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교회의 사명 (행13:1-3)

본문

여러분 우리 교회 예배의 귀한 순서 중의 하나가 아이가 출생하고 처음 교회에 나왔을 때 온 교회가 아이를 강대상에 올려놓고 함께 축복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도 수가 적을 때부터 시작했었는데 성도가 많아져도 이 순서가 너무 귀해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기도 때 제가 어떤 내용을 중심으로 기도하는지 아십니까 한 아이를 위해서 기도할 때 제 마음에 세 가지를 생각합니다. '
첫째로 하나님, 이 아이에게 인생의 좋은 스승을 주시옵소서.
둘째로 이 아이에게 평생 뜻을 같이 나눌 좋은 동지를 주시옵소서. 세번째로 하나님 이 아이가 평생 사랑할 좋은 반려자를 주시옵소서.' 너무 귀한 축복이기 때문에 아이들마다 반복적으로 똑같은 기도를 합니다. 우리는 반복으로 하는 것 같지만 그 아이는 평생 처음 그 축복을 선포 받기 때문에 제가 다른 내용으로 바꾸지 않습니다. 정말 한평생 살아가면서 마음의 옷깃을 여밀만한 좋은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이고 특권 중의 특권입니다. 사도행전 13장을 보니까 믿음의 귀한 스승 그룹들이 모여있는 것을 봅니다. 귀한 신앙의 영적인 지도자들입니다.
첫째로는 바나바라는 사람입니다. 원래의 이름은 감춰진 채, 얼마나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대했던지 '위로자'라는 뜻의 바나바라는 이름을 얻게된 분입니다. 사도행전 11장 19절부터 그의 삶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그 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그는 착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또 믿음과 성령님에 충만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거기다가 더 큰 축복을 가졌는데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히 자기보다 실력이 월등하고 개성이 한량없이 강한 사울과 함께 일할 줄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쓸모 없다고 버렸던 마가라는 어린 청년을 품에 안아 베드로의 믿음의 아들로, 마가복음의 저자로 키워냈습니다. 사람을 양육할 줄 알았던 사람입니다. 이런 좋은 스승이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두 번째로 니게르라는 시므온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니게르라는 말은 라틴어입니다. 검다는 뜻입니다. 영어의 'Negro' 라는 단어가 바로 여기서 나왔고 이 Negro의 유사어인 'Nigger'라는 단어도 여기서 출발했습니다. 이 사람은 로마와 관계되어서 살았던 사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세 번째 사람은 구레네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레네 사람 루기오였습니다. 구레네는 북아프리카 지역을 뜻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흑인이리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쯤 되면 스페인 사람과 그리스 사람들이 북아프리카에 옮겨가 살았었기 때문에 이 분이 꼭 흑인이다, 백인이다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출생지가 아프리카인 것은 확실합니다. 또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이 있습니다. 이 마나엔은 이스라엘의 유명한 역사서인 요제스프의 역사서에 그 할아버지 이름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첫 헤롯 대왕이 왕이 될 것을 예언합니다. "지금 국가 형편이 되어가는 것 보니까 당신은 반드시 왕이 될 재목입니다." 그랬는데 헤롯이 정말 그의 말대로 왕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평생을 헤롯 옆에서 지극히 총애받는 신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B.C 4 세기경에 헤롯 대왕의 손자가 태어났습니다. 그가 바로 세례 요한을 목베어 죽이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도록 한 헤롯왕입니다. 그 때 그 어머니가 젖이 몹시 부족했습니다. 당시 풍습을 따라서 자기의 신하 중에 같은 연배의 아이들이 있는 집에 데려가 키우도록 했는데 그 때 마나엔 엄마가 선택된 것입니다. 마침 마나엔을 품안에 안고 키울 때였습니다. 그래서 한 쪽 젖은 마나엔이, 한 쪽 젖은 헤롯이 물고 자랐습니다. 양 젖꼭지를 물었던 사람의 삶이 참 얼마나 다릅니까 하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 세례요한을 목베어 죽인 잔혹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서 영원히 저주받은 사람이 되었는가 하면 같은 젖을 먹고 자랐는데 마나엔은 황실과 높은 지위, 그 좋은 자리를 마다하고 먼 곳 안디옥까지 쫓겨와서 신앙생활하며 피난민들과 함께 예배하는 자리에 지도자로 서있습니다. 이런 좋은 신앙의 스승 그룹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마지막으로 우리가 잘 아는 사울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니체는 스승은 운명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원한다고 해서 좋은 스승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정말 좋은 스승을 만난다는 것, 좋은 인격을 만난다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이고 특권 중의 특권입니다. 이 교회는 이런 좋은 믿음의 스승들이 각 출신 성분을 달리한 채 그 교회를 화목하게 섬기고 있었습니다. 