높으신 분이 늘 마음에 두고 생각하고 사랑하고 희망을 거는 대상이 교회라는 말입니다. 이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교회라는 존재에 대해 새삼스럽게 주목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교회란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 1장 5절 하반 절부터 6절을 보십시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여기서 교회는 네 가지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이 사랑하시는 우리입니다. 주님이 죄에서 구속해준 우리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그의 나라와 백성으로 삼으신 우리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그의 제사장으로 삼으신 우리입니다. 이러한 우리가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본문 20절을 보십시오.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주님께서 이 세상 마지막에 알려주시고자 하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의 비밀이요, 예수님이 거닐고 계시는 일곱 금 촛대의 비밀입니다. 20절 후반부를 보면 주님은 그 비밀이 무엇인지 이렇게 설명해 주십니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비밀은 전부 일곱 교회에 관한 것입니다.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재림을 준비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교회밖에 없었습니다. 교회를 이처럼 사랑하시기 때문에 주님은 설혹 교회가 조금 잘못된다 해도 절대 실망하지 않으십니다. 요한계시록 2장부터 3장까지 나오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보십시오. 한 두 교회는 그런 대로 괜찮은 교회지만 나머지 다섯 교회는 형편없는 교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런 교회들을 놓고도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마지막 기대를 걸고 회개하라고 촉구하셨습니다. 회개하고 이기기만 하면 이러이러한 상급을 주시겠다고 약속해주시기까지 했습니다. 교회를 그 만큼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좋은 교회를 소원하라 주님께서 이처럼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에 큰 기대를 걸고 계신다면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고 제자가 된 우리들은 얼마나 더 교회를 사랑해야겠습니까 얼마나 더 교회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교회를 사랑하게 되면 자연 이런 소원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그처럼 귀하게 보시고 사랑하신다면 나도 한 생을 살 동안 좋은 교회를 만들어야지. 좋은 교회에 다니면서 우리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야지.' 이것이 바로 저의 소원이요, 또 여러분의 소원이어야 합니다. 좋은 교회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좋은 교회는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까 우리 각 사람이 좋은 신자가 되면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좋은 교회의 전제 조건은 우리 각 사람입니다. 우리 개개인이 주님이 칭찬하시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으면 절대 좋은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좋은 교회의 공식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 한번 태어나 행복도 맛보고, 고생도 맛보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예수 믿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개인의 행복과 인생의 의미가 어떤 교회를 다니느냐에 의해 상당부분 좌우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정말 은혜를 받았느냐, 교회를 통해서 정말 삶의 의미를 발견했느냐, 교회를 통해서 정말 뒤돌아보아도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기왕에 다닐 바에야 좋은 교회에 다녀야 하지 않겠습니까 살았다고 하는 이름은 있지만 죽은 송장이나 다름없는 사데 교회나 자만에 빠져 첫 사랑이 식어버린 라오디게아 교회 같은 그런 교회에 몸담을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왕이면 빌라델비아 교회같이 주님이 칭찬하시는 좋은 교회를 다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교회에 몸담고 다니는 이상 우리는 이 교회를 좋은 교회로 만들기 위해 헌신과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지도자의 중요성 오늘 본문을 보면 이 교회를 주님이 원하시는 좋은 교회로 만들어 드릴 수 있기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세 가지 사실이 나옵니다.
