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은혜와 제자의 삶 (눅5:1-11)
본문
오늘은 대강절 둘째 주일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탄생하신 12월 25일까지 우리는 이렇게 기다리면서 나를 위해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메시야를 기다린 역사의 민족입니다. 수 천년 동안 하나님의 축복은 오직 한 곳으로 모아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향하여, 또 이스라엘 택한 백성을 향하여 주시는 축복은 '메시야가 오면' 입니다. 메시야가 이 축복을 가져 오실 것입니다. 메시야가 올 때에 축복도 함께 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때 그 아들을 통하여 해결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항상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사야 7장, 9장, 11장이나 아니, 구약성경 전체에 대한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를 축복하고자 하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를 떠나서는 어떠한 것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을 향하여 주시는 약속도, 이삭과 야곱과 모세를 통하여 주신 모든 율법도 메시야로 말미암아, 메시야가 올 때만이 그 백성의 품안에 돌아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모든 위로와, 풍요로움과, 기적과, 환상적이고 이상적인 세계도 다 메시야가 올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야를 기다리는 민족이 바로 유대인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하여, 다윗의 그 혈통을 통하여 주실 메시야, 유대 땅 베들레헴 땅에 오리라고 약속되어 있는 이 메시야를 기다리는 민족처럼 오늘 우리들도 이제 이 땅 위에 나의 구주로 오신 성탄절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성탄절을 사모하면서 모든 목적을 그가 오지 아니하면, 단비가 내리지 아니하면 곡식이 살 수 없듯이 하나님의 아들이 오지 아니하면 하나님 앞에 내 생명도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를 기다리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 한 분에게 목표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오면 사막이 변하여 옥토가 될 것입니다. 시냇가가 될 것입니다.
이사야서에 보면 어린아이와 이리가 같이 놀게 되고 어린아이가 독사의 구멍에도 손을 넣을 수 있는, 그 이상 이데아의, 유토피아의 세계는 이 땅의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어주신 그 아들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저주아래 있습니다. 마귀에게 붙잡혀 있는, 교도소에 갇혀있는 것과 같은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우리 인간을 참 자유케 하여 이 모든 저주와 멸망에서 건져 주실 이는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또 인간이 고아원과 같이 날마다 어머니 아버지를 보고 싶어하고 기다리고 사모하고 늘 살아도 허전하고 좋은 일이 있어도 허전하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안 계시면 더 어려운 부모의 기다림입니다. 며칠 전에 우리 나라 KBS에서 이산가족들을 찾게 하는 프로그램을 제가 잠시 보았습니다. 52세 되는 어머니가 이미 45년 전에, 일곱 살 때에 이사가는데 그만 거기서 옆을 잠깐 보다가 부모들도 아이가 오는 줄 알았는데 가보니 애가 안 왔고 애도 잠깐 사이에 이삿짐은 골목을 돌아 그만 어디로 가버렸고 그래서 길을 잃어버리고 어머니 아버지를 찾는 거예요. 45년만에 아버지 어머니를, 그 동안도 얼마나 목마르게 찾았지만 또 다시 나와 "어머니 보고싶다"라는 거예요. 언니하고 동생 이름 다 외우면서 찾아달라고 소리 질렀어요. 그래서 진행하는 분이 물었어요. 어머니 아버지를 왜 찾느냐고 못 사는 것도 아니고 못 먹는 것도 아닌데 왜 찾느냐고 그러니까 어머니가 없는 이 가슴, 비어 있는 이 곳을 메울 수가 없다는 거예요. 못 살아서가 아니에요. 인간이 하나님이 없으면 못살아서가 아니예요. 하나님을 떠나면 찾게 되어있습니다. 허전해요. 외로워요.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어 있고 인간은 좌절과 공허에 매어달리게 되어있어요. 늘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늘 즐겨도 만족함이 없는 것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를 찾고 만나지 아니하면 인간은 고아원에 갇혀 있는 외로운 몸과 같은 거예요. 우리의 기쁨은 오직 그 아들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어주신 그의 아들 메시야가 우리 인류의 짐을 져 주시고, 우리의 가난함을 풍요롭게 하시고, 우리의 떨어진 옷들을 다 벗겨 주셔서 하나님 자녀 왕자의 옷을 갈아 입혀 주셔서 내 영혼으로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내 삶으로 뛰는 송아지, 사슴처럼 기뻐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풍성함은 그 아들로 말미암아 오는 것입니다. 요사이 경제위기가 오면서 사람은 인색해지고 가난해졌습니다. 안 먹고, 안 쓰고, 안 입고 살려고 해도 점점 어려워져서 수 천명의 노숙자들이 시멘트 바닥에 잠을 자고 있습니다. 요사이는 담배도 안 나누어 피운다고 합니다. 도시락도 싸 가지고 다니고 구내 식당이 잘 되고 흥청대던 고급식당은 지금 손님이 없습니다. 고급 차가 안 팔리고 티고, 마티즈, 아토즈가 맛을 내고 있습니다. 날개 돋친 듯이 팔리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그 어린아이들이 밥을 먹지 못하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10만 명이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처음으로 이제 돈이 뭐기에, 하루종일 배가 고픈 것을 절실히 경험하고 있습니다. 풍성함이, 있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이렇게 큰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수 십만 대학생들이 휴학을 해서 지금 대학이 운영이 어려워졌습니다. 교수 자리가 든든한 자리가 아닙니다. 학교가 다 어려워졌습니다. 사람은 풍성해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풍성한 은혜를 받도록 되어져 있습니다. 