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화육과 우리의 화육 (요1:14,히2:14-18)
본문
어떤 사람이 아들을 외국에 유학 보냈는데 들려 오는 소식이 그 아들이 공부는 안하고 나쁜 친구들과 사귀고 못된 짓만 하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화로 타이르고 편지로도 타일렀으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냈으나 그래도 말을 듣지 않아 결국에는 아버지가 비행기를 타고 직접 찾아가 그 아들을 바로 잡았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거역하며 타락의 길을 가고 있을 때, 천둥번개와 같은 말씀으로도 타일렀고 옹기점의 연기같이 빽빽한 구름 속에 산꼭대기에서 말씀하시기로 하셨으나 듣지 않았습니다. 후에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셨으나 듣지 않았고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회개시키며 했으나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과 동등되신 성자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찾아오셔서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그 몸을 찢어 속죄의 피를 흘려 죽어 주셨고 삼일만에 부활하셔서 40일 후 승천하셨습니다. 천지창조이래 가장 튼 신비의 사건이며 가장 놀라운 사건을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찾아오신 도성인신의 사건입니다.
1. 하나님의 화육 '화육' 혹은 '성육신'이란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것이며 이를 도성인신이라고도 합니다. 영어로는
Incarnation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어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이 사건이 너무나 크고 놀라운 사건이기 때문에 하늘에는 이상한 별이 나타났고 먼 동방의 나라에서 박사들이 그 별을 보고 예물을 가지고 찾아왔으며 양을 치고 있는 목자들이 보는 가운데 허다한 천군과 천사들이 찬송을 부르며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하고 노래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 사람이 되어 인간 세상에 찾아오신 이 사건보다 더 큰 사건이 어데 있으며 이 보다 더 큰사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너무나 크고 놀라운 사건이며 중요한 진리이기 때문에 초대 교회 때부터 영지 주의라고 하는 이단이 생겨났습니다. 이런 이단자들은 예수님이 영으로 오셨다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하늘로 올라가 가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체로 오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환상으로 본 것이지 실제로 육신을 입고 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단을 배격하기 위한 목적으로 쓴 서신이 요한일서 입니다. 요한일서 4장 1절부터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 그리스도의 영이니라"고 하신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하나님의 화육하신 분으로 믿지 않는 사람은 사탄에게 속한 자요,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믿지 않는 것이니 구원도 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역사가 요세푸스(AD 37-95)도 예수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을 역사적 실제사건으로 기록했습니다.(2권 18장 3절) 예수님 당시의 사람 퍼블리우스 렌투러스(Publius Lentulus)란 사람은 당시 로마 의회에 다음과 같이 예수님의 모습을 묘사해서 서신을 보냈습니다. "요사이 덕망 있는 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들 가운데 아직 있으며 이방인들도 그를 진리의 선지자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의 제자들은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죽은 자를 살리고 여러 가지 병을 치유하며 키는 좀 큰 편이며 자색이 아름다우며 바라보는 이마다 존경심을 갖게 하고 두려움과 사랑을 느끼게 합니다. 그의 머리칼은 잘 익은 밤색깔이며 귀와 어깨까지 덮었으며 굽실굽실하며 동양적입니다. 그의 이마 한가운데로 가름자를 타고 올라갔으며 나사렛 사람의 행동을 하며 앞이마는 반듯하고 고상하게 보이며 얼굴은 점이나 주름이 없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붉은 기가 있으며 코와 입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선이 분명하며 수염은 짙으며 색깔은 머리칼과 같으며 너무 길지도 않으며 그의 모습은 순진하면서 성숙해 보이며 눈은 회색이며 빠르고 깨끗합니다. 책망할 때는 무섭고 타이를 때는 예의 바르고 치우침이 없으며 대화할 때는 쾌활하고 흡인력이 있습니다. 아무도 그가 웃는 것은 보지 못했으며 우는 것을 본 사람은 많습니다. 몸매는 균형이 잡히고 훌륭해 보이며 그의 손과 팔은 보기에 유쾌해 보이며 말할 때는 안정되고 겸손하며 지혜롭습니다. 단순함과 아름다움이 어떤 사람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상과 같은 묘사에서 하나님의 볼 수 있습니다. 왜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피조물의 형상을 입어야 했으며 영이신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셔야 했을까요
1 대속의 피를 흘려주시기 위해서 "피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기 때문입니다.(히브리서 9장 22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위기 17장 11절)"고 하셨기 때문에 죄 없는 피를 흘려 우리 죄를 대속 하기 위하여 성령님으로 잉태되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2 몸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기 위하여 몸의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그는 참 그리스도인도 아니며 구원받은 성도도 아닙니다. 그의 몸이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부활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부터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하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 하시는 일이 없이는 우리를 사망에서 구원하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3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담당하시려고 이사야 53장 4절부터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예언하신 말씀같이 예수님이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오셔서 고난과 슬픔을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고난과 슬픔을 위로하실 수가 있으며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의 질별을 치료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4 참 하나님과 참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영이신고로 우리 육신의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분인데 인간들은 하나님을 보기를 원하기 때문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빌립이 아버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니까 예수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한복음 14장 9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타락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고 참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몸을 입으시고 인간이 되어 오심으로 참 인간의 모습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다니엘 윌슬톤은 사전 편집자로 잘 알려졌고 유명한 정치가요 웅변가였는데 식당에서 어떤 사람과 대화하는 중에 그 분이 질문하기를 "어떻게 그리스도가 하나님도 되시고 사람도 되시는지 이해하겠습니까" 할 때 그는 "아니요, 나는 이해 할 수 없소. 내가 그를 이해 할 수 있다면 나보다 더 위대한 분이 될 수 없지요. 나는 초인간적인 구세주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오"라고 대답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신 말씀은 참으로 엄청나게 놀라운 말씀입니다.
