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십자가와 우리의 십자가 (마27:45-46)
본문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일년중 가장 중요한 주간은 바로 오늘부터 부활 주일입니다. 또한 기독교 교리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교리는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래서 사도 행전에서 제자들이 죽기까지 부르짖어 전파한 교리는 역시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십자가와 부활 신앙을 제거한다면 교회는 생명이 없어지며 생명이 없으니 따라서 교회는 다 죽어버리고 맙니다.
I. 예수님의 십자가 십자가 진리를 바로 깨닫고 입지 않으면 구원도 받을 수 없고 교회도 생명을 잃고 맙니다. 죄로 영원히 저주받고 멸망해야 될 우리를 위하여 십자기에 죄없는 깨끗한 피를 흘려주시므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인류의 최대 원수인 사망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신 부활 신앙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 갈 수 있게 해 주셨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진리이며 큰 은혜입니까 십자가와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예수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1. 죄를 대속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우리 죄를 대속 하셨기 때문입니다. 대속(Redemption)이란 말은 "값을 지불하고 해방시켜 준다"는 뜻이 있고 '상환'이란 뜻이 있습니다. 또한 "구속"(Atonement)의 십자가라고도 합니다. '구속'이란 말도 비슷한데 '보상한다' 혹은 '갚아준다'는 뜻이 있습니다. 즉 죄로 말미암아 죄의 종이 되고 사탄의 종이 된 우리 죄인들을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죄의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자유케하고 해방 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례 받으러 오심을 보고 세례 요한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하고 말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부르짖은 말씀 가운데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셨는데 아람말로는 "엘리 엘리 라마 사막다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버림받아야 할텐데 예수님이 대신 버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다 이루었다" 하고 외치셨는데 헬라어로는 '다 청산했다' '다 지불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이 진리를 믿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출교시킨 홍교수는 예수의 죽음이나 피가 무슨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이 희생의 모범을 보여 줄 뿐이라고 하면서 "예수가 죽음으로서 다시는 불쌍한 동물들이 죽지 않아도 되게 되었으니 그는 사람이 아니라 동물들을 위해 죽은 것이다. 예수의 피흘림은 상징적인 언어요 그것은 공생에 전체를 가리킨 의미이다. 따라서 피의 마술을 믿는 교회와 교인들은 각자가 져야할 십자가를 외면한다고 말할 수 있다. 차라리 유대교나 통일교처럼 노골적으로 예수의 십자가를 거부하는 편이 정직하지 않을까(p 147)"라고 했으니 얼마나 엄청난 사탄적인 사상입니까 그는 또 즉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 아니라 특정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던 한 설교자의 죽음을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죽음 곧 피흘림은 그의 죽음 자체에 어떤 마술적 힘 또는 신학적 힘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 결코 아니다(p 190)"라고 했으니 얼마나 세밀하게 크리스트교의 핵심 교리를 파헤쳐 부인했습니까 그는 또 "예수의 죽음을 구원의 능력으로 만드는 것은 그의 죽음이 피흘리는 죽음에 있었다는 것도 아니며(마술) 그의 죽음에 신의 아들의 죽음이라는 데에 있지도 않다(신화)"고 했습니다. 사탄은 인류의 구원의 길인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2. 죄를 용서하는 십자가 십자가의 복음은 죄를 용서하는 복음입니다. 인간의 죄를 용서 해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어 주신 것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신 말씀대로 예수님의 공로를 힘입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고 천국에 들어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지금까지 강도짓 하다가 같이 십자가에 달린 강도가 회개하며 구원을 호소할 때 "네가 오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누가복음 23장 43절)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씻지 못할 죄인이 없습니다. 로마서 5장 9절에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요한 계시록 7장에 보면 천천만민의 천상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이들이 어디서 온 사람들입니까"하고 물으니까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온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복음서라고 하는 이사야서 53장에 보면 700여년 전에 예언하기를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순간 지금까지 가로 막혔던 지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 졌습니다. 이는 누구든지 예수 믿고 회개하면 다 죄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음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3.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십자가 십자가 복음의 특성은 결코 인간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값없이 구원받는 다는 복음입니다. 