물고기는 물 속이 풍성하고, 나는 새는 하늘을 마음껏 날듯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아래 날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마음껏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저 큰 바다 보다 깊다 너 곧 닻줄을 끌러 깊은 데로 저 한 가운데 가보라 언덕을 떠나서 창파에 배 띄워 내 주 예수 은혜의 바다로 네 맘껏 저어가라♪ 풍성한 은혜, 예수님이 왜 오셨어요 왜 예수님 믿는 거예요 예수님이 제일 좋은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소원은, 어린아이의 소원이 대단한 것 같아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우리의 소원은 풍성한 소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내 소원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원보다 백 배, 천 배, 만 배 더 풍성하게 하시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의 찢어진 가슴, 그 병든 상처를 풍성한 은혜로 마을에 뛰어 들어가도록 만들어 주셨고 삭개오에게 풍성함을 주셨고 오늘 온 세계의 기독교가 들어가는 곳곳마다 풍성한 은혜를, 풍성한 축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미국의 청교도들 102명이 미국 땅을 건너가서 풍성한 은혜로 풍성한 나라를 만들어서 온 세계를 나누어주는 최고의 나라로 만든 이 풍성함이 누구로 말미암아 왔느냐, 로마가, 영국이, 어렵게 살아가던 저 유럽 땅들이, 유럽은 아시아가 번영하고 아시아가 부유하고 아시아가 세계를 지배할 때 유럽은 거지같은 나라였습니다. 복음이 그 땅으로 들어가던 그 때에 아시아는 인도의 문명과 중국의 문명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어마어마한 문명 속에서도 저들은 문명에 소외된 국가 버림받은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풍성케 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를 받아들이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시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지금 유럽에 살아가고 있는 그 땅의 후손들은 조상들이 풍성히 모은 예수 때문에, 예수 풍성히 잘 믿은 그 덕택에 지금 저들이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풍성함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는 것입니다. 레위기 26장 5절에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 땅에 안전히 거하리라" 시편 132편 15절 "내가 이 성의 식료품에 풍족히 복을 주고 양식으로 그 빈민을 만족케 하리로다"
시편 144편에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식양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 돌과 같으며 우리의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우리의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또 우리를 침노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우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진대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했는데 어떻게 이런 백성이 될 수 있느냐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이라고 했어요. 이 모든 축복은 메시야로부터 다 오는 거예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섬길 때, 아들들은 나무 같이 장성해요. 그래서 남자는 쭉쭉 뻗어 올라가야 되고요. 남자다워야 되고요. 여자는 궁전의 식양대로 꾸민 아름다운 것과 같다 그랬어요.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 돌과 같다, 궁전은 모양을 얼마나 다듬습니까, 여자는 어떤 복이냐 딸은 다듬어야 복이에요. 잘 다듬은 부인은 복 받은 여인이고요. 못 다듬은 부인은 복 못 받은 여자예요. 다듬은 걸 보면 여자는 팔자를 알 수가 있어요. 잘 다듬었느냐 못 다듬었느냐가 생명이에요. 노인도 여자는 다듬어야 되고요. 남자는 어려서부터 다듬을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 앞에 복 받으면 그게 다듬는 거예요. 복 받으면 그게 힘이에요. 남자는 쭉쭉 뻗어야 되고 여자는 밤낮으로 다듬어야 복이에요. 하나님이 주신 축복, 다듬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자가 되가지고 다듬지도 않고 그냥 막 나오면 안됩니다. 옷도 다듬어 입고 머리도 다듬어야 되고 얼굴도 다듬어야 되고 날마다 날마다 우리 성도들에게 다듬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고 들의 양은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사업의 축복입니다. 집 안에 축복이 있는가 하면 밖의 복이 있습니다.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좋은 것들이 무겁게 싣고 집 안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나가서 막는 일도 없고 침노하는, 이것은 평화의 축복, 평안의 복입니다. 슬피 부르짖음이 없다. 고민도 애통도 환난도 시험도 없으니 이러한 축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이 풍성한 놀라운 축복은 위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인간은 문화가 시작되고 이 땅에 인간의 생명이 태어나면서부터 개인이나 국가나 사회 가리지 않고 인간은 잘 살기를 원하는 거예요. 잘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마찬가지에요. 제가 그저께 '아스다롯'이라고 하는, 우리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를 많이 한 '바알'이라고 하는 우상이 있어요. 그건 남자 신이예요. 그리고 '아스다롯'은 여신인데요. 여자 신이에요. 제가 그걸 처음으로 봤는데 보니까 그 모양이 여신이니까 가슴만 강조했어요. 풍성한 가슴을 강조했는데 거기다가 이 우상이 손을 잡고 있어요. 가슴에다. 그건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풍요로움을 원하는 거예요. 물질의 풍요로움, 동물들, 짐승들까지 풍요롭고 자식의 풍요함,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간만 있으면 그 아스다롯을 섬기는 거예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자꾸 그런 걸 원하는 거예요. 오늘 이것은 그 나라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조상들도 얼마나 그런 것을 소원했고요. 예를 들면 결혼식만 해도 풍요로움을 원하는 거예요. 그래서 결혼식에 닭을 갖다 놓는 거예요. 닭이 알을 많이 낳잖아요. 풍요로움을 원하는 거예요. 자식이 많이 태어나기를 원하는 거예요. 또 부모한테 절을 하면 부모님이 그 며느리 치마에다가 꼭 밤하고 대추를 던져줍니다. 왜 그래요 밤이 많이 열리니까. 자식을 밤처럼 많이 낳으라고, 대추 같이 많이 낳으라고 그런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어느 사람 할 것 없이 어느 시대 할 것 없이 사람은 풍요롭고 번성하고 잘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과학이 발달한 이 시대는 안 그런 줄 아세요 지금은 방법이 다를 뿐이지 더합니다. 예를 들면 미국의 뉴욕은 '월드가'입니다. 세계의 돈 벌기 위해서 전부 그 쪽으로 모여오는 금융 센타들입니다. 그 110층이 전부 모두 증권 투자하고 일순간에 큰 돈을 벌려고 하는 전 세계에 돈에 대한,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 뉴욕으로 다 몰리는 거예요. '라스베가스' 같은 곳은 한번에 돈 많이 벌려고 도박으로 가는 거예요. 거기만 그럽니까 한국 사람은 이 나라가 다 도박판이에요. 기차를 타도 도박, 비행기를 타도 한국 사람들 탄 곳에는 화투를 칩니다. 일 순간에 돈 벌려고 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세계에 그저 한탕주의, 복권이라든지 경마장에 왜 몰리느냐 다 잘되기를 원하는 거예요. 그러나 분명히 기억하셔야 합니다.