2. 우리의 화육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오신 것처럼, 또 영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나타나 우리 죄로 대속하시고 엄청난 사랑을 나타내신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 엄청난 은혜와 사랑을 우리 몸으로 육신으로 믿음과 사랑을 나타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의 믿음이 영혼 속에 갇혀만 있으면 좋은 믿음 참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1 몸으로 예배 드리고 물질로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동방박사들이 먼 나라에서 몸소 찾아와 예수님께 경배하고 보배로운 예물로 경애심을 나타낸 것처럼 우리의 영적 믿음이 몸으로 나타내고 물질로 나타내야 참 믿음입니다. 아무리 멀어도 성전에 찾아 나아와 예배드려야 참 믿음입니다. 가능한 한 밤예배도, 삼일 예배에도 나와 예배 드려야 더 좋은 믿음이라고 할 수 있고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주일도 안 지키고 십일조나 기타 헌금으로 믿음을 표현하지 않으면 참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몸과 물질로 나타나야 합니다.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할 수 있는 한 남선 교회, 여선 교회에 가입하여 활동도 하고 교회 학교나 성가대에 봉사해야 믿음이 자랍니다.
2 입술과 목소리로 나타내야 믿음이 구체화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영생이나 구원은 영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썩을 육신과는 상관이 없어 보이지마는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믿고 몸의 입술을 열어서 그 믿음을 고백하고 시인해야 영이 성장하고 믿음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도 영에 속한 것이므로 조용히 영적으로만 기도하면 되는 줄 알기 쉬운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목소리를 내서 부르짖고 기도 할 때에 영성이 개발되고 영성이 강해지고 영적인 능력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귀가 어두워서 부르짖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레미야 29장 12-13절에 "너희는 네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했습니다. 육신의 힘도 기울이고 목소리를 크게 내서 기도해야 하나님은 더 잘 응답해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제자들이 잡혀가고 핍박이 일어날 때 그들이 한데 모여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얼마 동안 부르짖었더니 모인 곳이 진도하며 모두 성령님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고 했습니다. 영혼과 육신은 무관하지 않고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시편 3편 4절에도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했고 시편 18편 6절에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시편 77편 1절에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하나님께 내 음성으로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는도다" 이와 같이 영의 기도가 화육해서 육신의 목소리를 나타나야 영성이 강해지고 믿음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찬양도 속으로만 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목소리를 타고 나와야 합니다. 할 수 있으면 소리를 높이고 손뼉을 치고 두손들고 하는 찬송이 더 간절하고 더 뜨겁습니다. 시편 47편 1절에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으로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 지어다" 때에 따라서 손바닥도 치고 두 손들기도 하는 찬송이 더 은혜롭고 하나님도 기뻐 받으십니다. 우리가 주일 낮 예배때 "찬양하라 감사하라 경배하라" 송영을 부를 때 다 일어서서 두손들고 할 때 얼마나 더 감격스럽고 진실 되고 은혜롭습니까 영적인 것이 우리 육신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참으로 진실된 신앙의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하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해와 달과 별들도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수천억원수백 조원의 돈이라도 "김목사야, 아무데를 파면 석유가 나온다. 금이 나온다" 혹은 "무슨 무슨 증권을 사라" 한다면 대한 민국 돈 다라도 긁어모을 수 있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물질로 표현하기를 원하시고 그 사랑을 받고 싶어서 십일조나 감사 헌금을 하라는 것입니다. 물질로 표현이 되어야 참 믿음이며 그 물질의 정성을 보아서 물질의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영적인 것이 육신과 물질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몸으로 물질로 나타나지 않는 믿음은 참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경제위기 시대를 맞이하여 고통을 당하는 내 민족, 내 친구 나아가서 우리 믿음의 식구들에게 다른 어느 때보다도 온정을 베풀도록 합시다.