첫째로, 좋은 교회가 되려면 지도자의 위치와 중요성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2장 이하를 보십시오. 주님께서 각 교회에 하시는 말씀은 동일한 표현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모든 구절이 하나 같이 각 교회의 사자를 편지의 수신자로 지목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자'란 어떤 사람을 가리킵니까 어떤 성경은 '사자'라는 말을 천사(angel)로 해석합니다. 또 어떤 성경은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messenger)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해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각 교회에 보내신 천사를 '사자'라고 하는 것이라면 주님께서 구태여 그들을 칭찬하거나 경고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불완전한 인간이라면 모르겠지만 하나님을 보좌하는 천사가 무슨 책임질 잘못을 하겠습니까 저는 '사자'라는 말을 좀더 실제적으로 이해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교회에 세우신 지도자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을 보십시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여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 교회에 어떤 지도자들을 세우셨는지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처음에는 선지자들을 주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도들을 주셨고, 복음 전하는 자를 주셨으며, 목사와 교사를 주셨습니다. 목사와 교사는 두 사람이 아니고 한 사람을 말합니다. 양떼를 돌보는 목사인 동시에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교사인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역자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담임 목사든, 아니면 그와 함께 손을 잡고 일하는 부 교역자든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교회를 맡기신 교역자는 누구나 각 교회마다 세우신 하나님의 사자인 것입니다. 교역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특별히 소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목회를 일생의 사명으로 알기 때문에 그들은 교회와 양떼를 위해서라면 자기 생명이라도 기꺼이 바칠 각오를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역자들에 대한 주님의 관심은 다소 특별한 데가 있습니다. 본문 16절 전반부를 보십시오.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주님께서 교역자들을 오른손으로 쥐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저와 같은 왼손잡이야 다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오른손으로 잡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대 여섯 살 먹은 귀한 아들을 데리고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남대문 시장으로 간다면 틀림없이 오른손으로 그를 꼭 잡고 갈 것입니다.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기에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가장 힘있는 손으로 잡는 것입니다. 주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그만큼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을 오른손으로 굳게 붙들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은 교회의 잘 되고 못된 모든 일에 대해 교회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칭찬할 것이 있으면 그 교회의 지도자를 칭찬하십니다. 지도자를 칭찬하는 것은 곧 교회를 칭찬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그 지도자를 호되게 책망합니다. 그 책망은 곧 교회에 대한 책망입니다. 지도자가 어떠하면 그 교회 역시 그러하다는 것은 공식입니다. 지도자가 살아 있습니까 그 교회는 살아 있는 교회입니다. 지도자가 영적으로 병이 들었습니까 그 교회는 병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지도자가 시험에 빠졌습니까 그 교회는 반드시 시험에 빠집니다. 지도자가 위선자입니까 그 교회는 틀림없이 위선자들로 가득 차게 마련입니다. 모든 것이 지도자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지도자가 서면 교회가 서고, 지도자가 쓰러지면 교회가 쓰러집니다. 그래서 잘되고 못되는 모든 책임을 지도자들에게 물으시는 것입니다. 평신도들의 입장에서 말하면 개개인의 영적인 생명과 행복, 인생의 보람이 전부 교회 지도자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좋은 지도자를 만났습니까 은혜를 충만히 받으면서 영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좋은 지도자를 만나지 못했습니까 신앙생활 잘 하려다가 숫하게 상처를 입고 괴로운 한 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교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교회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를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교회 지도자가 주님께서 맡기신 그 일을 충성되게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온갖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지도자를 사랑하라 여러분이 교회 지도자를 위해서 반드시 해야할 일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교회 지도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이 가고 안 가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 가운데 저와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거의 없습니다. 교회 지도자니까 설교도 듣는 것이고, 지나가다가 만나면 인사도 하는 것이지, 솔직히 말해서 저와 여러분은 인간적으로 그렇게 가깝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별로 친하지도 않은 목사가 뭐가 그렇게 대단하냐고 생각하실 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영적인 생명과 행복이 교회 지도자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간다고 한번 상상을 해 보십시오. 