인간의 풍요로움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한 순간 부분적으로 그 주머니를 채우는 것이 인간의 전체의 내용은 영육의 모든 삶을 풍성하게 할 수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주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를 충만하고, 풍성하게, 내 잔이 넘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밤이 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인간의 힘과 노력과 경험으로는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주님을 믿고 주님의 뜻을 따라서 그물을 던지러 나갔습니다. 이제 베드로의 삶은 바뀌어 졌습니다. 그 전에는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세상 부귀 영화를 바라보던 삶이 이제는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믿고 믿음으로 의심치 않고 주님을 생각하면서 바다로 나갔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잡아서 자기 배로는 다 가지고 올 수 없을 정도의 풍성한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내 힘으로,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살면 안되는 것입니다. 가정이든 사업이든 내 모든 생활을 주님을 사랑하므로, 주님을 믿으므로, 주님을 중심하므로, 주님을 의지하여 나아갈 때만이 우리가 이러한 영육에 넘치는, 범사에 넘치는, 내 생애에 넘치는 은혜를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사람들은 너무 풍요롭지 못하여서 인간의 문제를 인간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것도 불의한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은 더 많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나는 신문에 늘 볼 때마다 돈 몇 천만 원에 사람을 죽이면 그래도 돈이 귀하다고 하죠. 어떤 분은 십 만원 때문에 죽이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택시 강도는 오 만원 때문에 강도 짓 하고요. 한 가장을 그냥 죽이고 오 만원을 빼앗아 갑니다. 오 만원이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지난번 부산에서 있었던 일 보세요. 아들 손가락을 잘랐는데 그 목표가 천 만원. 아니 1억을 벌려고 했더라면 그래도 좀 유혹이라도 많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하겠는데, 요거 천 만원 벌려고 아들 손을 잘라서 보험 들고 강도 왔다고 위장을 해서 어찌 아버지가 자기 아들 손가락을 돈 천 만원 목표하고, 요사이 모두 몸을 파는 사람이 억을 벌려고 몸을 팔면 그래도 이해를 하겠는데 적어도 그 하룻밤에 몇 만원 벌려고 어찌 가정주부들이 그렇게 나갈 수 있느냐 하는 거예요. 전부가 다 그저 조그만 것에 유혹을 받습니다. 나는 오늘도 어떤 편지를 보니 "목사님 조금만 도와주시면 내 문제는 해결됩니다" 아닙니다. 몇 백 만원, 몇 천 만원으로 인생이 해결 될 일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지 아니하면, 배가 고플 때는 그것만 있으면 될 것 같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강물 같은 은혜를 내려 주지 아니하시면, 바다 같은 은혜를 부어 주지 아니하시면 해결할 수 없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우리 나라는 요사이 부정 부패하는 것도 1억이라 그러면 다 넘어져요. 높고 낮고 간에 1억의 유혹을 받으면 다 넘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1억이 그렇게 큰 줄 아십니까 이걸 분명히 아셔야합니다. 1억은 없을 때 보면 큰 것 같지만 '정신 차리세요.' 없을수록 주님의 말씀대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더 깊은 곳으로, 신앙의 깊은 곳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의 은혜로 해결을 해야지 얕은 물가에 있으면 안됩니다.
에스겔 47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미래에 내려 주실, 교회를 통하여 내리실 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문지방에서 물이 나오죠. 그 물이 샘이 있는데 그 물을 따라 내려갑니다. 일 천 규빗을 내려가 보니 물이 발목까지 왔어요. 그 다음 일 천 규빗 가니까 무릎까지 오고 그 다음 허리까지 오고 계속 일 천 규빗 또 가니까 물이 가슴까지 옵니다. 또 일 천 규빗 더 가니까 물이 많아 헤엄칠 물이에요. 헤엄을 치면서 또 내려가 보니 거기에는 물고기가 살더라는 겁니다. 물고기는 드디어 헤엄치는 곳에 가니까 꽉 차 있더라는 거예요. 그 다음 또 내려가니까 좌, 우에 나무들이 우거지게 되고 열매를 맺더라는 거예요. 또 내려가니까 그 물이 바다로 들어가서 바다가 전부 살아나고 소성함을 입더라는 걸 말하는 거예요. 이것이 무엇을 말해요 우리가 교회에 나와도 얕은 물가에 있으면 은혜를 못 받는다는 거예요. 일 천 규빗만 가고 더 안 내려가면 평생 믿어도 발목의 은혜 이상 안 올라온다는 거예요. 신앙의 깊은 곳으로 더 들어가라는 거예요. 내가 은혜가 왜 안되느냐, 더 들어가 보라는 거예요. 기도 왜 안되느냐, 더 깊이 들어가 보라는 거예요. 저도 목회를 하면서 보면 내 모든 동역자들도 친구들도 같이 가면서 깊이 안 들어가는 거예요. 조금 목회 하다가 돈 버니까, 내 친구는 벌 치면서 벌통이 잘되니까 그만 목회를 안하는 거예요. 얕은 물가에서 돌아서는 거예요. 목회 하다가 사업이 잘 되니까 그만 사업으로 돌아가고 목회를 안 들어가는 거예요. 저는 어려울수록 더 깊이 들어갔어요. 금식기도 더 많이 하고 주님을 더 사랑하고. 여기 저희 집사람도 있습니다만 제가 1970년에 서울 올라와서 2년이 지났는데 50만원의 돈을 모았어요. 50만원이 지금 얼마나 많으냐, 5천 만원과도 비교가 안돼요. 요사이 5천 만원은 큰 돈이 아니에요. 그러나 그 때 50만원은 큰돈이었어요. 좋은 집을 살 수 있었습니다. 저는 가난하던 가정이 얼마나 큰 돈인데,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은 하나님 앞에 그렇게 서로 의논했어요. "여보 우리 앞날이 50만원 가지고는 해결 안됩니다" 물론 인간의 얕은 꾀가 생기더라고요. 우리가 집을 하나 사면 내년에는 배가 올라 갈 것이 아닌가. 그러면 부자 될 거라고, 또 이걸 이자 놓아서 십 년만 늘려보자고.