1. 하나님의 화육 '화육' 혹은 '성육신'이란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것이며 이를 도성인신이라고도 합니다. 영어로는
Incarnation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어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이 사건이 너무나 크고 놀라운 사건이기 때문에 하늘에는 이상한 별이 나타났고 먼 동방의 나라에서 박사들이 그 별을 보고 예물을 가지고 찾아왔으며 양을 치고 있는 목자들이 보는 가운데 허다한 천군과 천사들이 찬송을 부르며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하고 노래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 사람이 되어 인간 세상에 찾아오신 이 사건보다 더 큰 사건이 어데 있으며 이 보다 더 큰사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너무나 크고 놀라운 사건이며 중요한 진리이기 때문에 초대 교회 때부터 영지 주의라고 하는 이단이 생겨났습니다. 이런 이단자들은 예수님이 영으로 오셨다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하늘로 올라가 가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체로 오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환상으로 본 것이지 실제로 육신을 입고 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단을 배격하기 위한 목적으로 쓴 서신이 요한일서 입니다. 요한일서 4장 1절부터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 그리스도의 영이니라"고 하신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하나님의 화육하신 분으로 믿지 않는 사람은 사탄에게 속한 자요,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믿지 않는 것이니 구원도 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역사가 요세푸스(AD 37-95)도 예수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을 역사적 실제사건으로 기록했습니다.(2권 18장 3절) 예수님 당시의 사람 퍼블리우스 렌투러스(Publius Lentulus)란 사람은 당시 로마 의회에 다음과 같이 예수님의 모습을 묘사해서 서신을 보냈습니다. "요사이 덕망 있는 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들 가운데 아직 있으며 이방인들도 그를 진리의 선지자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의 제자들은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죽은 자를 살리고 여러 가지 병을 치유하며 키는 좀 큰 편이며 자색이 아름다우며 바라보는 이마다 존경심을 갖게 하고 두려움과 사랑을 느끼게 합니다. 그의 머리칼은 잘 익은 밤색깔이며 귀와 어깨까지 덮었으며 굽실굽실하며 동양적입니다. 그의 이마 한가운데로 가름자를 타고 올라갔으며 나사렛 사람의 행동을 하며 앞이마는 반듯하고 고상하게 보이며 얼굴은 점이나 주름이 없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붉은 기가 있으며 코와 입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선이 분명하며 수염은 짙으며 색깔은 머리칼과 같으며 너무 길지도 않으며 그의 모습은 순진하면서 성숙해 보이며 눈은 회색이며 빠르고 깨끗합니다. 책망할 때는 무섭고 타이를 때는 예의 바르고 치우침이 없으며 대화할 때는 쾌활하고 흡인력이 있습니다. 아무도 그가 웃는 것은 보지 못했으며 우는 것을 본 사람은 많습니다. 몸매는 균형이 잡히고 훌륭해 보이며 그의 손과 팔은 보기에 유쾌해 보이며 말할 때는 안정되고 겸손하며 지혜롭습니다. 단순함과 아름다움이 어떤 사람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상과 같은 묘사에서 하나님의 볼 수 있습니다. 왜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피조물의 형상을 입어야 했으며 영이신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셔야 했을까요
1 대속의 피를 흘려주시기 위해서 "피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기 때문입니다.(히브리서 9장 22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위기 17장 11절)"고 하셨기 때문에 죄 없는 피를 흘려 우리 죄를 대속 하기 위하여 성령님으로 잉태되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2 몸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기 위하여 몸의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그는 참 그리스도인도 아니며 구원받은 성도도 아닙니다. 그의 몸이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부활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부터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하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 하시는 일이 없이는 우리를 사망에서 구원하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3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담당하시려고 이사야 53장 4절부터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예언하신 말씀같이 예수님이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오셔서 고난과 슬픔을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고난과 슬픔을 위로하실 수가 있으며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의 질별을 치료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4 참 하나님과 참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영이신고로 우리 육신의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분인데 인간들은 하나님을 보기를 원하기 때문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빌립이 아버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니까 예수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한복음 14장 9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타락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고 참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몸을 입으시고 인간이 되어 오심으로 참 인간의 모습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다니엘 윌슬톤은 사전 편집자로 잘 알려졌고 유명한 정치가요 웅변가였는데 식당에서 어떤 사람과 대화하는 중에 그 분이 질문하기를 "어떻게 그리스도가 하나님도 되시고 사람도 되시는지 이해하겠습니까" 할 때 그는 "아니요, 나는 이해 할 수 없소. 내가 그를 이해 할 수 있다면 나보다 더 위대한 분이 될 수 없지요. 나는 초인간적인 구세주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오"라고 대답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신 말씀은 참으로 엄청나게 놀라운 말씀입니다.