제일 중요한 요절은 요한 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는 말씁입니다. 요한 복음 5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 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나니라"고 했습니다. 구속자가 되시고 생명이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는 천하에 다른 길로는 구원받을 자가 없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이 말씀에서 믿음, 은혜, 선물이란 모두 값없이 거져주시는 것이 구원임을 확증해 주고 있습니다. 종교 다원주의를 주장하던 변교수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구원이 없다는 교리는 토리미의 천동설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이단 사상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또 "예수만 보편적으로 유일한 구속자이신 것이 아니라 저들의 종교도 그를 스스로의 구원의 길을 알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교리부터 흔드는 무서운 사탄의 사상입니다. 성령님으로 잉태되어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예수그리스도 외에 결코 다른 길로는 구원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4.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의 구원 십자가의 복음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질 사람에게는 어리석고 미련해 보이지만 믿고 구원받는 사람에게는 놀라운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지식이나 이성을 겸손히 무릎꿇게 하지 않고는 구원을 받아 들일수가 없습니다. 또 간신히 구원을 받는다고 해도 변론이나 좋아하고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 영성이 개발되거나 깊은 은혜의 자리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시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멸하리라 (고린도전서 1장 19절)"고 말씀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 하셨도다 (고리도 전서 1장 21절)"고 하셨고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후 인간의 이성도 타락했기 때문에 세상의 지혜나 총명으론 구원받지 못하도록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의 복음으로 구원받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구원받으려면 어리석어 보일 정도로 단순하고 어린아이 같은 믿음의 반응을 보여야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6절에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 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 세사의 미려한 것들, 약한 것들, 천한 것들, 멸시받는 것들, 없는 것들을 택하사 육체를 자랑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죄를 대속 하시고 구속해 주는 복음이며 죄를 용서하시는 복음이며 우리의 공로가 아니니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복음이며 세상 지혜로는 어리석어 보이는 복음입니다.
Ⅱ. 우리의 십자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데에는 두 가지 위험이 있습니다. 피의 구속,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것을 전하지 않고 도덕적인 면에서 희생의 모범으로만 삼으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럴듯하면서도 생명이 없는 무서운 사탄의 사상입니다. 그래서 강단에서 희생적인 삶만 강조하고 윤리적인 설교만 하고 사회참여만 강조하는 교회는 영적으로 살아나는 일이 없으므로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고 영적으로 죽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큰 위험이고 두 번째는 값없이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고 십자가를 지는 고난의 생활을 거부하거나 나아가서 안일주의로 신앙생활 하려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좋은 것이니라" 말씀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공로로 지옥갈 죄인이 구원받았으면 우리에 맡겨진 십자가, 내 몸에 태인 십자가를 날마다 지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때로는 주를 위해 자기 목숨도 버릴 각오를 하고 주님을 따라 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케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라 (고린도전서 9장 27절)"고 했고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기독교인들이 십자가의 공로도 구원은 받았다고 하면서 가정에서 사회에서나 십자가를 지는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지는 만큼 우리 안에서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떤 권사님이 신혼생활에 재미있게 사는데 누님도, 매부도 돌아 사셔서 갈곳 없는 조카딸을 데려다 키워야 될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신혼 생활에 귀찮기도 하고 돈도 들기 때문에 모른 체하고 안데려오기로 결심하고 밤에 잠을 자는데 꿈속에 예수님이 나타나 십자가를 하나주면서 받으라고 해서 싫다고 했더니 더 큰 십자가를 억지를 맡기더랍니다. 꿈에서 깨어나 그 조카딸을 데려 오기를 의논하고 데려다 키우는 것을 시골 목회할때 보았습니다. 어렵고, 고통스럽고, 억울하더라도 그 십자가를 잘 지고 나갈 때 십자가 후에 광명한 부활의 아침이 오듯이 큰 승리와 축복의 시간이 올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이 축복하는 사람일수록 십자가와 같은 고통과 연단이 많은 법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엘리 엘리 라마 사막다니"하고 부르짖는 것처럼,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일수록 하나님께 완전히 버림받는 것 같은 연단과 시련을 많이 받는 법입니다. 