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급한 심령은 복되다 (마5:1-3)
본문
가장 건강하고 복된 영혼의 상태는 하나님께 대하여 갈급한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몇 날, 몇 일이 지나도 음식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면 그 몸은 단단히 병든 것입니다. 부부간에 몇 날, 몇 달이 가도 서로 보고 싶은 마음이 없고 사모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 부부간에는 심상치 않은 병이 든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신부 된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고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 영혼은 아직 거듭나지 못한 죽은 상태이거나 병든 영혼입니다. 가장 건강하고 축복 받을 영혼의 상태는 하나님께 대하여 갈급한 심령, 사모하는 심령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의 제일
첫째 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가난하다'는 말씀은 웬만큼 가난한 상태가 아니라 몇일 동안 죽 한 그릇도 얻어먹지 못하여 몹시 배고픈 상태의 가난입니다. 이러한 심령을 가진 자는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복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만큼,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것 같이 주님을 사랑하는 만큼 그 심령에 주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께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장 13절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참 만족을 얻고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데 생수의 근원 되는 하나님을 저버리고 헛된 우상을 찾아가고 세상 것을 찾아다니면서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만 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몹시 진노하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1. 갈급한 심령이 받는 복 영적으로 항상 갈급한 마음,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큰복을 받을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여러 가지 큰복을 받습니다.
1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물 떠난 고기는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주님 떠난 내 심령은 잠시도 살수가 없습니다" 하는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신부가 신랑을 사모하지도 않고 꼴도 보기 싫다고 한다면 신랑이 사랑하지도 않고 내어쫓을 지도 모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여자의 마음에는 아직 다른 남자가 들어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만큼 사모하게 되고 사모하는 만큼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대통령의 사랑을 받아도 수지 맞을 터인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그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2 천국을 소유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을 소유하는 것 보다 더 큰복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 것 다 포기하더라도 천국을 소유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마태복음 13장 44절에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고 했습니다. 주님을 사모하고 천국을 사모하는 사람은 세상 것을 모두 다 포기할 정도로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3 구원을 얻습니다. 천국을 소유한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생각됩니다마는 이사야 45장 22절에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참 구원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앙망할 때 영혼도 구원받고 어떤 환난에서도 구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앙망하는 자라 구원을 받습니다.
4 새 힘을 얻습니다. 이사야 40장 30-31절에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적으로 사모하는 만큼 능력을 받고 새 힘을 얻습니다. 느헤미야 8장 10절에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금식하며 철야하면서라도 하나님을 갈망하며 매달리면 분명히 새 힘과 능력을 얻습니다. 5 수치를 당치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을 앙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않고 세상 것을 더 사모할 때 하나님이 수치와 욕을 당케 하셔서라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십니다. 시편 25편 3절에 "주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49장 23절에도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은 세상 부귀영화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항상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앙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무엘상 2장 30절에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지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이 자연적으로 하나님을 앙모하게 됩니다. 6 성령님 충만도 받습니다. 한 마디로 신령한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면서 매달리는 사람이 성령님의 능력도 받고 은사도 받습니다. 사도행전 1장 4절에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분부하셨는데 이 약속을 부여잡고 끝까지 사모하며 기다리던 120명의 성도들이 성령님 충만함을 각양의 은사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감람산에 500여 문도들이 모였던 것을 보면 하루지나 얼마가 떠나고, 닷새 후에 300여명이 떠나고 이렇게 하여 열흘 동안 간절히 매달린 사람은 성령님 충만 받았다고 믿습니다. 아사야 44장 3절에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땅에 시내가 흐르게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라고 말씀하신 대로 몇 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가물고 마른땅이 단비를 사모하듯이 사모하는 심령에게 성령님의 단비를 내려 주시고 축복의 단비를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2. 갈망하는 심령의 결과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은혜를 갈급히 사모하는 심령의 결과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1 말씀을 사모합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심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됩니다. 시편 119편 131절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고 했습니다. 시편 19편 10절에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편 119편 103절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젊은이들이 사랑하고 사모하는 애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으면 얼마나 기뻐하고 좋아하겠습니까 몰래 읽어보고 또 읽어보며 한없이 기뻐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앙모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됩니다. 설교 시간만 되면 좋고 성경만 펴놓으면 잠이 쏟아지는 사람은 영적으로 정상이 아닙니다. 전도서 5장 1절에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2 기도를 많이 하게 됩니다. 주님을 사모하는 만큼 주님과 대화하는 시간이 많게 됩니다. 