그런데 우리는 그런 얕은꾀를 버렸어요. 우리가 우리 아이들과 촌에서 올라와서 내 앞날 하나님이 복 안 주시면 이 돈으로 해결할 수 없어, 이런 마음이 들어서 우리 앞날을 주님께 맡기고 그것 없이 그냥 은혜의 깊은 곳으로 간 거예요. 주여 은혜 내려 달라고, 나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게 능력 달라고, 성령님 충만하게 해 달라고 금식 더 많이 하고, 50만원 있으면 금식도 잘 안돼요. 금식하려고 하면 배고프면 50만원 있는데 배불러서 안돼요. 그래서 금식기도도 많이 하고 하나님 앞에 더 많이 매달렸어요. 내 앞날을 책임져 달라고, 내 가는 앞날에 풍성한 은혜 내려 달라고. 그렇습니다. 확실하게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나는 풍성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잔이 넘치도록 은혜를 내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엄청난 풍성함을 예비하고 있지만 여러분이 발목에 머물러 있고, 언덕에 머물러 있고, 얕은 물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물고기를 잡으러 강으로 가보세요. 강가에는 큰고기가 하나도 없어요. 다 요만한 고기들이 나와 가지고는 나 잡으세요, 나 잡으세요. 그건 철없어 몰라서 그렇지 그건 하루종일 잡아보아야 한 숟가락도 밥도 못 먹어요. 은혜의 깊은 바다로 나아가야 여러분의 소원이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베드로의 배처럼 21세기에 여러분의 가는 앞날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의 깊은 곳으로 가느냐, 안 가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봉사의 깊은 곳으로, 얕은 물가에서 일년을 허송세월 하지 말고 충성하는 한 해가 되시고 예배의 깊은 곳으로, 믿음의 깊은 곳으로, 말씀의 깊은 곳으로, 은혜의 성령님의 깊은 곳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속지 말고 21세기를 풍성한 은혜로 맞이하는 복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베드로는 풍성한 은혜를 받은 다음에 주님 앞에 회개하였습니다. 엎드렸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을 향하여 봉사하고 나누어주는 사랑의 헌신의 사람으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은 그렇지 않지요. 성공 바로 뒤에 교만이 따라오고, 풍성함 바로 뒤에 술 취함이 따라오고, 출세 바로 뒤에 허랑 방탕과 음란이 따라옵니다. 행복의 바로 뒤에 타락이 따라오고 사치가 따라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잘되어도 내 공로로 잘 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듯이 우리는 말씀의 덕택이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포도나무 덕택입니다. 나의 구원이시고 힘이시고 능력이신 예수로 말미암아 받은 은혜이기 때문에 교만할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높이고 주님을 따라가며 주님과 함께 보람된 삶, 헌신의 삶, 주신 은혜가 우리를 해이하게 하고 타락하게 하고 방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좁은 길로 걸어가며 제자의 길로 헌신의 삶을 살아야할 줄로 믿습니다. 영국에 광우병이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큰 뉴스가 되었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개가 미쳤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소가 미친 것은 역사에 없는 이야기입니다. 또 성경에는 돼지가 미쳐서 돼지 이천 마리가 물로 뛰어 들었다는 것은 나옵니다. 그러나 소가 미쳤다는 것은 없습니다. 소는 그만큼 순하고 무게 있고 큰 짐승이고 또 소가 미치면 큰일 나겠지요. 개가 미쳐도 큰일 나는데 큰 소가 미쳐 가지고 돌아다녀 보세요. 그래서 하나님은 소는 안 미치게 했는데 영국의 소가 미친 거예요. 광우병에 걸린 거예요. 왜 소가 미쳤느냐 과학자들이 원인을 찾아냈어요. 1990년도에 와서 소를 빨리 기르려고 하는, 풀 먹이면 힘들고 하니까 소를 빨리 자라나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했느냐 하면 양고기를, 양 내장하고 이런 걸 사료로 만들어서 먹였어요. 그러니까 두 배나 빨리 크는 거예요.
그런데 돼지도 그렇게 기르고 닭도 그렇게 기르는데 소는 그렇게 기르면 안되는 것이 소의 위가 다른 짐승과 다르게 되새김질하게 되어 있어요. 위가 네 개예요. 소만 위가 네 개예요. 그래서 들어갔다가는 다시 또 나와서 씹어 가지고 넘겨야 몸이 건강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양고기를 잘게 썰어서 주니까 그냥 그대로 먹고 나올 게 없어요. 들어가면 소화가 다 되어 가지고 그냥 살만 빨리 쪄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할 일 없이 먹고 살만 찌고 그러니까 미치고 환장하는 거예요. 바로 그겁니다. 이것이 과학자들이 찾아낸 거예요. 그래서 우리 나라 며칠 전 신문에 우리도 소먹이를 금년에 짚이 모자라서 40억 어치를 해외에서 사왔다는 것이 신문에 나왔잖아요. 소는 아주 먹기가 힘든 걸 먹도록 그렇게 만들었어요. 짚을 먹어야 돼요. 그런데 소가 힘든다고 짚을 안 먹으면 소가 안되게 되어 있는 거예요. 오늘 현대인들의 문제가 어디 있습니까 잘 살고 잘 되고 성공한 다음에 우리의 목적이 그냥 편하고 걱정 없이 살고, 놀고, 먹고 그냥 흥청거리면서 이렇게 살아가는 여기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소의 광우병이 걸린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미친 거예요 지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젊은이 노인 할 것 없이 다 미치는 거예요. 일년에 통계를 보더라도 교통사고나 죽는 사람보다 자살한 사람이 이걸 추월했어요. 하루에도 수 십 명이 지금 자살해 죽는 거예요.
왜 이래요 오늘 우리 사회의 문제가 뭐예요 광우병 걸린 것처럼 사람들이 본정신이 아니에요. 이성을 잃었어요. 윤리와 도덕을 잃어버렸어요. 참된 길을 잃어버렸어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를 따라가는 것은 주님은 우리를 언제나 좁은 길로 인도합니다. 짚을 먹게 하고, 사도 바울에게는 가시를 주었어요. 예수 잘 믿는 것이 걱정 없고 편한 길인줄 압니까 아닙니다. 은혜는 많이 받지만 삶은 겸손하게 살도록 만들고요. 좁은 길로 가도록 만듭니다. 있다고 해서 다 쓰고 다 먹고 막 살고 편하고 놀고 흥청거리는 것이 하나님 자녀의 삶이 아니예요. 항상 좁은 길로 의도적으로 넓은 길의 유혹을 물리치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을 따라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를 평생 믿어도 마음놓고 놀고 흥청거릴 날은 하루도 없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주님은 우리를 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처럼, 이삭과 야곱처럼, 요셉처럼, 다윗처럼 우리를 좁은 길로 인도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이 그런 길이었고 사도들이 걸어간 길이 그런 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좋은 사람 만나서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는, 그것이 행복이 아닙니다. 성도는 추위도 더위도 고난도 십자가도 아픔도 여러 가지 환난도 당하게 하면서 하나님 앞에 참고 기도하고 그것 때문에 겸손하여지고 낮아지고 그러면 그럴수록 더 주님을 의지할 때 바로 성도의 능력과 힘이 거기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몽고는 세계를 가장 넓게 점령한, 인류 역사에 가장 큰 나라는 몽고족이었습니다. 몽고는 중국만 다 점령한 것이 아니라 모스크바까지 소련도 다 점령했고요. 이란, 이라크까지도 다 점령했고 우리 한국도 물론 오랫동안 몽고가 지배 했었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아이들이 태어나면 푸른 점 그걸 몽고점 이라고 하잖아요.
