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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으키는 사람 (행3:1-10)

본문

오늘은 장애인 주일입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장애인들이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인구의 약 10% 정도가 장애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세상의 많은 장애인들이 자신과 죄와 잘못만으로 장애인이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저들이 장애인이 된 데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의 앉은뱅이도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저가 앉은뱅이로 태어나게 된 것은 자기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당신의 어떤 뜻과 계획을 위하여 어떤 사람들을 장애인으로 태어나게 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오해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깊으신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믿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분명 불공평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세상을 공평하게 창조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세상을 불공평하게 창조하시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하게 또 어떤 사람은 건강치 못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건강치 못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장애인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부잣집에 태어나게 하시고 또 어떤 사람은 가난한 집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물론 불공평한 것보다는 공평한 것이 낫습니다. 그러나 공평한 것이 최고의 덕목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공평한 것보다 더 훌륭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생각하시고 계획하셨습니다. 그것은 섬김과 사랑 그리고 감사와 은혜가 있는 불공평한 세상입니다. 그것은 건강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귀히 여기고 사랑하여 진심으로 저를 돕고 섬기는 것입니다.
도움과 섬김을 받는 건강치 못한 사람은 저들의 섬김과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은혜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불공평함은 오히려 섬김과 은혜의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도울 것도 없고 도움을 받을 것도 없는 세상, 섬길 것도 없고 섬김을 받을 필요도 없는 세상은 생각처럼 좋은 세상 아닙니다. 그런 세상보다는 좀 불공평한 것처럼 보여도 서로 사랑으로 돕고 섬기고 사는 불공평한 세상이 훨씬 더 훌륭하고 아름답습니다. 불공평함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으로 서로 돕고 섬기는 생활입니다. 사랑과 섬김 그리고 감사와 은혜로 말미암은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하나님은 이 세상을 불공평해 보이게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장애는 얼마든지 믿음으로 극복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극복된 장애는 이미 장애가 아닙니다. 극복만 될 수 있다면 장애도 은사입니다. 우리가 잘아는 장애인 중에 송명희씨가 있습니다. 그는 뇌성마비 환자입니다. 그는 자기 몸하나 제 마음대로 가누기가 힘든 중증 장애인입니다. 그러한 그가 하나님을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찬송하고 간증합니다. 자신에게는 남에게 있는 건강과 재물도 지식도 없지만 그러나 남에게 없는 것도 자기에게 있다고 간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찬송합니다. 그것은 얼마나 엄청난 찬송인지 모릅니다. 세상에 뇌성마비 환자로 평생을 하나님 원망을 하고 살아도 얼마든지 이해 받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간증하고 찬송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장애는 쉽지는 않지만 얼마든지 극복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장애는 반드시 극복이 됩니다. 그리고 장애는 극복이 될 때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도 은사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장애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우리가 다 잘 알 수는 없지만 가장 분명하고도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저들을 사랑으로 돕고 섬기기를 원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 건강한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고 무엇으로 저들을 돕고 섬길 수 있는가 물론 물질로 저들을 돕고 섬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도 본문에 보니 구걸하는 앉은뱅이가 성전 문 앞에서 구걸을 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에도 성전에 기도하러 들어가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 비하여 더 어려운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즘도 전철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가 찬송가를 부릅니다. 목탁을 두드리면서 구걸을 하는 사람을 저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불교를 믿는 사람보다 더 구제를 잘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거의 틀림없이 저들을 찬송대신 불경을 외우며 구걸을 할 것입니다. 예수님 오실 때까지 모든 구걸하는 사람들이 목탁을 두드리지 아니하고 찬송을 부르면서 구걸할 수 있기를 저는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작은 돈이라도 열심히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저들에게 기회를 주는 일들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여야 할 것입니다. 저희 교회에도 지체장애인 직원 한 사람과 시각 장애인 목사님 한 분이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사업을 할 때 계산으로는 좀 손해가 될는지 몰라도 장애인들을 고용하여 저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저들에게 안정적인 자리를 만들어 주는 일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앞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몇 푼의 돈으로 저들을 다 돕고 섬겼다 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저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와 요한은 한 푼의 돈을 구걸하는 앉은뱅이에게 자신들에게 은과 금은 없지만 자신들에게 있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말씀 위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그 앉은뱅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는 다리에 힘을 얻고 일어나 걷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놀라운 사실을 믿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와 같은 놀라운 역사는 일어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믿음은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저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 미즈노 겐죠라는 장애인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질에 걸려 고열에 뇌를 상하게 되었고 그 후 그는 뇌성마비 환자가 되어 보는 것과 듣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성경을 읽던 중 예수를 만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 말씀 즉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에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 그는 참으로 변화된 놀라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그 놀라운 삶을 간증하는 시를 지어 발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머니가 모음표와 자음표를 만들어 한자 한자 글자를 손으로 짚어가면 자신이 쓰려고 하는 글자를 짚을 때 눈으로 신호를 하여 글자를 만들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지은 시중에 '내 마음속에'라는 시가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 기쁨이 있다. 