저들이 금식을 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대개 이스라엘 사람들은 1년에 대 금식일이라고 해서 금식날짜를 지키는 절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 성도들은 그 중에 속죄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날로 마음으로 생각하면서 금식했던 규례가 초대 교회 문서에서 드문드문 발견됩니다. 지금 이 금식이 자기 절기 따른 금식인지, 그렇지 않으면 특별한 교회의 목적 따라 금식했는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저들이 주를 섬겨서 열심히 금식하고 있을 그 때였습니다. 이 때 성령님께서 말합니다.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라. 이방인의 사도로 세워서 내려보내라." 이 때 이 사람들은 그 명령 앞에 기쁨으로 순종했습니다. 이와 비교되는 교회가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향해서는 주님께서 거듭거듭 반복했습니다. 마태복음에 말합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 분이 너희와 함께 있을 테니까 나가라."(마 28:18-20) 또 말씀했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초대받지 않았지만 어디든지 가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면 3개월 감옥 가는 네팔로도 나가고 있고 어떤 지역에서는 예수 믿으면 혀를 자르는데도 불구하고 선교사들이 그곳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 예수 믿는 사람을 사살해 죽이는 회교권 안에도 선교사들이 계속 들어가는 이유는 주님께서 가라고 명령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에는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눅 24:47) 우리 성경은 이 복음이 시작되어서 땅 끝에 어떤 모습으로 가야된다는 것인지를 또 누가 하겠다는 것인지를 잘 안 보여줍니다. 그러나 영어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
I will." 입니다. 이것은 내가 할까 말까, 했으면 좋겠다 이런 뜻이 아닙니다. 반드시 하겠다고 말합니다. 창조주 주님이 반드시 하겠다니까 그 결론은 확실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업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모릅니다. 지금 10대 재벌 가운데 10년 후에 몇 개나 살아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장담 못합니다. 다 빚 가지고 하는 판에 빚 가져가면 서 있을 회사는 대한민국에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어떤 사업도 도중에 바뀝니다. 그렇지만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은 주께서 하시겠다고 했으니까 결론이 났습니다. 우리는 실패할 수 있습니다. 고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약속을 하시면서 가라고 했는데도 예루살렘 성도들은 나가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요 17:18) 무슨 말입니까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그 성육신(聖肉身)의 영광을 우리가 복음이 없는 곳에 나가는 것과 같은 정도의 비교급으로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언어의 비교급은 영어의 비교급 보다 더 세밀합니다. 그것이 다른 정도의 비교인지 같은 정도의 비교인지를 구별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똑같이 내가 너희를 보낸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우리가 복음을 들고 나가는 것을 주께서 높이 격려하시면서 나가라고 명령했습니다. "너희가 이 산에서 기다려라. 그러면 성령님께서 임할 것이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우리 주께서 마지막으로 유언하신 대로 정말 성령님으로 임했고 권능은 저들에게 드러났습니다. 하루에 삼천 명이 주님 앞에 돌아왔습니다. 오천 명이 주님 앞에 돌아옵니다. 수다한 제사장의 무리들이 주님께 돌아와서 저들이 너무 기쁘고 즐거우니까 구원의 감격 때문에 날마다 모여서 떡을 떼고 나누고 기뻐하고 찬송하고 사도의 가르침 받는 감격이 끝이 없었습니다. 그 감격에 겨워 주께서 나가라 말씀에 대해서 저들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거기에 비해서 지금 바나바가 일년간 사도 바울을 데리고 와 이 안디옥 교회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6개월 될지, 일년 될지 모르는 기간에 이들이 준 구호물자를 예루살렘에 가져다주고 지금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음입니다. 적어도 3년을 넘어가지 않았으리라 학자들이 추정합니다. 그런데 "보내라!"는 그 말씀 앞에 이들이 아멘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안보냈거든요. 안보내면 보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스데반의 일로 무서운 핍박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아무도 예루살렘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도들만 제외해놓고 산지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래서 억지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한번 기도해서 성령님께서 나가라고 하니까 즉시 그 자리에서 저들을 안수해서 내보내고 있습니다. 순종할 줄 아는 교인입니다.