그 때 원망, 불평하지 않고 참으면 부활의 승리가 찾아오는 법입니다. 우리 모두가 지옥의 심판을 받아야 할 죄인들이 있으나 구원받고 죄용서 받았으니 우리도 우리에게 잘 못한 사람을 너그럽게 용서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1만 달란트(약 10억) 빚진 사람을 탕감해 주었더니 자기에게 100데나리온(한 100만원) 빚진 사람을 만나더니 갚지 않는다고 감옥에 집어넣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을 다시 붙들어다가 감옥에 집어넣고 다 갚기 전에는 못 나온다고 명령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태복음 18장 35절)"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를 믿을 때 단순하고 어리석게 믿읍시다. 너무 타산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령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 지혜를 미련케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의 도를 구원하시는 것이므로 단순하게 전폭적으로 믿고 맡기는 신앙생활을 합시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인간의 지혜보다 났습니다. 어떤 분이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보고 믿는 것이 쉽겠느냐, 아니면 오늘날 우리처럼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더 쉽겠느냐고 하면서 보지 않고 믿는 편이 더 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보잘것없는 동네 나사렛 사람인데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자랐고 볼품도 없었을 것입니다. 30살밖에 안된 예수님을 "50도 안된 네가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하느냐" 한 것을 보면 상상 보다 고생을 해서 더 늙어 보였던 모양입니다. 저는 많은 사람에게서 어리석고 단순하고 순진하다고 어린애 같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인품도 첫 인상에 우람해 보이지 않아서 얕잡아 보고 핍박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서 열등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물론 저나 우리 교회가 마귀가 제일 싫어하는 일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마는 그 때에 기도하면 이사야 53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그는 주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같고 마른땅에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이사야 53장 2절)"는 말씀으로 주께서 위로해 주십니다. 3절에 "그는 멸시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다"도 했습니다. 연한 순같고 가물어 메마른 땅에서 나온 풀줄기가 얼마나 볼품없겠습니까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메시아도 그랬는데 우리 같은 죄인들이 잘난 채 할 것 뭐 있겠습니까 남들이 어리석다고 하든지 멍청이라고 하든지 못났다고 하든지 순진하다고 하든지 나약하다고 하든지 개의치 말고 어리석고 단순하게 믿고 의지하면서 삽시다. 십자가는 싹싹 피해가면서 약게, 얄밉게 믿지 말고 어리석게 십자가를 지는 생활을 합시다. 그러면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로워 결국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여 주십니다.
I. 예수님의 십자가 십자가 진리를 바로 깨닫고 입지 않으면 구원도 받을 수 없고 교회도 생명을 잃고 맙니다. 죄로 영원히 저주받고 멸망해야 될 우리를 위하여 십자기에 죄없는 깨끗한 피를 흘려주시므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인류의 최대 원수인 사망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신 부활 신앙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 갈 수 있게 해 주셨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진리이며 큰 은혜입니까 십자가와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예수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1. 죄를 대속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우리 죄를 대속 하셨기 때문입니다. 대속(Redemption)이란 말은 "값을 지불하고 해방시켜 준다"는 뜻이 있고 '상환'이란 뜻이 있습니다. 또한 "구속"(Atonement)의 십자가라고도 합니다. '구속'이란 말도 비슷한데 '보상한다' 혹은 '갚아준다'는 뜻이 있습니다. 즉 죄로 말미암아 죄의 종이 되고 사탄의 종이 된 우리 죄인들을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죄의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자유케하고 해방 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례 받으러 오심을 보고 세례 요한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하고 말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부르짖은 말씀 가운데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셨는데 아람말로는 "엘리 엘리 라마 사막다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버림받아야 할텐데 예수님이 대신 버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다 이루었다" 하고 외치셨는데 헬라어로는 '다 청산했다' '다 지불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이 진리를 믿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출교시킨 홍교수는 예수의 죽음이나 피가 무슨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이 희생의 모범을 보여 줄 뿐이라고 하면서 "예수가 죽음으로서 다시는 불쌍한 동물들이 죽지 않아도 되게 되었으니 그는 사람이 아니라 동물들을 위해 죽은 것이다. 예수의 피흘림은 상징적인 언어요 그것은 공생에 전체를 가리킨 의미이다. 따라서 피의 마술을 믿는 교회와 교인들은 각자가 져야할 십자가를 외면한다고 말할 수 있다. 