뉴욕까지 가려면 아마 점보기로 열 대여섯 시간 정도 날아가야 될 지 모릅니다. 만의 하나 공중에 떠 있는 동안 엔진이 멈추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끝장입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지 않고는 비행기를 탈 수가 없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 보면 기장을 만날 때가 종종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인가는 기장이 나와서 인사를 하는데 보니까 고등학교 때부터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던 바로 그 친구였다고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렇다고 해서 "재수 없게 저 놈을 여기서 만날게 뭐야 에라 이 놈아. 가다가 뒤져버려라." 하고 저주 할 수 있습니까 절대 못합니다. 그 말은 곧 자기보고 죽으라는 저주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밉고 보기 싫어도 그가 비행기를 몰고 가는 이상, "저 사람을 꼭 돌보아 주십시오. 비행기를 모는 동안 사고 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 하고 부득불 그를 위해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목사 역시 마찬가지 위치에 있습니다. 목사를 보면 마음에 들고 좋을 때도 있지만 마음에 안 들고 미울 때도 분명 있을 수 있습니다. 설교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받을 수도 있지만 '오늘은 왜 저런 설교를 하냐'하고 기분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두 시간을 운전해서 왔는데 오늘은 설교를 영 죽 쓰시는구먼.'하고 불평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목사가 좋을 때도 있고, 나쁜 때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좋고 나쁘고에 너무 연연하면 안 됩니다. 교회 지도자는 여러분의 생명과 행복, 인생의 의미를 좌우할 수 있는 너무나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지도자를 사랑해야 됩니다. 사랑하지 않고 마음을 닫아버리면 천사의 말을 할 지라도 여러분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순식간에 병들어버리고, 감당할 수 없는 시험에 빠져 결국 망하게 될 것입니다.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라
둘째는,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담임 목사나 교역자를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고 계십니까 "주여, 옥 목사를 위시해서 사랑의 교회에 있는 수십 명의 목사님들, 오늘도 사역 잘하게 해 주옵소서. 아멘." 하고 5초 짜리 기도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면서 자기 남편을 위해서는 "주여, 좋은 남편 주신 것 감사합니다. 우리 남편이 오늘도 직장에 나가면 이런저런 일들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일 하나 하나 마다 함께 해주시고 도와주세요."하고 15분, 20분 동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기도합니다. 남편을 위해서는 20분 짜리 기도를 하면서, 목사를 위해서는 5초 짜리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남편이나 가족을 위한 기도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기도 못지 않게 교회 지도자를 위한 기도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얼마나 전에 일본 목사님 한 분과 함께 식사를 한 일이 있습니다. 동경에 있는 요도바시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미네노 목사님이라는 분인데, 그 교회는 전통도 오래고, 일본 교회로서는 큰 교회로 꼽히는 교회입니다. 그분은 예전에 우리 교회에서 제자훈련 지도자 세미나도 받고 가신 분으로 선명회의 일본 총재로 일하시는 중견 목사님이십니다. 저는 그 목사님이 식사를 하면서 들려주신 말씀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제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더니 대뜸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옥 목사님, 저는 아침마다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해 드리고 있습니다." 그 말이 제게 특별히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은 정작 제자신은 미네노 목사님을 위해 한번도 기도해준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교회를 도매금으로 묶어 "주여, 세미나를 마치고 간 일본 목사님들이 목회를 잘해서 일본 교회가 부흥하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기는 했지만 특정한 목사님을 위해 기도해 준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저를 위해서 지금까지 기도하고 있다니 제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물 건너에 있는 외국 목사도 저를 위해서 기도해준다고 하는데 이 교회를 다니면서 좋으나 싫으나 옥 목사를 통해 영의 양식을 받는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저를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담임 목사나 부교역자들을 위해서 5초 짜리 기도하면 안 됩니다. 적어도 10분 정도는 기도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지도자들이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에게 순종하라