둘째로, 순종할 줄 알되 이 사람들에게 있어 더욱 귀한 모습은 최상의 것을 드려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떤 최상의 것인가 여러분, 한 사람이 신앙생활 하면서 아무리 욕심을 부려도 너무 과한 욕심이라고 주께 책망 받지 않을 욕심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좋은 영적인 지도자를 만나서 바로 양육 받고 싶어하는 욕심입니다. 그 욕심은 아무리 부려도 싫증이 안나는 욕심이고 다른 사람에게 이기적이라는 말을 듣지 않을 욕심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45세 때 너무 몸이 약해서 복음을 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 달에 한번 간신히 말씀을 전하다가 사표를 냅니다. 그랬더니 온 교회가 일어나서 "목사님 사표 못 받겠습니다." 거절합니다. "아니, 내가 하나님의 종인데 몸이 연약해서 한 달에 한번 밖에 설교 못하는 것, 이것 불충 아니냐 나를 불충한 자로 세우지 말고 사의를 받아달라"고 했더니 교인들이 하는 말이 "한 달에 한번만 말씀해주셔도 되겠습니다." 그러자 스펄젼 목사님이 "지금이야 한 달에 한번이지만 이제 더 계속 쇠약해져 가는데 한 달에 한 번도 못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자 성도들이 "우리 교회는 스펄전 목사님이라는 이름 하나로만 만족할 테니까 사의서는 안되겠습니다."하며 온 교회가 울며 붙잡는 감격스런 일화가 있습니다. 이렇게 욕심을 부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울과 바나바를 누구에게 비교할 수 있습니까 이 시대, 하나님의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는 한경직 목사님 비교되겠습니까 먼저 하늘 나라 가신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과 비교할 수 있습니까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을 비교할 수 있습니까 아니 성경에서 막 걸어나온 것 같은 인생을 사셨던 박윤선 목사님을 비교할 수 있습니까 많은 성도를 모으는 조용기 목사님을 비교할 수 있습니까 이 시대의 설교가라는 영국의 마틴 로이드 존스나 존 스타트 목사님을 비교할 수 있습니까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으로 지목된 빌리그래함을 비교할 수 있습니까 아니, 역사를 뒤집어 엎었던 마틴 루터나 존 칼빈을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요한 웨슬레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모습을 가장 닮았다는 아시시의 프란시스를 비교할 수 있습니까 어거스틴을 비교할 수 있습니까 누구를 비교할 수 있습니까 크리스챤 중의 크리스챤, 목회자 중의 목회자, 신학자 중의 신학자, 선교사 중의 선교사, 성자 중의 성자, 하나님의 사람 중의 하나님의 사람, 누구를 비교할 수 있습니까 목회자 내놓으라고 하면 "돈은 얼마든지 내놓을께요, 대신 건물도 지어드릴께요." 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영적 지도자는 내놓으려고 들지 않습니다. 그것은 너무 선한 열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것 마저도 주님의 명령 앞에 순종한 교회였습니다.