우리 나라를 오랫동안 점령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순수한 단군의 자손이 아닙니다. 몽고가 이렇게 세계를 넓게 지배했던 이유가 어디 있느냐 하면 몽고의 기후 때문입니다. 몽고는 30도에서 40도를 일년에 오랜 기간동안 그 추위를 견디고 추위에 잘 적응하고 그리고 넓은 초원에서 세 살만 되면 이미 말타기를 해서 연습을 시키고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몽고 사람은 시력이2.0은 보통이고 사람 가운데3.0 자리가 있는 것은 몽고족 밖에 없다고 합니다. 항상 멀리 바라보고 넓게 바라보니까 기계와 같은 거예요.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자연환경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무장도 하고 도덕적으로도 성경에 나오는 십계명과 같은 그런 '얏사'라고 하는 법령을 징기스칸이 만들어서 온 백성이 지키도록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려운 기후조건도 이기고 우리가 어려서부터 이런 현장에 말을 타고 훈련하고 정신적으로 강하고 도덕적으로 이런 계명을 철저하게 지켜나가면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주님을 따라가는 주의 사랑하는 자녀는 전자의 받는 은혜도 중요하지만 후자의 제자가 되고 나를 포기하고 좁은 길을 걸으며 겸손하게 살고 어떤 유혹이 있을지라도 물리칠 줄 아는 이런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엄격한 선을 그어놓고 철저하게 지키는 성도들만이 21세기를 잘 맞이할 수 있을 것이고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이사야서에 보면 어린아이와 이리가 같이 놀게 되고 어린아이가 독사의 구멍에도 손을 넣을 수 있는, 그 이상 이데아의, 유토피아의 세계는 이 땅의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어주신 그 아들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저주아래 있습니다. 마귀에게 붙잡혀 있는, 교도소에 갇혀있는 것과 같은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우리 인간을 참 자유케 하여 이 모든 저주와 멸망에서 건져 주실 이는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또 인간이 고아원과 같이 날마다 어머니 아버지를 보고 싶어하고 기다리고 사모하고 늘 살아도 허전하고 좋은 일이 있어도 허전하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안 계시면 더 어려운 부모의 기다림입니다. 며칠 전에 우리 나라 KBS에서 이산가족들을 찾게 하는 프로그램을 제가 잠시 보았습니다. 52세 되는 어머니가 이미 45년 전에, 일곱 살 때에 이사가는데 그만 거기서 옆을 잠깐 보다가 부모들도 아이가 오는 줄 알았는데 가보니 애가 안 왔고 애도 잠깐 사이에 이삿짐은 골목을 돌아 그만 어디로 가버렸고 그래서 길을 잃어버리고 어머니 아버지를 찾는 거예요. 45년만에 아버지 어머니를, 그 동안도 얼마나 목마르게 찾았지만 또 다시 나와 "어머니 보고싶다"라는 거예요. 언니하고 동생 이름 다 외우면서 찾아달라고 소리 질렀어요. 그래서 진행하는 분이 물었어요. 어머니 아버지를 왜 찾느냐고 못 사는 것도 아니고 못 먹는 것도 아닌데 왜 찾느냐고 그러니까 어머니가 없는 이 가슴, 비어 있는 이 곳을 메울 수가 없다는 거예요. 못 살아서가 아니에요. 인간이 하나님이 없으면 못살아서가 아니예요. 하나님을 떠나면 찾게 되어있습니다. 허전해요. 외로워요.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어 있고 인간은 좌절과 공허에 매어달리게 되어있어요. 늘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늘 즐겨도 만족함이 없는 것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를 찾고 만나지 아니하면 인간은 고아원에 갇혀 있는 외로운 몸과 같은 거예요. 우리의 기쁨은 오직 그 아들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어주신 그의 아들 메시야가 우리 인류의 짐을 져 주시고, 우리의 가난함을 풍요롭게 하시고, 우리의 떨어진 옷들을 다 벗겨 주셔서 하나님 자녀 왕자의 옷을 갈아 입혀 주셔서 내 영혼으로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내 삶으로 뛰는 송아지, 사슴처럼 기뻐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풍성함은 그 아들로 말미암아 오는 것입니다. 요사이 경제위기가 오면서 사람은 인색해지고 가난해졌습니다. 안 먹고, 안 쓰고, 안 입고 살려고 해도 점점 어려워져서 수 천명의 노숙자들이 시멘트 바닥에 잠을 자고 있습니다. 요사이는 담배도 안 나누어 피운다고 합니다. 도시락도 싸 가지고 다니고 구내 식당이 잘 되고 흥청대던 고급식당은 지금 손님이 없습니다. 고급 차가 안 팔리고 티고, 마티즈, 아토즈가 맛을 내고 있습니다. 날개 돋친 듯이 팔리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그 어린아이들이 밥을 먹지 못하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10만 명이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처음으로 이제 돈이 뭐기에, 하루종일 배가 고픈 것을 절실히 경험하고 있습니다. 풍성함이, 있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이렇게 큰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수 십만 대학생들이 휴학을 해서 지금 대학이 운영이 어려워졌습니다. 교수 자리가 든든한 자리가 아닙니다. 학교가 다 어려워졌습니다. 사람은 풍성해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풍성한 은혜를 받도록 되어져 있습니다. 물고기는 물 속이 풍성하고, 나는 새는 하늘을 마음껏 날듯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아래 날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마음껏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저 큰 바다 보다 깊다 너 곧 닻줄을 끌러 깊은 데로 저 한 가운데 가보라 언덕을 떠나서 창파에 배 띄워 내 주 예수 은혜의 바다로 네 맘껏 저어가라♪ 풍성한 은혜, 예수님이 왜 오셨어요 왜 예수님 믿는 거예요 예수님이 제일 좋은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소원은, 어린아이의 소원이 대단한 것 같아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우리의 소원은 풍성한 소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내 소원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원보다 백 배, 천 배, 만 배 더 풍성하게 하시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의 찢어진 가슴, 그 병든 상처를 풍성한 은혜로 마을에 뛰어 들어가도록 만들어 주셨고 삭개오에게 풍성함을 주셨고 오늘 온 세계의 기독교가 들어가는 곳곳마다 풍성한 은혜를, 풍성한 축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미국의 청교도들 102명이 미국 땅을 건너가서 풍성한 은혜로 풍성한 나라를 만들어서 온 세계를 나누어주는 최고의 나라로 만든 이 풍성함이 누구로 말미암아 왔느냐, 로마가, 영국이, 어렵게 살아가던 저 유럽 땅들이, 유럽은 아시아가 번영하고 아시아가 부유하고 아시아가 세계를 지배할 때 유럽은 거지같은 나라였습니다. 복음이 그 땅으로 들어가던 그 때에 아시아는 인도의 문명과 중국의 문명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어마어마한 문명 속에서도 저들은 문명에 소외된 국가 버림받은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풍성케 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를 받아들이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시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지금 유럽에 살아가고 있는 그 땅의 후손들은 조상들이 풍성히 모은 예수 때문에, 예수 풍성히 잘 믿은 그 덕택에 지금 저들이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풍성함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는 것입니다. 레위기 26장 5절에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 땅에 안전히 거하리라" 시편 132편 15절 "내가 이 성의 식료품에 풍족히 복을 주고 양식으로 그 빈민을 만족케 하리로다"