차라리 유대교나 통일교처럼 노골적으로 예수의 십자가를 거부하는 편이 정직하지 않을까(p 147)"라고 했으니 얼마나 엄청난 사탄적인 사상입니까 그는 또 즉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 아니라 특정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던 한 설교자의 죽음을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죽음 곧 피흘림은 그의 죽음 자체에 어떤 마술적 힘 또는 신학적 힘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 결코 아니다(p 190)"라고 했으니 얼마나 세밀하게 크리스트교의 핵심 교리를 파헤쳐 부인했습니까 그는 또 "예수의 죽음을 구원의 능력으로 만드는 것은 그의 죽음이 피흘리는 죽음에 있었다는 것도 아니며(마술) 그의 죽음에 신의 아들의 죽음이라는 데에 있지도 않다(신화)"고 했습니다. 사탄은 인류의 구원의 길인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2. 죄를 용서하는 십자가 십자가의 복음은 죄를 용서하는 복음입니다. 인간의 죄를 용서 해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어 주신 것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신 말씀대로 예수님의 공로를 힘입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고 천국에 들어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지금까지 강도짓 하다가 같이 십자가에 달린 강도가 회개하며 구원을 호소할 때 "네가 오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누가복음 23장 43절)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씻지 못할 죄인이 없습니다. 로마서 5장 9절에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요한 계시록 7장에 보면 천천만민의 천상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이들이 어디서 온 사람들입니까"하고 물으니까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온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복음서라고 하는 이사야서 53장에 보면 700여년 전에 예언하기를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순간 지금까지 가로 막혔던 지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 졌습니다. 이는 누구든지 예수 믿고 회개하면 다 죄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음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3.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십자가 십자가 복음의 특성은 결코 인간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값없이 구원받는 다는 복음입니다. 제일 중요한 요절은 요한 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는 말씁입니다. 요한 복음 5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 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나니라"고 했습니다. 구속자가 되시고 생명이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는 천하에 다른 길로는 구원받을 자가 없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이 말씀에서 믿음, 은혜, 선물이란 모두 값없이 거져주시는 것이 구원임을 확증해 주고 있습니다. 종교 다원주의를 주장하던 변교수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구원이 없다는 교리는 토리미의 천동설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이단 사상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또 "예수만 보편적으로 유일한 구속자이신 것이 아니라 저들의 종교도 그를 스스로의 구원의 길을 알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교리부터 흔드는 무서운 사탄의 사상입니다. 성령님으로 잉태되어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예수그리스도 외에 결코 다른 길로는 구원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4.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의 구원 십자가의 복음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질 사람에게는 어리석고 미련해 보이지만 믿고 구원받는 사람에게는 놀라운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지식이나 이성을 겸손히 무릎꿇게 하지 않고는 구원을 받아 들일수가 없습니다. 또 간신히 구원을 받는다고 해도 변론이나 좋아하고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 영성이 개발되거나 깊은 은혜의 자리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시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멸하리라 (고린도전서 1장 19절)"고 말씀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 하셨도다 (고리도 전서 1장 21절)"고 하셨고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후 인간의 이성도 타락했기 때문에 세상의 지혜나 총명으론 구원받지 못하도록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의 복음으로 구원받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구원받으려면 어리석어 보일 정도로 단순하고 어린아이 같은 믿음의 반응을 보여야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6절에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 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 세사의 미려한 것들, 약한 것들, 천한 것들, 멸시받는 것들, 없는 것들을 택하사 육체를 자랑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죄를 대속 하시고 구속해 주는 복음이며 죄를 용서하시는 복음이며 우리의 공로가 아니니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복음이며 세상 지혜로는 어리석어 보이는 복음입니다.