셋째입니다. 이들의 순종은 그냥 몇 사람이 믿음이 있어서 단독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온 교회가 합심해서 아멘으로 받았던 것입니다. 교회에서 한 엘리트 그룹이 가장 멋진 일들을 하나님께 받아서 그냥 앞으로 차고 나가면 다른 사람들은 그 의미와 뜻을 잘 몰라도 뒤에서 대부분 따라옵니다. 지금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온 교회가 금식하고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하시는 말씀 앞에 온 교회가 마음을 합한 그런 순종을 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귀한 것은 제가 남서울교회에서 목회할 때 처음 선교사를 보냈던 때와 비교해보면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순종입니다. 1975년에 교회개척했습니다. 25평 되는 지하실에서 예배 드렸는데 성도가 100명이 넘어가니까 공간이 비좁았습니다. 방수도 잘 안되어서 여름에 비가 오면 예배 전에 집수구에서 물을 모두 다 퍼놓고 예배 드려도 나중에 예배가 끝나면 다시 물이 차서 나오는 사람들의 구두를 넘실넘실 차 넘을 정도로 물이 고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우리가 예배드릴 수 있는 장소를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장소가 나왔습니다. 갔습니다. 탁구장이었습니다. 반포의 어느 상가 2층입니다. 66평쯤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격도 괜찮고 조건도 좋고 다 좋습니다. 기분 좋게 건물을 봤습니다만 나와보니 3층에 반포침례교회가 있는 것이예요. 그러면 2층은 장로교회이고 3층은 침례교회이고, 우리 주님 자존심상 안될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안되겠다고 했더니 그 분들은 조건이 안 맞는 줄 알고 더 좋은 조건을 만들어 주시더라구요. 그러나 이건 신앙원리상 안 되는 일이어서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길 건너편을 주님의 축복으로 얻게 되었습니다. 그 때 얻을 때도 돈이 참 부족했습니다. 오백만원이 필요한데 이백만원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이백, 삼백만원이야 큰 돈 아니지만 지금 2억 5천만원 하는 22평 짜리 반포아파트가 사백만원 하던 때입니다. 그래서 먼저 그 자리를 계약해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군대에서 제대한 후배가 제게 편지를 해왔습니다. "홍목사님, 목회지를 좀 알선해주세요."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웃었습니다. '나도 갈 데가 없어서 개척하고 있는데, 날더러' 그런 생각을 하고 웃었습니다.
그런데 꼭 거짓말처럼 3일 후에 어느 교회에서 한 200명 되는 아담한 교회인데 목사님이 너무 나이가 드셔서 은퇴하시게 되었다며 제가 대학생 사역하며 젊은 사람들 많이 양육했으니까 그 중 한 사람만 소개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즉시 그 후배에게 전화했습니다. 그랬더니 기도원에 갔다는 겁니다. 기도 끝나면 저한테 오라고, 좋은 소식 있다고 전했습니다. 며칠 후에 그 친구가 머리를 긁으면서 저를 찾아왔습니다. "좋은 소식인데 왜 머리는 긁냐"하고 물으니, 기도원에서 내려와 보니까 세 곳에서 오라고 하더랍니다. 하나는 제가 소개하는 교회이고, 하나는 그 친구가 총회신학교 다닐 때 공부를 참 잘했습니다. 군대에 있는 동안 미국 여러 신학교에 apply 했는데, 한 신학교에서 Full Scholarship 주겠다고 연락이 왔더랍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자기가 신학교 다니는 기간 동안 어느 선교 캠프에 갔다가 선교에 흥미가 좀 있는 사람은 체크하라고 해서 체크해 놓았더니 '당신 제대했으니까 태국 선교사로 갈 의향은 없는가' 하는 연락이 왔더랍니다. 그렇게 세 군데의 길이 생기니까 도무지 어떻게 할 줄 모르겠다며 저한테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몇 마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목회자의 길은 어떻든 고생한다. 고생 안 하려고 꾀를 피우면 그것이 고생이다. 고생하려고 작정해버리면 즐거움이 되는데 어차피 가는 고생길에 그 중 어느 것이 가장 보람있겠는가 생각해 보아라. 그리고 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네가 평소에 뭘 소원했느냐 평소에 교수 소원했으면 신학교 가고, 목회자 소원했으면 교회로 가고,
그런데 선교사 소원했으면 지금 당장 태국은 좀 곤란하다."