일주일에 단 30분도 기도하지 않는다면 영적으로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신명기 4장 7절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 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고 사모하는 사람과 밤이 새도록 이야기해도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하나님은 기도 할 때마다 가까이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기도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고난에 직면하도록 하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2-13절에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는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예배를 소중히 여깁니다. 믿음이 식어지면 예배를 등한히 여기게 됩니다. 모든 영적인 병은 예배를 등한히 여기는데서 옵니다. 예배를 멀리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게 되고 하나님도 멀리 떠나시게 됩니다. 따라서 모든 축복은 떠나고 언제 재앙이 임할는지 모르게 됩니다. 시편 73편 25-28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를 멀리하고 하나님을 떠난 자는 망한다고 했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는 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예배드리는 것 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요한복음 4장 23절에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하신 말씀대로 지금도 하나님은 심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시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에게 온갖 은혜와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어디를 가든지 먼저 제사(예배)부터 드렸습니다. 예배를 얼마나 소중히 여겼던지 제단에 독자 이삭을 드리라고 해도 순종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 하나밖에 없는 독자, 자기 생명보다 귀중히 여기는 것을 제단에 올려놓았습니다. 그 중심을 보신 하나님은 독자를 돌려주시고 산양으로 대신 제사를 드리게 하셨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고,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도록 예배 생활만 바로하면 그 가정이나, 그 교회나, 그 나라는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예배를 드리거나 예배 드리는 것을 곶감 빼먹듯 하는 사람은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은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은 예배를 소중히 여깁니다. 예배에 빠지지 않을 뿐 아니라 정성을 다해서 진실하게 예배를 드립니다. 믿음이 없고 갈망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어쩌다 할 일이 없어야 주일 낮 아침에 한번 나오고 아예 밤 예배는 나올 생각도 안하고 부흥회를 그렇게 열어 놓고 은혜를 받으라고 해도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로 생각을 합니다. 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모든 예배에 열심히 출석하고 예배를 정성을 다 해 드릴 때 온갖 은혜를 다 받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84장 4-6절에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 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라고 시편 기자는 말했습니다.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막힌 자 즉 교회에 나가기가 싫고 예배를 멀리하는 자는 하늘 문이 막힌 사람이요 축복의 문이 막힌 사람입니다. 천국에 들어가서도 영원히 영원히 할 일은 하나님께 경배하고 예배드리는 일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 10절에 "24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과 교제(기도)하기를 즐거워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소중히 여기고 정성을 다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립니다.
유명한 설교자 헨리 와드 비셔(Henry Ward Beecher) 목사님 교회에 어느 날 손님 목사님이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비셔(Beecher)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러 왔다가 슬금슬금 빠져나가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비셔(Beecher)목사님이 소리 쳤습니다. "오늘 헨리 와드 비셔(Henry Ward Beecher)목사에게 예배드리러 온 교인들은 다 나가시고 하나님께 드리러 온 사람은 그 자리에 앉으십시오"라고 했더니 아무도 안 나가더랍니다. 사실 유명한 목사의 설교가 없어도 예배는 예배입니다. 설교도 중요하지만 설교 들으러만 교회에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설교가 없어도 예배는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 생활에 실패한 자는 모든 것에 실패한 사람입니다. 다른 것에 다 실패했어도,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항상 열려서 예배 생활을 바로 하는 사람은 마침내 승리하는 날이 오게 됩니다.
첫째 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가난하다'는 말씀은 웬만큼 가난한 상태가 아니라 몇일 동안 죽 한 그릇도 얻어먹지 못하여 몹시 배고픈 상태의 가난입니다. 이러한 심령을 가진 자는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복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만큼,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것 같이 주님을 사랑하는 만큼 그 심령에 주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께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장 13절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참 만족을 얻고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데 생수의 근원 되는 하나님을 저버리고 헛된 우상을 찾아가고 세상 것을 찾아다니면서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만 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몹시 진노하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1. 갈급한 심령이 받는 복 영적으로 항상 갈급한 마음,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큰복을 받을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여러 가지 큰복을 받습니다.
1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물 떠난 고기는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주님 떠난 내 심령은 잠시도 살수가 없습니다" 하는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신부가 신랑을 사모하지도 않고 꼴도 보기 싫다고 한다면 신랑이 사랑하지도 않고 내어쫓을 지도 모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여자의 마음에는 아직 다른 남자가 들어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만큼 사모하게 되고 사모하는 만큼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대통령의 사랑을 받아도 수지 맞을 터인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그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2 천국을 소유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을 소유하는 것 보다 더 큰복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 것 다 포기하더라도 천국을 소유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마태복음 13장 44절에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고 했습니다. 주님을 사모하고 천국을 사모하는 사람은 세상 것을 모두 다 포기할 정도로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3 구원을 얻습니다. 천국을 소유한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생각됩니다마는 이사야 45장 22절에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참 구원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앙망할 때 영혼도 구원받고 어떤 환난에서도 구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앙망하는 자라 구원을 받습니다.