내 마음속에 희망이 있다. 내가 나아갈 길이 있다. 그건 그리스도 예수가 열어 주신 것 어두워도 헤메이지 않아 하나님 나라에 가는 기쁨의 길이 있다. 예수를 믿음으로 환경은 아무 것도 바뀐 것은 없지만 그의 온 삶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는 단번에 자신의 모든 삶의 장애를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많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며 저들을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게 하는 놀라운 사역을 감당하는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놀라운 역사는 오늘날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장애인들에게 물질도 베풀고 직장도 마련해 주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저들에게 복음을 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 걸으며 성전에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자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기이히 여겼습니다. 기이히 여겼다는 것은 그것을 놀랍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 사건을 통하여 저들의 마음이 열려지게 되었고 그날 앉은뱅이가 일어나 성전에서 찬송을 한 사건은 전도의 효과를 발생하여 초대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 동안교회가 장애인들을 따뜻히 품어주고 저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주어 저들이 동안교회에서 성전에서 기뻐 찬송하고 노래한다면 그것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열려지게 될 것이고 그와 같은 사건을 통하여 전도의 문이 열려 다시금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장애인들을 받아 주십시다. 저들에게 기회를 주십시다. 그리고 저들과 함께 사십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줄로 믿습니다. 조금 불편하다고 힘이 든다고 그리고 손해를 본다고 저들을 외면하며 저들에게 기회를 주지 아니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슬프게 하여 드리는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안에 있는 소망부를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소망부가 계속 부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기도와 물질로 지원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교사들과 교인들이 소망부에 관심을 가지고 봉사하며 헌금해 주시는 것에 대하여 정말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김영길 목사님의 목회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김영길 목사님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시각장애자입니다. 처음에 목사님을 청빙 할 때 장애인 사역을 위하여 청빙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옳은 판단이 아니었습니다. 시각장애자에게 청각장애자들과 언어장애자들을 맡겨 놓으니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와 같은 시행착오를 통하여 장애인 사역은 헌신된 비장애인이 하여야 더 좋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부터 김 목사님에게 일반 교구 사역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장애가 없는 목회자보다는 여러 가지로 불편한 일이 이런 저런 불편함이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우리 교회가 김 목사님이 마음 편하게 목회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교회가 된다면 정말 우리 동안 교회는 좋은 교회가 될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성장하고 부흥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혼자 생각으로 이 다음에 우리 아들 결혼주례를 김목사님에게 부탁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여 보았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분명 사람들이 놀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나라에서는 충격적인 일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와 저의 자녀가 믿음으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다면 분명 그것은 근사한 일이 될 것이며 목사님의 주례를 받은 우리 자녀는 분명 하나님의 특별하신 축복을 받아 정말 아름다운 삶을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장애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붙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소자 한 사람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는 자는 결단코 그 상을 잃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해야만 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장애인들을 아주 저속하고도 비속한 말로 재수 없는 사람이라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반대의 말입니다. 장애인은 저들의 표현대로 하자면 재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재수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저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 가보면 장애인들의 천국이라고 하리만큼 저들에 대한 배려가 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선진국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러기 때문에 선진국이 된 것입니다. 장애인들에게 붙어있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저들이 선진국이 된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장애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불공평해 보이는 일 속에도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다는 사실은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장애는 믿음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와 같은 어려운 일을 당하신다면 믿음으로 극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장애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섬김으로 저들에게 붙어있는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다 받아 이 땅에서도 성공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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