왜냐하면 1975년 4월 30일이 월남 패망일 입니다. 그래서 당시에 인도차이나 반도 전체가 술렁거렸습니다. 태국까지 대학생들이 공산 게릴라가 되어서 몇 천명이 총을 들고 밤이면 방콕시내를 습격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위험하니까 가지 말라고 조언하고는 돌려보냈습니다. 한달 쯤 있다가 제게 찾아왔습니다. 선교지로 가기로 결정했다며 여권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잘 됐다고 하니까 "다 됐는데 한가지가 안되었습니다." 뭐가 안되었는지 물으니 자기가 가서 살 생활비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안됐구나" 그랬지요. "내가 어떻게 할까" 물으니 그 친구 하는 말이 "남서울교회에서도 좀 도와주셔야지요."하는 것입니다. 저희 남서울교회가 개척하자마자 선교하게 해달라고 그처럼 기도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일이 너무 빨리 왔어요. 교인이 120명 정도 되는데 우리 모일 장소도 없어 땅 한 평 살려고 이리 저리 용썼는데, 그 때마다 실패했던 때였습니다. 이제 겨우 장소 한 곳을 빌렸지만 전세금도 못 낼 것 같은 그런 때였습니다. 그런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저라 답답해서 다시 물었습니다. "태국에는 왜 가니" 하니까 자기가 중학교 2학년 때 교회 여름 캠프에서 평생 선교사로 헌신할 사람 손들라고 했었는데 손들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손 잘 들어야 됩니다. 정말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 너무 쉽게 손드는 습성이 있어요. 제가 그 말을 들으면서 마음에 참 기쁨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복 있는 사람은 해로울지라도 그 서원한 것을 변치 않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가 한번 교회와 의논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그 때 교회에 남자 집사님이 모두 일곱 분이 있었는데 한참 의논한 결과 만장일치로 부결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사회자거든요. 당회장이다, 총회장이다, 이런 직책은 사회자입니다. 우리 나라는 이상하게 관료주의가 되어서 자기 권한 이상을 사용하는 악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곱 사람이 뜻이 같았고 저도 그 분들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땅 한 평이라도 가졌던지, 예배당이라도 있었으면 모르겠는데, 지금 교회당 이전할 300만원 구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는데 다른 곳을 도울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전화했습니다. "우리 만장일치로 부결했다." 실망하는 목소리에 제 마음이 너무 아파서 "너 태국 무슨 결심으로 가냐 거기서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데."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친구가 하는 말이 "죽을지 살지를 가리고 가면 갈 선교지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선교사로 이미 별 볼일 없습니다. 리빙스턴, 허드슨 테일러, 윌리엄 캐리, 존슨, 헨리 마틴 이런 위대한 선교사들이 다 20대에 선교사로 떠났습니다. 저는 대학교 졸업해, 신학교 3년에, 거기다가 군목까지 했어. 나이 서른이 훌쩍 넘었어요. 저는 별 볼일이 없고 제 아들 다니엘과 바울이 태국에서 잘 자라서 태국 언어도 유창해지고 태국 정서도 알고 태국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복음을 전하면 그 때 제대로 된 선교가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제가 생활비가 얼마쯤 필요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태국의 고등학교 교장 봉급이 $90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에게 한 $300만 모금해주면 가겠대요. 사실 태국 사람은 $90도 필요 없고 $30이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국 사람이 $300에 살겠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어떤 고통을 뚫고라도 가겠다는 결의가 있었습니다. 자기 뼈를 그 곳에 묻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제가 그 때 참 감사했던 것은 1975,6년은 여권 받는 것이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여권 받아 선교사로 나가서는 모두 미국으로 도망갔어요. 