셋째로, 지도자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지도자가 말씀대로 목회를 잘 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지도자가 잘못하는데 순종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늘날 마귀는 교회 지도자와 교인들 사이를 이간시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지도자와 교인들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목사의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게 만들고, 순종하지 않게 만듭니다. 교인들을 오합지졸로 만든 후에 나중에 자기 마음대로 짓밟아 보려고 마지막 사력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마귀가 즐겨 사용하는 전략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 교회를 위시해서 세계 교회를 보면 순종하지 않는 교인들 때문에 교회가 초토화되고 있습니다. 순종하지 하지 않으니까 너나 할 것 없이 교인들이 영양실조에 걸려 병이 듭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성령님의 도구가 아니라 마귀의 도구가 되어 교회를 무력화시키는데 일조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요즈음 미국에서 각광을 받는 목사님 한 분이 계십니다. 릭 워렌 이라는 목사님인데, 15년 전에 LA에 새들백 교회를 개척하여 지금까지 목회하고 있는 분입니다. 지난번에 제가 그 교회에 참석했을 때 보니까 그 교회는 장년 출석수가 11,000명에서 12,000명 사이로 우리 교회와 규모가 비슷했습니다. 우리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교회가 놀랍게 부흥을 해서 지금은 미국 전역에 있는 교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좋은 교회입니다. 저는 최근에 그 목사님이 쓴 책을 읽고 참 감명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15년 전에 새들백 교회를 개척하기 전에 이런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목회의 꿈에만 젖어 가지고 무작정 개척하기보다는 사전에 철저히 연구하고 시작하자.' 그는 먼저 미국에 있는 수십 만 교회 중에서 특별히 건강하게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주변에 좋은 영향을 많이 미치는 500개 교회를 선정하고는 그 교회들이 그럴 수 있는 원인이 무엇인가를 면밀히 분석해 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500개 교회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한 가지 특성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장기 목회였습니다. 대부분이 10년, 20년, 30년, 어떤 경우에는 40년 동안 담임 목사 한 사람이 장기적으로 목회 하는 그런 교회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성장하지 않고, 문제가 끊이지 않는 교회들을 살펴보았는데, 역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이 교역자가 자주 바뀌는 교회였다는 사실입니다. 그 목사님은 이와 같이 교역자가 자주 바뀌는 교회를 어머니가 자주 바뀌는 아이들에 비유했습니다. 무슨 소린가 하고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있을 지 모르지만 미국에서는 3년이 멀다하고 엄마가 바뀌는 가정이 부지기수입니다. 엄마가 자꾸 바뀌면 죽어나는 것은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의 정서적 울타리가 되어야 할 엄마가 3년마다, 어떤 경우에는 1년에 두세 번씩 바뀌어 버리니 어떻게 그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도 지도자들이 자주 바뀌면 영적으로 그와 비슷한 피해를 본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 삼아 그 목사님은 결심을 단단해 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면 나도 꼭 장기 목회를 해야지. 적어도 30년은 그 교회에서 목회하자.'
그런데 이와 같은 장기 목회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인들이 지도자에게 전적으로 순종하는 풍토가 교회 안에 마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은 한 가지 독특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등록할 때 아예 교인들로부터 서약을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서약 내용이 걸작입니다. 먼저는, 지도자에게 절대 복종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돌아다니면서 남의 험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고 은혜가 안 되면 조용히 떠난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서약을 아주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합의하고 도장 찍어도 나중에 가면 딴 소리를 하는 예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아주 철저하게 서약을 받습니다. 현재 11,000명 정도 출석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등록한 교인은 6천여 명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나머지 5천여 명은 등록을 안 하고 다니고 있는 셈입니다. 정말 진지하게 서약하지 않으면 등록을 받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런 목회가 도대체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까 우리 한국 교회는 교인 하나라도 더 늘리기 위해서 아무 조건 없이 등록을 받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만 해도 등록할 때 그 교회처럼 어떤 전제 조건을 마련해 놓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서약 같은 것으로 교회의 문을 좁혀놓는다는 것이 성장을 스스로 제한시키는 행동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교회가 오히려 은혜 충만하고 건강해서 미국에서 주목받는 교회로 성장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아직 등록하지 않고 있는 5천 명도 이 교회 저 교회를 철새처럼 왔다가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서약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예비 등록 교인들인 것입니다. 저는 그 목사님이 왜 이토록 과격하게 하시는 지 그 이유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활동하는 마귀의 책략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마귀는 성도들이 지도자에게 순종하지 못하게 하려고 안달이 되어 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그럴 듯한 말로 성도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립니다만 교회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가르치는 지도자가 있으면 무조건 복종하고 따라가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 목사님이 생명을 걸고 시대를 역행하는 듯한 그런 정책을 쓰는 것은 주님이 가장 사랑하시고 마지막 꿈을 걸고 있는 교회가 만의 하나라도 사탄의 책략에 휘말려 잘못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어 순종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주일날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고 계십니까 들은 말씀은 전부 잊어버린 채 말씀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듣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살기 위해서입니까 살기 위해서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도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도할 때 순종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끊임없이 성장하라