4 새 힘을 얻습니다. 이사야 40장 30-31절에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적으로 사모하는 만큼 능력을 받고 새 힘을 얻습니다. 느헤미야 8장 10절에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금식하며 철야하면서라도 하나님을 갈망하며 매달리면 분명히 새 힘과 능력을 얻습니다. 5 수치를 당치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을 앙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않고 세상 것을 더 사모할 때 하나님이 수치와 욕을 당케 하셔서라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십니다. 시편 25편 3절에 "주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49장 23절에도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은 세상 부귀영화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항상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앙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무엘상 2장 30절에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지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이 자연적으로 하나님을 앙모하게 됩니다. 6 성령님 충만도 받습니다. 한 마디로 신령한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면서 매달리는 사람이 성령님의 능력도 받고 은사도 받습니다. 사도행전 1장 4절에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분부하셨는데 이 약속을 부여잡고 끝까지 사모하며 기다리던 120명의 성도들이 성령님 충만함을 각양의 은사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감람산에 500여 문도들이 모였던 것을 보면 하루지나 얼마가 떠나고, 닷새 후에 300여명이 떠나고 이렇게 하여 열흘 동안 간절히 매달린 사람은 성령님 충만 받았다고 믿습니다. 아사야 44장 3절에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땅에 시내가 흐르게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라고 말씀하신 대로 몇 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가물고 마른땅이 단비를 사모하듯이 사모하는 심령에게 성령님의 단비를 내려 주시고 축복의 단비를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2. 갈망하는 심령의 결과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은혜를 갈급히 사모하는 심령의 결과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1 말씀을 사모합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심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됩니다. 시편 119편 131절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고 했습니다. 시편 19편 10절에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편 119편 103절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젊은이들이 사랑하고 사모하는 애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으면 얼마나 기뻐하고 좋아하겠습니까 몰래 읽어보고 또 읽어보며 한없이 기뻐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앙모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됩니다. 설교 시간만 되면 좋고 성경만 펴놓으면 잠이 쏟아지는 사람은 영적으로 정상이 아닙니다. 전도서 5장 1절에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2 기도를 많이 하게 됩니다. 주님을 사모하는 만큼 주님과 대화하는 시간이 많게 됩니다. 일주일에 단 30분도 기도하지 않는다면 영적으로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신명기 4장 7절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 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고 사모하는 사람과 밤이 새도록 이야기해도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하나님은 기도 할 때마다 가까이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기도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고난에 직면하도록 하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2-13절에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는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예배를 소중히 여깁니다. 믿음이 식어지면 예배를 등한히 여기게 됩니다. 모든 영적인 병은 예배를 등한히 여기는데서 옵니다. 예배를 멀리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게 되고 하나님도 멀리 떠나시게 됩니다. 따라서 모든 축복은 떠나고 언제 재앙이 임할는지 모르게 됩니다. 시편 73편 25-28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를 멀리하고 하나님을 떠난 자는 망한다고 했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는 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예배드리는 것 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요한복음 4장 23절에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하신 말씀대로 지금도 하나님은 심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시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에게 온갖 은혜와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어디를 가든지 먼저 제사(예배)부터 드렸습니다. 예배를 얼마나 소중히 여겼던지 제단에 독자 이삭을 드리라고 해도 순종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 하나밖에 없는 독자, 자기 생명보다 귀중히 여기는 것을 제단에 올려놓았습니다. 그 중심을 보신 하나님은 독자를 돌려주시고 산양으로 대신 제사를 드리게 하셨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고,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도록 예배 생활만 바로하면 그 가정이나, 그 교회나, 그 나라는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예배를 드리거나 예배 드리는 것을 곶감 빼먹듯 하는 사람은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은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은 예배를 소중히 여깁니다. 예배에 빠지지 않을 뿐 아니라 정성을 다해서 진실하게 예배를 드립니다. 믿음이 없고 갈망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어쩌다 할 일이 없어야 주일 낮 아침에 한번 나오고 아예 밤 예배는 나올 생각도 안하고 부흥회를 그렇게 열어 놓고 은혜를 받으라고 해도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로 생각을 합니다. 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모든 예배에 열심히 출석하고 예배를 정성을 다 해 드릴 때 온갖 은혜를 다 받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84장 4-6절에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 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라고 시편 기자는 말했습니다.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막힌 자 즉 교회에 나가기가 싫고 예배를 멀리하는 자는 하늘 문이 막힌 사람이요 축복의 문이 막힌 사람입니다. 천국에 들어가서도 영원히 영원히 할 일은 하나님께 경배하고 예배드리는 일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 10절에 "24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과 교제(기도)하기를 즐거워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소중히 여기고 정성을 다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립니다.
유명한 설교자 헨리 와드 비셔(Henry Ward Beecher) 목사님 교회에 어느 날 손님 목사님이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비셔(Beecher)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러 왔다가 슬금슬금 빠져나가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비셔(Beecher)목사님이 소리 쳤습니다. "오늘 헨리 와드 비셔(Henry Ward Beecher)목사에게 예배드리러 온 교인들은 다 나가시고 하나님께 드리러 온 사람은 그 자리에 앉으십시오"라고 했더니 아무도 안 나가더랍니다. 사실 유명한 목사의 설교가 없어도 예배는 예배입니다. 설교도 중요하지만 설교 들으러만 교회에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설교가 없어도 예배는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 생활에 실패한 자는 모든 것에 실패한 사람입니다. 다른 것에 다 실패했어도,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항상 열려서 예배 생활을 바로 하는 사람은 마침내 승리하는 날이 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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