Ⅱ. 우리의 십자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데에는 두 가지 위험이 있습니다. 피의 구속,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것을 전하지 않고 도덕적인 면에서 희생의 모범으로만 삼으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럴듯하면서도 생명이 없는 무서운 사탄의 사상입니다. 그래서 강단에서 희생적인 삶만 강조하고 윤리적인 설교만 하고 사회참여만 강조하는 교회는 영적으로 살아나는 일이 없으므로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고 영적으로 죽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큰 위험이고 두 번째는 값없이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고 십자가를 지는 고난의 생활을 거부하거나 나아가서 안일주의로 신앙생활 하려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좋은 것이니라" 말씀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공로로 지옥갈 죄인이 구원받았으면 우리에 맡겨진 십자가, 내 몸에 태인 십자가를 날마다 지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때로는 주를 위해 자기 목숨도 버릴 각오를 하고 주님을 따라 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케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라 (고린도전서 9장 27절)"고 했고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기독교인들이 십자가의 공로도 구원은 받았다고 하면서 가정에서 사회에서나 십자가를 지는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지는 만큼 우리 안에서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떤 권사님이 신혼생활에 재미있게 사는데 누님도, 매부도 돌아 사셔서 갈곳 없는 조카딸을 데려다 키워야 될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신혼 생활에 귀찮기도 하고 돈도 들기 때문에 모른 체하고 안데려오기로 결심하고 밤에 잠을 자는데 꿈속에 예수님이 나타나 십자가를 하나주면서 받으라고 해서 싫다고 했더니 더 큰 십자가를 억지를 맡기더랍니다. 꿈에서 깨어나 그 조카딸을 데려 오기를 의논하고 데려다 키우는 것을 시골 목회할때 보았습니다. 어렵고, 고통스럽고, 억울하더라도 그 십자가를 잘 지고 나갈 때 십자가 후에 광명한 부활의 아침이 오듯이 큰 승리와 축복의 시간이 올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이 축복하는 사람일수록 십자가와 같은 고통과 연단이 많은 법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엘리 엘리 라마 사막다니"하고 부르짖는 것처럼,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일수록 하나님께 완전히 버림받는 것 같은 연단과 시련을 많이 받는 법입니다. 그 때 원망, 불평하지 않고 참으면 부활의 승리가 찾아오는 법입니다. 우리 모두가 지옥의 심판을 받아야 할 죄인들이 있으나 구원받고 죄용서 받았으니 우리도 우리에게 잘 못한 사람을 너그럽게 용서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1만 달란트(약 10억) 빚진 사람을 탕감해 주었더니 자기에게 100데나리온(한 100만원) 빚진 사람을 만나더니 갚지 않는다고 감옥에 집어넣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을 다시 붙들어다가 감옥에 집어넣고 다 갚기 전에는 못 나온다고 명령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태복음 18장 35절)"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를 믿을 때 단순하고 어리석게 믿읍시다. 너무 타산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령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 지혜를 미련케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의 도를 구원하시는 것이므로 단순하게 전폭적으로 믿고 맡기는 신앙생활을 합시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인간의 지혜보다 났습니다. 어떤 분이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보고 믿는 것이 쉽겠느냐, 아니면 오늘날 우리처럼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더 쉽겠느냐고 하면서 보지 않고 믿는 편이 더 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보잘것없는 동네 나사렛 사람인데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자랐고 볼품도 없었을 것입니다. 30살밖에 안된 예수님을 "50도 안된 네가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하느냐" 한 것을 보면 상상 보다 고생을 해서 더 늙어 보였던 모양입니다. 저는 많은 사람에게서 어리석고 단순하고 순진하다고 어린애 같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인품도 첫 인상에 우람해 보이지 않아서 얕잡아 보고 핍박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서 열등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물론 저나 우리 교회가 마귀가 제일 싫어하는 일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마는 그 때에 기도하면 이사야 53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그는 주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같고 마른땅에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이사야 53장 2절)"는 말씀으로 주께서 위로해 주십니다. 3절에 "그는 멸시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다"도 했습니다. 연한 순같고 가물어 메마른 땅에서 나온 풀줄기가 얼마나 볼품없겠습니까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메시아도 그랬는데 우리 같은 죄인들이 잘난 채 할 것 뭐 있겠습니까 남들이 어리석다고 하든지 멍청이라고 하든지 못났다고 하든지 순진하다고 하든지 나약하다고 하든지 개의치 말고 어리석고 단순하게 믿고 의지하면서 삽시다. 십자가는 싹싹 피해가면서 약게, 얄밉게 믿지 말고 어리석게 십자가를 지는 생활을 합시다. 그러면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로워 결국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여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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