둘째로, 좋은 교회가 되려면 여러분 자신이 끊임없이 성장해야 합니다. 계속 믿음이 자라가야 합니다. 발육이 부진한 자녀들이 있는 가정을 보십시오. 그 부모나 가족이 얼마나 고통을 겪습니까 발육이 멈추어 버린 교인들만 가득한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를 비롯해서 모든 성도들이 상처를 입고,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교회가 되려면 목사로부터 시작해서 어린아이까지 모든 성도들이 영적으로 끊임없이 자라가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가 자라야 될 최고봉은 예수의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예수처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삶, 인격 전부가 예수님과 닮아 가는 것입니다. 물론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사는 한 우리가 이 봉우리를 완전히 정복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난 50년 동안 1만 2천 명 가량의 사람들이 맥킨리 산 정복에 도전을 했습니다. 이 가운데서 정상 정복에 성공한 사람은 56퍼센트 정도라고 합니다. 맥킨리 산이 아무리 높다 하지만 땅에 있는 산이기 때문에 기어올라가면 성공할 확률은 50퍼센트 이상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처럼 되는 봉우리는 평생을 씨름해도 안 됩니다. 이것은 미완성의 봉우리요, 과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가 서 있는 자리까지 올라와야 돼. 계속 올라와." 올라가다 죽으면 그대로 주님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죽을 때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성장을 멈추면 안 됩니다. 성장을 멈추어 버리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병들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보십시오. 처음에는 모두 양질의 교회로 자랐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목회자가 병이 들고, 자라기를 멈추어 버렸습니다. 교회의 중직을 맡은 직분자들도 배가 불러서 성장을 멈추어 버렸습니다. 그 결과 사데 교회 같이 영적으로 죽은 교회가 되지 않았습니까 버가모 교회와 두아디라 교회 같이 돈을 사랑하고, 자기 쾌락을 추구하는데 정신을 쏟는 성도들만 모이는 세속화된 교회가 되지 않았습니까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나는 이만큼 하면 됐다.' 하고 스스로 자만하고 주를 향한 열심을 모두 잃어버려 주님이 토해내고 싶을 정도로 역겨운 교회가 되지 않았습니까 성장을 멈추어 버렸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배가 불러 더 이상 기도도 않고, 일도 하지 않고, 영적인 싸움도 하지 않으니까 자동적으로 성장이 멈추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성장이 멈추어버린 성도들이 모이는 교회는 절대 좋은 교회가 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주님이 서 계신 곳까지 가기 위해서 성장하고 있습니까 성장하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말씀을 공부하고 있습니까 성장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기도하고 있습니까 성장하기 위해서 얼마나 간절히 은혜를 사모하고 있습니까 은혜를 받기 위해서라면 천리 만리라도 달려갈 만큼 갈급한 심정이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에는 교회에서 중직을 맡고 나면 신앙생활의 최고 경지에 이른 줄 알고 더 이상 성장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직분을 맡았든, 맡지 않았든 우리는 성장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성장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영적으로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처럼 되는 그 경지까지 우리 모두 끊임없이 자라가야 합니다. 아이들을 키워 보면 귀여울 때도 미울 때도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 볼 때 가장 귀여운 때가 두 번 정도 있는 것 같습니다. 네댓 살이 되면 재롱피우는 것이 얼마나 귀엽습니까 저는 아들들 키울 때는 잘 몰랐는데 손녀를 보니까 재롱피우는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재롱을 부리는지 하루 종일 그 애 하고 놀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럴 때는 정말 예쁩니다. 아무리 고생이 심해도 부모는 그 모든 고생을 다 잊어버립니다. 또한번 예쁘고 좋은 때가 있습니다. 대학 졸업하고 이제 시집장가를 가려고 한참 멋을 내고 어른이 된 것처럼 우쭐해 하는 것을 보면 부모 마음이 흐뭇해집니다. '야, 내 아들, 참 멋있다.' '아무리 내 딸이지만 너무 예쁘다.' 하고 뿌듯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다 보면 보기 싫을 때도 적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들어갈까 말까 할 때부터 시작해서 한 오륙 년 동안 온갖 개구쟁이 짓을 골라하는 것을 보면 그냥 쥐어박아 주고 싶을 정도로 밉습니다. 청소년 때는 또 어떻습니까 몸은 어른인데 생각은 아직 아이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차라리 아이라면 귀엽게 봐 주기라도 할텐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이 너무나 꼴사납습니다. 그러니까 보기만 해도 미운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참 귀엽고 사랑스러운 때가 있는가 하면 무엇을 해도 밉살스러운 때가 있습니다. 예수를 갓 믿고 한