시편 144편에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식양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 돌과 같으며 우리의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우리의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또 우리를 침노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우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진대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했는데 어떻게 이런 백성이 될 수 있느냐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이라고 했어요. 이 모든 축복은 메시야로부터 다 오는 거예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섬길 때, 아들들은 나무 같이 장성해요. 그래서 남자는 쭉쭉 뻗어 올라가야 되고요. 남자다워야 되고요. 여자는 궁전의 식양대로 꾸민 아름다운 것과 같다 그랬어요.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 돌과 같다, 궁전은 모양을 얼마나 다듬습니까, 여자는 어떤 복이냐 딸은 다듬어야 복이에요. 잘 다듬은 부인은 복 받은 여인이고요. 못 다듬은 부인은 복 못 받은 여자예요. 다듬은 걸 보면 여자는 팔자를 알 수가 있어요. 잘 다듬었느냐 못 다듬었느냐가 생명이에요. 노인도 여자는 다듬어야 되고요. 남자는 어려서부터 다듬을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 앞에 복 받으면 그게 다듬는 거예요. 복 받으면 그게 힘이에요. 남자는 쭉쭉 뻗어야 되고 여자는 밤낮으로 다듬어야 복이에요. 하나님이 주신 축복, 다듬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자가 되가지고 다듬지도 않고 그냥 막 나오면 안됩니다. 옷도 다듬어 입고 머리도 다듬어야 되고 얼굴도 다듬어야 되고 날마다 날마다 우리 성도들에게 다듬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고 들의 양은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사업의 축복입니다. 집 안에 축복이 있는가 하면 밖의 복이 있습니다.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좋은 것들이 무겁게 싣고 집 안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나가서 막는 일도 없고 침노하는, 이것은 평화의 축복, 평안의 복입니다. 슬피 부르짖음이 없다. 고민도 애통도 환난도 시험도 없으니 이러한 축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이 풍성한 놀라운 축복은 위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인간은 문화가 시작되고 이 땅에 인간의 생명이 태어나면서부터 개인이나 국가나 사회 가리지 않고 인간은 잘 살기를 원하는 거예요. 잘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마찬가지에요. 제가 그저께 '아스다롯'이라고 하는, 우리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를 많이 한 '바알'이라고 하는 우상이 있어요. 그건 남자 신이예요. 그리고 '아스다롯'은 여신인데요. 여자 신이에요. 제가 그걸 처음으로 봤는데 보니까 그 모양이 여신이니까 가슴만 강조했어요. 풍성한 가슴을 강조했는데 거기다가 이 우상이 손을 잡고 있어요. 가슴에다. 그건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풍요로움을 원하는 거예요. 물질의 풍요로움, 동물들, 짐승들까지 풍요롭고 자식의 풍요함,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간만 있으면 그 아스다롯을 섬기는 거예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자꾸 그런 걸 원하는 거예요. 오늘 이것은 그 나라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조상들도 얼마나 그런 것을 소원했고요. 예를 들면 결혼식만 해도 풍요로움을 원하는 거예요. 그래서 결혼식에 닭을 갖다 놓는 거예요. 닭이 알을 많이 낳잖아요. 풍요로움을 원하는 거예요. 자식이 많이 태어나기를 원하는 거예요. 또 부모한테 절을 하면 부모님이 그 며느리 치마에다가 꼭 밤하고 대추를 던져줍니다. 왜 그래요 밤이 많이 열리니까. 자식을 밤처럼 많이 낳으라고, 대추 같이 많이 낳으라고 그런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어느 사람 할 것 없이 어느 시대 할 것 없이 사람은 풍요롭고 번성하고 잘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과학이 발달한 이 시대는 안 그런 줄 아세요 지금은 방법이 다를 뿐이지 더합니다. 예를 들면 미국의 뉴욕은 '월드가'입니다. 세계의 돈 벌기 위해서 전부 그 쪽으로 모여오는 금융 센타들입니다. 그 110층이 전부 모두 증권 투자하고 일순간에 큰 돈을 벌려고 하는 전 세계에 돈에 대한,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 뉴욕으로 다 몰리는 거예요. '라스베가스' 같은 곳은 한번에 돈 많이 벌려고 도박으로 가는 거예요. 거기만 그럽니까 한국 사람은 이 나라가 다 도박판이에요. 기차를 타도 도박, 비행기를 타도 한국 사람들 탄 곳에는 화투를 칩니다. 일 순간에 돈 벌려고 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세계에 그저 한탕주의, 복권이라든지 경마장에 왜 몰리느냐 다 잘되기를 원하는 거예요. 그러나 분명히 기억하셔야 합니다.
인간의 풍요로움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한 순간 부분적으로 그 주머니를 채우는 것이 인간의 전체의 내용은 영육의 모든 삶을 풍성하게 할 수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주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를 충만하고, 풍성하게, 내 잔이 넘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밤이 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인간의 힘과 노력과 경험으로는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주님을 믿고 주님의 뜻을 따라서 그물을 던지러 나갔습니다. 이제 베드로의 삶은 바뀌어 졌습니다. 그 전에는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세상 부귀 영화를 바라보던 삶이 이제는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믿고 믿음으로 의심치 않고 주님을 생각하면서 바다로 나갔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잡아서 자기 배로는 다 가지고 올 수 없을 정도의 풍성한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내 힘으로,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살면 안되는 것입니다. 가정이든 사업이든 내 모든 생활을 주님을 사랑하므로, 주님을 믿으므로, 주님을 중심하므로, 주님을 의지하여 나아갈 때만이 우리가 이러한 영육에 넘치는, 범사에 넘치는, 내 생애에 넘치는 은혜를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사람들은 너무 풍요롭지 못하여서 인간의 문제를 인간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것도 불의한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은 더 많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나는 신문에 늘 볼 때마다 돈 몇 천만 원에 사람을 죽이면 그래도 돈이 귀하다고 하죠. 어떤 분은 십 만원 때문에 죽이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택시 강도는 오 만원 때문에 강도 짓 하고요. 한 가장을 그냥 죽이고 오 만원을 빼앗아 갑니다. 오 만원이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지난번 부산에서 있었던 일 보세요. 아들 손가락을 잘랐는데 그 목표가 천 만원. 아니 1억을 벌려고 했더라면 그래도 좀 유혹이라도 많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하겠는데, 요거 천 만원 벌려고 아들 손을 잘라서 보험 들고 강도 왔다고 위장을 해서 어찌 아버지가 자기 아들 손가락을 돈 천 만원 목표하고, 요사이 모두 몸을 파는 사람이 억을 벌려고 몸을 팔면 그래도 이해를 하겠는데 적어도 그 하룻밤에 몇 만원 벌려고 어찌 가정주부들이 그렇게 나갈 수 있느냐 하는 거예요. 전부가 다 그저 조그만 것에 유혹을 받습니다. 나는 오늘도 어떤 편지를 보니 "목사님 조금만 도와주시면 내 문제는 해결됩니다" 아닙니다. 몇 백 만원, 몇 천 만원으로 인생이 해결 될 일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지 아니하면, 배가 고플 때는 그것만 있으면 될 것 같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강물 같은 은혜를 내려 주지 아니하시면, 바다 같은 은혜를 부어 주지 아니하시면 해결할 수 없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우리 나라는 요사이 부정 부패하는 것도 1억이라 그러면 다 넘어져요. 높고 낮고 간에 1억의 유혹을 받으면 다 넘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1억이 그렇게 큰 줄 아십니까 이걸 분명히 아셔야합니다. 1억은 없을 때 보면 큰 것 같지만 '정신 차리세요.' 없을수록 주님의 말씀대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더 깊은 곳으로, 신앙의 깊은 곳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의 은혜로 해결을 해야지 얕은 물가에 있으면 안됩니다.