한국 선교사의 종착역은 로스앤젤리스 였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태국에서 거기서 죽고 자기 아들들도 같이 일하겠다고 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미국 갔었는데 그 아들 바울과 다니엘이 미국의 Ivy League 대학 중의 하나인 providence에 있는 Brown 대학을 참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고 큰 아들은 Trinity 신학교 가서 목사 되어 아마 올 해 태국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Brown대학 졸업한 다음 MIT와 쌍벽을 이루는 칼텍에서 석사 공부를 잘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박사까지 하면 선교사 못될 것 같다고 생각해서 이번에 신학교를 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2대가 태국에 가서 사역하겠다는 그 20년 전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어쨌거나 당시에는 교회가 도울 형편도 안되고 해서 기도하다가 선교사로 나가기 전에 교회에서 설교를 시켰습니다. 앞에 설교단에 내놓고 저는 뒤에서 기도했습니다. 설교 끝난 다음 제가 앞에 나가서 김정웅 선교사, 태국에 죽으러 간다고, 우리 교회가 지금 돈이 없고 개인도 돈이 없지만 이 사람 죽으러 가는데 부조는 내야 될 것 아니냐고, 그래서 부조를 월별로 1년만 작정해 내라고 권면했습니다. 제가 당시에 남서울교회에서 5만원 사례 받았거든요. 그 때 환율이 480:1이었는데 $300이면 15만원입니다. 목사 봉급의 세 배입니다. 그렇게 작정했는데 14만원이 되었어요. 흥분해서 제가 안썼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나머지를 작정해서 $300이 채워졌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어떻게 줄일 데가 없어서 제 아이가 젖 유종(乳腫) 때문에 엄마 젖을 먹지 못하고 우유를 먹었었는데 그 때 아이 우유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했던 남서울교회 선교가 한국 교회 선교 20년을 끌고 왔습니다. 제가 그 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첫째로 교회가 그럴 수 있구나! 교회의 리더쉽이 우리 형편을 핑계대고 주님의 말씀을 유보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렇게 똑같이 생각을 했었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하나님의 명령인줄 알 때 그것을 즉시 순종하지 못하고 유보한다면 교인들에게 이렇게 가르쳐야 됩니다. "주일 성수하는 것, 형편이 될 때까지 해서는 안됩니다. 천천히 교회 나오십시오. 천천히 형편이 될 때까지 십일조 안내도 됩니다." 교회는 형편이 되든 안되든 십일조 하라고 가르쳐놓고 자기들에게 주님의 명령이 떨어질 때는 형편이 안된다고 불순종합니다. 교회의 리더쉽이 그럴 수 있더라구요. 교회가 형편이 안되지만 순종할 때 그 다음에 더 크고 많은 순종을 온 교회가 뒤따라 하는 영광을 경험했습니다. 말로 가르쳤던 어떤 것보다 그 한번의 순종의 가르침이 남서울교회가 한국 교회 역사에서 20년 동안 하나님께 쓰임 받는데 놀라운 추진력이 되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입니다. 남서울교회가 당시 건축할 땅을 갖기 위해서 몸부림 쳤습니다. 잘 안되었습니다. 또 사기까지 당했습니다.
그런데 451평, 지금 반포 남서울교회가 있는 땅의 소유가 두 분에게 나뉘어 있었는데 이 두 분의 호의에 의해서 그 땅을 얻었습니다. 한 분은 몇십 배 뛰어올라버린 땅인데도 자신이 매입한 금액에다 법정 이자만 붙여서 파셨고 또한 분은 "암만 생각해도 이 땅은 남서울교회 땅입니다."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헌납했습니다.
그런데 두 분이 전혀 의논을 안했습니다. 그 땅을 받고 우리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체험했습니다. 여러분, 한국이 이만큼 축복받았던 것은 하나님 은총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 축복을 얼마나 허랑방탕하게 내 것인양 탕자처럼 써버리고 말았습니까 이제 한국 교회 다시 정신차려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십시다. 지금 한국 선교의 전술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800:1에서 거의 2000:1로 올라버린 이 고 환율 때문에 많은 선교의 현장이 붕괴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 우리 앞에 혹심한 어려움이 닥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까지 일했던 분의 40%가 실직자 될 각오까지 해야된다는 비관적인 보고서도 있습니다. 우리는 기술력도 없는 나라입니다. 자본력도 없는 나라입니다. 마켓팅도 별 신통치 않은 나라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우리 아버지의 축복의 그 손을 우리가 다시 의지하십시다. 믿음으로 일어나십시다. 우리 하나님은 오늘도 순종하는 사람에게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경제위기 시대의 고통을 넉넉하게 믿음으로 승리케 하는 이 은혜가 온 성도들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366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