3, 4년 동안 은혜 가운데 푹 빠져 환한 모습으로 천사처럼 사는 것을 보면 얼마나 귀여운 지 모릅니다. 교회가 좋아지려면 안 믿는 사람들이 자꾸 들어와서 대여섯 살 먹은 아이가 재롱을 피우듯이 재롱 피우는 교인이 자꾸 많아져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성장해서 무엇을 시켜도 안심하고 시킬 수 있고, 그 인격과 그 삶을 보면 자랑하고 싶고, 쳐다볼 때마다 은혜가 되는 그런 사람들 역시 자꾸 많아져야 합니다. 그럴 때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보면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서 어린아이처럼 개구쟁이 짓만 합니다. 물론 교회 안에 이런 분들이 없을 수는 없지만 이런 교인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면 그 교회는 틀림없이 질적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장이 멈추어 버리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도록 온 교회가 힘써야 합니다. 열심히 일하라
셋째로, 좋은 교회가 되려면 여러분이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먼저는, 가정이나 사회에서 여러분이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십시오. 여러분의 직업은 곧 하나님의 일입니다. 여러분의 가정 생활은 하나님이 주신 소명입니다. 이 소명을 등한히 여기면서 주의 일한다고 떠들면 안 됩니다. 우리 교회는 그런 사람을 절대 용납하지 않습니다. 우선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다음에는 교회가 제시하는 영적인 사역을 위해 좀더 직접적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시간이나 물질을 바쳐야 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일을 위해 정성을 모을 때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널리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간혹 보면 자기 직업이 주의 일이라는 것을 핑계삼아 교회 안에서 필요한 일들에 대해서 눈을 돌려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모두 잘 해야 합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교회가 힘쓰는 영적인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교회 안에서나 세상에서 열심히 뛰는 사람들이 많이 모일 때 그 교회는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좋은 교회가 주는 축복 우리가 이 교회를 좋은 교회로 만들면 그 모든 축복이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주님은 일곱 교회에게 이와 같은 상급을 약속해주셨습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이기는 자에게는 만나를 주고 흰 돌을 주겠다.이기는 자에게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겠다." 말씀대로 순종하면 좋은 교회가 될 것이고, 좋은 교회가 되면 주님이 이와 같은 축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좋은 교회는 기도 응답이 빠릅니다. 우리가 혼자 기도할 때도 하나님이 응답을 주시지만 좋은 교회일수록 그 응답이 빠릅니다. 좋은 교회일수록 은혜가 넘치기 때문에 그 은혜를 통해서 자신이 절대적으로 행복해집니다. 심령이 은혜로 윤택해지면 신경질이 사라집니다. 인간관계가 부드러워집니다. 부부 사이가 원만해집니다. 그러나 은혜가 메마르면 자기도 모르게 자꾸 짜증을 부립니다. 신경질을 냅니다. 남편이 이것저것 다 사주는데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철저하게 이기주의자가 되어 인간관계가 사나워집니다. 피차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세상적으로 누리는 것이 많다 해도 절대 행복하지 못합니다. 좋은 교회를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모 언론사에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형제 한 분이 제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를 읽으면서 저는 참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 믿은 지 4년밖에 안 된 분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성격적으로도 많이 변했습니다. 가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저 자신도 놀랄 정도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아름답고 좋게 보려고 합니다. 예전처럼 남을 미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동차만 타면 아름다운 찬송이 흘러나옵니다. 자동차 안에 테이프가 열 일곱 개나 됩니다. 그 테이프를 들으면 차가 막혀도, 다른 차가 끼어 들어도 신경질이 하나도 안 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은혜 받으면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행복해집니다. 우리가 행복하면 우리 옆에 있는 사람들도 함께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반대로 심령의 은혜가 메말라 버리면 우리는 피차 공격하며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서로가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각성 전도집회를 앞두고 있습니다만 다른 사람을 구원해서 교회로 데리고 나오는 것보다 더 우선되는 것은 이 교회를 좋은 교회로 만드는 것입니다. 좋은 교회를 만들어 놓고 다른 사람을 데려와야 그 사람도 행복하고, 우리도 행복합니다. 교회의 영적 수준이 엉망인데 사람만 자꾸 끌어들이면 더 질적으로 떨어지는 교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후반기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좋은 교회를 이루자는 꿈을 가지고 높고 크신 예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립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자신이 먼저 좋은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를 사랑하고 위해서 기도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성장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이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만유 중에 높이 계신 주님께서 이 교회를 통해 영원토록 다스리시며 영광 받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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