2. 우리의 화육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오신 것처럼, 또 영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나타나 우리 죄로 대속하시고 엄청난 사랑을 나타내신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 엄청난 은혜와 사랑을 우리 몸으로 육신으로 믿음과 사랑을 나타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의 믿음이 영혼 속에 갇혀만 있으면 좋은 믿음 참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1 몸으로 예배 드리고 물질로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동방박사들이 먼 나라에서 몸소 찾아와 예수님께 경배하고 보배로운 예물로 경애심을 나타낸 것처럼 우리의 영적 믿음이 몸으로 나타내고 물질로 나타내야 참 믿음입니다. 아무리 멀어도 성전에 찾아 나아와 예배드려야 참 믿음입니다. 가능한 한 밤예배도, 삼일 예배에도 나와 예배 드려야 더 좋은 믿음이라고 할 수 있고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주일도 안 지키고 십일조나 기타 헌금으로 믿음을 표현하지 않으면 참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몸과 물질로 나타나야 합니다.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할 수 있는 한 남선 교회, 여선 교회에 가입하여 활동도 하고 교회 학교나 성가대에 봉사해야 믿음이 자랍니다.
2 입술과 목소리로 나타내야 믿음이 구체화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영생이나 구원은 영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썩을 육신과는 상관이 없어 보이지마는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믿고 몸의 입술을 열어서 그 믿음을 고백하고 시인해야 영이 성장하고 믿음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도 영에 속한 것이므로 조용히 영적으로만 기도하면 되는 줄 알기 쉬운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목소리를 내서 부르짖고 기도 할 때에 영성이 개발되고 영성이 강해지고 영적인 능력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귀가 어두워서 부르짖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레미야 29장 12-13절에 "너희는 네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했습니다. 육신의 힘도 기울이고 목소리를 크게 내서 기도해야 하나님은 더 잘 응답해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제자들이 잡혀가고 핍박이 일어날 때 그들이 한데 모여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얼마 동안 부르짖었더니 모인 곳이 진도하며 모두 성령님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고 했습니다. 영혼과 육신은 무관하지 않고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시편 3편 4절에도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했고 시편 18편 6절에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시편 77편 1절에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하나님께 내 음성으로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는도다" 이와 같이 영의 기도가 화육해서 육신의 목소리를 나타나야 영성이 강해지고 믿음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찬양도 속으로만 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목소리를 타고 나와야 합니다. 할 수 있으면 소리를 높이고 손뼉을 치고 두손들고 하는 찬송이 더 간절하고 더 뜨겁습니다. 시편 47편 1절에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으로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 지어다" 때에 따라서 손바닥도 치고 두 손들기도 하는 찬송이 더 은혜롭고 하나님도 기뻐 받으십니다. 우리가 주일 낮 예배때 "찬양하라 감사하라 경배하라" 송영을 부를 때 다 일어서서 두손들고 할 때 얼마나 더 감격스럽고 진실 되고 은혜롭습니까 영적인 것이 우리 육신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참으로 진실된 신앙의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하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해와 달과 별들도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수천억원수백 조원의 돈이라도 "김목사야, 아무데를 파면 석유가 나온다. 금이 나온다" 혹은 "무슨 무슨 증권을 사라" 한다면 대한 민국 돈 다라도 긁어모을 수 있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물질로 표현하기를 원하시고 그 사랑을 받고 싶어서 십일조나 감사 헌금을 하라는 것입니다. 물질로 표현이 되어야 참 믿음이며 그 물질의 정성을 보아서 물질의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영적인 것이 육신과 물질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몸으로 물질로 나타나지 않는 믿음은 참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경제위기 시대를 맞이하여 고통을 당하는 내 민족, 내 친구 나아가서 우리 믿음의 식구들에게 다른 어느 때보다도 온정을 베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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