에스겔 47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미래에 내려 주실, 교회를 통하여 내리실 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문지방에서 물이 나오죠. 그 물이 샘이 있는데 그 물을 따라 내려갑니다. 일 천 규빗을 내려가 보니 물이 발목까지 왔어요. 그 다음 일 천 규빗 가니까 무릎까지 오고 그 다음 허리까지 오고 계속 일 천 규빗 또 가니까 물이 가슴까지 옵니다. 또 일 천 규빗 더 가니까 물이 많아 헤엄칠 물이에요. 헤엄을 치면서 또 내려가 보니 거기에는 물고기가 살더라는 겁니다. 물고기는 드디어 헤엄치는 곳에 가니까 꽉 차 있더라는 거예요. 그 다음 또 내려가니까 좌, 우에 나무들이 우거지게 되고 열매를 맺더라는 거예요. 또 내려가니까 그 물이 바다로 들어가서 바다가 전부 살아나고 소성함을 입더라는 걸 말하는 거예요. 이것이 무엇을 말해요 우리가 교회에 나와도 얕은 물가에 있으면 은혜를 못 받는다는 거예요. 일 천 규빗만 가고 더 안 내려가면 평생 믿어도 발목의 은혜 이상 안 올라온다는 거예요. 신앙의 깊은 곳으로 더 들어가라는 거예요. 내가 은혜가 왜 안되느냐, 더 들어가 보라는 거예요. 기도 왜 안되느냐, 더 깊이 들어가 보라는 거예요. 저도 목회를 하면서 보면 내 모든 동역자들도 친구들도 같이 가면서 깊이 안 들어가는 거예요. 조금 목회 하다가 돈 버니까, 내 친구는 벌 치면서 벌통이 잘되니까 그만 목회를 안하는 거예요. 얕은 물가에서 돌아서는 거예요. 목회 하다가 사업이 잘 되니까 그만 사업으로 돌아가고 목회를 안 들어가는 거예요. 저는 어려울수록 더 깊이 들어갔어요. 금식기도 더 많이 하고 주님을 더 사랑하고. 여기 저희 집사람도 있습니다만 제가 1970년에 서울 올라와서 2년이 지났는데 50만원의 돈을 모았어요. 50만원이 지금 얼마나 많으냐, 5천 만원과도 비교가 안돼요. 요사이 5천 만원은 큰 돈이 아니에요. 그러나 그 때 50만원은 큰돈이었어요. 좋은 집을 살 수 있었습니다. 저는 가난하던 가정이 얼마나 큰 돈인데,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은 하나님 앞에 그렇게 서로 의논했어요. "여보 우리 앞날이 50만원 가지고는 해결 안됩니다" 물론 인간의 얕은 꾀가 생기더라고요. 우리가 집을 하나 사면 내년에는 배가 올라 갈 것이 아닌가. 그러면 부자 될 거라고, 또 이걸 이자 놓아서 십 년만 늘려보자고.
그런데 우리는 그런 얕은꾀를 버렸어요. 우리가 우리 아이들과 촌에서 올라와서 내 앞날 하나님이 복 안 주시면 이 돈으로 해결할 수 없어, 이런 마음이 들어서 우리 앞날을 주님께 맡기고 그것 없이 그냥 은혜의 깊은 곳으로 간 거예요. 주여 은혜 내려 달라고, 나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게 능력 달라고, 성령님 충만하게 해 달라고 금식 더 많이 하고, 50만원 있으면 금식도 잘 안돼요. 금식하려고 하면 배고프면 50만원 있는데 배불러서 안돼요. 그래서 금식기도도 많이 하고 하나님 앞에 더 많이 매달렸어요. 내 앞날을 책임져 달라고, 내 가는 앞날에 풍성한 은혜 내려 달라고. 그렇습니다. 확실하게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나는 풍성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잔이 넘치도록 은혜를 내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엄청난 풍성함을 예비하고 있지만 여러분이 발목에 머물러 있고, 언덕에 머물러 있고, 얕은 물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물고기를 잡으러 강으로 가보세요. 강가에는 큰고기가 하나도 없어요. 다 요만한 고기들이 나와 가지고는 나 잡으세요, 나 잡으세요. 그건 철없어 몰라서 그렇지 그건 하루종일 잡아보아야 한 숟가락도 밥도 못 먹어요. 은혜의 깊은 바다로 나아가야 여러분의 소원이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베드로의 배처럼 21세기에 여러분의 가는 앞날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의 깊은 곳으로 가느냐, 안 가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봉사의 깊은 곳으로, 얕은 물가에서 일년을 허송세월 하지 말고 충성하는 한 해가 되시고 예배의 깊은 곳으로, 믿음의 깊은 곳으로, 말씀의 깊은 곳으로, 은혜의 성령님의 깊은 곳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속지 말고 21세기를 풍성한 은혜로 맞이하는 복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베드로는 풍성한 은혜를 받은 다음에 주님 앞에 회개하였습니다. 엎드렸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을 향하여 봉사하고 나누어주는 사랑의 헌신의 사람으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은 그렇지 않지요. 성공 바로 뒤에 교만이 따라오고, 풍성함 바로 뒤에 술 취함이 따라오고, 출세 바로 뒤에 허랑 방탕과 음란이 따라옵니다. 행복의 바로 뒤에 타락이 따라오고 사치가 따라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잘되어도 내 공로로 잘 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듯이 우리는 말씀의 덕택이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포도나무 덕택입니다. 나의 구원이시고 힘이시고 능력이신 예수로 말미암아 받은 은혜이기 때문에 교만할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높이고 주님을 따라가며 주님과 함께 보람된 삶, 헌신의 삶, 주신 은혜가 우리를 해이하게 하고 타락하게 하고 방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좁은 길로 걸어가며 제자의 길로 헌신의 삶을 살아야할 줄로 믿습니다. 영국에 광우병이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큰 뉴스가 되었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개가 미쳤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소가 미친 것은 역사에 없는 이야기입니다. 또 성경에는 돼지가 미쳐서 돼지 이천 마리가 물로 뛰어 들었다는 것은 나옵니다. 그러나 소가 미쳤다는 것은 없습니다. 소는 그만큼 순하고 무게 있고 큰 짐승이고 또 소가 미치면 큰일 나겠지요. 개가 미쳐도 큰일 나는데 큰 소가 미쳐 가지고 돌아다녀 보세요. 그래서 하나님은 소는 안 미치게 했는데 영국의 소가 미친 거예요. 광우병에 걸린 거예요. 왜 소가 미쳤느냐 과학자들이 원인을 찾아냈어요. 1990년도에 와서 소를 빨리 기르려고 하는, 풀 먹이면 힘들고 하니까 소를 빨리 자라나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했느냐 하면 양고기를, 양 내장하고 이런 걸 사료로 만들어서 먹였어요. 그러니까 두 배나 빨리 크는 거예요.
그런데 돼지도 그렇게 기르고 닭도 그렇게 기르는데 소는 그렇게 기르면 안되는 것이 소의 위가 다른 짐승과 다르게 되새김질하게 되어 있어요. 위가 네 개예요. 소만 위가 네 개예요. 그래서 들어갔다가는 다시 또 나와서 씹어 가지고 넘겨야 몸이 건강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양고기를 잘게 썰어서 주니까 그냥 그대로 먹고 나올 게 없어요. 들어가면 소화가 다 되어 가지고 그냥 살만 빨리 쪄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할 일 없이 먹고 살만 찌고 그러니까 미치고 환장하는 거예요. 바로 그겁니다. 이것이 과학자들이 찾아낸 거예요. 그래서 우리 나라 며칠 전 신문에 우리도 소먹이를 금년에 짚이 모자라서 40억 어치를 해외에서 사왔다는 것이 신문에 나왔잖아요. 소는 아주 먹기가 힘든 걸 먹도록 그렇게 만들었어요. 짚을 먹어야 돼요. 그런데 소가 힘든다고 짚을 안 먹으면 소가 안되게 되어 있는 거예요. 오늘 현대인들의 문제가 어디 있습니까 잘 살고 잘 되고 성공한 다음에 우리의 목적이 그냥 편하고 걱정 없이 살고, 놀고, 먹고 그냥 흥청거리면서 이렇게 살아가는 여기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소의 광우병이 걸린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미친 거예요 지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젊은이 노인 할 것 없이 다 미치는 거예요. 일년에 통계를 보더라도 교통사고나 죽는 사람보다 자살한 사람이 이걸 추월했어요. 하루에도 수 십 명이 지금 자살해 죽는 거예요.
왜 이래요 오늘 우리 사회의 문제가 뭐예요 광우병 걸린 것처럼 사람들이 본정신이 아니에요. 이성을 잃었어요. 윤리와 도덕을 잃어버렸어요. 참된 길을 잃어버렸어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를 따라가는 것은 주님은 우리를 언제나 좁은 길로 인도합니다. 짚을 먹게 하고, 사도 바울에게는 가시를 주었어요. 예수 잘 믿는 것이 걱정 없고 편한 길인줄 압니까 아닙니다. 은혜는 많이 받지만 삶은 겸손하게 살도록 만들고요. 좁은 길로 가도록 만듭니다. 있다고 해서 다 쓰고 다 먹고 막 살고 편하고 놀고 흥청거리는 것이 하나님 자녀의 삶이 아니예요. 항상 좁은 길로 의도적으로 넓은 길의 유혹을 물리치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을 따라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를 평생 믿어도 마음놓고 놀고 흥청거릴 날은 하루도 없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주님은 우리를 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처럼, 이삭과 야곱처럼, 요셉처럼, 다윗처럼 우리를 좁은 길로 인도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이 그런 길이었고 사도들이 걸어간 길이 그런 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좋은 사람 만나서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는, 그것이 행복이 아닙니다. 성도는 추위도 더위도 고난도 십자가도 아픔도 여러 가지 환난도 당하게 하면서 하나님 앞에 참고 기도하고 그것 때문에 겸손하여지고 낮아지고 그러면 그럴수록 더 주님을 의지할 때 바로 성도의 능력과 힘이 거기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몽고는 세계를 가장 넓게 점령한, 인류 역사에 가장 큰 나라는 몽고족이었습니다. 몽고는 중국만 다 점령한 것이 아니라 모스크바까지 소련도 다 점령했고요. 이란, 이라크까지도 다 점령했고 우리 한국도 물론 오랫동안 몽고가 지배 했었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아이들이 태어나면 푸른 점 그걸 몽고점 이라고 하잖아요.
우리 나라를 오랫동안 점령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순수한 단군의 자손이 아닙니다. 몽고가 이렇게 세계를 넓게 지배했던 이유가 어디 있느냐 하면 몽고의 기후 때문입니다. 몽고는 30도에서 40도를 일년에 오랜 기간동안 그 추위를 견디고 추위에 잘 적응하고 그리고 넓은 초원에서 세 살만 되면 이미 말타기를 해서 연습을 시키고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몽고 사람은 시력이2.0은 보통이고 사람 가운데3.0 자리가 있는 것은 몽고족 밖에 없다고 합니다. 항상 멀리 바라보고 넓게 바라보니까 기계와 같은 거예요.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자연환경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무장도 하고 도덕적으로도 성경에 나오는 십계명과 같은 그런 '얏사'라고 하는 법령을 징기스칸이 만들어서 온 백성이 지키도록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려운 기후조건도 이기고 우리가 어려서부터 이런 현장에 말을 타고 훈련하고 정신적으로 강하고 도덕적으로 이런 계명을 철저하게 지켜나가면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주님을 따라가는 주의 사랑하는 자녀는 전자의 받는 은혜도 중요하지만 후자의 제자가 되고 나를 포기하고 좁은 길을 걸으며 겸손하게 살고 어떤 유혹이 있을지라도 물리칠 줄 아는 이런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엄격한 선을 그어놓고 철저하게 지키는 성도들만이 21세기를 잘 맞이할 수 있을 것이고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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